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타 쇼조, 『이단은 어떻게 정통에 맞서왔는가』.

쇼와 14년(1939년) 일본에서 판매했던 기본의 『로마제국쇠망사』다. 뭐랄까 부러우면서도 처연하다. 그렇게 필사적으로 전쟁을 준비하고 진행하면서도 거기에 비추어서 자신을 볼 수밖에 없다.

후지타 쇼조藤田省三, 『이단은 어떻게 정통에 맞서왔는가: 주술제의적 정통성 비판異端論断章(藤田省三著作集 第10卷)』, 윤인로 역, 삼인みすず書房, 2018(1997).

『이단은 어떻게 정통에 맞서왔는가: 주술제의적 정통성 비판』이라는 다소 긴 제목은 아마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후지타 쇼조가 누군지도 잘 모르고, 그를 설명하면서 까지 이런 책을 소개하기란 어려운 일일 테니까. 책 제목을 그대로 옮기면 ‘이단론 단편’ 정도가 좋겠지만, 그런 제목으론 내용이 상상도 안된다. 일부 기독교인들이 착각해서 구입하려나? 안 그래도 1장에는 아타나시우스·아리우스 논쟁이 이야기가 나오니까. 단순히 이단과 정통론을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후지타 쇼조의 관심은 그리스도교를 기반으로 한 서구 세계가 아니다. 그렇기에 아타나시우스 정통론이란 일본을 들여다보기 위한 대립항으로서의 정통이다. 측은하달까. 타자를 분명히 세우고서야, 일본의 정통이 보이는데. 그것이 바로 천황제 국체론이다. 그리고 일본에서 나타난 저항 또는 비판의 사상 또는 작업은 일본 기준으론 모두 이단에 속한다. 이들 중 몇몇이 새로운 정통으로 서기 위해 시도했지만 쇄말화하는 결과를 보여주며 현대의 일본을 이야기한다.

놀랍게도 후지타 쇼조의 책은 한국에서도 꽤 많이 번역되어 있다. 개정판을 낸 『전체주의의 시대경험』으로부터 시작해서 『천황제 국가의 시대원리』, 『전향의 사상사적 연구』, 『정신사적 고찰』 등의 나와 있다. 『유신의 정신』이나 『전후 정신의 경험』만 출간되면, 그의 책은 거의 전부 나오는 것일테다. 그는 과작이라. 후지타 쇼조는 마루야마 마사오의 제자이고, 그의 천황제론을 1956년 「천황제 국가의 지배원리」를 발표하면서 일찌기 두각을 드러냈다. 여기 실린 글도 마루야마 마사오와 함께 작업하던 『근대일본사상사강좌』 2권에 실을 내용이었는데. 결국 후지타 쇼조가 영국으로 떠나고, 마루야마도 사상적인 변화를 겪으면서 발표되지 않고 묻혔던 원고가. 저작집을 발간하는 과정에서 책으로 나오게 된다. 그래서 더 흥미롭다. 후지타 쇼조는 이 원고를 쓰고 영국에 다녀온 후 얼마 지나지 않은 1971년 호세이 대학 교수를 사직하고 출판사의 고전·시민 세미나 조직에 참여하여 1970년대를 보낸다. 1980년에 복직.

책 머리에 정말 흥미로운 저작집 머리말이 실려있다. ‘뒷모습에 관하여’ 라는 제목인데. “내가 죽는다면 이제까지 쓴 것들을 상하 두 권의 전집으로 출판하는 일을 오래전부터 미스즈쇼보와 약속해 놓고 있었다”로 시작한다.(6) 대학을 떠난 낭인시절 함께하던 출판사다. 후카세 모토히로深瀬基寛 처럼 그러고 싶었다고. 그러나 상하 두 권으로는 되지 않고 10권으로 끝나게 되는데. 머리말만 보아도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일지 알 것만 같다. 머리말은 이렇게 끝난다. “되도록 권수가 늘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9)

후지타 쇼조는 정신적 대립이나 다툼이 정치적 항쟁이 되는 문제를 지적하면서 시작한다. 문제의 3단계란 [1] 인간 사회에서의 ‘권력 항쟁’의 보편적 존재, [2] 그것과 사상적 다툼 간의 교착적 존재, [3] 사상적 다툼을 ‘권력항쟁’의 문맥에서만 해석하는 태도의 발생. 이런 과정을 순환하면 ‘숭고한’ 사상체계 간의 논쟁이 집단 간의 ‘비속한 정치적 항쟁과 내면적으로 뒤얽힌 ‘정치적’=’정신적’ 다툼이 된다(24-25)고 말한다. 사상사를 사회사적으로 읽지 않으면, 환상적인 개념들의 경연장이 되기 싶상이다. 멋지고 아름다운 개념들의 역사를 아무리 이야기한들 현실성을 상실하게 된다. 그와 동시에 명징한 개념들이 근본주의자의 손에 쥐어질 때, 그 어느 것보다 무딘 칼날이 되어 거침없이 사유와 관계를 단절하고, 사상과 정치를 끊어낸다. 결을 따라 곱게 해체하는 것이 아니라 힘으로 내려쳐 단면을 드러낸다. 때론 유용할지도 모르지만, 근본주의는 근본주의에 대한 모방을 낳아 더욱 격렬하고 비속한 다툼의 세계로 말려들어갈 뿐이다. 다툼 만이라면 그리 큰 문제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자기 자신에 대한 반성적 인식을 방해한다는 것. 근본주의자는 자신을 보지 못한다. 자신을 본다해도 사소한 것들에 매달릴 뿐. 이 책에서 말하듯 ‘쇄말주의’적으로 변한다. 그러나 반면 사상을 사회사적으로 보게되면 모든 것은 배경으로 환원된다. 역사적 배경, 개인적 배경, 논쟁의 배경, 사건, 사건, 사건들로. 환원될 수 없는 것들은 그냥 없어져 버린다. 후지타 소죠는 미로의 구조를 궁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고, ‘질문’과 문제해결의 노력을 보증하려는 정신이야말로 내면적 정통사상이라고 말한다.(26) 구조를 발견하면서 문제해결을 시도한다는 것. 간단해 보이지만, 나에게는 도달 불가능해 보이는 과제다. 그러나 포기할 수도 없는 과제.

후지타 쇼조는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쇠망사』가 보여주는 아리우스·아타나시우스 논쟁이 사상적 조직(교회)의 관료제적 억압이 거꾸로 정신의 탄력적인 활력을 불러일으키고, 교회의 제도적 정치성에 응대하는 반역정신의 이른바 개인적 정치성(야심, 욕망)이 개입하며, 세계의 궁극적 원리는 무엇인가를 질문하는 철학의 논리가 정치적 항쟁의 원인·명분이 되었던 과정을 훌륭히 묘사하고 있다며 철학 문제가 정치 항쟁의 원인이 되는 경우와 단순히 구실pretence가 되는 경우가 구별되면서도 종합적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평가한다.(26-27) 궁극적 이념, 세계의 근본원리, 세계의 창조자로서의 신을 추구하고 사색하는 가장 추상적이고 가장 포괄적인 철학상 논쟁이 그때 그 장소의 상황에서 이 세상의 특정 집단을 종합하고 조직하면서 다른 특정 집단과 권력적으로 다투는 가장 현세적이며 매우 특수주의적인 정치적 항쟁과 상호 이행하면서 서로 결과가 된다고 평가한다.(28-29) 기독교 성립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교리 논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문제에 대한 서언인데. 물론 일본의 천황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 깔아두는 밑자락이다. 사상은 올바른 사랑이라고 믿을 수록 전도하려는 사도使徒를 낳고, 이 과정에서 사회적 다툼, 정치적 다툼의 원인이 된다. 반면 정치적 통합자는 물리적 지배를 통해서만 정치적 통합을 재생산할 수 없기에 사회적 신념체계에 의거하고 그에 의해 정당한 정치지배로 승인될 필요가 있다. 베버가 말하는 지배의 정당성 근거가 필요하다.(29) O정통(orthodoxy, 사상적·학문적 정설, 교의 세계관 중심)과 L정통(legitimacy, 정치권력의 합법성·적법성·정당성, 통치자와 통치체계 주체)은 어떤 형태로든 교착되지 않을 수 없고, 교착의 유무, 교착방식의 상태가 혼돈의 미로이자 거기서의 구출이다. 정통과 이단의 다툼의 역사는 미로로부터의 탈각과정이며, 정통도 이단도 이 세상 질서를 초월하는 보편적 가치를 선택하는 것에 의해 현세적 정치를 상대화하고 그것을 규제하는 것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즉 거기서는 정치적 현상과 정신적 형상의 아말가메이션은 극복되어 있다. 그러한 정통·이단의 역사적 관련에 대한 파악을 통해 혼탁한 미로로부터 해방시키는 현대적 방법을 찾아보려 한다.(30-31) 일단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에드워드 기번이 그렇게 훌륭한가에 대한 의문이다. 이 논의가 이루어진 것이 1960년대 중반이고, 그는 사상가이니 하르낙 같은 기독교 안의 교리논쟁을 잘 모르겠지 싶다가도, 읽다보면 꽤나 상세히 알고 있고, 뒷부분에(123) 카를 바르트와 우치무라, 키르케고르 까지 슬쩍 비교하는 걸 보면, 공부의 폭이 엄청나게 넓은 것만은 분명해 보이고. 그러면서 이와나미 문고의 기번의 『로마제국쇠망사』 번역 문제를 제기한다. 영어로 꼼꼼하게 다시 읽고 있다면서 편집자에게 지독한 오역을 여러번 지적했다고 보주에서 말한다. 일본은 그래도 꽤 중심으로 갔지만, 서구의 것을 흡수해서 타자를 형성하는 변방의 지식인에게 번역이란 어쩔 수 없는 경로인 건가. 마루야마 마사오가 말했다는 O정통과 L정통의 교착은 너무나 흔하면서도 쉽게 구별될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 결착이 이중적, 삼중적으로 또는 셀 수 없을 정도로 중첩된 것도 원인이겠으나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이유는 내 손에 들린 무딘 청룡언월도 때문이다. 힘으로 베어버리는 근본주의자(원리주의자)의 손에 들린 청룡언월도. 그것은 무엇보다 게으름의 결과이고, 그것은 무엇보다 비겁함의 결과다. 가스렌지에 눌러붙은 기름때와 타버린 국물자국을 긁어내는 일이 실제로는 여러차례에 걸쳐 타붙은 흔적 만큼의 노력이 필요하듯이. 섬세하게 과정을 추적하는 끈기가 있어야 한다. 뜬금없지만, 마루야마 마사오와 후지타 쇼조의 연구회는 1990년까지 월 1회 계속되었고, 그 결과 수고가 이제 출판되고 있다. 丸山真男集 別集의 4, 5권으로 지난 6월에 4권이 출간되었다. 끈기 보다 더 필요한 것은 용기이다. 사람들은 그런 귀찮고 복잡한 이야기를 알려고도 하지 않고, 보려고도 하지 않는다. 알기 쉽게 정리해서 보여준다해도 자신들의 때론 추하기까지한 거울을 들여다보려하지 않는다. 문제는 거울이다. 그래도 하는 수밖에 없지만. 뭐랄까 서문을 지나치게 상세하게 옮긴 것 같지만. 후지타 쇼조의 입장이 분명히 드러난다.

