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라이 사토시白井聡, 『국체론: 천황제 속에 담긴 일본의 허구国体論:菊と星条旗』, 한승동 역, 메디치集英社, 2020(2018).
아키히토 전 덴노(천황)의 퇴위 의향 메시지를 생방송으로 본 건 우연이었다. NHK였던 것 같다. 그때 만이 아니라 지금도 잘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상징’라는 말이 반복되는 걸 기이한 느낌을 가지고 듣고 있었다. 이제와 세어보니 여덟 번. 어떤 사람이 자기자신을 자기 스스로 상징이라고 말하면서, 그 역할과 직무에 대해 이햐기하는 걸 듣는 건 실로 기묘한 경험이었다. 정식 명칭으로는 ‘상징으로서의 직무(책무)에 대한 천황폐하의 말씀象徴としてのお務めについての天皇陛下のおことば’이라고 한다. 2016년 일본 미디어들은 이 내용의 맨 마지막에 나오는 ‘나의 마음/심정私の気持ち’이라는 단어를 들어 마음/심정お気持ち라는 제목으로 보도했었는데. 오쓰카 에이지가 이 점을 『감정화하는 사회』에서 지적하고 있기도 하다. 2년 전 사둔 문고판의 먼지를 털어냈다. 시라이 사토시는 이 ‘말씀’으로 책을 열고 닫으면서 이 책이 그에 대한 하나의 응답이라고 말한다. “그[말씀] 잠재성・가능성을 현실로 바꿀 수 있는 것은 민중의 힘밖에 없다. 민주주의란, 그 힘의 발동에 주어진 이름이다.”(321) 레닌주의자 다운 응답이라고 할까.
아키히토 전 천황은 국사 행위와 같은 근대법으로 규정된 천황의 직무보다도 전근대적인 ‘천황의 기도’에서 훨씬 더 중대한 의미를 찾아내고 있다. 그리고 기도는 ‘국민의 안녕과 행복’을 위한 것이다. 이번의 ‘말씀’으로 분명해진 것은 이 ‘기도하는 것’에 아키히토 전 천황이 얼마나 열의를 쏟아왔는가 하는 점이다. “천황의 기도가 잠시라도 단절돼서는 안 된다”는 것은 그 기도에 ‘국민의 안녕과 행복’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 이런 사고는 근대적인 사고의 틀로는 이해할 수 없다. 그것은 아키히토 전 천황의 사상이 품고 있는 의고주의라고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 ‘말씀’은 이 의고주의를 통해 ‘천황은 신인가, 사람인가”라는, 천황론의 핵심부에 위치하지만 많은 경우 애매하게 회피해버리는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신이든 사람이든 천황은 그 기도를 통해, 일본이라는 공동체의 영적 중심이 된다는 것이 그 대답이리라. 그런 생각에 따르면, 천황 직무의 본질은 공동체의 영적 일체성을 만들어내고 유지하는 데에 있다.(41-42)
시라이 사토시는 동적 상징론이라고 말한다. 한국에서 일본의 천황제를 언급하면 비판하는 사람은 많지만 실제로 어떻게 작동되는 지는 잘 모른다. 메이지 헌법이나 지금의 헌법을 읽으면서 설명을 해도 고개를 갸웃거린다. 실제 천황의 직무가 제사를 지내고 기도하는 일이라는 이야기를 들으면 대부분 놀란다. 이것은 고대 제정일치 사회의 최고 제사장 역할이다. 현대판 폰티펙스 막시무스Pontifex Maximus라고 할까. 그렇기 때문에 천황은 기도나 하면 된다는 우익들의 비판에 아키히토 전 천황이 거꾸로 격노한 것이기도 하고. 실제 말씀을 꼼꼼히 읽어보면, 그의 생각이 곳곳에 드러난다. 기도를 통해, 국민통합을 만들어내는 영적 중심, 영적 일체성을 만들어내고 유지하는 존재. 이웃 나라의 제도이지만 솔직히 말해 좀 기괴스럽고 서늘한 느낌이 든다. 어느 시대를 살고 있는 거지. 그러나 시라이 사토시가 말하듯 의고주의적 근대인 것이 분명하다.
점령 정책과 동서 대립(냉전)은 전후 일본을 이데올로기 차원에서 매우 기묘한 상황에 처하게 만들었다. 그 구조 속에서는 미국의 지배를 받아들이는 것이 천황제의 유지(독자성의 유지)인 동시에 민주주의이기도 했다. 국체의 파괴(패배와 피지배)는 국체의 호지護持(천황제 견지)였고, 국체의 호지(군주제의 유지)는 국체의 파괴(민주제의 도입)였다. 이는 패전에 따르는 일시적인 혼란이 결코 아니었다. 이 기묘한 모순 속에 파헤쳐야 할 전후 일본의 본질이 가로놓여 있다.(46)
일본 정치와 사상에 대한 논의를 하다보면 결국은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국체国体론과 마주하게 된다. 특히 근대 일본에 대한 이해 과정에서 국체호지 만큼 반복되면서 이해하기 어려운 말도 드물다. 그리고 시라이 사토시가 지적하는 것처럼 모순과 이중성으로 가득하다. 패전 상황에서도 천황제를 유지할 수만 있다면, 어떤 변화도 수용하려 했던 일본의 당시 지배 엘리트들의 행동을 보면, 조선 왕실을 끝장내 준 총독부에 고맙다는 마음이 들기도 한다. 자기 손으로 하려면 훨씬 더 어려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전후의 일본인들에게 경제성장은 국가 정체성과 관련된 것이었기에 영원히 지속시켜야만 했다. 따라서 성장의 정지는 순수하게 경제적인 곤란뿐만 아니라 정체성의 위기를 초래했으며, 그 때문에 오히려 불가능한 신화에 대한 집착이 생겨났다.(55-56) 경제성장이라는 신앙에 매달리는 건 일본이나 한국이나. 성장이 정체성 문제라고 간파한 부분이 돋보인다. 경제성장은 가능, 불가능의 영역이 아니었다.
일본의 대미 종속에서 달리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특징 …… 종속 사실이 보이지 않게 감춰져 있고 부인된다는 점 …… 이 같은 불가시성을 조장하기 위해 종속 사실은 ‘온정주의적 망상’이라는 오블라투(oblato, 녹말로 만든 반투명한 종이)로 감싸여 있다. 예컨대 미일 관계에서는 지나치게 정서적인 말이 공적으로도 선택되고 사용 …… ‘배려 예산思いやり予算’이나 ‘친구 작전トモダチ作戦’이라는 언어 사용이 그러한데, 이들 용어는 ‘일본과 미국의 관계는 진정한 우정에 토대를 둔 특별한 것이다’라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역할 …… ‘일본과 미국이 우호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은 국익에 대한 냉철한 타산 때문이 아니다. 이 관계는 그 전쟁 때의 처참한 쌍방 살육을 극복하고 이뤄낸 기적적인 화해를 통한 상사상애想思想愛에 그 토대를 두고 있다’는 이야기 …… 극한의 수준으로 강화돼, 국가원수의 외교 행사 때 어필되는 내용이 ‘정상 간의 관계가 친밀하다’는 것, 그 하나로 집약 …… ‘미 대통령과 잘 지내는 일본 총리’라는 이미지가 유통되는 모습 …… 즉, 친미 보수 세력이 지배하는 정부와 그것을 돕는 미디어 기관은 단 하나의 명제 …… ‘미국은 일본을 사랑한다’는 …… ‘일본을 사랑하는 미국’이라는 명제가 대일본제국의 천황과 국민의 관계를 정의한 명제와 닮은꼴. …… 대일본제국은 ‘천황 폐하가 그 적자인 신민을 사랑한다’는 명제 위에 우뚝 서서 그 사랑에 응하는 것-거기에는 ‘폐하가 결정한 전쟁’에서 기꺼이 죽는 것도 포함된다-이 신민의 의무이고 명예이며 행복이라고 강변했다. …… ‘천황 폐하의 적자’와 닮은 꼴인 ‘미국은 일본을 사랑한다는 이야기의 망령과 그 망령이 지금도 살아 있는 사람들을 사로잡고 있는 이상한 모양새다. (67-68)
시라이 사토시는 『영속패전론』 이후 줄곧 일본이 미국에 종속되어 있다. 속국 상태라고 말해왔다. 그렇기에 대미종속을 말하는 것 자체는 새롭지 않다. 흥미로운 것은 이 종속 사실이 감춰져 있고, 부인된다는 지점. 그것을 ‘온정주의적 망상’이라고 한다. 배려 예산이란 주일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가리키는 표현이고, 친구 작전이란 2011년 동일본대지진 당시 주일미군의 구조 및 지원활동을 가리키는 것으로, 당시에는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그후 미해군 항모 로널드 레이건호의 승무원 등의 피폭으로 소송이 벌어지기도 했다. 정상 간의 관계의 친밀함을 표현하는 것을 ‘미국은 일본을 사랑한다’는 명제로 연결시킨다. 그리고 이런 논의는 뒤에서 자세히 논의되는 천황과 신민 간의 관계를 이어받은 것이다. 2차 대전 전후의 세계에서 미국이 패권을 행사하는 것 자체는 놀라울 것이 없다. 그걸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그에 대해서 반응하는 방식은 제각기 다르게 마련인데. 일본을 사랑하는 미국이라는 이 논리는 기이하기 그지없다. 이건 한국의 전반적 정서와는 물론 다르고, 전반적 정서는 복잡하게 얽혀있으니까. 물론 한국 정부도 정상간의 이해와 신뢰를 강조하기는 한다. 광장에 성조기를 들고 나오는 아스팔트 우파들과도 다르다. 아스팔트 우파들이 한미동맹을 신성시하는 거야 잘알려져 있지만. 그것이 그 자체로 목적인지 아니면 정파적인 이해관계를 뒷받침하기 때문인지는. 이렇게 보면 한국과 일본의 차이는 보수 세력이 국가적 패권을 장악했는지의 여부인 건가.
