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 유명한 『시온 의정서』의 미국판의 모습이다. 음모론의 근거가 된 문서의 기원이 이토록 상세히 밝혀진 것도 드물다.
우치다 타츠루内田樹, 『사가판 유대문화론私家版・ユダヤ文化論』, 박인순 역, 아모르문디文藝春秋, 2011(2006).
사가판이라는 제목이 눈길을 끈다. 보통 ‘사가판’ 또는 ‘사각본’이란 자비출판해서 지인들과 돌려보는 것을 말한다. ISBN을 따서 판매하는 것이 아니고. 물론 이 책은 분게이슌주文藝春秋에서 나왔다. 그러니 엄밀히 말해 사가판은 아니지만, 우치다는 개인적이고 사적인 지적 관심에 한정해서 쓴 유대인론이라고 말한다. 어째서 유대인은 박해받는가라는 의문에 대한 해답찾기라는 것. 물론 우치다는 반유대주의에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반유대주의에 이유가 있다고 믿는 인간이 존재하는 데는 이유가 있으며, 이것은 인간이 우둔해지고, 사악해지는 경우에 대한 물음이라고 말한다.(5-6) 우치다 타츠루는 레비나스의 제자를 자처하지만, 직접 사사받은 적은 없다. 그럼에도 반유대주의에 대한 이 책은 마치 레비나스에게 바치는 일종의 오마주 같은 느낌이다.
한국은 반유대주의에 대한 성찰이나 분석에 인색하다. 그렇게 유대인 교육법은 떠받들면서, 유대인 문제에 대한 중요한 작품은 번역된 것이 별로 없다. 마르크스의 『유대인 문제에 대하여』가 번역된 것이 고작이다. 사르트르의 유대인 문제에 대한 책도, 레비나스의 유대인 문제에 대한 책(『곤란한 자유』)도 번역되어 있지 않다. 마틴 루터의 『유대인의 거짓말』은 당연히 번역되어 있지 않다. 부끄럽겠지. 반면에 반유대주의의 핵심 문건에 속하는 「시온의정서」는 여러 판으로 번역되어 있고, 헨리 포드의 『국제 유대인』 번역본이 있을 정도다. 인터넷 서점에서 ‘유대인’으로 검색하면, 수백권이 나온다. 정말 놀랍다. 알라딘에서 검색하면, 500권이 조금 못된다. 그 중 90% 이상은 나무가 불쌍한 거짓말들이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유대인 교육법에 관한 책이고, 그와 유사한 유대인 처세술이나 성공담과 실용적인 탈무드이다. 다음으로 큰 비중은 유대인 음모론이다. 유대인의 경제력, 유대인의 영향력에 대한 책들이 또 넘쳐난다. 그 다음은 기독교 신학에 관한 책과 유대인 선교에 관한 책들. 그리고 몇 안되게 유대인 역사를 다루는 책과 쇼아(홀로코스트)를 다루는 책이 있다. 그것도 얼마 되지 않는다. 거기에 테오도르 헤르츨의 『유대 국가』 같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문서들. 유대인 문제, 즉 반유대주의에 대해 성찰하는 책은 한국어로 번역된 건 우치다 타츠루의 『사가판 반유대주의』가 유일한 것 같다. 대충 그러리라고 생각했지만, 500권 정도 되는 목록을 훑어보다가 정말 충격받았다. 한국인들은 자신들이 반유대주의의 무풍지대로 반유대주의와 무관한 것 같지만, 실상 반유대주의의 핵심인 유대인 음모론이나 유대인 세계 정치경제장악론 등은 상식이 되어 있다. 반유대주의는 모든 소수자 배제와 이민자 학대의 원천이니 반유대주의가 구체적인 모습으로 등장하지 않는다고 해도, 아주 깊이 깔려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일본과 한국이 유대인에 대한 인식과 반유대주의에서 아주 유사한 점이 있는데. 개개인이 유대인을 접한 적인 없는 나라라는 점이 그 하나이고, 미국의 영향권 하에서 유대인에 대한 두려움과 동경에 대한 양가적 감정이 있다는 점이 다른 하나이다. 유대인과 이스라엘을 혼동하는 점도 비슷한 것 같다. 그래서 인지, 이 책의 논의는 한국인들의 유대인에 대한 일반적 관심을 이해하는 데도 유용하고, 특히 개신교인들이 유대인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희한한 인식을 이해하는 데도 유용하며, 태극기 부대가 이스라엘 국기를 들고 설치는 심리도 전부는 아니지만, 이해할 수 있다.
민족지적ethnographical 기습奇習, 유대인을 이해할 때, 일본인이 가진 범주에 근거해서 이해하려는 방식을 말한다. 일본과 일본 국민 간의 관계를 모델로 삼는 것이다.(15-16) 기습이란, 기이한 풍습 또는 이상한 습관을 말한다. 일본어 같지만 표준국어대사전에 당당히 올라가 있다. 실제 일본어 처럼 보이는 한자어가 국어대사전에 올라 있는 경우가 많다. 우치다는 민족지적 기습 안에 유폐되어 있어서는 유대인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야코브 시프Jacob Henry Schiff의 이야기를 꺼낸다. 일본인의 유대인 이해를 특별하게 만든 사람이다. 그는 독일 태생의 유대계 은행가로 미국의 쿤 로브 그룹의 총재로 미국 재계에 군림한 인물인데, 러일전쟁 당시 일본 정부가 발행한 8천 2백만 파운드의 전시 공채 중 3천 9백 25만 파운드를 부담해 주었고, 구미의 은행들이 러시아 정부가 발행하는 전시 공채를 인수하지 못하도록 영향을 미쳤다. 시프는 제정 러시아의 포그롬에 분노했고, 이에 대한 보복으로 한 일이었다. 그는 2월 혁명의 주역인 케렌스키도 지원한 바 있다. 그는 미국인이지만, 국제적으로는 유대인으로 행동했다. 이런 식의 개인적인 군사 동맹이나 개인적인 전쟁은 일본인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유대인 규정이 가지는 이질성이 유대인 이해의 중요한 열쇠다.(17-18) 이런 이해로는 유대인 국가가 없었던 1948년 이전까지를 이해하기도 어렵거니와, 1948년 이후의 이스라엘과 유대인의 관계도 이해하기 어렵다. 여느 국민국가와 국민과는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치다는 민족지적 편견 해소를 역설한다.
우치다는 유대인은 무엇인가를 정의하는 순간 그 사람의 주관적인 유대인론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유대인은 무엇이 아닌가라는 소거법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한다. 첫째, 유대인은 국민명이 아니다. 유대인은 단일 국민국가의 구성원이 아니다. 전세계에 흩어져 있고, 다양한 국적에, 다양한 언어를 말하는 사람들이다.(24-25) 둘째, 유대인은 인종이 아니다. 제도적으로 구성된 차이가 생물학적인 차이를 기호적 특징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12세기 이후의 세파르딤과 아슈케나짐의 구별은 종교 교의와 언어의 차이에 의한 것일 뿐, 인종적 차이를 의미하지 않는다. 유대인을 인종 개념으로 의미화하는 조직적 시도는 20세기에 행해진, 나치 독일의 뉘른베르크 법인데 이는 1215년 4차 라테라노 공의회에서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가 정한 유대인 규정(조상인 유대인 교도의 8분의 1의 피를 이어받으면 유대인)을 되살린 것으로 조부모 3인 이상이 유대교도이면 유대인, 두 사람이 유대교도이면 1종 혼혈, 한 사람이 유대교도면 2종 혼혈로 분류했고, 그 결과 신앙 종교에 근거한 유대교도 22만 명과 법률이 정한 인종적 유대인 2만명이 병존하게 되었다. 이 법제 또한 유대인에 관한 일의적 정의에 실패했는데, 뉘른베르크 법에 근거해 수용소에서 죽음을 당한 ‘인종적 유대인’ 중에는 경건한 기독교도, 1차 대전의 영웅, 히틀러에 환호한 인물들도 포함되어 있다.(28-30) 셋째, 유대인은 유대교도를 의미하지 않는다. 근대 시민 혁명에 의한 ‘유대인 해방’ 이후, 상당수 유대인이 기독교로 개종했다. 유대인과 유대교도가 동의어였던 때는 근대 이전까지이다.(30-31) 1096년 십자군 때의 마인츠 학살부터, 1648~1649에 이르는 폴란드에서 일어난 코사크 유대인의 학살까지, 중세로부터 근대에 걸친 유대인 역사는 거의 전부가 박해의 역사이며, 맥락은 다르지만 공통점은 유대인들이 기독교로의 개종 요구를 거절할 때 폭력이 휘둘러졌다는 점이다. 유대교도가 기독교국 내에 존재하고 그 나름의 사회적 활동을 한다는 사실은 기독교도들에게 사회의 기독교화가 성숙되지 않았다는 의미이며, 그들이 개종을 거부하여 차별 대우를 당하고 고통 받는다는 사실 그 자체가 “살무사의 자식들”에게 내린 신의 저주를 증명한다고 생각했다. 마치 푸코의 『광기의 역사』의 광인들의 사회적 기능과 통한다.(32-35) 유대교도의 ‘해방’은 광인이 성스러움을 잃는 역사적 추세와 거의 동시에 일어난다. 시민 사회 자체가 종교적 당파성을 차이화의 지표로 사용하는 관습을 버리자, 유대교 신앙은 유대인을 차이화하는 지표로 기능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앙리 그레구아르Henri Grégoire ‘해방자’들이 바랐던 바는 유대인 스스로가 자기의 종교를 공개적으로 버리는 것으로, ‘해방émancipation’은 ‘동화assimilation’와 쌍을 이루는 짝으로 제안되었고, ‘유애인의 해방’은 ‘유대인의 소멸’을 의미하고 있었다. 유대인을 통합해 주는 뭔가가 있고, 그것이 근대 시민 사회의 통치 원칙과 서로 녹아들 수 없다는 사실을 계몽주의자들은 정확히 이해했다.(36-37) 유대인 해방 논리에는 오랫동안 유대인을 차별하고 박해해 온 유럽인들 자신이 느끼는 ‘유대인으로부터의 해방’에 대한 절망이 드러나 있다. 이는 마르크스의 『유대인 문제에 대하여』의 키워드 이기도 하다.(38) 이런 기술을 종합하면, 유대인은 국민국가의 구성원도, 인종도, 종교 공동체도 아니라는 사실 뿐이다. 그렇다면, 유대인은 ‘유대인을 부정하려는 자’의 매개를 통해 존재해 왔다. 바궈 이야기하면 유대인이라고 칭하는 존재는 ‘단적으로 내가 아닌 무엇’에 덧씌운 이름이며, 우리는 유대인에 관해 말할 때 스스로 결코 깨닫지 못하면서 자기 자신에 관해 말하고 만다.(39-40)