본문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첫째 부분은 로마 제정 말기 4세기에 있었던 아타나시우스와 아리우스의 논쟁, 둘째 부분은 일본에서의 정통과 이단, 셋째 부분은 후지타 쇼조의 연구보고와 그에 대한 마루야마 마사오와 이시다 다케시의 토론을 담고 있다. 지나치게 길지 않게 요약하면서 코멘트해보려고 했는데. 결국 또 길어졌다.

이단 이란 모든 사회에 존재하지만, 특정 사회의 신념체계로부터 내부적 이질자로 간주되어 배제되는 것이다.(35) 어떤 종류의 관습에 따라 배제되기도 한다.(36) 후지타 쇼조는 이를 세 이념형으로 요약하는데, 하나는 초월적 종교 아래서 베버가 말하는 주술로부터의 해방Entzauberung을 사회적으로 관철하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주술 그 자체를 제의로서 합리화하고 그로써 사회적 통합을 수행하려는 문화사회로, 주술의 합리화 경향으로 부를 수 있고, 셋째는 베버가 중국의 유교로 특징 지었던 질서의 합리주의이다. 이 각각의 사회에서 이단을 살펴본다.(36) 첫번째 경우가 니케아 공의회(325년)에서 칼케돈 공의회(451년)까지 로마가톨릭교회의 정통교의인 삼위일체가 확정되기에 이르는 교회확립과정의 그리스도교 교의해석 논쟁이다. 그중 아타나시우스와 아리우스의 논쟁.(37) 물론 개신교도 공유하는 전통인데, 후지타 쇼조는 그 교리논쟁을 꽤 자세하게 기록한다. 그 과정에서 에드워드 기번과 체스터턴(정통)이 인용된다. ‘천상의 전차가 세기를 지나 굉음을 내며 날아오고, 회색의 이단은 발버둥치면서 엎드려 절하며, 거칠고 난폭한 진리는 비틀거리면서 곧게 서 있다.'(41) 체스터턴은 지금도 많은 독자를 가진 추리소설 브라운 신부 시리즈의 저자이고, 1922년 성공회에서 가톨릭으로 개종한 인물이기도 하다. 여기서 이단논쟁에 반드시 나오는 ‘주관적 의도를 막론하고 객관적으로 정통교회를 붕괴시키는 것이 된다’는 스테레오 타입의 원형이 나온다고 말한다.(41) 실제로 지금까지도 끊임없이 반복되는 지점이다. 그 공격하는 대상인 이단의 성격과 무관하게. 후지타 쇼조에 따르면 삼위일체란 보이는 집단(정치적 집단)인 교회에 대비해 보이지 않는 신성latent divinity를 보증하는 것으로, 교회는 사도에 의해 만들어지고 성령이 깃들 수 잇는 곳이기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통일성이 어디 하나라도 깨어지면 교회는 아버지인 신과의 연속성을 잃고 인간 예수를 교조로하는 세속적 집단이 되거나, 신도 중 누군가 함부로 신 혹은 신과 예수에 자기를 동일화하는 것을 허가하게 되거나 교회에 깃든 영이 성령이라는 보증을 잃으면 숫한 주술적 정령과 구별할 수 없어 토착적이고 특수적인 각종 주술제의적 신앙이 교회로 들어가 악령이 교회를 지배하게 된다. 이런 세 가지 예의 귀결은 하나이며, 그것은 교회의 해체나 다름 없다. 삼위일체에 균열이 생기면 현세로부터 초월이라는 그리스도교의 핵심이 그리스도교회 자체에서 사라지며, 수육성受肉性(성육신)을 상실한 교회는 군사력에 기대는 정치집단이 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일본 고대의 진호국가불교鎮護国家仏教처럼 승병을 가진 권력집단.(42-43) 수육성incarnation이란 육화의 위험과 육에 있어 육에 작용하는 것을 그만둘 위험(정신주의의 위험)이 동시에 있다.(44) 2세기의 성 이그나티오스가 말한 규율은 주교를 주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간주하고 따르는 교계의 위계제를 강조했다. 신과 예수, 예수와 사도, 예수와 지방 주교가 교회에서 통일되어야 했다. 로마 제국의 탄압에도 불구하고(44-45) 테르톨리아누스는 박해의 시대에 모든 그리스도교 신도는 예수와 자기의 연속성을 통절히 감지하는 것으로 보았다. 신도 각 개인과 개별적인 각 교회를 ‘예수의 전 교회’에 정신적으로 결합하여 ‘세계교회’로서 자기를 확립하지 않으면 안된다. 여기서 이그나티오스의 동심원추형 교계 제도가 정신적 규율로 형성되고, 아우구스티누스의 교회없이 구원없음이 드러난다. 삼위일체란 그런 상태의 교의화일 것. 4세기 이전의 교회제도는 훌륭한 정신적 제도임에 틀림없다.(46-47) 4세기 그리스도교 신앙의 자유라는 콘스탄티누스의 칙령은 그리스도교의 공인국교적 지위를 가져옴과 동시에 교의에 관한 자유 속에서 발랄한 토론이 허락된다. 융성은 정신적 제도에 대한 자각의 이완 또한 일반화했고, 이단의 발생과 속화의 위험과 주술제의의 부활의 위험이 있다. 교회제도는 내적 위기에 빠진다. 삼위일체 논쟁은 물리적 반발력에 의해 신앙체계를 지켜야 할 필요에 의한 논의가 아닌 정신적 체계의 내적 위기를 극복하여 그 정신체계를 동시에 적극적인 이 세상 제도로 확립하기 위해 요구된 논쟁이었다. 승리를 얻은 사상체계가 승리자의 거스를 수 없는 인간적 타락으로부터 본래의 자기 면모를 지켜나갈 수 있도록 자기에게 부과한 규율의 체계를 찾아내려한 것이 4세기의 교의 논쟁이다. 도그마란 본래 그런 것이다. 삼위일체란 주술제의로부터의 해방을 감행하고 물신숭배를 타파했던 초월적 보편종교가 자기를 포지티브한 형태로 사회적으로 정착시키고(수육) 복고적 반동과 인간의 자연적 타락으로부터 자신의 정신적 존재를 지켜나가기 위해 불가결했던 교의였다.(48-49)

정말 빼어난 해석이다. 기번을 꼼꼼하게 읽지 않아서, 어느 정도 기번에 의거했는지 확인이 어렵지만, 재해석이라고 해도 아주 빼어나다고 할 수 있다. 서문에서 이 부분이 자기 자신이 쓴 부분이라 말하기도 하고. 일본에 로마 제국 사례가 자주 등장한 것은 이미 메이지 초기부터다. 시오노 나나미로부터가 아니다. 오구마 에이지에 따르면 메이지 중기와 말기에 혼합민족론이 처음 등장하는 시기부터 이를 경계하는 주장으로 로마 제국이 보편 기독교를 받아들이고 혼합민족 제국이었기 때문에 멸망했다고 민족의 순수성을 주장하는 내용이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에드워드 기번도 일찍 소개된 것으로 보이는데, 로마사에 대한 소개나 기번에 대한 글이 등장하는 것은 이미 메이지 초중기부터이고, 『羅馬盛衰史』와 『羅馬中興史』라는 제목으로 축약본이 출간된 것이 다이쇼 7년과 9년(1918, 1920)이다. 1939년경에 10권이 모두 출간된 모양이다. 1951~1959년까지가 이와나미 문고. 후지타 쇼조가 번역문제를 제기하는 그 책이다. 그후로도 치쿠마쇼보와 PHP연구소(파나소닉의 마쓰시타 고노스케가 창설) 번역본이 나와있다. 일본의 로마사에 대한 사랑이란. 요는 일본에선 기독교 신학자가 아니더라도, 로마제국의 흥망과 관련지어서 기독교 교리 성립에 대해 널리 알려져 있었다는 점이다. 안타깝지만, 나는 삼위일체 교리를 이런 방식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나에게 삼위일체 교리란 암기를 위해 우겨넣어진 교리였다. 매일같이 앵무새처럼 되뇌이는 것인 동시에 설교할 때 사람들에게서 뜬금없는감동을 이끌어내는 수단이기도 했다. 삼위일체라는 교의가 하루 아침에 형성된 것이 아니라 수세기에 걸친 투쟁과 갈등의 결과라는 사실을 잘 아는 동시에 사회적 삼위일체를 포함한 현대적이고 다양한 변형들 때로는 동방교회적인 논의들에 늘 관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형성사에 관심을 가지지는 못했다. 이점은 나의 게으름 탓이기도 하고, 한국의 신학교육의 문제이기도 하고. 후지타 쇼조는 일본의 천황제를 비판적으로 고찰하는 사상가다. 그에게 삼위일체의 구체적인 내용의 논의에 대해 충고를 받아야 할 이유는 없겠지만, 삼위일체가 왜 필요한가에 대한 지적을 허를 찔린 기분이 들었다. 일본의 사상가에게 이런 도움을 받게 될 줄이야. 삼위일체 교리는 언제 왜 생겨났고, 어떤 기능을 하는가라는 아주 단순한 질문에 대한 대답을 말이다. 게다가 항상 발생하는 이단논의의 원형 주관적 의도에도 불구하고 객관적으로 정통교회를 붕괴시키는 것이 된다는 주장은 사실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사고의 다양성을 탄압하는 요소가 된다. 후지타 쇼조에 의하면 삼위일체 자체가 공인된 국교로서 융성하게 되자, 그 안에서 정통교회를 지키기 위해 통일성을 부여한 것이라는 설명이니 그 원래 목적에 어긋나지 않는다만. 현대 한국 기독교에서 벌어지는 이단 논쟁에는 사이비 이교에서부터 보다 권력 투쟁과 자존심싸움까지 온갖 문제가 뒤얽혀 있는데다, 무엇보다 조금만 다양한 견해가 표출되면, 사전에 이를 교의와 이단의 칼을 을러대면서 위협하기 바쁘다. 물론 그것은 붕괴의 위협을 느끼기에 보이는 조급증이기도 하지만.

