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파는 원래? – 막스 베버,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2, Max Weber, Die protestantische Ethik und der ‘Geist’ des Kapitalismus.

여러가지 사소한 불만족에도 불구하고, 김덕영 역의 막스 베버,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길, 2010)은 놀라운 번역이다. 원래 베버의 글이 본문 반, 주 반이다. 나는 해제를 읽고나서야, 이 수많은 주들은 당대인들과의 논쟁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알게되었다. 좀바르트, 트뢸치, 브렌타노 등 당대학자들과 수십년에 걸친 논쟁이 주에 꼼꼼하게 박혀 있었다. 거기에 거의 매쪽 하단에 이어지는 역주가 전체 분량의 4할 정도를 차지한다. 놀랍다. 거의 모든 인물의 생몰연도 및 특징과 활동양상, 인용되거나 토론 대상이 되는 저자와 책들의 서지사항 그들의 주요 논지가 꼼꼼하게 적혀 있다. 역자는 수년에 걸쳐 신학을 공부하면서 이 번역을 준비했다고 하는데, 실제 신학에 대한 어느 정도의 소양 혹은 신학적 소양 없이는 이 책을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아마 학부 시절에 이 책을 읽었지만, 당연히 아무 것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행히 김덕영의 상세한 역주가 이 간격을 어느 정도 극복하게 도와주어, 신학을 잘 모르는 사람도 책을 읽을 수 있게 해준다. 역주를 꼼꼼히 읽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겠지만. 베버는 신학자가 아니면서도 16세기에서 19세기까지 신학과 종교를 둘러싼 거대한 논쟁의 핵심을 꿰뚫고 있다. 몇 주에 걸쳐 짬짬이 이 책을 읽고, 지난 주말 짬짬이 역자 해제를 읽으면서, 이 책의 의미를 다시 곱씹게 되었다. 이 땅의 기독교는 어디에서 길을 잃고 헤매고 있고, 이 땅의 자본주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베버의 방법론을 잘 이해할 수 있는 구절 하나가, 역자 해제에 실려있다. 본문에는 안나온다.
“이념이 아니라 이해관계(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인 것)가 인간의 행위를 지배한다. 그러나 ‘이념’에 의해서 창출된 ‘세계관’이 빈번히 전철수(轉轍手)로서 인간의 이해관계라는 동력이 앞으로 나아가는 선로를 결정한다. 세계관에 따라서 ‘어떠한 상태로부터’ 그리고 ‘어떠한 상태로’ 인간이 ‘구원’을 받고자 하며-그리고 잊지 말 것은-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지향성이 결정된다.” (Weber, Gesammelte Aufsätze zur Religionssoziologie Bd. I, S. 252).
종교가 사회의 많은 것을 결정하고, 종교 집회, 제도, 설교, 권고 등으로 사회의 많은 부분에 영향력을 미치던 사회 19세기까지의 서구에서 특정 종교 혹은 분파의 교리 특히, 그 중에서도 구원론이 세계관을 형성하여, 인간의 이해관계(돈, 자본, 권력, 명예, 무력)는 그 길을 따라서 나아간다는 것이다. 종교적 이념과 세계관이 일상의 삶의 행위에 결정적 영향을 끼쳐왔다.
막스 베버가 해명하려고 하는 것은 자본주의 정신도 프로테스탄티즘도 아니다, 그것은 합리주의다. 여러 자본주의가 명멸했지만, 여러 형태의 금전욕과 종교가 등장했지만, 서구 근대에서 유독 합리주의가 나타났고, 그 합리주의와 합리적 조직이 경제와 사회를 지배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합리주의의 기원을 찾는 것이 그 목적이다. 그 구체적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 전문가 집단과 관료이고. 합리주의에 의해 지배되는 자본주의, 합리주의에 의해 조직되는 노동, 합리적 부기, 개인재산과 기업재산의 법적 분리. 이를 주도하는 시민계층과 이들에 의한 기업자본주의의 형성. 이런 경제형태를 지배하는 에토스를 만들어내는 종교적 신앙.
책을 몇 쪽 넘기다 보면, 칼뱅주의와 카톨릭을 비교하는 의미심장한 구절이 나온다.