‘천황과 미국’ 또는 ‘천황(전전)에서 미국(전후)으로’라는 관점은 직접적으로는 미일 안보 체제의 역사에 대한 통찰을 통해 …… 군사적인 동맹 관계를 의미하는 데 지나지 않은 것이 스스로 ‘국체화’하는 사태, 즉 전전 레짐 때의 천황제를 계승해서 국민의 정신에도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사태는 군사적 차원이나 협의의 정치적 차원에서는 일어날 수 없다. 이런 사태는 전후 일본인의 삶에 물질적인 것을 매개 삼아 문화적・정치적 차원으로 ‘미국적인 것’이 큰 파도처럼 유입되지 않았다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었을 것 …… 가나모리 도쿠지로金森徳次郎는 일본인에게 천황이 ‘동경憧憬의 중심’이라고 …… 풍요의 빛을 눈부시게 발산하는 아메리칸 웨이 오브 라이프American way of life를 중심으로 한 아메리카니즘 또한 전후 사회에서 ‘동경의 중심’이 …… [요시미 순야에 따르면] 모더니즘 그 자체인 미국이란 존재가 천황제에서 근본적인 구성요소로 기능 …… 근현대의 일본 사회에서 ‘근대화’는 늘 지상 명제였고, 그때의 ‘근대성’ 이미지를 참조할 만한 모델로서 미국이 대중문화를 중심으로 유력한 역할을 수행 …… ‘근대화의 기수’ 역할은 근대의 천황도 수행해 온 것 …… 천황은 ‘근대적 군주’로서 ‘근대인이 된 일본인’ 이미지를 앞장서서 체현하고 전파하는 역할 …… ‘근대화의 기수로서의 천황’과 ‘미국적인 것’이 대체하거나 교환할 수 있는 개념이라는 것.(82-84)
시라이 사토시는 한국어로도 번역된 오사와 마사치大沢真幸의 『전후의 사상공간』에서 논의의 틀을 가져온다. 오사와 마사치는 전전의 천황제를 메이지 시대의 ‘천황의 국민’, 다이쇼 시대의 ‘천황 없는 국민’, 쇼와 전기는 ‘국민의 천황’으로 나눈다.(71) 오사와의 이런 구분은 꽤 많은 사상가들에게 원용되어 왔다. 이를 근거로 시라이는 전후를 ‘미국의 일본’, ‘미국 없는 일본’, ‘일본의 미국’으로 구분한다. 책머리에는 연표도 제시되어 있다.(75, 8-11) 이 두 가지를 연결하는 매개를 구성하는 핵심고리는 ‘동경의 중심’과 ‘근대성’이다. 천황은 전통의 체현자인 것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근대 일본인’의 모델이고, 미국은 물론이다. 게다가 천황과 미국은 동시에 동경의 중심이다. 미국은 전후의 일본을 실제 지배했고, 헌법도 내려준 입법자lawgiver이고, 지금도 군사력을 주둔시킨 패권국가이자 여전히 대중문화를 통한 동경의 대상이라는 지적이다. 근대성과 동경의 중심이라는 점에서 한국을 보면, 일관되게 미국이었다. 중간에 일본이 끼어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구한말부터 미국은 동경의 중심이었다. 그리고 한국에는 국가신토가 아닌 기독교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 이건 내가 오랫동안 고민해온 주제인데. 그런데, 시라이 사토시의 연결방식을 그대로 가져올 수는 없는 것 같다. 한국에는 뭔가 다른 작동논리와 구성방식이 있다.
주목해야 할 것은 헌법 및 의회와 한데 묶여 반포된 1890년의 교육칙어教育勅語 …… 천황의 이름으로 반포된 교육칙어는 봉건시대를 살아온 국민에게 매우 친숙한 유교적 통속 도덕을 이용해 권리 주장 및 요구에 대한 고삐를 죄기 위한 목적으로 기획 …… ‘국체에 저촉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공인돼야 하는 것 …… 제약을 국민이 자발적으로 내면화하도록 유도하기 위한 장치(95) 한쪽에서는 헌법과 의회를 통해 입헌정체의 체재를 구축하면서, 다른 한쪽에서는 국민의 내면을 ‘천황의 국민’으로 만들어 규범의 통제에 복종시키려는 시도가 …… 국가의 제도와 국민의 내면이라는 양면의 정비를 통해 메이지 레짐은 불안정한 시기를 벗어나 확립 …… 메이지 유신에서 20여 년이 지난 이 무렵부터 근대 전반의 ‘국체’가 일단 확립.(97) 대일본제국 헌법 제28조는 “일본 신민은 안녕질서를 방해하지 않고, 또 신민으로서의 의무를 저버리지 않는 한 종교의 자유를 지닌다”고 규정해 ‘신앙의 자유’를 조건부로 국민의 권리로서 인정 …… 국가신토国家神道로 제도화된 국체 신앙은 공실적으로 국가 종교의 형태를 취하지 않았지만, 실질적으로는 모든 종교를 초월한 메타 신앙으로 기능하면서 일본인의 내면을 규제 …… 국가에 의한 강제 뿐 아니라 국민의 자발적인 복종에 의해서도 실현.(100) 국체론은 ‘국체와 정체의 구별’이라는 관념을 즉시 도입 …… 시대에 따라 지배하고 통치하는 정치적 형태(정체)는 변화했지만 정치의 차원을 초월한 권위자로서의 천황은 늘 변함없이 군림해왔다(국체)는 질서관이다. 실질적 ‘권력(정체)’과 정신적 ‘권위(국체)’가 나뉘어져 있다는 것 …… ‘정교분리’와 ‘제정일치’라는 두 방향이 동시에 존재했던 상황을 시마조노는 지적 …… ‘신민으로서의 의무’ 속에는 ‘국체라는 신권정치적 이념에 대한 지지’, 더 나아가 ‘국체에 대한 종교와 같은 신앙’이 명백하게 포함됐고, 또 그것은 훗날 ‘도리도 전략도 없는 전쟁 수행을 지지하고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할 의무’를 의미 …… 정교분리가 본래 보장해야 할 ‘종교의 자유’, ‘내면의 자유’는 완전히 사라지고 정치적 권력(군부)과 정신적 권위(천황)은 하나로 합쳐졌다.(102-103) 메이지 헌법에는 천황의 지위가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았다. 절대적 권력을 장악한 신성 황제인가, 아니면 입헌군주인가. …… 쓰루미 슌스케와 구노 오사무는 메이지 헌법 레짐이 엘리트들에게는 입헌군주제로 보였고, 대중에게는 신권정치체제로 보였으며, 전자에서는 메이지 헌법의 밀교적密敎的 측면이, 후자에서는 현교적顯敎的 측면이 각각 기능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쇼와 시대 군국주의 파시즘 체제의 출현은 신권정치체제의 측면이 입헌군주제의 측면을 삼켜버린 사태였다.(104-105) 메이지 헌법은 흠정欽定이었다. 다시 말해, 제헌 권력을 천황이 독점한다는 원칙 아래 발포된 헌법 …… 국가의 지도층은 헌법을 ‘국민에 대한 천황의 약속이요 서약’으로 보는 대신, “천황이 ‘황조황종皇祖皇宗의 신령’에게 허락을 구하고, 이어서 국민 쪽으로 돌아서서 증여하는 것”이라는 자세를 취했다. …… 정통성을 갖춘 권력의 원천이 천황에게만 있고 국민에게는 존재하지 않는 다는 것.(109) 사정은 교육칙어와 비슷 …… 문제는 칙어의 내용이 아니라 그 형식, 즉 국가원수가 국민이 지켜야 할 덕목을 직접 명령한다는 점.(109-110)
