우에노 지즈코, 『여자들의 사상』.

모리사키 가즈에 등이 활동했던 규슈의 서클무라에서 발간한 무명통신 1호, 1959년 8월. 도덕의 도깨비를 퇴치합시다 라는 제목의 글로 사작한다. 무명통신은 일본의 WAN(Women’s Action Network) 홈페이지의 디지털 미니코미 도서관에서 제공되고 있다. 먼저 올린 사진은 메이지 시기의 다른 잡지 사진이라, 지적을 받고 바꾸었다.

우에노 지즈코上野千鶴子, 『여자들의 사상「おんな」の思想: 私たちは, あなたを忘れない』, 조승미・최은영 역, 현실문화, 2015(2013).

우에노 지즈코의 책은 제법 읽는 편이지만, 뭔가 쓰는 일은 좀 드물다. 왠지 나에게는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는 것 같다. 이 책도 반나절이면 읽을 수 있겠지 하면서 집어들었는데. 그보다는 좀 더 걸렸다. 원래 쓸 생각이 없었는데. 뭔가 적어 두기로 한 것은 1부에 나오는 일본의 초창기 페미니스트들에 대한 부분 때문이었다. 2부의 시작에서 푸코를 다루는 데, 잘 모르는 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지만, 그 뒤는 최소한의 길안내는 되는 것 같아 메모해 두려한다. 최근 한국의 페미니스트들의 글을 읽고 있을 때, 느꼈던 혼란을 조금은 정리해 주는 느낌이다. 주장이 혼란스럽다기보다는 그런 주장을 하는 근거와 자신의 이전 주장과의 교차와 모순이 읽는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그래도 나오는 책들을 참고 보아두려고 하는데, 그런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 무엇을 읽어야 하는지 알려준다. 예를 들면 이브 세즈윅Eve Kosofsky Sedgwick은 꼭 보아야 할 것 같다. 요새 흔히 쓰이는 남성연대라는 말의 출처가 그였다. 그리고 조앤 W. 스콧Joan Wallach Scott도. 이 경우는 번역이 있으니 어렵지 않을 것 같고. 절판된 책들도 적잖은데, 요즘은 수요가 있어서 그런지, 종종 새 옷을 입고 나오는 것 같다. 제목이 너무 그럴 듯하게 거창해 지는게 좀 단점이랄까. 분홍색도 좀 과잉이고. 여튼.

모리사키에게 일본의 고향 규슈 지방의 말은 외국어와 같았다. 식민지 조선에서 배운 일본어는 일본 각지에서 조선으로 온 오합지졸 일본인들의 일본어이자 인공적인 표준어였기 때문에 모리사키에게는 모국어가 없었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보편적으로 풀어낼 수 있는 ‘사상’ 같은 낱말의 뜻을 찾아보면 온통 한자로 이루어진 ‘남자의 말’투성이였다. 말하고 싶었지만 기존에 있던 말로는 표현할 수 없었다. 뭔가에 걸려 넘어질 것만 같은 이러한 문체는 위태롭고 몹시 안타까웠다. 모리사키가 처한 상황은 1960년대 중반 동시대 남성 동지들에게 둘러싸여 학생운동을 벌이며 살아온 여자들과 얼마나 비슷한지. 나도 그러한 여자들 중 하나였다.(28)

모리사키 가즈에森崎和江는 식민지 조선의 대구에서 유복한 일본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가 기억하는 조선인 유모의 향기처럼, 그리고 1944년 전문학교에 진학하기 위해 규슈에 돌아간다. 고향이 조선인 식민자의 2세로 태어난 그의 첫번째 문제는 말이었다. 그의 조선어가 아니라 그의 일본어가 문제였다. 게다가 그 표준어인 일본어는 남자들의 말이었다. 그는 규슈 미쓰이 미이케 탄광의 투쟁을 이끌었던 다이쇼행동대의 다니가와 간谷川雁과 함께 살면서 투쟁했다. 여기서 문예지 「サークル村서클무라」를 만들었고, 특히 여자들의 목소리를 발하겠다면서 「無名通信무명통신」을 만들었다. 그러다가 다니가와 간과 헤어지게 되는데, 그 이유가 다니가와 간이 다이쇼행동대 내의 강간사건에 대한 진상조사를 당장의 투쟁이 긴박하다는 이유로 거부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렇게 똑같은가. 내가 모리사키 가즈에의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이 「無名通信」을 칼럼에서 소개한 후지이 다케시의 칼럼을 통해서였다. 그는 역사문제 연구소에서『資料 日本ウーマン・リブ史(자료 우먼리브사)』 강독 세미나를 하기도 했는데. 아마 한국에서 거의 마지막 활동이 아니었나 싶다. 그는 자신의 칼럼집 『무명의 말들』이 유고집이라며, 자신이 죽었다고 선언했지만, 나는 그가 부활할 것을 믿는다. 어딘가에서 그는 되살아날 것이다. 그때를 기다리며, 작은 기대나마 하고 있다. 모리사키 가즈에는 규슈 출신 여성들이 인신매매 업자와 알선책에 의해 동남아 등 일본의 식민지 곳곳으로 팔려나가 성매매에 내몰린 『からゆきさん(가라유키상, 한국어역 쇠사슬의 바다)』의 이야기를 다룬 책으로 유명해지게 된다. 드라마 「미스타 션샤인」에 왜각시라는 이름으로 나오던, ‘가라유키상’ 도 슬픈 이야기다. 박유하에 의해 ‘위안부’의 전신으로 소개되면서, 왜곡 또는 오해되기도 했다. ‘가라유키상’은 가라유키상 대로, 위안부는 위안부대로 그 특이성을 읽어내야 한다는 이야기 까지 덧붙여야 하는 건 좀 서글프다.

나는 아이를 낳을 때 더할 나위 없는 쾌락을 점유한다는 사실이 두려웠습니다. 그래서 이 사실에 포함된, 여자가 가지는 성에 대한 오만한 심리에 직면하는 것이 걱정되어서 남편을 분만실로 불렀습니다. 나는 충분히 알고 있었습니다. 분만의 쾌락을 말이죠. 육체를 쥐어짜는 고통과 비슷한 쾌락을 말입니다. 그것이 생명의 출산인 동시에 죽음에 아슬아슬하게 가까워지는 지점에서 성의 자기 소비적인 자기 성애를 고조시키는 것이라는 점을, (…) 그건 (…) 나의 성이 가지고 있는 권력성이 소멸되기를 바라는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40)

우에노 지즈코가 『第三の性(제3의 성)』을 인용한 부분이다. 임신을 한 후에 자기 스스로를 나 도는 또는 홀로라고 말할 수 없었다고 이야기하는 모리사키 가즈에의 말을 출산의 사상을 표현한 것이라고 하는데, 모리사키는 여자에게 성이란 성의 교환으로부터 임신, 출산까지 긴 과정을 하나의 연결된 쾌락으로 독점하려는 탐욕스러운 것이라고 인정하고, 남자가 필요 없는 ‘처녀 수태’는 여자가 가지는 성에 대한 권력욕이라며 스스로 경계하기도 했다.(38-40)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자신의 삶의 상황으로부터 출발해서 조각조각이지만, 여자의 사상의 만들어 낸 모리사키 가즈에는 흥미롭기 이를데 없다. 더욱이 ‘처녀 수태’가 궁극적인 권력욕이라는 구절에선 눈이 번득였다. 그의 글을 좀 더 읽고 싶어졌다.