“16세기에 제네바와 스코틀랜드에서, 16세기와 17세기로 넘어가는 시기에 네덜란드의 대부분에서, 그리고 17세기에 뉴잉글랜드에서 또한 일시적으로 영국에서조차 세력을 떨친 칼뱅주의의 지배는 우리가 보기에 개인에 대해 존재할 수 있는 교회의 통제 가운데 가장 견디기 어려운 형식일 것이다. 당시 제네바, 네덜란드, 영국에서 구 도시귀족의 광범위한 계층도 역시 칼뱅주의를 견대기 어려운 것으로 느꼈다. 경제적으로 가장 발전된 지역들에서 일어선 종교개혁가들이 비난한 것은 실로 삶에 대한 교회적, 종교적 지대가 과다하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과소하다는 것이다” (48)
간단히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유대교나 카톨릭 보다는 프로테스탄트가 개인의 삶에 집요하게 간섭했다. 금욕적으로 살도록 그렇게 살지 않으면 안되도록 몰아세웠다. 프로테스탄트 중에서는 일단 루터파는 좀 설렁설렁했던 반면, 칼뱅주의가 가장 극심했다. 경건주의, 감리교, 재세례파 등 다양한 분파들 중에서도 유독 칼뱅주의가 사람을 들들 볶아대는 신학이었다는 뜻이고, 이렇게 사람을 들들 볶아대는 신학이었기 때문에 자본주의 정신을 형성해 내는데 기여했다는 논리다.
칼뱅주의는 말하자면 개혁파 장로교의 신학이다. 17-18세기의 개혁파 장로교가 사람을 얼마나 못살게 괴롭혔는지는 모르지만, 베버의 글을 대충 읽어도 현대의 개혁파 개혁주의자들의 모습을 보아도 대충 짐작이 된다. 칼뱅주의 신학의 핵심 중 하나가 코람 데오(Coram Deo) 즉, 모든 일을 하나님 앞에서 하듯이 하라는 것이다. 동시에 직업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벌어지는 일은 모두가 하나님의 소명이므로, 하나님의 일을 하듯이 하라는 신학이다. 이 신학은 논리를 그대로 따라가면, 종교와 종교이외의 영역 사이의 구분을 없애고, 외적인 행동과 내면의 정신 사이의 구별이 없이,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에게 충실할 것을 모토로 삼고 있다. 칼뱅주의 신앙의 참된 구현은 삶의 전 영역에서 인간의 지정의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에게 충실한 삶, 모든 영역에서 사제와 같은 삶을 살라는 가르침이다.
오늘날의 한국 교회 특히 개혁파 장로교 비판자들은 눈에 보이는 한국 교회가 이런 종교적 이상이나 17-18세기 서구에서 모습을 드러냈던 칼뱅주의에 비해, 한국 교회가 타락했고, 그 결과 종교와 삶이 구별되어서 종교생활에서만 사람들이 열심이고, 마음과 행동이 따로 놀아 행위의 일부만 하나님을 따르는 것처럼 하고 전인격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지 못한다고 비판한다. 여러 가지 이야기로 비판하지만 내용만 요약하면 이렇다.
그래서 가려고 하는 지향하는 원형적 칼뱅주의, 역사적 개혁파 교회의 모습이란, 요람에서 무덤까지, 내 삶의 전 영역에서, 생각과 마음과 의지와 행동까지 삶 전체를 들들 볶는 기독교다. 청교주의(Puritanism)에서 구현된 적이 있다고 하는. 나는 일단 그게 도대체 사람이 살만한 삶의 모습인지가 의심이 든다. 그렇지만, 더 구체적으로 어떤 보상을 해줄지 묻고 싶다.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삶이라는 종교적 보상이 물론 있지만, 17-18세기 칼뱅주의와 청교주의는 말하자면, 소상인, 소자본가, 소시민의 종교이고, 윤리였다. 그리고 이들은 이런 종교와 삶의 윤리에 따라 금욕적인 생활을 통해, 자본주의의 경제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부를 쌓을 수 있었다. 그건 그들에게 명백한 보상이었다. 금욕에는 댓가가 있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교회 개혁가들은 금욕과 헌신에 대해서는 열심히 이야기하지만, 보상에 대해서는 말하지도 않고, 제공하지도 않고 있다. 그러면서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내몰려지는 청년층에게 금욕적이면서, 헌신적인 종교윤리를 제시하는 것이 무슨 힘을 어떤 설득력을 가지겠는가. 차라리 열심히 기도하고, 신앙생활 열심히하고, 집회 참석하고, 방언도 받고, 성령세례 받으면, 건강해지고, 가족 평안하고, 돈도 많이 번다는 논리가 훨씬 설득력이 있지 않을까.
