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표는 사막여우의 블로그에서. 한국어판에 실린 도표는 영어가 병기되어 있어 도움은 되나, 도표 자체가 구조를 이해하기 쉽지 않게 되어있다. 워드프로세서로 도표를 그릴 때 흔히 발생하는 현상이랄까. 두 개의 도표 뿐 아니라 사막여우의 블로그에 올라온 번역문을 많이 참고했다. 종종 참고하는 블로그다. 둘을 비교하여 보면서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다. 늘 그렇듯 여기서도 일본어표기법은 국립국어원의 외래어표기법을 따라서 고쳐서 적었고, 일본어 어구의 경우 가급적 일본식 한자어를 찾아넣었다. 검색과 비교의 편의를 위해서다. 원문을 구하기 어려워서 이번에는 참고하지 못했는데. 구해서 확인해 보고 싶은 곳이 몇 군데 있었다.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真男, 「마쓰리고토政事의 구조: 정치의식의 집요저음執拗低音basso ostinato(政事の構造:政治意識の執拗低音)」, 김영국, 이강굉, 김영수 역, 『한국동양정치사상사연구』, 2005.
마루야마 마사오의 마쓰리고토의 구조가 이번에 처음 소개된 것은 아니다. 1994년 1월에 일본 『現代思想』 특집호(본래는 1984년 『百華』)에 실린 것을 역주했다고 하지만, 1970년대 후반부터 일본과 미국 등지에서 The Structure of Matsurigoto라는 제목으로 발표된 바 있다. 국내에도 공적으로 사적으로 여러 번역문들이 돌아다니고 공개되어 있다. 이글도 서울대 현대사상강좌로 1997년에 번역된 것을 교열 하고 역주를 거친 것이라고 하니, 내용이 아주 생소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역시 또 이해하기가 쉽지도 않다. 마루야마의 글이 원래 그렇다. 마루야마 스스로가 이 글에 대한 서론이 『일본문화의 숨은 형』(209)에 실려있다고 하니 참고하면 되겠다. 이 글은 정치의식에 대한 것이고, 역사의식에 대한 글과 윤리의식에 대한 글로 3부작을 형성한다. 역사의식에 대한 글은 한국어로도 번역된 『충성과 반역』에 실려 있고, 윤리의식에 대한 글은 한국어로는 나오지 않았지만, Some Aspects of Moral Consciousness in Japan이라는 글로 미국 체류 중에 프린스턴과 하버드에서 발표한 원고가 공개되어 있다.
마루야마의 가설은 일본사상사 좁게는 일본정치사상사에 무엇인가 반복되어서 나타나는 틀이 있지 않은가, 이 틀을 세계상, 역사의식, 윤리의식, 정치의식으로 보는 것이다. 일본에서 교의나 이데올로기는 거의 외래사상이다. 유교, 불교, 기독교, 리버럴리즘, 데모크라시, 마르크스주의까지. 일본에는 외래사상 콤플렉스가 있고, 이에 대한 반동으로 일본적 세계관 또는 토착적 사상을 탐구하려고 시도했으며, 에도 시대 중기 이후의 국학国学이 그것이다.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 등이다. 일본은 ‘안’과 ‘밖’의 구별에 민감하기 때문에, 외래사상 콤플렉스도 나름의 역사적 사정이 있어, 1930대의 일본주의나 일본정신을 강조하는 경향도 이런 것의 한 변종이다.(209-210) 전시중 일본정신론의 쇠퇴가 패전의 결과인 것 같지만, 일본적 세계관이나 일본적 정신을 하나의 교의로서 찾으려는 시도는 에도시대의 국학을 비롯해 모두 실패했다. 난학도 이데올로기로서는 실패했다. 동시에 주자학이든 리버럴리즘이든 데모크라시든 일본에 들어오면 변형된다. 순일본적 세계를 추구하는 것이나 외래사상의 일탈로 보는 두 가지 모두 생산적이지 않다.(210-211) 음악으로 비유하면 주선율은 외래사상이지만, basso ostinato 즉, 집요하게 반복되는 저음의 음형이 있어 주선율과 혼합되기에 다르게 울리게 된다. 일본사상사는 외래사상 수정의 역사다. 밖에서 들어온 세계관이나 교의를 수정한무엇, 그것을 집요하게 반복하는 음형이다. 일본의 정치의식의 집요저음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211) 일단 여기까지는 지금까지 나온 이야기의 요약이다.
마쓰리고토는 우선 위의 도식政事の図式을 참고해야 한다. 마쓰리고토マツリゴト라는 가타가나 표기에 政事라고 한자로 표기한다. 간결하게 보기에는 위의 도식이 좋으며, 한국어번역판에는 영문이 명기된 도표가 첨부되어 있으니 참고해도 좋다. 현재는 政治라는 한자를 쓴다. 이 패러다임의 기초는 율령체제의 확립에 의해 명확한 형태를 취한 일본고대 천황제국가이다. 메이지 유신 처럼 외국의 법, 정치, 경제 체계를 대규모로 섭취하여 국가 체제를 크게 개조한 시기이다. 유럽이 아닌 당의 제도를 충실하게 모방하고 있어, 일본사에 있어 ‘정치문화’의 변용패턴을 잘 꿰뚫어 볼 수 있다.(212) 한자는 음성적phonetic하게 사용하는 동시에 표의문자로도ideographic, 즉 표의어로도 사용된다. 일본어에서의 훈독이다. 원래 있던 야마토(고대일본)의 언어를 비슷한 한어(한자어)에 끼워맞추는 것이다. 새로운 한어가 음독되어 표의문자로 일본어화하기도 한다. 추상어의 경우다. 정치용어에 한해서 한어를 표의문자로 대규모로 사용한다. 그러나 대규모로 당제를 수입하고, 당제의 법・정치 용어가 유입되어 이를 훈독함으로써 바소 오스티나토가 이 단계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율령체제의 확립이 정치의 세계에서 일종의 문화변용의 실험장이다.(212) 『고사기』를 비롯한 각종 고대문헌을 기초로 삼는데, 표의문자로서의 한어로는 원래의 일본어를 표현할 수 없다고 편찬자가 판단할 경우 의식적으로 한자를 표음문자로 사용하거나 본래의 중국어와 맞지 않을 것 같은 한어적 표현을 조어하고 있다. 이런데서 집요저음을 찾는다. 『속일본기』의 경우는 조칙의 일종인 宣命에 주목해야 한다. 이것은 한자를 사용하면서도 야마토의 언어로 쓰기 때문.(213) 읽는 방법은 『고사기』의 경우는 노리나가의 읽기가 비판할 점이 많지만, 획기적이며, 크게 의존한다. 『서기』의 경우 궁중강독의 전통이 있다. 노리나가는 『고사기』가 가라고코로 즉 이데올로기 오염이 적다고 하지만, 마루야마는 『고사기』는 천황가의 정통성을 변증하려는 계기가 강하고, 『서기』는 정사이기 때문에 야마토 국가의 이데올로기적 기초 확립이 더 앞에 내세워지는 차이가 있다고 본다.(213)