‘이시무레 식 방언’으로 그린 세계가 천상을 그린 것처럼 보이면 보일수록 나는 그 세계가 어디에도 존재한 적이 없는 세계이며, 이시무레가 희구하던 세계는 그녀의 말로 인해 비로소 눈앞에 나타난 ‘이 세상에 없는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건 ‘유토피아’라는 말의 정확한 뜻처럼 ‘어디에도 없는 세계’이며, 존재하지 않는 과거를 신화처럼 만드는 데서 비롯된 ‘노스탤지어’이다. 이시무레는 과거에 있던 것을 재현한 것이 아니다. 필설로 다할 수 없는 비참함을 낱낱이 모두 겪었기 때문에 마치 기도하듯 세계를 창조해낼 수 있었던 것이다. 이시무레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환자의 원통한 인생을 구원할 방법이 없다고 생각한 것일까.(64) 이제 막 혁명을 생각해본 남자라 할지라도 여자들을 대할 때면 늘 체제 그 자체가 되어 마주합니다. 남자들의 말은 권력을 가진 말이 되었는데, 말하자마자 사멸하여 내 눈앞에서 흩어졌습니다. 그건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든 광경이었습니다. 뭘 말하려고 하면 금세 남자의 사상으로 말하게 됩니다. 지금껏 말한 적이 없는 여자의 말로 대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습니다. ‘이시무레 식 방언’은 이렇게 남자의 말을 일단 배우고learn 그리고서 배움을 버린unlearn 후에 비로소 획득한 것이다.(68)

『슬픈 미나마타』의 저자 이시무레 미치코石牟礼道子는 세 가지 문체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첫 번째는 저자 자신을 주어로 등장시킨 말, 두 번째는 미나마타 지역의 방언을 드러낸 구어체 말, 세 번째는 의사의 진단서와 관청의 보고서에 사용된 말이었다. 특히 두 번째와 세 번째의 문체는 이해할 수 없는 외국말 같기도 하며, 설명없이 느닷없이 나오기도 한다.(54) 우에노 지즈코는 이시무레 미치코가 자기 말을 발명한 여자라고 말한다. 한국어로는 『苦海浄土(슬픈 미나마타)』와 제2부 『神々の村(신들의 마을)』이 번역되어 있다. 일본어로는 제3부도 『天の魚』도 있다. 이 작품은 다큐멘터리 같지만 실은 문학작품이며, 말하자면 작가 이시무레 미치코가 빙의해서 그들의 마음을 표현하여 쓴 글이다. 그래서 우에노 지즈코는 ‘이시무레 식 방언’이라고 말한다. 이시무레 미치코 역시 규슈의 미쓰이미이케 탄광 투쟁에 참여했고, 「サークル村」와 「無名通信」에서 활동했다. 그러다가 본격적으로 자신의 글을 쓰는 것은 고향 선배인 다카무레 이쓰에高群逸枝가 죽은 후 그의 남편인 하시모토 겐조橋本憲三의 집에 들어가 살면서 이다. 다카무레 이쓰에는 원래 아나키스트로 일본이 고대로부터 모계제 사회라고 주장했지만, 동시에 전쟁 참여를 옹호하며 활동했던 문제적 인물이다. 하시모토는 그를 평생 지지한 남편이었다.(70) 다카무레 이쓰에의 방언은 ‘번민하는 신’, 즉 자신은 무력하고 무능하더라고 어떤 사태가 일어나거나 살아 잇는 자들이 재해나 화를 입으면 전적으로 감응하는 자질을 가진 자의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규슈에서는 보통 노파들이다.(73) 미나마타 병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 꼭 하나 덧붙이지 않을 수 없는 이야기가 있다. 미나마타 병은 한국에서도 발생할 수 있었다. 흥남 병도 생길 뻔했다. 책에 짓소ジッソ라는 회사명으로 나오는 일본질소日本窒素 줄여서 일질은 당연히 식민지에도 진출했다. 조선질소비료주식회사 흥남공장으로 황산암모늄을 생산하는 곳이었는데, 당시에는 동양최대, 지금도 북한에서 중요한 생산시설이다. 물론 미나마타 병은 아세트 알데히드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촉매로 사용한 수은 때문에 발생한 병이지만. 식민지 조선과 내지 일본은 이렇듯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져 있다.

‘변소’란 배출욕과 같은 남성의 성욕을 처리하는 도구로 여겨지는 여자를 은유하는 말이었다. 바리케이드 뒤편에서는 젊은 남녀 학생들의 ‘성혁명’이 진행되었다.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난 1960년대 학생운동 속에서 정치와 성은 똑같이 소중한 주제로 여겨졌는데, 1968년 파리의 5월 혁명에서는 “오르가슴, 그것이 내게는 혁명과 마찬가지로 중요하다”는 표어가 나타났을 정도였다. 그러나 성의 해방은 남자와 여자에게 각기 매우 비대칭적인 효과를 초래했다. 성 경험이 많은 것은 남자에게는 훈장이었지만, 여자에게는 부정적 낙인이었다. 바리케이드 뒤에서 ‘남자와 쉽게 자는 여자’는 남학생들 사이에서 공공연히 ‘공중변소’라 불렸다. 나는 이 말이 위안부를 가리키는 황군 병사의 은어라는 것을 그러부터 20년 후인 1990년대에서야 알게 되었다.(84-85) 남자에게 여자는 ‘모성의 무드러움=어머니’이거나 ‘성욕 처리기=변소’, 이 두 가지 이미지로 나눠지는 존재다. (…) 남자의 어머니이거나 변소, 둘 중 하나라는 의식은 현실에서 여자는 결혼 상대이거나 놀이 상대라는 식으로 나타난다. (…) 지배계급의 요청으로 만들어진 남자의 분화된 의식 앞에서, 부드러움의 성과 관능의 성을 한 몸에 가지고 있는 여자는 해체되어 부분으로 살아갈 것을 강요받는다. 그러나 여자를 부분으로만 살려두는 남자는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도 부분으로서만 살아갈 수밖에 없으며, 자신의 성을 억압하고 있다.(85-86)