일본인이 아닌 이상 국체를 이해한다는 것이 늘 코끼리를 더듬는 것 같은 이유들이 꽤나 상세히 드러난다. 우선, 원래 양면성을 띄고 있다. 국체와 정체가 분리되는 것이 양면성이 아니다. 그건 차라리 근대적으로 보이는 외형이다. 양면성이란 국체와 정체는 분리되는 동시에 통합되어 있다는 점이다. 정교분리와 제정일치는 동시에 존재했다. 신앙의 자유와 그 제약도 동시에. 권리 주장과 그 제약을 자발적으로 내면화하는 것도 동시에 일어난다. 이런 식으로 논의를 따라가면 이것은 미셸 푸코가 훌륭하게 정식화해 낸, 주체화=예속화의 지식=권력 논의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아주 훌륭하게 근대적이라는 이야기인데. 그러나 여기서 이 모든 논의의 핵심은 메이지 헌법이 흠정 헌법이라는 점과 국민에게 도덕을 황제가 명한다는 점에 있다. 이 양면성은 이중성이라기 보다는 국체가 결국은 정체를 감싸고 있는 것, 정체는 국체의 한계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이며, 자율성을 가지는 것처럼 보이는 것이고. 정체는 국체의 완전한 꼭두각시는 아니지만, 시스템이 부분적 자율성을 인정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고 있을 때는 어느 정도의 자유를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위기에는 둘이 언제든 통합되어, 신권통치가 드러난다는 점이다. 그래서 기나긴 전쟁을 끝낼 수 있는 것은 천황 뿐이었다. 주체화하는 데, 그것이 예속화였던 것일 뿐 아니라 그 주체화 자체가 명령에 의한 것이었다. 명령권자는 물론 천황인 동시에 국체 그 자체다. 후쿠자와 유키치가 서 있는 자리도 딱 이정도라는 생각이 든다.
하기의 난 때 노기가 얻은 경험은 예전의 동지(노기의 경우는 친족까지)와 적으로 갈라지고 이를 토벌해야만 하는, 혁명에서 숙명적으로 잉태되는 비극 …… 노기를 비롯한 당대의 사람들은 천황이 바로 이 화해의 상징이 되어줄 거라고 기대 …… 혁명으로 흘린 모든 피에 대한 속죄를 할 수 있으려면 ‘천황의 정의’는 ‘부동의 진실’이어야 …… ‘이상적인 군인’을 노기가 어느 시점부터 연기하기 시작하고, 자살을 통해 그것을 완성 …… 그 연기는 ‘이상적인 충의’를 천황 쪽으로 향하게 함으로써 ‘천황의 정의’가 현실에서 ‘부동의 신실’이 되도록 부단히 요구하는 행위였는데, 그 행위를 노기에게 명한 것은 혁명을 위해 쓰러져간 자들이며, 나아가 노기의 명령으로 죽어간 병사들인 것이다.(116-117) 메이지 천황이 죽은 후 노기 마레스케乃木希典의 순사에 대한 설명도 인상적.
“나는 국민이 전쟁을 수행하면서 정치, 군사 양면에서 한 결정과 행동에 대한 모든 책임을 져야 할 자로서, 나 자신을 당신이 대표하는 국가들의 재결裁決에 맡기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 천황의 이 발언이 있었다고 가정할 때, …… 어떤 신화를 형성하게 됐는가 …… 거기에 ‘전후의 국체’를 구성하는 정치 신학의 원점이 숨어 있다.(123) 맥아더는 쇼와 천황의 고결한 인격을 이해하고 감동했다. 거기에서 신화가 시작된다. …… 맥아더가 천황의 고결함에 감명을 받았기 때문에 …… 천황에게 전쟁 책임이 없다는 것을 한층 더 강하게 확신했고, 천황은 소추의 대상에서 제외됐을 뿐만 아니라, 천황제의 존속도 인정받아 퇴위를 강요당하지도 않게 되었다, 라는 인상이 나중에 생겨났다.(124) 전후의 일본인들에게 이 신화를 믿고 싶다는 동기가 …… 천황의 고결함에 맥아더가 감동하고 경의를 품었다, 다시 말해 미국은 ‘일본의 마음日本の心’을 이해했다, 라는 이야기를 일본인들은 원했던 것이다. 그것이야 말로 전후의 일본인들이 헤어날 수 없었던 음울함을 멋지게 해소해주는 일이었기 때문이다.(125-126) 미국의 일본 점령은 놀랍도록 순조롭게 이뤄졌다. …… 천황이 일본 국민을 상대로 전쟁 종결 선언(옥음방송)을 했기 때문 …… 천황 자신이 “전쟁은 끝났다”라고 선언한 것 그 자체가 ‘귀축미영鬼畜美英’, ‘성전聖戰완수’, ‘일억 불덩어리’ 등등을 외쳤던 사람들로 하여금 돌연 모든 전투 의욕을 잃게 만들었다.(126) 기막힌 변절變節이 생긴 것이다. 8월 15일 이전에 한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려 한 일본인은 매우 드물었다. …… 패전 뒤 일본인은 현실에서 살아가기 위해서 ‘귀축’이라고까지 불렀던 적에게 저항은 커녕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수많은 동포를 죽인 적에게.(127) 그러나 역사의식의 저편, 무의식의 바닥 깊숙한 곳으로 내쫓긴 변절 문제야말로 ‘억압당한 것의 회귀’(프로이트)로서 강방적이고 반복적으로 영속 패전 레짐을 충동질했다. 바꿔 말하면 이것은 근원적 바탕으로서 레짐을 떠받치는 동시에, 레짐이 불합리한 행위를 하게끔 만드는 동력이 된 것이다. 왜냐하면, ‘천황을 이해하고 경애심을 지닌 미국’이라는 관념에 오늘날의 기괴하다고 밖에 할 수 없는 것으로 전락한, 일본의 대미 종속이 가진 특수성이 시작된 원점이 있기 때문이다. …… ‘미국이 우리나라를 사랑해주기 때문에 종속하는 것이다’따위의 관념을 품은 채 종속하고 있는 나라・국민은 …… 이 관념에 따라 현재 종속돼 있다는 사실이 정당화될 뿐 아니라 그 상태도 영속화된다. …… 사랑에 토대를 둔 종속이라면 그것은 종속이 아니다.(129-130)