집요저음을 어떻게 찾는가? 마루야마는 우선, 언어에서 찾는다. 정치언어에서 발견해 내는 것이다. 고대일본에서도 한어를 사용하고, 한문으로 글을 적었지만, 그 내용상 야마토 언어를 적은 것들이 있었다. 한문이지만, 완전한 일본어라는 것이다. 이런 구조가 있는데다. 일시에 대규모로 중국의 제도를 받아들여, 일본이 율령제 국가로 변화한다. 이때, 수많은 정치, 법률 용어가 들어오는데, 용어는 같지만, 내용은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이때 어떤 식으로 다르게 변화하는가가 마루야마가 보려는 초점이다. 한자의 사용에서 훈독을 하는 지점을 찾아내는 것이다. 여기 흥미로운 지점이 하나 더 있다. 일본의 율령제 국가의 성립은 첫번째 조선 침공과도 관련이 있다. 다이카 개신은 646년. 그로부터 17년 후인 663년 일본은 대군을 보내 백제부흥군과 함께 나당연합군을 공격한다. 이른바 백강전투다. 일본에서는 이를 백촌강전투百村江の戦い라고 한다. 여기서 대패하고, 돌아간 후, 701년 경 일본은 왜라는 국호를 일본으로 바꾸고 다른 나라라고 선언하게 된다. 다이카 개신은 646년 단 한번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수십년의 기간 동안 전개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660년 백제 멸망 후 구원 요청을 받아 대규모의 해외파병을 하지만, 실패하고, 그 충격으로 대내 개혁을 가속화시킨다. 어쩐지 메이지 유신이 성공적으로 전개되어가자 제일 먼저 고려한 것은 역시 조선침공이다.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결과 조선을 식민지화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정권을 잡고 정국을 안정시킨 후 조선을 침공한 것도 마찬가지고. 일본은 국내에서 대규모 개혁을 실시하면 한반도를 침략하는 전통이라도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일본에서 マツリゴト마쓰리고토政事는 마쓰리고토祭事다. 제사와 정사의 훈독이 일치한다. 그래서 일본의 국체国体는 제정일치라는 해석이 예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실은 어떤 역사적 시기 이후의 산물이다. 앞서의 고문헌에는 ‘제사’라는 말이 등장하지 않고, 헤이안시대에 처음 등장한다. 『기기』에서 제사는 イハイゴト, イミゴト, イツキゴト로 한자로는 齋事, 忌事 등이지 祭事가 아니다. 祭가 단독으로 동사로 등장해도 훈독은 イハイミツル나 イツキミツル다. 이 말이 종교적 의미를 가지는 것은 イハフ(祝う, 기원하다, 빌다), イツク(齋(斎)く, 신을 받들다), イム(忌む, 꺼리다)의 수준에 있는 것이지, マツル(祭る, 제사 지내다)의 수준에 있는 것이 아니다. イツキゴト와 イミゴト는 훈독이 마쓰리고토政事와 일치하지 않는다. イツク(이쓰쿠)란 야마토의 옛말로 『고사기』에서도 몇 군데에서 伊都久라고 음독하려고 주를 달아 놓기도 했다. 한편 マツル(마쓰루)도 『만엽집』 도요미키마쓰루豊御酒まつる라는 표현에서 보이듯, 연회에서 술 한 잔을 바친다는 의미이다.(214)
따라가기에 다소 숨이 가쁘다. 여기서 마루야마 마사오는 집요저음을 찾아가는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야마토 언어를 어떻게 표기할 것인가? 한자어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의 차원에서 수많은 수용과 변용이 있었던 것이 틀림없다. 야마토 언어를 한자의 음독으로 표기하다가 한자의 훈독으로 바꾸는 경우도 등장하고, 이때 의미가 변화하거나 추가되는 것도 분명하다. 앞에 표시하지 않았지만, イハイ는 분명 いわい로도 읽을 것이다. 그러니 イハフ는 祝(いわ)う가 된다. 하로 쓰고 와로 읽는 경우를 다른 곳에서도 본적이 있다. 이런 읽기가 엄청나게 복잡해 보이지만, 고대 국어 읽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신라 향가나 고려 가요의 독법이 이런 식이다.
마쓰리고토政事=마쓰리고토祭事가 훈독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마루야마 만의 도그마가 아니며, 노리나가가 『고사기전』에서 분명하게 지적했다.(18권) 마쓰루의 본래의 뜻에 대한 노리나가의 생각이 모두 정확하다고는 할 수 없으나 제사=정사라는 통설의 등식을 부정한 것만은 타당하다. 가라고코로를 배격하는 노리나가가 말한다. 정사라는 말의 유래는 제사가 아니라 奉仕事(マツリゴト)일 것이다. 천하의 오미臣・무라지連 등 百僚가 천황의 대명을 받들어 각자의 직무에 奉仕하는 것이 천하의 정政이다. 천황이 신에게 奉仕하는 것도 마쓰리고토이므로 같은 뜻이지만, 제사에 관한 일이 아니라 오미・무라지 등이 천황에게 奉仕하는 것을 칭하는 것이며, 고어에서 政는 임금君과 관계가 없고, 모두 奉仕하는 사람에 관한 것이다. 政事를 할 때의 주어는 君, 그러니까 주군 또는 임금(천황)이 아니라 오미・무라지를 가리킨다는 것이 노리나가의 해석이다. 국학도 후세에 히라타 아쓰타네平田篤胤에 의해 神学으로 이데올로기로 발전하게 되자, 다시 제사=정사설이 부상하게 된다. 노리나가는 고어의 용법을 충실하게 재현하려는 것이다. 정사가 제사라는 어원적 근거에서 추측하여 제정일치를 이론의 정치적 전통으로 간주하는 생각은 기타바타케 지카후사北畠親房의 『신황정통기』에 있고, 이세신도 전으로 올라가지는 않을 것이다. 이세 신도 또는 와타라이渡会 신도는 가마쿠라 시대 초기 외궁의 신관인 와타라이가 내궁에 대해 외궁의 지위를 향상시키려는 동기에서 만들어낸 신학이며, 기타바타케의 신도는 교의상 여기서 나온 것으로 이데올로기 중심이기에 정사=제사설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 일본 신의 제사는 행사가 중심이며, 경전은 없으므로, 신도의 교의를 만들려면, 유불의 세계관에 의존하게 된다. 외래 이데올로기와의 습합을 배격한 노리나가는 신도의 도道조차 유불의 영향으로 보기에, 정사에 대해서도 교의신도와 같은 어의적 해석을 배척해도 이상하지 않다.((214-215)
마루야마는 여기서 노리나가를 불러온다. 政事를 해석할 때, 가장 오래된 문헌인 『고사기』를 근거하면서 그 해석은 역시 노리나가의 『고사기전』을 가져온다. 그렇게 해서 해석된 政事, 그러니까 정치의 내용이란 아주 흥미롭다. 이것은 제사와 연결된 제정일치적 개념이 아니다. 제정일치적 개념이 오히려 나중에 일본에 들어온 것이다. 그러므로 집요저음이 될 수 없다. 여기서 마루야마는 예리하게 천황제 이데올로기를 비판하고 있다. 노리나가를 가져와서 천황제 이데올로기를 비판하는 그 솜씨가 놀랍다고나 할까. 그리고 거기서의 政事란 奉仕事이다. 현대어로 옮긴다면, 이렇다. 정치란 섬기는 일이다. 그러니까 다스리는 일이란 섬기는 일이다. 그런데, 치자에 자리에 천황이 들어가지 않는다. 천황이 다스릴 때, 즉 섬길 때란 신을 섬길 때이다. 그러니까 백성을 섬긴다는 따위의 민본적 가치가 존속할 구석은 없다. 오미・무라지 즉, 신하와 귀족들의 다스림이란 천황을 섬기는 것이다. 여기서 비로소 이해가 된다. 정치란 윗사람을 섬기는 일, 윗사람에게 봉사하는 일이 된다. 마루야마의 시선이 얼마나 비판적인 것인지 알 수 있다.