유대인은 국민이 아니다. 따라서 이스라엘과 동일시 할 수 없다. 유대인은 인종도 아니다. 유대인은 종교 공동체도 아니다. 지나가면서 언급하지만, 유대인은 언어공동체도 아니다. 세파르딤의 언어인 라디노와 아슈케나짐의 이디쉬는 서로 다르며, 그나마 이스라엘에서 쓰는 현대 히브리어는 19세기 말 20세기 초의 발명품이다. 통상 사람들이 민족 또는 국민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어떤 형태의 정체성의 기원을 파악하는 모든 요소에서 공통점이 없으며, 심지어 자신이 유대인이 아니라고 벗어나고자 했던 사람 조차도 너는 유대인이라고 박해와 죽음을 당하기까지 한다. 이 절대적인 타자성이란 결국은 유대인을 부정하려는 자의 매개를 통해서 존재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여기서 보통의 한국인은 비유대인과 자기를 동일시하기 어려운데, 그것은 유대인과 접촉 경험이 없기 때문이며, 간혹은 동일시하려는 욕망도 가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유대인성의 중요한 특징이기도 하다. 여기에 근본주의적 성격을 가지는 한국의 기독교(개신교)가 또 기묘한 역할을 하게 된다.
19세기 말 프랑스에서 『유대적 프랑스La France juive』라는 반유대주의 서적을 쓴 에두아르 드뤼몽Édouard Drumont은 누가 유대인인지는 내가 판단한다. 내가 결정할 수 잇는 근거는 내가 언제나 옳기 때문이라는 식으로 주장했다. 너는 유대인이다. 왜냐하면 ‘너는 유대인이다’라고 내가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런 말은 증명되지 않아도 현실적으로 유효하게 기능한다. 이 말에는 사실 인지적constative 언명과 수행적perfomative 언명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 유대인은 너는 유대인이라고 지칭하는 사람과 함게 출현했다. 유대인의 정의는 이 동어 반복 뿐이다. 국민, 인종, 종교도 아닌 유대적 본질을 구체적인 말로 확정하는 시도가 포기된 후, 남아 있는 것은 동어 반복 뿐이다.(40-43) 장-폴 사르트르Jaen-Paul Sartre는 유대인이란 구체적으로 확정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반유대주의자가 환상적으로 표상한 것이라 주장했다. 사르트르에 따르면 우리가 자연적 현실이라 생각하는 대다수의 것(인종, 민족성, 성차)은 이데올로기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르트르는 시몬 드 보부아르Simone de Beauvoir 만큼은 아니었지만, 『유대인 문제에 관한 성찰Réflxions sur la question juive』에서 그가 유대인을 규정한 방식은 사회구성주의의 전형이다. 유대인이 공통의 기반이 없음에도 유대인으로 불리기에 적합하다면, 그들은 유대인으로서의 상황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기독교국에서 일종의 영적 사명을 체현하는 자로, 차별받고, 박해박고, 거주를 제한받고, 직업을 제한받고,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바침으로써 사회적 위기로부터 질서를 회복하고자 하는 시도가 행해질 때마다 우선적으로 공희 대상으로 선택되어 왔다. 그러므로 유대인을 창조한 사람은 기독교도이며, 기독교도는 자신들을 향해 우리들은 유대인에게 무엇을 했는가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유대인이란 다른 사람들이 유대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며, 유대인을 만들어낸 사람은 반유대주의자다.(44-46) 사르트르는 반유대적 박해에는 박해하는 측의 주관적 근거가 있음을 인정한다. 하나는 종교적 이유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적 이유다. 그러나, 신을 살해한 자의 후예는 유대인이 아닌 이탈리아인이고, 고리대금업에 종사한 이유는 그런 것만 허용되었기 때문이다.(47-51) 사르트르의 말대로 유대인 개념 중 일부는 반유대주의자들이 창조한 환상적 표상이지만, 그런 지적이 현실에 유대인이 존재한다는 사실에는 조금도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50) 우치다는 크리스틴 델피의 마르크스주의적 페미니즘의 구성주의를 비판하면서, 화폐나 성차나 환상이라는 점은 분명하나, 우리가 그 환상 속에서 태어나 살고 있다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한다.(54-56) 사르트르가 말하는 유대인은 다른 사람이 유대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는 지칭은 거기서 출발하는 진리가 아니라, 동어 반복의 출발점이자 종착점이라고 우치다는 말한다. 우리는 유대인과 비유대인이라는 대립 개념으로 사회를 구분하는 습관을 가진 문명 속에서 살아가며, 유대인이란 이미 그것 없이는 세계를 나눌 수 없는 부류의 카테고리이다. 유럽 세계가 역사의 어느 단계에서 얻은 ‘유대인’이란 개념, 그 기호로 구분할 수 있게 된 대상의 전대미문의 의미는 다른 것으로 대신할 수 없었다. 사용할 수 있는 말이 그것밖에 없으므로 별 수 없이 사용할 수밖에 없는 말이다. 이항대립으로만 말할 수 있는 남과 여와 같이.(56-57) 자크 라캉Jacques Lacan은 남과 여라는 시니피앙signifiant아래 궁극의 시니피에signifié가 아닌 감추어진 시니피앙이 있다고 말하는데, 기호의 기원을 소급하면 최후에 당도하는 곳은 더 이상 그곳에 업는 대상의 대리 표상이라는 것이다. 낮과 밤, 남과 여 같은 대립은 현실 세계에 골격과 축과 구조를 부여하고, 현실 세계를 조직화하고, 인간에게 현실이 존재하게 하고, 그 곳에서 인간이 스스로를 다시 발견하게 만드는 대립이다. 우치다는 여기에 유대인과 비유대인이라는 대립을 넣으려 한다. 이 이항 대립의 도식을 구상함으로써 유럽은 그때까지 말할 수 없었던 무언가를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유대인이라는 시니피앙을 발견함으로써 유럽은 유럽으로 조직화된 것이다. 유럽이 유대인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유대인이라는 시니피앙을 얻음으로써 유럽은 지금과 같은 세계가 된 것이다. 우리는 유대인이라는 말이 이미 특정한 함의를 지니며 유통되는 세계에 뒤늦게 도착했고, 더는 유대인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상상할 수 없다. 따라서 질문은 다음과 같다. 유대인이라는 개념이아직 존재하지 않았던 세계로부터 유대인이 있는 세계로의 목숨을 건 도약이 감행되었을 때 세계는 무엇을 손에 쥐게 되었는가?(57-60)
드뤼몽에서 사르트르, 델피, 라캉을 경유해서 도달한 우치다의 결론은 유대인이 무엇인지 기원을 규정하는 것은 의미가 없으며, 유럽은 유대인을 규정함으로써 유럽으로 조직화되었기 때문에, 유대인이 존재하는 이 세계란 어떤 세계인가를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실로 대담한 여정이다. 절대 ‘사가판’에 머무를 논의가 아니다. 이것은 이항대립에 대한 새로운 문제제기이자 물음이며, 특히 페미니즘에 대한 중대한 문제제기다. 언어학적 전회를 통과하여 거의 완전한 구성주의적 입장을 취하는 논의들에 대해서, 그런 이항대립이 없는 세계는 상상할 수 없다는 것, 그런 구분이 만들어낸 세계는 어떤 세계인가를 물어야 한다는 것. 페미니즘 자체가 이항대립을 전제로 해서만 성립한다는 것. 독립운동이 식민지를 전제로 해서 성립하듯이.
