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에 소장된 마해송의 떡배단배, 1953년 학원사 판으로 추정됨. 본래는 1948년 『자유신문』에 연재. 초등학교 시절 읽고, 빠져들어서 읽고 또 읽었다. 떡배와 단배 편으로 나뉘어서 싸우는 섬사람들, 떡집과 단집. 떡쌀과 수수깡, 지푸라기를 모두 빼앗기고는 결국 거지가 되어서 서로 싸우는 섬 사람들. 1948년이 배경이니, 단배는 미국, 떡배는 소련이 아니었을까. 미국과 소련을 뒷배로 하고 좌우익으로 나뉘어져 서로 싸우는 조선 사람들의 이야기. 동화다운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어린 내 머리에도 깊이 새겨졌다. 그때는 설명해 주는 사람이 없어서, 무슨 이야기인지는 알지 못했다. 이 책은 누가 사준 것이 아니고, 내가 골랐다. 갈현동에 살던 어린 시절, 연신내 로타리 근처에 있는 헌책방을 뒤지다가 내가 고른 책이다. 그때가 아마도 열살이나 열한살쯤.
시작하기 전에,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간단한 정리.
떡배 단배 이야기. 에드워드 사이드 (Edward W. Said), 『오리엔탈리즘(Orientalism)』, 1978 (1991), 박홍규 역, 교보문고.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한일간의 합의 중에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에 관련된 것이 있다. 중국이 추구하는 일본군 위안소 설치, 운영 및 ‘위안부’ 강제동원을 입증하는 기록을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으로 등재하는 데, 한국 정부가 참여하던 것을 더 이상 참여하지 않기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물론 일본측의 주장이다. 그런데 여성부가 슬쩍슬쩍 발을 뺀다는 보도가 이어지는 것으로 보아, 그런 합의가 있나 보다 의심하고 있다. 아니라면, 정부가 그런 합의가 없다고 밝히면 그만이지만, 그러지는 않고, 점점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관련 예산, 용역, 활동을 줄이고, 없애고 있다. 물론 정부는 민간의 일이라면서 발뺌이다.
여기서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이 흥미로운 매개로 등장한다. 일본은 여기에 위안소와 ‘위안부’ 관련 기록이 올라가는 것을 뼈아프게 여기는 반면, 한국과 중국은 그것을 통쾌하게 여긴다. 일본의 전쟁범죄를 판정해 주는 기관은 한국, 중국, 일본 모두에게 있어서 유엔 혹은 유네스코라는 기관이다. 국제적인 공인 혹은 국제적인 승인을 한국, 중국, 일본 모두 원하고, 또 그것이 상대방에 대한 부정이자 패배를 안기는 것으로 인식한다. 동양은 어떤 의미에서 항상 서양의 승인을 필요로 한다.
실제 필요한 일은 아직도 부족한 자료를 모으고, 증언 등을 통해 자료를 만들고, 자료를 펴내고, 그런 기록들을 모아서 공개하는 일 일텐데. 역설적으로 작년말 ‘대일항쟁기 위원회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는 작년말 해산되었다. 이 위원회는 2004년과 2008년 발족한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 진상 규명위원회’와 ‘태평양전쟁전후 국외강제동원 희생자 지원위원회’의 뒤를 이어 2010년 부터 활동한 위원회다. 이 위원회가 일본군 ‘위안부’ 관련 기록을 모으고, 펴냈고, 이 일이 영향력을 발휘했는데, 정작 이 위원회는 해산하고 말았다. 이런 일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하는 것만큼 폼나는 일도 아니고. 그나마도 한일간 합의(?) 때문인지, 단순한 게으름 탓인지 유야무야 되는 분위기다. 물론 중국은 계속 진행하겠지만.
한동안 그리고 아직도 우리는 세계문화유산 등재 열풍이다. 그것이 선출직 공직자의 업적이라도 되기나 하는 듯이. 사실 중국과도 ‘아리랑’과 ‘단오’의 등재를 둘러싸고, 일본과는 ‘김치’의 등재를 둘러싸고 민간 사이에서 좋지 않은 소리가 오고 가기도 한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법원 등기부 등본도 아니고, 특정 유산이 등록국가의 자산이 되는 것도 아닌데, 꼭 그런 것처럼 목청을 돋운다. 그러고보니 작년에 한국과 일본은 일본의 ‘근대화 문화 유산’ 유네스코 등재를 놓고 한판 다투었다. 하시마섬(일명 군함도)를 등재하려면, 징용을 넣어야 한다고 했는데. 한다 해놓고 결국 유야무야됐지만. 사실 원래 그럴 줄 알았던 거지. 하여튼 아무리 일본이 근대화와 서구화에 성공했다고 해도, 한·중·일에서 어떤 것이 더 나은 문명인지, 어떤 것이 더 선진적인지, 어떤 것이 지난 전쟁에서 옳고 그름의 기준인지, 어떤 것이 더 고유한 문화 유산인지. 모두 서양의 보증을 받아야한다. 우리 스스로는 그것을 가릴 수도 없고, 싸울 수도 없다. 도장을 찍어서 인증하는 것은 서양이다.
‘오리엔탈리즘’의 내면화는 이렇게 전혀 의외의 곳에서도 발견된다. 그러니 위르겐 하버마스를 불러놓고, 한국 민주주의의 장래에 대해 묻거나, 마이클 샌델을 불러놓고, 한국의 정의에 대해서 묻는 것,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와 창조 경제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일 정도는 애교에 속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물론 이 모든 일은 우리에게 무엇이 좋은가, 옳은가, 필요한가에 대한 판별과 승인을 서양의 소위 대가들에게 구하는 일이다. 한국은 아직도 스스로 자기 문제를 판단할 능력이 없는 미성년인양하는 것이 낯뜨거웠지만, 한일간의 소위 ‘위안부’ 합의에도 ‘유네스코 세계 기록유산’ 등재 여부가 포함되는 것을 보니 한국이라는 나라의 미성숙은 물론이고, 일본도 아직 ‘탈아입구(脱亜入欧)’를 제대로 하지 못한 모양이다.
사이드는 무엇을 ‘오리엔탈리즘’이라 말했는가?