베버가 말하는 자본주의 정신이란, 자본증식에 대한 개인의 관심을 의무로 여기는 사고방식이다. 돈벌이는 순수한 목적이다. 쓰고, 과시하고, 사치하고, 낭비하기 위해서가 돈벌이 그 자체가 목적이다. 그리고 이것은 직업적 유능함의 결과다. 말하자면 착한 자본가란 도태된다. 군사적 모험이나 전통주의적인 돈벌이의 추구는 전자본주의적이다. 자본주의란 합리적인 기업적 자본이용과 합리적인 자본주의적 노동조직이 경제적 행위를 지배하는 힘이 되어야 한다. 다시 말하지만, 합리성과 조직화다. 게을러서도 안되고, 안분지족의 자족하는 태도를 가져서도 안된다. 노동 자체가 절대적 자기 목적(소명)인양 여기고 노동에 몰두해야 한다. 종교적 교육을 받은 경건주의적 처녀들의 노동이 좋은 표본이다. 냉정한 자본가는 자기 자신을 위해 조금도 사용하지 않으며, 소명 완수를 위해 일하고 재투자한다. 돈벌이가 이들의 소명이다. 카톨릭 신앙에서 과도한 돈벌이는 비도적적이지만 관용(허용)되는 것이다. 권장되지 않지만, 일시적인 기부로 정당성을 얻는다. 프로테스탄티즘은 순수한 합리주의적 세계관의 선작물(Vorfrucht)로서, 합리주의 세계관의 결과 자본주의 정신이 출현한다.
흥미로운 것은 직업을 소명으로 여기는 태도이다. 베버의 문헌학 연구에 따르면, 직업 혹은 일이라는 단어를 성경 번역에서 소명(Calling, Beruf)로 처음 번역한 사람은 종교개혁자 루터이다. 그 이전에는 어떻든 그냥 일이었다. 루터는 이를 시락서(예수의 아들 시락의 집회서, 외경) 11장 20, 21절을 번역할 때 맨 처음 적용했다. 그 이전에는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 말하자면, 직업을 소명으로 여기는 신학은 성경 번역에서 가져온 루터의 창작물인 셈이다. 이런 해석의 단초를 보이는 사람은 중세의 신비주의 영성가 타울러 단 한 명 뿐이며, 그의 설교에서 지나가다 나올 뿐이다. 루터는 “수도승적 금욕을 통해 세속적 도덕을 능가하는 것이 아니라 각 개인의 지위에서 발생하고 그럼으로써 자신의 ‘직업’이 되는 세속적 의무를 이행하는 것만을 인정한다”(122). 루터가 분업적 노동을 통한 이웃사랑을 말하지만, 그렇다고 자본주의의 열렬한 옹호자가 되지는 않았다. 루터의 직업소명은 생업에 충실하고, 이윤추구에 몰두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는 후기로 갈수록 신분제를 옹호하고, 운명 사상에 상응하는 전통주의의 색체를 띠게 된다. 루터파에서는 금욕적 자기규율화 현상이 신학적, 구원론적 옹호를 얻지 못한다. 루터는 칼뱅주의를 ‘행위구원주의'(은혜로 받은 구원을 확인하기 위해 금욕적 삶에 몰두하는 신앙)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 직업을 소명으로 번역하는 하나의 해석은 프로테스탄트에게 폭넓게 받아들여지고, 칼뱅주의가 자본주의 정신의 초석을 놓는데, 크게 기여한다.
