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엣 타인 응우옌, 『동조자』.

2015년 4월 2일자 뉴욕타임즈 서평기사에 실린 Yuko Shimizu의 일러스트.

비엣 타인 응우옌Viet Thanh nguyen, 『동조자The Sympathizer』, 김희용 역, 민음사, 2018(2015).

대부분의 한국인들과 같이 나 자신도 베트남 전쟁에 대해 외부에서의 이해만 가지고 있었다. 베트남의 독립과정에서 프랑스와 미국의 일련의 개입에 대한 베트남 민족의 저항과정에서 벌어진 전쟁이고 부패한 남베트남의 패망으로 인해, 미국을 비롯해서 한국과 여러나라는 손을 떼게 되었다. 베트남은 프랑스, 미국에 이어 중국과의 전쟁에서까지 승리한 나라로 이제 한국에서도 주목받고 있는 민간인 학살 문제에 대해 언급하고 싶지 않아한다. 대략 이 정도라고 할까. 아, 그리고 미국 쪽의 서사도 있다. 미국은 자유세계를 지키기 위해 위험을 무릎쓰고 참전했으나, 밀림이라는 지형과 민간인과 정규군을 구별할 수 없는 게릴라 전 상황에서 남베트남의 타락과 부패 때문에 전쟁을 포기하고 철수했다는 람보 식의 서사. 물론 이 전쟁에서 누가 어떻게 싸웠는지, 한국인으로선 속속들이 알길은 없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내가 알고 있는 베트남 전쟁의 서사들은 모두 승자 편에서 기록된 것이 아닐까.

궁금증이 생긴 건 어느 베트남 언론인이 지역 BBC 방송과 인터뷰한 내용이었다. 싱가폴인지 어딘지 모르겠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베트남 전쟁에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 문제에 대해 알고 있는가? 물론이다. 매우 심각한 문제다. 베트남은 공식적으로 한국 정부와 한국에 보상요구를 하지 않고 있는가? 그렇다. 그 이유는? 베트남 사람들 중에는 (전쟁 때문에) 경제발전이 지연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여기서 슬쩍 넘어간다.) 베트남 전쟁은 미국에 베트남이 승전한 전쟁이기 때문에 전쟁 책임이나 피해를 한국에 묻지 않겠다는 것이 공식적인 입장이고, 또 한국이 베트남의 가장 큰 투자국이기 때문에, 불편한 관계를 만들고 싶지 않다는 이유도 있다. 기억에 의존해서 쓰는 것이기 때문에 아주 정확하는 않다.

내 머리 속을 휙 쓸고 지나간 것은 베트남 전쟁으로 인해 경제발전의 기회를 놓쳤다 혹은 늦어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였다. 물론 당시 미국이 아시아에서 구축한 냉전의 전선에서 분단을 감수하면서 미국 편에 선 나라들은 그 댓가로 경제적 과실과 번영을 누렸다. 한국이 그렇고 대만이 그렇고. 그 뒤에 있던 일본이 그렇고. 베트남전쟁이 만약 한국전쟁 처럼 분단으로 끝나고 휴전이 되었더라면, 남베트남이라는 나라가 남아서 번영을 누리고 있을지도 모르지. 아, 그렇다면 이것은 경제적 과실이 부족해서라거나 실패가 아쉬워서가 아니다. 비록 지금 베트남은 자본주의의 길로 나가고 있지만. 이런 서사가 있다는 것은 베트남전쟁에서 남쪽의 패배를 아쉬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물론이다. 어떤 전쟁에도 패한 쪽이 있고, 당연히 그들의 목소리도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지도 않은 내가 오히려 문제.