맥아더 《회상록》에 등장한다는 히로히토 천황의 전쟁 책임을 인정했다는 말의 진위는 실은 의심스럽다. 시라이 사토시는 뒤에서 ‘말의 무늬’로 연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여튼 여기서 신화가 생겨났고, 신화의 핵심은 천황이 전쟁책임을 인정했다는 것이 아니고, 미국이 감동하고 감명받고, 경의를 품고 ‘일본의 마음’을 이해했다는 것. 미국이 일본을 사랑하고 경의를 표한다는 것. 사랑, 경애, 이해에 기반해 종속을 정당화하고, 종속을 감추는 관념은 그 자체로 봉건적이면서도 뒤틀리고 강박적인. 여기서 실제로 미국이 천황제를 유지하고, 괴뢰 천황으로 활용하려는 계획을 42-43년에 이미 세웠다는 점은 중요하지 않다. 이런 신화는 점령과 체제 변화를 순조롭게 이끌려는 미국에게 분명히 유용했지만, 일본인들에게 집단적이고 개별적으로 변절을 감행한 일본인들에게 일본에게, 미국이 일본의 마음, 심정을 이해한다는 신화는 중요하다. 천황이, 쇼군이, 다이묘가 또는 어떤 윗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 준다면, 어떤 괴로움과 굴욕도 견디고, 자신의 목숨은 물론 때론 자식의 목숨도 바친다. 그런 자신의 마음을 윗사람이 이해해 주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일본의 대중문화에서 너무나 자주 등장하는 코드라 설명이 필요할까 싶다. 가부키 같은 데서 너무나 흔히 등장하는 주제다. 주신구라忠臣蔵도. 어찌보면 너무나 어이없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마음을 알아준다는 이유로 모든 종속과 자기희생이나 자기학대를 감당해 내는 이들은 동시에 자신의 가족에게 또는 자신의 부하에게 내 마음을 알아달라는 식으로 억지를 부린다. 그런 것을 심정을 통한다고 또는 일본 말로 ‘속을 내보인다’고 하면서 자신의 결정을 따를 것을 강요하기도 한다. 내가 보기엔 ‘마음을 알아달라’는 말은 그저 응석甘え일 뿐이다. 특히나 윗사람의 ‘아마에’. 그리고 이런 ‘아마에’가 패전 이후 일본이 미국을 제외한 아시아 국가들을 대하는 가장 기본적 태도다. 왜 이런 ‘일본의 마음’을 알아주지 못하느냐는 것. 도대체 왜 ‘마음’을 알아주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말과 행동으로 보이면 될 일인데. 내 스스로도 여러가지 생각이 뒤섞여서. 봉건 일본의 주군-가신 관계의 중요한 코드인 마음, 근현대 일본에 사무라이적 가치관의 투영과 현대 일본인이 느끼는 일본의 마음이라는 가치, 천황과 일본인의 관계를 규정하는 코드. 이런 코드를 일본인이 아닌 일본의 식민지 또는 과거 일본의 식민지나 일본 보다 경제적으로 부유하지 못한 나라에 강요하려는 태도. 이런 여러가지 생각이 뒤섞인다. 시라이 사토시는 이 코드로 일본을 가신 또는 신민의 위치에 두고 미일관계를 해석하려는 것이고 꽤나 성공적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나는 여기서 한일관계로 변주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 그러면 당연히 악기의 줄도 활도 끊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식의 일본화된 정치신학-시라이 사토시는 자신의 해석을 일종의 정치신학으로 보는데 나도 동의한다, 이런 식의 자기정당화는 신학의 수법-을 한미관계에서도 활용가능한가에서는 쉽사리 동의도 반대도 못하겠다. 이걸 그대로 옮겨오는 것은 한국과 일본의 정치신학적 토양이 너무나 달라 무리라고 생각된다. 시라이 사토시가 말하는 것은 일본의 국가신토라는 신정전제주의적 정치신학이 구성하고 있는 천황제라는 신학적 구조의 가장 높은 위치를 미국이 차지하는 변형된 신학이라는 주장이기 때문. 그러나 한미관계를 신학적으로 정치신학으로 해석할 수 없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여기에는 근본주의 정치신학도 자유주의 정치신학도 등장할 수 있다. 정치신학도 주류적 신학 토양에 뿌리를 내릴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한국의 정치신학의 토양은 불교적인가 유교적인가 기독교적인가, 아니면 기불릭?
‘하느님을 받는 것은 지혜의 시작’(《구약성서》 잠언 1장 7절). …… ‘우리가 무엇에 지배당하고 있는지 알아야 비로소 지성이 작동하기 시작한다’는 것. …… 우리는 왠지 모르게 자신이 자유롭다고 믿고 있으나, 실은 전지전능한 신(주님)에 의해 완전히 지배당하고 있다. …… ‘주님의 의지를 알려고 하는’ 데서부터 지성 운동을 시작할 수 있다. …… ‘주님을 받드는’ 일을 하지 않으면 지혜는 시작되지 않는다. 우리가 무엇의 지배를 받고 있는지 의식하지 못하고 지배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계속 부인한다면, 영구히 지혜는 시작되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일본인의 정치의식・사회의식이 일반적으로 점점 유치해지고 있는 것(지적 열화劣化)의 근원이 여기에 있다. …… ‘국체’가 국민의 정치적 주체화를 방해한다. …… 일본의 전후 민주주의 체제는 지성의 발전과 자유를 향한 욕구에 대한 근본적인 부정 위에 성립돼 있다.(131-132) 시라이 사토시 자신의 주장으로 이끌어가려는 도입이지만, 흥미로워서 기록해 두었다.
일본인이 전후 미일 관계에 투영된 판타지에서 벗어나 실제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제대로 본다면, 거기에 있는 것은 애정이나 경의는 커녕 인종적 편견과 경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133) 일본통이었던 펠러스Bonner F. Fellers에게조차 천황제의 존속 그 자체는 어찌되든 상관없는 일이었다. 그저 원활한 점령을 위해 필요한 것이었을 뿐이다.(134-135) 전후 민주주의 개혁은 미일 합작의 덕이 크고, 또 불충분한 점이 있을지언정 숭고한 이념을 내건 프로젝트였다는, 주류를 차지해온 종래의 점령개혁관은 이제 도저히 유지될 수 없다. 민주주의 개혁 프로젝트의 이상주의 보다는 그것이 종래의 천황제, 즉 국체를 부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매우 자각적이고 적극적으로 국체를 유지・구제하려 했다는 사실의 의미가 지금은 압도적인 중요성을 띄고 있다. 미국은 그들의 경멸과 편견 속에서 국체를 구제하고 그것을 경의와 애정에 따른 행위라고 포장했다. …… 일본 또한 ‘전후 일본은 민주주의 국가로 재출발했다’는 판에 박힌 말에 따라 미국식 민주주의에 경의와 애착을 표하는 시늉을 하며 전후 민주주의가 썩어가는 것을 방치했고, 이를 통해 내심 그것에 대해 품었던 경멸과 혐오감을 만족시켜왔기 때문이다. …… 표면상의 경의와 애정, 그 진짜 동기인 경멸・편견・혐오를 미일이 상호 투사하는 과정이 ‘천황제 민주주의’ 성립 과정의 본질이다.(135)
사랑・경의・애정의 뒷편에 경멸・편견・혐오가 있다. 천황제가 양면적 이듯 정교분리와 제정일치가 양면적 이듯 그렇다. 게다가 이 양면성은 동시에 쌍방향이다. 미국과 일본의 엘리트가 서로 경멸하긴 마찬가지다. 사랑・경의・애정이 현교적이라면, 경멸・편견・혐오는 밀교적이다. 다만 미국의 대중은 여기 등장하지 않는데. 그건 뭐 어디까지나 무대는 일본이고, 일본의 정치체제를 구성하는 이야기니까.
