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루이치 노리토시, 『희망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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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루이치 노리토시(古市憲寿), 『희망난민 (希望難民ご一行様 ピースボートと「承認の共同体」幻想)』, 이언숙 역, 민음사, 2016 (2010).

“지루한 일상이 지속되는 가운데 ‘단념해야 할 것을 단념하지 못하는’ 희망난민, 즉 우리 시대의 젊은이들이 피스 보트에 승선하였던 것이다.” (144)

세계일주, 99만엔. ‘피스 보트’라는 배가 있다. 주로 일본인인 젊은이들이 배를 타고, 전세계를 돌면서, 평화에 대해 말하고, 배우면서 세계와 교류하는 배. 해마다 수천명의 젊은이들이 이 배에 탄다. 이 배는 무엇이고, 어떤 효과가 있는 걸까. 후루이치 노리토시는 이 배에 직접 타서, 4개월간 이들과 함께 어울리면서, 이 배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 배는 실상은 ‘단념’의 배이며, 이 항해는 ‘단념’의 항해라고 말한다. 후루이치 노리토시는 ‘사토리(달관)’ 세대를 설명한 『절망의 나라의 행복한 젊은이들』이라는 책으로 한국에서도 꽤 알려져 있다. 『희망난민』으로 그는 널리 알려졌고, 도쿄대 석사논문을 고쳐서 책으로 낸 것이기도 하다.

‘피스 보트’는 가난과 외로움의 결합인 사회적 배제, 달리 말하면 재분배의 정의와 승인의 정의가 위기에 빠진 상태(낸시 프레이저)에 대한 처방전으로 주어진 ‘커뮤니티’ 또는 ‘안식처’다.(12) 또 동시에 이 배는 젊은이들을 단념시키는 공간이다.(13) 후루이치는 무라카미 류의 소설, 『희망의 나라로 엑소더스』의 한 구절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이 나라에는 없는 것이 없습니다. 정말 많은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희망만은 없습니다.”(14) 인간은 희망 때문에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과 장래를 비교하게 된다며, 현실과 희망의 격차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을 희망난민이라 부른다. 희망난민은 희망을 지닌 채로 희망이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 속에서 자기 찾기를 이어가며, 희망이 이루어질 여지가 보이지 않아 생기는 ‘폐색감’으로 고통받는다. 이들을 위해서, ‘희망 냉각 회로’가 필요하다. 희망난민이 된 젊은이들을 냉각시킬 필요가 있다.(15)

일본에서 희망난민이 늘어나는 이유는 메리토크라시(능력주의)라는 기존 질서 붕괴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시절의 일본에서는 ‘좋은 대학’에 들어가면, ‘좋은 회사’에 들어갈 수 있고, ‘좋은 인생’을 영위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매우 익숙한 이야기다. 그러나 이제는 ‘좋은 학교’에 입학했다고, ‘좋은 회사’에 들어간다는 보장도 없고, ‘좋은 회사’에 들어갔다고 해도 ‘좋은 인생’을 보증해 주는지 모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17) 문제는 메리토크라시가 기능 결핍에 빠진 사회에서, 젊은이들에게 계속 꿈을 쫓을 것을 강조하고 있으므로, 저마다 꿈을 찾는 ‘파랑새 증후군’에 빠져서 현재 생활과 다른 선택지가 어딘가에 있을 것만 같이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희망난민이 되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후루이치는 ‘단념하지 못하는 젊은이’가 아니라 ‘단념하지 못하게 하는 사회 구조’를 문제 삼고 있다.(18-19)

그렇다, 문제는 단념하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 구조다. 희망을 말하는 건, 즉각 절망의 반대말이 된다. 그렇면서, 그냥 웃어넘기면 대충 만족하고 살라는 것이면, 하층민을 내려다보는 것처럼 되어버린다. 예를 들어 내가 대충 포기하고 만족하고 살라고 하면, 대뜸 이런 반응을 받게 된다. ‘너는 공부할만큼 했으니까’, ‘너는 외국에서 살만큼 살아봤으니까’, ‘너는 아내가 전문직이라 걱정이 없으니까’. 실은 이런 말을 입으로 꺼내지는 않지만, 속으로 하고 있지 않을까 두려워 망설이게 된다. 나는 목사인 동시에 동네에 크지도 작지도 않은 교회에서 주말마다 젊은이들과 어울린다. 나는 이들에게 ‘희망’을 가지라고, 믿으면 된다고, ‘뽐뿌질’을 하고 있는 것인가, 혹은 해야만 하는 것인가. 아니면, 젊은이들과 그럭저럭인 삶에 만족하고 살자고 말하고 있는 아니 말해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젊은이들의 어두운 현실을 직시하게 하고 있는 것일까. 종종 무슨 일을 하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지럽다.