단, 위의 노리나가의 설도 충분하지 않다. 마쓰리고토의 원의는 奉仕事가 아니라 무엇인가를 헌상한다는 의미에서 獻上事가 마쓰리고토의 보다 오래된 의미라고 생각한다. 『만엽집』의 ‘君に奉らば’라는 구절에서, 이 ‘마쓰루’에는 종교적 의미도 봉사한다는 의미도 없으며, 단순히 옷을 연인에게 바친다는 것이 ‘마쓰루’로 표현된다. 보다 친숙한 말로 하면 다테마쓰루タテマツル(바치다, 헌상하다)와 같은 뜻이다.(216) 종교적 행사에서 이쓰키마쓰루イツキマツル(斎祭)라는 말이 사용되는 경우도 성스러운 것의 의미는 イツク(齋(斎)く), イハフ(祝う), イム(忌む)라는 말에 있다. 종교적 행사에서는 신에게 제물을 바친다. 그것이 이쓰키마쓰루의 마쓰루マツル에 해당하며, 신에게 공물을 헌상하는 것도, 연인이나 임금께 헌상하는 것도 모두 마쓰루로 헌상하는 것에는 종교적 의미가 없다. 종교적 행사의 주재자를 齋主, 神主라고 부르고 이를 이쓰키누시イツキヌシ, 가무누시カムヌシ라고 훈독한다. 祭主라는 한어가 나오지만, 이 경우에도 훈독은 이하히누시イハヒヌシ이거나 이쓰키누시イツキヌシ이다. 신에게든 사람에게든 헌상하는 것은 다양하기에 그 물건이 추상화되어서 奉仕를 헌상한다. 헌상품이 奉仕가 되면, 獻上事는 奉仕事가 된다. 奉仕事를 훈독하면 쓰카마쓰루ツカヘマツル가 된다. 따라서 마쓰리고토가 奉仕事라는 설도 이차적으로 나온 의미론으로 보면 나름의 타당성을 가진다. 영어의 services나 servant에 기다리다wait라는 함의가 있고, 요리를 서빙하는 사람을 웨이터라고 하는 것과 재미있게 부합한다. 따라서 2차적이라고 해도 奉仕를 헌상하는 것을 마쓰루라고 말하고 마쓰루가 쓰카에마쓰루의 약어가 된 것도 『記紀』 시대일 것이다. 옷이라는 구체적인 것을 헌상한다는 ‘마쓰루’가 더 오래된 의미라고 생각한다.(216-217)
마루야마는 여기서 노리나가를 한번 더 뒤집는다. 결국은 노리나가가 말한 섬긴다 즉 봉사한다는 말이 맞다. 그러나 마쓰루가 그대로 섬긴다 또는 봉사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원래 바친다, 헌상한다는 말이다. 그러므로 이 말 자체에는 어떤 종교적 의미도 없다. 무엇을 바치는지에 따라 종교적 의미가 생길 뿐이다. 이 바치는 것이 섬김 즉 봉사가 될 때, 마쓰루는 섬긴다가 된다는 것이다. 노리나가의 말이 맞기는 하되, 그것은 의미론적으로 이차적인 의미이며, 원래 바친다에서 왔다는 것이다. 정치 즉 다스림의 원래 의미는 헌상 즉 바치는 것이며, 그것은 봉사 속 섬김이라는 의미이다. 놀랍다고 할까, 이렇게 문헌이 있는 것이 부럽다고 할까. 왜 선생님들이 나이가 들면 그렇게들 말을 붙들고, 말뜻을 새기면서 말놀이를 하는지 이해가 간다고 할까.
패러다임을 보자. 앞의 政事の図式을 보면 정통성과 결정의 두 수준을 구별한다. 정통성Legitimacy는 『신황정통기』의 정통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통치가 어떤 이치에 합당한 힘에 입각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권력에 대한 자발적인 복종을 이끌어내는 관념적 근거이다. 막스 베버의 3가지 지배의 정통성을 말하는 그 Legitimität이다. 통統을 사용하여 정당성이라고 하지 않는 것은 윤리적인 올바름Richtigkeit과 혼동하기 쉽기 때문이다. 가치판단으로 올바른 정치가 아니더라도 정통성은 있다. 결정decision-making은 설명할 필요가 없다. 여기서는 최고 레벨의 정책결정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정통성의 소재와 정책결정의 소재가 확연히 분리되어 있는 것이 일본의 政事의 첫번째 집요저음을 이루고 있다. 이 두 레벨의 확연한 분리가 중국은 물론 여러 절대군주제와 아주 큰 차이가 있다. 율령제는 대규모로 중화제국을 모델로 한 것으로 천황아래 태정관太政官(だいじょうかん다이죠칸)이란 최고 정책결정기관을 설치했다. 이 기관은 막부정치가 끝난 후 부활되었는데, 역사가들은 메이지 유신의 경우는 だじょうかん다죠칸이라고 읽고, 옛 율령제는 だいじょうかん다이죠칸이라고 읽는다. 천황 아래 太政官과 神祇官이 설치되고, 그밑에 궁내성, 대장성 이하의 8성이 있다. 중국의 당제의 경우 황제가 만기를 통솔하고 그 아래, 상서성, 문하성, 중서성의 삼성을 직할한다. 중국에는 삼성을 통솔하는 太政官이라는 직제가 없다. 중국은 황제가 천하의 大政을 통솔한다. 내각으로 말하면, ‘내각‘에 해당하는 통합기관이 없고, 황제에게 각 성이 예속된다. 중국의 삼성은 자문기관이며 적어도 제도상으로 최고결정의 소재는 어디까지나 황제이다. 제도상으로 일군만민一君万民이며, 모나키monarchy 단독통치였다. 그런데 야마토 조정하에서 중앙집권화를 시도한 일본은 太政에 해당하는 官을 천황과 각 성 사이에 두고 있는 데, 정통성으로서의 군주와 실질상의 최고결정기관을 제도적으로 분리한다는 생각이 나타나고 있다. 이 정통성의 레벨과 결정 레벨의 이원적 분리에 입각해서 이 도식을 만들었다.(217-219)
여기까지 읽고나니 왜 일본이 의원내각제 또는 내각제를 채택했는지 알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일본 같은 나라에선 대통령이란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 국가의 제도란 정통성과 정책결정이 일치하는 것인데. 여튼 일본에서는 고대로부터 정통성과 결정을 분리했고, 분리하는 것이 집요저음이라는 분석은 예리하다. 얼핏보면 입헌군주제에 딱 맞는 제도다. 그렇다고 원래 일본이 근대적이거나 민주적이라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다. 게다가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이든 총리에게든 정통성과 결정은 집중되는 것이다. 실은 이 둘이 분리되는 것이 비극과 무책임성을 낳는다.