일유동조론日猶同祖論이란 기상천외한 것이 있다. 당연히 1860년 이전에는 유대인과 일본인은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그렇지만, 1875년 스코틀랜드 선교사 노먼 매클러드Norman McLeod가 일본인이 유대인의 잃어버린 10부족의 후예라는 설을 발표한다.(65) 우치다는 미야자와 마사노리宮沢正典와 데이비드 굿맨David Goodman의 『유대인 음모론: 일본속의 반유대와 친유대ユダヤ人陰謀説―日本の中の反ユダヤと親ユダヤ』를 인용한다. 이 책의 영어판 제목이 훨씬 알기 쉽다. Jews in the Japanese Mind다. 노먼 매클러드의 주장은 호응을 받지 못했지만, ‘일본인의 선조는 유대인이다’라는 ‘일유동조론’은 나카다 쥬지中田重治, 사에키 요시로佐伯好郎, 오야베 젠이치로小谷部全一郎 등 메이지 기 종교 사상가들에 의해 특이하게 전개된다.(66) 매클러드가 참조한 것은 영국인-유대인 동조론이고, 다른 계통으로 미국 인디언의 유대인 후예설, 미국 흑인의 유대인 후예설도 있다.(67) 당연히 한국에도 있다. ‘단’지파의 후예라는 설이 있지 않은가. 당시로서는 높은 수준의 학문과 종교적 훈련을 받은 이들은 일유동조론으로 어떤 이득을 얻을 수 있었는가? 나카다 쥬지는 성서에는 일본인과 유대인의 관계가 암호로 적혀 있다는 성서 암호론을 펼친다. ‘해가 뜨는 나라’, ‘동쪽’ 등은 모두 일본이고, 유사 이래 일본이 경험한 모든 행운은 여호와의 신탁이다. 그것은 일본에 구원사적・성사聖史적 소명이 있기 때문인데, 세계 평화를 어지럽히는 자를 진압하여, 선택받은 민족인 이스라엘을 구원한다는 것이다. 선택된 민족인 일본인이 선택된 민족인 유대인을 구한다. 왜냐하면 일본인은 유대인을 한 번도 박해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67-69) 사에키 요시로는 도래민인 하타秦는 유대인을 가리킨다고 한다. 사에키는 경교景敎 즉 네스토리우스파 기독교 연구자로, 7세기 당나라에서 대진경교大秦景敎로 불렸다. 사에키는 5세기 하타 씨가 중국에서 일본에 도래하여 교토 교외의 우즈마사太秦에 정주한 사실에 주목하고, 다이신大秦과 우즈마사太秦의 우연의 일치에 집착하여, 우즈마사의 우즈太가 페르시아서 이슈, 즉 예수이며, 마사秦가 메시아라고 주장한다.(69) 예일 대학에서 신학박사를 받은 기독교도인 오야베는 『칭기즈 칸은 미나모토 요시츠데다』라는 기서에서 황국사관의 정치 이데올로기를 선언한다. 가설은 기괴하나 결론은 일본은 선택받은 나라이며, 일본인은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황국 이데올로기이다. 이 결론을 도출하기 위해 일본인과 유대인은 같은 조상을 가진 친족이라는 전제를 선택한다.(69-71) 이런 일유동조론자들은 모두 메이지 초기에 자랐고, 미국에서 교육을 받았으며, 기독교에 깊은 지식을 지녔다. 미국 유학으로 근대 국가를 실제로 목격했고, 또는 결정적인 실력 차이를 뼈저리게 느껴서, 신의 나라는 절대 패하지 않는다 나 세계에서 으뜸인 신국 이라는 망상에 사로잡히고, 신국 일본의 세계사적 탁월성을 유대인과의 동일화라는 망상적 추론으로 논증하려 했다. 이들의 속마음은 사카이 카츠이사酒井勝軍가 이교국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지위에서 세계의 신국 제국이라는 지위에 올라, 기독교를 떠받드는 구미 제국을 내려다보는 지위를 얻게 되고, 그들은 일본이 신이 애지중지하는 나라임을 깨닫게 된다고 말한데서 알 수 있다. 일유동조론은 서구에서 죄 없이 배척받는 유대인과 자신을 동일화함으로써 구미 제국의 범죄성을 고발하는 위치로 옮겨가는 것이다. 더욱이 기독교도에 대비되는 유대인의 윤리적 탁월성은 단순히 죄없이 배척받는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종교적 기원에서 기독교에 앞선다는 ‘성사적 장자권’에 의해 기초가 마련되어 있다. 유대인은 기독교 세계 출현 이전부터 존재했고, 기독교적 서구를 산출한 모태다. 다른 피해자와의 동일화와는 다르다.(71-73) 일유동조론자들은 유대인과 기독교도의 관계를 들어서, 구미 열강이 일본을 경멸하고 차별하는 까닭은 일본이 (잠재적으로) 서구 열강을 얕보게 될 ‘신의 제국’이며, 직계 친족이기 때문에 수난 당한다는 이야기를 성립시켰다.(74) 이런 일유동조론자는 일본인과 유대인 모두 동일한 박해를 받고 있는 동료다 라는 점에서는 친유대이나, 유대인이나 일본인이나 동일하게 상처받은 영적 위신을 회복하고 또다시 세상을 매섭게 노려보는 지위에 오르려 한다는 전망을 말하는 순간, 반유대로 전환된다. 일유동조론이란 사랑은 유대인에 대한 친화적・공감적 태도가 유대인에 대한 공포와 무모순적으로 동거하고 있다.(74) 반유대주의란 꼭 유대인을 배척하라는 명시적 박해 운동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이 일종의 국제적 네트워크를 매개로 세계의 정치・경제・문화를 효과적으로 통제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유대인에 친화적 태도나 경의를 표한다해도, 반유대주의자와 세계 인식을 공유한다는 말이다. 일유동조론자와 유럽의 반유대주의자는 이질적이며, 배태된 토양도 다르다. 하지만 비대화된 애국심과 기독교적 구미 문명을 향한 증오에 근거를 둔 이상, 일유동조론자는 자신의 은폐된 공격성과 지배욕을 유대인에게 옮기며, 유대인은 두려운 패권자로 비친다. 여기에 유대인의 세계 지배 음모, 즉 본격적 반유대주의가 수용된다.(75-76)
일유동조론이란 말그대로 기상천외한 주장이다. 그러나 그 근본은 망상적 애국심, 비대화된 애국심이다. 한국에도 기독교도를 중심으로 한유동조론이라 할만한 것이 있다. 한국인은 ‘단’ 지파의 후예라는 주장이다. 한국 개신교인들과 유대인들을 비교하는 일도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여기에는 여러가지 근거가 동원된다. 유대인처럼 박해를 받은 민족이다. 여기에는 중국과 일본에 의한 외침과 식민지, 전쟁의 기억이 덧입혀진다. 여기에 유대인의 능력과 하나님의 축복이 더해진다. 놀라운 경제적 성장과 부의 축적의 성공신화이다. 여기에 기독교의 선교가 늦어진 시기에 비해서는 놀랄만큼 높은 기독교의 비중이 더해지면서, 선택받은 민족이라는 견해가 한층 더 힘을 얻게 된다. 전세계에 보내는 선교사의 수는 미국의 뒤를 이어 2위이다. 지식과 권력은 상호 보완관계를 이룬다. 한국보다 먼저 선택받은 미국의 뒤를 이어 선택받은 민족인 한국이다. 여기에 일본 처럼 구미에 대한 두려움은 없다. 대신 일본에 대한 원한과 증오심이 등장한다. 그래서 일본은 버림받은 귀신의 나라이고, 복음이 전파되지 않는, 가장 기독교화가 되기 어려운 나라로 전락하며, 한국은 복음이 전해진 나라로, 그래서 일본은 타락한, 정신적으로 붕괴한, 부자가 되기는 했지만, 하나님의 축복을 받지는 못하는 나라로 규정된다. 이런 논리구조 하에서 일본에 대한 선교열이 높아지게 된다. 선택받은 나라, 기독교 국가인 미국에 대해서 우월감을 내세울 수는 없지만, 유럽에 대해서는 다르다. 미국에서는 본격적인 유대인 박해는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서유럽은 몰락하고 있다. 적어도 서유럽의 기독교 국가들은 타락했고, 기독교인의 수는 감소하고, 교회는 문을 닫고 술집이나 체육관으로 팔리고 있으며, 무슬림은 공격적으로 교회를 매입하고 유럽에서 세를 늘려가고 있다. 영국의 예가 자주 등장한다. 유럽국가들에서 등장한 포스트모더니즘과 네오마르크스주의가 세계를 사상적으로 혼탁하게 만들었다. 동성애가 범람하도록 했다. 미국에 대한 열등감과 유럽에 대한 우월감이 교묘하게 결합된 구조다. 반면 세속국가 이스라엘은 현실의 유대인으로 치환되면서, 핵무기를 가지고, 강력한 경제성장을 이루면서, 아랍국가들의 틈바구니에서 생명력을 유지하고, 미국과 강력한 우호관계를 수립하고 있다. 핍박받는 유대인에 대한 동정과 공감의 정서와 강력하면서 통제력을 가진 유대인과 이스라엘 국가의 결함을 통해 선택받은 민족에 대한 동경이 결합되어 있다. 이런 정서적 구조 위에서 태극기, 성조기, 이스라엘 국기를 들고 거리를 행진하게 된다. 여기서 이슬람 혐오, 동성애 혐오, 외국인에 대한 공포가 결합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반이슬람, 반동성애는 다른 형태의 반유대주의의 모습이다. 여기서 당연히 일유동조론의 원류인 일본은 배제된다. 일본은 선택받지 못한 불쌍한 민족이다. 현실의 일본인에게 느끼는 열등감과 르쌍티망을 해소하는 구조다. 그런데 최근에는 여기에 일장기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물론 문재인 정부에 대한 반대이기 때문이지만, 일장기는 단독으로 등장하지 못하고, 항상 성조기와 태극기와 함께 등장한다. 선택받은 국가 미국을 통해서라면 일본도 속죄받을 수 있는 모양이다. 그러면 선택받은 민족인 한국도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그런 논리구조가 아닌가 싶다.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이 세계도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으니까.