견고한 일본은 말랑말랑한 사회가 되었다.(25) 후루이치는 1973년과 1991년 무렵에 일본 근대에 커다란 전환점이 왔다고 말한다.(26) 부국강병이나 경제 성장이 모두에게 좋은 일이길 의심하지 않던 시대를 지나, 1973년 무렵 오늘날, 후기 근대, 포스트모던, 리퀴드 모더니티, 성숙 사회 등으로 부르는 ‘후기 근대’ 사회가 도래하는데, 이는 선진국들이 어느 정도의 근대화를 달성, 즉 경제적으로 풍족해졌기 때문에, 경제 성장의 부정적 측면에 주목하기 시작해서 이다.(27-28) 지그문트 바우만은 전쟁 승리나 경제 성장 같은 표준 모델을 잃어버린 사회를 유동적인 사회라고 표현한다.(29) 모두가 함께 공유할 ‘이야기’가 없는 사회, 기든스가 말하는 ‘존재론적 불안’, 딛고 선 발밑이 무너져, ‘나’라는 존재가 공중에 붕뜬 것 같은 ‘끝없는 자기 찾기’에 빠진 시대’이며, 더 이상 사회가 ‘이야기’를 던져 주지 않기 때문에 각자 스스로 자기 이야기를 만들어 가야하는 시대이다.(30-31)

1991년 거품 경제의 붕괴를 기점으로 일본에서는 ‘가족’, ‘교육’, ‘일’ 세 영역의 삼각형 구조가 붕괴한다. 어머니가 자녀의 교육을 위해 비용을 아끼지 않고, 좋은 학교에 들어가면, 일괄채용(공채)으로 일로 들어가고, 아버지는 일해서 가족에게 돈을 벌어다 주는 일종의 순환 모델이다. 이 영역이 붕괴하기 시작한 것은 ‘일’의 영역의 불안정으로부터다. ‘좋은 학교’를 나와도, ‘좋은 회사’의 정사원이 될 수 있는 것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일본은 삼각형 구조에서 나가떨어지는 층과 점점 작아지는 파이를 두고 아귀다툼하며 어떻게든 삼각형 구조 안에서 버티는 층으로 양극화하기 시작했다.(31-32) 게다가 2차 대전 후 일본은 기업을 통해 사회 복지를 제공해 온 사회, 종신 고용, 연공서열, 기업별 조합이라는 구조가 개인을 지켜 온 사회로,(33) 젊은이들이 복지가 없는 일본이라는 사회에서 ‘고용의 유동화’를 겪게 되자, 문제가 발생했다.(35) 그러다 보니 좌절한 젊은이들 중에는 ‘희망은 전쟁’이라며, 파괴를 통한 사회 재편성을 꿈꾸는 주장까지 나온다. 이런 외침은 1990년대 후반부터 이어진 ‘내셔널리즘 붐’과 관련이 있는데, ‘일본은 좋다’ 혹은 ‘일본의 전통은 훌륭하다’는 구호로, 오구마 에이지(小熊英二)는 내셔널리즘이 ‘치유’ 기능을 가진다고 까지 말한다. 기존의 공동체가 기능을 상실해 떠돌던 보통 시민이 “불안과 공허함을 안고, 순간의 해방과 안정감”을 찾아 “역사라는 안식처”로 모여든다.(37) 『인정 투쟁』의 악셀 호네트를 비롯해서 ‘승인공동체’에 대한 주장이 일본에도 많지만, 후루이치의 연구는 공동체가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고, ‘젊은이’를 단념시킨다는 주장이다. ‘공동성’이 ‘목적성’을 ‘냉각’시킨다.(43) 공동성이란 함께 있다는 것 혹은 공동체의 분위기에 익숙해진 상태, 목적성이란 무언가 특별한 이념이나 정치적 관심이 있는 정도의 의미이며, 목적성의 달성은 사회적 승인을, 공동성의 획득은 상호 승인을 의미한다. 그리고 냉각이란 목적성이 있는 상태에서 없는 상태로 이동하는 사회적 노화 현상을 말한다.(44-45)

