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맥나마라와 보 응우옌 잡. 그는 프랑스와 미국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서 붉은 나폴레옹이라 불리지만, 병사들의 막대한 희생을 감수하는 전략을 무릅썼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둘이 서로 비난할 처지가 못된다.
히가시 다이사쿠東大作, 『적과의 대화:1997년 하노이, 미국과 베트남의 3박 4일我々わなぜ戦争したのかー米国ベトナム敵との対話』, 서각수 역, 원더박스(平凡社), 2018(2000).
사실상 미국에서 베트남 전쟁을 이끌었던 맥나마라 국방장관이 시작해서 미국의 전쟁지도부와 외교관들과 베트남의 전쟁지도자들과 외교관들이 1998년 베트남에서 만나 왜 이 전쟁을 할 수밖에 없었고, 왜 이 전쟁을 일찍 끝내지 못했는가에 대해 논의한 기록이다. 길지 않다. 사실 서점에서 서서 그대로 읽을 수 있고, 그 내용도 생각만큼 풍부하지 않다. 그럼에도 읽고 기록해 둘 몇 가지 측면이 있다.
이 책에서 가장 두드러진 부분은 미국과 베트남이 서로 몰랐다는 부분이 아니다. 미국은 실제로 적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아니 적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전쟁은 일단 벌어지고 나면 오해가 쌓이게 마련이다. 책에서 강조하는 베트남전 확전의 단초가 된 쁠래이꾸 공격에 대한 이야기가 그 한 예다. 미국 조사단이 베트남에 가 있는 동안에 쁠래이꾸 비행장에 벌어진 공격 때문에 미국은 이것을 베트남의 전쟁 고수 의사로 파악했지만, 베트남은 게릴라 전쟁으로 현지의 지역 사령관이 수십명을 동원해서 한 소규모 작전이었을 뿐이라고 말한다. 미국의 명령체계와 베트남의 명령체계가 다르다는 것을 당시 베트남 외교차관이었던 응우옌꼬탁은 이렇게 설명한다. “지휘명령계통이라는 것은 공업화 과저에엇 성숙되어 가는 것입니다. 농업 국가의 지휘명령 계통은 언제나 분산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정보의 전달 수단이 발전되어 있기 않기 때문입니다.”(137)
가장 눈에 뜨이는 것은 비밀 평화 협상의 실패 과정이다. 미국은 다양한 각도로 중재자를 보내고 메시지를 보내서 평화협상의사를 밝힌다. 그러면서 폭격을 계속한다. 베트남은 이것을 미국의 위장 평화 공세라고 간주한다. 그리고 평화 협상에 응하지 않고, 전쟁을 계속한다.
맥나마라는 베트남 측을 향해 이렇게 말한다. “도대체 당신들은 이와 같은 막대한 인명 손실에도 어째서 끄덕도 하지 않았습니까? 눈앞에서 국민들이 죽어가는데, 희생자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협상을 시작하자는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까?” 300만에 이르는 희생자를 낸 베트남 측을 오히려 도덕적으로 비난한다.(183)
베트남의 답변도 한결같다. 폭격을 계속하고 있는데, 어떻게 대화를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독립과 자유만큼 고귀한 것은 없기 때문이며, 베트남인은 노예의 평화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한다.(185) 이야기는 계속 맴돌아간다.
문제는 폭격의 지속 이유인데. 존슨 대통령은 협상을 위해서는 공습을 계속해야 한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공습을 중단한 기간 동안 북베트남은 남베트남으로 무기와 물자를 옮겼다.(178)
저자인 히가시 다이사쿠는 여기서 슬쩍 자신의 생각을 흘린다. “미국은 역사상 한 번도 공습 당한 경험이 없었지”(190) 그리고 말할 필요도 없이 일본은 미국의 공습으로 도시란 도시는 다 불바다가 된 경험을 가지고 있다. 특히 그 중에서도 잔혹했던 도쿄대공습.
이 대화에서 맥나마라는 미국의 실수를 인정하면서 베트남의 실수도 인정하도록 해서 화해를 이끌어내려고 했고, 베트남은 어디까지나 미국의 침공이라는 입장이었지만, 미국과의 경제협력이 필요한 상황에서 이런 형식의 대화에도 응한 것이다. 맥나마라의 회고록을 그의 사과로 받아들여서 베트남에서는 2년간 베스트셀러였다도 말한다.(33)
나는 외려 이 책을 읽으면서 미국 외교정책의 양보할 수 있는 그 한계선을 발견한 기분이 들었다. 맥나마라가 베트남 전쟁의 실수를 인정하면서 까지 말하는 어떤 한계선. 그것은 실제로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인데. 힘의 우위를 기반으로 한 평화라는 것.
