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에노 치즈코, 『근대가족의 성립과 종언』.


2018년 칸느영화제 그랑프리를 받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만비키가족』. 가족은 만들어진 거라고 만들어가는 거라고 이처럼 솔직하게 말하는 편이 좋지 않나 싶다.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가족의 틀안에서 해결하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더 이상 사람들에게 짐을 지우지 말고.

우에노 치즈코上野千鶴子, 『근대가족의 성립과 종언近代家族の成立と終焉』, 이미지문화연구소 역, 당대(岩波書店), 2009(1994).

가부장제나 가족 구조를 이해하려면 일본을 보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면 고개를 끄덕이다가도 조금 더 설명해 들어가면 그런 것 까지 일본을 보아야 하느냐고 묻는다. 그럴거라고 생각은 하지만 석연치 않아한다. 그만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오늘날 한국의 가족제도가 가진 특징들이 그저 봉건적이거나 전통적이라고 생각하면 그건 환상이다. 가족제도나 구조는 실은 법과 제도의 형성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현대 한국의 가족제도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은 물론 민법이다. 이 민법은 1958년 가인 김병로의 주도로 만들어졌다고 흔히 알려져 있으며, 독일 법학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이 민법의 모태는 조선민사령朝鮮民事令이다. 조선민사령은 1912년 조선총독부를 통해서 일본의 메이지 민법을 가져온 것이다. 그대로 가져오지는 않고, 조선의 풍습이나 환경에 적절히 맞추어서 조절한다. 그 과정에서 중추원이 개입하게 된다. 그리고 그 조선민사령의 모태가 된 것이 1898년 일본의 메이지 민법이다. 이 법안은 프랑스 법학자가 초안을 주도했고, 그래서 나폴레옹 법전의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물론 유럽 각국의 법을 참고하고, 일본의 관습도 고려했다. 그럼에도, 초안 제출 후 약 10년간 일본의 미풍양속을 해친다고 해서 수많은 논쟁에 시달렸다. 그러나 결국 메이지 민법을 제정하게 되었는데. 이는 당시 서구 제국주의 국가들과 맺은 불평등 조약을 개정하기 위해서 떠밀린 경향도 있다. 민법을 제정해서 재산권을 보호받지 않으면 영사재판권을 폐지할 수 없다고 서구 국가들이 주장했기 때문이다. 실제 조선을 식민지로 삼은 직후에 조선에 판사들을 보내고 재판을 실시하고 감옥을 서둘러 설치한 이유 중 하나가 불평등 조약을 개정하기 위해서 였다. 한 마디로 제대로 된 공정한 재판을 하고 있으니 영사재판권을 폐지하라는. 여튼 메이지 민법은 지금 일본에서는 구민법이라고 불리고, 전쟁 후 새로 만들어진 민법은 봉건적이지 않다고 주장한다. 이것 역시 허구나 환상이라고 말하지만. 이런 법령 혹은 제도는 실제 가족의 구성에 꽤 큰 영향을 미친다. 우에노 치즈코는 이런 주장의 맹점을 파고든 것이다.

아쉬운 점은 번역서 제목을 ‘일본 근대 가족의 성립과 종말’ 정도로 했으면 좋을 거라는 점과 원래부터 한 권의 연구서로 쓰여진 책이 아니라서 실린 글들의 무게감이 좀 다른 측면이 있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읽어보면 적지 않은 통찰을 얻을 수 있다. 여기 실린 일본의 가족주의를 근거로 해서 오구마 에이지의 『일본 단일민족 신화의 기원』의 결론 부분에 일본의 가족주의와 식민통치의 정당화 이데올로기를 비교해 보면, 일제 식민 통치 담론의 구조적 모순을 이해하는 데, 꽤 도움이 된다.

