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벤느, 『푸코, 사유와 인간』.

폴 벤느Paul Veyne, 『푸코, 사유와 인간Foucault, sa pensée, sa personne』, 이상길 역, 산책자, 2009(2008).

갑작스레 이 책을 손에서 뽑아든 건 좀 지쳐서 였다. 텍스트 읽는 일이야 새삼스러울 것 없지만, 북미정상회담의 결렬 소식에는 화가 났다. 트럼프나 김정은이야 능히 그럴 수 있는 인물들이지만, 뭔가 참 어렵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맥이 풀렸다고나 할까. 그날 연거퍼 두 개의 공부모임을 이끄느라 지쳤는지도 모르겠다. 모두들 미국은 이렇고 미국은 저렇고 떠들어대는데, 나는 이젠 100년 넘게 지속되는 미국의 분탕질에는 신물이 난다. 하긴 중남미에서는 먼로 독트린 이후니까 이제 200년인가, 먼로 독트린 이라는게, 남북미는 우리 안마당이니까 유럽 니들은 아프리카, 아시아 식민지만 신경쓰라는 주장이잖나. 왜 이걸 고립주의라고 부르는지 모르겠다. 그건 어디까지나 미국의 입장에서 고립일 뿐이다. 당하는 중남미 국가의 입장에서는 아메리카 제국주의에 다름아니다. 미국이 고립주의에서 벗어나 제국주의로 전환된다고 하는 미서전쟁과 제1차세계대전은 미국이 아메리카 제국주의에서 세계제국주의로 확장된 것에 불과하다. 이런 점에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시작이 신미양요와 미서전쟁이라는 건 아주 의미심장한 거다. 작가든 기획자든 감각이 있다. 여튼 우리가 살고 있는데 까지 와서 감놔라 배놔라하는 건 이제 70년을 넘어 80년이 되어간다. 그들은 총력을 기울여 전쟁에 승리했고, 계속해서 군사력을 키워 지배력을 유지했다. 그리고 북미회담이란, 바로 그 결과인 동시에 그 결과를 변형하려는 시도에 다름아니니, 미국이 그러는 것도 어찌보면 당연하지만, 나는 미국인이 아니니 그 꼬라지에 신물이 나는 것도 당연하다. 이제 세계경찰은 그만하겠다더니 아직 그건 아닌 모양이더라. 북미회담 결렬 인터뷰 첫마디가 인도-파키스탄 충돌과 베네주엘라 사태인 것을 보면서,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그럼 그렇지 니들이 어디로 가냐. 일본이 한국 외교를 대신하겠다고 나서서 사사건건 방해하는 것도 얼추 150년째고. 을사조약이라는게, 외교권을 빼앗아가겠다는 거고. 그냥 이제 이런건 상수라고 생각해야 하는데. 그래도 보고 있자면 지칠 때가 있다.

오랜만에 뽑아든 책을 읽고 천천히 읽어내려 갔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몇 달의 강행군으로 지친 몸과 정신도 좀 회복이 필요했다. 책 하단에 2009. 12. 10. 이라는 작고 빨간 도장이 찍혀 있었다. 어느 서점인지는 모르겠는 것이 서점 도장은 안찍혀 있었다. 아직까지 서점에 들러서 책을 고르던 시절인가 보다. 아마도 책 모양이 인상적이어서 샀을 것 같다. 푸코였기도 하고, 이때만 해도 나는 아직 폴 벤느가 누군지도 모르던 시절이었다. 지금 같아도 샀겠지. 사자마자 두 장 정도 읽다가 꽂아 둔 기억이 난다. 그때 왜 읽다 말았는지도 지금 보니 알겠다. 그럴 듯한데, 무슨 말하는지 몰라서가 아니었을까. 그래서 인지 어느새 절판이다. 아쉽다.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함께 읽고도 싶은데. 산책자는 웅진씽크빅의 임프린트인데. 돈이 없는 것도 아닐테고. 산책자의 에쎄 시리즈로 8권이 나와 있는데. 하나 같이 좋은 책만 골랐다. 누군지 선구안이 참 좋다. 롤랑 바르트의 『기호의 제국』, 보드리야르의 『아메리카』, 장 아메리의 『자유죽음』, 피터 버거의 『의심에 대한 옹호』, 지그문트 바우만의 『유동하는 공포』. 그리고 이젠 하나같이 절판이다. 이런 것도 삶과 책의 운명 같은 건가. 그 중에서 가장 아쉬운 건, 물론 폴 벤느의 푸코다. 누가 받아서라도 다시 내주면 좋겠다. 좀만 손을 봐서. 푸코 해설서 라는게, 참 어려운데. 묻히기 아깝다.

책 끝부분에 실린 역자해제에서도 나오지만, 폴 벤느는 푸코의 오랜 친구다. 에콜 노르말 시절에는 선생과 학생으로 만났고, 다시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는 동료로 만나,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 대한 지식으로 푸코에게 적잖은 도움을 주었다. 푸코에게 고대 그리스의 소년 동성애가 오늘날 현대인들이 생각하는 그런 동성애가 아니라는 점이나, 일부일처제와 생식을 목적으로 하는 제한적인 성 그러니까 섹슈얼리티가 기독교의 발명품이나 억압이 아니라,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 이미 널리 퍼진 보편적 현상으로 기독교는 이를 받아들여 활용했을 뿐이라는 점을 알려준 것도 폴 벤느였다고 한다. 그들의 오랜 우정만큼이나 이 책의 내용도 남다르다. 조금만 맛보기로 하자.