“오리엔탈리즘이란 서양이 동양에 관계하는 방식으로서, 유럽 서양인의 경험 속에 동양이 차지하는 지위에 근거하는 것이다. 동양은 유럽에 단지 인접되어 있다는 점만이 아니라 유럽의 식민지 중에서도 가장 광대하고 풍요하며 오래된 식민지였던 토지였고, 유럽의 문명과 언어의 원천이었으며, 유럽문화의 호적수였고, 또 유럽인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 반복되어 나타난 타자 이미지이기도 했다. 나아가 동양은 유럽(또는 서양)이 스스로를 동양과 대조되는 이미지, 관념, 성격, 경험을 갖는 것으로 정의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동양이란 그 어느 것도 단순히 상상에 그친 것이 아니었다. 그 동양은 유럽의 실질적인 문명과 문화의 필수적 구성 부분이었다. 오리엔탈리즘은 그 필수적 구성 부분을 문화적으로, 심지어 이데올로기적으로 하나의 담론 형태로 표현하고 대변한다. 그러한 담론은 제도, 어휘, 학문, 이미지, 주의주장 심지어 식민지 관료제도와 식민지적 스타일로 구성된다.”(15)
사이드가 정의하는 동양과 오리엔탈리즘이란 무엇인가? 우선, 사이드가 말하는 동양은 지리적으로 중동을 말한다. 규정하는 사람에 따라서 인도가 포함되기도 한다. 스테판 다나카(『일본 동양학의 구조』)의 견해를 따르면, 중동과 인도, 기껏해야 인도차이나의 네덜란드와 프랑스 식민지에 한정되던 동양 개념에 중국, 한국(조선), 일본을 넣어서 특유의 오리엔탈리즘인 ‘동양사’를 구성한 것은 일본이었다. 동양으로 분류되는 이 땅의 특징을 살펴보자. 첫째, 유럽에 인접하다. 둘째, 현재 유럽의 식민지다. 고로 인력과 부의 원천이다. 셋째, 유럽 문명, 언어 등의 기원이다. 넷째, 가장 오래된 유럽의 호적수였다. 이런 것들이 실체적인 동양이다. 이념적으로 동양은 ‘유럽 문명과 문화 구성 부분’이라는 표현은 알기 쉽게 말하면, 동양 없이 서양 없고, 서양 없이 동양 없다는 말이다. 즉, 유럽이란 동양이란 타자를 규정하고, 동양을 보유하며, 동양을 지배함으로써 규정되는 동시에, 동양은 유럽의 지배대상이다. 오리엔탈리즘이란, 바로 이 사실을 구성하는 담론을 가리킨다. 쉽게 말하면 이렇다. “동양은 무엇인가? 또는 동양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대답은 동양 지역의 땅들에도 있지 않고, 동양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있지 않고,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말들의 구조로서의 담론, 즉 이데올로기에 의해서 규정된다. “오리엔탈리즘”의 담론에서 동양은 나태하다고 규정하면, 중동의 한 지역 마을, 예를 들어, 베들레헴에 살고 있는 농부가 아무리 부지런해도, 그는 나태한 존재로 표상된다. 왜냐하면, 그는 동양인이기 때문이다. 이런 말의 구조는 우리에게 실상 매우 익숙한 것이다. 조선 후기 혹은 구한국 말기의 조선인들은 게을렀다. 이것이 한국의 오리엔탈리즘, 즉 식민사관의 내용이다. 비록 그 농부가 새벽에 일어나 하루종일 논과 밭을 돌보고, 가축을 먹이고, 저녁에는 집안일을 하며, 신식학교를 다니면서 공부를 했다고 해도, 그는 게을렀다. 왜냐하면, 그는 조선인이기 때문이다. 그가 게으르지 않았음이 인정된다면, 그는 ‘조선인임에도 불구하고’ 부지런한 것이고, 동시에 그가 아무리 부지런했다고 해도, 그는 ‘게으른 조선인’이라는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데, 그 이유는 그가 조선인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조선인에 대한 규정성으로의 담론이며, 오리엔탈리즘의 정체다.
오리엔탈리즘이란 목적을 가지고 시작된 것이다. 대체로 그 출발점이 18세기 말로 잡히는데, 이는 동양을 다루기 위한, 동양에 대한 서술, 묘사, 동양을 가르치거나 통치하기 위한, 오리엔탈리스트들의 길드(동업조합)적인 제도이다. 즉 오리엔탈리즘이란 동양을 지배하고 재구성하고 억압하기 위한 서양의 방식이다.(18-19) 오리엔탈리즘이란 중립적인 혹은 사실을 추구하는 동양연구나 동양지역연구가 아니다. 동양을 통치하기 위한 기술적 구조를 만들어내고, 동양이 가진 취약점을 파악하며, 동양에 대한 서양의 지배를 정당화하는 이데올로기를 창출하고, 이를 또 동시에 동양의 엘리트들에게 교육시켜, 그들에게 피지배성을 내면화시키며, 동양을 연구하여, 동양을 통치하기 위한 제도와 법률을 생산해 낸다. 동양을 재단하고, 동양인들을 재단하며, 그 지역과 사람들에게 숙명과 임무를 부여하고, 강제력을 동원해 그 임무를 완수시킨다. 이 과정에서 혹 실패와 좌절이 있으면, 그것은 동양의 잘못이자 책임이며, 성공하면 그것은 올바른 목표와 방법을 설정하고, 추진해낸 서양 지배자의 공이다. 이와 같은 식의 모든 주장 구조를 만들어내서, 그 주장 구조를 관철시킴으로써 이러한 주장 구조 즉, 담론에 복속하도록 하는 전 과정은 오리엔탈리즘이라는 담론과 함께 진행된다. 오리엔탈리즘은 지배의 담론이자, 지배를 위한 담론이다. 그러므로 이 담론은 군사력과 경제력을 동원한 실제적인 지배를 통해서 보완된다. 동시에 이 담론은 이 지배를 정당화하고, 지배를 가능하게 한다. 오리엔탈리즘은 문화적 주도권, 문화적 헤게모니가 작용한 결과다.(26) 이런 헤게모니 하에서 동양은 ‘복합체’에 불과하다.(27) 즉 동양은 분석대상이 아니다. 예를 들어 한 사람의 팔레스타인인은 동양인이다. 그가 농부이든 상인이든, 그가 한 가족의 가장이든 독신이든, 그가 팔레스타인인이든 유대인이든, 남자이든 여자이든, 일자무식이든 영국 혹은 프랑스 유학을 다녀온 학자이든, 그는 ‘동양인’이다. 그가 ‘동양인’이라는 사실이 그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규정한다.
“오리엔탈리즘이란 지정학적인 지식을 미학적, 학문적, 경제적, 사회학적, 역사적, 문헌학적인 텍스트로 분배하는 것이다. 또한 오리엔탈리즘이란 지리적인 기본 구분일 뿐만이 아니라, 일련의 ‘관심’ 곧 학문적 발견, 문헌학적 재구성, 심리학적 분석, 풍경, 사회학적 서술과 같은 매개에 의해 만들어지고 유지되는 ‘관심’을 주도면밀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나아가 오리엔탈리즘이란, 우리의 세계와 명백하게 다른 세계를 이해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지배하고 조종하며, 심지어 통합하고자 하는 일정한 의지나 목적의식 그 자체이다. 무엇보다도 오리엔탈리즘이란 하나의 담론, 곧 살아 있는 정치권력과 직접적인 대응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다양한 권력과의 불균형적인 교환과정 속에서 생산되고, 또한 그 과정 속에 존재한다. 그것은 정치권력과의, 지적 권력과의, 문화적 권력과의, 도덕적 권력과의 교환에 의해 상당한 정도로 형성된 것이다. 사실 참으로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오리엔탈리즘이 현대의 정치적·지적 문화의 중요한 차원 가운데 하나를 단순히 대변하는 것일 뿐만이 아니라, 바로 그 차원 자체로서, 동양이 아니라 도리어 ‘우리의’ 세계와 더욱 깊은 관계를 갖는다는 점이다.” (35)
오리엔탈리즘의 전제는 동양과 동양인은 자기 스스로를 표상할 수도 없고, 대표할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동양인은 누군가 표상해주고, 또 대표해 주어야 한다. 그는 물론 서양인이며, 서양이다. 그러므로 오리엔탈리즘은 서양의 지배를 낳고, 또 서양의 지배 아래에서만 성립한다. 동양인은 서양인이 아닌 어떤 것이다. “서양인은 합리적·평화적·자유주의적·논리적이고, 참된 가치를 발견하는 능력을 가지며, 본능적인 시기심을 갖지 않음에 반하여, 동양인은 그런 능력이 전적으로 결여되어 있다.”(96) 벨푸어의 논리에 따르면 영국 즉 서양은 이집트 즉 동양을 알고 있다.(71) 동양인은 더 이상 위대하지 않고, 그들은 종속된 존재이다.(72) 서양인은 지배하고, 동양인은 지배당한다.(74). 그리고 이 동양인에 대한 지식은 보편적이다.(74). 크로머에 따르면 “동양인이나 아랍인은 우둔하고, 활력과 자발성이 없으며, 정도에 지나친 아부와 음모, 교활, 동물학대를 일삼고, 상습적으로 거짓말을 하며, 둔감하고 의심이 많다.(78) 이런 날조된 동양인은 재판 받는 존재, 학습되고 묘사되는 존재, 훈련받고 규율되는 존재, 즉 지배의 틀에 따라 표상되는 존재이다.(81-82) 벨푸어든 크로머든 혹은 다른 오리엔탈리스트 든지 동양인을 이런 식으로 규정한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런 지식을 보편적인 것으로 여긴다는 점이다. 동양인에 대한 규정은 동양인 전체에 적용된다. 동양인은 개인이 아니다.