근대화를 경험한 모든 사회에서 ‘근대가족’의 특징을 공유하는 역사적 가족이 등장했는데, 여기서는 일본(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일본(한국)문화론에는 일본(한국)의 가족제도를 고유의 전통으로 간주하는 일본(한국) 특수성론이 있으며, 이것은 일종(한국)의 전도된 오리엔탈리즘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어떤 가족제도나 역사속에서 변호하며 일본(한국)의 ‘이에'(家)(가족) 제도도 역사를 초월한 문화유전자는 아니다. 일본(한국)의 근대국가 형성과정에서 이에(가족) 제도가 어떻게 인위적으로 가공되어 온 역사적 구축물 인지를. (5)

한국어판 서문에서 책의 의도를 간결하게 요약해 두었다. 괄호에서 처럼 일본을 한국으로 바꾸어 읽어본다해도 아무런 불편을 느끼지 못할 것이다. 일본 보다 한국을 냉정하게 들여다 보기 어려운 이유는 그래도 일본은 한 번 뒤틀렸는데, 한국은 일본이 한 번 뒤틀릴 때마다 거기 겹쳐져서 제곱으로 뒤틀린다는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구겨진 종이를 펴도 뭐가뭔지 알 수 없게 된다만. 그래도 들여다 보는 것이 무의미하지는 않다. 그리고 이 모든 복잡함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어내려가는 건 우에노 치즈코의 글이 재미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은 가족(따라서 가족환상)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한 가지 힌트를 준다. 형태와 의식 모든 면에서 가족 정체성이 전통형에서 비전통형으로 바뀌어나감에 따라 (이상화되어 있다 해도) 현실의 가족 이상으로 절대적이고 숙명적인 관계를 상상하는 패러독스는, 인간이 ‘가족’이라는 언어로써 표현하는 본질 하나를 드러내 보인다. 사람들은 자발적이고 선택적인 관계-따라서 결합은 물론 해체도 가능한 관계-를 ‘가족’ 이라고 부르지 않는다는 것, 따라서 어떤 선택적 관계가 ‘가족 같은’ 이라는 표현으로 비유될 때는 그 관계의 기반을 선택적인 것에서 절대적인 것으로 바꾸려는 동기가 작용한다는 것이다. 가족 정체성은 비선택적 관계에서 선택적 관계로 이행했지만 동시에 그에 대한 반동으로 가공의 세계 속에서 훨씬 강한 비선택성을 만드는 방향으로도 전개됐다. (59-60)

우에노 치즈코는 전통형 가족에서 비전통형 가족으로 변화해 가는 다양한 형태들을 기술한 끝에, ‘가족 환상’이라는 표현을 쓴다. 가족 환상은 좀 지나치게 자극적인 표현이고, 가족 의식 정도로 부르는 게 더 좋다고 생각한다. 가족은 가족으로 의식할 때 가족이 된다. 그리고 그 관계는 실제 선택적인 것과 숙명적인 것이 뒤섞여 있다. 혈연, 결혼, 입양, 동거 등 다양한 결합 형태를 통해서 피가 섞이든 부엌을 공유하든 가족을 이루어 살고, 그 안에서도 서로 가족이라고 의식하면서 사는 지극히 선택적인 행위를 운명, 숙명, 절대 등의 비선택적 용어로 포장한다는 것이다. 때로는 종교적이고 때로는 신비적인 경향마저 띠게 된다. 우에노 치즈코는 가족은 영원한 심리적 ‘보험상품’이라거나 절대성을 부여하는 환상(61)이라고 지적한다. 이런 결론까지 모두 받아들이지는 못할지라도, 가족이란 실은 만들어진 의식이라는 점은 중요한 출발점이 된다. 아, 도대체 근대에 만들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우에노 치즈코의 입장을 가장 명확히 보여주는 글은 “일본형 근대가족의 성립”으로 그다지 길지 않다. 우선 ‘이에(家)’가 메이지 민법의 제정으로 탄생한 메이지 정부의 발명품이라는 말로 시작한다. 메이지 이전에는 엄밀하게 배타적인 부계 직계 가족을, 무사계급 사이에서는 볼 수 있었지만 서민들은 잘 알지도 못했다.(91) 이에 제도란 근대 국민국가에 적합하게 만들어진 가족모델이며, 역으로 국민국가 또한 가족모델에 적합하게 형성되었다는 것. 이토 미키하루의 『家族国家観の人類学』를 인용한다. 1890년의 『교육칙어教育勅語』와 이노우에 데츠지로井上鉄次郎의 『칙어연의勅語衍義』에서도 말한. 국가의 신민은 부모의 자손이며, 국가는 이에를 확충한 것이라는. 한국인도 익히 아는 충성 효도를 연결하는 주장이다. 물론 이것도 일제다. 많은 것이 그렇듯. 이것이 충효일체의 이데올로기가 된다.(92-94) 특히 우에노는 한국에도 영화 평론가로 알려진 사토 다다오佐藤忠男의 『홈드라마론ホームドラマ論: 家庭の甦りのために』을 인용해서 일본의 가장은 자못 외부의 권력대행자처럼 행동하는 데 그것이 교육칙어로 연결된다고 말한다. 효와 충이 충효로 역전되었다는 것.(94-95) 메이지 정부는 이에의 윤리를 나라의 윤리에 종속시키기 위해 인위적으로 이에 제도를 만들어 냈고, 아오키 야요이(青木やよひ)는 일본식 ‘여자다움’이 전통의 산물이 아니라 근대화 과정에서 유교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이라고 말한다.