달리 말하면, 대부분의 철학은 철학자 혹은 사람들과 존재Être, 세계, 신이 맺는 관계로부터 출발한다. 푸코는 서로 다른 사람들이 당연한 듯이 행하는 것, 진리라고 여기면서 말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아니, 엄청난 다수가 이미 죽었기 때문에, 그는 그들이 다양한 시대에 행할 수 있었고, 말할 수 있었던 모든 것에서 출발한다. 한 마디로 그는 역사에서 출발한다. 그는 거기에서 표본(광기, 처벌, 섹스 등)을 추출해 담론을 명료화하고 경험적 인류학을 끌어낸다. 어떤 담론, 담론적 실천의 명료화란 사람들이 행하거나 말했던 것을 해석하는 일이며, 그들의 행위, 말, 제도가 전제하는 것을 이해하는 일이다. 이는 우리가 매 순간 수행하는 것이다. 즉 우리는 우리끼리 서로를 이해한다. 푸코의 도구는 따라서 일상적인 실천인 해석학, 의미의 규명이 될 것이다.(28-29)

담론, 푸코에게 가장 중요한 것을 벤느는 ‘투명한 어항’이라고 말한다. 이 책의 제목도 금붕어와 사무라이로 하려 했다고 하지 않은가. 각 시대마다, 동시대인들은 이렇게 짐짓 투명한 어항 같은 담론 속에 갇여 있다. 그들은 이 어항이 어떤 것인지, 심지어 거기 어항이 있는지조차 알지 못한다. 그릇된 일반성과 담론은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 하지만 매 시대에 그것들은 진실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진리는 진실을 말하기dire vrai, 즉 사람들이 진실로서 수용하는 것에 부합하게 말하기로 환원되고, 이는 한 세기 뒤에[후세의 사람들을] 웃게 만들 것이다.(27) 각 시대마다 변화하는 어항, 그리고 그 어항 속의 금붕어로 있는 ‘나’ 또는 ‘우리’. 매 시대에 진실한 것으로 보이고, 그것이 잘못된 것임은 시대가 지나 변화하고 차이가 드러나야만 알 수 있다. 그래서 벤느는 공리나 다름없으며truistique 압도적인 말해지지 않은 것non-dit이 숨어 있다고 말한다. 과거란 죽어버린 거대 진리의 광대한 묘지라는 평가다.(28) 그렇기 때문에 그는 역사학을 수행한다. 담론에 대한 역사, 지식에 대한 역사, 그것을 고고학으로 부르든 계보학으로 부르든. 그렇게 하는 이유는 이를 인식하고 비판하기 위해서는 차이를 발견해야 하는데. 이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지나야 하기 때문이다. 어항 속에 갇혀서는 알 수 없으니. 동시대에서 자유로운 소위 말했던 부동하는 인텔리겐차 따위는 존재할 수 없다. 그렇다면 유일하게 가능한 방법은 다양한 각도에서 국면적으로 다양한 비판을 쏟아내면서, 위치를 이동해 가면서 부유하는 것뿐이다. 푸코의 삶이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광기와 완전히 실재하지만 알려져 있지않고 지각되지도 않으며 불확정적이고 이름 없는 것으로 남아 있게 하는 대신 말이다. 알려지지 않거나 오인되거나. 광기와 모든 인간사는 특이성이 되는 것 이외에 다른 선택지는 없다. 특이성singularité이라고 우리는 말했다. 현상들의 담론은 말의 두 가지 의미에서 특이하다. 그것은 이상하다étrange. 또 그 각각은 자기 부류에서 유일한 것으로 일반성 안에 들어가지 않는다. 그러므로 담론을 추출하기 위해 세부사실로부터 출발하자. 권력과 그 절차와 그 도구 등의 구체적인 실천으로부터 역진régression하자. 이렇게 우리는 18세기에 그 완성된 모습을 드러낸 하나의 담론-실제 실천들의 총체-을 명료화할 수 있다. 이를 푸코는 통치성gouvernementalité이라는 이름으로 기술했다.(31-32)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특이성이라는 점이다. 요즘엔 특이점이라는 말로 더 사용된다. 발견되는 것은 하나하나의 특이성뿐이다. 이것들은 이상하며, 실천에서 역진하는 것이다. 그래서 푸코가 말하는 바를 발견하기 어렵다. 푸코는 보통의 교육을 받은 사람이 보는 방향을 거꾸로 거슬러 오른다. 공통점을 찾고 일반성을 찾으며, 차이를 평가하거나 무시하고, 그것을 가지고 앞날을 예측한다. 이런 것이 흔히 사용하는 방법이다. 그러나 푸코는 그와 반대로 역사 속에서 특이성들을 찾아낸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는 셈이다.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것 따위는 없다. 특이성들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니 형이상학이나 보편이론은 때려치우고 할 수 있는 것만 하자. 푸코가 말하는 담론이란, 아주 간단한 무언가, 즉 날것의 역사적 구성물formation historique에 대한 가장 정확하고 촘촘한 묘사이며, 그 궁극의 개별적 차이에 대한 규명이다. 과거의 특이성의 궁극적 차이differentia ultima까지 이르는 이해력aperception의 지적 노력을 요구한다.(17) 차이를 발견하고, 그 차이를 이해하여, 날것의 역사적 구성물인 특이성들을 발견해 내는 것이 담론이다. 그걸로 뭘 할 수 있느냐고 묻지마라, 그것밖에 없다는 게 푸코의 대답이다.