일본의 우먼리브는 신좌파(뉴레프트)의 뱃속에서 달이 차 태어난 밉상이라고 말한 다나카 미쓰田中美津가 인용된 글 「변소로부터의 해방便所からの解放」는 다나카 미쓰가 1970년 10월 21일 여자들만의 시위에서 손으로 써서 등사해서 뿌린 전단이다. ‘변소’라는 충격적인 이름을 스스로 써서 신좌파 운동권의 치부를 폭로하면서 우먼리브(여성해방)를 선언한 출발점이기도 하다. 성해방 또는 성혁명을 말하는 운동권 남성의 이중성이란, 여성해방이 그 출발점에서 자유연애, 자유섹스를 뜻하고, 그 과정에서 제멋대로의 성행위가 용인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남자에 한하며, 여자들은 여전히 성욕해소를 위한 돌봄 노동이 지속되는 것을 말한다. 한국에서도 익히 알려진 일이다. 변소가 아니라 ‘걸레’라고 불렀지만. 변소와 걸레는 실상 똑같은데. 다나카 미쓰가 여자가 변소면 남자는 오물이라고 일갈한 것처럼, 걸레 역시 오물을 닦아내는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변소나 걸레 같은 비칭 또는 멸칭은 남성이 자기자신을 더러운 욕망으로 지칭하는데 지나지 않는다. 이날 시위에는 ‘정숙한 여자와 위안부로 침략을 지탱한다’는 피켓도 등장했는데,(87) 일본에서는 이런 식으로 1970년 우먼리브 초기에 잠깐 위안부 문제가 제기되었다가, 한국인 위안부들이 문제를 제기할 때까지 20년간 침묵한다. 긴자나 신주쿠 또는 강남의 유흥업소에서 접대부를 돈으로 사는 것과 운동권 내부에서 성해방을 외쳐서 여성을 성적으로 도구화하는 일은 신기하게도 일본에서도 한국에서도 반복되었다. 이런 일은 급진적인 적군파에서조차 나타났다. 그리고 2019년의 한국은 장자연 사건, 김학의 사건, 승리와 정준영 사건이 뒤흔들고 있다. 이 모든 사건이 본질적으로 같다고 말하기는 쉬운 일이다. 그러나 각각은 또 그 나름의 특이성이 있는데. 그걸 여기서 언급하지는 않겠다. 다만, 여성을 성적 쾌락의 동등한 주체로 여기지 않고, 대상으로 도구화하는 일은 모습을 계속 바꾸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지속된다는 점만은 지적해 두고 싶다.

걸핏하면 “여성해방이 뭐냐?”고 묻는 남자들이 있는데, 이들이 스스로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끓어오른다. 그렇기 때문에 나 자신은 그 질문을 외면할 수밖에 없다. 남자에게 평가받는 것이 가장 큰 자랑거리가 되어버린 여자들의 역사성이, 입을 벌려 답하려는 내 속에도 보여서 나도 모르게 말문이 막힌다. (…) 바햐흐로 아픈 사람은 애초부터 알기 쉽게 남에게 말해줄 여유 따위 없다. 그러나 이러한 엉망인 상태야말로 우리의 말이며 우리의 생명 그 자체인 것이다.(93) 1972년 간행된 다나카 미쓰의 『いのちの女たちへ생명의 여자들에게』에 실린 글이다. 말할 수 없는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을 추구하는 것이 그 출발점인 동시에 말하는 것조차 남자에게 받는 그 인정을 바라는 일이라는 데 대한 자각. 그는 자신이 여덟 살 때 받은 성적 학대로 인해 매독에 걸렸던 것을 스물한 살이 되어서 알게 되었다. 이런 개인사에서 그의 고민은 출발했다. 「변소로부터의 해방」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계급사회에서 여성은 누구나 태어날 때부터 하나의 사유재산을 가지고 있다. 처녀성이라는 사유재산을, 이것을 솜씨 좋게 이용하여 비싸게 파는 것으로 여자의 인생은 결정된다.(94) 그리고 다나카 미쓰는 바로 그 단 하나의 사유재산이 없었던 존재다. 그가 들고 일어나 싸우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남자보다 더 주체적으로 남자의 혁명이론을 섬긴다면, 여자는 모두 나가타 히로코가 될 것이다. (…) 남성을 향해 꼬리 치는 이 세상의 여자란 여자는 모두 나가타 히로코이다.(103) 『생명의 여자들에게』에 실린 에세이 중 한 구절이다. 나가타 히로코란 적군파 즉 연합적군 사건에서 임신 8개월이던 여자 동료를 죽게 한 대원의 이름이다. 남자와 동등한 ‘혁명 전사’가 되려는 여자는 여느 여자처럼 부인=어머니가 되려던 여자를 전력이 못 된다는 ‘생산성 논리’를 이유로 죽였다. 혁명운동을 하는 여자를 ‘게발트 로자Gewalt Rosa’와 ‘귀여운 소녀’로 서로 분리시키고 대립시키는 남자의 논리 속에서 나가타 히로코는 ‘여성스러움’을 보인 여성 동지를 살해하는 쪽에 섰다.(103-104) 다나카 미쓰는 자신이 나가타 히로코와 같다고 선언한다. 남자의 평가, 남자의 인정을 요구하면서, 남성 권력의 요구에 따라 그것이 혁명이든 그것이 경제성장이든 추구하는 논리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나는 도미오카를 현대 일본의 최대 허무주의자 여성이라고 부른 적이 있다. 허무주의는 남자의 특권이 아니다. 도미오카의 문장에는 수줍음은 있어도 자기 도취는 없다. 그리고 도미오카처럼 자기애(나르시시즘)와 인연이 없는 여성은 극히 드물다. 여자는 출산하는 성이며 남자는 할 수 없는 일(출산)을 할 수 있다고 자랑스러워해왔다. 그러나 낳는 성이 언제나 희망과 연결되는 것이라고는 할 수 없다. 보부아르에게 낳는 성이란 ‘암컷의 굴욕’이었고, 모성은 자연의 저주였다. 보부아르도 도미오카도 자각적으로 낳지 않을 것을 선택한 여성이다. 피임과 중절로 성과 출산을 분리할 수 있게 되었지만, 임신이 여자의 숙명이 아니게 된 역사는 새로운 것이다. 이 세상에는 출산의 사상 뿐 아리나 ‘석녀産まず女’의 사상 또한 있는 것이다.(118-119) 여자는 여자가 되어 달리 할 일이 없으니까 아이를 낳는다.(119) 엄마가 육아에서 해방된다는 것이 실은 아이들이 엄마로부터 해방되는 것이었음을 사람들은 이제야 겨우 알게 되었다.(121) 학문과 예술은 심심풀이로는 안성맞춤이다. 육아는 학문이나 예술보다 더 좋은 심심풀이다. 여자는 육아라는 최고의 심심풀이를 가지고 있다.(136) 도미오카 다에코富岡多恵子의 글은 시니컬하고 때론 충격적이다. 달리 할 일이 없어, 아이를 낳는 것이고, 육아란 여자의 심심풀이라는 주장이라니. 도미오카는 여자는 평화주의자라며 여자라는 사실만으로 연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여자 전체주의라고 비판한다. 페미니스트 근본주의라고도 볼 수 있으며, 젠더 본질주의라고도 볼 수 있다.(123) 페미니즘의 종류는 페미니스트의 수 만큼은 아니더라도 정말 종류가 많다. 그리고 그 중에는 간혹 페미니스트 근본주의 내지 젠더 본질주의를 주장하는 경우도 아직까지 없지 않다. 어떤 경우에는 같은 사람이 젠더 본질주의적 주장을 막 넘나들기 때문에, 그런 말의 결을 따라가면서 주장을 이해하기가 쉬운 일이 아니다. 본질주의나 근본주의 모든 종류의 사상에 깊이 숨어있는 일종의 근본적인 문제 같은 느낌이 든다.