또한 동양은 이질성, 상이성, 이국적 관능성과 결부되며, 그런 특성들은 모두 단정적이고, 자명한 것들이다. 이때 사용되는 시제는 시간을 초월한 영원이며, 반복과 강제를 통해 관철된다. 동양의 어떤 것은 언제나 유럽에서의 어떤 것과 대응관계에 있으나 유럽보다는 열등하다. 말하자면 오리엔탈리즘이라는 언어·사고·비전의 종류는 근본적인 실재론의 한 형태로서, 오리엔탈리즘이란 동양적인 것이라고 여겨지는 문제·대상·특질·지역을 다루는 경우의 습관으로 그것을 행하는 사람이 스스로 말하고 생각하는 대상을 어떤 하나의 단어나 문장으로 지식하고 명명하며 고정시키고, 다음에는 그 단어와 문장이 현실성을 확보하고, 현실 그 자체라고 인정한다. 그러나 수사학적으로 보면 오리엔탈리즘이란 완전히 해부학적이고 열거적이다. 오리엔탈리즘의 어휘를 사용하여 동양적 사물을 개별화하고, 다루기 쉬운 작은 부분으로 분할한다.(135-137) 이런 일련의 과정을 사이드는 ‘동양을 동양화한다’고 표현한다. 유럽 세계의 경계선 바깥에 있는 동양안 교정되고, 처벌되어야 하는 대상, 오리엔탈리즘의 영역이며, 그 표준을 따라 진실한 동양으로 도식화된다. 다시 말하면 동양을 있는 그대로의 동양이 아니라, 반드시 그래야하는, 즉 동양이어야만 하는 모습으로 전환시켜 받아들인다.(127-128) 오리엔탈리즘의 태도는 반경험적이고, 자기충족적이며, 자기강화적이다.(133)
오리엔탈리스트들과 함께 이집트로 진군한 나폴레옹 그들이 만들어낸 『이집트지』, 수에즈 운하를 판 드 레셉스, 영국의 수상이었던 디즈레일리의 말처럼 동양은 평생을 걸고 하는 사업이었다. 그러나 과거에 적대적 상대였던 동양을 타도하기 위해 동양을 알고, 동양에 침입하여 소유하고, 학자, 군인, 재판관의 손으로 재창조하고, 잊혀진 언어, 역사, 민족, 문화를 발굴하여, 동시대의 동양을 판단하거나 지배하기 위해, 고전적인 동양으로 진열했다. 동양에 대한 애매함은 없어지고, 온실에서 기른 실체가 대체 되었다. 반항적 적대자는 협력적이고 순종하는 동맹자가 되었고, 다른 세계로서의 동양은 없어지고, 우리의 세계, 서로 결합된 하나의 세계만이 남았다. 동양이란 행정적이고 실무적인 개념이 되었고, 인구통계학, 경제학, 사회학의 여러 요소에 종속되었으며, 동양인은 종속민족의 구성원이고, 동양은 서양에 녹아버렸다.(169) 오리엔탈리즘은 학술적 담론에서 제국적 제도로 완전히 변모되었다.(176)
18세기에 이르러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요소가 나타나 오리엔탈리즘의 근대적 구조에 이르게 된다. 동양은 이슬람의 여러 지역을 넘어 멀리까지 확대되었고 즉 성서적 틀이 완전히 해체되었고, 동양과 대결하려한 르네상스 역사가와 달리 초연한 태도로 동양의 특수성에 직면했으며 즉 기독교문화를 주제로가 아니라 역사의 대상으로, 세속적으로 다루고, 일부는 주변 지역이나 문화에 대해 비교연구와 개관에 만족하지 않고 공감적 동일화에 의해 (양극구조, 즉 기독교적인 유럽세계의 경계선을) 초월하려는 경향도 존재했고, 자연과 인간을 유형으로 분류하여, 인정, 피부색 혈통, 기질, 성격 등이 기독교와 비기독교라는 구분을 압도했다.(211-218) 즉, 기독교와 비기독교를 나누는 이분법이 해체되고 세속화되었다. 근대적 오리엔탈리즘이란 기독교적인 초자연 신앙이 자연화되고 근대화되며 세속화된 대체물이다.(220) 18세기 유럽의 오리엔탈리즘을 대표하는 두 인물은 실베스트르 드 사시와 에르네스트 르낭이다. 드 사시는 나폴레옹의 의뢰로 시작된 『프랑스 학술의 역사적 일람표』 작업에 참여했고,(227) 3권으로 된 『아랍명문집』(또 하나의 일람표)을 출간함으로써, 동양을 재편성하여, 동양을 서양에 공급한다.(232-233) 드 사시가 창시자라면, 르낭은 2세대 계승자로 오리엔탈리즘의 공적 담론을 확고히하고, 통찰력을 체계화하여, 문헌학에 적응시켜, 지적 및 세속적 제도를 확립했다.(234) 르낭은 문헌학자가 근대적 정신을 창조했다고 보고, 합리주의, 비판정신, 자유주의를 들며, 문헌학을 통해 사물의 체계, 즉 권력에 도달한다고 말한다.(237) 특별히 기독교에 대한 비판적 연구, 비교문법학, 언어들을 어족으로 분류하여, 언어의 신성기원설을 최종적으로 부정한다. 언어는 인간적 현상이다.(241) 르낭의 목표는 셈계 동양을 잘라내는 것으로(248), 오리엔탈리즘에서 셈어란 인도-유럽어에 비해 윤리적으로 생물학적으로 타락된 형태이고, 문헌학의 실험실에서 발명한 허구에 불과하지만, 셈어란 유럽인의 동양 지배의 상징이었다.(249-250) 셈어와 함께 셈족은 신화, 예술, 상업 활동, 문명도 낳은 적이 없는 광신적인 일신교도로, 의식은 좁고 경직되었으며, 인간성의 열등한 배합을 보여주는 것으로 간주되었다.(251) 생명체 및 준생물체(인도-유럽어, 유럽문화)와 기형적이고 비유기적 현상(셈어, 동양문화)를 통합하는 비전은 유럽의 과학자가 실험실에서 이룩한, 제국적 권력의 상징이자, 지배적인 문화의 힘을 확인하는 것이다.(257) 르낭이 쓴 『예수의 일생』은 죽은 동양인의 전기를 자연계의 생명에 관한 진실의 이야기처럼 쓴 구성물이었다.(258) 르낭은 인공적으로 실험실 속에서 생겨난 것을 제외하면 동양문화에서 생겨나는 권리란 인정할 수 없다. 인간은 문화가 낳은 아이가 아니다, 오히려 문화는 구성물이며, 하나의 접합체이고, 하나의 창조물이고 준유기체적 구조에 불과하다.(261) 르낭과 드 사시는 동양을 일종의 인간적인 평범함으로 환원시켜, 동양은 쉽게 조사되고, 복잡한 인간성은 박탈되었다.(265) 동양은 비하적 표현의 대상이 되었다. 동양은 처음에는 범신론, 정신성, 안정성, 항구성, 원시성 등으로 과대평가되다, 곧 비인간적, 반민주주의적, 후진적, 야만적인 모습으로 나타났다.