물론 담론과 그 제도적, 사회적 장치는 일종의 현 상태status quo를 이룬다. 그것은 역사적 국면conjoncture과 인간의 자유가 새로운 것을 대체하지 않는 한 우리에게 계속해서 부과되는 것이다. 그 시기 새로운 사건들의 압력 아래서 혹은 누군가 새로운 담론을 창안하고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 한시적인 어항으로부터 빠져나온다. 하지만 우리는 어항을 바꾸고는 새로운 어항 속에서 자신을 발견한다. 이 어항 또는 담론은 한 마디로 “우리가 역사적 선험성a priori historique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다. 확실히 이 선험성은 인간 사유를 전제적으로 지배하는 부동의 층위가 아니다. 그것은 변화하는 것이며, 우리가 결국 변화시키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무의식적이다. 동시대인들은 언제나 자기들의 고유한 한계가 어디인지 모른다. 우리는 우리 한계를 파악할 수 없다.(46-47)

‘역사적인 선험성’ 그것은 한 사람의 경험 너머에 있어서 경험을 가능하게 하는 초월적인 조건이되, 칸트가 말하는 것처럼, 칸트가 말하는 것과 달리 역사적으로 변화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 한계를 모르고, 파악도 할 수 없다. 어항을 바꾸어 가는 금붕어처럼. 어떤 시대 사람에게 어떤 담론이 선험적이었는지 그것을 파고드는 것이 담론 연구다. 다시 한 번 말해지지 않은 것의 총체를 되새김질해 보자. 담론과 제도와 실천 등으로 구성된 것이 장치이고 장치의 궁극적인 표현은 담론이다. 그리고 이 담론은 역사적 인과성으로부터 유래한다. 이 인과성은 끊임없는 실천, 사유, 관심, 제도, 즉 모든 장치, 그리고 그 경계를 명확히 하도록 만드는 담론을 야기하고 또 조정한다.(57) 장치dispositif와 담론discours은 모두 역사적이다. 그래서 역사학자들과 푸코는 충돌했는지 모른다. 1978년 몇몇 역사가 사이에서 이러우진 콜로키엄을 충돌로 끝나고, L’impossible prison이란 자료집만 남기게 된다. 벤느는 이를 아쉬워했지만, 이해해야 하는 것은 어떤 역사를 추구할 것인가의 문제다.

푸코는 주관주의자, 상대주의자, 역사주의자가 아닌 만큼이나 허무주의자도 아니었다. 그 자신의 고백을 빌면, 그는 회의주의자였다. 결정적인 인용을 하고자 한다. 죽기 25일 전, 푸코는 자신의 사유를 한 단어로 요약했다. 통찰력 있는 대담자가 그에게 질문했다. “어떤 보편적 진리도 긍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당신은 회의자주의자 아닌가요?” 그가 대답했다. “확실히 그렇습니다.” 자, 여기서 진상이 밝혀졌다. 푸코는 너무 일반적인 모든 진리, 시간을 초월한 우리의 모든 거대한 진리를 의심한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65)

푸코는 보편성 거부하고 회의한다. 그래서 벤느는 푸코를 섹스투스 엠피리쿠스의 후예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 회의주의는 역사적 사실의 실재성을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그의 회의주의는 다만 예컨대, “진정한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와 같은 거대한 질문을 목표로 한다. 진정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아는 일이 뭐 그리 중요하겠는가? 그보다는 우리가 어떻게 해서 진정한 민주주의를 원하는 지를 알자.(66-67) 질문을 바꾼다. OO이란 무엇인가? 란 질문을 버리고, 왜 그런 것을 중요시하는가? 왜 그런 것을 원하는가? 왜 그런 것을 싫어하는가? 왜 그런 것에 연연해하는지를 묻는다.