비엣 타인 응우옌의 『동조자』는 그런 내 의구심을 확인시켜주는 소설이다. 물론 페이지가 휙휙 넘어가는 소설로서의 가장 큰 미덕도 갖추고 있다. 장모님 건강이 염려되어 공휴일에 처갓집에 찾아가서 저녁 나절 소파에 앉아 나머지를 낼름 읽어버릴 정도로 재미가 있다. 이 소설은 자술서의 형태를 띄고 있다. 이 자술서는 베트남에서 쓰여진 것이 궁금하다. 끝내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주인공은 이중 스파이다. 그는 남베트남 군의 대위로 정보/방첩 경찰로 근무한다. 그는 미국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CIA의 비밀요원이기도 하다. 그는 동시에 북베트남의 이중간첩이다. 그의 핸들러는 고등학교 때 친구인 만(Man), 파리 협약 후 미군이 철수하자 그는 드디어 지금까지의 고생이 끝나고 혁명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나라(국민국가)의 일원이 되리라고 기대하지만, 만은 그에게 미군과 남베트남 망명자들의 철수를 따라 미국으로 가서 미국에 망명한 베트남 인들의 동태를 감시해서 보고하라고 명령한다. 그의 상관 장군의 가족과 함께 괌으로 철수, 다시 LA에 정착하지만, 그는 끊임없이 그곳에 적응하지 못하고, 조국이 자신을 품어줄꺼라 생각하고 기대하면서 돌아가려 한다. 그리고 돌아왔을 때, 그를 맞이하고 있는 것은 수용소와 가혹한 재교육이었다.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독방에서 쓴 자술서의 내용이 책의 전반을 흐른다.

그는 동시에 ‘잡종 새끼’였다. 그의 아버지는 프랑스인 신부였고, 어머니는 열세살의 소녀였다. 프랑스의 인도차이나 지배에 의해 근대 베트남이 형성되어 온 것을 상징이라도 하듯이. 그래서는 그는 어디에도 설 곳이 없었다. 그가 남베트남의 군대에 있는 동안 그는 줄곳 잡종새끼였다. 그가 미국에 있을 때는 겉보기엔 잡종새끼 여부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거기는 원래 그 자신이 설 곳이 아니었으니까. 그가 베트남으로 돌아가기 위한 모험을 떠나던 날, 그의 장군 부부에게 그는 자신의 딸을 유혹하려 했던 그는 잡종 새끼였다.(2, 162) 그리고 무엇보다,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한 베트남에 돌아가서도 그는 역시 잡종 새끼였다.(2, 198) 그는 자신을 희생해서 반복해서 어딘가에 속하려고 했지만 그는 잡종 새끼일 뿐이었다. 작가는 베트남 자체가 잡종 새끼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 같지만. 우리는 실은 다 잡종 새끼일 뿐이지.

“그들은 자기 자신을 대변할 수 없도, 다른 누군가에 의해 대변되어야 한다.”(1, 237) 마르크스의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인용된 이 문장은 어쩌면 이 책의 주제이다. 마르크스는 소작농을 가리켰지만. 여기서는 미국에 살고 있는 베트남인들은 가리킨다. 아니 미국에 살고 있는 모든 소수민족과 유색인종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트럼프 시대에 얼마나 절실하게 느낄런지 모르지만. 주인공은 베트남 전쟁에 대한 영화를 찍는 한 작가주의 감독의 일을 돕게 된다. 이 감독은 두말할 것도 없이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를 비유한 것이다. 그 영화의 대본을 보면서 다른 아시아인들이 베트남인을 대변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 대니 보이 역할을 맡은 필리핀 소년, 그리고 한국게 미국인 연기자 제임스 윤. 그는 평범한 아시아인으로, 경찰 드라마에 나온 중국 녀석, 코미디에 나온 일본인 정원사, 이름이 뭐라던가 하는 동양 녀석, 그는 알콜 중독에 게이였다. 그는 고문에 가까운 촬영을 자처한다. 이번에는 지나가고 잊혀지지 않으려고.(1. 258-260) 주인공은 스스로 베트남을 대변하려고 시도한다. 자신들은 어리석게도 미국의 약속을 믿었던 패배자라며, 감독을 비난하지만, 돌아온 건 냉대 뿐이었다.(1, 266) 그는 자신을 대변할 수 없을 뿐더러 대변하려고 시도조차 해서도 안되는 것이다. 이곳 아메리카에서는 말이다. 영화 찰영장에서 외치는 ‘죽은 베트남 사람들은, 각자 위치로!’라는 지시에 실제 베트남인들의 모습이 담겨있다.(1, 284) 그들은 실은 죽은 자들이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순진하게도 한 나라를 착취하기 위해 직접 찾아가지만, 할리우드는 착취하고 싶은 나라를 그저 영상으로 상상으로 그려내기만 해도 되었기에 너무나 능률적이었다.(1, 221) 그가 베트남 사람들의 목소리를 그 영화에 반영하려 애썼지만, 그건 그들에게 변명거릴 주었을 따름이다.(2. 160) 내가 극장에서 본 수많은 영화의 장면들이 흘러갔다. 언제든 아시아의 미국의 적들은 총에 맞아 죽을 운명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인간은 어느 순간에건 자기 자신을 자기 스스로를 대변할 수 있는 그런 순간이 오기는 하는 걸까?