책을 읽으면서, 날마다 느끼는 것이긴 하지만, 너무나 똑같다는 탄성이 나왔다. 한국과 일본은 구조가 거의 동일하다. 이유는 간단하다. 한국이 일본을 베꼈기 때문이다. 한국은 일본에서 사회구조의 구성법을 배웠을 뿐 아니라 문제의 해결책도 베껴왔다. 이건 비단 식민지 시기에만 그랬던 것이 아니고,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그래왔다. 일단 들어가기만 하면, 책임진다는 신화가 가장 일본스러운 기업인 ‘삼성’에 있었다. 지금은 그 마저도 희미해지고 있지만. 그리고 또 하나 퍼뜩 깨달은 것이 있는데, 일본도 이 문제에 대해 해결책을 못찾았다는 것이다. 이제 한국은 더 이상 정답을 베낄 곳이 없다. 그동안 한국 사회, 경제, 정치는 문제가 생기면, 그저 외국을 나가서 돌아다니기만 하면 되었다. 세계에는 한국 보다 먼저 그런 문제를 직면한 나라도 있고, 해결해 온 나라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외국 유학은 모든 면에서 큰 문화자본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이 별다른 자본이 되지 못한다. 너무 많은 사람이 문화자본을 나누어 가져서가 아니다. 그와는 반대로 한국이 ‘그저 그런 선진국’이 되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큰 비난을 받아온 이전 정권은 자기 목표인 ‘선진화’를 이룩한 셈이었다. 문제는 선진화한 결과가 환상적이지 않고, 그저 그런 일상이라는 데 있다. 한국이 지금 막 당하기 시작한 문제들을 선진국들은 길게는 10년에서 20년 짧게는 5년 정도의 시차를 두고 직면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도 동일하게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한국 사회가 지금 직면하고 있는 혼란,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직면하게 될 혼란은 더 이상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한국사회는 시험공부를 위한 문제집 풀기와 비슷했다. 문제가 있다, 풀이 방법도 있고, 예시도 있다. 그리고 문제집 뒤를 보면, 정답과 해설이 있었다. 좀 신경써서 별책으로 된 경우도 정답과 해설이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런 문제집은 이제 모두 풀어버렸다. 지식을 충분히 쌓았든 못쌓았든. 이제 더 이상 풀 문제집이 없다. 더 정확히 말하면, 문제는 어디에나 있지만, 정답과 해설이 붙어 있는 문제집은 더 이상 없는 사회가 되었다. 이제 스스로 문제를 만들고, 찾고, 발견하고, 풀어가야 하는데, 지금까지 너무 오랫동안 정답이 있는 문제집에 의존하다 보니, 계속 이 현상과 비슷한 문제집은 없는지 찾고 있다. 북유럽산 문제집, 독일산 문제집, 미국산 문제집, 일본산 문제집을 풀어보고 있지만, 이게 실력을 늘이는 데, 별 도움도 안되는 것 같고, 지금 눈앞의 문제를 푸는데 도움도 안되는 것 같다. 이제 슬슬 그걸 깨닫고 있는데, 그걸 깨닫는 게 좀 고통스럽고 외면하고 싶다. 더 이상 모범답안이 없으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모범답안이 있으면, 그걸 먼저 입수하기 위해, 선행학습과 주입식 교육을 하거나, 해외 유학을 가면 됐는데. 이젠 그럴 방법이 없다. 사회가 혼란에 빠지는 건 지극히 당연하다. 오랫동안 자기 손으로 문제를 풀어온 이들, 문제집과 답안지를 만들던 이들,(미국과 유럽) 그 문제집을 구해서 먼저 풀어보고, 알기 쉽게 전해주던 이들(일본)과 모두 같은 문제 앞에 선 것이다. 원래 공부를 하다보면, 모두 언젠가 그런 지점에 서게 된다. 이제 스스로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어쩌면 그토록 비난해 마지 않는 주입식 교육, 선행학습과 같은 것들은 그렇게 나쁜 것이 아닌지도 모른다. 그것은 지난 세기의 압축적 근대화에 가장 적합한 공부방식이었다. 정답이 있는 세상에서는 정답을 먼저 획득하고, 그 정답에 가장 익숙해지는 것이 성공의 지름길이다. 주입식 교육을 비난하고, 창의성에 대해 눈뜨는 이유는 주입식 교육과 선행학습이 원래 나쁜 것이라기 보다. 이제 효용을 다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쓸모가 없다는 걸, 모두가 알아버렸는지도 모르겠다.

여행은 어느나라에서나 젊은이들의 통과의례, 혹은 그같은 자기 찾기의 길이었다. 유럽과 영국에서 시작된 방랑과 단체여행의 역사로 부터 후루이치는 이야기를 시작한다.(54) 그러면서 유럽에서 노동자들의 단체 여행을 활성화한 것은 나치 독일이란 사실을 슬쩍 빼먹는다. 몰랐을 수도. 일본에서는 1960년대 후반의 ‘가니(게)족, 커다란 배낭을 지고 넉넉치 못한 비용으로 여행을 떠난 젊은이들. 배낭이 좌우로 커서 열차에서 옆으로 걸어야 했기에 가니족이라고 불렸다. 목적지는 주로 훗카이도.(55)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노르웨이의 숲)』의 주인공 와타나베 하지메가 떠났던 여행이다. 1970년 오사카 만국박람회 이후, ‘디스커버 재팬’ 등의 캠페인을 따라 여성지 ‘앙앙’과 ‘논논’을 끼고 교토나 가마쿠라 같은 일본 내 ‘고도(古都)’를 관광하던 ‘앙논족’도 있었다.(56) 후루이치는 가니족과 앙논족의 성행을 근대의 변화를 통해 설명하며, 다시 오구마 에이지를 끌어들인다.(小熊英二, 『1968〈上〉若者たちの叛乱とその背景』과 『1968〈下〉叛乱の終焉とその遺産』) 그는 1968년의 학생운동(안보투쟁) 등 ‘젊은이들의 반란’의 원인 중 하나로 ‘현대적 불행’을 지목했다. 경제 고도성장과 대량 소비문화의 침투 속에서 젊은이들이 느낄 수밖에 없었던, ‘폐색감’, ‘공허감’, ‘현실성의 결여’ 같은 ‘삶의 고통’.(57) 정체성 위기에 직면한 젊은이들이 자기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반항’을 시작했다는 게 오구마 에이지의 분석이다.(58) 가니족은 히피 운동처럼 기성의 사회 구조나 소비 사회에 대한 반항이라는 성격을 앙논족은 남성 중심주의적 사회에 대한 저항 문화라는 측면을 가진다. 젊은이들은 ‘자기 자신’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고도성장기의 일본에서 모두들 결국 취직을 하며, 머리를 자르고, 더 이상 젊지 않다고 말하며 어른이 되어갔다.(58) 1986년과 1996년 일본에서 전국적으로 배낭여행 붐이 인다.(59) 거품 경제가 붕괴한 일본에서 ‘자기 찾기’를 주제로 한 여행이 다시 시작된다.(60) 앙논족이 사라진 후 1990년대 중반까지 젊은 여성들을 중심으로 한 해외여행 붐은 계속되었다.(61) 그러나 이런 자기 찾기 여행도, 제도화한, 즉 장사꾼들이 만들어놓은 ‘지저분한 디즈니랜드’에 불과했다.(62) 2007년 무렵부터 젊은이들이 여행을 떠나지 않는 ‘여행 기피’라는 말이 돌아다녔고, 이는 ‘돈’과 ‘시간’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여행은 이제 소멸해가는 것 같다.(64-65) 그러던 중 ‘신단체 여행’이라는 패키지 상품이 호조를 보이는데, 이는 공동성 속에서 ‘자기 찾기 놀이’를 즐기는 것이다.(65) NGO가 주최하는 봉사활동, 교환 여행, 교환 프로그램 등은 케냐 자연 보호 투어나 캄보디아에서의 지뢰제거 또는 팔레스타인 난민 지원처럼 색다른 뽐낼만한 일이 있는, ‘승인 공동체’에 대한 암시이기도 하다. 여행은 다시 매스 투어리즘의 ‘공동성’으로 회귀하고 있다.(67) 이제 젊은이들은 여행동기와 함께 갈 사람이 있으면 여행을 떠난다.(68) 게다가 한 손에 스마트폰, 다른 한 손에 신용카드가 있는 이 시대에 더이상 진정한 여행은 불가능하다.(71) 후루이치가 연구하고 있는 피스 보트 같은 신단체 여행은 ‘자기 찾기 여행’의 망령이다.(72) 피스 보트는 1983년, 과거 전쟁의 흔적을 찾는 다소 정치적인 여행으로 시작되어,(76) 일본과 아시아를 여행하다, 1990년 세계일주 크루즈를 시작했다.(78) 크루즈 여행 중 배가 망가져 승선객도 함께 식자재를 옮기는 멋진 에피소드도 제공해 주는 피스 보트는 2010년 현재 70회, 세계 일주만 해도 30회 이상이다.(80-81)