미즈타는 성녀, 여신, 엄마, 그리고 반대편에 있는 요부, 독부, 창부 모두가 여성을 신화화하는 것이라고 했다. 받들어지든 깔봄을 당하든, 결과는 같은 것이다. 여자는 남자에게 편리한 대로 반들어진 환상 속에서 내쫓기고 유폐된다. 미즈타는 이렇게 썼다. 성녀, 엄마인 자, 혹은 영원한 창부. 이러한 여성상은 남성의 꿈의 근원이자 동시에 여자 자신에게도 환상이었다.(148) 미즈타 노리코水田宗子는 영미문학을 전공한 문학비평가다. 그는 문학비평을 통해 어떤 의미에서는 여성 자신의 신화를 파헤친다. 개혁의 출발점은 자기 발밑에서부터란 사실을 잘 보여준다.

일본의 근대문학에서 남성을 내면의 발견으로 이끈 것은 ‘여자’이다. 남자는 공적 장소=사회로부터 이탈해서 사적 영역에 침잠한다. 사적 공간에 있는 것은 여자인데, 여자에게 이끌리거나 여자를 추구하여 남자는 사적 영역으로 몰입하게 된다. 남자들의 사적 영역=여자에게로 도주하는 경로에는 두 가지 눈에 띄는 패턴이 있다. 하나는 가정으로 도주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가정으로부터 도주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패턴 모두에서 주인공은 사적 영역에서 자신이 찾는 여자를 발견할 수 없다. 여자라는 메타포 속에 스스로의 내면을 구해줄 것을 찾는 근대 일본문학의 남성들은 현실의 여자에게서 실망하고 괴로워한다. 그리고 여자에게서 도망간다. 여자에게로 도주하는 것, 그리고 여자에게서 도주하는 것. 이 두 가지 패턴 가운데 전자를 가정과 가족을 지키기 위해 일부러 공적 영역을 버리고 집으로 돌아온 ‘싸우는 가장’, 후자를 가장이기를 포기한 ‘색정남’이라고 임의로 불러보자.(150-151) 근대여성작가들의 작품은 남자들이 만들어낸 여자라는 담론을 거부하고 그에 대한 다양한 반항을 그리고 있다. 남자들이 자신들의 몽상 속 여자를 통해 그 내면을 전개한 데 비해, 여자들은 남자로부터 벗어남으로써 스스로의 내면을 발견하고 거기로 들어갔다. 그러한 의미에서 보자면, 근대의 일본 여성 작가는 남자를 거의 그리지 않았다. 여자의 내면에 남자가 부재했던 것은 아니다. 남자에 의해 여자의 자아가 가둬지는 제도 속에서 여자의 내면은 바로 남자에 의해, 남자와의 투쟁에 의해 형성되어온 것이기도 하다. 그랬기 때문에 여자가 자신의 내면을 볼 수 있던 것은 남자를 통해서가 아니라 남자와 떨어졌을 때였다.(153) 이상적인 여자를 찾는 남성과 같은 방식으로는 이상적인 남성을 찾으려 하지 않는 여성. 이러한 여성과 남성 사이에는 눈앞이 아찔할 정도로 아득한 ‘젠더 비대칭성’이 있다. 남자라는 담론을 거꾸로 뒤지어 봐도 여자라는 담론이 결코 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153)

남자라는 담론을 거꾸로 뒤집어도 여자라는 담론이 되지 않는다는 우에노 지즈코의 평가가 아주 적절하다. 나는 최근에 사디즘과 메저키즘이 성적 쾌락을 얻는 경로가 전혀 다르기 때문에, 이 둘리 각기 다른 한쪽의 반대가 아니라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역시 내가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디스트는 대상이 필요하지만, 반대로 매저키스트는 누군가가 꼭 필요하지 않다. 일본 근대 문학의 남성은 여성을 필요로 하며, 여자에게로 도망치거나, 여자로부터 도망친다. 공통의 키워드는 실은 도망친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여기서 싸우는 남자나 색정남인지가 결정된다. 반면, 근대 여성 문학에는 남자가 필요없다. 여자의 내면이 형성되기 위해서는 남자와 싸워야했기에, 남자로부터 떨어지는 것이 출발점이었다. 여자의 주제는 여자였다. 그러나 남자의 주제는 남자가 아니라 여자를 통해서였다. 일본 만의 일이 아니다. 단테도 괴테도 이상도 이런 문제를 벗어나지 못했다.

소설 속 여자들이 소설 속 남자들에게 자아를 가진 인간으로 다뤄지지 않는 점, 또 여자들이 이해받지 못한 점을 책망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렇지만, 근대 남성 작가의 대부분은 스스로의 내면에 집착하여 내면에 몰두하기 위해서 문학을 선택했는데, 그 내면이란 ‘여자라는 꿈’을 통과하지 않으면 스스로 들어갈 수 없는 곳이었다. (…) 그 남자의 내면의 모양을 짜는 작가가 가진 ‘여자라는 꿈’이라는 구조야말로 비평으로 분석해야 할 소재이다. (…) 남성작가들의 작품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은 남자가 만들어낸 ‘여자라는 담론’을 통과하여 선명해진 남자의 내면 풍경이며, 그것이 바로 ‘남자라는 담론’이다.(158) 여자라는 꿈, 여자라는 담론을 통과하지 않고는 구성되지 않고, 선명해지지 않는 남자의 내면. 여러 사람을 제치고 문득 무라카미 하루키가 떠올랐다. 반복되는 그의 이야기들. 『상실의 시대』와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그리고.