그러던 그도 한 번은 누군가를 대변하게 된다.(1, 309) 그건 자신이 심문관의 역할을 맡아 자신의 동료인 북베트남 공작원을 심문했을 때였다. 파수꾼이란 공작원은 알고 있었다. 어차피 우리(베트남인)들은 무죄가 입증될 때까지는 모두 유죄라는 사실을, 황인종은 무죄가 입증될 때까지는 모두 유죄라는 사실, 그렇기에 우선 쏘기부터하고 캐묻는다는 사실을. 미국인들은 이런 자기모순을 인정하지 못하기 때문에 혼란에 빠진 국민이라는 걸. 모든 인류에겐 죄가 있다는 종교적 정의를 믿되, 한 사람 한 사람은 무죄로 추정된다는 세속적 정의를 믿으면서, 이를 자신들의 무죄에만 적용하고 있다는 사실을.(1, 305-306) 이미 유죄인 미국의 적들은 아니 비미국인들은 스스로 무죄임을 늘 입증해야 한다. 무죄임을 입증해내지 못하면 죽는다. 그건 일본의 지배기간에도 마찬가지 였다. 일본인이 아닌 순간 이미 유죄였다. 한때는 전라도 사람이라는 사실에 이미 유죄고, 지금은 진보적이기 때문에 유죄인 그런 순간들 말이다. 자기의 무죄를 입증하려다가 늪에 빠지는 그런 유죄 말이다.

주인공은 LA의 옥시덴탈 대학에서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미즈 모리를 만난다. 자신을 소피아라고 불러달라고 하는 그녀는 일본계 니세이(2세)이다. 전쟁 중엔 아메리카의 적들로 취급되었던 일본계의 후손. 일본어를 하지 못하는 2세. 일본어를 배우고 싶어 하지 않으면서, 일본어도 하지 못하고, 도쿄보다는 파리나 이스탄불이나 바르셀로나에 가고 싶은. 누가 존 F. 케네디에게 게일어를 할 줄 아느냐고 묻지 않는 것처럼.(1, 128) 미국의 아시아인들 중에 일본계가 가장 두드러지지 않는다. 물밑에 활동이 없다는 것이 아니다. 아시아계 중에서도 가장 먼저 미국에 가서 이기도 할 것이고, 초창기부터 인종차별과 전쟁에서 적국민 취급을 받아서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일본인들은 유럽에서도 두드러지지 않고, 그 사람들과 잘 섞여서 지낸다. 그럼에도 거기에 아이덴티티의 혼란이 없을 수 없다. 코리안 어메리칸의 정체성 문제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어린 자녀들에게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가르칠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또 이 구절을 생각했다. 어차피 대학에 가는 순간 인종차별의 그물망이 노골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조여올 것이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서라도 아이덴티티를 가르쳐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미국에 살고 있는 아시안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이 책에 대한 평가도 미국에 살고 있는 아시아인들의 분노의 응축이기도 하고.