무전여행 같은 낭만이 끝났 후 나는 대학에 들어갔다. 당시 조흔파류의 통속 청소년 소설이나, ‘고래사냥’ 이나 ‘모모’ 같은 영화에 나오는 무전여행의 시대는 끝났고, 우리는 가끔 버스와 기차로 여행을 했다. 20대 중반쯤, 나도 혼자서 무슨 청승인지, 동해안을 한 바퀴 돌았던 기억이 난다. 혼자서 일주일 동안 발길 닿는 곳에서 머물고, 먹고 자고 하면서. 1990년대 중반 내가 대학을 마칠 때쯤, 대학원을 다닐 때쯤, 그러니까 이 책에 나오는 일본에서는 버블 붕괴가 일어나던 시절, 한국은 경제성장이 마지막 피치였고, 너도 나도 해외 배낭여행을 떠났다. 이젠 해외여행은 흔한 일이 되어, 어학연수, 워킹 홀리데이, 해외 장기 체류, 세계 일주 등을 하고 있다. 물론 그런 여행을 못가본 이들도 적지않다. 아니 어쩌면, ‘바람의 딸’ 선풍의 쇠퇴와 더불어 그런 시대도 끝나가고 있다. 우습게도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뭔가 비즈니스 기회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후루이치가 말하는 ‘신단체여행’은 교회에서 이미 오래 전에 하던 일, 그나마 이제 한 물간 일 같은 느낌이 들었다. 단기선교와 비전 트립. 단기 선교는 1주에서 2주 정도 선교지(라고 적고, 저개발국가의 가난한 지역이라고 읽는다)에 가서 봉사활동도 하고, 물론 선교도 하고, 돌아오는 패키지 여행이고, 비전 트립은 그보다는 좀더 노골적인 형태의 여행이다. 기독교 교회는 오래 전부터 ‘신단체여행’을 제공해 온 셈이다. 게다가 그 준비과정과 진행도 아래에서 말하는 피스 보트와 유사한 점이 많다. 교회의 ‘단기선교’는 해외 배낭여행의 붐과 더불어, 유럽 여행은 가고 싶으나 너무 향락적이거나 소비적이어서 위험한 느낌도 들고, 모험할 용기는 없으며, 비용의 부담도 느껴온 교회 안의 젊은이 들에게 제공된 일종의 대체재가 아니었을까. 그러면서 동시에 전도와 선교라는 종교 본래의 목적까지 충족시켜 주는.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피스 보트 류의 일본의 ‘신단체여행’이야말로, 대부분 종교를 가지지 않은 일본인의 종교적 체험이 아닐까. 이들이 피스 보트에서 하는 ‘자기 찾기 여행’이나 ‘통과의례’야 말로, 원래 종교가 제공하던 가장 원초적 기능이 아닌가.