(266) 칼라일은 『코란』을 “조악하며, 미숙하고, 서투르며, 혼잡스럽고, 끝없는 중복, 기나긴 헛소리, 착한, 그리고 참기 어려운 우매함”을 만들어 내었다(269)고 평가했다. 동양은 서양에게 지적으로 종속되거나 선천적으로 허약성을 보여주는 모든 징표를 가지게 되었다.(270) 마르크스의 아시아적 사회상태라는 개념은 식민지에 대한 영국의 간섭, 약탈, 노골적인 잔혹성을 언급하며, 영국이 아시아를 파괴하여, 아시아에서 사회혁명이 가능해졌고, 동양인의 고난은 역사적 필연으로 본다.(271) 마르크스는 아시아의 파괴와 재생을 영국의 사명으로 보는데, 이는 생명력이 없는 아시아를 재생한다는 순수한 낭만주의 오리엔탈리즘의 일종이다.(272-273) 오리엔탈리스트들에게 개인은 없고, 존재하는 것은 동양인, 아시아인, 셈족, 이슬람교도, 아랍인, 유대인 등 여러 인종, 심성, 민족(집합체)일 뿐이다.(273) 특히 여기서 중요한 특징은 오리엔탈리즘이 텍스트의존적인 학문으로 거대한 도서관을 구축한다는 점이다. 동양에 거주하거나 여행하는 개인적 경험은 유럽인의 대표로서의 특권적 생활을 영위하는 것으로 개인적인 진술보다 공적인 오리엔탈리즘의 진술로 전환되어야 한다.(276-277) 동양은 해석하는 유럽인을 위해 존재하며, 일종의 살아 있는 그림이고, 포괄적인 해석도 가능하다. 그것은 동양에 대한 재해석이자 재구축이다.(279) 『현대 이집트인의 풍속과 습관』을 쓴 레인은 이집트인을 가시적으로 만드는 것(286)이 목적이었고, 오리엔탈리즘의 조직화를 위해 유용한 지식을 확보, 정식화, 보급한다.(289) 동양은 종종 왜곡된 증언에 의해, 비개성적인 정의를 가지게 되면, 일종의 벽이 없는 상상의 박물관으로 변모하여, 있을 수 있는 것은 모두 동양적인 것이 되었고, 여러 조각의 집합으로 재전환, 재구성된 텍스트의존적인 백화점, 오리엔탈리즘적 의미 내용을 가지게 된다.(292) 동양을 여행하거나 동양에 거주하는 유럽인은 동양의 불순한 영향력, 비정상성, 대부분은 위험한 성적 매력으로 부터 자신을 보호하려 했다.(293) 동양은 선정적이고, 방탕하고, 음란했다. 유럽인의 동양 여행은 순례라는 관점을 가진다.(296) 영국인에게 동양은 인도에 이르는 길을 통과하는 것으로 정치적 의지, 정치적 지배, 정치적 한계의 영역을 여행하는 것인 반면, 프랑스인의 상실감은 추억과 연상, 잊혀진 비밀, 숨겨진 교신으로 이루어진 공상적이며, 실현불가능한 동양으로 나타났다. 그들은 이국적이고 매력적인 현실을 탐구했다.(297-299) 예를 들면 샤토브리앙에게 나폴레옹은 최후의 십자군이었고, 동양은 자신의 노력에 의해 재생되기를 기다리는 낡은 캔버스, 동양의 아랍인은 “다시 야만 상태에 빠진 문명인”이었다.(301) 동양인은 정복될 필요가 있고, 이는 해방이다. 샤토브리앙은 이를 “낭만주의적 속죄 관념”으로 표현하여, “죽은 세계를 갱생시키고, 생명력이 없어져 껍질 밑에 은폐된 잠재능력을 유럽인만이 자극하여 자각시키는 것이야말로 기독교도의 사명”이라고 주장했다.(303) 라마르틴은 순례 과정에서 “자기를 모든 유럽과 동일시하는 초개인적 자아”로 보고, 동양을 “조각으로 나누어져 유럽의 종주권하에 접수되고 그 불가침의 영토가 될 해체 과정”에 있는 것으로 보았다.(314) 유럽인들은 언제나 유럽의 특권 전체를 자기 안에 내면화하고 동양을 바라본다. 동양은 몰개성적이고 집합적인 동시에, 유럽인의 분석에 의해 모습을 드러내는 가시적인 대상이 된다. 인도로 가는 길을 실제로 지배하고 있는 영국인에게 동양은 제국의 지배대상이다. 프랑스인들은 상실감에 따른 다소 감상적인 태도를 취한다. 영국인과 프랑스인 모두에게 반복되는 것은 방탕, 관능, 선정, 성적으로 억눌린 동시에 타락한 성적으로 자유로운 동양의 모습니다. 오늘날 서구인들의 관광지들인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에서 흔히 발견되는 관능과 관광의 결합, ISIS든 이슬람에 대해서든 유사한 묘사로도 이어지는.
사이드는 오리엔탈리즘을 명백한(manifest) 오리엔탈리즘과 잠재적인(latent) 오리엔탈리즘으로 나누는데, 명백한 오리엔탈리즘에서는 (표면적으로) 동양에 대한 지식 변화가 발생하지만, 잠재적 오리엔탈리즘에서의 합의, 고정성, 지속성은 항구적인 것으로 본다. “동양의 원격성, 기괴성, 후진성, 침묵적 무관심, 여성적인 피침투성, 무기력한 순종성”과 같은 것들이다. 동양은 서양인에게 주목받고, 재건되고, 구제될 필요가 있는 지역으로, 진보의 본류에서 소외된 장소이다. 동양의 후진성, 퇴행성, 서양과의 불평등이라는 명제는 인종차별이론의 생물학적 근거 등에 대한 관념과 쉽게 연결되었다.(356-357) 오리엔탈리즘은 특히 남성적인 영역으로 성차별주의가 두드러진다. 여성은 남성의 권력환상에 의한 창조물이며, 무한한 관능의 매력을 발산하고, 어리석으며, 순종한다.(359) 오리엔탈리스트들은 도시에 이슬람의 잠재적 열등성에도 합의한다.(363) 동양을 실제 지배했던 영국은 벤담과 밀 부자의 공리주의적 관리 철학의 영향이 컸고, 이는 자유주의와 복음주의 유산과 결부되어 동양지배철학으로 합리성 관점에서 법률과 형법으로 행정부 및 감독기관을 설치했다. 영국은 언제나 주인이었다.(370-371) 보불전쟁의 승리이후 제한적으로 식민지 경쟁에 나선 프랑스는 동양이란 경작되고, 추수되며, 지켜져야 할 지리적 공간으로 보는데, 여기에는 농업의 이미지와 노골적인 성적 관심에 근거한 이미지도 깔려 있었다.(376-377) 오리엔탈리스트란 신비한 동양을 해석해주는 전문가였다.(382) 이들은 현지에서 유럽을 대표하며서도, 때로는비밀첩보원으로도 일했다.(384) 데이비드 린 감독의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주인공 T.E. 로렌스가 그런 인물이었다.