포츠담선언 수락 조건을 둘러싼 연합국과의 협상에서 전쟁지도부는 ‘국체’개념을 객관화하는 일에 매달려야 했기 때문이다. …… 대일본제국의 공식 이데올로기에 의해 ‘국체’로 흡수됐던 ‘천손강림’이니 ‘3종의 신기’니 ‘만세일계’니 ‘만방무비’니, ‘현어신現御神’이니 ‘천양무궁天壌無窮’이니 하는 신화적 관념은 아무런 의미를 가질 수 없었다.(141) 실질적으로 ‘국체’를 의미하는 부분은 ‘the prerogatives of His Majesty as a sovereign ruler’이며, ‘천황이 가진 국가 통치의 대권’이라고 공식 번역돼 있다. 즉, ‘천황이 통치의 대권을 장악하는 국가 체제’가 ‘국체’이며, 포츠담선언 수락이 이를 ‘prejudice’하는(변경하는, 다만 ‘prejudice’라는 말은 ‘손상하다’는 의미가 강하다) 것을 의미한다면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이다.(142-143) 당시 외무성은 “항복 시점부터 천황 및 일본국 정부의 국가통치 권한은 항복 조항의 실시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조치를 집행할 연합군 최고사령관의 제한 아래에 두는 것으로 한다”라고 번역했다. 문제가 된 것은 ‘subject to’의 해석이었다. 육군은 통치의 권한이 연합군 최고사령관에게 ‘예속되는 것’이라고 번역했다.(143) 포츠담선언에 담긴 연합국의 점령 목적이 달성될(포츠담선언의 12항에서 말하는 ‘평화적 경향을 지니고 또한 책임 있는 정부가 수립될’) 때 점령도 끝나고, ‘최종적인 일본국 정치의 형태’는 일본 국민의 의사에 따라 결정될 것이기 때문에, 결국 이 부분은 연합국에게 ‘군주제의 폐지’를 강요할 의도가 없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그리고 일본인이 천황제의 폐지를 바랄 리 없다). 어전회의에서도 이 같은 주장이 우세해지면서 결국 포츠담선언 수락 쪽으로 최종 결단이 내려졌다. 그리하여 옥음 방송에서는 ‘국체호지’가 “짐은 이에 국체를 호지할 수 있고”라는 형태로 분명하게 선언될 수 있었던 것이다.(144-145) 거듭 지적해 왔듯이 전후 일본의 ‘주권의 제한(=피지배=자유의 제약)’의 특징은 그것이 가시화되지 않고 부인당한 데 있다. 도대체 무엇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었을까? 우리는 그 답을 ‘국체호지’에서 찾을 수 있다.(149) 신화적 함의가 제거되고 추출된 국체의 개념은 ‘천황이 가진 국가 통치의 대권’, ‘천황이 통치의 대권을 쥐는 국가 체제’였으며, 이것을 글자 그대로 읽으면 사실상 ‘전제군주제 국가’라는 정체政体를 뜻할 수밖에 없다.(150) 신화로 점철된 국체 개념을 객관화하면, 전제군주제라는 정체가 되고 만다. 결국 마지막 순간에 국체=정체로 압축된다. 이런 국체는 어떻게 호지護持될 수 있는가.
GHQ는 헌법을 제정하는 권력을 갖고 있으면서 동시에 정치적으로 필요하다면 헌법을 파괴할 수 있는 권력(헌법에 구속받지 않는 권력)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점령기의 주권을 둘러싼 논쟁에서 바로 이 부분이 애매해지고-더 직설적으로 말하면 언급하는 것이 기피되고- 무의식화된 것이다. …… 슈미트Carl Schmitt는 주권자란 “예외 상태에 관해 결단을 내리는 자”라고 정의한다. …… 그 과정에서 일본인들이 ‘새로운 민주주의적 법질서’를 획득했다는 겉모습에도 불구하고 실은 ‘국체’라는 구질서의 요체를 이루는 개념이 여전히 온존됐다. …… 슈미트가 말한 기독교 신학의 번안 역할을 수행한 것이 …… 일본인의 역사적 무의식, 즉 이미 알고 있던 역사의 패턴을 미증유의 상황인 현재에 적용하려는 태도였다.(155-156) [스나가와 판결은] 통치행위론을 원용함으로써 미일 안보조약에 관한 법적 분쟁에 대해서는 사법이 헌법 판단을 회피해야 한다는 판례를 만들어버렸기 때문이다. …… 일본의 법질서에는 일본국 헌법과 안보법 체계라는 ‘두 개의 법체계’(하세가와 마사야스)가 존재하게 됐고, 후자가 전자보다 우월한 구조가 확정되고 말았다. …… 점령이 공식적으로 종결된 뒤에도 포츠담선언 수락으로 성립된 주권 구조는 계속 이어졌다. 점령기의 ‘미국의 일본’이라는 구조는 점령기를 넘어서도 무제한으로 유지된다. 그것은 일본 쪽이 자발적으로 주권을 포기한 결과였다. 그 대가로 일본은 무엇을 얻었던가? 바로 ‘국체는 호지됐다’는 의제擬制였다. 미국, 더 단적으로 말해 맥아더는 미국 국내 및 다른 연합국들이 제기한 천황 소추 요구와 ‘위헌하기 짝이 없는 일본의 군주제를 폐절하라’는 요구로부터 천황을 지켜냈다.(158) 포츠담선언 수락에서 점령,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미일 안보조약을 통해서 주권을 포기하는 대가가 바로 국체호지였던 셈이다.(159) ‘국체는 호지됐는가 그렇지 않은가’라는 물음에 대한 답은 ‘양쪽 다 아니고, 양쪽 다 맞다’는 것이리라. 즉, 일종의 풀 모델 체인지가 이뤄진 것이다.(161) 이 통치 구조는 새 헌법(일본국 헌법)의 제정 과정에도 잘 드러난다. 새 헌법은 메이지 헌법에서 정한 헌법 개정 절차에 따라 개정됐다. 메이지 헌법을 변경할 수 있는 것은 천황뿐(대일본제국 헌법 제73조: 칙명으로써 의안을 제국의회의 논의에 부친다)이었기 때문에 쇼와 천황이 초안을 발의하고 최종적으로 재가해서 개정된 것이다. 그 과정은 명백히 구헌법과 다를 바 없는 흠정헌법이었다. 점령하에서는 헌법 제정의 실질적인 권력이 GHQ에 있었으나 그 형식적 행사 권한은 천황에게 맡겨져 있었다. 바꿔 말하면 국체의 정점을 차지한 GHQ(=연합국, 실질적으로 미국, 더 실질적으로는 맥아더)가 천황을 통해 주권을 행사하는 형태였다. 덧붙여, 형식적으로는 흠정헌법인 새 헌법은 내용적으로 주권재민(일본국 헌법 전문: 일본 국민은 (중략) 여기에 주권이 국민에게 있다는 것을 선언하고, 이 헌법을 확정한다)의 내용을 담은 민정헌법이다.(162-163) 구헌법하에서든 새 헌법하에서든 자신의 의향을 넌지시 이야기함으로써 통치 엘리트 집단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시사해줬다는 점에서, 천황의 근본적 역할은 달라지지 않았다. 또 그런 천황과 통치 엘리트 집단의 의사 조정・일치가 국체 이데올로기에서 말하는 ‘군민공치君民共治’의 실상이자 한계였다. 다만 천황 자신의 인식이 어찌됐든 종전부터 미일 안보 체제 성립에 이르는 체제 전반의 위기 과정에서 천황이 수행한 역할은 초헌법적인 것이었다.(167) 맥아더는 어떤 의미에서 ‘근황의 사勤皇の士’라 할 수 있지 않은가? …… 일본사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정권 교체기 때마다 새롭게 등장한 실력자와 기본의 천황 간에 이루어진 협력이다. 장차 권력을 손에 넣고자 하는 실력자는 권위의 원천인 천황을 폐하고 그 자신이 모든 권력과 권위를 독차지하는 대신, 어디까지나 천황의 조정이 설정한 관위官位를 획득함으로써 자신의 권력을 정당화하려 했다. 이런 구조에서 권력의 정통성은 늘 천황에 의해 독점됐으며, 따라서 권력을 획득하려는 자는 반드시 존황尊皇・근황勤皇을 공식적으로 내세울 수밖에 없었다. …… 맥아더가 ‘푸른 눈의 대군’이라 불린 것은 단순한 비유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대군大君’이란 에도 시대 때 막부가 정이대장군征夷大将軍의 대외적 칭호로 사용한 말이다.(168-169) 너무나도 무거운 전쟁 책임의 문제를 ‘말의 무늬’라고 한 데에는 일종의 과잉성이 느껴진다. 마치 ‘무슨 소릴 하는 거냐, 그런게 있을리 없지 않나’라고 말하는 것 같은. 왜냐하면 국체호지를 위해 미일이 합작해 만든 이야기는 ‘천황에게 전쟁 책임은 없다’는 정치적 결론으로 마무리됐기 때문이다.(172)
시라이 사토시의 이 해석은 칼 슈미트와 마루야마 마사오의 합작이다. 이 책에서 마루야마 마사오를 직접 언급하지 않지만, 일본사의 특징이나 일본인의 역사적 무의식 등의 언급은 말년의 마루야마가 매달렸고, 그 때문에 퇴행이라는 비난도 받았던 고층古層론 또는 집요저음執拗低音의 또 다른 해석이다. 정치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고층. 마쓰리고토의 구조에서 말한 정통성과 결정・집행권의 분리를 다시 설명하는 것이다. 시라이 사토시는 예외상태를 결정하는 자, 즉 주권자에 대한 칼 슈미트의 정치신학에 마루야마 마사오의 정치의식, 역사의 식의 고층론을 훌륭하게 배합해서, 히로히토 천황과 쇼군 맥아더의 관계와 상황극을 설명하고 있다. 풀 모델 체인지 든지 의제擬制 든지 천황제 국체는 호지됐다. 시라이 반복해서 사용하는 의제란 본질은 다르지만 법률적으로 동등하게 처리하는 것. 물론 실질적인 주권자는 아메리카 그리고 맥아더이고, 그 상태는 지금도 유지된다. 헌법 위에 안보법제가 있고, 이런 구조를 성립시키는 대가로 전쟁책임은 면제되고, 국체는 호지됐다. 이런 식의 논리라면, 안보법제를 헌법 안으로 통합하려는 아베 정권의 시도는 국체와 정체의 이중성 내지 양면성을 타파하려는 시도라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미국에서 독립하려는 것은 아니고. 이런 역사적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흠정헌법인 메이지 헌법의 절차에 따라 일본국 헌법이 성립되었다는 것일 것이다. 그 과정이 국체가 호지되었음을 확인하는 절차였다. 그렇기 때문에 한반도 침략과 강제병합은 이제 무효지만, 당시로서는 불법은 아니라고 강변하는 것이다. 그게 일본으로서는 국체에 관한 부분이기 때문에. 법적 정당화를 할 수는 없기 때문에 국제법이라는 모호한 언급에 매달리지만 본질은 국체호지인지도 모르겠다.