이제 政事の図式을 설명한다. 여러가지 용어를 점선과 직선에 의해 연결하고 있다. 직선은 고대의 문서 가운데 어떻게 문장이 연결되어 있는가, 주어와 술어의 연결관계, 자타동사의 사용법이며, 점선은 통치구조의 실질적 관계와 역할을 나타낸다. 결정 레벨에는 大臣 이하, 卿, 群卿, 大夫 등으로 이들은 政事를 하는 주체, 즉 정책결정의 주체이다. 이들을 통칭해서 마헤쓰키미まへつきみ라고 부른다. 복수인 경우는 마헤쓰키미타치まへつきみたち가 된다. 大臣은 보통 오호오미おほおみ라고 읽는데, 정식으로 하면 오호마헤쓰키미おほまへつきみ이다. 左右大臣이 있고, 太政大臣은 상설직이 아니다. 則闕の官(사람이 없으면 비워둔다). 이를 야마토 말로 읽으면 오호마쓰리고토노오호마케쓰키미おほまつりごとのおほまへつきみ가 된다. 大臣이하 모구가 결정 레벨에 있고, 太政官이 政事의 주체이다.(219) 政事를 목적어로 해서 어떤 동사와 연결되는가. a는 마쓰리고토・쓰카헤마쓰루(まつりごと・つかへまつる)가 된다. 한자로 仕奉・奉仕・奉持. b는 마쓰리고토마오수まつりごとまをす 혹은 마쓰리고토마오시타마후まつりごとまをしたまふ, 申・奏・奏賜. c는 마쓰리고토오사무まつりごとおさむ, 혹은 오사메마쓰루をさめまつる, 治・理・治奉. d는 가장 이해하기 쉬운 용법으로 마쓰리고토나수まつりごとなす, 마쓰리고토오코나후まつりごとおこなふ, 마쓰리고토토루まつりごととる, 為・行・執, 지금 그대로 이해된다. e에는 현대의 감각으로 이해하는 것 이상의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마쓰리고토토미로쓰まつりごととりもつ, 執持・取執. 나중에 설명. 마지막 f는 마쓰리고토코토무쿠まつりごと(政)ことむく나 마쓰리고토코토무케야하수まつりごと(政事)ことむけやはす(言向・言趣,・言向和平) 는 좀 특수한 경우로 지방에서 야마토 조정에 대한 반란을 일으켰을 때, 반란을 평정할 때 쓰였다. 여기 쓰인 한자는 모두 일본에서 만든 조어이다. 영어에 없는 gal(갸루)나 nighter(나이타 야간게임) 같은 일제 영어 처럼, 자유롭게 한어를 구사해서 야마토의 말을 한어로 표현한다. 고토무쿠ことむく의 고토는 의미가 없고, 무쿠むく가 중점이며, 무쿠는 오모쿠무おもむく・赴의 무쿠와 같은 말로 얼굴을 이쪽으로 향하다는 뜻이다. 오모무쿠의 반대가 소무쿠そむく・背이며 등을 돌리다, 즉 얼굴을 반대로 향하다는 뜻이다. 고토무쿠가 平定의 의미란 반란을 일으켜 등을 돌린 자를 조정의 방향으로 얼굴을 돌리게 하는 데서 기인한다. 배신자, 즉 등을 돌린 자를 조정 쪽으로 얼굴을 돌리게 하거나 정치에 참여토록 하는 것이 천황으로부터 토벌하라는 명령을 받은 신료의 의무이다.(219-221) f. 밑에 cf.로 오모쿠케おもむけ風化는 오모쿠케를 風化라든가 敎化란 윤리적 의미가 강해, 왕자의 덕으로 감화시킨다는 뜻이다. 오모무케는 윤리적 의미가 희박하고 같은 방향으로 보게한다는 뜻이며, 실제로 무력토벌이다.(221) 배신한 자를 고토무케야하수(조정 쪽으로 얼굴을 돌리게) 하는 것은 오우수노미코토オウスノミコト 즉, 日本武尊이 구마소를 정벌하는 것이 ‘고토무케하야수’의 전형적 예로 평정을 끝내면 조정으로 돌아온다. 이것이 점선으로 표시한, 마이리노보루まゐりのぼる로 상급자에게 다가선다는 의미가 노보루 즉 위를 향한다는 동사에 암시되어 있다. 마이루まゐる는 야나기다 쿠니오柳田国男가 항복하는 것을 마잇타まいった로 표현하는 것이 고어의 흔적이라고 했듯이, 미야마이리宮参り[신사참배]의 마이루와 같은 뜻이다. 그리고 궁중에 参内하여 가헤리코토마오수かへりことまをす할 차례다. 이때 覆奏, 復命, 報命의 한자어는 원래 한어로 일본어 조어가 아니다. 노리나가는 한어 覆奏는 황제의 명령에 대한 답변 즉 대답을 奏上한다는 의미지만, 고어로 가헤리코토마오수는 문자 그대로 야마토 조정에 돌아와 奏上한다는 구체적 의미라고 말한다. 지방의 반란을 평정하고 야마토로 돌아와 대군에게 보고하는 것이 ‘가헤리코토마오수’이다. 이로서 政事의 사이클은 완성된다.(221-222)
일본어도 잘모르고 한자도 잘모르는데, 일본식 조어와 중국 한자어의 차이를 살피는 논의를 따라가는 건 어지러운 일이다. 그러나 아주 간단하게 말하면, 일본어에서 政事 곧, 정치, 즉 다시말해서 다스리는 일이란, 봉사하다, 섬기다, 말씀드리다, 다스리다, 행하다, 이루다, 취하다, 중재하다. 반란을 평정하고 조정에 보고하다 등의 일련의 일을 가리킨다. 이것이 정책결정과 집행의 일이다. 전체적으로 정치하는 일의 의미가 다름을 말하고 있다. 좀 더 나가보자. 마음 한구석으로는 한국어로는 어떻게 따져야 하는지 막막할 지경이다.
政事의 결정 레벨에 있는 오호오미大臣이나 마헤쓰키미卿이 정치에 쓰카헤마쯔루奉仕하거나 마오수(말씀)드리는 것은 모두 정책결정과 집행을 의미한다. 그에 비해 정통성 레벨에 있는 天皇(수메라노미코노), 大君(오호키미), 帝(미카도)는 卿들이 政事를 결정하고 집행하는 것을 ‘듣는(きこしめす)’ 위치에 있다. 주어가 ‘수메라노미코토天皇’인 경우에는 정사를 듣는다(마쓰리고토키코시메루) 등의 문장이 이어진다. 시로시메수しろしめす(다스리다)는 일반적으로 아마쓰히쓰기시로시메수(あまつひつぎしろしめす, 治 天津日継)이라고 쓴다. 듣는다 든지 안다 라는 것은 감각적으로 밖에서 오는 것을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성격이다. 정치의 주체는 大臣이나 群卿이며, 정치를 하는 과정이나 결과를 기코시메수(듣다), 시로시메수(알리다) 위치에 있는 것이 천황이다. 일본에서 천황이란 개인이 아닌 황실이다.(222) 노리나가가 정사의 직접적 주어를 오미臣나 무라지連라 한 것은 그들이 도표에 왼쪽에 있으며, 卿・大夫가 하는 정사를 듣고 알리는 것이 천황(皇室)이며, 그로써 政事의 결정은 정통성을 가지게 된다.(222)
실로 이런 정통성과 결정의 분리가 고대에 이루어졌다는 점은 기기묘묘한 구석이 있다. 천황이 듣거나 알고 있으면 정사는 정통성을 가지는 것이다. 현대 일본에서도 듣다의 용법이 정말 다양한다. 말하는 쪽과 듣는 쪽이 있다면, 말하는 쪽이 권력을 가지고 또 정통성을 가지는 것이 일반인데, 듣는 것과 말하는 것을 분리하고, 권력과 정통성을 나눈다.
政事의 결정 레벨과 정통성 레벨의 차이를 역으로 보여주는 것이 앞에서 말한 가헤리코토마오수覆奏이다. 말할 것도 없이 마오수奏・申의 특수형인데, 『고사기』의 마오수奏의 용례 23개 중 14개가 復奏 또는 覆奏, 곧 카헤리코토마오수이다. 유명한 아시하라노나카쓰쿠니葦原中国(고대 일본국)의 평정신화에서 다카아마가하라(天高原 혹은 高天原)에서 파견된 사자 아메노호히노카미天菩比神 , 아메노와카히코天若日子 두 사람은 葦原中国의 지배자인 오쿠니누시노카미大国主神와 결탁해 가헤리코토마오사즈(돌아오지 않음)不復奏하게 된다. 망명이다. 세번째 사자 파견 후, 이런저런 경위 후에 大国主神이 조건부로 葦原中国(일본국)의 통치를 아마테라스오미카미天照大神의 자손에게 평화적으로 위양하게 된다. 가헤리고토마오시(보고를 함)로 政事의 사이클은 완료되고, 정치적 집행은 정당화된다.(222-223) 다른 한편에서 배신한 자가 항복해서 조정에 복종을 맹세한다. 이를 마쓰로후まつろふ라고 하는데, 歸復, 歸順. 마쓰로후, 마쓰로하누는 특수한 야마토의 말로 반란을 일으킨 자가 귀순하면 결과로 오오키미大君를 섬기게(쓰카헤마쓰루) 된다. 즉, 귀순해서 같은 레벨에 서게 된다. 이렇게 大君의 명을 받아 아래서 일어난 政事를 大君은 듣고 알리는 것으로 政事는 하나의 사이클을 완료하게 된다.