러시아 혁명의 간섭 전쟁인 시베리아 침략(1918~1922)에서 일본군은 시베리아의 반혁명 세력을 지원했고, 이때 백군 병사에게 배포된 팜플렛을 통해 “소비에트 정부는 유대인의 괴뢰 정”이라는 프로파간다를 접하고, 『시온 의정서The Protocols of the Elders of Zion』라는 반유대주의 문서를 알게 된다.(76) 그 내용은 자유주의 사상 비판, 세계 지배를 위해 채택할 방법, 최종적으로 확립할 세계정부의 비전이다.(77) 『시온 의정서』에 따르면 민중의 정치적 자유를 요구하는 것도, 민중의 정치적 자유를 박탈하는 것도, 혁명을 일으키는 것도, 혁명을 탄압하는 것도, 위정자가 부를 독점하는 것도, 사리사욕 없이 공익에 헌신하는 것도, 세계가 전쟁으로 혼란스러워지는 것도, 끝없이 평화를 향수하는 것도 모두 시온 현자의 음모이다. 세계가 어떠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모두 시온 현자의 음모가 된다. 편리한 문서다.(79) 이 문서의 원본은 모리스 졸리Maurice Joly라는 프랑스의 변호사가 쓴 나폴레옹 3세를 풍자하는 『지옥에서 나눈 몽테스키외와 마키아벨리의 대화Dialogue aux enfers entre Machiavel et Montesquieu』라는 문서에서 민중의 우매와 독재의 효용을 설파하는 마키아벨리의 대사만을 뽑아 ‘카피 앤 페이스트copy and paste’한 것이다.(80-81) 이 『시온 의정서』가 보이는 최대의 논리적 혼란은 시간상의 것으로 시온 현자가 ‘이미’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인지, 아니면 ‘이제부터’ 세계를 지배하려고 하는 것인지 애매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떤 정치적 행동이 ‘시온 현자가 세계를 지배하려고 행하는 계략’인지, ‘시온 현자의 지배에 저항하는 활동’인지, 그 판정은 완전히 해석자의 자유에 위임되며, ‘어떻게든 해석이 가능하다’. 그래서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된다.(81-82) 읽는 사람이 지지하는 정치적 행동은 ‘시온 현자의 음모에 대한 저항’으로, 읽는 사람이 반대하는 정치적 행동은 ‘시온 현자의 음모’로 해석할 수 있다. 시온 현자의 음모 자체에는 어떤 논리나 일관성도 없기에, 이에 대한 저항도 논리나 일관성을 요구받지 않으며, 『시온 의정서』를 믿는 인간의 정치적 주장이 논리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그의 정치적 올바름을 확신시킨다. 이런 국제 정치의 해석틀을 채용하면, 우둔한 사람일수록 그 해석 틀을 받아들이는 자신이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믿는다. 이런 국제 정치의 해석 틀을 채용하면, 우둔한 사람일수록 그 해석 틀을 받아들이는 자신이 정치적으로 올바르다고 믿는다. 이런 법칙은 우리 시대에 성공한 거의 모든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들어맞는다.(82-83)
음모이론의 기본적인 특징은 모든 상황을 다 설명하는 비합리성 그 자체에 있다. 이 자체로는 전혀 말이 안되는 이야기지만, 모든 것을 설명하게 된다. 우둔한 사람 일수록 이런 해석 틀을 받아들이면서 올바르다고 믿는다. 이런 논의야 말로 인터넷을 통해서 전파되는 모든 형태의 음모 이론에 다 통용된다. 특히, 태극기 부대의 담론이 가장 전형적으로 여기에 들어맞는다. 다만 한 가지 우치다가 잘못 본 점이 있다. 꼭 우둔한 사람만 이런 논의에 빠져드는 것은 아니다. 내가 아는 많은 식견과 지식을 갖춘 사람들이 자신들의 믿음이 무너지자 이런 논의에 빠져들었다. 물론 그렇다. 지식이 있다고 교수나 전문가라고 우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전파자 사카이 카츠이사는 이스라엘 왕국이 무너지고 그대로 일본 제국으로 승계되었다는 것이다. 기원전 6세기의 일이다. 사카이에 따르면 유대인과 일본인은 모두 으뜸인 대왕국의 신민이지만, 유대인은 일본인과 달리 역사적 사명을 자각하지 못하고 세계 정략의 음모에 얽매여 있다, 따라서 일본인은 유대인의 음모가 일본에 침입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유대인을 선도해야 한다.(84) 사카이의 일유동조론은 유대인에 대한 친화・공감 요소가 없는 순전한 반유대주의로 그의 목적은 신국 일본의 영적 우위를 논증하는 것뿐이다. 유대인은 논리의 경제가 요청하는 도구에 불과했다.(85) 1세대와 달리 『시온의정서』 이후에 등장하는 다이쇼의 반유대주의자들은 성서에 근거한 인류 구원과 같은 장식적 문장이 없는 노골적 내셔널리스트들로서, 그들이 ‘유대’라는 언급을 하는 것은 실제 정치의 문맥에서 유의미하게 사용될 때 뿐이다. 『시온 의정서』를 일본에 최초로 소개한 히구치 엔노스케樋口艶之助는 니콜라이 신학교 출신의 러시아어 교사로 시베리아 침략에 참가했는데, 암흑의 힘, 악마의 손이 혁명을 지도 한다는 근대 반유대주의의 두드러진 음모사관을 표명했다.(86-87) 음모사관은 근대 이전의 기독교-악마주의적 반유대주의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19세기적 근대인은 모든 현상은 원인의 실타래와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고, 그 원인의 실타래를 발견하는 것이 과학적 사고라는 믿음에 빠져 있다. 인과 관계의 발견이 과학이라는 사고는 하나의 결과에는 하나의 원인이 대응한다는 기계론적 세계관을 부당하게 전제한다. 정치 과정을 ‘기계’라는 메타포로 구상하는 것으로, 페니-껌penny-gum 법칙이라고도 한다. 자판기에 동전을 넣으면 껌이 나온다는 사실에서 동전이 껌으로 변했다고 추론하는 사고를 가리킨다.(87) 제국의 와해와 같은 거대한 껌의 출력이 있는 경우 거기에 맞는 제국 규모의 침공이 페니로 입력되어야 한다. 부르봉 왕조나 로마노프 왕조 처럼 갈팡질팡하는 사이에 제국이 발밑으로 무너져 내리듯 와해되는 경우, 적은 보이지 않는 적이 된다. 기계론적 세계관을 떠받는 사람들은 논리의 경제가 요구하는 바에 따라 암흑의 힘, 보이지 않는 정부를 상상을 통해 만들어내게 된다.(88) 역사적인 변동을 보이지 않는 계략자의 기획으로 돌리는 발상을 우리는 음모사관이라 부르지만, 19세기 정치사상가 중 이 폐해를 비껴간 사람은 거의 없었다. 마르크스를 포함해서. 그 역시도 사회의 모든 불행의 원인이자 사회의 불행에서 독점적 이득을 보는 단일한 침해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논증하기에 앞서 갈망하고 있다.(89)
페니-껌 법칙. 음모 사관이란 정말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음모이론을 전파한다는 비난을 사방에서 받는 팟캐스트의 논법이 이런 식이다.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다. 이렇게 크고 엄청난 일에는 원인이 있다. 그 원인을 알 수 없다면, 누가 이익을 얻는지 보면 원인을 알 수 있다. 누가 이익을 얻는가를 보아야 한다. 그러면서, 합리적 추론을 통해 범인을 몰아간다. 요즘은 이런 식의 논법이 진영의 양쪽에서 엄청나게 유행 중이다. 한국의 과거의 우파들은 그냥 우기고 위협하고 윽박지르는 수준이었는데, 이제 양쪽 모두 합리성을 따지고 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합리성을 가장해서 음모론을 퍼뜨리고 있다. 우연을 인정하기 시작하면, 허탈해 질 수 있지만, 거대한 사건이 실제 우연일 수도 있다. 권력이 남용되는 걸 너무나 많이 본 나머지 아무것도 믿지 못하게 될 수도 있지만, 그럴수록 냉정해 져야 한다.