이제 피스 보트 이야기로 실제 들어가 보자. 후루이치가 탔던 피스 보트는 생각만큼 정치적이지 않았다. 피스 보트는 정치성을 지우면서, 입으로만 생각으로만 ‘오로지’ 세계평화와 ‘오로지’ 국제교류만 내세우고, 지구 시민이나 평화 같은 막연한 용어만 나타난다.(86-88) 물론 단순한 관광은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9조 댄스’, 헌법 9조(전쟁포기와 평화주의에 관한 조문)의 이념을 힙합 리듬에 맞춰 표현한 춤으로 수많은 이벤트에서 반복한다. 배에 타기 전에 피스 보트 센터에서부터 연습이 시작된다. 헌법 9조를 각 지방의 사투리로 반복하기도 하고, ‘천황인가, 국민인가?’ ‘군대를 가질 것인가, 포기할 것인가?’ 같은 것을 묻는 퍼포먼스도 한다.(92-93) 왠지 ‘믿습니까’가 연상되는 장면이다. 그러나 젊은이들이 피스 보트를 선택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우선 저렴하다. 1인 99만엔의 포스터를 보면 알수 있다. 물론, 1인 객실의 경우 370만엔까지 있지만, 대부분의 젊은이들이 머무는 4인객실은 보통은 178만엔에서 148만엔 수준이다. 일본에서 출발하는 다른 세계일주의 경우 최저 435만에서 시작해서 2,500만엔 까지 든다. 게다가 혼자 타기 어렵다. 기준은 2명으로 맞춰져 있다.(95) 둘째, 편하다. 복잡한 드레스코드가 없다. 다른 세계 일주 크루즈의 경우 만찬에선 드레스를 입고, 때론 턱시도 차림을 해야 하기도 한다. 게다가 배 위에서 다소 정치적 이벤트가 열려도 가지 않으면 그만이다. 그렇다면, 저렴하고 편안한 관광선일 뿐이다.(96-97) 게다가 포스터를 붙이고 무료로 세계 일주를 할 수도 있다. 전국의 피스 보트 센터에서 크루즈 참가 독려, 자료 발송 등의 봉사를 하면, 한 시간에 800엔, 포스터 3장을 붙이면 1,000엔의 할인 혜택이 주어진다. 쉬운 일은 아니지만, 3,000장을 붙이면 공짜로 탈 수 있는데, 이를 젠크리(全クリ, 전부 클리어, 게임용어)라고 하며, 후루이치와 함께 탄 중에도 3명이 있었다.(99-100) 승선 전에도 피스 보트 센터에서는 다양한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서로 상대방을 닉네임으로 부르며, 나이에 상관없이 존댓말을 사용하지 않는다. 선내에서도 이 규칙이 적용된다.(103) 이를 지탱하는 것은 책임 파트너로 피스 보트를 탔던 사람들로서, 5만엔의 출자를 하며, 항해가 적자에 빠졌을 경우 부채를 인원수대로 나눠 갚아야 한다. 원형적인 보험회사 같은 구조다. 1995년에 1억엔의 적자가 발생해 한 사람당 180만엔의 부채를 갚았다고 한다. 전담 스태프가 되어도 저임금에 장시간 노동을 하는 건 마찬가지다.(104) 피스 보트 센터는 사람들을 이어주고, 그들에게 이곳은 머물고 싶은 곳이 된다. 여기서 젊은이들은 ‘공동성’에 빠진다. 그리고 포스터를 붙임으로써, 피스 보트의 이념에 동화하는 ‘자기 교화’가 이루어진다. 포스터를 붙이기 위해 설명하는 동안 애정도 깊어진다.(107) 피스보트 승선객은 대부분 젊은이이고,(116) 첫 해외여생인 경우가 많고,(117) 대부분 4인용 객실을 쓰지만, 일부는 슬럼처럼 되어버린 방을 피해 배 안에서 조차 소파 난민이 되기도 한다.(120-121) 게다가 우에노 치즈코(上野千鶴子)는 후루이치에게 집요하게 그것(섹스)에 대해 물었지만, 대부분 그것 자체를 그다지 하고 싶어하는 분위기로서 초식화의 물결이 넘실대고 있었다.(121) 114일 동안 22 곳에 기항하는 여행으로, 대부분 옵션에 10만~30만엔의 비용을 쓴다.(121-122) 100일이 넘게 진행되는 세계 일주 크루즈 여행은 사실 기항지에서 체류하는 시간보다 선내에서 보내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길다. 그래서 수맣은 이벤트와 ‘자유 기획’이 열리는 데, 양로원 옆자리에서 맨날 문화 축제가 벌어지는 모습을 연상할 수 있다.(126) 온갖 ‘자유 기획’이 하루 50회 넘게 열리기도 했다.(127) ‘선내 신문’을 통해 모든 일종의 고지되며, 승객들은 의외로 시간 관리에 신경써야 하고, 신문국, 영상국 등은 자원자로 운영되었다.(128) 승객들 중에는 정사원(정규직)이 의외로 많았는데, 같은 정사원이라고 해도 주변적 정사원 즉, 노동 조건이나 환경이 비정규직과 다르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130) 간호사 등 전문자격증 소유자가 많고, 연봉은 평균보다 살짝 아래, 학력은 평균정도였다.(132-133) 상류층도 하류층도 아닌 젊은이들에게 피스 보트는 유동적인 노동 시장에서 벗어나 잠시 쉴 수 있는 작은 휴식처로 기능했다.(135) 따분한 일상을 벗어나고 싶다거나, 이대로 인생을 마치고 싶지 않다거나, 자기를 찾고 싶다는 식으로 모호하게 표현된 승선 동기는(136-140), 다시 한 번 오구마 에이지의 제안을 따르면, ‘현대적 불행’ 때문이다. 이대로 인생을 끝내기 싫다는 ‘폐색감’이나 ‘공허감’ 때문이다.(144) 오구마 에이지의 말처럼 학생운동이 자기 확인 운동 또는 표현 행위 였던 만큼,(144) 포스터를 붙이거나, 200만엔 정도의 여행 비용을 지불할 수 있으면, 살아있음을 실감할 수 있는 ‘자기 찾기의 유령선’인 셈이다.(146) 오구마 에이지는 1960년대만 해도 ‘마음’의 문제가 정치나 경제와 분리되지 않았는데, 현대는 ‘마음’의 문제를 정치 바깥에서 찾고 해결한다. 이를 ‘치유’, ‘트라우마’, ‘스트레스’, ‘자기 계발’ 등으로 부른다.(147) 피스 보트는 ‘심리학화’하는 사회와 일치하며, 평화나 반전 같은 정치운동을 단지 ‘생각’으로 환원한다. 피스 보트는 ‘마음’이나 ‘정체성’의 문제가 평화나 반전 같은 정치 문제와 접속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팝 심리학, 자기 계발 서적, 네트워크 비즈니스(다단계) 등이 말하는 ‘사고는 현실화된다’, ‘자신이 변하면 세계도 바뀐다’, ‘무슨 일이든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성공하기를 바란다면’ 같은 사고방식이 그 아래에 깔려있다.(148)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피스 보트는 교회다. 오로지 입으로만 구원, 사회정의, 축복, 하나님나라를 내세우고, 이를 육체적 행위, 찬양이나 퍼포먼스로 표현하는. ‘믿습니까’라는 단답식 질문에 답하며, 비교적 저렴하게, 자기 수준과 상황에 맞게 참여할 수 있는 곳. 헌금하기 어려우면, 교회 봉사로 소속감을 확인할 수 있다. 교회는 점점 간편해지고 있으며, 참여도 점차 간단해 지고 있다. 그리고 이런 교회를 책임지는 사람들이 있다. 피스 보트의 책임 파트너는 장로, 목사, 안수집사, 권사가 아니라, 파트 전도사와 신학생들이다. 이들은 자기 인생을 투자해서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면서 교회를 유지해 나간다. 전도나 선교는 ‘자기 교화’의 기능을 한다. 그들은 대부분의 시간을 교회에서 보내며, ‘공동체성’에 빠져든다. 여기서는 혼자가 아니다. 혼자로 버려지는 것 같으면, 떠나서 다른 교회로 옮기면 된다. 수많은 이벤트와 기획이 열리지만, 한계 안에서 움직이고, 주보와 교회 게시판으로 모든 것이 제시된다. 표현할 수 있는 내용이나, 생각에는 한계가 있다. 자기검열도 있고, 목사나 당회의 통제도 있다. 무엇보다 공동체성을 가장 고민한다. 교회활동에 상류층은 한 발짝만 걸치고, 하류층은 그나마 참여하기 어렵다. 주변적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교회에 정말 많다. 학생도 많다. 그리고 모두 인생의 의미에 대해 고민하며, 하나님의 뜻에 대해 고민하고, 자기를 찾으며, 마음을 통해 해결한다. 믿음을 가지고,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져야 한다. 피스 보트 센터와 피스 보트는 교회, 수도원, 장단기 선교 여행의 모든 것을 함께 가지고 기능한다. OM선교회와 YWAM이 운영하는 둘로스호나 로고스호 같은 선교선에는 도대체 어떤 모습이 있을까.