그렇다면 이런 문화사회에서 발생하는 이단은 모든 각도에서 사소하고 미묘한 편향으로 발생한다. 이 사회의 과제는 정묘한 도그마를 난폭한 역사적·공간적 세계 속에서 제도로서 유지해 가는 것이다. 상황에 대한 비판 즉 상황인식이 틀어지면 도그마는 허공에 뜨고, 이단이 된다. 도그마의 ‘[이 세상으로부터의] 떠버림’은 이단의 한 유형이다.(50) 알렉산드리아에 고착된 아리우스와 달랐던 아타나시우스는 그리스철학적 논리의 한계를 자각했다. 신의 로고스를 인간의 논리로 파악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자각 위에서만 신앙이 성립하고 철학으로부터의 해방Entphilosophierung이 대중종교성을 가져온다. 논리의 한계의 자각에서 절대자를 논리적으로 정초하는 아타나시우스의 태도는 그리스 철학의 부정이 아닌 지양이다. 기번의 말처럼 플라톤의 이름이 정통에 의해 사용되고, 이단에 의해 남용된 것.(51-52) 논쟁의 공정성을 보증할 수 있도록 논쟁은 종교공의회로 제도화되었으며, 집단 간의 다툼이라 권력쟁탈이란 정치적 모티프는 본래적 비합리성으로 논리성 아래서 소용돌이친다. 정통에도 이단에도 자기의 자연적 비합리성에 대한 내면적 긴장이 존재한다.(52-54) 이단은 기존의 정통이 세계와 도그마를 대응시켜야 할 과제를 태만히 하면서 기존의 지위에 안주하고 있다고 간주되는 경우이다. 교직 담당자가 삼위일체를 지켜야할 이론적 담금질을 게을리하면, 진정한 신도는 자주적으로 교의 해석 작업에 스스로 착수한다. 진정한 신도는 스스로의 해석체계를 마음대로 전도한다. 이때 그는 이단이 된다. 기존의 정통이 establishment(기득권층, 기존질서)일 뿐 교의상의 정통이 아니라고 이단은 마음대로 판정한다. O정통 내부의 L정통, 곧 경험적 제도상의 정통이기는 내면적 사상성의 정통은 아니다. 삼위일체의 도그마가 요구하는 것은 양자의 일치다. 이단의 발생은 정통의 현세화와 삼위일체의 위기기 가능성을 의미한다. 이런 이단은 교의에 대한 확고한 이론적 체계를 지니고, 진리성에 대한 강한 자각을 가진다. 정통의 자각 스스로 정통이고 의로운 자 황야 속에 홀로 있는 자라는 의식에 의거해 일어서는 이단이 발생한다. 이런 이단론은 중세 로마교회 뿐 아니라 20세기 공산주의 사회와 그 이단도 해명하는 단서가 될 수 있다.(54-57)

삼위일체라는 교의에 분명한 기능과 목표가 있다는 지적. 그리고 그 목적을 수행하지 못할 때 이단이 발생한다는 주장이 요지다. 삼위일체란 마루야마와 후지타의 분류에 따르면 O정통과 L정통을 일치시키기 위한 교의이다. 그런데 현실에 L정통과 O정통이 흩어질 때, 즉 제도로서의 교회가 권력투쟁에 몰두하게 되거나 삼위일체의 교의가 게을러서 상황 변화에 대응하지 못할 때, 그때 이단이 발생한다. 그리고 이 이단은 스스로 정통이라고 자각하면서 스스로 전파한다. 그런 이단이 정통이 되기도 한다. 무엇보다 종교개혁이 그 생생한 결과다. 중요한 것은 L정통과 O정통이 분열상태에 있느냐는 것. 현실에서 한국을 쳐다보면 둘은 분열하기는 커녕 둘 다 붕괴하고 있다. L정통은 일부 집단 내부에서 외에는 상실한 지가 오래다. 돈과 권력을 추구하고, 기득권층에 기꺼이 합류하고 난 후, 그 벌거벗은 모습이 날로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문제는 O정통인데. 상황의 변화에 대응하지도 못하고, 과거의 O정통을 이해하지도 못한다. 그저 앵무새처럼 4세기의 16세기의 O정통을 반복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 두 O정통 모두 상황에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자연스럽게 각자 수많은 해석이 등장하고 자신들의 해석이 옳다고 주장하는 백가쟁명, 백화제방의 시대가 오고 있다. 그런데 L정통도 없이 내재성을 상실한 O정통은 억누르려고만 하고 있다. 물론 잘 알고 있다. 오직 그 방법 외에는 다른 어떤 방법도 없다는 사실을. 왜 안으로부터 무너지고 있는지를 설명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이와 반대편에 자연적 사회라고 부를 수 있는 사회와 거기에서 발생하는 이단의 유형이 있다. 그 사회는 자연스레 생겼고, 자생의 논리가로 이해되며, 주어진 사실은 모두 긍정된다. 여기서 이단은 긍정적 자생관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자, 다른 모든 구성원이 수용하는 행동양식으로부터 일탈하는 자, 사회의 변화에 적응하는 것이 불가능한 자이다.(57-58) 자연적 사회의 첫번째 이단은 이 사회를 사회의 바깥 속은 사회 이전의 어떤 정해진 한 지점에서 창조된 것으로 사고하는 사상체계(그리스도교, 사회계약설, 코뮤니즘 등)와 이 사회를 부정적으로 파악하는 사상체계(피안불교)이다. 사회 전체에 대한 원리적 해석체계를 공공연히 언명하는 경우 문책할 이단이 된다.(58-59) 두번째는 일탈이단으로 부를 수 있는데, 그가 속한 자연적 사회가 기대하는 행동양식의 궤도를 혼자 돌연 벗어나는 경우이다. 일탈이 무의식적이면 관대하게 책임이 면해지지만, 반복되면 별종이단으로 방치된다. 확고한 동기에 의한 의도적 교란자에게는 엄격하게 대한다. 이런 경우 일정한 방법적 근거를 가진 규율체계 즉 교조를 따라 행동하는 사상이단인 경우가 많다.(59-60) 세번째 부적응이단은 사회변화를 자연스레 되어가는 것成り行き로 간주하기를 거부하면 자연적 사회의 원리에 대한 도전이 된다. 사회적 변화의 나리유키성을 인정하지 않는 의식적 부적응자가 될 때이다. 이런 경우는 예전이 좋다거나 다른 변화를 기대하는 경우가 있고, 그때 인위적 가능성을 인정하는 사고방식을 배태하고 있으면 체계적 사상이단이 된다. 사상이단이 자기를 사회적·생활적으로 실현시키려는 경우에는 일탈 ·부적응의 두 이단을 갖추어 급진적이 된다. 다만 실천하지 않으면 관대하게 대응한다.(61-63) 이렇게 순수한 자연적 사회에서는 이 사회를 초월하는 일정한 정신적 지점이나 실체를 갖고 그에 근거해 이 사회를 상대화하거나 대상화하려는 사상체계는 모두 이단이 된다. 구체적 행동 태도에 있어 구체적 인격 또한 이단자가 된다. 체계적인 지적 사상체계라면 통째로 이단이 된다. 첫째 유형의 사회에서는 이단은 학파적으로 존재하며, 신앙을 포함한 사상 체계가 전체로서 거부되는 것은 이단에서가 아니라 중심적 신앙을 달리하는 이교에서 이다. 그러나 이 유형의 자연적 사회에서 사상체계와 구체적 인격의 중간 레벨인 학파적 존재 형태를 갖지 않고, 이교pagan과 이단heresy의 구별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64-65)

말할 필요도 없이 이 두 번째 유형의 자연적 사회란 일본 사회를 설명하기 위한 하나의 이념형이다. 이 자연적 사회를 설립하기 위해, 첫번째 사회를 주술로부터의 해방으로 말하는 합리화로 말하든 정통과 이단의 분명한 사상적 대립으로 설명하든지 이 사회는 일본사회의 대립항으로 존재하는 구미사회이다. 후지타 쇼조는 일본 사회가 가진 특징에 의거해서 일본의 이단과 정통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구미사회가 정통과 이단을 다루는 가장 전형적인 유형 즉, 삼위일체 교의의 성립과정에서 나타난 정통과 이단 논쟁을 기반으로 이념형을 만들었고, 이를 L정통과 O정통의 일치를 위한 삼위일체 교의라고 선언했다. 이것 만으로 모든 것을 설명한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동시에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주는 것. 그런데 더 흥미로운 것은 일본을 나리유키成り行き라고 자연형 사회라고 말하는 부분이다. 더 자세한 내용은 다음에 나온다만. 이 주장이 왜 흥미로운가 하면 그것은 마루야마 마사오가 근대를 ‘픽션’이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일본정치사상사연구』에서 마루야마 마사오는 일본의 고학파가 ‘작위作爲’ 즉 픽션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근대성의 맹아가 있다고 말하지 않는가. 마루야마 마사오의 이 주장 때문에 한국에서도 중국에서도 모두들 근대성의 맹아가 자생적으로 존재하는지 찾으라 부산한 한 세기를 보냈고. 한국의 실학이란 순전히 그런 관점에서 쓰여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마루야마 마사오가 그렇게 힘겹게 ‘작위’를 발견하는 것이야 말로, 일본이 부작위사회, 자연스러운 사회라는 점에 있다. 그것이 자유주의자 마루야마 마사오를 가장 어렵게 하는 점이었다. 만세일계의 천황과 민중이 자연스러운 가족의 정으로 연결된 가족국가론에 ‘작위’가 끼어들 틈이 없는 것이다. ‘사회계약론’의 자리가 없는 것이다.