물론 동양에 언어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비서양인의 언어는 있다 하더라도, 들을 수가 없다. 패권을 가진 자의 언어를 습득하지 않는 한, 소리를 내더라도 없는 취급을 당한다. 패권을 가진 자를 비판하는 담론에서조차 패권을 가진 자의 언어가 아니면 패권을 가진 자의 귀에는 도달하지 않는다. 국제 공용어로서 영어의 패권주의는 이렇게 하여 성립된 것이다. 포스트식민주의 비평이 구 종주국의 품에서 구 식민지 출신의 지식인에 의해 구 종주국의 언어로 생겨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207) 에드워드 사이드에 대한 우에노 지즈코의 평가다. 포스트식민주의와 페미니즘은 가깝다. 많은 페미니스트와 문학비평가들이 포스트식민주의 이론가로 활동했으며, 그 역도 마찬가지다. 우에노 지즈코는 에드워드 사이드의 글에서 동양과 서양을 여자와 남자로 바꾸어 읽어도 똑같다고 말하는데. 그 역시 동의한다. 다만, 에드워드 사이드의 풍요로움에 비하면 이 소개는 좀 빈약하다.

세즈윅은 이성애가 남자와 여자의 성애의 유대가 아니고, ‘여자를 매개로 한 남자들끼리의 유대’라고 파악했다. 그 때문에 세즈윅이 채택한 것은 프랑스의 문화이론가 르네 지라르의 ‘욕망의 삼각형’[욕망의 주체와 대상, 중재자를 세 꼭짓점으로 하는 삼각형의 욕망구조]이었다. 세즈윅은 ‘욕망의 삼각형’을 ‘성애의 삼각형’이라고 불렀다. 욕망의 삼각형에서 주체는 남자다. 그 삼각형 속에서 여자는 욕망의 객체에 불과하다. 복수의 남자들은 여자에 대한 욕망을 통해 자신들이 같은 가치관을 공유하는 욕망의 주체임을 서로 인정한다. 이렇게 남자들끼리의 유대를 확립하기 위해서, 다른 남자가 가치 있는 것으로 간주하는 욕망의 객체, 즉 여자를 스스로 욕망하게 되는 것이다. ‘남자-여자-남자’라는 성애의 삼각형에서는 복수의 남자가 성적 주체가 되는 데 반해, 여자는 성적 객체의 위치를 부여받게 된다.(227-228) 레비스트로스의 이론을 배운 세즈윅은 다음과 같이 썼다. 여성의 교환이란 남자들끼리의 유대를 흔들림 없는 것으로 만들기 위해, 여성을 교환 가능한, 아마도 상징적인 재財로서 사용하여 그 근원적 목적을 달성하는 것이다.(228) 남자들끼리의 유대에서 여자는 매개체에 불과하다.(229) 이러한 세즈윅의 주장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개념이 구조적으로 배치되었다. 첫째, 남자들이 서로 남자라고 인정한 자들의 연대. 세즈윅은 이것을 ‘호모소셜(남자들끼리의 유대)’이라고 부른다. 둘째, 남자의 욕망을 여자에게 향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동성인 남자들에 대한 욕망을 금지하는 것. 이것이 ‘호모포비아(동성애 혐오)’이다. 셋째, 남자들끼리의 연대로부터 배제되어 욕망의 대상이 되는 여자의 타자화, 즉 여성 혐오. 이로써 호모소셜, 호모포피아, 여성혐오, 이 세 개가 한 세트가 된다. 더 간단히 설명해보자면, 남자들은 그들이 남자라고 인정한 자들만의 연대를 만들어내는데, 그 남자 집단에 참여할 자격은 여자를 물화物化(객체화)하는 것으로 부여받는다. 그리고 그 사이에 잠재되어 있는 남자들 사이의 욕망은 그때그때 검열되어 배제된다. 이로써 이성애 제도는 유지된다.(229) 이렇게 생각하면 많은 강간이 남자들의 유대에 의해 ‘돌림빵’이라는 윤간의 형태를 취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229) 히코사카 다이彦坂諦가 논한 2차대전 때 일본군 병사의 아시아 여성강간 같은 전시 강간과 2003년에 세상에 드러난 와세다 대학생들의 윤간 사건 등을 접할 때마다 나는 구타를 당하거나 굉장히 취해서 정신을 못차리는 여자를 상대로 어떻게 발기할 수 있는지 의문을 품어왔는데, 거꾸로 말하면 이러한 상황에서도 발기하여 여자를 강간할 수 있는 자들만이 서로를 남자로 인정하는 맹약 관계가 바로 ‘호모소셜’이라 할 수 있다.(230)