“인간은 바닷가 모래 위에 그려진 얼굴처럼 사라지게 될 것”이란 『말과 사물』의 마지막 문장은, 단순히 우리는 인간이 무엇으로 이루어졌는지에 대해서만 말할 수 있지, 하이데거처럼 ‘인간의 존재’(전체와 시간 안에서 인간의 자리는 어떠한가?)나 사르트르처럼 그의 내면성(인간 안에 있는 어떤 성실성bonne fois과 자기기만mauvaise foi이 있는가”)에 관해 질문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인간은 역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구성했다. 즉 그는 계속해서 자기의 주체성을 옮겨놓고, 상이한 주체성들의 무한하고 다원적인 연속 안에서 자신을 구성한다. 이 연속은 결코 끝이 없으며, 우리는 절대로 인간이라는 것을 향해 위치하지 않는다.(70) 무엇에 대해서건 특히 인간에 대해서 본질이나 존재나 근원을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 물음은 사라져 버릴 것이고, 남는 것은 인간은 특정한 시공간에서 어떻게 구성되었는가 하는 물음이다. ‘추석이란 무엇인가?’나 ‘결혼이란 무엇인가?’ 따위의 물음은 허망한 싸움을 불러일으킬 뿐이다. 실제 물어야 하는 것은 나는 왜 추석을 싫어하는가? 나는 왜 추석이 없는 듯이 살지 못하고 연연해하는가? 추석은 나를 그리고 현대의 한국인을 어떻게 만들어왔고, 만들어가는지 물어야 한다.

지식은 라틴어의 의미에서 희박성rareté을 그 특징으로 한다. 그것은 구멍이 나 있고 듬성듬성하며, 결코 그것이 볼 수 있을지 모르는 모든 것을 보지 않는다. 푸코는 “내 문제는 이렇게 표현될 수 있다. 한 시대에 사람들은 어떻게 이러이러한 것을 말할 수 있게 되고, 저러저러한 것은 절대로 말해지지 않는 것일까?”라고 썼다. 주어진 시대에 주어진 영역에서 생각되고 보이고 말해질 수 있는 것은 ‘듬성듬성하다rare’. 그것은 무한한 공허 한가운데 떠 있는, 형체 없는 섬이다. 인간은 진리에 접근할 수 없다. 그런 것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어떤 거대한 결정적, 총체적 대문자 담론의 말을 받아들일 능력이 없다. 아마도 그러한 담론은 이해 받기를 원하면서,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공허 속에서 자신의 때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 우리의 작은 사유는 엄청난 공허 속에서 정말 희박하며 구멍이 많은 것raréfiée으로 나타난다. 그것은 아주 보잘것없는 형태와 놀라운 공백들을 가진다.(91-92)

인간은 거대한 진리에 접근할 수 없고, 대문자 담론을 받아들일 능력도 없다. 이 단순한 언명에서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가 아니라, 접근할 수도, 받아들일 수도 없다는 데 있다. 인간이 깨달아야 하는 것은 세계의 전체성에 접근할 수 없다는 것뿐 아니라, 자신이 접근하고 이해하고 있는 것은 부분과 파편에 불과하며, 그 또한 듬성듬성하게 흩어진 상태라는 것이다. 모른다는 사실과 알고 있는 것 또는 알 수 있는 것이 얼마나 제한적인지가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그럴때, 거대한 진리가 있다 없다 라든가 대문자 담론의 정체 같은 것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게 된다. 애초에 접근 불가능한 것에는 입을 다물어야 한다. 손톱만큼도 모르면서 모든 것을 다 아는 것처럼 말하는 자들에게는 이제 신물이 난다. 그런 사람이 너무 많다.

3세기 동안, 기독교화된 유대교에서 비유대인들을 받아들이면서 결국 할례 받은 유대-기독교의 종족 분파들과 모든 이에게 호소하는 이 새로운 종교는 서로 결별하기에 이르렀다. 플라톤의 형이상학과 이교도적 미신(봉헌물, 기우제……) 혹은 새로운 미신(성자의 유물) 등이 기독교 교리와 그 신앙 활동의 형성에 기여했다. 기원이 아름다운 법은 드물다. 실재와 진실은 사후형성에 의해 조금씩 구성된다. 그것들은 어떤 맹아 안에 미리 형성되어 있지 않다. 유럽의 기독교적 ‘뿌리’에 대해 말하는 것은 오류가 아니라 난센스다. 역사 속에서는 어떤 것도 미리 형성되어 있지 않다. 유럽은 기껏해야 기독교적 유산을 가질 따름이다. 그것은 말하자면, 옛날 종교화가 그려진 벽이 있는 오래된 집에 살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뿌리에 대해 말하지 말고, 그보다 유산patrimoine에 대해 말하자. 현재의 서양은 대체로 기독교적인 건축, 예술, 문학, 음악, 심지어 관용어구상의 광범위하고 소중한 유산을 가진다. 하지만 그 도덕과 가치는 더 이상 조금도 기독교적이지 않다. 만일 서양이 언젠가 기독교적 뿌리를 가졌다면 그것은 우리 정신에서 나가 있다. 이웃사랑? 옛날의 기독교를 믿는 노예는 주인을 사랑하고 그에게 복종할 의무가 있었다. 기독교를 믿는 그 주인은 자기 노예를 사랑했다. 자, 이것이 전부다. 1870년에도 근대성은 아직 가톨릭 신앙에 이질적이었거나 그와는 정반대였다. 오늘날에도 소수의 신자들은 다수의 비신자들과 같은 실천도덕을 가진다(모든 기독교 가정이 아이들을 여섯 명씩 낳지는 않는다). 현재의 가치들은 기독교 신앙에 이질적이거나(성적 자유, 양성평등). 법률에 의해 강제되었거나(양심의 자유), 거기 적응했거나(정교분리, 민주주의), 근대적 가치를 채택했다(사회적 불평등의 축소). 노동조건에 관한 1891년의 회칙 이후로, 이제 기독교야말로 근대적 뿌리를 가진다……. 그리고 교리, 신앙, 성서해석의 이천 년 역사는 기독교가 사후형성에 의해 끊임없이 구성되고 적응해왔음을 보여준다.(102-103)