그[강화] 논쟁에는 전후 정치 논쟁의 원형이 드러나 있다. 이때 반체제 쪽에서 ‘대미 종속 일변도에서 벗어나 일본의 독자적인 국제적 입지를 모색・추구해야 한다’고 주장하면 권력 쪽에서 이를 ‘말도 안 되는 탁상공론’이라며 문전박대하는 패턴이 형성됐는데, 그 패턴은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185) 1960년 안보 투쟁이 국내 정치에 가져다준 결과는 다음과 같이 요약될 수 있다. ①대중의 대규모 직접행동을 통한 정치 참가가 당시의 정권을 퇴진으로 몰아갔다. ②그럼에도 자민당 지배는 흔들림이 없었다. …… 미일 안보 체제가 계속 강화되고 자민당 정권이 계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현행 헌법의 자주적 개정’ 강령을 자민당은 장기간에 걸쳐 실현하지 못했다는 사실이다. …… 이는 곧 미국이 미일 안보 체제를 토대로 일본의 국토를 군사 요새로서 안정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가능했지만, 일본의 군사력을 미군의 보조 전력으로 활용하는 데에는 강한 제약이 지속적으로 가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190-191) 요시모토吉本隆明가 볼 때 전후 민주주의에 성과가 있다면, 그것은 전쟁 체험과 패전 직후의 혼란기 경험을 통해 ‘천하 국가・공적인 것’의 기만성을 일본인이 철저히 인식하고 국가에 의해서건 당에 의해서건 ‘공공의 이익’이라는 이름 아래 동원되는 것을 단호히 거부했다는 점이다. 말하자면 ‘공적인 것에 대한 니힐리즘’이 전후 민주주의의 성과인 것이다.(193)
60년 안보투쟁을 거치는 과정에서 시라이 사토시는 요시모토 다카아키를 주목한다. 거기서 발견하는 것은 니힐리즘이다. 그것은 일본의 이 전후 체제가 가진 기묘한 균형점의 산물이기도 하다. 일본의 시민들은 헌법 개정, 다시 말해 재군비를 헌법적으로 합법화하는 것을 일관되게 반대해 왔다. 설령 그것이 미국의 요구일지라도. 그렇다고 정권을 반대편에게 맡기지는 않는다. 그러니까 현행 미일동맹의 틀 안에서, 소극적으로 참여하는 요시다 독트린을 계속 추종하는 셈이다. 60년 안보로 기시 수상이 퇴진한 점이나 아베가 결국 헌법개정에 실패하고 퇴진한 것을 보면, 외부에서 보기에는 잠정협정에 가까운 상태를 일본인들은 균형점으로 여기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바로 이 지점은 국제사회에 어떤 공적 참여도 하지 않아도 되는 그런 지점이기도 하다. 일본 국가에 의해서도, 자민당에 의해서도, 미국에 의해서도 동원되는 건 싫다는 주장이기도 하고.
당시의 여론은 압도적으로 사이고西郷隆盛에게 비판적이었다. 그런 가운데 다른 이들의 눈을 피해 쓴 후쿠자와의 주장은 국체가 형성돼 가는 과정에서 뒤집어 보면, 여전히 국체가 안정을 얻지 못하고 여러 잠재적 가능성이 남아 있던 시기에, 다양한 가능성이 단 하나의 필연성으로 강압적으로 수렴됨으로써 사회가 숨 쉴 틈 없이 조여지는 것에 대한 경고였다. 혁명정권이 혁명의 요소를 없애버리면 그것은 자기 갱신의 기회를 잃고 반드시 부패・타락한다. 그런 논리를 통해 후쿠자와는 메이지 국가의 모반인이 된 사이고를 옹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223-224) 전후에 요시모토 다카아키가 《전향론》에서 논했듯이, 그들은 자각적으로 거리를 뒀던 ‘대중의 실감’으로 회귀했다. 공식 이데올로기가 대중의 실감을 만들어내고, 대중의 실감이 공식 이데올로기를 떠받치는 국체의 순환 구조에서 이탈해 그것을 절단하는 것-이는 당연히 고립을 각오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이야말로 코뮤니스트(공산주의자)의 본분이겠지만, 스스로 이 순환 구조에 휩쓸려 들어가 국체의 포옹을 받기에 이르렀다.(246)
시라이 사토시는 고토쿠 슈스이 등이 처형당한 대역사건을 언급하면서, 사이고 다카모리가 주도한 세이난전쟁西南戦争이다. 사이고가 과연 주도한 것인지 아니면 어쩔 수 없이 응한 것인지는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후쿠자와 유키치가 이를 옹호한 내용을 끌어온다. 체제 내 저항세력, 체제 내 비판세력을 일소하지 않고 보호해야 한다는 그래서 혁명적 역동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들 이후에 천황제에 반기를 들고 대응할 수 있었던 것은 코민테른의 지도를 받는 마르크스주의자들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들도 ‘대중의 실감’을 언급하면서 천황제의 품에 안기고 만다. 옥중에서 대대적으로 이루어진 전향은 국체의 승리로 이어진다. 그 결과 천황에 파시즘.