그래서 결국 주제는 미국일 수밖에 없다. 남베트남의 공수부대원이었던 그의 친구 본은 그 전쟁을 이렇게 정의 한다. “처음에 미국인들은 말했지. 우리가 너희 황인종들을 구해 줄 꺼야. 우리가 말하는 대로만 해. 우리 식으로 싸우고, 우리 돈을 받고, 우리한테 너희 여자들을 내줘. 그러면 너희는 자유로워 질꺼야. 상황이 그런 식으로 잘 풀리지는 않았지. 안 그래? 그런 다음, 그러니까 우리를 엿 먹인 후에 그들이 우리를 구출했어. 그저 우리한테 그런 구출 과정서 자기들이 우리 불알을 잘라 내고, 혀를 도려낼 거란 소리를 하지 않았을 따름이었지. 그런데 너 그거 알아? 만일 우리가 진짜 남자라면, 그들이 그렇게 하게 내버려 두지는 않았을 거야.”(2, 53) 사카이 나오키가 말했던 식민지와 국제결혼의 이미지가 고스란히 겹쳐진다. 물론 주인공도 미국에선 어떤 모습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미국에선 불행하다고 말해서는 안된다. 미국에는 행복의 추구만이 약속되는 나라이므로, 불행은 모든 사람에게 보장되지만 그걸 입밖에 내어서는 안된다.(2, 104) 호치민도 베트남 헌법을 만들면서 미국 헌법 전문의 생명, 자유, 행복의 추구라는 불가양도의 권리를 넣었을 정도인데. 몇 쪽인지는 찾을 수가 없네. 미국은 이상향이자, 구원자인 동시에 배신자이면서 그 모든 것인 셈이다. 지금도 더욱 그렇고.

주인공이 베트남의 재교육 수용소에서 자술서를 쓰면서, 자신이 반미주의자라고 주장하자. 소장은 이렇게 답한다. “반미주의자에는 이미 미국이라는 단어가 포함돼 있어. 미국인들 한테는 반미주의자가 필요하다는 걸 모르겠나? 증오 받느니 사랑 받는 게 낫지만, 마찬가지로 무시 당하는 것보다 증오 받는 쪽이 훨씬 나은 법이야. 반미주의자라는 것은 오로지 당신을 반동분자로 만들 뿐이야. 미국인들을 물리쳤기 때문에 우린 더 이상 자신을 반미주의자로 규정하지 않아. 우리는 그야말로 100퍼센트 베트남인이야. 당신 역시 그렇게 되려고 노력해야 해.”(2, 206-207) 나는 그저 가슴이 서늘할 뿐이다. 이런 이야기를 고대하던 조국의 한 강변에서 들은 것이 아니라 고군분투하던 혁명투사가 재교육 수용소에서 듣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아직도 그런 이야기를 한국에서도 하고 듣고 있다. 알게 모르게. 얼마나 한국적인가에 골몰하면서 한국적이지 않은 것을 색출하려는 무리들이 있다. 얼마나 신념에 차서 외친 말이었을까.

프랑스와 미국의 뒤를 이어서 베트남은 혁명에 성공했다. 프랑스와 미국은 18세기에 유혈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에 성공한 단 두 나라다. 그리고 상당히 오랜 시간과 필르 흘려서 독립과 자유를 쟁취했다. 호치민이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말한 바로 그것. 그리고는 독립과 자유의 이름으로 스스로를 해방시킨 후에는 패배한 동포들에게서 바로 그것을 박탈했다.(2-292) 국민국가를 수립하는데 성공하고, 외부의 적과 싸워서 이긴 후, 마침내 가득차고 넘치는 자긍심으로 내부의 적을 색출한다. 100%의 베트남인이 아닌 자들을 찾아 죽이고 재교육한다. 국민국가는 승리한 후, 자기 스스로를 제물로 삼는다. 백범 김구의 영상이 스쳐간다.