후지타 쇼조는 이런 사실을 정확하게 드러낸다. 자연스러운 사회에서 사회계약론은 이단이며 그리스도교도 이단이다 그리고 코뮤니즘도 이단이라고. 이 셋 모두 사회를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실제 그리스도교와 사회계약론은 한 가지 점에서 아주 명확하게 일치한다. 그것은 시작이 있다는 점이다. 창조에 의해서 인간이 출현하고, 삶의 목적이 부여되고, 사회가 형성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구원과 해방과 교회가 형성되었다. 시작이 있고, 원리가 있고, 사람들에게 질서가 부여된다. 홉스든 루소든 사회계약론이란 구약성서의 창조와 신약성서의 교회 설립의 모방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현실에서는 충돌한다. 사회계약론이 등장했을 때, 그리스도교 신앙과 교회는 자연스러운 것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교 교의가 사회계약론에 근거한 국가설립의 정당화 역할을 담당하기로 나설 때, 그 둘은 더 이상 강력할 수 없을만큼 결합한다. 둘은 하나가 되는데. 그것은 둘 다 인간과 사회의 창설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며, 그 둘의 창설원리를 하나로 하게 되면, 그 이상의 정통성은 없게 된다. L정통과 O정통의 완벽한 결합이 된다. 코뮤니즘 역시 마찬가지. 일본의 지식인들이 이런 문제를 앞에놓고 고심참담한 것은 너무나 이해할만한 일이다.

그리고 이 두 가지 극한적 기본형의 중간에 신 앞에서의 논쟁에 의한 것도 사연적 사회에서의 그때그때의 구체적 행동 태도가 가진 자연적 조화성도 아닌 이 세상 사회질서의 보호를 목적으로 하면서 교의화된 사회규범을 필요로 하는 사회(베버의 질서화된 합리주의)의 이단 유형이 세번째 기본형으로 존재한다. 여기서는 논쟁이 있으되 이 세상질서를 위한 정치사회를 위한 논쟁이 있고, 이 세상 질서의 지배자(권력) 혹은 지배자가 되려는 자의 이해관심이 그 논쟁의 내적 과정을 제약한다. 이 논쟁은 문헌·도서라는 물화된 것을 통한 형태로, 살아 있는 인격으로 대면·집합하지 않는 형태로 출현한다. 자주 문헌 발굴의 픽션이 창조의 표현형태가 된다. 이 유형의 이단은 한층 더 학파적이다. 이것은 현실의 역사적 형태로서 중화제국 시대 중국의 유교사회 그리고 로마제국의 일부분에 나타날 수 있다.(66-68) 후지타 쇼조가 제시하는 이 세번째 유형은 동양적 유형 혹은 중국적 유형이다. 그러나 이 유형에 대해서 그는 엄밀하게 수립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이 유형이 일본에서 그 다지 중요하지 않기 때문이겠지. 만약, 후지타 쇼조가 제시하는 이단과 정통 논의가 유효하다면, 한국을 이해하기 위해 세번째 유형을 보다 상세하게 분석할 필요도 있어 보인다.

후지타 쇼조의 정통과 이단의 이념형을 수립하는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일본의 지식인이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그는 어디까지나 일본을 설명하려는 것이고, 일본을 비판하려는 입장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 기준 혹은 표준을 세워야 한다. 그것은 물론 구미다. 구미에서 일본과 가장 대척점이 되는, 가장 전형적인 사례를 기준으로 이념형을 형성한다. 베버가 좋다. 그리고 그런 이념형을 만드는 과정에서 사태를 분석할 수 있는 개념의 도구들을 준비한다. 그리고 그 도구들도 그냥 한 덩어리로 보이는 일본을 재단한다. 마치 진흙을 개어서 틀에 넣고 무엇인가 만들어내듯이. 이것이 전후 상당기간 아니면 지금까지도 일본의 지식인들이 하는 작업 중 하나인 모양이다. 일본은 일본인들 스스로 구미의 타자로서 자신을 정립함으로써 자신을 인식한다. 구미의 대응이자 구미의 대쌍이다. 측은하다기에 앞서 한국의 지식인들도 늘 하는 일이다. 그렇지만 조금 다르다. 한국의 지식인들에게 서구만이 기준이 될 뿐, 자신은 스스로 대쌍이 되지 못한다. 서구의 사례와 비교해서 한국의 상황을 개념화하지 않는다. 서구의 사례와 기준과 비교해 한국의 사례는 일탈이거나 변형이거나 특수일 뿐이다. 한국은 비정상이다. 변이성이다. 이런 현실을 표현하는 말이 한국 상황에서의 적실성이라는 손오공의 여의봉 같은 단어가 아니었던가. 서구와 많이 다른 한국은 교정의 대상이고, 규율의 대상이다. 아직도 그리 크게 변했다고는 보지 못하겠다. 한국에서도 종종 서구와 대립하는 담론이 등장하는데, 이런 담론은 흔히 동양과 서양을 대립시키는 담론의 형태를 띈다. 이런 담론은 일본 담론의 수입이거나 모방인 경우가 많다. 한국이 담론을 대립시키는 그나마 사용가능한 방법은 서구를 정립하고, 일본을 정립한 후, 이 둘과의 관계성 속에서 한국을 정립하는 것이다. 단순히 일방적인 전파경로로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를 이중적, 중첩적 타자로 인식할 때, 비로소 인식가능하다는 것은 비극에 가깝다. 사소한 것을 하나 말하기 위해 먼길을 돌아가야 한다. 그렇다고 이제와서 에두아르두 비베이루스 지 까스뜨루가 『식인의 형이상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관점의 역전 즉 경이로운 귀환이 가능하리라고 생각되지도 않는다. 이미 타자의 타자로 이중삼중의 타자로 형성된 자기가 본래의 자기로 쉽사리 돌아갈 수도 없을 뿐더러, 이제와서 본래의 자기를 구성한다면 흰 두루마기 입고, 벼농사를 짓는 상상의 자기를 형성해서 다시 한 번 타자화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

일본 사회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사회Corpus Christi, Societas Christiana와 전혀 다르다. 질서의 합리주의 체제와 같이 사회질서를 지키기 위한 교의적 규범을 필요로 했던 것은 도쿠가와 시대 뿐. 혈통 원리(?)를 체현한 천황제의 면면한 존속으로 상징되는 일본 사회 전체를 덮어씌우고 있는 의식 형태로는 자연적 사회가 우위였다. 일본에는 신神도 신사神社도 있지만, 신대사神代史를 말하는 것은 천황의 신성성을 드러내기 위해서였다. 와쓰지는 천황의 신성한 권위가 먼저이고 신대사는 그 뒤라고도 한다. 어디까지나 이 세상 사회질서의 현세적 통합자를 신성화하는 것이지, 신들은 수단일 뿐이다. 그런 천황의 신성성은 혈통적 배후에 신들이 있음에서 도출된다. 천황은 신들의 후예로 신성화되지만 신들은 천황의 신성화를 위한 배경-수단의 의미만 갖는다. ‘조건부의 상대적 신성자’. 일본의 신성함이란 천황과 신들의 상호 관련을 포함한 상고시대의 상태, 사실 그 자체나 상호 관계를 지양한 집단성 그 자체를 고귀한 것으로 해야만 했다.(71-73) 일신론에 경도되어 있든 아니든 이해하기 쉽지 않다. 신, 신성, 신화 모두 집단성을 띄면서, 현세적 통합자를 신성화하는 것이다. 이를 후지타는 신들의 부정성不定性(한정되지 않음)과 아득한 저쪽으로의 신의 증발disappear이라는 특질로 표현한다. 주술적 제의에서 제祭의 대상은 없어지고 제를 지내는 일과 그 일을 행하는 구체적 인격만 분명하다. 영은 한정 없고, 영매행위와 영매자만 강한 존재성을 띈다. 신들과 신대사는 천황과 천황 제의의 배경적 수단이 될 뿐.(73) 천황은 일이 있을 때마다 천신지기天神地祇에 제를 지내고 점복에 따라 취할 일을 질문한다. 천황은 신들을 모시는 것인데. 그 모셔지는 황조신皇祖神도 다른 어떤 신을 모신다. 아마테라스오미키미天照大神이 모시는 최후의 이름 없는 천신아마쓰가미天の神 조차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듣는, 영매자이지 신이 아니었다. 신이 몸 굽혀 절했던 대상은 존재성을 상실한다. 그리스도교와 정반대로 영의 특정화가 불가능하다. 신 쪽이 영에 몸굽혀 절하기까지 한다.(74-76) 따라서 질서화가 가능한 것은 영의 체계가 아닌 주술적 제의의 체계 뿐이다. 주술적 제의의 체계란 현세적 질서, 정치질서이고, 제정일치다. 또한 비정치적 질서원리로서, 주술제의적·정치적·비정치적 현세적 통합체로서 체계적 질서화가 생겨난다. 와쓰지 데쓰로和辻哲郎는 일본의 천황제적 의식구조에 궁극자란 없고, 주술적 제사만이 잇으며, 무엇이 모셔지는지 알 수 없다. 그저 매개자와 매개의 영위만이 뚜렷하다. 최후의 지점에서 모셔지는 신보다 모시는 신이 강한 존재라며, 이 세상 제사 공동체의 수장인 천황의 신성성을 설명했다.(76-77) 구체적인 제사 행위와 계승만이 확실한 사회에서 점술의 결과가 실패하면 더 적당한 점술 절차를 찾아야 할 뿐이다. 제의의 방법·절차에 관한 의문은 그때그때의 구체적 행위와의 관련에서만 생겨난다. 제의체계에 대한 의문이 생겨나려면 시공간을 초월한 궁극적 정점에 대한 수단으로 파악하는 의식이 있어야 한다. 문제는 절대자를 향한 올바른 태도이다. 주술과 신앙의 단절, 주술과 신앙의 목적의 역전.(78-80) 천황제 주술적 제의에서는 제의의 존재방식의 옳고 그름이 문제가 아니라 ‘삿된 마음이 아니라 곧은 마음을 가지고 제의·점술에 접하라는 주관적 심정 만이 일반적 가르침이다. 예배하는 자의 자연적 심정 곁에 보편적 태도가 요구된다. 전통적 청명심淸明心의 교설이다. 심정의 곧음만을 가르치니 객관적 양식의 옳고 그름에 대한 사색과는 정반대다. 옳고 그름을 사색하지 않으니 도그마는 태어나지 않는다. 절대적 규범체계에 따라 사회질서를 건설하는 일도 없다. 주술적 제의의 체계는 공적 주술제의와 사적 주술제의의 구별에 불과하다. 그 결과 정치사상의 통합에 규칙 체계가 필요해지자 세계적 사상이 간단히 수용된다. 마루야마 마사오는 국체国体의 무한포용성, 세계적 사상체계의 잡거성雜居性이라 말했다. 물론 수용된 사상체계가 국민적 통일을 때려 부술 것 같으면 즉각 가이쿄外敎·아다시카미他神로 이단시 된다. 요메이 천황의 사례에서도 궁극적 존재가 신이 아니라 제사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 것을 구니쓰카미国神를 등지고라 표현하며, 아다시카미라 해도 제의통합체를 위태롭게 하지 않으면 배척되지 않는다.(80-84) 이런 고전적 천황제 의식상태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이단이란 공적 주술제의의 권위성을 위협하는 것이었다. 사상 그 자체의 이단성이 문제가 아니라 공적 주술제의의 권위를 폄하하는 경우에 이단이 된다. 공적 주술제의에 등을 지는 경우, 가이쿄가 천황제의 공적 주술제의의 권위를 위협하는 경우.(84-85) 흥미롭게도 소라이학에서 공산주의까지 이교로 금지되었지만, 학설과 사상을 유지해도 실천만 포기하면 석방되기도 했다. 천황제의 특이성을 문제삼은 강좌파 마르크스주의 쪽이 천황제를 군주제 일반으로 보아 문제시 하지 않았던 노농파보다 훨씬 엄격하게 박해받았다.(86-87) 전통적 정치질서가 안정된 경우 수용된 세계의 종교(사상)은 멋쟁이 이국의 교설로 존경도 받지만, 안정이 무너지고 유동적인 상황이 되면, 비일본적이라 박해받는다. 평상시의 존경과 비상시의 비난과 박해. 이는 비꼼과 복수의 양상을 띄며, 결국 인간냄새나는 사회심리학적 과정이 된다. 천황제 사회는 갈수록 무사상의 사회가 되어간다.(87-88)