천황제 파시즘=쇼와의 초국가주의는 ‘천황제하의 적자’라는 것 외에 모든 속성을 박탈당한, 즉 원자화된 고독한 ‘익명의 인간’이 ‘천황과의 일체화’라는 관념을 지렛대로 삼아 격렬한 행동에 이르는 현상을 야기했다. …… 이윽고 그것은 2・26사건이라는 ‘통일’된 형태로 발현됐다.(247-248) 일본 쇼와 시대 파시즘은 독일 및 이탈리아의 그것과는 그 내실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가장 중요한 차이는 명확한 파시즘 혁명과 같은 것 없이, 기존의 국체 이데올로기가 그대로 강화되어 초국가주의로 전개됐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쇼와 시대의 파시즘은 “말하자면 조금씩 진행된 초국가주의화”였다는 평가를 종종받는다. 그러나 ‘국체’ 관념의 사회적 기능은 …… 일종의 변증법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전개・변형을 거쳐왔다. 그 최종 형태인 ‘국민의 천화’을 실현시키려(고 실행자들은 의도했)던 시도 중에 최대 규모로 터진 것이 2・26사건이었다.(253) 이소베 아사이치의 광기 넘치는 텍스트는 나중에 미시마 유키오마저 매료시킨다. 미시마의 말에 따르면, 이소베가 ‘가장 충량한 천황의 신하’에서 ‘국체에 대한 반역자’로 변한 것은 국체 개념 자체에 내포된 이중성 때문이었다. …… 메이지 헌법의 ‘천황기관설 국체’와 ‘천황주권설 국체’다. 전자는 국가를 기구적 측면에서 바라볼 때 드러나는 것이고, 후자는 미시마의 말을 빌리면 ‘도의道義 국가로서의 의제擬制’다. 구노 오사무와 쓰루미 슌스케는 전자를 대일본제국 엘리트를 겨냥한 ‘밀교密敎’, 후자를 대중을 향한 ‘현교顯敎’라고 불렀다. 메이지 헌법 레짐은 그 이중성의 절묘한 균형 위에 서 있었는데, 세계 대공황과 대외 위기 등의 사회적 모순이 심화되는 가운데 현교(천황주권설 국체)가 밀교(천황기관설 국체)를 찍어 누르는 사태가 벌어진다. …… 그 결과 다시 신성화된 국체는 ’도의’의 이름으로(대동아공영권, 팔굉일우) 무모하기 짝이 없는 전쟁을 결행해서 파멸하게 된다.(256-257) ‘천황과 거리가 가까운 것’이 국체의 ‘도의’의 원천인 것이다. 청년 장교들은 자신들이야말로 가장 훌륭하게 ‘국체의 본의’를 체현하는 자라고 주관적으로 규정했지만, 실제로는 그 원리에 정면으로 적대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국체의 체현자인 쇼와 천황은 결연히 진압을 명했다. 그의 명령엔 우유부단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2・26 사건은 국민이, 때에 따라서는 ‘충의’의 이름으로 천황과 관련이 없는 곳에서 ‘도의’를 세우고, 거기에 기초해서 행동할 있다는 바꿔 말하면 주체성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천황이 몹시 혐오하면서 피하려 했던 것이 바로 그런 사태가 아니었을까.(260)
시라이 사토시는 2・26 사건을 상세하게 논하는데, 다른 사람들의 주장과 초점이 다르다. 이 사건으로 일본은 군부가 실권을 잡고 군국주의로 내달리고 전쟁으로 달려간다. 그러나 천황제의 관점에서 봤을 때, ‘국민의 천황’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실패했다는 것이다. 국민의 민의의 총체로서 형성된 이념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천황이라는 이념은 국민의 바다 위에 천황이 떠 있을 수 있는 가능성을 모색한다. 그러나 실제로 쇼와 천황은 이를 결연히 거부하고 이를 진압했다. 어디까지나 자신만이 주권자로 남아있겠다고 하는 강력한 의사표현인 셈이다. 훗날 자기정당화하는 회고록도 인용되는데, 핵심은 일본의 천황제가 국가 이념으로서의 국민주권을 구현하는 천황제로 전환되지 않고, 어디까지나 전제군주제로 군주 개인을 중심으로 한 국체로 남았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전후 일본은 공화주의로 넘어가지도 않고, 천황을 교체하지도 않고, 현재와 같은 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상한 것은 일본의 자본이 이익을 추구하지 않았다는 것만이 아니다. 일본의 정치와 경제는 이익을 올리는 데 실패한 것에서 그치지 않았다. 이들은 전후 일본의 정치경제적 이익을 떠받쳐준 구조를 자진해서 파괴했다. 그 구조란 물론 동서 냉전 구조였다. 레이건 정권의 냉전 재가동 정책은 소련을 다시금 군비 확장 경쟁으로 몰아가 붕괴를 유도했는데, 이때 미국의 재정적인 뒷받침을 해준 나라가 다름 아닌 일본이었다. 공산권과의 대결이라는 큰 틀의 구조가 있었기에 미국은 일본을 비호해야 했고, 일본 역시 그 구조 아래서 대미 종속을 통해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바로 이 구조를 파괴하는 일에 일본은 적극적으로 가담함으로써 ‘공산주의를 최종적으로 타파한 위대한 미국’을 실현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즉, ‘위대한 미국의 회복’이라는 관념을 40년 가까운 세월에 걸쳐 미국이 마음대로 갖고 놀 수 있게 만든 요인-적어도 그 일부-은 일본의 자기희생적 헌신이었다. 우리는 여기서 ‘국체의 변증법’을 찾아볼 수 있다. ‘전전의 국체’는 ‘천황의 국민’에서 ‘천황 없는 국민’을 거쳐 ‘국민의 천황’이라는 관념에 이르렀는데, 마찬가지로 ‘전후의 국체’는 ‘미국의 일본’에서 ‘미국 없는 일본’을 거쳐 ‘일본의 미국’에 이르렀다. 다시 말해 ‘일본의 도움으로 계속 위대한 미국’을 만들어낸 것이다.(275-276)
일본이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스스로 알고 배를 가른 것은 아닐테고. 일종의 결과론이다. 다소 억지스러워 보이는 이 논리는 왜 전후 국체가 ‘일본의 미국’이라는 논리로 가는지. 일견 말장난 처럼 보이지만, 국민의 천황이란 국민과 천황이 사실상 하나가 되어서, 국민의 도의가 천황의 도의가 되는 구조라고 말한다면, 일본의 미국이란 일본과 미국이 사실상 하나가 되어서 일본의 행동이 사실상 미국을 위한 행동이자 때로는 필요하자면 자기 희생으로 미국을 일으켜 세우는 길로 간다는 주장이다. 다소 억지스러운 주장이다만. 이 논리를 따라가면 지금의 일본 정권, 아베와 그 뒤를 이은 스가 정권은 확실히 냉전이 일본의 이익이라는 것을 마음 속 깊이 깨달은 것 같다. 대두되고 있는 미-중 갈등에서 확실히 미국 편에 서서 냉전의 꿀을 빨던 시기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인다. 문제는 갈등은 갈등이되, 양상은 과거와 다르다는 데 있지만.