후루이치는 배를 탔다. 그의 르포는 직접 읽어보라고 자세히 스포일하지 않겠다. 그는 젊은이들을 ‘세계형’, ‘문화 축제형’, ‘자기 찾기형’, ‘관광형’으로 분류한다.(153) 이름만으로도 대충 알 것 같다. 문제는 배에 구멍이 나는 등 크루즈에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했을 때였다. 일정은 지연되고, 미국에서 출항하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설명도 미비했다. 일부 연장자들 사이에서 불만이 높아지고 운영자 측에 항의하는 가운데, ‘피스 보트교’의 신자라고 할 수 있는 ‘세계형’ 젊은이들이 나섰다.(161) 이들의 표현을 직접 인용해 보자. “우리는 여러분(선박 회사, 저팬그레이스(운영주체), 피스 보트라는 장)에게 보호받고 있는 아이들입니다. 우리는 지금, 마치 부부 싸움을 지켜보듯 매우 슬픕니다. 행복한 가족이 될 수 있도록,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하고자 합니다. 그러므로 아빠, 엄마, 싸우지 마세요. 왜냐하면, 이 집의 이름은 ‘평화’ 이니까!”(162) 정말 어처구니가 없다. 젊은이들은 문제해결이 아닌 평화로운 외면이 유지되길 원했다. 문제를 수리하기 위해, 배가 뉴욕 항에 머물자 이들은 뉴욕을 즐겼고, 플로리다에 가서 배를 점검해야 하자, 이들은 ‘디즈니랜드’로 놀러갔다.(164) 선사에서 선객을 달래기 위한 비장의 카드인 불꽃놀이도 있었다.(168) 그러나 심지 굳은 네 명의 노인들은 항의를 멈추지 않았고, 수차례 선내 집회를 개최했다. 놀랍게도 이들은 학생 운동 세대였다.(169) 배 안에서 주최 측에 항의하는 설문지의 복사를 불허하자(말도 안되지만) 플로리다에서 복사해다 돌렸고, 역시 ‘세계형 젊은이’들이 나서서 연장자들과 싸웠다. 이들에게 연장자들의 항의행동은 피스 보트를 흔드는 볼품없는 일이었다.(170-173) 노인들은 분노했지만, 피스 보트 측은 대화를 거부했고, 젊은이들은 이 상황을 슬퍼하면서 울었다.(176-177) ‘세계형’ 젊은이에게 공통된 점은 ‘이질적인 것’에 대한 유약한 내성이었다. 왜? 이들이 ‘이질적인 것’에 약한 이유는 이들이 논리나 언어가 아닌 ‘감각’을 통해 공동성을 구축했기 때문이다.(177) 평화와 헌법 수호를 기리는 춤을 추지만, 결국은 ‘자기 찾기’라는 목적으로 수렴되었다.(184) 피스 보트는 헌법 9조라는 이해하기 쉬운 이야기를 젊은이들에게 제공해 주었다. 헌법 9조가 있으면 일본은 평화라는 알기 쉬운 이야기이다.(186) 당연히 그럴리가 없다. 이것은 우익이 제공하는 역사와 전통의 고유한 서사시는 아니었지만, 대신 좌익이 제공하는 낭만이었따.(188) 이들은 입으로 세계를 외쳤지만, 세계란 그저 배경에 불과했다.(189) 젊은이들은 세계라는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바꾸고 사람을 바꾸어가며, 사진을 찍었다. 조형물에 키스, 동시에 점프, 위에서, 멀리서 찍은 사진, 그들은 ‘모델’이었다.(193) 세계 평화는 생각만으로도 이루어지며,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상대방과는 대화나 토론을 통해 타협점을 찾으려 하지 않고, 슬퍼하면서 끝내버렸다.(196) 배 안에서 자기 개발서인 『시크릿』이 유행했다.(197) 승선객들은 대부분 자기 정체성에 대해 불안해 했다.(200) 이 배는 뿔뿔이 흩어진 일종의 ‘섬 우주’였고, 그곳에서 사람들은 승패에 구애받지 않았다.(199) 이들이 하는 수많은 활동과 이벤트는 실상 주최즉이 제공한 ‘모형 정원’에서 벌어지는 온화한 놀이였고, 선내 신문도 거슬리는 사실은 알리지 않았다. 그들은 스스로 꺼려했다.(204-205) 자폐적인 태도, 심정적이고 폐쇄적인 온화함이다.(206) 크루즈를 마칠 때쯤 대부분 타기를 잘했다고 말하는데, 그들의 만족은 해외의 기항지나 그곳의 만남이 아닌 자기 성찰이나 배 안의 인간관계에서 ‘깨달음’으로 형성되었다.(210)