이런 논의는 아주 새로운 것만은 아니어서 메이지 유신이 무사계급의 생활관습을 모든 사람에게 적용한 것이라는 주장은 꽤나 널리퍼진 것이다. 그것은 실제 법과 제도의 형성이라는 과정을 통해서 전개 된다. 민법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세계 각국과 어깨를 겨눌 수 있다. 외국의 선진국의 사례를 가져온다. 실제 대다수 국민들의 삶의 방식은 다양하지만, 그런 것은 낡고 모자란 때론 난삽한 것이다 그러니 새로운 것으로 바꿔야 한다. 그런데 서양의 것은 너무나 충격적이고 받아들이기 힘들다. 그렇다면, 현재의 지배층의 방식을 조금 현대화 시켜서 모든 사람에게 적용하자. 그리고 그것은 어느날 전통이 되어 버린다. 마치 식민지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이다. 한국에서도 꼭같은 일이 있었다. 호적을 만들자 모든 사람에게 성과 함께 본관을 부여하게 된다. 지금까지는 성도 없었던 사람이 태반이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이름을 만들게 한다. 성을 부여한다. 그런데, 사회를 지배하던 양반들에겐 성에 본관이 없다는 건 사람도 아니라는 뜻이 된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본관을 가지게 된다. 갑자기 본관을 쓰려니 뭘로 해야할런지 모르겠다. 그냥 동네 이름으로 해야 하는데. 고장 이름을 쓰게 된다. 너도 나도 김해 김씨, 전주 이씨, 밀양 박씨가 되어 버린다. 사람과 사물의 이동이 활발해지자, 본래 아무런 상관이 없던 사람도 호적이라는 문서를 통해서 같은 집안이 되어버린다. 동성동본이다. 그리고 금혼 규정이 적용된다. 왜 금혼을 해야하는지 모르던 사람들이 이제 거꾸로 그걸 정당화해야 한다. 돈을 주고 족보를 산다. 한국에서 지난 백년간 일어난 일을 좀 거칠게 말하면 이렇다. 모든 일은 호적에서 시작되었다. 물론 1909년 민적령에 의한 호적 파악 이후다. 일제의 조선통감부에서 시작한 작업이다. 이때 비로소 모든 사람이 가족이 민법 규정에 의해서 서류상으로 고착화된다. 조선에서 호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결정적인 차이점은 모든 사람에게 동일한 규정을 부여했다는 점, 모든 사람에게 양반들에게나 통하던 규칙을 문서화해서 부여했다는 점이다. 신분제의 철폐 과정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이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가 오늘날 처럼 경직된 문제로 남게 되는 과정의 영국의 식민지 지배와 문서화가 있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본관을 없애야 한다.