맹아나 뿌리가 아니라 사후형성과 적응의 문제다. 기독교는 오히려 근대적 뿌리를 가진다. 가톨릭이 주류인 프랑스처럼 1891년의 회칙이 적용되지 않는다고 해도, 한국도 역시 마찬가지다. 현재의 가치는 이질적이거나, 법률에 의해 강제되거나, 적응했거나, 근대적 가치를 채택했다. 기독교적인 가치나 윤리가 서 있을 자리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퇴행적으로 변화한다. 사후형성에 의한 재해석은 현실에 대한 수동적 인정에 불과하고, 사람들을 동원하거나 선동할 수 없기 때문에, 마치 맹아나 뿌리로서의 어떤 가치가 현재에도 통용가능한 것처럼 불러내려 한다. 그것은 결국 특정한 집단에 대한 혐오이거나 성차별이나 신분제로의 회귀이거나 기득권 또는 권력자에 대한 아부 내지는 지원으로 변질된다. 자신들이 맹아 또는 뿌리라고 생각했던 것조차 한 시대에 사후형성된 것임을 깨닫지 못하는 한 이런 일은 반복될 것이다.

인간은 천상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타락한 천사가 아니며, 하이데거가 말하는 존재의 목자도 아니다. 그는 실수투성이의 불안스러운 동물일 따름이다. 인간에 대해서라면 그의 역사만 알면 그만이다. 그 역사는 영원한 실증성이나 긍정성positivité이다. 그것은 단계적으로 끼어들면서 인간을 결국 총체성totalité에로 이끌어가고야말 부정성négativité이라는 외부 동력을 가지지 않는다.(118)

푸코는 하이데거는 물론 하이데거의 니체 해석을 부정할 뿐더러, 하이데거와 후설 그리고 헤겔의 총체성과 일반성에 대한 모든 해석과 부정의 변증법 역시 인정하지 않는다. 벤느는 이렇게 말한다. 하이데거는 모든 초험성을 잊어버린 시대에 우리가 옛날에 영혼 또는 정신Esprit이라고 불렀던 것의 등가물을 다시 주고자 했다고 말이다. 그 등가물은 충분히 받아들일 수 있게끔 세련되었다. 회의주의 시대에 그는 추론하지 않고서도 스스로를 드러내는 진리Vérité를 제안하다. 거기 이르기 위해선 변증법이 전혀 필요하지 않다. 우리는 “도약saut을 이루면서” 거기에 다다른다. 신앙이 없는 시대에 하이데거는 형이상학의 존재도 아니고 종교에서의 신도 아닌 절대자un Absolu를 되찾게 해준다. 이 절대자는 ”스스로를 숨기면서만 나타나고”, 드러나자마자 감춰지며, 믿을 수 있을 만큼 현존하는 동시에 부재한다. 역사와 진리가 대립하는 시대에 하이데거는 절대자를 제안하는데, 그것의 갑작스럽고 우연한 출현은 ‘신기원’을 이루고 그 출현의 불연속성은 ‘역사적인historiales’인 것이다.(109-110) 하이데거가 추구한 것은 신이 죽은 시대의 절대자, 종교를 상실한 시대의 진리였다. 그의 좌절과 전환과 실패가 이해된다. 스스로를 숨기면서 나타나는 절대자란 deus absconditus의 복제에 불과하다.

1960년대경 탈근대적인 세계는 초험적 토대에 대한 환상으로부터 벗어나게 된다. 세계는 또 모든 것에서 대상에 일치하는 진리verité adéauate와 그것의 진정한 경로가 어떠했는지를 보게 해주는, 인간적인 수준 이상의 계몽의 빛이라는 환상으로부터도 벗어나기에 이른다. ‘신은 죽었다’는 니체의 말은 온갖 초험성들의 시대가 끝났다는 의미로 이해되었고, 이는 인류가 환상에서 깨어나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고독하게 마주 보게끔 해주었다.(133) 모든 초월적인 것이 무너지고 초험성이 근거를 가질 수 없는 시대에 남는 것은 경험 뿐이다. 그 경험의 확실성도 경험의 종합도 보장되지 않은 채로.