대미 종속 현상을 합리화하려는 이런 언설들은 단 하나의 진실한 결론에 도달하는 것을 막기 위한 쓸데없는 잡담일 뿐이다. 그리고 그 하나의 결론이란 실로 단순하다. 일본은 독립국이 아니며, 독립국이고자 하는 의지조차 갖고 있지 않은데, 심지어 이러한 현실을 부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284) 왜 이런 비참한 결과가 초래됐는가? 그것은 합리적인 친미 보수가 ‘어리석은 우익’을 끝내 숙청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이는 ‘전후 보수’가 자신들을 ‘전전 보수’로부터 격리시켜야 할 결정적인 차이를 자각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이러한 무자각 상태는 ‘전전 보수’와 ‘전후 보수’ 사이에 명확한 차이가 있다는 고야마의 시각과 달리, 오히려 양자가 이음매없이 매끄럽게 연결돼 있음을 시사한다. 그리고 그 연결의 핵심은 지금까지 논해왔던 ‘국체호지’다. ‘전전 보수’는 ‘전전의 국체’를 무비판으로 긍정(=국체는 완전하다는 관념적 국체호지)했다. 한편, ‘전후 보수’는 대미 종속 노선을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유일한 선택이라 믿으면서도, 그것이 실은 ‘국체의 재편성’으로 선택된 것이고 이는 ‘전후 국체’로 이어졌다(=미국을 매개로 한 국체호지)는 사실의 의미를 생각하지 않았다.(287) 이 완전한 노예의 사고회로는 인간이 자유로운 사고와 의사에 따라 친미 보수 정권을 비판하고 행동할 수 있다는 현실을 이해할 수 없다. 따라서 그런 현실을 자신이 갖고 있는 잣대에 맞춰 이해하려는 것이다. …… 물론 여기에는 인종주의도 얽혀 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과 미일 안보조약을 총지휘하는 역할을 맡았던, 나중에 미국 국무장관이 된 존 포스터 덜레스는 전후 대일지배의 요점을 ‘메이지유신 이래 형성돼 온 미국과 유럽을 향한 일본인의 콤플렉스(열등감)과 아시아 민족들에 대한 인종주의를 이용하는 것’으로 봤다. 즉, 미국과 유럽의 반열에 들고 싶다는 콤플렉스, 아시아에서 오직 자신들만이 근대인이라는 차별 감정을 잘만 활용하면 일본인은 미국에 종속되는 한편 아시아에서 계속 고립될 것이라고 덜레스는 내다봤던 것이다. …… 미국이 전후 일본인에게 준 정치적 이데올로기의 핵심은 자유주의도 민주주의도 아닌, ‘다른 아시아인들을 차별할 권리’였을 뿐이다. 그리고 현재 ‘미국과 일본의 반열에 든다’는 소원은 일본 자본이 대미 진출을 기도했던 거품경제 호황기에 미국의 인종주의 현실 앞에서 좌절당했으며, 자국의 경제적 쇠퇴와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의 대두로 ‘아시아 유일의 일등국’이라는 관념 또한 무참할 정도로 근거 없는 것이 돼버렸다. 그 결과가 앞서 살펴본 일종의 집단적 발광이다. 발광하는 노예라는 게 얼마나 역겨운 존재인지 일본인은 날마다 증명하고 있다.(289-290) 미군의 글로벌한 전쟁 수행, 그로 인한 격심한 비판과 증오의 환기라는 점에서,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인정하든 않든 우리는 이미 충분히 미군의 공범이다. 즉, 헌법 9조는 실질적으로 우리를 평화주의자일 수 없게 만들고 있다.(295)
발광하는 노예라니 독설도 이런 독설이 없지만, 같은 무리들은 이 땅에서도 보고 있자니 마냥 부인할 수만은 없어 보인다. 일본과 한국의 차이라면, 일본은 어리석은 우익이 정권을 장악했고, 한국은 합리적인 친미 보수가 정권을 장악하고 있다는 차이랄까. 전후 시스템의 변경, 다시 말해 한반도 평화가 자신의 이익구조를 해진다고 일본이 생각하는 것이나, 국내의 우익들이 생각하는 것이나 어찌보면 당연해 보이기는 한다. 하지만 분단과 이로 인한 대치 상태에 있는 한반도에서 냉전 체제를 보는 관점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일본에게 냉전이 주는 이익이란 일본에 주둔한 미국의 해공군과 한국에 주둔한 미군과 징병제로 가동되는 한국 군대가 일본을 지켜주는 한에서 작동되는 것이다. 일본이 치르는 대가와 한국의 치르는 대가는 결코 대등하지 않다. 그러나 동시에 한반도 냉전구조의 해체란 미국에 더 큰 이익이 되는 해체가 아닌 한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다. 적어도 해체되는 그 순간에서 볼 때. 예를 들면 미-중 갈등의 경계선이 휴전선이 아닌 압록강과 두만강에 그어지는 것 같은. 북한 정치세력의 변동을 가져오지 않은 상태에서 일지라도. 그리고 인종주의와 아시아 국가에 대한 차별이라면, 일본에 비해 하등 잘난 것 없는 한국인들은 과연 노예 상태를 벗어날 수 있으며,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르고 자유를 구가할 수 있을까. 어느 정도의 대가가 과연 적정할 것인지. 요즘 미중관계의 악화를 보면서 익숙한 냉전으로 되돌아가자고 외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게 그럴 가치가 있는 일인지 나는 모르겠다. 그런 이익을 줄지도 모르겠고.
사회의 주요한 생산양식이 떠받쳐주지 않더라도 근대 일본에서 ‘천황제적인 것’은 충분히 기능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적어도 우리에게 친근한 천황제란 고대적 의장(意匠, 디자인)을 갖춘 근대적 구축물이며, 천황이란 존재 자체 및 천황제라는 통치 구조가 좋고 나쁨과는 상관없이 근대화를 의도해서 만든 장치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전후에 아메리카니즘과 천황 사이에 대체 가능성이 생겨났고, 아메리카니즘은 우리를 둘러싼 물질적 생황에서 그야말로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에’ 깃든 것이 될 수 있었다.(302) 영속 패전 레짐을 무한 연명시키고자 하는 세력의 입장에서 보자면 한반도 유사 사태 발생은 모든 현안을 해결해준다. 재일 미군 기지를 향한 공격은 일본 본토에 대한 공격이기도 해서 자위권을 발동할 수 있으므로 이때 동원된 일본군은 직접적 전투행위에서 굳이 물러서 있을 필요가 없다. 그것이 바로 미국이 오랜 세월에 걸쳐 일본이 해주기를 바라던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유사 사태 때 자위대는 미군의 지휘 아래로 들어간다는 지휘권 밀약은 공공연한 것으로 바뀔 것이다. 충돌에 이를 경우 그 뒤의 북한 체제가 어떻게 될 것인지는 여러 경우를 생각할 수 있겠으나, 어떤 경우든 대규모의 복구 수요가 한반도에서 발생할 것이다. 전쟁 자체에 의한 수요와 더불어 아베노믹스라는 가짜 처방전으로 위험을 증폭시킨 일본 자본주의를 그 수요가 구원해줄 수 있을 것이다. ‘헌법 9조와 자위대’ 문제도 깨끗이 해소된다.(313) 여기서[존 다워] 이야기하는 ‘낡은 잔존물’이란 천황제를 가리킨다. 즉, 천황을 ‘대원수’에서 ‘평화국가 신일본 건설의 선도자’로 변신시킴으로서 일본인의 천황 숭배 내셔널리즘의 알맹이를 군국주의에서 평화주의로 교체할 수 있다는 것이 맥아더의 비전이었다고 다워는 해석했다. …… 그런 평가를 내릴 때 간과되는 것은 전후 민주주의가 ‘천황제 민주주의’라면, 그와 마찬가지로 전후 평화주의 역시 ‘천황제 평화주의’일 뿐이라는 점이다. …… 오늘날 ‘천황제 평화주의’란 ‘미국의 평화주의’ 또는 ‘미국류의 평화주의’나 다름없다.(316) ‘전후 국체’ 말기인 현재 드러난 것은 ‘전후 일본의 평화주의’=’적극적 평화주의’=’미국의 군사전략과의 일체화(실질적으로는 자위대가 미군의 완전한 보조 전력이 되는 것, 나아가 일본 전토를 미국의 방패막이로 만드는 것)’이란느 도식이다.(318) 그 사태[‘말씀’]가 역설적으로 보이는 것은, 눈앞에 펼쳐진 사건이 ‘천황의 천황제 비판’이기 때문이다. ‘상징’을 통한 국민 통합 작용이 거듭 언급됨으로써 우리는 스스로에게 묻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미국을 사실상의 천황으로 떠받드는 국체에서 일본인은 영적 일체성을 정말로 유지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320)
여기까지 오자, 시라이 사토시가 왜 아키히토 전 천황의 ‘말씀’으로 이 책을 시작하고 또 마치는지 조금 이해할 것 같았다. 그러나 마음 한 구석에는 두려움이 들었다. 시라이 사토시 같은 레닌주의자 조차 천황에 의해서만 설득력있는 천황제 비판이 가능한 것인가. 혹시 앞에서 말한 ‘국민의 천황’과 같은 미국으로부터 독립한 일본의 천황제가 재구축된다면, 시라이 사토시는 전향하지 않을 것인가. 나는 왜 이글에서 시라이 사토시의 전향을 의심하게 된 것인지, 이유를 꼬집을 수 없지만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시라이 사토시 마저도 그 안에서 말할 수밖에 없다면. 맥아더가 쇼군이든 아메리카가 천황이든, 천황없는 일본을 상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인 모양이다.
2020. 10. 4.
* 괄호 안의 숫자는 번역서의 쪽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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