백인은 백인이기 때문에 유리한 지점을 차지한다.(406) 근대의 유색 인종은 고압적인 틀을 사용하는 유럽의 백인 학자에 의해, 그들의 언어학, 인류학, 교의 위의 원형적인 선조에 관한 일반적 진리에 의해 결정되었다. 동양과 이슬람은 백인의 지배하에 있으며, 동양은 행위의 담당자, 동양의 힘은 백인의 가치, 문명, 이익, 목적에 동원된어야 한다. 동양에 관한 지식은 행위로 번역되고, 동양에서 새로운 사고와 행동의 조류를 낳는다. 백인이란 현대사의 담당자이자 동양의 창조자이다.(408-409) 로렌스는 제국의 대리인으로 새로운 제국주의를 내세워 동양을 자극함으로써 전투적인 현대적 생명체로 변화시킨다. 동양을 운동으로 자극하고, 운동에 서양적인 형태를 부여하고, 새로이 일어난 동양을 개인적 비전에 포함시킨다.(413)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에서 파이잘 왕자(알렉 기네스)와 함께 시도하는 아랍민족회의, 즉 아랍의 반란은 로렌스가 의미를 부여할 때만 의미가 있었다.(416) 로렌스는 독자와 역사 사이에 예지로 가득한 체험을 가득하게 하여, 동양에 책임을 지는 담당자가 되었다. 로렌스는 짧은 시간에 동양이 동양이 될 수 있는 전문적 능력을 제시한다.(418) 같은 감독에 의해 영화화된 E.M. 포스터의 『인도로 가는 길』에서 동양인과 서양인은 화해하지 못한다. 로렌스로 대표되는 영국의 비전은 주류 동양, 곧 ‘백인’의 전문적인 지도에 따르고 그것에 의해 통제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정치조직 및 운동이다. 동양은 우리의 동양, 우리의 사람들, 우리의 지배영역이다. 그러나 프랑스의 감각이나 정책은 언제나 소수파에 입각하며, 프랑스와 그 자식인 식민지 사이에 구축된 정신적 공동체가 가지는 보이지 않는 압력을 기반으로 한다.(422) 이에 따라 오리엔탈리즘에 변화가 생기며, 동양은 중요하고 의미 깊은 정치적 현실이 된다. 로렌스는 대상의 정의와 정의하는 인간의 정체성을 동시에 포함한다. 동양과 서양의 만남에서 동양은 서양인 학자가 만든 동양적인 유형의 비전에 적응해야 하고, 동양과의 특수한 만남에도 적응해야 한다.(425) 지금까지는 유럽 문화가 동양을 소화하여 왔지만, 이제 동양은 분출하여 세계를 파괴할 가능성도 있다. 만일 중국이 스스로 조직화된다면.(431) 오리엔탈리즘은 미분화된 동양에 일반화의 힘을 빌려주었고, 하나의 문명 속의 각 사례를 문명의 가치, 관념, 지위의 이상적 담당자로 전환했다. 오리엔탈리스트가 동양에서 발견한 가치, 관념, 지위를 공통의 문화적 통화로 변환시켰다.(433) 오리엔탈리즘은 20세기에 정치의 도구로 변함에 따라 유럽이 유럽 자신과 동양 자신을 해석하는 코드가 되었다.(435) 20세기의 제국과 식민국가 모두 오리엔탈리즘에 의해 자기 해석과 타자 해석을 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식민주의와 제국주의를 벗어났다고 해도.
동양에 관한 지식은 양자의 차이를 증명하고, 강조하고, 심화시키며, 이로 인해 유럽의 종주권이 효과적으로 아시아에 확대된다. 서양인이 동양을 전체적으로 알아야 할 필요성은, 동양이 서양인의 관리에 맡겨져 있기 때문이다.(440) 한편 기브는 유럽이 동양을 지배한다기 보다 연구대상으로서의 동양을 필요한다고 생각했다.(442) 이런 변화는 서양 문화가 중대한 국면(야만적 관습, 편협한 기술적 관심, 도덕적 황폐, 민족주의의 위협에 의해 야기된 위기)을 경과하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443) 베버의 종교사회학적 자본주의 접근도 동양인에게는 무역, 통상, 경제적 합리성이 결여된다는 오리엔탈리즘의 반복일 뿐이다.(446) 오리엔탈리스트가 연구하는 근본적으로 다른 문화인 이슬람은 타락한 모든 동양의 대표였다.(447) 이슬람교도와 유대교도를 근대 셈족이라고 부를 만큼, 그것은 셈어에 대한 폄하의 연장성에 있다.(449-450) 오리엔탈리스트들은 이슬람 여러 나라의 민족주의에 반대하면서, 이 세속적 민족주의가 이슬람을 동양적인 것으로 만드는 내적구조를 유린한다고 느꼈다.(451) 프랑스와 영·미의 이슬람 연구에서 오리엔탈리즘을 지배한 기브와 마시뇽은 영국과 프랑스의 전통에서 출현하여 그 전통에서 작업했다. 그들은 전통적인 학문을 정치세계에 응용했다.(453) 마시뇽의 동양은 색다르고 기이하며, 눈을 어지럽히는 것이라, 그는 이슬람의 텍스트나 문제의 맥락을 포괄하고 활성화했다.(458-459) 마시뇽의 출발점은 세 아브라함 종교였다. 이슬람은 이스마엘의 종교, 언약에서 제외된 일신교, 저항의 종교, 하갈의 눈물로 시작된 슬픔, 그리고 지하드는 외부의적 기독교와 유대교 및 내부의 적 이단에 대한 투쟁이며, 신의 은총에 이르는 길로서의 신비주의를 제시하는 이슬람 내부의 역류도 있다.(460-461) 신은 인간에 대해 일종의 부재(absense)이지만, 신의 의지에 복종한다는 경건한 무슬림의 의식이 신의 초월성에 대한 질투와 우상숭배에 대한 불관용을 낳으며, ‘할례된 마음’이 그 토대를 이룬다.(462) 마시뇽은 동서의 만남에서, 서양의 침략, 서양의 식민지주의, 이슬람에 대한 공격 대부분을 서양의 책임으로 돌린다.(464) 그럼에도 팔레스타인 분쟁은 셈족의 문제이며, 이삭과 이스마엘의 분쟁일 뿐이다.(465) 동양인은 자기평가도 자기이해도 할 수 없고, 이슬람교도는 거대한 정신적 공허, 무질서와 자멸 가까이에 있다.(466) 마시뇽에 의하면 이슬람 동양은 정신적, 셈적, 부족적이고, 근본적으로 일신교적이며, 비아리안적인 것이다.(467) 그러나 이슬람은 서양에서 본질적으로 잘못된 방식으로 재현되어 왔다.(468) 유럽문화 속에 오리엔탈리즘이 제시하는 여러 재현은 최종적으로 담론적 일관성이라고 부르는 것을 확보한다. 이 재현이란 형성되는 것이다. 유럽의 재현으로서의 동양은 ‘동양’이라고 불리는 지리적 영역을 향하여 더욱 특수화되어 가고, 하나의 감성으로부터 형성된 것 또는 변형된 것이다.(469) 기브는 동양연구를 재검토하여 이것이 학문적 활동이 아닌 신생독립국, 다루기 힘든 나라에 대한 국가정책의 도구로 생각했으며, 정책 결정자, 사업가 새로운 세대의 학자들의 안내자가 되었다. 그의 오리엔탈리즘 연구는 공적 세계에 응용할 수 있는 가능성이었다.(473) 기브가 말하는 동양인은 자연에 대해서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고, 이슬람을 그런 관심을 최종적으로 표상하기에 이슬람 동양의 모든 생활에 절대적으로 우성하고, 그들을 지배한다. 이슬람이란 일종의 상부구조이고, 정치역학에 의해 위험해지며, 지적 지배력에 간섭하려는 이슬람 교도의 시도에 의해서도 위험에 빠지고 있다.(478) 이슬람은 모든 것이거나 모든 것을 의미한다.(479) 이슬람 종교 지도자가 아닌 오리엔탈리스트가 이슬람에 관한 저술을 쓰고, 법칙을 만들며, 재정식화하는 것은 특권이다.(484) 마시뇽과 기브에 의해 1차대전 종결에서 1960년대까지 백과사전, 명문집, 개인적 기록이라는 오리엔탈리즘의 세 형식이 변용되어, 전문가 위원회, 더 낮은 차원의 공공활동, 충격적인 경험의 영역으로 변화하였다. 이제 미국류의 사회과학이 등장한다.(487)