히틀러가 총통이 되고, 독일・이탈리아・일본의 3국 동맹이 형성된 후 친-나치의 거대한 흐름이 생기면서, 나치 식의 유대인 문제의 최종해결에 동의하는 미디어나 이데올로그가 일본에서도 출현하고, 독일 대사관의 지원을 받으면서 일본의 반유대주의는 기이한 사고에서 국책으로의 위험한 이동을 달성하게 된다. 이 시기 반유대주의자에는 내셔널리스트만이 아니라 전향한 좌파 지식인 중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신인회 창립멤버 였던 쿠로다 레이지黒田礼二.(90) 유럽에서는 사회주의로부터 반유대주의로의 전향 그룹이 반유대주의의 핵심 부대를 이루고 있다. 부르주아 대 프롤레타리아의 계급 대립 도식에 부르주아를 유대인 자본가로 치환하면 된다.(91-92) 그러나 언론의 격렬한 친나치・반유대 소요에도 외교적인 수준의 대 유대 정책에서는 상당히 현실적 태도를 취했다. 예를 들면, 이타가키 세이시로板垣征四郎가 제정했다는 타국인과 유대인을 공정하게 대우하라는 정책. 독일 외무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만주국에서 유대인 난민 2만명의 수용을 결정한 일, 일본이 지배하던 해상의 유대인 수용. 스기하라 치우네杉原千畝 리투아니아 주재 영사대리가 2천 명의 유대인에게 비자를 발행한 일.(92-93) 반면 퇴역 육군중장 시오텐 노부타카四王天延孝는 반유대주의를 강령으로 내걸고, 전국 최고 득표로 당선된다.(93) 동맹국의 거듭된 요청에도 일본 정부가 폭력적 반유대주의 정책을 단행하지 않았던 이유로는 유대의 국제적 네트워크로부터 경제적 지원을 끌어낼 수 있지 않겠는냐는 기대가 군부 내에 깔려 있었다는 점을 생각할 수 있다. 도조 히데키東条英機나 마츠오카 요스케松岡洋右도 반유대주의 시책을 행할 뜻이 없다고 호언했는데, 이는 유대인이 강대한 권력을 가지고 있다면 박해하기보다 남몰래 이용하는 편이 국익에 맞을 것이라는 망상에 기초한 실리적 계산의 측면도 있다. 야코프 시프의 공채인수를 기억해 본다면, 유대인에 대한 은의와 국제적 경제 네트워크 실력에 대한 경외・공포심은 일본 군부에 일종의 트라우마임을 알 수 있다.(94-95)
일본인의 반유대주의의 기묘한 이중성, 한편으로는 공식적 반유대주의를 통해 국민을 선동하여 통합되도록 강요하고, 그러면서도 유대인의 도움을 원한다. 반유대주의의 유대인 세계정복론을 실제로 믿는 셈이다. 그 근원이 되는 것은 러일전쟁 전비 조달 과정에서 야코보 시프에게 받았던 도움, 그 도움은 결정적이었다. 영일동맹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미국과 유럽의 자금시장에서 전비를 조달할 수 없었다. 당시 대장상은 돈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었다. 우세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포기해야 할 형편이었다. 국민들에게는 비밀로 했지만, 알 사람은 다 알고 있었던 사실이다. 러일전쟁은 일본이 열강으로 발돋움하는 결정적 전쟁이었고, 그래서 인지 일본의 유대인에 대한 트라우마는 깊고도 컸던 것 같다. 한국의 반유대주의는 비슷하면서도, 두세번은 더 뒤틀린다. 그래도 경제발전 과정에서 유대인의 도움에 대한 신화가 없는 것은 아니다.
지금까지의 논의를 관통하는 패턴으로 첫째, 일본의 반유대주의는 환상적인 차원의 현상이었다. 일본인이 가상의 유대인을 반복해 호출한 까닭은 자신들의 사정, 국민국가의 정치적 위기와 국민적 정체성의 동요라는 두 가지 정치적 요인이었다. 일유동조론은 구미 열강에 의한 식민지화, 일본 고유의 전통문화 소멸에 대한 위기감과 공포를 배양기 삼아 태어났다. 이 민족적 위기감은 거의 히스테리에 가까운 것이다.(95-96) 한편 『시온 의정서』의 음모사관은 대만 병합, 조선 병합, 시베리아 침략과 같은 일본의 본격적 제국주의적 해외 진출이라는 정치적 맥락 속에서 등장했다. 국민국가로서의 근대화 조건을 정비한 일본은 지나치게 빠른 근대화에 대한 반발에 직면한다. 보통 선거, 여성 참정권, 언론의 자유, 집회 결사의 자유, 무산 정당의 등장 등 일련의 시민적 권리 청구와 도시화 전통적인 농촌 공동체 해체와 보조를 맞춰 등장했다. 사회 질서 붕괴의 책임을 전가할 ‘장본인’을 지명하는 것이 무엇보다 긴요한 사상과제가 되었다. 쇼와 연간이 되면 국제 정치상 일본의 첫번째 주적은 미국이 되지만, 『시온 의정서』는 모든 나라의 정책에 적용할 수 있다. 따라서 스탈린, 장개석, 루즈벨트, 처칠은 국제 유대인의 피에로라는 설이 전시 중에 거대 신문을 통해 주창되었다. 이런 일련의 현상의 공통점은 불순물 없는 선량한 국민국가 안에 국민이 통합되어 있는 상태가 ‘국가의 자연스러움’이라는 일본인의 원망(혹은 망상)이다. 단일체로서 국민국가를 상정하는 사람들은 국민국가란 복수의 유동적 요소가 우연히 일시적으로 형성된 과도기적인 침전물 같은 것이며, 언젠가 때가 오면 생성된 때와 마찬가지로 해리되기 마련이라는 점, 즉 통시적 흐름 속에서 정치과정을 이해하기를 꺼린다. 국민국가는 견고하며 ‘만세일계’의 단일체여야 한다는 전제의 망상이, 페니-껌 같은 폐쇄계를 요구한다.(97) 지금까지의 논의를 통해 이해하게 된 것은 유대인이 본 일본의 역사와 일본의 반유대주의의 역사가 동의어였다는 점이며, 다른 하나는 일본의 반유대주의는 정보의 결여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니라, 욕망의 과잉이 불러왔다는 점이다.(97-98) 메이지 시기의 일유동조론을 통해 일본인이 얻고자 한 것은 성사聖史적-영적 장자권에 기인한 수난의 이야기였고, 이 이야기를 통해 일유동조론자들은 세계사적 통용성을 발휘하는 ‘혈통 신화’를 손에 넣었다. 다이쇼 기의 근대 반유대주의를 통해 일본인은 음모사관이라는 폐쇄계의 정치학을 손에 넣었다. 이런 것은 동일한 병적 망상의 두 가지 증상으로, 이 망상이라는 병을 앓음으로써 일본인은 일종의 질병이득을 얻었다.(98)
‘유대인이 본 일본의 역사’와 ‘일본의 반유대주의의 역사’가 동의어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 말은 실체로서의 유대인이 일본에 대상으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유대인은 어디까지나 가상의 존재였다는 점을 뜻한다. 반유대주의를 위해서 불러낸 허상으로서의 유대인이다. 지금 태극기 부대가 현정부를 다루는 방식이 꼭 그렇다. 현 정부와 실체적으로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가상의 악마를 그려놓고, 그 악마와 싸우는 식이다. 과거에 그런 식으로 자신들에게 저항하는 세력을 악마화했던 그 방법을 그대로 쓰고 있다. 그러면서도 순간 순간 현실에 접촉했다가 가상의 세계로 날아가 버리는 식이다. 또 하나 정보의 결여가 아니라 욕망의 과잉이 문제였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그것이 내용이 부실하고, 실체가 불분명하다는 사실을 몰라서가 아니라 알았지만, 그러나 자신의 욕망을 달성하기 위해 악마적 형상을 계속 유지했다는 점이다. 문재인 정부를 타도하기 위해서 문재인 정부는 악의 화신이고, 부정과 부패이면서 무능해야 하고, 북한에 나라를 팔아서 가져다 바치는 매국노여야 하는 것이다. 일유동조론자들이 일본의 혈통 신화를 얻어낸 것과 같이, 한국의 기독교인들도 선택받은 민족의 신화를 자신을 유대인에게 비유하면서, 얻고 있다. 그러면서 유대인을 돕는 선교에도 몰두한다. 거기에다 더해진 음모사관까지. 이 음모사관은 진영을 막론하고 퍼지고 있다. 요즘에는 주류와 투쟁하던 소수자들의 논리에서도 음모사관이 등장하고 있다. 일본의 보수적 반유대주의자들이 상정한 것은 불순물이 없는 국민국가에 국민이 통합되어 있다는 상상이었다. 순수한 국민국가의 상상, 그리고 바로 이 순수한 국민국가의 상상이 군부독재를 통해서 이룩한 국민국가의 상상 속에서 남아서 지금도 통합이라는 이름으로 소수를 무시하면서, 그 아래서 외국인 차별과 인종주의의 거대한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의 반유대주의와 한국의 반유대주의를 바로 연결하면 곤란하다. 거기서 식민지와 제국의 비틀림이 있다. 다만, 그 안에는 욕망의 구조가 있다. 그리고 유대인 교육법이라는 아주 구체적이면서도 사소한 욕망이 세포 말단에까지 퍼져 있다. 오늘도 그런 말로 많은 사람들이 먹고 살고 있고.