미국과 베트남이 서로 몰랐다기 보다 미국이 원하는 평화와 베트남이 원하는 평화가 서로 달랐다는 것이다. 맥나마라와 미국 대표단은 결국 300만의 희생을 치르고 얻어낸 베트남의 평화가 그때 협상해서 나온 결론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테니 그것은 너희의 희생이 아니냐는 주장이고, 베트남의 입장은 어디까지나 지금은 필요해서 미국과 교류하는 것이지만, 미국의 폭격 아래서 항복하는 형태로는 협상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북미대화를 통해 한반도 평화의 길을 이끌어나가려고 동분서주하는 문재인 정부가 메우려는 갭도 바로 이것이 아닐까 싶다. 미국이 원하는 평화협정이란 제재(폭격) 하에서 북한이 항복한 형태로 또는 제재의 힘을 북한이 인정하고 약자의 입장에서 협상을 받아들이길 원하는 것이고, 북한은 대등한 협상을 원하는 것이다. 차이가 있다면 북-미는 전쟁을 한지 꽤 오래되었다는 점. 같은 점은 북한 역시 베트남 처럼 미국의 폭격에 굴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시각 차가 있지만, 양측의 시각차가 크지 않은 모양새로 만들고, 두번째 전쟁이라는 희생을 치르지 않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데. 문득 간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그 살얼음판을 헤쳐나가고 있는 이들에게 경외심이 든다. 다른 한 편 한국에는 지금 그것말고도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대북문제만 해결한다고 모든 것이 풀리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이걸 내버려두고 앞으로 나갈 수도 없는 일이다. 전력을 다해서 한 가지 한 가지 풀어내야 한다면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북한 문제다.
미국이 북한을 공부하고 이해할리가 없다. 미국은 그런 것은 안중에도 없는 나라다, 백년 전에도 그렇고 지금에도 그렇다. 북한을 미국에 이해시키는 것은 결국 한국의 몫이다. 그게 가능할지 의문이지만. 북한이 미국을 이해하고 있기를 정말 간절히 바라는데. 나는 그런 것 같지 않다. 아니 어쩌면 그건 불가능할런지도 모르고.
미국인들은 이 대화와 맥나마라의 회고록을 비난한다고 하고, 베트남인들은 나름대로 해석해서 이걸 사과로 받아들였다고 하는데. 이건 마치 극동국제군사재판에서 인도의 팔 판사가 일부에 대해 무죄를 주장한 것을 일본인들이 온정으로 이해한 것 비슷하다. 베트남으로선 어떻게든 무마하고 다리를 놓고 싶은 모양이다.
그러나 나는 자국민 300만명이 죽어가는 데 협상에 응하지 않았다고 상대국 군인과 외교관을 비난하는 맥나마라의 뻔뻔함에 혀를 찰 지경이었다. 그렇게 수백만이 죽는 것이 안타까우면 폭격을 멈추고 베트남에서 철수하면 될일이다. 그러나 전쟁에서 확실히 패배할 때까지 그렇게 하지 않은 자가 자기자신과 미국인 주제에. 이것은 1차 대전 이후 서유럽이 써 온 전략 즉 무차별 공격으로 인한 대량학살이 상대국의 전쟁의지를 꺽어서 포기하게 만든다는 전략이 먹히지 않았음에도 그 전략을 고수한 데 대한 자기변명처럼 들린다. 그리고 물론 미국은 지금도 그 전략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 책을 읽고 한국과 베트남 관계에서 화해나 사과가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는 그러나 이 문제는 결코 해결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깨닫게 해준다. 머지않아 베트남은 정식으로 이 문제를 한국에 제기해 올 것이다. 그것은 오직 베트남의 때에 달려 있다. 한국이 이제 다시금 일본에 문제를 제기하듯이 베트남도 언젠가 한국에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한국 정부와 한국인들은 그때 그 문제제기에 응할 준비를 해두어야 한다. 지금부터 해두어야 한다.
이 책은 같은 역자의 번역으로 2004년 『우리는 왜 전쟁을 했을까』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던 것을 다시 낸 것이다. 아쉽게도 맥나마라의 회고록은 아직 한국어로 출간되지 않았다. 다만 데이비드 헬버스탬의 『최고의 인재들: 왜 미국 최고의 브레인들이 베트남전이라는 최악의 오류를 범했는가』가 글항이리에서 출간되어 있다.
멈추지 말고 앞으로 나아가라. 두려워하지 말라.
2018. 10. 19.
* 괄호 안의 숫자는 번역서의 쪽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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