요즘 화제인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을 딱 1회만 보았다. 민족주의적 정서가 있는 한국사 연구자라면 쉽사리 동의하기 어려울 노비 아니 노예제에 대한 실감나는 묘사로 시작한 이야기는 이병헌이 미국에서 돌아오는 데까지 전개된다. 김의성이 실감나게 연기하는 이완익 역을 보면서 고개를 돌렸다. 거기서 그는 1871년 신미양요 때, 통역 즉 역관으로 나온다. 그런데. 평안도 사투리를 쓴다. 극중에서는 선교사에게 영어를 배웠고, 아버지는 일본인인 모양이다. 이걸 보고 사람들은 이완용을 연상하는 모양새다. 이 인물은 많은 사람에 대한 고정관념을 뒤섞어 놓은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다소 다르다. 1871년 신미양요 때 조선에 영어를 하는 역관이 있었단 말은 들은 적이 없다. 매킨타이어나 로스가 의주의 고려문에서 조선청년을 만난 것도, 1874년 이후다.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을 체결할 때도 통역은 중국인 마젠중이었고, 한문을 써서 주면 영어로 통역을 했다. 1883년 민영익과 홍영식이 보빙사로 미국으로 떠날때도, 통역은 일본인 미야오카 츠네지로와 중국인 우리탕이었다. 외교문서 번역은 하버드대학을 졸업하고 일본에 와 있던 퍼시벌 로웰이 했다. 만주에서 성서를 조선어로 번역하던 선교사들도 신미양요 이후에 활동했다. 친일파의 대표급인 이완용은 우봉 이씨로, 원래 몰락한 양반 집안 출신이지만, 같은 집안의 먼 친척이며, 노론 세도가이자 흥선대원군과 친분이 깊었던 집안으로 양자를 간다. 그는 성적은 좋지 않았으나 과거에 급제했고, 명필로 이름이 높았으며, 최초의 영어 교육기관인 육영공원에서 영어를 배웠고,(한국인의 영어 컴플렉스가 시작된 바로 그곳이다) 보빙사 편을 따라갔다 돌아온 후, 다시 미국으로 가서 미국공사를 지내고 2년 후 돌아온다. 일본어는 하지 못했지만, 영어는 잘했다고 한다. 이토 히로부미와도 영어로 대화했다고. 미국에서 돌아와 그의 화려한 이력이 펼쳐지고, 친일의 길을 걷는다. 극중의 이원익과 가장 유사한 경로를 겪은 이는 정미칠적의 하나로 꼽히는 고영희로 서울 출생이며, 1866년 부사용(종9품 무관직)으로 시작해서, 1867년 역과에 합격한 후 신사유람단으로 여러번 일본에 다녀오고, 극에서처럼 주일공사로도 일했던 대표적인 친일파다. 게다가 19세기 역관은 하찮은 중인 계급이 아니고, 중인은 결코 하찮지 않다. 다들 높은 데서만 세상을 그리다보니 그렇지. 조선 후기 200여년간 의과, 역과, 율과 등을 몇 개의 중인 가문이 독점하다시피해서, 중인 가문을 형성하고 부와 권력을 쌓았다. 지위가 양반만 못했다고 해도 결코 낮지 않았다. 무슨 뜻인가? 구한말에 친일을 했고, 국권이 넘어가는 과정에서 활동한 이들 중 상당수는 가슴 속에 분노를 품고 개천에서 올라온 혁명가인 용들이 아니었다. 역사는 드라마틱하지 않다. 풍운아이자 혁명가였던 김옥균도 안동김씨 가문이고, 김병기의 양자로 들어가 과거에 장원급제한 인물이다. 그들은 원래 조선 말기의 지배계급, 지배 엘리트인 양반들 출신이다. 그런 이들만이 외국 정세를 접하고, 그 중에서도 앞서가는 이들이 가문을 보전하고, 집안을 일으키는 법이다. 물론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지배 기간 동안 새로운 엘리트들 하층 신분의 인물들이 등장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았다. 이완익이라는 캐릭터네는 50년 내지 100년에 걸쳐서 어떤 특정한 비열한 친일파의 이미지를 정형화시켜서 만들어냈지만, 실제 친일파들은 조선시대부터 지배 엘리트들었다. 그들 중 독립운동을 한 집안이 그래서 그토록 귀한 것이다. 나머지는 대부분 적극적으로 친일을 하든지, 소극적으로 친일을 하면서 가문과 재산을 보전했다는 이야기다.