음모시관은 어떤 의미에서 인간이 가진 선함의 발로다. 음모의 ‘장본인’을 영어로는 ‘author’라고 한다. ‘author’란 일상용어에서는 ‘저자’라는 의미로 사용되고, 어떤 작가가 한 작품의 ‘author’라고 할 때 이는 그 작가가 그 작품의 ‘창조주’이고 ‘통제자’이며, 텍스트의 의미를 구석구석까지 숙지하고 있는 ‘전지자’라는 뜻을 함의한다.(99) 롤랑 바르트Roland Barthes가 ‘작가의 죽음’을 통해 텍스트의 ‘창조자-통제자’로서의 ‘author’라는 것은 근대가 만들어 낸 환상에 불과하다고 말했고, 나 자신도 동의하지만, 그렇다고 원고료나 인세 수령을 거부한 적은 없다. 올바른 정치이론을 말하는 사람들은 올바르진 않더라도 인간의 본성에 기초한 신빙성의 끈질김을 과소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author’란 올바르지 않은 신빙성으로 페니의 하나다.(100) ‘단일 원인’이라는 사고방식이 모든 결과에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쯤이야 조금만 생각해봐도 알 수 있지만, 그 사고방식을 근절할 수가 없다.(101) 어떤 파멸적인 사건이 일어났을 때, 어디엔가 ‘악의 장본인’이 있어서 그가 그 모든 것을 컨트롤하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과, 이를 신이 인간에게 내린 징벌이라고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본질적으로 동류이다. 음모사관은 신앙을 가진 자가 빠지는 함정이며, 신을 믿을 수 있는 사람만이 악마의 존재를 믿을 수 있다.(102) 악마란 신의 초월적인 법칙 실현을 체계적으로 방해함으로써 방해해야 할 초월적인 법칙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증할 필요가 있을 때 요청되는 존재다. 음모사관의 근절이 힘든 이유는 초월적으로 사악한 존재가 세계를 지배하려 하고 있다는 믿음이 전지전능한 초월자를 갈망하는 인간의 선성善性 안에 이미 소재로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102-103)
반유대주의란 가장 전형적인 형태의 음모사관이며, 동시에 모든 음모이론은 반유대주의와 동류의 파생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런 음모이론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빠져드는 것을 막을 수 없는데, 그 이유를 인간의 본성에 기초한 신빙성이 원인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그는 두 가지를 결합시킨다. 하나는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초월적으로 사악한 존재에 대한 믿음과 근대적인 인과론의 결합이다. 그 결과 단일 원인의 초월적인 악마 찾기가 모든 사람의 놀이가 되게 된다. 그러면 모든 것이 쉬워진다. 그래서 한쪽에서는 이명박근혜와 삼성을 비롯한 재벌이 초월적이고 사악한 존재가 되는 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김정은과 문재인이 초월적이고 사악한 존재가 된다. 역설적으로 이들은 각각 이런 악마화된 존재의 전지전능을 믿는 셈이 된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 그리고 생각 외로 수많은 우연과 우발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아니 믿기가 싫은 것이다. 최근의 재팬 커넥션에 대한 이야기도 듣다 보면, 일본의 전세계를 상대로 한 외교는 천하무적이다. 그런데 왜 일본이 아직 안보리 상임이사국도 못되고 있을까. 일본이 국력이 크고, 제국주의의 경험으로 외교력이 강한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걸 다할 수는 없는 법이다.
19세기 프랑스의 반유대주의자들을 보면, 그들은 ‘좋은 사람’이 많았다. 태어나면서 사악한 인간이나 폭력적 인간, 과도하게 이기적 인간만이 반유대주의자가 된다면, 좋겠지만, 이들이 꼭 사악하거나 이기적인 인간은 아니고, 신앙심이 깊고, 박식하고, 공정하며, 불의를 격렬히 증오하고, 탁상공론을 싫어하고, 싸움의 현장에서 도망치지 않으면서, 자신의 주먹에 사상의 무게를 주저 없이 거는 수컷 농도가 짙은 인간이 자주 최악의 반유대주의자가 되었다.(103-104) 야스쿠니 신사의 A급 전범들도 그 사람의 선의, 무사 무욕, 명석함도 그가 범한 치명적 정치적 실책을 막지 못했다.(105) 최초에 프랑스 혁명 유대인 음모설을 외친 사람은 오귀스탱 바뤼엘Augustn Barruel이라는 예수회 신부였는데, 처음에는 비밀 결사 프리메시슨의 음모에 의한 것이라는 설을 개진하다, 유대인 주범설로 바꾸었다. 음모사관론자에게는 ‘author가 존재한다’는 도식 자체가 중요하지, ‘author가 누구인가?’라는 물음은 부차적이 된다.(106-107) 프랑스 혁명의 ‘author’가 누구인가를 물을 때 가장 합리적이라고 여겨진 추론은 ‘프랑스 혁명으로 인한 최대 수혜자가 누구인가?’라는 추론이었다.(107) 에두아르 드뤼몽은 사회가 부패・추락하는 것은 그로부터 수혜를 받는 단일 장본인의 음모 때문이라며, 거친 음모사관에 근대적 요소를 덧붙였다. 이것은 근대 반유대주의의 과학성을 보증하는 귀납 추론으로, 가설을 세운 후, 가설에 합치하는 사례를 선택적으로 취합한다. 이때 가설에 합치하지 않는 사례로부터 시선을 거둘 수 있다. 그러나 설령 과거의 모든 사례에 들어맞아도 미래에도 들어맞는다고 이야기할 수 없다는 결점이 있다. 귀납법적 추론은 미지의 팩터나 기존 팩터의 미지의 운동을 상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현상은 복잡계complex system이므로, 귀납법적 추론은 그런 현상 설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다만, 귀납법적 추리는 19세기적 패러다임 내부에서는 합리적인 것으로 간주되었다.(110-111) 음모사관이라는 도식이 있고, 다음으로 그 조건에 맞을 법한 범이 가설적으로 지명되고, 그 후에 범인이라는 본래의 사실이 발견된다는 순서가 뒤바뀐 방식으로 근대 반유대주의는 이론화되었다.(114)
배후의 기획자가 있다와 수혜자가 누구냐는 질문이 결합하면, 반유대주의가 된다. 그러니 이런 음모론이 횡행하는 현상을 반지성주의라고 부르는 것은 다소 게으른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반유대주의다. 게다가 이런 논의는 아주 흔하게, 귀납법적 추론과 함께 성급한 일반화를 행하고 있다.