돌아와서 보고한다. 그럼으로써 사이클이 끝난다는 것. 일본인이라면 직접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일 것이다. 좀 다른 이야기지만 葦原中国의 지배자인 大国主神의 귀순 내지 국토위양 설화를 일본은 조선의 식민지 통치에서 활용했다. 위원중국 평정신화에서 大国主神은 나라를 아마테라스의 후손에게 넘긴 후 자신은 신사에 들어간다. 남산에 있던 경성신사의 조선국혼대신이 있다. 원래 조선신궁을 건립할 때, 개척삼신이나 조선의 단군을 상징하는 신을 넣어야 한다는 신도가들의 주장이 있었다. 이는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만, 그 논리는 조선을 통치하는 신이 조선을 일본에 위양하고, 자신은 신으로 신사에서 공물을 받기로 했다는 식으로, 일본의 신화를 조선에 확장한 것이다. 그 사례가 조선국혼대신이다. 일본의 조선통치를 이해하는 데, 일본의 통치와 정치논리를 이해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일본이 조선에서 꼭 그런 식으로 통치한 것은 아니지만.
도표 아래에 白僚有司가 아닌 일반 인민을 오호미타카라おほみたから 혹은 오호무타카라おほむたから라든가 히토쿠사ひとくさ라든가 아오히토쿠사あおひとくさ라고 한다. 百姓・民・人民・万民・蒼生. 인민의 경우 중앙의 大君, 보다 직접적으로 지방에 파견된 관료를 섬기는(쓰카헤마쓰루) 관계에 선다. 大君과 卿이 天皇을 섬기(쓰카헤마쓰루)듯 일반인민이 지방 내지 중앙의 관료를 섬기는(쓰카헤마쓰루) 것이다. 여기서는 치자와 피치자가 대립과 지배의 관계로 마주치는 것이 아니라 더불어 위를 향해 같은 방향으로 봉사하는 관계에 선다. 지배관계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말, 즉 이데올로기의 문제이다. 臣民이란 성어는 중국 문헌에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臣과 民은 명확히 구별되어 있다. 대일본제국신민이라 할 때, 臣이란 중화제국 군주에 직속한 관료를 말한다. 臣은 民과 구별되어 君臣으로 君쪽과 관계를 맺는다. 유교의 오륜의 군신의 義란 군과 관료의 관계이나, 일본에서 군신의 義란 의미가 확대되어 일반인민도 포함되며, 군신과 군민 양쪽의 관계를 포함한다. 에도 막번체제에서 주군은 藩主를 의미하므로 번주와 일반 가신 사이의 상호보호 충성의 윤리로 통용되었다. 메이지 때 天皇親政이 부활되자, 율령제의 白僚有司가 大君을 섬기는 것과 같은 패턴으로 일반국민이 황실을 섬기는(쓰카헤마쓰루)의 동방향성同方向性의 원칙이 관철되고 제국신민이라는 표현이 일반화된다.(223-224)
마루야마는 끄집어 낸 차이점은 정말 놀랍다. 臣民이란 일본 특유의 표현으로 중국에는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에는 이것은 꼭 탐구해 볼 주제다. 왜냐하면 신민이란 subject이고 그것이 바로 주체이기 때문이다. 예속적 주체의 형성과 예속적 주체화의 과정이란 분석을 한국에서는 어떤 식으로 풀어야하는지에 대해 중요한 시발점이 되기 때문이다. 마루야마는 신민의 쓰카헤마쓰루를 통해 다시 한번 다이카 개신의 율령제와 메이지 유신의 천황친정을 연결한다. 신민 모두가 천황을 섬기는 정치라는 이데올로기 즉, 일군만민의 절대주의적 이데올로기는 서양에서 수입된 것만은 아니고 일본에 이미 그 구조가 있었다. 그렇기에 이런 제도의 도입도 용이하다. 반대로 그런 제도의 도입의 결과는 서양과는 반드시 다른 결과를 가져오게 된다는 것.
abcde는 모두 政事를 목적어로 하는 타동사적 용법이다. B의 마오수まをす를 예로 들면, 마쓰리고토마오수란 오늘날의 어감으론 政事를 윗사람에게 말씀드린다는 의미에 한정되지만, 실제로는 c나 d처럼 정사를 결정하고 집행하는 넓은 의미로 표현한 것이다. 물론 奏上이라는 의미이나. 중요한 것은 政事의 아랫 사람에 대한 행동이 마쓰리고토마오수로서, 아랫 사람이 윗사람에게 奏上한다는 의미이다. 申政事가 중국의 고전한문에 나오기는 해도 정사를 결정하고 집행하는 것 자체를 말하지 않는다. 오사메마쓰루をさめまつる治奉란 표현도 宣命 등에 자주 나온다. 이것도 오사무治와 같은 의미로, 중국문헌에는 治奉은 없다. 이는 모두 일본의 경우 政事의 통치가 위에서 아래로의 지배가 아니라 아래에서 위로의 奉仕의 헌상이라는 측면이 강조되고 있음을 상징하며, 거기에 政事의 집요저음이 울리고 있다.(224) 코닌光仁 천황의 宣命에 보면 左大臣이 죽자, 천황이 죽음을 슬퍼하며, 오늘부터 좌대신이 해왔던(마오수) 정사(마쓰리고토)를 천황이 들을 수 없다(기코시메사즈)고 해서, 듣는 것은 천황이며, 마오수하는 것은 左大臣으로 분명하게 그 차이가 드러난다.(224) 쇼무聖武천황의 즉위 宣命에도 天下公民을 마오수奏す 한다는 말은 마오수가 정사를 한다는 말로만 이해된다.(224-225) c의 오사무(おさむ다스리다), d의 나수(なす하다), 오코나후(おこなふ행하다)는 보통말이다. e의 마쓰리고토・도리모쓰まつりごと・とりもつ는 일본적 사고방식이다. 이는 한자로 執持, 取持로 표현된다. 문자 그대로 정사의 실권을 장악해서 행사하는 것을 뜻한다. 『만엽』의 노래에서 食(お)すくにのこととりもちて라는 구절이 있는데, 통치를 감각적으로 食(お)す라고 하며, 나라의 통치를 맡아서란 뜻이다. 맡는とりもつ 주체는 大伴家持로 大君 즉, 天皇의 위임을 받아서 하는 것이다. 비슷한 말이 『일본서기』에 신성한 창의 가운데를 잡을 수 있는 것과 같이いかしほこのなかとりもてることのごとくにして라고 있다. 같은 표현은 代嘗祭의 제사의례에도 있다. なかとりもつ는 관용어이다. 이는 대상제에서 天神이나 皇祖神과 現天皇의 매개자가 된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으며, 직접적으로 종교적 의미는 없다. 郡卿들의 역할을 말하고 天皇과 下僚 내지 인민 사이의 매개자가 됨으로써 天皇에게 봉사하는 사람(주청인)이라고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단적으로 政事를 집행함으로써 봉사한다는 의미로 『속기』의 宣命에 자주 나온다. ‘도리모쓰’는 세속적 집행이며, 특히 政柄(정치권력)을 잡는다는 중국의 한문표현과 밀착해서 쓰이므로, 媒介한다는 어의를 항상 사용자가 의식한다고 볼 수 없다. 단 なかをとりもつ 사이를 매개한다는 말은 오늘날에도 남아 있듯이, 도리모쓰란 야마토의 말이 단순히 집행이라는 한어의 의미에서 쓰인다 해도 神人의 매개(종교적 용법)라든가, 천황과 하료, 백성과의 매개(비종교적용법)라는 함의가 그림자처럼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政事가 상급자에 대한 봉사라는 생각과 연결되면 政事まつりごと 도리모쓰とりもつ란 표현이 아주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이상하지도 않으며, 執은 일본정치사에서 실질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225-226)
앞에서 설명한 政事와 결합하는 동사들을 모두 설명한다. 먼저 まをす(奏す)를 말하는데, 말씀드리다 보고하다의 의미지만, 결정하고 집행하는 것을 모두 포함하는 말이며, 중국의 고전한문에는 이와 비슷한 용법을 찾아보기 어렵다. 일본의 경우 통치는 아래에서 위로의 奉仕라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아래에서 위로가 바로 집요저음이다. 사실상의 통치에 해당하는 마오수는 大臣의 일이고, 천황은 듣는 것(기코시메수)이다. 그 역할이 철저하게 나뉘어져 있다. 특히 재미있는 것이 도리모쓰의 용법이다. 가운데를 잡는다なかをとりもつ는 말은 현대어로도 매개한다는 말로 쓰인다. 중요한 것은 종교적 의미는 없다는 것이다. 천황과 황조신을 매개할 때도 봉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권력을 잡는다는 말로 쓰인다. 매개한다는 의미는 직접적으로는 드러나지 않지만,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윗사람에게 봉사한다, 매개한다, 권력을 잡는다는 의미가 하나로 결합되는 것이 일본이다. 이런 것은 한국, 중국과 비교해서 봐야 하는데, 나에겐 비교할 만한 레퍼런스가 없다.