2차대전 이후 미국의 절대적 권력하에 지역연구 전문가들이 등장했다.(488) 위험하고 부정적인 아랍은 반시오니즘과 석유공급자라는 두 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동시에 아랍인은 호색한이거나 피에 굶주린 악한, 사디스트, 하등인간으로 대중매체와 오락에서 묘사된다.(491) 이제는 문헌학자가 아닌 훈련받은 사회과학자가 오리엔탈리스트로 등장한다. 미국의 중동연구는 문학을 결여하고 있다.(499) 언어는 단순한 도구가 된다.(497) 미국의 새로운 제국주의는 문화관계정책이었다 선교사들 조차 자신들의 역할이 신에 의한 명령이기 보다 자신들의 신, 자신들의 문화, 자신들의 운명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했다.(504-505) 이를 대표하는 구스타브 폰 그루네바움은 전체론적인 문화로서의 이슬람 연구를, 본질적으로 환원적·부정적 일반화를 오리엔탈리즘의 전통에 따라 추구했다.(507) 무슬림 문명은 문화적 실체이다.(508) 폰 그루네바움에게 존재하는 것은 단 하나의 이슬람뿐으로 근대 이슬람이 서양에서 얼굴을 돌린 것은 자신의 본질적인 뜻에 충실했기 때문이나, 이슬람은 서양적 관점에 선 자기해석에 의해서만 근대화를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510) 이는 하나의 획일적이고, 인간의 일상 경험을 멸시한 환원적이며 불변적인 이슬람이며, 근본적으로 정치적이다.(511) 아랍과 이슬람 연구에 남겨진 도그마를 요약하면, 첫째, 합리적으로 발전해 온, 인도적이고 우월한 서양과, 탈선적이고 정체되어 있으며 열등한 동양 사이에 절대적, 체계적인 차이가 있다. 둘째, 동양에 관한 추상개념, 고전적 동양문명을 표상하는 여러 문헌에 근거한 추상개념이, 현대 동양의 현실에서 나오는 증거보다 더욱 바람직하다. 셋째, 동양이 영원히 획일적이고 자기를 정의할 수 없다고 하는 것, 서양의 관점에서 동양을 서술하기 위해서는 고도로 일반적이고 체계적인 어휘가 불가결하며, 학문적으로는 객관적이다. 넷째, 동양은 본질적으로 두려운 것이다.(514-515) 근대 오리엔탈리즘에 나타나는 셈적인 단순성에 관한 이론의 뿌리는 매우 깊다.(523) 오리엔탈리즘은 자체로는 발전할 수 없는 발전의 안티테제이다. 중심은 셈족의 발전이란 정지되어 있다는 신화이다.(526) 오리엔탈리스트는 ‘쓰는’ 인간이고 동양인이란 ‘쓰여지는’ 인간이다.(528) 동양에 있는 것은 정보의 근거(동양인)과 지식의 근거(오리엔탈리스트)이다. 곧 기록자와 그에 의해 활성화되는 주제의 관계이다.(529) 중동과 서양의 관계는 성적인 것으로 중동은 처녀와 같이 저항하나, 남성인 학자는 그것이 ‘부담 큰 과제’임을 알면서도 이것을 억지로 열어서 골디어스 매듭을 관통함으로써 그 획득물을 확보한다. ‘조화’란 처녀의 부끄러움을 정복한 결과 생긴 것에 불과하다.(530) 세계는 내가 생각하는 것이다라는 전제적인 관찰자에게 아랍은 계기로만 존재한다.(531) 아랍의 특성을 비판할 때는 매우 상세하며, 아랍의 장점은 간단하다. 아랍의 가족제도, 아랍적인 수식, 아랍적인 성격은 인간의 능력을 결여한 것이다.(533) 동양인으로서 아랍인의 특징은 부정적이며, 아랍의 존재란 숫자와 생식능력에 불과하다.(533) 최종적으로 아랍에 남는 것은 미분화된 성충동이다. 오직 성적으로 자기증식을 하는 민족이라는, 성적과장의 지류.(534) 아랍의 혁명은 성욕, 암, 광기이다.(537) 아랍에 혁명은 적합하지 않다. 혁명에 필요불가결한 정치적인 범주가 결여되며, 악한 정부에 대한 저항권이라고 하는 서양적 교의는 이슬람적 사고와 무관하다.(539) 혁명은 흥분이고, 선동이며, 소규모 정권의 수립이다.(540) 오리엔탈리즘은 20세기 아랍세계의 혁명적 대변동을 설명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한다.(541) 미국의 전문가나 정책입안자는 예외없이 오리엔탈리즘에 물들어 있다.(550) 오늘날 아랍세계는 미국의 지적, 정치적, 문화적인 위성국가가 되고 있다. 아랍 학생들은 미국에 가도록 장려된다.(553) 동양인 학생들과 학자들은 미국의 오리엔탈리스트에게서 배운다.(554) 동양인 학자는 오리엔탈리즘의 체계를 조작할 수 있게 되므로, 자기 국민에게 우월감을 가지나 그는 원주민 정보원에 불과하다. 반면 동양에는 미국을 연구하는 기관이 하나도 없다.(555) 동양에는 동양연구를 위한 조직도 없다. 이는 동양에 대한 소비이데올로기의 침투이다. 이슬람은 서양의 시장체계에 완벽하게 포함되어 있다.(556) 현대의 동양은 스스로를 동양화하는데 참여하고 있다.(557)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해답은 옥시덴탈리즘이 아니다.(563)
『오리엔탈리즘』은 한국에서 결국 ‘식민지의 극복’과 ‘개인의 발견’이라는 문제로 이어진다.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을 읽다보면, ‘식민사관’이 떠오른다. 조선사 정체론과 조선인의 무능을 지적하는 식민사관, 조선은 스스로 자기 극복을 할 수 없고, 조선인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견해의 만연. 조선인은 나태하고, 불량하며, 반문명적이라는 주장. 이 모든 ‘식민사관’이 가져온 ‘조선인론’들은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이다. 일본 제국주의가 조선에 대해서 한 일이 바로 오리엔탈리즘의 동양화였기 때문에 어쩌면 이 과정은 너무 당연하다. 그런데 이것이 식민지가 끝나면서 사라지지 않는다. 요즘은 조금 잠잠해졌지만, 소위 ‘민도’라는 주장과 ‘국민성’이라는 주장이 있었다. 한국인의 국민성은 이렇다 저렇다는 주장이다. 한국인은 개인은 뛰어나지만, 뭉치지 못한다. 한국인은 한의 민족이다. 더 많은 것들은 기억나지 않지만, 한국인은 어떻다는 식의 주장들이다. 하나하나 뜯어보면 확인할 수 없는 일종의 형이상학적이자 선험적인 주장들. 그리고 식민지 시대부터 내려온 한국인(조선인)에 대한 평가 수단인 ‘민도’. 이 모든 것들은 ‘조선인’ 혹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의 핵심이었다. 사이드가 반복해서 말하는 ‘동양’의 ‘동양화’. 그러나 실상 그런 ‘조선인’은 오직 개념으로만, 상정된 것으로만 존재했을 따름이다. 실상은 이렇다. 조선이라는 나라는 더 이상 없다. 구한국도 없어졌다. 실상은 ‘대일본제국’의 식민지 ‘조선’에 살고 있는 사람들. 즉, 근대적인 표현인 국적은 ‘일본’이지만, 그 안에서 ‘조선인’ 혹은 ‘반도인’이라는 하위 구분적 정체성을 가졌다. 상대적으로 ‘일본인’, ‘내지인’은 우월한 정체성을 가진다. ‘내지인’, ‘조선인’의 구분은 있고, ‘내선일체’ 등을 추구하기는 했지만, 그 하위 구분은 ‘민족’은 아니고, 때론 ‘족’, 때로는 ‘인(人)’으로 구별되는 이 집합적 정체성이 ‘오리엔탈리즘’이다.