에두아르 드뤼몽의 『유대적 프랑스』에 깔려 있는 것은 포스트 혁명기의 근대주의 비판이다.(121) 거기에 복류伏流하는 감정은 변화와 진보에 대한 공포이며, 미래의 미래성에 대한 공포이다. 이때 프랑스 대중의 눈에 유대계 시민은 변화의 상징처럼 비쳤을 수 있다. 전기, 가스, 철도, 자동차, 신문 등 극단적인 사회적 변화가 있는 곳에는 유대인이 출몰했다. 중세적 길드의 사고방식이 남아 있는 업계는 유대인을 배제했기 때문이다. 드뤼몽이 두려워하고 혐오한 것은 유대인이 아니라, 근대화 및 도시화의 추세 그 자체였다. 다만, 적은 가시적 구체적 인간이어야 한다. 모르는 사람 하나 없는 침해의 실행자이며, 그로부터의 해방이 일반적 자기 해방으로 간주되는 사악한 사람들이어야 하며, 프랑스 혁명 이후의 사회 변화로부터 수익을 얻는 인간이어야 한다.(123-124) 마르크스와 동일하게 드뤼몽도 프롤레타리아야 말로 혁명의 주체여야 하지만, 원군이 필요한데, 이때 계급을 넘어 통합된 유대인이 이들과 결합한다고 말한다.(125-126) 이런 드뤼몽의 사상을 체현한 것으로 볼 수 있는 사람이 모레스 후작이다. 모험적・폭력적 남성 아이콘인 배드랜즈 카우보이.(129) 우치다는 그의 정치사상의 특징이 ‘사내다움’의 지향임을 지적한다. 파시즘은 사상임과 동시에 혹은 사상 이전에 일종의 정치 미학이다.(130) 좌파 블랑지스트인 프랑시스 로르의 재선을 위한 뇌이 집회에 드뤼몽과 모레스 후작이 함께 나섰다. 거기서 싸움의 선두에 설 것을 책무로 하는 귀족과 혁명적 노동자의 ‘융합’, 유럽 ‘파시즘’의 원형이 탄생했다.(137-138) 모레스는 대중 동원에 필요한 정치적 임팩트는 강령의 정합성이나 당파의 조직성보다 오히려 활동 형태의 정서적・심미적 환기력에 있다고 보았고, 단원들에게 이데올로기적 일치를 요구하지는 않았으나 제복의 통일은 엄명했다. ‘제복’과 ‘근골’의 심미적 임팩트를 이용하겠다고 착상한 점에서 모레스는 최초의 근대적 정치 선동가 중 하나다.(142) 또 하나의 정치 미학은 ‘피’에 대한 취미였다.(143) 모레스 역시 사회의 급진적 변혁을 바라지만, 이는 프랑스 고유의 풍토, 전통에 어울리는 것이어야 한다. 참된 프랑스, 심층의 프랑스la France profonde는 프랑스의 대지, 진리, 피, 풍부한 뉘앙스, 기호, 감정을 의미하며, 법률상의 프랑스la France légale는 싱싱한 자연 발생성을 덮어 버리고 질식시키는 시스템을 가리킨다. 진정한 내셔널리스트의 싸움은 ‘프랑스’를 가리키는 두 층위 사이에서 전개하는 것이다. 유럽은 고대 이래 국경선을 계속 고쳐 그려왔기에, 국민적 정체성의 지표로 ‘수평 방향’의 간격보다는 ‘수직 방향’의 간격을 우선시하는 전략을 선택했다.(148-149) 그는 또 영국/프랑스 이원론도 동원하는데, 이는 모든 인간은 영원히 변화하지 않는 어떤 카테고리르 선천적으로 타고난다는 것이며, 파시즘이란 정치사상은 인간은 영원히 변화하지 않는 천성적 카테고리에 못 박혀 있다는 전제하에 성립하는 것으로, 파시즘이란 다른 계급들이 융합하여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본래 섞일 수 없는 계급이 만나는 것이다. 파시스트들이 귀족도 아니고 노동자도 아닌, 기독교적도 아니고 혁명적도 아닌 새로운 사회 집단을 형성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파시스트가 됨으로써 귀족은 더욱 귀족적이 되고, 노동자는 더욱 노동자적이 된다. 파시스트는 자신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사람들 속에서 동반자를 찾는다. 이런 전략에서 우치다는 니체의 초인을 연상한다.(152-153) 자신으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동반자를 불러들이지 않고서는 자신이 누구인지 확신할 수 없는 인간, 그러한 인간이 ‘파시스트’가 된다. 그는 귀족이면서 혁명적 노동자와 동맹함으로써 자신의 귀족성을 확증하고, 그 동맹을 통해 유대인=프리메이슨=영국인 등과 싸움으로써 이번에는 자신이 다른 누군가가 아닌 바로 프랑스인이라는 확증을 얻고자 한다.(156)
프랑스에서 형성된 반유대주의와 파시즘의 하나의 전형적인 사례로서 드뤼몽과 모레스의 경우는 의미심장하다. 파시즘에서 조차 프랑스는 선구적이었다. 근대주의에 대한 비판, 달리 말하면 자유주의에 대한 비판, 그리고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 보다 선구적인 부분에 대한 비판, 정치에서의 미학의 추구, 힘과 피, 땅에 결합된 순수성에의 강조, 그리고 초인에 대한 열망, 서로 다른 계급과의 연대 속에서 자기 정체성 찾기. 이런 요소들은 20세기의 대표적인 파시스트들인 무솔리니, 히틀러, 프랑코는 물론이고 일본의 군국주의자들에게서도 그리고 한국의 몇몇 독재자들에게서도 종종 등장한 모습이다. 동시에 이들에 대한 반대자들에게서도 심심치 않게 반복된 모습들이었다. 가장 가슴을 서늘하게 하는 것은 정치적 진영의 양편에 있는 자들이 모두 파시즘적 요소들을 나누어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내 머리는 음모이론을 거부하지만, 내 가슴은 음모이론의 내용과 그 효과에 종종 희희낙락한다.
유대인 문제에는 ‘최종적 해결’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것은 제3제국 독일인들이 아니면 거짓말에 불과하다. 어떠한 정치학적・사회학적 제언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우리는 유대인 문제의 최종적 해결에 도달할 수 없다.(160-161) 노먼 콘은 유대인 문제에 대한 연구 Warrant for Genocide에서 유대인은 그들에게만 취해진 특별한 증오에 의해 몰이사냥을 당했다고 언급한다. 함께 죽은 정신병원 입원자나 집시와도 달랐다는 것.(162) 그는 민족 말살genocide는 국가 간의 현실적 이해 대립이나 모종의 인종적 편견과는 무관한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한다. 이는 유대인 박해가 현실의 정치나 경제가 아닌 ‘환상’의 수준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에 근거한다는 점이다.(165) 인간은 그곳에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감지하고, 공포하고, 욕망하고, 증오할 수 있다. 그 무언가는 존재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살아 잇는 인간과 실제로 접하고, 그 사람의 삶의 방식이나 사고방식을 바꿀 수 있다. 우리가 인습적으로 유대인이라 민족 명칭을 부르는 사회집단은 존재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가 접하는 것과 민족적인 방식으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가설을 우치다는 제시한다.(166-167)
여기서 말하는 존재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라는 표현은 각주에도 있듯이 레비나스의 『존재와 다르게』를 가리킨다.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감지하고, 공포하고, 증오할 수 있다. 노먼 콘이 말하는 ‘특별한 증오’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유대인을 향한 것이다. 아니 현실에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 그들이 구체적인 사람의 모습을 띄고 내 옆에서 소통하고 있는 한, 그런 특별한 증오를 내뿜을 수 없다.
그러나 동시에 유대인들이 과학, 철학, 문화에서 탁월한 업적을 내어 온 것 역시 사실이다. 이런 유대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 어렵다. 그러나 우치다는 많은 한국의 학부모들과는 달리, 유대인을 이노베이트한 집단으로 만드는 지적 전통이 존재한다는 매혹적인 가정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다. 유대인들이 민족적인 규모로 개발하는 데 성공했던 것은 ‘자신이 현재 사용하고 있는 판단 구조 자체를 의심하는 힘’과 ‘나는 결국 나에 지나지 않는다’라는 자기 제약성을 불괘하게 느끼는 감수성이라고 우치다는 평가한다.(175-176) 우치다는 유대인에게 당연한 것을 비유대인은 이노베이티브한 것으로 간주한다고도 평한다.(177) 그것은 달리 일종의 지적 고문을 견디는 능력이라고 말한다.(179) 유대인들이 지성적 존재가 아니라 유대인에게 표준적 사고 경향을 우리가 인습적으로 지성적이라 부를 뿐이라는 것이다.(180) 우치다의 이런 언급들을 매우 자극적이면서도 꽤나 설득력이 있다. 유대인은 소수자, 이단자 이자, 자기 정체성은 물론, 자기 민족이나 인종적 정체성 혹은 자기 동일성을 끊임없이 회의해야 하는 존재이다. 그는 어디에도 속할 수 없으며, 자신이 속한 곳에서는 배척받는 데다, 자신이 유대인이 되고자 할 때, 무엇이 되어야 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유대인은 지적으로 실존적으로 부유하는 존재가 된다. 그 불안함과 불안정함 자체가 지성을 낳는다는 것이다. 이것을 지적 고문을 견디는 능력이라고 말했는데. 맞다. 고문이 확실하다. 그런 고문을 자녀교육법이라고 가르칠 순 없는 노릇인데.