지식, 권력, 주체로서의 인간의 형성, 그리고 자유가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과학이, 존재하지 않는 관념의 천상이 주는 도움 없이도 유지되고 지속된다고 말했다. 푸코는 그 이유가 과학이 학문 연구라는 제도의 제약 속에서 어떤 엄밀성의 프로그램programme de riqueur에 부합해야 한다는 규칙 아래, 그리고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고 여겨지길 원하지 않으면서 정교화되기 때문이라고 썼다. 그것은 하나의 장치에 기초해 있다.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장치는 규칙, 전통, 교육, 특수한 기구, 제도, 권력 등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과학의 조리법, “과학적이고 진실이라고 받아들여진 언표들의 형성 규칙”, 과학적 ‘진리게임’, 성공과 성과의 게임, 교정 가능하며 교정된 오류들의 게임을 신성화하고 영속화한다. 이러한 장치는 ‘과학’이라는 대상, 그리고 과학자라는 개인을 동시에 만든다. 이 개인은 엄밀 과학의 규칙들에 부합하게 말해진 것에서만 진리를 인식할 것이다. 그는 어떤 사회학자들이라면 사회적 유형type social이라고 부를, 과학자들의 역할rôle을 맡는다. 그는 이 역할을 내면화하고, 그에 본보기를 삼으며, ‘과학’이라는 대상에 관련된 주체가 된다. 대상화와 주체화는 “서로에게 독립적인 것이 아니다.”(139-140)

사실 이것은 전형적인 20세기 전반기에서 중반으로 흘러내려오던 과학철학 내지 과학사회학의 흐름위에 얹혀져 있다. 푸코가 프랑스 과학사와 과학철학이라는 흐름을 하나의 광맥으로 삼고 있다는 지적은 옳다. 그는 과학적 지식의 수립과정에 입각하여, 담론을 연구하고, 거기서 진실을 캐내는 것이다. 그가 구성해낸 진실 또는 지식은 이런 과학적 지식의 특징을 지니고 있다. 보편적이지 않으며, 일시적이고, 언제든 개정될 수 있으며, 부분적이고, 그러나 경험적 증거에 의해 실증되는 발견할 수 있는 그런 것들이다.

16세기 주체의 문제는 19세기 계급투쟁보다 훨씬 더 많은 피를 불러왔다고 푸코는 내게 말한 적이 있다. 그는 뤼시앵 페브르Lucien Febvre를 참조하며 적시하기를, 신교도들에게 종교전쟁의 목표는 자기 자신을 종교적인 주체로 구성하는 데 있었다는 것이다. 신에게 다가가기 위해 교회나 성직자, 고해신부의 매개를 더 이상 거치지 않아도 되는 주체로 말이다. 우리가 이미 보았듯, 푸코는 1980년경에 자기 문제틀의 세 번째 부분을 발견했다. 참인 지식과 권력의 문제에 인간주체의 구성이라는 문제가 더해졌다. 이 주체는 충실한 가신, 시민 등 이런 저런 방식으로 윤리적으로 행동해야만 하는 주체다.(164)

푸코는 종교개혁과 반종교개혁에 대해서 종종 언급하지만, 사목권력 논의에서 이를 상세하기 펼치지 않는다. 뤼시앵 페브르라면 『16세기의 무신앙 문제』와 『마르틴 루터 한 인간의 운명』을 말하는 것일 터이다. 한국어 번역본 제목이다. 그러나 사목권력이 사제와 신자의 고해를 통한 관계 형성을 통해서 예속적 주체화의 과정을 설명하는 것처럼, 라블뢰나 종교 전쟁 과정에서 사제를 거치지 않고 자신을 종교적 주체로 구성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글은 아직까지는 보지 못했다. 아마 어딘가에 있을 텐데.

널리 유행한 학설들(마르크스주의, 현상학, 의식철학)은 또 다른 관심사를 가지고 있었다. 절대적인 것의 추구가 그것이다. [진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은 푸코의 ‘담론’, 그리고 아마도 ‘장치’ 개념과 더불어 한층 날카로워졌다. 우리가 사회라고 일컫는 것은 장치들을 통해서 주어진 시기, 주어진 장소에서 진실을 말하기dire-vrai와 거짓을 말하기 dire-faux가 무엇인지 규정한다. 한마디로, 푸코의 저작은 전부 다 니체의 『도덕의 계보학』의 연장이다. 그것은 사람들이 영원하다고 믿는 모든 개념이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변전된’ 것이며, 그 기원들에는 숭고한 것이 전혀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다.(173)