이런 우에노 치즈코의 입장 즉 이에를 근대가족의 한 종류로 받아들이고 “전전 가족과 전후 가족의 연속성”을 강조하는 입장은 생소한 것으로 종래의 가족론에서 이에는 ‘봉건적 잔재’이며, 전후 개혁으로 가족의 민주화가 이루어져 이에 제도는 과거지사가 되었다는 것이 종래의 입장이었다.(98) 한국에서의 호주제 폐지론이 딱 그런 것이었다. 호주제의 폐지는 물론 잘된 일이었다. 다만, 만들어진지 얼마 되지 않는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는 것 뿐이다.

결국 이런 것은 역사를 해석해 나가면서 전통을 해석해 가는 과정에 불과하다. 우에노 치즈코의 표현에 따르면, 역사는 맥락이 바뀔 때마다 다양한 문화의 매트릭스(모태) 가운데 그 시대에 적합한 문화항목을 ‘전통’으로 재정의하는 방식을 취해 왔고, 전통으로 살아남은 것은 시대에 부응해서 변화를 경험한다. 따라서 ‘시대를 초월한 전통’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하는 것을 ‘전통’이라고 이름붙인 이데올로기가 전통의 기원을 은폐한다는 말이다.(100)

이런 주장은 푸코와 홉스봄 이후 결코 새로운 말이 아니다. 푸코가 니체를 현대에 되살려서 가장 크게 기여한 점은 소위 그 ‘기원’이라고 하는 것의 정체를 밝혀낸 것이다. ‘기원’이란 그 ‘기원’이라는 것을 만들어내는 그때의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는 점을 밝혀내는게 바로 ‘계보학’이다. 그렇다고 아무 것도 없는데서 완벽히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무엇인가 있었다. 여러 흔적들이 있었고, 다양한 가능성들이 있었다. 그것이 당대의 필요에 의해 여러가지가 조합되어서 하나의 이데올로기가 만들어지고, 이 이데올로기에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 ‘전통’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그리고 그 다음엔 그 ‘기원’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집단적으로 잊어버린다. ‘전통’이나 ‘기원’을 잊는다는 말이 아니다. 잊어버리는 것은 만들어냈다는 사실이다. 인간 집단은 그게 가족이든 사회든 국가든 어떤 단위에서든지 자신들이 무엇인가를 만들어내고는 그걸 만들어냈다는 사실을 집단적으로 망각하기 일쑤다. 얼마전 만들어낸 것이 곧잘 원래부터 있던 것이 되어버린다.

이런 우에노 치즈코의 논지 전개에는 필립 아리에스가 『아동의 탄생』에서 이야기하는 가족의식의 탄생이 깔려있다. 그가 직접 인용하는 것은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가 대감금의 시대를 지어냈다고 말하는 에드워드 쇼터Edward Shorter의 ‘로맨스 혁명’이고. 테리 이글턴의 The Rape of Clarissa를 인용해 연애는 남편의 지배를 가능하기 위해 여성을 친정으로부터 떼어내는 일이라고 말한다.(113) 다시 쇼터를 끌어오면서 공동체로부터 이에를 떼어낸 결과 공동체에서 고립되어 국가적인 통제에 무방비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가족국가주의는 중간집단의 해체를 의미한다고 지적한다.(114) 자율성을 획득한 근대가족이 국가의 통제에 대항할 저항력이 약하다는 것은 자크 동즐로Jacque Donzelot도 지적하는 바다.(116) 쇼터가 말하는 자족의 자율성, 즉 고립과 배타성은 일본의 전전 가족에서도 현실화되고 있다. 일본의 이에는 쇼터가 말하는 근대가족의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다.(116) 가노 마사나오는 1880년대에 무사계급이나 도시 하층민이나 실제로는 가족해체를 겪었다. 그렇기에 거꾸로 가족 이념이 강조되었다고 말한다.(117) 우에노 치즈코는 사회가 가족모델을 형성하고 다시 가족모델이 사회를 설명하는 가족국가주의는 단순한 동어반복이며, 사회과학자들 역시 근대가 만들어낸 가족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서 가족을 설명하려 하지 않고, 설명변수로 취급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설명되어야 할 것은 가족의 역사, 가족의 사회적 구성이다.(120) 가족의 자연성을 불가침 영역이라고 보고 기원을 묻지 않는 것 자체가 근대 가부장제의 음모였다.(121)