이브 세즈윅Eve Kosofsky Sedgwick은 과문한 탓이려니 해도 낯선 이름이었다. 역자들의 소개에 의하면 퀴어비평가로 분류된다. Between Man과 Epistemology of the Closet이 중요한 작품이라고. 세즈윅에 대한 소개를 읽어가면서, 나는 범인(?) 아니 출처를 찾은 기분이 들었다. 요즘 심심치 않게 들리는 남성 강간 연대라는 비판이나 지적이 어떤 이론적 근거를 가지고 있는지 아니면, 직관적이고 정서적 표현인지 내심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물어볼 데는 없었다. 호모소셜 또는 호모소셜리티homo-sociality는 이브 세즈윅에 의해 유명세를 타게 되지만, 그 기원은 진 립맨-블루멘Jean Lipman-Blumen이라고 한다. 그는 리더십 연구자이고 조직행동론을 가르치는 사회학자이고, 놀랍게도 탈콧 파슨스의 제자였다. 여튼. 호모소셜-호모포비아-미소지니(여성혐오)의 삼각형은 위에서 말한대로, 레비스트로스의 여자 교환이라는 구조주의 가족 이론 위에 성립된 것이었고, 르네 지라르의 영향도 받았다. 이런 이론과 개념들 간의 영향관계를 살펴보아도 어지럽기만 하다. 다만, 이것이 퀴어 비평이라는 지점에서 나는 순식간에 이해가 되었다. 본래 이것은 호모포비아를 설명하기 위한 거였다. 그리고 이것이 페미니스트들에게 확산되면서, ‘여자를 매개로 한 남자들끼리의 유대’로 해석되게 된 것이다. 일단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 가족이론을 여기까지 확장할 수 있느냐에 우선 물음표가 생기지만, 그건 부차적인 문제다. 문제는 남성 강간 연대가 남성 집단으로 들어가는 통과의례인가의 여부이다. 강간 연대란 물론 나의 표현이 아니고 페미니스트들의 표현이라 그대로 가져왔다. 강간이 아니더라도, 직업 여성에게 성을 매수하는 행위 또는 여자친구의 나체 사진이나 성관계 동영상을 돌려보는 행위 같은 것을 들 수 있을까? 승리와 정준영은 물론 서울교대 학생들의 건으로 온나라가 떠들썩한 상황이긴 하지만, 나는 이런 일이 통과의례라는 데 여전히 회의적이다. 일부 소수의 일탈이냐 아니냐는 내가 판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다만 남자들 특유의 과장과 허세가 끼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포르노의 범람에서부터 동영상 공유까지 너무나 정신없는 시절을 보내고 있지만, 지적해 두고 싶은 점이 하나 있다. 이렇게 어지러운 시절이 온지는 20년도 채 안되었다. 내가 자라던 청소년 시절만 해도 에로 또는 포르노 비디오나 사진 등은 값비싼 재화였다. 모두들 자기는 그런 걸 많이 봐서 질린 척 했지만, 실제 본 사람은 많지 않았다. 도덕심 때문이 아니라 볼 수가 없어서였다. 집에 VTR도 있고, 그런 자료를 융통할 수 있는 호모소셜에도 끼어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인터넷이 가져온 변화 그리고 모바일이 가져온 변화는 엄청나서 지금은 포르노가 무료가 되었다. 오늘의 한국에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포르노가 불법이기 때문에 무료라는 사실이다. 양적 변화는 질적 변화를 가져온다. 새롭게 등장하거나 표출되는 현상이나 문제를 모두 과거에 오래전부터 있었던 구조나 사건에 연결지어서 해석하려고 하는 것이 오히려 지금의 문제다. 그런 구조적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범죄적 성격이 없다는 것도 아니다. 청계천에 가서 비디오나 책을 구하려고 할 때, 그러다가 삥만 뜯기는 경우도 흔했다. 이것이 불법적인 일이라고 생각할 만큼의 위험도를 인식했지만, 이젠 자신의 등뒤 즉 후방만 살피면 되는 시대로 변화했다. 굳이 푸코의 말을 따르면, 섹슈얼리티는 근대를 만들어 낸 부르주아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이제 섹슈얼리티는 모든 계급과 계층이 거리낌없이 향유하고 있다. 그리고 거기서 문제와 범죄가 발생하고 있다. 그렇다고 내가 승리와 정준영 그리고 관련자들의 범죄가 경미하다거나 재수없게 걸렸다고 동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엄단해야 한다. 문제는 이걸 재수없게 걸렸다고 생각하는 인식이 생각보다 많다는 점인데, 그에 대해서 흥분하고 화내면서도,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좀 살펴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거기서 변화와 특이성을 찾아내야 한다.

동성애자의 커밍아웃out of the closet은 결코 동성애를 다양하고 자연스러운 사랑의 형태 가운데 하나로 인정해달라고 승인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커밍아웃에 대해 “그게 뭐 어쨌다고? 네가 동성애자인지 아닌지 난 조금도 상관없어”라는 식의 반응은 틀림없이 최악의 반응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동성애도 이성애도 여러 가지 자연스러운 사랑 가운데 하나인 것이네요”라는 식의 반응도 동성애를 자연화하고 탈정치화하는 것으로, 커밍아웃의 담론 효과를 무력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퀴어 연구가 이성애자를 탈자연화함으로써 목표했던 것은 이성애에 의해 소수자가 된 동성애를 탈자연화하는 것이기도 했다. 커밍아웃은 이성애와 동성애의 경계를 교란시킴으로써 이성애라는 제도를(동성애도 함께), 단번에 탈정치화하는 전략인 것에는 틀림없다.(235) 커밍아웃에 대해 나름 쿨하게 대응한다고 생각한 태도들이 외려 최악의 태도라는 데서 약간 놀랍다. 이성애를 탈자연화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인데. 역시 이브 세즈윅의 주장을 직접 들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요즘은 날마다 정말 많은 사람이 이브 세즈윅이라는 이름만 빼고, 그의 담론을 이야기하는데, 이 정도면 번역해서 보는 것이 페미니즘 쪽에서도 정도라고 본다. 한국도 퀴어 연구가 꽤 있는 걸로 아는데. 그쪽에서라도 번역이 있으면 좋겠다. 우에노 지즈코의 『여성 혐오를 혐오한다』가 세즈윅을 원전으로 한 책이라니 그것도 좀 보고.

조앤 W. 스콧Joan Wallach Scott은 여성사를 젠더 연구로 전환한 페미니스트 연구자다. 스콧은 명저 『젠더와 역사학Gender and the Politics of History』에서 젠더는 ‘신체적 차이에 의미를 부여하는 지식’이라고 제시했다. 젠더는 개념이자 지식이다. 스콧은 다른 표현으로 젠더란 “성차에 관한 지식을 의미한다”고 썼다. 스콧은 “지식이란 세계의 질서를 만드는 방법이며 그렇기 때문에 지식은 사회의 조직화화 불가분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스콧이 제시한 젠더 개념에는 오늘날의 구성주의constructionism로 알려진 이론, 즉 지식을 산출하는 언어는 사회적으로 구축된 것이며 사회는 담론에 의한 실천의 집합체라 보는 이론이 전제되어 있다. 스콧은 오늘날 언어적 전회Linguistic Turn라고 불리는 역사학의 패러다임 전화을 강력하게 추진한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249-250) 미술사가 와카쿠와 미도리若桑みどり는 젠더란 ‘성별에 관한 차별과 권력관계’라고 가장 간결하게 정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젠더 연구란 무엇보다 지배와 권력, 차별과 억압에 대한 연구이다. 그렇기 때문에 젠더야 말로 정치적인 개념인 것이다.(257) 우에노 지즈코는 이를 설명하면서 권력과 지식의 관계를 갈파한 미셸 푸코를 가져온다. 그러나 조앤 스콧의 주장과 그렇게 관련성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 우에노 지즈코는 조앤 스콧을 구성주의와 언어학적 전회를 가장 강력하게 주장한 역사학자라고 하는데, 여기서 또 한 번 마음 속으로 무릎을 쳤다. 왜들 그렇게 구성주의, 구성주의 하는지, 언어학적 전회를 입에 달고 사는지 좀 알 것 같았다. 푸코가 구성주의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 그러나 푸코가 구성주의자(그런게 있다면)인 것은 아니다. 푸코가 말하는 담론의 물질성이나 장치dispositif에 대한 설명만 보아도 이해할 수 있다. 또는 푸코가 파레시아에서 오스틴을 활용해 담론의 화용론을 이야기한다고 해도, 그것을 수행성으로 끌어가기 어려운 것은 그것이 의미에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고, 발화자의 존재 자체를 문제삼기 때문이다. 젠더 연구가 신체적 차이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는 지식에 대한 연구임은 십분 이해하겠으나, 여기서 푸코를 끌어들이고 싶은 마음은 이해하되 그러기 매우 어렵다는 점도 알 것 같다. 거기엔 미묘하지만 큰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신체의 중요성이다. 푸코는 신체나 광기를 사회적 구성물로 보지 않으며, 그 물질성을 무시하지 않는다. 아니 중시한다. 거기에 꽤나 큰 차이가 있다.