벤느의 말이다. 푸코의 저작은 모두 니체의 『도덕의 계보학』의 연장이다. 푸코는 처음에 하이데거를 통해 니체를 접했다. 『진리의 본질에 관하여』와 『니체I, II』였다고 하는데. 그러나 곧 하이데거 식의 니체를 버리고 니체로 달려든다. 1960년대 프랑스에서 니체 전집이 간행될 때, 푸코와 들뢰즈는 함께 편집위원이었다. 푸코의 니체는 들뢰즈의 니체라고도 하는데, 정작 푸코와 벤느는 대화에서 들뢰즈의 니체는 진리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다는 데서 의기투합했다고도 전한다.(288) 그리고 한국으로 오면, 한국의 니체 연구자들은 프랑스의 니체 연구를 가볍게 여기거나 낮추어보는 경향이 있다. 물론 궁금증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니체는 한 사람인데, 그에 대한 이야기는 이토록 복잡하다. 그럼에도 푸코의 중요한 출발점이 니체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푸코가 니체의 연장이라는 식의 해석은 곤란하다. 니체는 실상 화두를 던졌을 뿐이다. 문제를 제기했을 뿐이다. 그리고 푸코는 실제로 그 문제들을 풀어내서 광기, 감옥, 섹슈얼리티, 진리, 지식, 권력에 대한 논의를 전개했다. 나는 니체를 무시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하지만, 푸코가 더 흥미로운 것도 사실이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를 인용하자면, “우리는 진실을 너무도 사랑한 나머지, 우리가 그것 아닌 다른 것을 사랑하게 되면, 우리가 사랑하는 것이 진실이기를 바란다”. 말할 필요도 없이, 우리의 정당화는 궤변sophismes이다. 우리는 우리 선택에 따라 진실을 판단하지, 진실에 따라 선택하지 않는다. 그리고 우리의 선택이 목적을 나타나게 만드는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는 로고스, 진리, 이성, 오성의 수많은 수호자들을 포함해 모든 사람이 그렇다. 스피노자가 가르쳐주었듯이, 우리는 어떤 것이 좋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그것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원하기 때문에 그것이 좋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이러한 진실의지는 아마도 스스로를 안심시키려 애쓴다. 그것이 권력의 도구, 프로파간다가 될 수 있기에 그렇다. 그런데 우리는 언어의 권력을 안다. 게다가 진실의지는 우연적이다. 그것은 다른 지역보다 서양에서 두드러지며, 강력하고 공식적이며 절대적인 과학들 속에서 조직된다. 어떤 이들은 진실의지를 빠져나간다. 그들은 로고스를 갖춘 철학자이기보다는 조르주 뒤메질이 말한 두 번째 기능의 인간, 즉 격정적이고 분노에 차 있으며 인정받으려는 욕구thymos를 지닌 전사들인 경우가 더 잦다. 그런데 푸코는 전사였다. 전사는 미사여구를 늘어놓거나 변명하거나 자신이 옳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는 격분하지 않으며, 분노에 차 있다. 그는 자신의 대의와 결합했다, 아니 차라리 대의가 그와 결합했다. 그는 대의를 위해 싸우지만 논쟁을 벌일 의향은 없다. 그는 확신은 없으나 단호하다(“확신을 가지는 것은 바보가 되는 것”이라고 푸코는 언젠가 말했다.) 우리는 막스 베버가 말한, 신들 사이에서 찢긴 하늘 아래 있는 셈이다. 아마도 누군가는 반박할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사태를 변화시킬 아무런 이유가 없다면, 왜 그러려고 하겠는가?” 실제 이 말이 맞을 수도 있다. 하지만 엄연히 존재하는 사실은 다음과 같다. 데카르트적 지성이 아니기에 사람들은 합당한 이유 없이, 다만 일반적으로 하나 정도를 창안해내면서 결정을 내린다. 아무것도 변화시키고자 하지 않는 사람들도 별다른 이유는 없다. 푸코에게는 더 나은 것이 없어서faute de mieux 일종의 의지주의volontarisme가 있다. 그는 우리가 바라는 것을 원해야만 한다고 결정짓지 않는다. 그는 사람들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푸코는 다음과 같은 말을 즐겨했다. 그가 개인적으로 가증스러워했던 것은 누군가 자신의 진리를 모든 사람들이 생각하게끔 만들기를 원하는 것, 다른 사람의 행복을 원하는 것이라고 말이다. 이는 기독교, 마르크스주의,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고대 그리스 로마사상sagesses païennes이 이미 했던 것이다.(191-193)

이 장의 제목은 푸코는 젊은이들을 타락시키는가? 이다. 마치 소크라테스의 재판 죄목을 연상시킨다. 그는 불경죄와 청년타락죄로 죽음을 당하지 않았던가. 푸코의 투쟁은 유명하다. 그는 전사였다. 그런데 그의 싸움은 그의 지식의 연장이 아니었다. 그는 싸워야할 때, 싸웠다. 그는 분노에 차 있고, 대의와 결합해 싸웠다. 그러나 싸우면서 논쟁을 벌이지도 않았으며, 확신에 차 있지도 않았다. 이 점은 정말 많은 시사점을 준다. 현대 한국에서 싸움에 나서려는 사람들에게 먹물들은 지성을 요구한다. 바로 알고 싸워야 한다고 말하며, 이 싸움과 저 싸움이 충돌하는 지점을 설명하며, 그들의 싸움의 동력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물꼬를 틀어 돌리려고 하고, 때로는 적당한 말로 주저앉히려고 한다. 이 모든 것이 권력 행위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항상 보편적인 진리인양, 진리의 이름으로 행한다. 이것은 모든 투쟁의 현장에서 투쟁과 논쟁에 참여하는 모든 당사자에게서 드러난다. 한국에서라면 극우적 정당과 아스팔트 우파 그리고 보수적 기독교가 연합한 세력도 그렇고, 소위 개혁보수를 주장하는 이들도 마찬가지이며, 현 정부 지지자들인 자유주의자들과 개량적 진보주의자들도 그렇고,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조직노동운동 세력도 마찬가지며, 환경주의자들도, 페미니스트들도, 일베도 메갈도 모두 똑같다. 자신들이 싸우는 방법이 옳으며, 달리 싸우는 방법은 틀렸다고 모두들 확신에 차서 떠들어 댄다. 그래서 나는 식당에 TV가 틀어져 있으면, 꺼달라고 하거나, 먼데서 밥을 먹고, 다시는 가지 않는다. 어느 채널의 어느 정파도 마찬가지다. 싸움은 싸움이며, 진실은 진실이라는 푸코의 태도는 안도감을 준다. 나와서 싸우던지, 아니면 남의 싸움에는 닥치던지.