레비나스는 유대인은 반유대주의자가 만들어 낸 사회 구성적 존재라는 사르트르의 사고방식을 물리치고 말한다. 1933년부터 1945년에 고난을 겪고 죽음을 경험한 수백만의 사람들 중에서 유대인은 신으로부터 완전히 버림받았다는 예외적인 경험을 겪었습니다. 인종적 박해란 모든 도주, 개종 시도, 배교를 금지시키고, 궁극적인 자기 동일성으로 소환한다고 말한다. 홀로코스트는 잊을 뻔 했던 성사聖史적 소명을 유대인에게 상기시켰다.(182-183) 레비나스는 유대인의 수난이 우발적 재앙이 아닌 유대인이 세계에서 수행해야 할 민족적 책무로 필연적인 것이며, 선택된 것으로 보았다. 선택은 책임이다.(184) 사르트르에 따르면 유대인이란 다른 사람들이 유대인이라고 생각하는 인간이며, 레비나스에 따르면 그 사람들은 신이 나의 백성이라고 생각하는 인간이다. 이 둘에 공통적인 것은 유대인이란 사후 작용이라는 것이다. 레비나스의 술어를 빌면 시원의 사후성initial après-coup을 강제받은 채 역사에 등장한다. 매번 사후에 세계에 등장하는 자가 유대인의 본질이다. 이 시원의 사후성[시원의 뒤늦음]에 대한 깨달음이 유대적 지성의 기원이다.(186-187) 사르트르에 의하면 유대인은 상황적 존재로, 유대인은 그들의 역사적 상황에 의해 본래의 인간성을 추구해야 하는 숙명을 부여받았다고 할 수 있다. 사르트르는 유대인 문제의 기원에 대해서는 묻지 않고, 유대인은 반유대주의자가 만들어 낸 것이나, 반유대주의자를 일소하면 된다고 말한다.(194-195) 그러나 특별한 증오를 받는다는 노먼 콘에 의하면, 반유대주의자는 유대인에게서 근대 그 자체, 시대의 불안이자, 파괴적 측면의 상징을 발견하지만, 실제 근대 문명을 만들고, 도시화를 선택하고, 공동사회를 버린 사람은 유럽인 자신이다. 자신이 행한 결과를 부인하고, 가해자를 외부에 투영하여 자신이 피해자 인 양 행동하는 것, 무의식 수준의 나쁜 아버지가 아닐까라고 콘은 생각한다. 나쁜 아버지, 두려운 아버지를 살해하고 파괴하기를 바람과 그러는 자신에게 죄의식을 느낀다. 이 죄의식이 외부 세계로 투사될 때, 악마로 표상된다. 위험한 사람은 살의를 품으면서 동시에 그 사실에 대해 죄의식을 품는 사람이다. 그러한 인간은 지나치게 강한 죄의식으로 인해 살의를 품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한다. 아무리 해도 통제되지 않는 살의 그것이 악마의 정체이다.(200-201) 노먼 콘의 이런 해석은 프로이트를 뒤집은 것으로 무서운 유대인이란 반유대주의자 자신의 공포와 증오의 투사라는 것이다. 사르트르도 마찬가지다.(206, 208) 우치다는 여기서 해석을 달리한다.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더욱 강한 애정을 느끼고 싶다고 바랄 때 그 애정과 갈등하도록 무의식적 살의를 요청한다는 것이다. 갈등이 있을 때 애정이 격화된다. 그래서 그는 반유대주의자는 유대인을 너무 격렬하게 욕망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210-211) 우치다는 머나먼 인류의 여명기의 어느 시점에 고대 사람들이 ‘시간’과 ‘주체’와 ‘신’이라는 세 가지 개념을 처음 얻었을 때, 그와는 다른 방식으로 ‘시간’과 ‘주체’와 ‘신’의 기초를 마련하고자 한 사람들이 유대인의 조상이라고 생각한다. 레비나스는 유대교의 시간 의식을 아나크로니즘anachromism(시대착오)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죄책감의 관념이 죄짓는 행위를 저지른다는 관념에 선행한다는 것이다.(215) 인간은 부정을 범하기 이전에 이미 부정에 대해 책임이 있다고 레비나스는 말한다. 이 아나크로니즘, 순서를 반전시키는 형태로 시간을 의식하고, 주체를 구성하고 신을 도출하는 사고방식에 유대인이 가진 사고의 근원적 특이성이 있다고 우치다는 말한다.(216) 유대적 사고의 특이성과 단적으로 지성적인 것, 유대인에 대한 욕망, 유대인에 대한 증오가 순서로 발생한다. 유대인이 반유대주의자를 만들어낸 것이다.(216) 프로이트의 원부原父 살해 시나리로는 살해, 죄책감, 이웃사랑, 입법자인 신의 관념을 순서대로 도출하게 되지만, 유대교도인 레비나스는 인간에게 이니셔티브를 인정하지 않는다. 마태복음 25장은 유대인은 신을 쫓아냈다. 이웃을 쫓아냈을 때, 이미 그렇게 했다고 말한다. 레비나스는 먹고 마시는 행위로부터 시작되는 죄책감이 있다고 말한다.(217) 인간은 이웃 사람을 환대할 것인지 추방할 것인지 하는 선택에 앞서서, 이웃 사람을 추방한 데에 대한 책임이 있다. 행위의 옳고 그름을 신이 사후에 사정하지 않는다.(218) 신은 합리적으로 사고하는 근대인의 근원적 전형인 욥에게 너는 많은 사람, 많은 사람들보다 뒤늦게 도착했다. 너는 자유롭지만 네 자유를 넘어서는 곳에서 그것들과 결합되어 있다. 너는 만인에 대해 져야 할 책임을 갖는다. 네 자유는 동시에 타자에 대한 우애이다. 자신이 범하지 않은 죄에 대한 책임성, 타자들을 위한, 그들을 대신한 책임성.(218-219) 유대교의 시간은 미래에서 과거로 흐르고 있다.(220) 자신에게는 역사적으로 어떤 사실이 있었는지와 전혀 상관없이 책임이 부여되어 있다. 왜냐하면 자기 자신이 자기 자신의 선성善性의 최종적 보증인이기 때문이. 징벌에 대한 공포에 의해 생겨난 책임성은 토템 종교에 불과하다. 공포를 느끼는 자식을 만들어 낼 뿐, 스스로의 양심에 기초해 선을 지향하는 성숙한 성인이 아니다.(221-222) 신=이웃을 몰아냄이라는 기원적 사실로부터 선성의 기초를 마련하기 위해서는 결코 있어서는 안 될 일이지만 과거에 나는 주를 몰아냈다고 하는 기원적 사실과 관련된 허위 기억을 자진해서 받아들여야 하며, 이것이 범하지 않은 죄에 관해 책임이 있다는 레비나스의 말의 의미이다. 이 위조 기억은 틀림없는 사실로 수용되지만, 사실로서는 존재해서는 안된다.(222) 레비나스에게 이웃애의 윤리를 궁극적으로 결정짓는 것은 나에게 명령을 내린 신이 아니라, 신의 명령을 외상적 방식으로 이해한 나 자신이다. 인간은 잘못된 방식을 취함으로써 비로소 올바르게 될 수 있다. 인간은 현재 여기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도래했다는 방식으로 받아들일 때, 인간적이 될 수 있다.(223) 인간의 인간에 대한 개인적 책임은 신마저도 해소할 수 없다. 그것이 신에게 벅차기 때문이 아니라, 내게 책임이 있다고 선고하는 인간의 등장과 함께 그 책임이 발생했기 때문이다.(225) 수난은 유대인에게 신앙의 정점을 이루는 근원적 상황이며, 수난이라는 사실을 통해 유대인은 성장한다고 레비나스늘 말했다. 유대인의 신은 구원을 위해 현현하는 존재가 아니라, 모든 책임을 한 몸에 떠맡고자 하는 인간의 완전한 성숙을 요구하는 존재다.(226) 나는 지금까지 계속해서 여기에 있었고, 앞으로도 여기에 있을 선천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과 나는 뒤늦게 여기에 도착했으므로 이 장소에 있도록 허락받을 수 있는 존재 임을 자신의 행위를 통해 증명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정체성 성립 방식의 차이 속에 권선징악의 전능한 신과 부재의 신 사이에 있는 깊은 단절이 존재한다.(227)
레비나스에 대한 이야기로 우치다는 마무리 짓는다. 역설적이면서도 고통스러운 논의를 따라가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지만, 나는 레비나스의 이야기에 매혹되었다. 나는 이 레비나스의 말 속에서 에티 힐레줌이 말한 신은 나를 도울 수 없고, 내가 신을 도와야 하며, 그 도움은 내 안에 신이 부여한 인간성이 발현되어, 모든 증오와 절망을 이겨내는 것이라고 했던 말이 공명되었다. 시원의 사후성 또는 뒤늦음이라는 거창한 표현보다. 늦게 도착한 자 라는 말이 마음을 쳤다. 우리는 모두 늦게 도착한 자들일 뿐인데. 마치 태어나면서부터 모든 권리를 보유한 양 거들먹거리면서 살고 있다. 레비나스의 그 수난에 대한 해석도 사후적 해석에 지나지 않지만, 수난에 대한 사후적 해석을 통해 정신적 유아로 퇴행하지 않고, 어른으로 인간으로 남고자 하는 분투에 숙연함이 생긴다.
인간은 어떤 존재로 살고 있으며, 나는 어떤 마음으로 오늘 하루를 살아가고 있는 걸까. 오늘 뉴스에 오르락내리락하는 어떤 사람이 있다. 그에게는 아마도 일생일대의 기회, 이번이 아니면 결코 오지 않을 기회였을 수 있다. 아니 적어도 그렇게 생각했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기회를 자신의 책임을 생각하면서 때론 버릴 수도 있어야 하는 법이다.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일에 대해서도 스스로 책임감을 느끼면서. 물론 어려운 일이지만.
그러다 문득 예전 생각이 났다. 대학에 갓 입학한 꼬꼬마들에게 왜 투쟁을 해야하는지, 왜 수강산청 거부와 수업거부를 해야하는지, 왜 점거농성을 해야하는지, 왜 시험을 거부해야 하는지, 열심히 설명하고, 설득하고, 호소하고, 때론 강권하던 그 선배들이 떠올랐다. 그렇게 신입생들을 어린애들은 앞장세워 놓고, 다들 자기 할 일로 분주했었지, 챙길 건 알아서들 챙기던 그들. 갑작스레 그때의 그 기억과 기억 저편에 오래 묻어두었던 감정 더미가 올라와 기분이 마음이 혼탁해졌다. 그래 그런거지.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기 어렵다는 건 잘 안다. 그래서 나도 두렵고. 그렇지만, 때론 말과 행동 중에 선택할 때가 오는 법이다. 게다가 386, 386하지만, 60년대 출생한 또래엔 학번 없는 사람이 70%가 넘는데 말이지.
2019. 3. 28.
* 괄호 안의 숫자는 번역서의 쪽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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