일본 천황제 국체사상이 근거하고 있는 일본의 신앙, 신토에는 신이 중요하지 않다. 그래서 일까 제사모시는 대상은 대체로 비쭈기나무 조각이나 거울에 불과하다. 그런 신들의 위계서열도 없고, 초월자도 상정되지 않는다. 그저 제의가 중요할 뿐이다. 그런 모든 제사장의 수장인 천황의 신성성이 가장 중요한 데, 그 신성성은 조상 대새로 섬겨왔기 때문에 그 조상이 신이기 때무에 나온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마음이 곧고 올바른 것이다. 설사 이교사상을 믿고 있다고 해도, 국가의 통일성을 해치는 행위만 하지 않으면 용인ㄷ되기도 한다. 그러나 위기시가 되면, 박해를 받는다. 공적 주술제의만이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일까? 일본의 국체사상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찾아보려고 할 때, 그걸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의외로 경전이 정비되어 있지 않다. 『고지키』나 『고킨와카슈』 같은 것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게 경전은 아니다. 일본 제국의 사상을 말한다는 문서는 실은 「교육칙어」와 「군인칙유」가 고작이고, 이에 더하면 ‘메이지 흠정 헌법’ 정도다. 물론 이들을 해설해 놓은 수많은 문서들이 있지만, 그걸 경전이라 보기는 어렵고. 그래서 식민지 시대도 끝난지 수십년 후에 태어난 나로서는 그 정체를 파악하기가 몹시 어려웠다. 후지타 쇼조가 비로소 실마리를 제시한 셈이다. 밥먹을 때, 길을 나설 때, 집에 돌아왔을 때, 언제든 신들에게 죽은 가족에게 비는 일본인들, 편의점 보다 많다는 한국의 교회보다 수가 많은 일본의 신사들. 그것을 설명하는 교의도 방식도 없이 모두들 비는 행위만이 있다. 그런데 일본인의 행동양식에서는 정말 깨끗한 마음이 중요하다. 결과의 선악이나 목적의 옳고 그름보다 올곧은 마음을 중시한다. 그것은 일본인의 상식과 도덕에서 아주 흔하게 발견된다. 현대적인 언어로 태도가 중요하다는 말 정도가 되겠다. 그것이 신토 신앙이나 천황제와 결부되어 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이런 의례 행위가 그렇게 중요했기에 우치무라 간조의 불경 사건이 이해될 수 있었다. 일고 교사 시절, 천황이 하사한 「교육칙어」에 최경례를 하지 않고, 까딱 고개를 숙이는 등 마는 등 했기에 그는 전국적인 불경사건의 대상이 되었다. 학교에 불이나자 목숨을 걸고 들어가 천황의 어진영을 구해가지고 나온 교장의 이야기는 전설이 아니다. 그래서 식민지 조선에도 신사참배가 그렇게 중요했던 걸까. 예수를 믿던 교회를 다니면서 무엇을 빌던, 신사에 나와서 참배만 하면 되는 것이고, 신사참배의 거부는 용납하기 어려운 일이 된다. 최남선이 ‘불함문화론’을 제창하면서 일본의 신토와 한국의 서낭당 및 무속신앙은 둘 다 같다고 말한 것은 어쩌면 그 핵심을 꿰뚫어 보았기 때문인가. 둘 다 비는 행위 즉 주술제의행위가 중요할 뿐이지, 무엇을 섬기는지 중요하지 않다는 점을 간파한 것일까. 아니면 같이 부뚜막을 신으로 섬기고 있기 때문일까. 그러면서 마음 속에 뭉게뭉게 작은 질문이 하나 생겨난다. 이렇게 의례를 중시하고, 의례를 집행하는 제사장을 중시하는 종교적 태도와 경향이 식민지 시대를 통해 한국 기독교에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닐까. 목사교라 부를 만큼 목사의 권위가 높아 교회마다 교황이 있다고도 하는데, 혹시 교황이 아니라 천황인 것은 아닌가. 천황이 바로 제사장이고. 그리고 한국 개신교는 유별나게 예배에 관한 여러가지 규칙이 따지는 것이 많았다. 행위와 태도를 중시해서, 때론 가톨릭적이라고 느낄 정도였다. 예배 모임도 정말 많고, 정말 다양한 예배를 만들어서 행한다. 게다가 마음의 태도를 극단적으로 중시한다. 툭하면 내일 죽으면 천당갈 수 있는 마음이냐고, 믿음의 확신이 있느냐고 마음에 대해 물으면서 마음을 다잡으려고 한다. 새벽기도에 매일 나오는 것은 정성스러운 태도의 극한이다.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날마다 외친다. 물론 행위에 의한 구원이 아니라 믿음에 의한 구원을 루터와 칼빈이 선언한 후에, 구원의 확신 또는 확인은 개신교에서 항상 중요한 주제였다. 그것은 교파마다 달랐고, 베버에 따르면 칼빈파는 그것을 재산의 형성으로 확인했다. 그리고 현대 한국교회에는 루터파, 경건파, 칼빈파, 웨슬리파 들이 보여주는 여러가지 특징에 유독 마음, 즉 성심을 중시하는 데, 이것은 일본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또 유교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이다. 게다가 마지막에는 밑도 끝도 없이 통합과 단결을 외치는 것까지. 식민지배를 통해 천황제 국체의 신토가 한국의 종교들에 미친 영향을 제의와 의례의 차원, 종교 행위의 수행적 차원에서 확인해 보면 뭔가 나올지도 모른다.

고전적 천황제 의식의 통합체에 대한 이단으로 공적 주술행위의 권위성을 위협하는 사적 주술행위가 있다. 주술제의에 의해 통합되는 사회는 공과 사가 분리되지 않고, 작은 공과 큰 공을 짋어지고 있다. 사가 발생하는 것은 공=사의 연속적 계열체를 등지는 자가 출현하는 경우. 배반 행위와 배반자는 오오야케(공=사 계열)를 사사화하는 자가 된다. 이 계열의 중심적 정점에 있는 천황의 행동양식·주술제의의 권위를 모독하는 것은 사적 행위의 극한이 된다. 함부로 신의 의지를 헤아리는 자가 이단이 아니라 제멋대로 천황의 풍의를 행하는 자, 멋대로 마을의 제의를 행하는 자가 이단자다.(89-90) 신토적 주술제의의 체계는 주술제의의 사적인 사용에 대해 공적 주술제의로서 통합화되고 사회도덕화하는 말하자면 주술이 합리화된 것으로서 유교적 질서의 합리주의와 유착되고 있는 것이다. 사적인 목적으로 자의적으로 주술제의를 행하는 이단이다.(94) 주술제의체계 속의 이단은 주술의 합리화가 일반적인 것으로 비약하고 그것이 유교의 수용 아래 일본적 국가관료제도의 ‘의례=규칙=신분계층’으로 확립되자 양극으로 분해된다. 주술제의체계의 세습적 추장인 천황의 혈통 계보의 자의적 참칭과 관료제적 의례체계에 대한 괴력난신을 믿는 민간의 행위가 된다. 정통에 대한 이단의 반항 과정에서 항쟁이 일정한 단계에 도달하면 반항의 자기 목적화가 생겨나고, 정통·이단의 다툼은 쇄말적 자기목적화가 생겨난다. 쇄말주의화trivialization 경향. 천황제 자체의 무사상성이 이단의 차원에서도 현현한다.(95-97) 주술이단의 다른 한 극은 사회에서의 백귀야행이다. 국가관료제에 대한 불만은 손쉽게 주술신앙으로 향한다. 괴력난신이 각양각색으로 여러 장소에서 제멋대로 기도된다.(97-98) 천신지기에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이 존경을 표하는 천황제 통합의 오소독시에 대해 천신지기의 일부분만을 제멋대로 추려내는 이단이다. 여러 영 중 하나에 매달여 국가통합을 해체한다. 영의 합리화가 되지 않은 천황제에서는 이단의 숫자 또한 규정 불가능하다. 이단 또한 합리화되지 않았다.(99-100)