이어 도표2로 넘어간다. 이 도표는 율령제 이후의 역사적 변질을 도식화한 것이다. 먼저 앞에서 말한 정통성 레벨과 정책결정 레벨의 분리라는 패턴은 율령제가 무너진 이후에도 그대로 유지되었을 뿐 아니라 결정체를 아무리 잘게 부숴도 같은 모양이듯 거듭 세분화하면서 반복해서 출현한다. 다이카 개신大化改新에 의헤 성립된 ‘천황친정’ 원칙의 변질은 섭관제摂関(셋칸)制의 등장으로 나타난다. 어린 천황을 대리하는 섭정摂政(셋쇼)와 성인인 천황을 보좌하는 관백関白(간파쿠)의 명칭이나 제도는 중국에서 유래한 것이지만, 중국에서는 임시 관직이었으나 일본에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상설되었고, 후지와라藤原씨가 독점한다. 摂関은 令外官(료게노칸), 율령제의 정식 관직 이외의 官이지만, 율령제의 변질로 令外官는 계속 늘어간다. 内大臣, 蔵人所, 参議, 検非違使 등 헤이안 시대 이후 율령제하 실권의 소재는 令外官에게 있다. 左大臣, 右大臣이란 정식 고관은 이름만큼의 정치적 의미를 갖지 못했는데, 아이로니컬하게 천황친정의 율령제를 모델로 한 메이지 유신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参議 쪽이, 太政大臣인 산조 사네토미三条実美 보다 훨씬 실질적 정책결정자였다. 이러한 비공식화informalization의 경향. (226-228)
율령제에서도 정통성 레벨과 정책결정 레벨이 분리되어 있었지만, 율령제가 붕괴하면서 다시 후지와라씨가 등장해도, 역시 정통성 레벨과 정책결정 레벨은 분리되어 있다. 집요저음은 계속된다. 동시에 통치의 비공식화 경향 역시 지속되는데, 그것은 令外官이 늘어가는 것이다. 실권은 여기에 있다. 놀랍게도 다시 한 번 메이지 유신과 일치하는데, 太政大臣 보다 参議 쪽이 더 큰 권력을 가진다.
摂関섭관제가 등장해도 정통성의 레벨은 황실에 있고, 섭관을 비롯한 令外官은 정책결정의 레벨에 있다. 최고의 정책결정자인 摂政・関白은 後見(우시로미うしろみ)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藤原씨는 황실의 외척으로 摂関의 지위를 독점했으나 원칙적으로는 天皇의 후견자에 불과했다. 이것이 일본이 정치 과정에 전통을 형성하는데, 政事의 정통성을 가진 최고통치자의 배후에는 항상 ‘후견’이 있어 조정하고 있다. 황실 내부에서 점차 院政인세이(천황의 직계존속인 태상천황이나 상황이 출가하여 院이라 불리면서 정무를 행함)가 등장하는 데, 이것도 後見이다. 상황이 院政를 해도 정통성은 현재의 천황에 있고, 양위한 전임 천황은 後見을 한다. 여기에 또 하나의 집요저음이 있어, 摂関制에도 院政의 경우에도 실제 결정자는 摂政・関白이나 院 자신이 아니다. 여기서 다시 令外官에 해당하는 비공식화 또는 미우치身内화 현상이 일어난다. 비공식화 또는 身内화란 院의 경우 근신, 즉 측근이 院司가 되어, 관위가 낮아도 院의 나아가서 政事의 광범위한 실권을 장악한다. 어떤 院司는 밤의 関白으로 불렸다. 摂関의 경우에도 藤原씨의 家政기관인 家司가 실질적으로 摂関의 이름으로 결정권을 행사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결정과정이 아주 복잡해진다. 摂関도 院도 미카도帝에 대해 後見의 위치에 있는데, 거기에 또 後見이 있으며, 그것도 사적인 家政기관이다. 家司의 근무처를 政所(만도코로まんどころ)라 부른다. 이 명칭은武家政治에도 계승되는데, 政事의 구조를 잘 상징하고 있다. 한편에서 정권의 하강 경향을, 다른 한편 정권의 親類化, 私化 경향을 표현한다. 政所가 내리는 문서를 만도코로시타부미政所下文 또는 만도코로미쿄조政所御教書라고 하는데 본래 사문서인 이런 형식이 官宣旨와 병립한다. 정통성 레벨의 명령은 太政官符・官宣旨에 있어서, 우시로미는 어디까지나 우시로미에 머문다. 원칙은 원칙 그대로 있어 실체파악이 어렵다.(228-229)
다시 한번 집요저음이 발견된다. 우시로미後見 즉, 후견 제도이다. 천황에 대해 섭정과 관백이 후견을 하기도 하고, 황실 내부에서 院政가 나타난다. 상황이 사실상 통치하는 것인데, 천황을 양위하면 출가하여 원호를 받기 때문에 이를 院政이라 부른다. 연호, 천황의 이름, 원호 등 이름이 정말 많기 때문에 일일이 찾아봐야만 한다. 정통성을 가진 쪽에는 항상 후견이 생겨난다. 이것이 하나의 집요저음이다. 다른 하나는 ‘미우치身内’화라고 부르는데, 측근이 정치에 참여하고 정치의 실권을 가지는 것이다. 院政을 할 때는 상황院의 미우치인 院司가 실권을 장악한다. 섭관정치의 경우에는 후지와라씨의 家司가 실권을 가진다. 심지어 일하는 곳의 이름이 만도코로政所다. 여기서 나오는 명령이 太政官에서 나오는 명령과 서로 병립한다.