나로서는 만들어지는 과정에 정말 관심이 생긴다. 일본에서는 어떻게 근대가족을 만들어 갔는지. 그리고 언제나 일본에서 짧게는 20~30년 길게는 40~50년 먼저 만들어진 것이 어떤 정당화의 외피를 뒤집어 쓰고 한국사회에 적용되는지 그 과정이야말로 흥미롭다. 그 과정에서 착종되는 중층의 모순 그것이 바로 식민주의의 요체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나에게 이 지점은 페미니즘의 관점과 탈식민의 관점이 상충하는 것으로 드러난다. 모순과 굴곡을 비판하고 드러내는데 함께할 뿐인 페미니즘과 탈식민이 때론 페미니즘 조차 탈식민의 과제를 안고 있다는 점을 지적할 때, 자기 상대화를 못할 때가 있다. 나는 실은 그것이 참 흥미롭다. 왜 한국의 페미니즘은 일본도 마찬가지인데. 탈식민의 과제 앞에서 자기 상대화를 하지 못할까. 혹시 페미니즘도 때로는 또 하나의 오리엔탈리즘적 성향을 띄는 것인가. 그런데 또 그렇지 않은 것이 탈식민의 과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한 스피박 같은 이들은 페미니즘의 문제의식으로 접근한 것이 아닌가. 그런데 페미니즘과 탈식민의 과제가 한국에서 추진될 때. 페미니즘의 어떤 수용자들은 탈식민이라는 과제가 민족주의의 이름을 띈 가부장주의로 인식하기도 한다. 반대로 탈식민을 절대화하면, 페미니즘 조차 오리엔탈리즘이 되는데. 이 과정이 기기묘묘하기 그지 없다. 그리고 서로 피를 흘리면서 싸우고.

일본에서는 가족의 근대라는 개념의 형성과정에서 수입사상과 재래사상의 대립과정, 서구화주의와 그에 대한 반동의 형태를 띠면서 형성되어 갔다고 하는데.(13) 그걸 다 따라가기엔 좀 숨이 가쁘다.

사실 이 글 이후 후반부는 다소 힘이 떨어지고, 그의 에세이들과 겹치는 부분도 많다. 그래서 흥미로운 지점들만 몇 개 뽑아 본다.

여성 풀뿌리 네트워크를 ‘터미널 케어’라고 부른다. 죽을 때까지 시간을 남에게 폐가 되지 않게 잘 소비하는 활동이라는 비판인데. 우메사오 타다오梅棹忠夫가 ‘꽃놀이하 벌이는 술잔치’의 에너지 소비가 필요하다는 지적과 통한다.(191-192) 이 지점은 사실 논란이 발생할 만한 부분인데. 1960년대 일본에서 안보투쟁이 패배한 이후, 진보 정치는 지방장치 수준으로 눈을 돌렸다. 그래서 소위 혁신 지자체라는 것이 생겨난다. 좌파 출신의 시장, 현지사 등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들과 조응하는 것이 주부들 특히 전업주부를 중심으로 움직였던 풀뿌리 네트워크다. 주부 중심의 자발적인 시민단체 활동이다. 일본의 주부 중심의 시민단체는 전세계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고 주목받아 왔지만, 우에노 치즈코의 말은 도시 중간계급 전업주부의 ‘놀이’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남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일종의 소비활동이라는. 실제로 전업주부란 남편의 소득이 일정 수준 이상이라야만 가능한 이야기이므로, 실제 그것 자체가 특권계급이고, 대부분의 여성 노동자는 주변화된 계약직, 파견직을 전전하는 게 현실이다. 그래서는 풀뿌리 활동은 불가능하다. 한국에서도 여성운동이나 시민사회 활동은 중산층이나 가능한 일이었다. 심지어 오늘날에는 노조활동 마저도 어느 정도 직업의 안정성과 소득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어렵다. 대기업, 대공장이나 공기업 등이 아니고선 제대로 노조가 기능하기 어렵다. 한국노총이든 민노총이든 대기업 노동자의 이익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게 어찌보면 너무나 당연하다.