‘오리엔탈리즘’의 규정력 하에서, 개인은 집합적 존재로 표상된다. ‘조선인’ 이나 ‘반도인’ 혹은 ‘한국인’으로서의 존재가 규정될 뿐이지,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으로 불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성이 우선되지 않는다. 그 집합적 정체성과 집합적 호명은 지역적으로 영남인, 호남인, 특정 고등학교 출신이나 직업집단 출신 등으로 개인의 특이성을 이해하고 표현하는 데, 집단적 소속을 통한 판단을 우선하는 인식적인 특성 혹은 습성을 낳게 되었다. 대부분의 우리는 그냥, 그런 방식의 인식이 익숙하다. 개인은 없고, 집단 혹은 집합만으로 모든 것이 설명되는 이 상황이 바로 ‘오리엔탈리즘’이다.
특히 오리엔탈리즘은 ‘동양’과 ‘동양인’에게서 자기 표현의 권리를 빼앗아 갔다. ‘동양’과 ‘동양인’은 자기를 표현하고, 자기를 표상할 수 없다. ‘동양’과 ‘동양인’은 ‘서양’과 ‘서양인’에 의해서 표상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서양’은 ‘동양’을 지배한다는 논리다. 동양은 동양이 누구인지, 무엇인지 잘 모르며, 동양은 동양에 무엇이 필요한지, 그것을 어떻게 가져올 수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 이 모든 것을 계몽주의를 따른 ‘미성숙’한 동양을 위해 서양이 해주어야 한다는 제국주의 침략의 논리가 ‘오리엔탈리즘’이다. 우리에게도 너무나 익숙한 논리구조이다. 이 구조에 ‘조선’과 ‘일본’을 넣어도, 그대로 이야기가 되며, ‘한국’과 ‘서구’ 또는 ‘선진국’을 넣어도, 너무나 쉬운 이해와 설명구조를 가진다. 또한 ‘국민’과 ‘국가’를 넣어도 동일한 설명과 이해력을 가진다. ‘오리엔탈리즘’은 동시에 독재와 지배의 논리이기도 했다. 군부 권위주의 독재 세력이든,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선진적인 재벌이나 유학파 지식인들이든, 이들은 소위 ‘국민’이란 어떤 존재이며, ‘국민’에게 무엇이 필요한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국민’은 이런 사람들의 지도를 잘 따르기만 하면 된다. 독립이든 근대화든 산업화든 자본주의화든 민주화든 지배층만 교체되고, 혹은 그 일부만 교체되고 지배의 논리 구조는 옛 것을 고스란히 답습한다. 이런 지배는 집합적 혹은 집단적 호칭을 통한 호명을 통해 이루어진다. 가장 익숙하고 흔한 바로 그런 호칭이 ‘국민’이다. 궁극적으로 ‘오리엔탈리즘’은 자기 표명과 자기 표현의 문제, 자기 지배의 문제. 즉, 개인의 발견이라는 문제로 수렴하게 된다.
뒷부분에 길게 이어지는 1995년의 후기를 보면, 두 가지 문제에 대한 반론이 보인다. 우선 ‘반(反)서구주의’라는 오해를 받았다는 것이다.(567) 그래서 『오리엔탈리즘』은 이슬람주의와 이슬람 근본주의를 지지하는 것으로, 이슬람과 아랍세계를 방어하는 것으로(568) 오해했다는 것이다. 사이드에 의하면 그런 정체성이란 만들어진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그러면서 활발해지고 있던 탈식민주의(포스트콜로니얼리즘)을 간략하게 희망적으로 언급한다. 아리프 딜릭이나 가야트리 스피박에 대해서, 그러나 지역적 순수성으로 돌아가는 탈식민주의는 동양의 동양화 혹은 환원주의라는 이름으로 이미 거부하고 있는 셈이다. 순수한 이슬람, 순수한 팔레스타인, 순수한 동양은 존재하지도 않았고 존재한적도 없었으니까.
그러면서 이 책의 내용은 끊임없이 현대의 중동 문제, 팔레스타인 문제로 이어진다. 저자와 PLO와의 관계는 접어두기로 하자. 2016년의 세계는 9/11 이후 새로운 테러리즘의 시대를 맞고 있다. 지난해 전세계를 곤혹스럽게 하고 고통에 빠트렸던 ISIS의 문제. 그리고 파리에서의 테러. 일련의 이 문제를 보는 시각에 남아있는 ‘오리엔탈리즘’. ISIS에로의 유인을 관능과 성적 타락으로 보는 끊임없는 연속. 그리고 그들의 파괴. 파리 테러의 문제를 이민자 소외 및 주변화 내지 부적응으로 이해. 이슬람에 대한 반복되는 집단적이고 집합적 이해,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한 진부한 새로운 해석들의 제기. 시아파와 순니파의 오랜 갈등, 사우디의 와하비즘, 서구 식민지배의 유산의 복합성에 대한 문제제기. 어디에 가도 반복되는 현대판 ‘문헌학’적 유사 역사적 접근들. 이들이 왜 싸우는지에 대해서, 서구가 가지고 있는 거의 모든 방법을 적용해서 해석해 보고, 그 해석에 따른 여러가지 해결책을 마련해 적용해 보지만, 어느 것 하나 신통하지 않다. 서구가 해석하고, 해결책을 찾아보고, 그것을 적용하는 일련의 과정은 ‘오리엔탈리즘’의 반복이다. ‘골치아픈 문제’가 엣날 처럼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오리엔탈리즘’의 다른 한 편인 지배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프랑스와 영국과 러시아의 무력이 예전만 못하기 때문.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그것은 결국 개인을 발견하는 데서 시작되거나, 그곳으로 귀결할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오리엔탈리즘』에서 제시하는 ‘오리엔탈리즘’의 극복 혹은 ‘오리엔탈리즘’의 해소는 탈식민 신생 독립국에서 ‘모더니티’의 실현, 프로젝트이고. 그것은 결국 “개인의 발견”이다. 지금 한국은 또 다시 ‘세대’라는 이름의 새로운 집단 호칭과 호명으로 잠시 문제를 속이고 있다. 표를 동원해야 하는 정치의 계절은 그렇게 자꾸만 기존의 균열로 개인들을 불러들여 정형화한다. 그러나 필요한 것은 ‘개인의 발견’ 자체다.