이 교회는 갈등을 감당해내지 못하는 교회다. 문제를 발견하고도 항의하지 못하는 교회. 그래서 교회개혁운동은 늘 실패한다. 젊은이들의 공감을 얻지 못한고, 젊은이들은 때로 부패하고 타락한 교회 지도자들의 편을 든다. 그들은 교회가 갈라지고 싸우는 것을 슬퍼한다. 그들이 슬퍼하는 것은 허위의식이 아니다. 감각적인 신앙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소수의 교회 내 개혁세력(운동권)은 고립된다. 이들은 젊은이들의 동의를 얻지 못하고 후퇴하고 만다. 지난 몇 년간 ‘희망버스’라는 것이 있었다. 밀양으로 강정으로 쌍용차로 이어지는 그 여행은 결국 흐지부지 되고 말았는데, 즉 변화의 동력으로 자리잡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운동권들의 동창회 같은 느낌이어서가 아니었을까. 아저씨들의 ‘꼰대질’을 젊은이들이 받아내지 못해서가 아닐까. 그렇다고 감성적으로 접근한다면, 문제해결로 갈 수 있을까. 작년에 일본에서 한참 활발했던, 안보법안관련 집회가 떠올랐다. 실즈(SHEALDS)라는 젊은이들이 힙합을 추면서, 랩으로 구호를 외치던 장면이었다. 저항은 저렇게 해야 한다고, 저항은 놀이라고 말했지만, 실상 아무 것도 막지 못했을 뿐더러, 실즈는 해체했다고 한다. 다른 것으로 변해가겠지. 그것 역시 일종의 소비가 아니었을까. 차라리 그들은 보도블럭을 깨서 손에 들고, 화염병과 쇠파이프를 들고 도심에 바리케이드를 쌓아야 하지 않았을까. 정말 막으려고 했더라면 말이다. 그러니 남은 것은 선거 뿐인 셈이다.