나는 사실 이 논의를 모두 따라가기가 조금 벅차다. 짧은 글인데도 그렇다. 우선 일본의 천황제에서 이단은 행위로 판가름되며, 그것도 사적 주술 행위로 판가름된다. 그런데, 그 행위의 내용을 따지지는 않는다. 일단 혈통적 추장에 해당하는 천황을 참칭하면 안된다. 둘째는 특정 신이나 영만 섬기면 안되고 천신지기의 모든 신을 다 섬겨야 한다. 이건 일신교도 다신교도 아닌 총신교라고 해야할까. 여하튼 무엇으로 따지는지 알 것 같다. 무엇을 문제삼는지도 알 것 같다. 마을이든 지방이든 국가든 각자의 단위에서 결정한 것을 개인이 바꾸려고 해서는 안된다. 특히 주술행위에서 그렇다. 그러므로 개인의 신앙, 신 앞의 단독자 같은 개념은 이 사상 체계 전체와 충돌하지 않는 한 설자리가 없게 된다. 일본에서 그리스도인이 되면, 친족 집단과 관계가 끊긴다고들 하는데. 그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를 좀 이해할 것 같다. 그러나 이 글에서 후지타 쇼조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정통-이단의 쇄말주의화 현상일 것이다. 반항의 자기목적화 즉, 반항하기 위해서 반항하고, 반대하기 위해서 반대하다가 그 모든 다툼은 그 본의를 알 수 없는 사상적 내용도 없는 쇄말이 되어버린다는 것이다. 이런 것은 비판하기는 좋지만, 사상가로서는 정말로 당혹스러운 일일 것이다. 도대체 무엇과 싸워야 할지 알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근대 일본의 이단 유형에 대한 보고를 간략히 살펴보자. 메이지 말기부터 정통에 대한 이단감각이 나온다. 모두가 정통이라고 생각했고, 각자 자기의 유신상維新像을 가졌기에 유신이 타락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유신은 다케코시 산사가 말했든 아나키컬 레볼루션이고 계획성이 없는 혁명이었다. 유신이 한 차례의 제도적 완성을 보려고 하자, 유신의 자각이 일어나고, 유신의 공신은 타락해서 안식하고 있는, 유신은 이제부터다라는 주장이 나온다.(103-104) 구가 가쓰난이나 다케코시 산사의 글에서 일본 근대국가의 이데올로기가 나오고, 그 뒤에 관료제에 대한 대응으로 국체론이 나온다.(105) 이단이 등장하는 것은 국체론적 정통감각이 완성된 국가의 의식구조로 형성되는 사태에 있어서다.(106) 여기서 자연적 사회에서의 이단의 특색이 드러나는데, 이단은 모두 감각의 레벨에서 생겨난다. 국가 쪽이 유신의 경로를 일탈했다는 감각이다. 이단의 등장으로 관료제 측에 국체론적 정통감각을 창출하고, 그것과의 관계성 속에서 스스로 이단으로 자리매김하려는 감각이 형성된다는 양의성.(106)

결론적으로 이 모든 정통-이단 논쟁은 근대 일본국가에 관한 것이다. 근대 일본국가에서 종교에서나 있을 법한 정통-이단 논쟁이 나타나는 건 일견 너무나 이상하고 신기한 일이다. 근대 국가는 세속화된 국가가 아닌가. 이런 문제가 가진 미묘함을 후지타 쇼조는 피해가지 않는다. 우선 누가 국가권력을 가지고, 어떻게 행사할 것인가의 정통성 문제는 항상 존재한다. 그것이 유신상이라는 것일 것. 유신은 그 구체적인 내용이 없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주인이 될 수 있고, 각자가 유신을 말할 수 있다. 이때 묘하게 촛불과 겹쳐진다. 모두가 각자의 촛불이 있다. 그러니 모두가 촛불의 타락을 말할 수 있다. 지금의 논쟁이 딱 그렇다. 모두가 각자의 촛불을 말한다. 내가 정통이고, 상대는 정통이 아닐때, 그것을 무엇으로 표현할까. 보통의 정치적 맥락에서는 불법, 괴뢰, 찬탈, 독재 등의 용어를 사용하게 된다. 그런데, 후지타 쇼조는 정통에 반대되는 것은 실은 이단이 아니냐며 이단론을 슬쩍 끌고 들어오는 것이다. 그리고 일본의 경우 정통으로 부터 벗어날 때, 이단론의 형태를 띄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의 국체론 이데올로기는 종교 혹은 신학 또는 주술행위로서 천황을 중심으로 한 국가통합을 이루고 있다. 이런 통합의 핵심으로 구미에서 나타나는 그리스도교와 달리 일본에서 나타난 국체론과 주술 행위를 비교하면서, 그에 따라 정통과 이단 논쟁을 살피고 있다. 이런 일련의 일들은 일본 사회의 논의구조나 사회적 합의의 형성 구조가 정통과 이단의 분열과도 같은 배제의 원리를 통해서 통용되고 있다고 후지타 쇼조가 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정치에서 말하는 정통 즉, L정통과 종교나 사상에서 말하는 정통 즉, O정통은 원래 다른 길을 가지만, 이들은 종종 그 길이 겹쳐지기도 한다. 그리고 종교가 때로는 스스로 권력이 되기도 하니까. 로마 제국 시대의 삼위일체는 바로 그 점을 지적하면서, O정통과 L정통이 합쳐지는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일본에서는 일본은 정치적 통합의 이데올로기가 종교적이기 때문에, 그리고 그 종교적이란 일본적인 주술제의적이기 때문에, 주술제의적 O정통과 그에 상응하는 무사상적 국가체제의 L정통의 결합이라고 일본의 천황제를 통해 표출된 군국주의를 비판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후지타 쇼조는 이단을 내란, 소요, 운동의 세 유형으로 바라본다. 이것 역시 이념형이다. 사가의 난, 하기의 난, 세이난 전쟁과 같은 내란은 권리의 자각 내란 당사자가 반역의 정당한 권리를 가진다는 자신감에 근거한다. 신푸렌 폭동, 가바산 사건, 후쿠시마 사건, 지치부 소동 등의 소요 범주는 내란보다 규범적 자신감을 조금 덜 가지며, 좀 더 비조직적이고, 폭력적이다. 우발적이고 목적의식성이 적다. 자유민권운동이나 국회개설운동을 전형으로 하는 운동을 특징짓는 것은 목표의 중층성과 관련성이다. 때론 논리적으로 때론 경험적으로 파악된다. 규범이 체계화되며 세계 구축적이고 독자적 일상성을 가진다.(106-109) 내란은 유신의 진로라는 것을 문제시하는 혁명과정에 등장한다. 이는 형성되고 있는 국가 진로의 움직임에 영향을 미치는 운동과는 다르다. 유신의 무계획성이라는 사정이 반동과 반란의 경계가 애매한 내란을 특징으로 가지게 된다. 세이난 전쟁의 경우 패배는 했어도 권리의 자각은 이루어진다.(111) 운동은 후쿠자와 유키치의 계몽의 이념을 내걸었던 사상운동이 최초의 사례이다. 자유민권운동의 패배 후, 우에키 에모리植木枝盛는 자유의 목소리를 바꿔 국민의 목소리로, 민권의 목소리를 바꿔 국가의 목소리로 하면 일본을 그르친다고 말하고 있다. 메이지 23년의 논설에서 우에키는 독일의 국민자유주의의 단순한 모방인 일본주의적 주장의 등장을 비판하고, 국가, 국민이 존재하지 않아서 형성하려는 독일과 국가, 국민이라는 존재의 자명함에 의존하는 일본을 폭로한다. 우에키는 자유와 민권 주장의 근거를 풍속과 습속의 시스템에 대한 자각적 대항 속에서 보편적 가치로 논증하고 설득해야만 했다.(112-114) 소요는 내란의 종언과 운동의 패배 쌍방에서 발생한다. 주술이단의 백귀야행적 상황, 말하자면 세속화다. 소요는 무한의 형태를 취한다.(114-115)

내란과 운동의 모두 실패한 후 무한한 소요로 백귀야행으로 향한다는 것은 후지타 쇼조의 현재에 대한 인식을 보여준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자유민권운동을 말한 부분이다. 독일은 국가와 국민을 형성하려는 국민자유주의인데, 일본은 국가와 국민의 존재가 자명하다는 주장. 그렇기에 자유와 민권을 국가와 국민으로 바꾸면 안된다는 이야기. 일단 이 주장은 절반의 진실이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일본과 일본인도 국가와 국민의 내용을 채워가는 중이었지, 자명한 채로 주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렇게 보였을 수도 그렇게 느꼈을 수도 있다. 내가 한국과 한국인의 국가와 국민 형성에 대한 논의를 보기 위해 서구에서 형성된 이론들을 볼 때마다 느꼈던 것이기도 하다. 국가는 이미 형성되어 있는데, 어쩌라는 건지. 그럼에도 2018년까지 진행되는 과정에서 국가와 국민의 내용성이 계속 변화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게 그렇게 단순한 것 같지는 않고. 지금의 의문은 결국 한국에서 정치적 주체의 위치를 차지한 국민이 배타적이고 배제적 형성에 그칠 것인지 보편으로 나아갈 것인지와 과연 서구에서 형성했다는 시민은 보편적인지에 대해서다. 절대적 해답은 나오지 않겠지만.

메이지 말기 국체론은 가족국가론과 한 세트이며, 국민도덕론은 윤리인지 행동강령인지 구별이 없다. 삼교회동도 도그마의 정합성은 없는 삼위일체가 아닌 회동에 불과했고, 사상내용은 융합도덕론적인 내면화 불가능한 것이었다.(115-116) 이런 상황은 정신적 나체 상황이라고 불러야 한다. 이제까지 규범 어휘를 제공하던 유교는 잔재조차 사라지고, 생물학적 진화론이 인간관의 중핵을 점하게 된다. 가토 히로유키의 이데올로기적 진화론이 아니라 극히 보통으로 실감을 갖고 받아들여지게 된다. 체제의 정통 교학으로 인간의 내면성을 자각할 수 없는데, 인간은 동물이라는 실감이 국민적 규모로 정착한다.(116-117) 국체론적 정통이 인간의 내면 형성을 힘을 가질 수 없고, 관료정책에 근거해 전부가 이단이라는 감각을 가질 때, 시대 일반은 정신의 중심을 잃고,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라는 물음이 사라지고 오직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의 시대가 된다. 이글이 쓰여진 1960년대 중반과 비슷한 하우투의 시대. 정신적 나체 상황에서 사상을 형성하는 애초의 출발점으로 이단의 자각을 가지고 생겨나야 했다.(118)

메이지 말기의 상황을 후지타 쇼조는 정신적 나체상황이라고 부른다. 국체론과 가족국가론이 한 세트로 국민도덕론으로 움직여가면서 융합도덕론의 엉성한 조합을 제시하던 시대. 이때 후지타 쇼조가 주목하는 것은 진화론이다. 그것도 인간은 동물이라는 원초적 진화론, 국체론이 인간의 내면을 형성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진화론에 가장 대립하는 것은 창조론이다. 그 창조론과 사회계약론은 닮은 모습이다. 그러니 어떤 형태의 규범도 통하지 않고, 인간의 내면성을 규명할 수 없는 자연적 ‘成り行き’의 사회가 진화론으로 귀결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 않나. 오늘날에도 주요 국가들 중에서 진화라는 단어를 유독 많이 사용하는 나라가 일본이다. 요즘에는 한국에서도 늘었지만. 게다가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물음이 사라졌다는 것은 물론 레닌을 가리키는 말이다. 무엇이 없어지고, 어떻게만 남는다. 하우투란 앞에서 일본 사회의 특징을 지적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제사의 대상인 신이 아니라 주술 제의 행위만이 중요하다.