미국 역사학자 조안 켈리의 논문 Did Women Have a Renaissance?에서 르네상스 시기 남자와 여자의 경험의 차이를 꺼내 들며, “르네상스 시기의 인간 부흥이란 곧 남성 부흥이었다.” 사실상 르네상스 이후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낮아졌고 여성은 재산권을 잃게 되었다. 혼인의 가치가 올라가 여느 때보다 아내의 위치가 상승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은 결혼과 맞바꿔서 갖가지 사회적 권리(계약권과 재산권)를 잃게 되었다. 혼인에서 일탈한 여성은 ‘이단’ 또는 ‘마녀’라고 낙인찍고 처형을 더 일삼았다.(261-262) 켈리의 연구에서 알 수 있는 점은 특정한 사회적 변화는 다른 사회집단에게 다른 효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스콧은 젠더사에 대한 반론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나는 젠더에 관한 문제는 양성과 관련된 역사뿐 아니라 구체적인 화제가 무엇이건 모두 혹은 대부분의 역사에 대해 빛을 던지는 것이라 주장하고 싶다. 이러한 접근으로부터 생기는 결과가 필연적으로 편향된 것이라는 점은 인식하고 있다. 나는 전체를 꿰뚫을 수 있다든가 모든 불평등, 모든 억압, 모든 역사를 설명할 수 있는 결정적인 카테고리를 발견했다고 주장할 마음은 없다. (…) 내가 이렇게 편향성을 자인하다고 해서 보편적인 설명을 찾는 데 패배했다고 인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기보다는 오히려 보편적인 설명은 이제까지도 가능하지 않았고, 지금도 가능하지 않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262-263) 우에노 지즈코는 조앤 스콧의 주장은 모든 역사는 젠더 역사이거나 남성 역사에 불과하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지적한 것이다. 듣기에는 통쾌할 수 있다. 이것은 일종의 대항담론, 대항품행, 대항역사를 쓰겠다는 이야기처럼 들린다. 정치적 언술의 장에서 나도 편파적이고 너도 편파적이니 모두 편파적인 발언권을 동등하게 가진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아. 이런 주장에 대해서는 무엇이라고 해야할 지 모르겠다. 왜 편향적인지를 지적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왜 편향적인 지식으로 구성되는지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아, 편향적인 지식을 구성하겠다는 말은.

스콧은 『페미니즘 위대한 역설』1789년에 나온 인간과 시민의 권리선언을 패러디하여, 1791년 여성과 시민[女]의 권리선언을 쓴 페미니스트 운동의 선구자 올랭프 드 구즈를 언급한다. 프랑스어에 남성형・여성형 젠더가 있다는 점을 안다면, 인권의 언어인 ‘인간과 시민의 권리’가 의미하는 바는 남성이자 시민인 자에게 한정하여 부여한 인권이고, 완벽하게 젠더화된 것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인권 개념은 계급화・인종화되어 있었다. 시민이란 ‘키비타스civitas’에 사는 자, 즉 ‘공중civil’이며 ‘문명화된 자civiliser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즉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은 먼저 여성을 배제했고, 야만스러운 외국인을 배제했으며, 시민계급 이외의 사람들, 즉 과거 지배계급이었던 귀족이나 성직자, 성새 밖에 사는 농민을 배제했으며, 마지막으로 당시 부흥하고 있었던 노동계급도 차별을 통해 배제한, 오로지 남성・시민만의 권리 선언이었다. 여성도 같은 인간이라고 주장한다면 남성과 같은 권리를 요구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젠더의 차이를 부정해야 한다. 한편으로 젠더의 차이를 주장한다면, ‘여자용 지정석’에 만족해야 한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익숙한 ‘평등이냐, 차이냐’하는 딜레마이다. 어느 것을 선택하더라도 함정이 기다리고 있다. 스콧은 질문 자체가 틀렸기 때문이라고 갈파했다. ‘평등이냐, 차이냐’는 물음은 근대가 여성에게 강요한 것이며, 그 자체가 역설(패러독스)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이러한 물음에 답할 필요는 없다. 스콧은 그러한 역설적인 상황을 살아가기 위해 근대 페미니즘이 있었다고 했다. 페미니즘이 딜레마에 빠진 근본적인 이유는 개인individual이라는 개념이 애초에 성인 남성을 예로 하여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면서 스콧은 근대사회의 이념인 자유주의를 그 자체로 비판의 도마 위에 올린다.(267-269) 우에노 지즈코의 말대로 조앤 스콧은 정말 혁명적인 인물로 혁명적인 주장을 하고 있다. 나는 이곳저곳의 페미니즘 책에서 읽은 구절들 예를 들어 인권은 남성 만의 개념이므로 보편적이지 않다거나, 평등과 차이 중에 굳이 선택할 필요는 없다는 주장의 원류를 알게 된 느낌이 든다. 역시 조앤 스콧을 더 읽어봐야 알겠지만. 문제는 사람은 삶의 국면들에서 선택을 하면서 살아가야 하며, 그 선택은 평등이냐 차이냐 둘 중 하나는 선택하는 상황일 경우가 많다는 것이 아닐까.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둘 중 하나를 골라서 자신에게 유리한대로 선택할 경우 가장 고통받는 사람은 일관성 또는 자기동일성을 확보하지 못하는 자기자신이 아닐까. 여튼 그런 선택을 강요하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 만은 확실해졌다. 참고로 이 책은 재판을 내면서 이름을 바꿨다. 『페미니즘 위대한 역사』다. 위대하지 않다는 말은 아니지만, 꼭 그래야 했을까.