‘낭만’이란 말이 흐를 때 흠칫 놀랐다. 이 드라마가 시대를 뒤섞는 거야 한 두 가지가 아니니까 이걸 뭐라고 할 생각은 없다. 모던 보이와 댄디 같은 단어가 이 시기에 쓰였는지는 모르겠다. 호텔 글로리는 마치 손탁 호텔 같고. 여튼 그러나 ‘낭만浪漫’이란 말에는 연원이 있다. 이 말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가 만들었다고 알려져있다. 낭만주의란 로만티시즘ローマンチシズムromanticism이란 말을 바꾸어 만든 일본식 한자어和製漢字다. 이 말이 나타난 건 메이지 44년(1911년) 나가노현의회에서 한 ‘교육과 문예教育と文芸’라는 강연에서 처음 썼다고 알려져 있다. 드라마의 배경이 1902년 쯤이니 낭만이란 말이 생기기도 전에 쓴 셈이다. 이 정도를 문제삼고 싶은 생각은 없다만, 이 드라마에서 너무 일본과 일본인을 일방적으로 비하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토 히로부미가 이원익을 실제 보았다면 서양식 소파가 있는 응접실에서 만났을게 분명하다. 조선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은 좀 무너뜨리는 것 같은데. 일본에 대한 건 더 한 모양이다.

나는 비열한 대표적인 친일파의 얼굴을 한 이가 북한 말씨를 쓰는데 또 깜짝 놀랐다. 과거에 그것은 반란의 고향 평안도 말씨였을지도 모르고, 1890년대 본격적으로 들어온 선교사들이 평안도에서 많이 활동했으니 그런 이미지를 씌울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현대 한국에서 평안도 사투리란 북한 말이다. 그리고 조선족들의 말씨이고, 탈북자의 말씨이기도 하다. 남한에 사는 이들은 그걸 잘 구별하지 못한다. 과거에 영화나 드라마에서 평안도 말씨는 월남한 북한 출신을 상징하는 말이지만, 지금은 조선족과 탈북자의 말이 되었다. 남한은 여전히 말씨로 차별한다. 한때, 고 김대중 대통령이 드라마 「모래시계」를 보고 그렇게 격분했다고 한다. 비열한 깡패는 전라도 말씨를 썼다. 그리고 한 동안 영화든 드라마든 깡패는 걸직한 전라도 사투리를 말하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이제는 그게 평안도 말씨, 북한 말씨가 되는 것은 아닌가? 섬찟한 느낌이 든다. 지금도 탈북한 이들은 차별을 당하지 않기 위해 설움을 당하지 않으려고 조선족이라고 말한다던데.

어제 광주에서 차로 올라오면서 이 드라마이야기를 했다. 미국에서 오래 살다온 이가 말했다. 이 드라마가 넷플릭스 배급이기 때문에, 드라마의 주인공이나 캐릭터가 미국인들이 보기에 아주 편안한 구조로 되어있다. 이병헌이나 김태리나 모두 미국에서 데뷔한 적이 있는 배우들이다. 내가 받았다. 천한 신분의 소년이 미국에 가서 선진 문물과 군사 기술을 배워와 멋지고 세련된 젊은 혁명가가 되어 독립운동을 한다니, 미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구조의 서사다. 제3세계 출신이 미국에서 성장해서 본국을 근대화시키는 전형적인 구조다. 무엇보다 이 드라마의 본질은 드라마 제작 현장은 변하지 않고 그대로 인채, 얼마 전에도 한 젊은이가 죽었다는 소식이 들려온 그런 현장에서, 이병헌은 회당 20억의 출연료를, 김은숙 작가는 수억대의 고료를 받는다는 사실 그 자체에 있다. 그 돈을 나누어주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렇게 문제를 해결해서는 안되고 할 수도 없다. 드라마나 영화 제작 환경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삶의 권리가 보장되는 방식이어야 한다. 자선과 제도 개선은 전혀 다른 문제다. 드라마의 전면에서는 천민 노비 출신의 소년이 미 해병대 대위가 되어 전쟁 영웅으로 조국에 돌아와 독립운동을 하면서 지체 높은 신분의 미녀와 사랑하는 이야기지만. 그 드라마를 만드는 구조는 지체높은 이들을 위해 노비들은 그저 밥만 먹으면서 몸과 때로는 목숨까지 바치는 조선 말기에서 변한 것이 별로 없다.

그리고 2018년의 한국은 아니 한반도 전체는 그렇게도 주어진 환경을 바꾸기를 원하면서도 미국의 한계 안에서 움직일 수밖에 없다.

2018. 8. 16.

* 괄호 안의 숫자는 번역서의 쪽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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