푸코는 확실히 서양 중심주의를 비롯해 민주주의, 인권, 게다가 남성과 여성 간의 평등에 대한 믿음조차 공유하지 않았다. 이것들은 우리 가운데 많은 이들에게 도그마가 되었다. 아마도 그는 그것들이 이 세상의 다른 모든 것처럼 무한히 지속되지 않을 취약한 성취라고 느꼈을 거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자기 판단을 중지했다. 그는 도구마를 거부하는 원칙에 따라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았다. 그는 세계사를 저 멀리서 고공비행했다. 동시에 그는 역사가 잊지 않고 나타나게 해주는 새로운 것들을 원칙적으로 환영했다.(201-202)

도그마에 대한 철저한 거부, 민주주의, 인권, 성평등에 이르기까지 보편적이고 보는 모든 도그마에 대한 거부. 그가 이것들을 도그마로 본 것은 옳았다. 민주주의는 위협받고 있다. 민주주의는 절대적 가치가 못된다. 민주주의의 결과로 극우 포퓰리즘과 인종주의가 재등장하고 있다. 인권과 성평등은 서로 충돌한다. 이것은 정말 기묘하다. 인권을 내세우는 사람들은 성평등을 포괄하려고 하지만, 이때 성평등은 어떤 형태로든 재단되게 마련이다. 반대로 성평등을 주장하는 이들은 인권의 가치가 그 자체로 가부장주의를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성평등을 제한한다고 말한다. 성평등에 따른 인권과 인권이 보장하려는 성평등은 충돌하고 있다. 푸코의 시리우스의 관점이 절실하다.

“나는 내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서, 그리고 더 이상 이전과 똑같은 것을 생각하지 않기 위해서 글을 쓴다.” 우리는 잘 안다. 창작자는 자신의 저작에 의해 창조되며, 저작이 사유하는 모든 것을 사유한다. 하지만 아직도 할 말이 엄청나게 많이 남아 있다. 구원은 글쓰기에 의한 인간의 죽음 속에 자리한다. 글쓰기는 영원한 앞으로의 탈주, 밀어붙이기 속에서 인간을 탈인격화한다.(201-210) 유토피아주의자도, 허무주의자도, 보수주의자도 혁명가도 아니었던 이 정의의 사도, 언제나 전쟁터에 있었던 이 개혁가의 삶과 죽음은 이러했다. 내가 감히 그의 양식bon sens에 관해 말할 거인가? 그의 오성과 철학은 역사Histoire 속의 이성Raison의 대척점에 서 있었다. 그의 시선의 날카로움 또한 말해두자. 그것은 본질들을 꿰뚫고서 특이성들의 자의성을 가차 없이 알아보았다. 냉정함과 명석함으로 빚어진 이 우아한 인물은 아이러니에 차 있기 보다는(아이러니, 이 거세당한 남자 가수의 목소리……) 용감하고 결연하며 단호했다. 그는 자신이 주위 사람들에게 불러일으켰던 적대감과 질투심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범속성에 대한 통찰력 있는 심리학자였다. 그는 거북해하지 않고 자기 에고의 힘을 펼쳐냈다. 마찬가지 원칙에 근거해서, 그는 자신에 대한 심리적 배신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는 용감하게 죄를 지었고(루터는 용감하게 죄를 범하라pecca fortiter라고 말했다. 그것을 힘차게 자인했다. 잘못 행동했을 때, 그는 그것을 숨기지 않았다(그에게는 도덕이 있었으며, 자기가 보기에 나쁜 놈이 되지 않는 것이 중요했다).(228)

푸코는 1984년 6월 25일에 죽었다. 1984년 2월의 열과 기침을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고 한다. 폴 벤느는 푸코에게 에이즈가 진짜 있는 거냐고 묻기까지 했다. 벤느의 아내는 의사였지만, 푸코에게 어떤 조언도 하지 못했다. 그는 죽음 앞에서 결연하고 단호하게 책을 쓰며, 그것으로 빚을 청산하려고 했다. 푸코를 만들어낸 것 중의 하나는 글쓰기였다. 전과 달라지기 위해 글을 쓴다. 똑같은 생각을 하지 않기 위해 글을 쓴다. 글을 쓰는 과정에 저자가 만들어지며, 저작이 사유를 만들어 냈다. 그는 정말로 많은 말을 했고, 많은 글을 남겼다. 지금은 모두들 그 말과 글을 옮기면서 곱씹고 있다. 그리고 다시 자신들의 말로 말하고, 자신들의 글로 글쓰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뿐인지도 모른다.

2019. 3. 9.

* 괄호 안의 숫자는 번역서의 쪽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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