후기식민주의라는 이 번역하기 어렵고 난해한 개념에 대해 여러 입문서와 해설서가 나와 있는데, 그 어떤 것보다 명쾌하게 납득이 가는 설명은 스피박이 내린 정의이다. 스피박은 후기식민주의를 ‘강간에 의해 태어난 아이children of rape’라고 탁월하게 정의했다. 설령 강간에 의해 태어났다고는 하더라도 아이는 아이다. 어머니는 아이를 사랑할 것이고, 아이는 아버지를 증오하면서도 부정할 수 없다. 왜냐하면 자신을 세상에 태어나게 한 원인의 절반이 아버지에게 있고, 자신의 정체성을 만들어준 언어와 문화라는 유산을 아버지에게서 상속받았기 때문이다. 후기식민주의를 설명하는 키워드로는 혼혈, 혼종성hybridity, 망명, 디아스포라diaspora, 난민 등이 있다. 그 가운데서도 혼종성과 디아스포라는 운명이다. 스피박은 자신을 ‘디아스포라가 된 후기식민주의적 현지인 엘리트’라고 부르기조차 한다.(278-279) 스피박의 이 정의는 정말 멋지지 않은가. 그럼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제국주의 식민지 흔적 지우기는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에 의한 부친살해의 의도인 건가.

제국주의자에게서 배운 것은 ‘다시 배워야unlearn’한다. ‘unlearn’이라는 말은 스피박이 만든 것은 아니지만 스피박의 논의에서 핵심 용어이다. 일본에서 이 말을 처음 소개한 이는 평론가 쓰루미 슌스케鶴見俊輔였다. 쓰루미는 2차대전이 일어나기 전에 뉴욕에서 헬렌 켈러를 만났다. 쓰루미가 자신이 대학생이라고 말을 건네자 헬렌 켈러는 “나는 대학에서 많은 것을 배웠지만 그 후에 많은 것을 다시 배워야 했다I’ve learned many things, But later, I had to unlearn”고 답했다고 한다. 쓰루미는 “그때 처음 듣는 말이었지만 금방 뜻을 이해했다”면서 이 ‘unlearn’이라는 말을 일본어로 바꾸었다. 일단 배운 것을 자신의 몸에 맞게 다시 재단하여 맞추는 것이다. 이 키워드가 반세기 가까운 시간 간격을 두고 한편으로는 장애인 여성(헬렌 켈러)에게서, 한편으로는 후기식민주의 비평 지식인 여성(스피박)에게서 나왔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283) 쓰루미 슌스케는 판형대로 짠 스웨터를 풀어서 자기 몸에 맞춰 다시 짜는 관경을 떠올리고, ‘배우고 풀어내다まなびほぐす’라고 번역했다고 한다. unlearn이란 비단 여성이나 장애인 뿐 아니라 모두가 새겨야 할 말이다.

19세기 인도의 여성 주체에게 사티라는 의례는 그것을 선택하든 안 하든 양자택일밖에 허락되지 않았다. 선택한다면 토착 사회 가부장제의 희생자가 되고, 선택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지배자인 영국 제국주의에 종속된 자가 된다. 어느 쪽을 선택해도 여성은 가부장제의 공범 위치에 놓이게 된다. 스피박은 이 공범성이 가진, 매우 해결하기 어려운 양의성을 인정한다. 나는 그 이유가 ‘복종이 저항이 되고, 저항이 복종이 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기록된 자료에 따르면, 과부가 된 왕비 ‘라니’는 사티를 선택하지 않고 살아남아 자연사했다고 전해진다. 그녀는 아내로서의 덕德보다도 어린 아들을 가진 어머니의 의무를 우선했다.(289-290) 사티가 쥘 베른의 『80일간의 세계일주』에도 등장하는 걸 보면, 제국주의와 얼마나 깊은 연관이 있는지 알 수 있다. 복종이 저항이 되고, 저항이 복종이 된다는 말은, 주체화는 곧 예속화라는 푸코의 언명을 달리 말하는 것 뿐이다. 이 세상에 저항의 요소가 전혀 없는 완전한 복종도 없고, 전혀 복종하지 않는 완전한 저항 따위도 존재하지 않는다.

페미니즘은 ‘여자’라는 범주로 집합적 정체성을 수립했고 페미니스트들은 이렇게 만들어진 범주의 ‘여자’에 열중했는데, 버틀러는 “그런 건 근거가 없다”고 선고한다. 버틀러의 말대로라면 여자를 집단 혹은 단일한 범주로 묶어낼 수 있는 공통된 경험, 즉 ‘여자라는 경험’이 구성되는 근거로 사회적 공통성과 신체적 기반을 드는 것은 근거도 없을 뿐 아니라 심지어 불가능하다. ‘여자끼리는 이해할 수 있다’는 신뢰는 근거 없는 환상으로 변한다. 이리하여 ‘여자’가 해체되고, ‘여자’라는 집단적 정체성을 기반으로 한 페미니즘도 해체된다.(304-305) 버틀러는 섹스/젠더 이원론을 해체했는데, 그것은 섹스도 언어적 구성물임을 밝힘에 의해서 였다. 섹스는 젠더라는 주장이 된다.(306) 이런 철저한 구성주의는 ‘여자’라는 주체도 무너뜨려, ‘여자’란 반복되는 담론의 효과에 불과하며 ‘여자’라는 정체성은 그 침전물이라고 말한다.(307) 그래서 버틀러는 여자를 여자답게 하는 여자다움 또는 남자다움의 수행성에 집착한다.(308) 그렇다면 어떻게 변혁할 것인가? 언어 질서의 무한 반복 재생산이라는 폐쇄된 영역에서 일탈하여 변혁의 실천이 가능하게 하는 것은, ‘전유appropriation’이다. 담론 실천은 반복되고, 다른 문맥에서 반복되고, 언어는 오용되고 오독된다. 수행적 언어 행위로서 담론 실천의 효과에는 의도한 효과와 의도하지 않은 효과가 생긴다. 언어행위를 비롯해 모든 커뮤니케이션 행위란 받아들이는 쪽의 반응에 의해 비로소 그 효과가 측정되는, 예측할 수 없는 도박이며, 말하는 쪽이 그 효과를 완전히 제어할 수 없다. 이것이 오히려 반복 또는 재생산이라 할지라도 변혁의 가능성을 제공해 준다.(312) 우에노 지즈코가 보여주는 버틀러는 언어학적 전회, 구성주의를 끝까지 밀어붙였을 때, 어떻게 되는지 그 결론을 보여주는 느낌이다. 이러다가 실체론이나 본질주의의 반동이 오지않을까 꺼림칙하기도 하다. 버틀러는 한국에도 많이 소개된 만큼 『젠더 트러블』을 가지고 평하는게 좋겠다. 다만, 나는 젠더, 섹스, 섹슈얼리티가 모두 일치한다는 의도하지 않은 환원론에는 도저히 동의하기 어렵다는 점만 미리 밝혀두겠다.

2019. 3. 17.

* 괄호 안의 숫자는 번역서의 쪽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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