후지타 쇼조는 메이지 말기에서 다이쇼 데모크라시기의 이단의 유형을 내란, 소요, 운동과의 관련 아래서 테오디체theodizee 즉, 신정론 또는 변증론이라는 형태로 살펴보겠다고 한다. 나가이 가후永井荷風는 은둔의 변증, 우치무라 간조内村鑑三는 운동의 변증론, 오스기 사카에大杉栄는 소요의 변증론이다.(118-119) 메이지 말기 우치무라의 시대인식은 ‘주의로 부패하기 쉬운 사회’로 사회 전체에 부패의 기운이 가득하며, 일본국의 희망은 상류사회에도 하류사회에도 없고, 정망과 결합되어 있고, 세계 자체를 거부한다. 그는 전세계를 상대로 하나의 세계제국을 정신 속에서 만들고, 그의 독립주의는 오직 하나의 신만을 따르기 위해 다른 일체의 이 세상 것으로부터 독립하려 시도한다. 우치무라는 보편자를 단독자의 자각이라는 과정을 통해 역사적 시간을 무시하고 예수와 유착함으로써 형성하려고 했다. 이는 퓨리턴의 특징으로 이단의 전형적인 한 유형이다. 근대는 세속화된 것이고, 역사적인 사회인데, 역사주의의 시대에 나타난 우치무라 같은 이단은 사회 규범을 무시하고 절대자와 유착한다는 중세의 고정 사회의 순수순정한 사회에서의 이단과 동일한 것이라는 사고법이 역사적 시간을 무시하는 형태로 등장한다.(119-123) 나가이 가후의 은둔은 메이지 이후의 세계가 없는 듯이 에도 시대의 세계에 몰입하는 형태이다. 오스기의 소요의 변증론이 있다.(123-124) 메이지 말기 이후 이단의 성립에 의해 정신도 성립하고 타락도 성립한다. 독립도 은둔도 사회화 하지 않기 때문에 은둔의 인텔리적 타락 형태인 교양주의와 현세적 도덕으로의 매몰 상태이자 타락의 대중적 형태로서 인격 수양주의가 등장한다. 여기에 소요까지 세 가지가 다이쇼 시대의 특징이고, 정신적 타락의 형태로서 최후까지 고립된다. 수양, 교양, 소요(본능주의, 충동).(124-125) 이렇게 백귀야행적으로 분해되는 상황에 응해 최후에 등장한 것이 『일본자본주의발달사 강좌』였다. 충동이 진리로 견인되고 정열에 뒷받침된다는 헤겔적 변증법의 논리가 활용되어, 세 가지 레벨로 분해되던 것이 비로소 통합되고, 삼위일체의 도그마가 성립한다. 우치무라적 측면도 가후적 측면도 통합되고, 체계화한 정신의 세계를 형성하는 사상사의 ‘정통’론이 다시 등장하는데. 다이쇼 11~12년 아나볼 논쟁을 거치고, 극단의 이론주의를 지나, 『일본 자본주의발달사 강좌』에 이르게 된다.(125-126) 그에 반해 ‘노농파’의 치도治道의 우위는 정치적 리얼리즘에서는 훌륭하지만, 정신적 체계의 통합, 삼위일체의 형성은 나올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런데 강좌파는 노농파와의 논쟁과정에서 급속히 변질되어 정통이 산산이 쪼개져 간다. 강좌파 마르크스주의는 가톨릭교회가 끊임없이 직면했고 극복해왔던 과제를 쇼와 7년이 되자 잃어버린다. 그것은 황급히 폼(형식, 구조)를 만들어야만 했는데, 그 폼은 구멍투성이였고, 지킬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정통이 정묘한 삼위일체 체계에 대한 자각을 결여해가면 정통·이단 논쟁은 반드시 트리비얼라이제이션trivialization(쇄말화) 한다. 도그마에 의해 감각의 레벨이 컨트롤되지 않으면 쇄말화는 과잉된다. 특히 이단이 이단감각에서 나온다는 일본 사회의 특징이 개재되어 도그마와 감각 간의 콘플릭트, 내적 충돌이 상실되고 감각적 차원으로 해소되기 쉬운 경향이 애초부터 있었고,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대한 정치적 종교에 의한 박해에서 강좌파적 삼위일체도 이중, 삼중, 사중의 쇄말화가 일어나게 되고, 쇄말화 경향성이 매우 이른 시기에 비대해진 조발성早發性 쇄말화라는 경향에 전전의 강좌파 마르크스주의는 빠지게 된다.(127-129) 패전은 모든 쇄말화를 일소하고 『일본 자본주의발달사 강좌』에서 재출발한다. 현실의 농지개혁은 강좌파 이론의 정통성의 전개인 동시에 충동, 수양, 교양의 통합이며, 실천이 더해진, 사상과 실천의 통일이 전후의 어느 시기에 등장할 수 있었고, 자기를 재형성하려는 국민적 자기비판의 과정에서 생생하게 기능했다. 그러나 쇼와 10년대의 내분의 심리학이 당 속에서 유지되고 있아가 잔재가 다시 나오게 된다. 전후정신의 재형성을 몸에 익히고 있던 자는 대응할 수 있었지만, 외골수 실천이나 외골수 이론에 빠진 자들은 다시 쇄말주의로 빠져들고 만다. 이데올로기의 종언이라고 말하는데, 오소독시의 종언이 아닐까. 현대란 정신적·사상적 정통의 붕괴 시기다. 혁신도지사의 등장도 역시 일본적·전통적 치도治道의 우위를 극복하고 사상적 정통 아래 정치적 정통을 컨트롤 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129-132)

뒤에 이어지는 것은 마루야마 마사오,이시다 다케시, 후지타 쇼조가 이 글의 세번째 부분인 보고를 두고 토론하는 내용이다. 그 첫 마디가 이렇다. “대체적인 아우트라인은 잘 알겠네. 비로소 알겠어”라고 마루야마 마사오가 말하는데. 피식 웃음이 나면서 도대체 뭘 알겠다는 건지, 나는 도대체 뭘 읽은 건지 좌절감 같은 것을 느꼈다. 나로선 이렇게 요약정리를 하고나니 그나마 조금이라도 알겠다만. 정말 대단한 선생과 제자라는 생각만 든다. 메이지 말기부터 다이쇼와 쇼와 전기를 거쳐 패전과 전후를 표현하는 후지타 쇼조의 말에서 좌절감이 느껴진다. 그는 쇄말화라는 말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내 눈을 끈 것은 우치무라의 고립과 나가이 가후의 은둔이 교양과 수양주의의 형태로 드러난다는 지적이었다. 그것은 식민지 조선에서 조선인들이 벌인 운동이기도 하다. 도산 안창호가 이끈 수양동우회나 실력양성론 등은 이런 논의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었다.

후지타의 설명에서 새로운 정통의 자리, 새로운 삼위일체를 형성할 가능성이 있었던 것은 강좌파 마르크스주의였지만, 노농파와의 갈등과정에서 쇄말화되고 만다. 그리고 전후 사상과 실천의 결합이 다시 한 번 기회를 부여하지만, 옛 갈등 속에서 다시 쇄말화되어 버리고 만다. 혁신도지사란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혁신파가 정치적으로 활동했던 시기의 특징을 가리키고. 강좌파와 노농파에 대해서만 조금 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머리말의 역자 주에 나오는대로 노농파란 메이지 유신이 불철저한 부르주아혁명으로 천황제는 부르주아 군주제이고, 당면 정치 투쟁의 대상은 금융자본·독점자본을 중심으로 한 제국주의적 부르주의자들이고, 혁명은 사회주의 혁명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반면 강좌파는 메이지 정치체제를 절대주의로, 사회경제체제를 반봉건지주제로 규정하고, 혁명의 성공은 2단계 혁명론으로 천황제 타파로서의 민주주의 혁명이 사회주의 혁명으로 이행 전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좌파는 당대 일본의 권력체계를 구성하는 세 가지 요소로 천황제, 지주적 토지소유, 독점자본의 합성을 꼽았던 코민테른 32년 체제를 인용한다.(19-20) 후지타 쇼조에 따르면 강좌파와 노농파를 구분하는 기준은 소위 말하는 치도治道라는 것으로. 노농파는 천황제를 인정한 반면, 강좌파는 천황제를 문제의 핵심으로 보았다. 그러니 강좌파가 더 큰 탄압을 받았지만, 강좌파만이 새로운 사상을 수립할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는 것이다. 천황제를 뛰어넘든가 천황제 밑으로 들어가든가 결국은 선택의 문제가 아닐까. 점령군이 미군이 취한 농지개혁이 강좌파의 성공을 보여주는 것 같았어도 결국 쇄말화한 것은 점령군에 의한 조치였기 때문이 아닐까. 그리고 오늘날의 일본 리버럴들이 보여주는 지리멸렬함은 바로 이 전후사상과 전후체험이라는 것이 무너져가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여기서 또 하나 떠올릴수 있는 것은 80년대말에서 90년대의 한국사회의 경험이다. 소위 사구체논쟁이라고 불리던 것. 한국사회구성체논쟁. 그리고 신식국독자와 식반자.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론과 식민지반자본주의사회론 또는 식민지반봉건론의 대립은 강좌파와 노농파와 각자 계보를 형성하긴 쉽지 않다. 하나 식민지 문제 즉 분단 문제를 떼어놓고 보면, 제국주의자와의 투쟁을 강조하는 노농파는 식반론(서로 처한 위치가 달라 방향은 정반대)과 2단계 혁명론을 구상한 강좌파가 신식국독자와 계열을 형성할 수 있다. 물론 이건 나의 억지다. 강좌파와 노농파가 모두 쇄말화 즉, 흐지부지된 일본과 다르지 않게 한국사회도 동구권의 몰락과 함께 사회구성체 논쟁은 사라졌다. 논쟁의 한축을 담당했던 이들은 뉴라이트로 전향하기도 했고, 어떤 이는 서울시 교육감에 재선되었다. 그리고 또 많은 이들이 흩어져 있지만. 당시의 격렬한 논쟁 탓에 감정적으로 상처를 입은 것만큼은 일본과 똑같고. 변혁의 논리가 쇄말화되어 흐지부지된 것도 일본과 똑같다. 어쩌면 이런 것이 역사의 필연인지도.