세속석 금욕주의가 어떤 종교적 토대를 가지는 지는 칼뱅주의와 경건주의, 감리교, 재세례파가 구원론에서 그리고 이를 확인하고, 확증하는 과정에서 어떤 차이를 보이는 지, 지난 주에 대략 정리해 두었다. 칼뱅주의는 정서적 방법이나, 체험, 종교집회나 의식을 통해서는 어떤 방식으로도 구원받은 것을 확증할 수 없기 때문에, 구원받은 사람이라면 마땅히 그렇게 할 것으로 보이는 금욕적 삶의 자기 조직화를 격렬하게 추구하게 되며, 그 결과로 이루어지는 자본의 형성은 구원의 확증이 되는 셈이다.
베버는 금욕주의와 자본주의 정신이 연결되는 지점, 즉 금욕적 생활이 합리적인 자본 추구와 삶의 자기 조직화를 낳는 지점을 확인하기 위해 목회 실천의 현장을 주목한다. 청교주의적 설교와 목회가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를 파악함으로서 연결점을 찾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리처드 박스터(백스터, Baxter)에 주목한다. 장로교인이고 웨스트민스터 종교회의의 옹호자이지만, 극단적 칼뱅주의는 벗어난 인물. 칼뱅은 전형적인 청교주의 모습을 보인다기 보다는 루터와 전통주의와 청교주의 사이의 그 어느 곳에 위치한 듯한 모습을 보인다. 박스터가 부를 위험천만한 것으로 여기는 것과 달리 칼뱅은 성직자의 부는 위신을 높여주는 바람직한 것으로 보고, 재산투자를 허용한다. 박스터에 따르면 윤리적으로 배척해야 하는 것은 소유에 안주, 부를 향락, 태만과 육욕에 빠지고, 거룩한 삶의 추구에서 이탈하는 것이다. (익숙한 주장이다) 그러나 동시에 인간은 자신의 은총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시간 낭비를 하지 말고, 신의 영광에 봉사하는 노동에 몰두해야 한다. 명상 조차 무가치 하다. 노동은 검증된 금욕의 수단이며, 노동은 삶 자체의 자기 목적이다. 이점에서 아퀴나스가 종교활동과 명상을 세속의 일보다 우위에 놓았던 점, 루터주의 신앙에서 (하나님의 의지가 표출된 결과로 주어진 신분과 직업, 지위와 한계인) 현재 위치에 순응하고 만족하면서 노력하라는 것과 다르다. 청교주의(Puritanism)에 따르면, 직업 분화에는 섭리적 목적이 있고, 누구나 고정된 직업을 가져야 하고, 신중하고 조직적인 노동은 은총상태의 확인이 된다. 하나님이 원하는 바는 노동 자체가 아니라 합리적 직업노동이다. 감당할 수만 있다면, 한 사람은 여러 직업을 가질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윤을, 더 많은 이윤을 내는 것이다. 더 많은 이윤을 낼 방법을 (하나님이) 제시하는 데도 불구하고 이를 거부하고 더 적은 이윤만 창출하면, 받은 소명 중 하나라를 방해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청지기가 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직업 의무를 수행함으로써 부를 철저히 추구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허용되는 것이 아니라 절실한 의무이다. 더 많은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전문가와 사업가, 자수성가하고 절제하는 시민계층은 높은 윤리적 평가를 받는다. 하나님이 그의 사업을 축복한다. 그래서 욥기가 중요하다. 욥이 마지막의 모든 재산에서 두 배의 보답을 받는 다는 의미에서 지상에서 물질적인 축복의 확실성의 보장으로서 욥기는 청교주의에서 중요하다. 구약을 되살렸다고 해서, 청교주의를 영국적 히브리주의(English Hebraism)이라고 하기도 한다. 반면 유대교는 정치나 투기에 의존하는 모험가 자본주의, 천민자본주의에 불과하다.