우메사오 타다오는 각종 가전제품과 가사 자동화 기기의 발달 이후에 줄지 않고 늘어나는 주부노동을 ‘위장노동’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빳빳하게 풀 먹인 깨끗한 시트, 반짝반짝 윤이 아는 마루, 손이 많이 간 요리, 직접 만든 간식이나 자녀들 옷, 이런 것들은 주부가 그 지위보전을 위해 만들어낸 숙련노동이라고 지적한다.(205) 전업주부가 나날이 사라져 가는 한국의 현실에서 이런 주장이 얼마나 설득력을 가지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일들이 사치인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모두가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리고 현대에는 ‘아버지 상실’과 ‘어머니의 붕괴’가 일상화되어 가고 있다. 근대가족의 종언이다. 헤겔의 말처럼 가족이 인륜의 기원이라면 가족에게서 윤리를 찾는 건 불가능해 보이고, 오히려 가족에서 인격과 윤리의 기원을 추구한 프로이트의 이론 자체가 ‘근대가족’을 낳은 것은 아닌가?(256) 우에노 치즈코는 끊임없이 프로이트를 소환한다. 가족 이야기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한 건 우에노 치즈코 만은 아닐터이다.

우에노 치즈코는 요즘 노인과 죽음에 대한 흥미로운 책들을 쓰고 있다. 최근에 번역된 『누구나 혼자인 시대의 죽음』도 그렇다. 그는 고령자가 가지는 자기 이미지가 부정적인 이유가 고령자가 스스로를 30대나 50대의 눈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사회적 소수자는 사회적으로 자신보다 우위에 있는 사람의 시선으로 본다는 하다 아이코波田あい子의 주장을 인용하는데. 아메리카 흑인이 자신들에 대한 백인의 이미지를 내면화하는 것을 말한다.(304-305) 한국인들은 태평양 건너에 살면서도 미국인들의 시선을 자기 안에 내면화하고 있지만 말이다. 지식인일수록 더 그렇지. 그렇지만 젊은이의 시선을 내면화한 고령자의 자기이미지와 그것이 낳는 좌절과 분노에 대해서는 좀 더 많이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젊은이들이 자신을 냄새나는 꼴통이라고 생각할 꺼라고 지레짐작하면서 그렇게 행동하는 노인이라 끔찍하다만. 나 자신도 젊은이들이 나를 꼰대라고 생각할꺼라고 늘 생각하면서 살고 있으니까.

우에노 치즈코가 산토리학예상을 받고 본격적으로 명성을 얻은 책이라는데. 어떤 부분은 그럴 만하다는 생각도 들고, 또 읽을 거리를 자꾸만 던져준다. 특히 이토 미키하루伊藤幹治는 그냥 넘길수가 없을 것 같다.

이런 이야기를 풀어놓다보면, 다음과 같은 비난 아닌 비난을 받게 된다. 도대체 근대가 만들어내지 않은게 뭐냐. 나도 모르겠다. 개인도, 가족도, 민족도, 국민도, 국가도, 종교도 실은 모두 근대가 만들어낸 것이라면 근대는 정말 왕성한 창작력을 가진 제작의 시대 호모 파베르의 전성시대인 것이 분명하다. 이젠 근대가 만들어냈다는 점을 지적하고 고발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어떻게 만들어내고 어떻게 변형시켜왔는지가 훨씬 중요한 문제제기다. 그리고 그 대답은 간결하지 않고.

2018. 6. 5.

* 괄호 안의 숫자는 번역서의 쪽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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