이어지는 토론 내용도 꽤나 흥미롭지만, 여기서는 아주 인상적인 것 몇 개만 말해보겠다.

마루야마. 막번 체제에는 불교 쪽에선 사상적인 활력을 잃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이데올로기적 차원에서는 유교 뿐이었다. 유학 자신이 막번 체제와 들어붙어버린 것으로, 이후 체제의 붕괴에 의해 또 유학 자신이 내용적으로 가지고 있는 한계에 의해 그 내부에 간신히 존재했던 정통·이단 의식 또한 붕괴했다. 니시 아마네가 『백일신론』에서 말하는 오소독시의 가르침은 따라서 공맹의 가르침과 동일한 것이 된다. 이것이 정교일치를 지탱해 왔고 그래서 오소독시의 가르침은 안 된다. 그것이 붕괴했다. 거기가 유신의 출발점이다.(138)

마루야마. 나의 전후를 관통했던 감정 속에는 전전의 리버럴리즘, 특히 중신重臣的 리버럴리즘에 대한 상당한 실망과 분노가 있다. 중신적 리버럴리즘은 매우 타락하고 있었다. 이는 사이온지 긴모치西園寺公望까지 소급한다. 중신 리버럴리즘과 단절하지 않으면 진정한 리버럴리즘은 나오지 않는다. 거기에 마르크스주의의 역할이 있다. 마르크스주의의 세례를 받았는가 아닌가 하는 것으로 리버럴리즘을 구별하며, 좌익이 타락해버린 이후 좌익의 그런 세례를 받지 않고 나온 리버럴리즘도 생긴다. 유물론은 근대 일본에서는 관념론의 역할을 다했다. 관념론이란 곧 자연주의로부터의 단절이다. 일본 사회에서 자연과 자신을 단절하는 것은 사회로부터도 가족으로부터도 고립을 뜻한다. 일본에서는 마르크스주의가 최량의 관념론이라는 패러독스의 자각이 전후에는 희박했던 것이 아닌가.(148-150) 일종의 대일본제국 정통자유주의가 있어서 최후까지 살아남아 상황적응주의 같은 것이 된다. 관료 속에 있는 리버럴.(183) 역사적으로 말해 기분 차원의 자유주의, 그 외 일본에 있는 리베르탱(자유사상가, 무뢰한).(185) 일본의 자유라는 것 속의 오소독시-거기가 서양의 자유와 상당히 다른 지점인데, 컨스티튜셔널리즘(입헌주의, 입헌정체)에 매개되지 않는.(186) 제도가 없는 것을 자유라고 파악하는 방식은 대일본제국 해체의 물리적 결과다.(187) 중신 리버럴리즘은 중요한 주제다. 체제 내 리버럴리즘은 타락한다. 기분 차원의 자유주의와 제도가 없는 상태를 자유라고 보기도 한다. 리버럴리즘은 마르크스주의의 세례를 받아야 한다. 마르크스주의라는 관념론을 통해 자연과 단절해야 한다. 즉, 픽션의 세계(constitutionalism)를 통과한 리버럴리즘.

후지타. 선생님들의 세대는 정신의 형성을 전중에 이루었던 것이고, 때문에 전후는 해방으로서 패전을 맞았죠. 저희는 그렇지 않는 겁니다. 해방으로서 전후를 맞이했던 것이 아니라 일대 쇼킹한 사건으로 맞았던 것입니다. 정말로 머리를 쾅 얻어맞아 뇌진탕을 일으켰고 일단 ‘마음의 여로’에서 기억을 상실했던 것이며 이어 주위를 다시 전망하며 눈뜨게 된 세계의 광대함과 풍부함에 기겁하면서도 열심히 공부해왔떤 것입니다.(151) 그래서 오늘날에는 전후란 자학사관이 되는 건가? 전후는 이제 힘을 상실한 것이 분명한데. 어디서 새롭게 다시 시작할 것인가.

마루야마. 유신의 정신이라는 것은 그리스도교와는 달라서 사회적·정치적 변혁 차원의 것이다. 게다가 일본 사회의 고립성이라는 것이 있기에 유신의 이데올로기 자체가, 후지타가 『유신의 정신』에서 논했듯 엠비규어스(양의적)이다. 다의성을 지닌다. 그것은 문명, 독립, 통일이다. 존왕은 통일이고, 양이는 독립, 문명은 다의적이다. 독립 후 문명이 그리고 물질문명.(156-157) 후지타의 책 중 유신의 정신만 번역이 안되어서. 올해가 메이지 유신 150년이다. 요즘은 메이지 유신에 대한 찬양 일색이다. 일본에서만이 아니고 한국에서도 그렇다. 시바 료타로 같은 사람의 문학을 통해서도, 영상 매체를 통해서도 찬양이 쏟아진다. 물론 메이지 유신의 성공은 한국에게는 러일전쟁 후 식민지화로 이어지지만. 여기까지를 오늘날의 일본은 성공으로 본다. 그러나 마루야마와 후지타의 1960년대는 메이지 유신을 보는 관점이 달랐다. 메이지 유신의 결과가 무모한 전쟁의 연속과 패전이었다. 이런 점에서도 전후 사상가들에 주목해야 한다.

마루야마. 노농파의 원전복귀주의(스콜라티시즘)은 경제학주의다. 이것은 의식하지 않은채 베버가 말하는 가치중립성의 요청을 완수하기도 했다. 재정학을 지배계급의 학문에서 해방시키는 일. 적어도 내가 본 마르크스주의 문헌에는 정치라는 것을 객관적으로 냉청하게 조망하는 리얼리즘이란 없었다. 그런데 경제학에는 그런 것이 있다.(166-168) 마르크스주의에 정치적 리얼리즘이 없다는 마루야마의 지적은 아주 반갑다. 대학원 시절 국가론 세미나를 하면서 마르크스의 『자본론』 1권 상을 들고서 백몇 페이지에 있는 각주 하나를 가지고 몇 시간 동안 토론한 적이 있다.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는 그때 이후 마르크스주의자들이란 정말 지독한 원전주의자요 문자근본주의, 문서영감설을 따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정치적 리얼리즘이 없다니 정확한 지적이다. 『프랑스혁명사 3부작』과 『독일 이데올로기』외엔 읽을 것도 없다.

마루야마. 전후는 반半제도, 반半상황이다. 제도가 상황에 의해 침투되고, 상황이 제도에 의해 침투된다. 전前유사혁명적 양상을 보인다. 거듭 혁명 전야에 있는 것을 느낀다. ‘유사혁명’적 양상과 ‘천하태평’적 양상이란 사물의 표리다. 천하태평이란 전체제도 면에서 보는 것. 유사혁명 양상을 변혁시켜 혁명이 되는 것은 천하태평을 전복시키는 것이다. 국민 사이에는 정착되고 있지만 권력층 쪽에서 일본국헌법이 정착하지 못하는 것은 제도가 제도로 단단히 되지 않고 제도가 상황화되고 있다. 때문에 작위作爲하지 않으면 안된다. 전후에 점령 체제가 관료제를 온존시키고자 하는 것에 최대의 문제가 있다. 관료제가 온존하면 관료제의 behavior가 가장 연속성이 있게 된다.(191-193) 전후 일본은 내분사회로 유사혁명적 양상과 유사제도적 상황이 유착하고 있다.(197) 전후 자유주의를 고민해온 마루야마의 깊이가 느껴진다. 촛불의 제도화가 자유주의의 문제다. 그리고 관료제의 행위 연속성을 쉽사리 넘어가지 못하고 있다. 그렇지만, 넘어서야 한다. 어떻게? 그것은 제도화를 통해서다. 제도를 상황화해서는 안된다.

마루야마. 세대론이라는 것은 서구를 예로들면 카를 만하임이 논했던 것처럼 독일에서 가장 빨리 나왔다. 다음으로 2차대전 후 분노한 젊은이들. 일본에서 세대론은 메이지 20년대부터 연속해서 나오고 있다. 이 또한 오소독시의 붕괴와 관련되어 있는 게 아닐까. 있던 것, 있어야만 하는 것이 붕괴하면, 그 지위를 대체하는 것으로 세대론이 나온다. 세대가 축이 되어 버린다. 일본은 결여이론은 아니지만, 본래 오소독시가 없는 곳에 가져와 유사 오소독시 또한 붕괴했다. 거기서 세계에서도 희귀한 세대의 단축 현상이 일어난다. 극단적으로 1년마다 저녀 석은 벌써 낡은 세대야 라는 말이 나오게 된다.(198-200) 세계적으로 희귀한 현상은 항상 일본과 한국에서 반복된다. 세대론이라는 것이 단순한 마케팅 수단이 사회현상에 대한 피상적 설명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오소독스의 부재를 반영하는 것.

뒷부분의 토론에서 역시 내 눈길을 끄는 건 마루야마 마사오였다. 이 둘의 연구회 자료가 마루야마 마사오집 별집의 4, 5권으로 아직도 출간 중이라니 정말 놀라운 일. 얼마나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마루야마 마사오를 다시 좀 읽어야 겠다.

더불어 나는 이 책의 번역자에게도 관심이 생겼다. 그는 미키 기요시의 『파스칼의 인간 연구』도 번역했다. 기타모리 가조의 『하나님의 아픔의 신학』에도 인용구가 있었다. 책이 나온 것만 보고 확인하지 못했는데. 1926년판의 쪽수와 확인하려니 너무 막연해서. 이번에야 확인했다. 진작 보면 좋았을 것을. 요즘 누가 이런 책을 번역하나 싶었는데. 이번엔 후지타 쇼조의 이 글을 번역했다. 그가 쓴 『신정-정치』와 『묵시적/정치적 단편들』을 구해서 읽어볼 참이다.

2018. 7. 11.

* 괄호 안의 숫자는 번역서의 쪽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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