또 하나 눈에 뜨이는 것이, 남성우월주의적 해석이다. 동양에 여성적인 특성이나 가치를 부여하고, 이를 정복의 대상으로 삼는 태도. 심지어는 서양이 동양을 ‘강간’하는 것조차 정당화하는 유비. 동양인 이슬람에게 부여되는 관능과 방탕. 그리고 무능력. 신생 독립국으로서 한국에 뿌리깊었던 남녀차별과 여성에 대한 폭력은 처음에는 유교 혹은 전통 사회의 특징이 원인인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소위 ‘근대화’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일부 페미니스트들의 문제제기를 불편해 한지는 이미 오래되었고, 전투적 페미니즘 이라 부르기에도 너무나도 취약한 상황이다. ‘성차별’이란 식민지에서 강화되고, 재생산된 전통사회의 모순과 굴곡이며, 그것의 가장 두드러진 사례가 ‘위안부’였다. 신생 독립국은 페미니즘을 기반으로 한, 남녀평등의 사회를 지향하기는 커녕, 산업화 과정에서 버스 안내양, 여공이라는 이름으로 저임금 노동자로서 가족을 위한 희생 제물로 여성을 대상화하고, 여성의 희생을 강요했고, 성적 차이를 근거로 한 차별을 제도화, 구조화했다. 남녀 차별 역시 ‘오리엔탈리즘’의 또 하나의 유산일 것이다.
모든 목사는 어쩌면 ‘오리엔탈리스트’이지 싶다. 사람들에게 그들이 실상은 ‘죄인’임을 알려주고, 하나님 나라가 어떤 것인지, ‘성경’이라는 가장 오래된 경전을 해석해서, 그리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존재. 그래서 목사들은 그렇게 계몽적이며, 제국주의 시대에는 제국과 권위주의 시대에는 권력을 가진 자들과 그렇게 가까웠는지도 모르겠다. 실상 경전에 쓰여져 있는 길과 내용은 그 반대를 가리키고 있지만. 게다가 20세기 들어서 미국의 압도적 영향력 하에서 성장한 길러진 목사들은 아직도 설교를 통해 “미국 만세”, “서양 만세”를 외치는 경우가 많고. 이젠 많이 줄었다해도. ‘오리엔탈리스트’가 아닌 목사는 가능한 것일까?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 대화를 통해서, 각자가 길을 찾도록 도와줌으로써, 더 이상 일방적 지시와 가르치기를 포기하고, 사람들을 양떼처럼 몰아가기를 포기함으로써? 너무 오랫동안 양으로 길들여져서 개인임이 제시되면 불안해 하는 이들에게, 불안이 삶의 본질임을 제시하면서? 그건 너무 무책임하고, 잔인한 것 아닌가? 그럼 어쩌지? 다시 옛날처럼?
다음은 꽤나 흥미롭게 생각하면서도 기록하지 못한 부분들.
오리엔탈리즘의 국적 문제. 사이드는 네 나라의 오리엔탈리즘에 대해 말한다.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동양연구의 중요한 연구는 영국과 프랑스에 의해서 시작되었고, 독일에 의해 정교하게 다듬어졌다.(45) 위에서 말한대로 영국의 오리엔탈리즘은 동양에 대한 실질적 지배를 근거로 한 실용적이면서, 실질적인 오리엔탈리즘이다. 반면 프랑스는 획득하려던 영토를 획득하지 못하고, 부분적인 지배에 만족해야 했기 때문에, 신비한 오리엔트, 상실의 기억 등에 초점이 맞추어 진다. 그렇다면 독일의 오리엔탈리즘은? 독일을 동양을 실질적으로 지배하지 못했기 때문에 학문적 동양이자, 고전적 동양으로만 존재한다.(48) 독일 동양학의 공적은 대영제국과 프랑스제국이 동양에서 실제로 수집한 텍스트, 신화, 사상, 언어에 적용되어야 할 연구방법을 정밀하게 다듬은 것.(48) 그리고 미국의 사회과학, 즉 지역연구로서의 오리엔탈리즘.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하루투니언이 『역사의 요동』에서 통렬하게 지적한다. 내가 석사과정을 다니던 90년대는 한국에서 ‘지역연구’라는 것이 막 시작되던 시절이었다.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의 물결과 함께, 지역학, 국제학 대학원이 막 설립되고, 정부가 거기에 투자한다던 시절. 그 귀결은 생각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왔지만. 그땐 지역연구 자체에 대해 반성적 사유 따윈 털끝만큼도 없고, 동남아시아를 새로운 半식민지 내지는 隱식민지 정도로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신기하게도 그때 열심히 모이던 서구중심주의 그룹도 에드워드 사이드나 프란츠 파농 같은 해방적 저술은 읽지 않았다는 거다. 그러고 보니 그 그룹은 고전도 거의 읽지 않았었지. 아, 그리고 우리가 생각해야하는 또 하나의 오리엔탈리즘은 일본의 것이다. 우리를 실질적으로 지배했던 일본의 오리엔탈리즘, 동양학 내지 동양사라는 이름으로 이제는 ‘식민사관’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남은 것. 이점은 스테판 다나카가 『일본 동양학의 구조』에서 너무나 잘 보여준다.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일본. 이 다섯 나라의 오리엔탈리즘. 이 중에서 한국은 일본과 미국의 오리엔탈리즘에 본격적으로 세례를 받고, 거진 지배까지 당했다. 영국, 프랑스, 독일의 오리엔탈리즘은 특히 일본을 통해서 유입되었고, 결국 이것들은 한국이 세계를 보는 시각을 형성해 주었다. 내면화된 오리엔탈리즘이 서구도 아닌 서구처럼, 세계를 내려다보는 어설픔. 어설픈 부와 어설픈 힘. 그것들의 바탕인 어설픈 사고와 어설픈 태도.
오리엔탈리즘과 그리스도교 문제.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리스도교는 정복적이고, 오리엔탈리즘의 첨병이었다. 원래 선교사들이 그랬다. 문제는 오리엔탈리즘이 2단계로 넘어오면서, 즉 18세기 오리엔탈리즘의 근대화 속에서 그리스도교적 관점은 해체된다. 오리엔탈리즘의 원래 출발점이었던, 그리스도교 세계와 비그리스도교세계를 나누는 구분과 설명틀이 해소되어 버리고, 그리스도교 문화나 가치 역시 세속화된 세상에서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이제 그리스도교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세속화의 길밖에 없지 않을까? 19세기 그리스도교는 근대 오리엔탈리즘의 편에 서서 근대 문명의 첨병이 되어 선교라는 이름으로 세계로 침투한다. 그들은 식민지 개척의 첨병들이었다. 그들이 가져간 문명과 문명의 이기들은 근대 그 자체였다. 본인들이 원했든 원치 않았든. 이것은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종교란 단지 문명의 일부일 뿐인가? 아니다 요며칠 일어난 사건들, 성추행 목사에 대한 처벌 사실상 포기나 딸을 죽이고 방치한 목사 이야기을, 듣고 보면, 이미 망한 것 같기도 하다.
일단 이 정도로 줄인다.
* 필요한 경우 번역서의 쪽수를 인용했다.
** 이 글은 아포리아에도 게재하였다. [책흔들기] Aporia Reivew of Books, Vol.4, No.2, 2016년 2월. 아포리아로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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