이런 패턴이 武家政治에서 완전히 재생산된다. 가마쿠라鎌倉 막부 성립후, 막부를 『愚管抄』에서 막부를 우시로미後見이라고 말한다. 섭정, 관백과 같다. 막부는 교토의 조정에 대한 후견자가 아니라 독립된 권력이다. 本所나 領家의 荘園領을 제외하고 막부와 고케닌御家人의 관계는 교토의 구게公家(귀족)으로부터 완전히 독립된 권력이다. 막부는 동아시아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정치형태로 일본만이 구게로부터 실질적으로 독립한 무가정권이 성립되었다. 국가통치의 정통성은 征夷大将軍이라는 쇼군将軍의 호칭이 조정에서 수여된 것으로 상징되듯 전통적인 공가가 가지고 있지만, 통치의 실권은 막부에 있고, 실권은 더욱 확대되고 율령제는 명목화되어 같다. 그러나 그 막부가 원칙적으로는 조정에 대한 우시로미後見로 불린다.(229) 가마쿠라 막부 내부구조도 정통성과 결정권의 이원적 분리패턴이 동일하게 재생산된다. 막부의 쇼군이란 막부 레벨의 정통성의 원천이다. 호조北条씨가 싯켄執権이 된다. 여기서 매개하는(도리모쓰とりもつ) 관계가 나온다. 執権의 직접적 의미는 권력을 장악한(とる) 자라는 의미지만 호조 싯켄은 쇼군과 가마쿠라 막부 사이에 개입하고 그 사이를 매개하는なかをとりもつ 역할을 하며, 武家를 대표하여 교토의 公家와의 매개자이다. 막부는 公家에 대해 우시로미後見 관계에 있고 막부의 내부를 보면 싯켄이 쇼군의 우시로미後見이다. 같은 패턴이 몇 번이나 재생산된다. 쇼군 자신이 실권자로서 명목적이 되고,때문에 후지와라藤原씨 가문에서 쇼군을 맞이하려 하는데, 이번에는 싯켄이라는 공적인 결정자의 역할이 변질되어 간다. 호조北条씨의 가토쿠家督(가부장권의 승계자)을 도쿠소得宗라고 한다. 호조씨의 개인적인 이에家의 통솔자인데, 싯켄정치執権政治의 실태는 도쿠소정치得宗政治가 된다. 싯켄의 관직을 더나면, 前執権이 現執権의 우시로미後見로 큰 역할을 한다. 마치, 上皇, 太上天皇의 경우와 비슷하다. 도쿠소得宗의 家政기관을 内管領라고 하는데, 싯켄에서 도쿠소정치로의 전화란 도쿠소得宗의 배하被官(하급관리)인 内管領이 막부의 실권을 장악하는 과정이다. 권력의 하강화가미우치화 되어 나타난다. 미우치御内, 미우치카타御内方의 호칭을 쓴다. 도쿠소의 부하이자 도쿠소의 被官이다. 따라서 결정 과정이 복잡하고, 執権의 지위 그 자체가 명목화되어 간다. 前得宗인(의 ? 원문확인필요) 미우치御内, 미우치카타御内方가 엄청나게 큰 권력을 장악한다.(229-230)
집요저음이라고 할 만한 반복되는 패턴이다. 정통성을 가진 자나 집행권을 가진 자, 보통은 이를 권력자라고 한다, 여하튼 이런 자들에게는 항상 우시로미 즉, 후견이 있다. 정통성에 대해서는 집행권이 후견 역할을 한다. 각자에 대해서는 가장 흔히 등장하는 후견은 전임자로서 대체로 그들의 아버지다. 그들이 상황이 되거나 현직에서 물러나 家督을 상속하면, 후견으로 역할을 하면서 집행권을 가져간다. 이 후견 이외에도 정통성 보유자든 집행권 보유자든 실제로 그 권한을 행사하는 사람은 공식적인 기관을 통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미우치를 통해서 행한다. 그게 이에家 내부에 있는 경우도 있고, 측근인 경우도 있다. 권력은 끊임없이 하강화하고 사사화한다. 이렇게 되면 누가 실권자인지 파악하기 매우 어렵게 된다. 실권자를 파악해서 로비를 하면, 어려운 문제도 쉽게 풀린다. 소위 이것이 현재도 일본사회가 돌아가는 방식 중 하나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증이 생긴다. 왜, 그들은 자기 판단에 의해 직접 권한을 행사하지 않았을까 ? 쇼군이든 대신이든 천황이든 상황이든 각자가 집적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데도 끊임없이 권한 위임을 한다. 도대체 그 이유는 무엇인가 ? 마루야마 마사오는 궁금증은 실컫 불러일으켰지만, 해답은 하지 않는다.
무로마치室町(1338~1573) 시대가 되자, 무로마치 막부는 교토에 있었기 때문에, 간토関東에는 간레이管領를 둔다. 다카우지尊氏의 아들 모토우지基氏가 官東管領이 되었는데, 그는 간토쿠보関東公方라 불린다. 구보公方란 이름이 막부의 중앙에서 한 단계 더 아래로 내려간다. 이 간토쿠보関東公方 내부에서 정통성과 결정의 두 레벨이 분화된다. 간토쿠보関東公方가 정통성의 레벨이라면 이번에는 執事라는 간토쿠보의 배하가 실권자로 등장한다. 執事란용어상 앞에서 말한 도리모쓰(사이를 매개한다)와 관련이 있다. 간레이管領는 교토의 막부의 싯켄執権에 해당하는 관직이다. 여기서도 간레이管領의 被官인 부교닌奉行人이 큰 권력을 가지게 된다. 앞서 말한 教書가 奉書인 것과 마찬가지로, 奉行라는 것도 쓰카헤마쓰루仕奉와 어원적으로 같은 뿌리에 속한다. 간레이管領의 실권이 内管領로 옮겨진 것은 구게公家의 내부에서 院政의 경우에는 院司가, 摂関의 경우에는 家司가 실질적 결정의 역할을 차지하는 것과 동일하다.(230) 막부가 교토로 옮겼을 때, 간토의 책임자도 똑같이 했다는 말이다. 직위가 내려갔을 뿐.
단순화해서 말하면 정통성 레벨과 결정 레벨의 분리라는 기본적인 패턴에서, 한편에서는 실권의 하강화 경향, 다른 한편 실권의 미우치화 경향이 파생적인 패턴으로 생기고, 그것이 율령제의 변질 과정에도, 막부정치의 변질 과정에도 반복해서 거듭 재생산되는, 말하자면 자연적 경향이 있으며, 일본 정치의 집요저음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 마루야마의 가설이다.(231) 그러나 권력이 하강해도 정통성의 소재(locus)는 움직이지 않는다. 정통성의 레벨은 시점에 따라 다양하나, 최고의 정통성은 황실에 있다.(231) 武家政治(막부정치) 자체를 하나의 통치기구로 볼 때, 정통성의 소재는 쇼군으로 시종 바뀌지 않는다. 정통성의 소재는 움직이지 않은 채, 실권이 한편에서는 하강하고 한편에서는 미우치身内화 한다. 일본사에 혁명이 없다고 하나 정치적 정통성의 변혁으로서의 혁명은 없었지만, 혁명의 부재시 대역을 맡고 있던 것이 실질적 결정자의 끊임없는 하강화 경향이다.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아 방지하려 했지만, 이 자연적 경향성이 강했다.(231) 무로마치 중기 이후, 하극상이란 말이 생기고, 전국시대는 하극상의 극점이다. 오와리尾張의 소농민인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関白太政大臣이 된 것은 하극상의 극점이다. 그러나 이것은 조정으로부터 하사받은 호칭으로 하극상이 정통성의 변혁은 아니었다. 2・26사건은 쇼와 초기 하극상의 절정이었으나 혁명은 커녕 군부 조직 자체를 변혁하지조차 못했다. 이 하극상은 숙군을 구실로 군부의 발언권을 강화시켰을 뿐.(231) 무로마치에서 전국시대로 이야기를 돌리면, 난세를 바로잡고 천하태평을 가져온다고 도쿠가와 막부의 탄생을 보게된다. 에도 막부는 하극상의 경향을 막았지만, 정통성의 최고 소재인 황실(公家)에는 손가락 하나 대지 않고 그 실권을 기하학상의 ‘점’으로 비유할만큼 극소화시켰다. 에도 막부는 권력의 하강경향을 막기 위해 교묘한 장치와 정책을 취했으나, 신판親藩, 후다이譜代와 도자마外様의 구별에서 보듯 권력하강을 막기 위해 미우치身内화 사私화의 경향을 이용한 측면도 있다. 그런 엄중한 통치의 메커니즘과 신분제도 아래서도 소바요닌側用人의 대두와 같은 하강화 현상이 권력의 비공식화와 아울러 일어났다.(231-232)
정통성 레벨과 결정 레벨의 분리가 반복되는 패턴 속에서도 최고 정통성의 소재locus인 천황(황실)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도쿠가와 막부에서 황실의 실권을 점 수준으로 극소화시켰다고 해도 그것을 아예 없애지는 않는다. 그것이 일본이다. 그렇게 보면 천황제만 유지될 수 있다면, 점령군의 어떤 요구도 받아들인다는 패전 직후 일본 정치인들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상징천황도 헌법개정도 전쟁포기도 모두 받아들일 수 있었다. 혁명 대신에 권력 하강화 현상이란 그것이 혁명의 역할을 했다는 것이 아니다. 혁명이 일어나고 정통성의 변혁이 일어나야할 지점에서 권력의 하강화 현상이 발생하고, 미우치화 현상 즉 비공식화 현상이 발생한다. 신흥세력이 실권으로 가지도록 함으로써 체제를 유지할 필요를 느끼게 해주는 일종의 권력분점의 장치인 것인 것 ? 그래서 변혁은 발생하지 않나. 하극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하극상이 일어나면 오히려 실권이 강화된다. 기묘한 통치 메커니즘이다.