피스 보트가 끝나도 젊은 이들에게 축제는 끝나지 않았다. 룸셰어가 많아졌다. 더 이상 정치적 화제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224-225) 세계 평화라는 목적성 보다 공동체라는 공동성을 유지하기 위해 애쓴다. 차라리 필요에 따라 목적성을 소환한 공동체라고 생각하는 편이 낫겠다.(226) 관광형 젊은이들은 모라토리엄을 끝내고 일상으로 돌아가지만, 역시 단체 미팅은 함께 간다.(229-230) 자기 찾기형은 해외 지향과 크리에이티브 지향으로 나간다. 그들은 공동성에 거리를 둔다.(231) 이들에게 피스 보트는 현대적 불행을 치유하는 장치가 되지 못했다.(233) 피스 보트라는 ‘승인 공동체’는 사회 운동이나 정치 운동과의 접촉성은 커녕, 젊은이들의 희망이나 열기를 ‘공동성’을 통해 포기시키는 기능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부르디외가 말한 ‘사회적 노화’ 개념에 가깝다. 또는 어빙 고프먼이 말한 ‘냉각’.(236) ‘세계형’ 젊은이들이 ‘냉각’에 빠지고 ‘자기 찾기형’ 젊은이들이 다시 자기 찾기로 돌아가 리턴 매치를 갖는다는 사실은 ‘현대적 불행’이 사회적 승인이 아닌 ‘공동성’이 제공하는 상호 승인에 의해 위로받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공동성’이야말로 ‘목적성’을 ‘냉각’하기 위한 열쇠이다. 젊은이들은 이렇게 단념하고 어른이 되었다.(237-238) 피스 보트는 목적성 없이 공동성만 향유하는 커뮤니티, 즉 일본의 무라(ムラ, 마을, 공동체)다. 근대적인 목적을 가진 ‘어소시에이션, 즉 결사’가 아니다.(245) 젊은이들은 ‘현대적 불행’에서 느끼는 감정이나 충동을 더는 억제하지 못해 피스 보트에 승선한 것이다. 그리고 목적성을 냉각시킨 결과, ‘작은공동체로 모여드는 젊은이들’이 되고 만 것이다.(246) 바우만이 말하는 축제 공동체가 아닌 클락(옷보관소) 공동체이든 마페솔리가 말하는 정서적 공동체든, 일종의 부족이든.(247) 그래도 피스 보트는 개방성을 남겼다.(248) 공동성이 가져다주는 상호 승인은 ‘세계 평화’라는 목적성을 단념하게 된다. 이것을 ‘안식처’의 함정이라고 할 수 있다.(249) 기득권 층의 입장에선 이보다 좋을 수 없다. ‘현대적 불행’을 느끼면서도 200만엔 정도의 돈을 지불하고 바라던 대로 피스 보트에 승선해 자신들의 손으로 공동체를 만들고, 저렴한 노동력으로 반항하지도 않고, 사회를 지탱해 주므로. 공동성이 목적성을 냉각시켜 공동체를 만들어낼 정도이니 혁명 따위가 일어날리 만무하다. 재분배 문제는 덮였다.(253) 후루이치는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첫째, 공동성 만을 축으로 한 목적성 없는 공동체가 존재한다. 둘째, 포스트모던 커뮤니티는 사회 통합의 기초가 될 수 없고, 사회 운동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없다. 셋째, 승인의 정의를 담보하는 공동체가 아닌 데다 목적성의 냉각으로 인해 경제적 재분배를 요구하는 투쟁으로 전환될 리 없다.(254) ‘하면 된다’라는 식으로 자기 계발을 독려하면, 젊은이들은 좋아하는 것을 하는 시점에서 성패를 자기 책임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후루이치는 그 책임의 절반은 사회의 몫이라고 말한다. 처음부터 제대로된 경력사다리가 없기 때문에, 이대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는 젊은이들이 해외 지향, 크리에이티브 지향으로 기운다. 사회가 ‘희망난민’을 낳고 있다.(257) 사회를 바꾸기 위해선 젊은이들을 단념시켜야 한다.(259) 공동성을 유지하면서도 목적성을 잃지 않는 단체는 냉정하고 총명한 엘리트가 이끌어간다. 이들은 공동성에 만족하지 않고, 고독한 투쟁을 이어간다. 사회전체적으로 보아도, 사회 운동의 규모에서 보아도 공동체를 단순한 안식처로 여기지 않고, 목적성을 달성하기 위해 냉철하게 판단하고, 대외적으로 유머까지 겸비한 엘리트가 사회를 변화시켜 간다.(261-262) 막스 베버의 말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잘라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가진 인간.(262)

재미난 것은 이 책에 붙은 도쿄대 교수 혼다 유키의 해설 또는 반론이다. 후루이치에 덧붙여서, “피스 보트는 일상으로부터 시간적으로(시작과 종료의 구분, 일정한 기간), 공간적으로 (배 그리고 해외), 사회적으로도(크루즈의 구성원) 명확하게 단절돼 있다. 따라서 일종의 의식(儀式)으로서의 성격 · 기능이 매우 현저해진 사례이다. 그런 점에서 건전한 시위, 합숙, 종교 단체 등 일정한 요소를 공유하는 대상과 비교해 봐도, ‘단념시킨다 = 매듭짓는다’라는 움직임이 나타난다”며, 문화인류학이나 어빙 고프만이 좋은 해석틀을 제공한다고 권유한다.(285) 혼다 유키는 저임금에 불안정한 생활을 받아들이고, 젊은이들이 쉽게 단념하는 것이 진짜 문제라고 지적하며,(286-287) 누군가 바꿔주길 바라는 것이 무임승차라고 지적한다.(288) 짧고 가늘다고 해도 역시 목적성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290) 혼다 유키 교수(1964년생)도 그다지 나이가 많을 것 같지는 않지만, 어쩌면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분노하라’고 외친 장하성이 연상되었다. 그들의 말이 너무나 옳으면서도, 왠지 꼰대 소리를 들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어쩌라고라는 말이 이들의 대답이 아니었을까?

누구보다 나 자신이 ‘자기 찾기’ 형으로 끊임없이 자기 찾기를 하고 있으며, 아직도 나는 자기 찾기를 하고 있다. 결혼을 하고, 정착을 하고, 그러면서 아직 젊은이들 사이와 책 사이를 얼쩡거리며, 그래서 나는 늘 무엇인가 해야하고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공허할 가능성이 요즘은 가장 걱정이다. 이 책은 무엇보다 나에게 ‘교회론’으로 읽힌다. 현대의 교회는 어떤 모습인가 하면, 이런 모습이다. 젊은이들이 많이 모일수록 그렇다. 목적성을 말하지만, 실상은 공동성이다. 그래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하면, 떠나는 것이다. 나는 그래서 교회에서 오늘도 계속 ‘희망 난민’을 만들고, 그들을 격려하고 있는 것일까. 오늘은 토요일이고, 나는 곧 교회로 가서 청년 리더 모임을 해야하는데, 오늘 한결 더 고민이 많아졌다. 나는 무엇을 말해야 할까.

2016. 4. 9.

* 괄호 안의 숫자는 번역서의 쪽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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