政事가 상급자에 대한 獻上事(마쓰리고토)를 의미한다는 것은 政事가 말하자면 아래에서 위로의 방향으로 정의되고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서양이나 중국과는 반대로, government나 ruler란 위에서 아래로의 방향이다. 중국 고전에 있어 政의 용법을 보면 政의 레벨이 君에 있고, 위에서 아래로의 방향성을 가진다. 그런데 일본의 政事는 마쓰루=헌상하는 사항으로서 臣의 레벨에 있으며, 臣인 卿이 행하는 獻上事를 君이 기코시메수(듣느다)=받아들인다 관계에 있다. 그래서 언뜻 보기에 역설적이나 政事가 아래에서 정의되어 잇는 것, 결정이 신하에서 또 그 신하로 하강하는 경향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이를 병리현상으로 보면 결정의 무책임 체제가 되며, 좋게 말하면, 전형적인 독재 체제의 성립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도식은 政事를 one cycle로 그렸기 때문에 드러나지 않지만, 天皇 자신도 실은 皇祖神에 마쓰루라는 奉仕=헌상 관계에 선다. 위에서 아래까지 政事가 같은 방향으로 상승하고, 절대적인 시점(최고 통치자)로서의 주主는 존재할 여지가 없다. 『일본서기』에 나라만들기를 끝낸 이사나키노미코토イサナキノミコト가 하늘로 올라가 보고했습니다(가헤리코토마오스)라는 부분이 있는데, 이사나키가 아마쓰가미天 神인 누구에게 보고했는지 분명하지 않다. 사이클의 완료라고 말했지만, 무한으로 불특정한 상급자로의 소급이 있으며 궁극적인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덧붙여 둔다.(232-233)
政事와 政治는 せいじ(세이지)로 읽는 법이 같다. 시종일관 그것을 마쓰리고토의 구조라고 한다. 핵심은 아래에서 위로라는 것이고, 윗사람의 명령에 따라서 혹은 윗사람을 헤아려서가 되기도 한다. 정치는 해서 위에 바치는 것이다. 실권자가 아닌 정통성을 가진 천황에게 말이다. 이 글을 결말까지 읽어가면서 일본 특유의 손타쿠忖度가 이해될 것 같은 심정이 든다. 부정을 명확하게 명령하지 않아도 알아서 행하고, 심지어 윗사람의 책임을 대신하기 위해 자결도 감수하는. 한국에서도 종종 큰 사건이 있어서 수사받는 당사자가 자살하는 경우가 있다. 책임자를 보호하기 위한 일본식 자살보다는 책임자 자신이 자살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 마루야마는 마지막 부분에서 일본에서는 독재가 발생하지는 않지만, 무책임의 사회라고 한 것은 전후 초국가주의나 군국주의 파시즘에 대한 비판에서 일관성을 가지는 것이다. 일본은 개인의 독재가 등장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러나 군부라는 집단의 독재는 아무도 통제할 수 없었다. 군부 안에서 의사결정이나 전쟁 수행과정은 그 안에서도 하강화와 미우치 현상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그래서인지 전쟁을 스스로 끝내지도 못했다. 게다가 권한을 하강하면서 확산시켰다가 다시 회수했다가를 반복하면서 결국은 체제변혁없이 체제의 불만을 조절해내는 일종의 통치성의 장치인 셈이다. 신도 비는 존재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사이클을 미완결시키기 위한 장치이기도 모른다. 모두가 위로 향하여서 가되, 그 위는 열린 구조라야 한다. 야스마루 요시오가 일본의 신은 그 자신도 다른 신에게 비는 존재이며, 그 최고 지위가 정해져있지 않다고 말했는데, 유일신이나 신에 대한 궁극의 관념에서 일본과 서양의 차이가 여기서 나타난다. 무책임의 구조가 형성하려면 최종책임자가 없어야 한다.
여기서 듣는다는 말이 정말 흥미로웠다. 일본어는 말한다 보다 듣는다는 참 많이 사용하다. 허락하다는 뜻의 말이 들어주다이며, 듣다라는 동사를 다양하게 변형해서 일상에서 허락과 청원과 질문과 대답과 관계를 표현하는 용어에 사용한다. 명령한다보다는 들어주다라는 표현이 훨씬 더 많다. 일본은 아랫사람은 자발적이고, 윗사람은 수동적인가라는 식으로 제멋대로 해석했는데. 오늘부터는 ‘듣는다’는 단어가 다르게 보이고 들릴 것 같다.
두 가지 의문이 남는다. 패전 이후 일본의 민주주의적 개혁을 이 틀로 설명할 수 있을까 ? 메이지 유신과 군국주의 기간에 대해서는 간간이 운을 떼는 것 같지만, 분명하지 않다. 특히 아베 정권의 우경화나 과거 회귀 정책 같은 데서도 이런 분석이 가능할까 ? 민주주의란 결국 정통성과 결정의 일치에 근거하는 것이다. 물론 일본에서는 실제 정책은 대부분 관료가 결정하고, 그것도 중위 관료가 결정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관료제를 말했지만, 과연 현대도 그럴까. 일본 사회에서는 키맨이라고 어느 조직이나 어느 분야에는 그 사람을 통하면 안될일도 된다는 식의 논리가 있었다. 이런 식으로 현대를 분석할 수 있을까 ?
한국에서도 정이나 권의 개념을 가지고, 이런 식의 분석을 시도한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물론 다르다. 한국은 고문헌 자체가 많지 않아서, 고려시대 이전을 말하려면 추측에 의거해야 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다. 조선 이후의 수많은 문헌에서 이런 미세한 차이를 읽어낸 연구들이 있을까. 그래서 ‘정’ 또는 ‘권’ 이라는 글자 하나를 붙들고 늘어지는 걸까. 고문헌을 읽어내는 감각을 가진 사람들이 사라져가고 전산화되어 모든 것을 검색에 의존하는 시대가 되었는데. 이런 감각이 나올 수 있을까 ?
그러고 보니 오늘은 일본의 천황탄생일 휴일이다. 원래 천황탄생일은 12월 23일인데. 어제가 일요일이라서 대체휴일이다. 1933년 생인 지금의 아키히토 천황은 내년에 퇴위한다. 그의 생일인 1948년 12월 23일 0시 1분에 미군은 도조 히데키를 비롯한 9명의 전범의 목을 달았다. 우연이었을까, 의도였을까.
2018. 12. 24.
* 괄호 안의 숫자는 번역서의 쪽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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