영국왕 제임스 1세와 찰스 1세의 ‘스포츠의 서(Book of Sports, 주일 오후에 유희와 스포츠를 허용하는 국왕의 칙서)’에 대해 청교도들이 격렬하게 투쟁한 것을 보면, 금욕주의는 모든 쾌락의 무절제한 사용에 격렬하게 투쟁했고, 그것은 때로 반권위주의적이었다. 청교도들은 종교적 가치가 없어 보이는 문화적 재화도 불신하거나 적대적이었다. (오늘날 영화나 소설에 대해서 성경적이냐는 잣대를 들이대듯이) 풍속을 규제하고, 복장도 규제했다. 문화적 재화를 즐기는 일에서 조금도 비용이 들어서는 안되었다. 사치성 소비를 억압하는 동시에 재회 획득을 해방시켜서, 이윤 추구는 합법화되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소명이 되었다. 재산은 과시적 형태의 사치가 아니라 필요하고 실제 유용한 일에 사용되며, 안락한 정도까지는 사용해도 좋았다. 부는 생산적으로, 즉 투자자본으로 사용되어야 했다. 자본축적에 대한 엄청난 열망이 일어났다. 청교주의적 인생관은 시민계층적이고 합리적인 경제적 생활양식으로의 발전을 촉진했다. 그것은 근대적 ‘경제인간’의 요람이었다. 그러나 부의 유혹에서 오는 시험이 너무 클 경우는 좌절되기도 했다. 부가 증가하면 종교적 알맹이는 감소했다. 이들은 토지를 사들여서 귀족화하기도 했고, 타락하기도 했다. 현세에서 재화가 불평등하게 분배되는 것은 신의 섭리의 특별한 역사라고 확신했다. 대중은 궁핍에 내몰릴 때만 노동했기 때문에, 저임금은 정당화되고, 노동은 구빈법으로 강제되었다. 구걸은 허용되지 않았다. 저임금 노동에 충실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었다. 청교주의가 엘리트주의를 내포하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청교주의는 또 특권적 독점기업가들과 국가권력의 동맹을 해체하고, 개인주의를 내세웠다.
그러나 결국 금욕주의가 세계를 변형하고 세계 안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면서, 외적인 재화는 인간을 지배하게 되고, 도저히 벗어날 수 없게 되었다. 금욕주의 정신은 사라졌다. 승리를 거둔 자본주의가 기계적 토대 위에 존립하는 이상, 금욕주의 정신이라는 버팀목이 더 이상 필요없다. 직업 소명설에 의한 직업 수행이 종교적 의미를 상실하면, 그것은 순수한 경쟁적 열정과 결합한다. 그것을 베버는 니체를 인용해서, ‘정신 없는 전문인, 가슴 없는 향락인 (Fachmenschen ohne Geist, Genussmenshen ohne Herzen)’이라고 표현한다. 금욕주의는 공리주의로 해체된다.
김덕영의 번역본에는 종교사회학논총에 실려있는 "프로테스탄티즘의 분파들과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글 하나가 더 실려있다. 프로테스탄티즘에 대한 제도사적 분석에 해당한다. 미국 사례를 들면서 미국에서의 분파(Sekte, sect)에 대해 언급한다. 한 마디로 미국에서 어떤 분파, 예를 들어, 침례교, 퀘이커, 몰몬교 등의 신자가 되어 인정받는 것은 경제적 성공을 가져다 준다. 예를 들어 침례교 회중의 일원으로 인정받으려면 면밀한 시험과 품행에 대한 까다로운 조사를 받야 하므로, 이런 회중에 속한다는 것은 사업 세계에서 요구되는 윤리적 자질에 대한 보증인 동시에 신용을 공여받게 된다. 그는 만들어진 사람이 된다. 예를 들어 어떤 환자가 의사를 찾아가서 ‘저는 어디의 무슨 침례교회의 구성원’이라고 말하는 것은 치료비 걱정은 말라는 뜻이 된다고 한다. (동시에 이 사람들은 헌금도 많이낸다. 미국에서 연소득 1,000불이면, 80불 정도를 헌금으로 낸다고 말하는데, 이 정도의 헌금을 요구하면, 독일 기독교는 사람들이 다 흩어졌을 거라고 말한다) 말하자면 교회란 종교적 구원재를 신탁유증 재단처럼 관리하고, 거기에 소속되는 것은 의무이며, 그렇기 때문에 거기 소속된 사람의 자질을 입증할 수 없지만, 분파는 (이념상) 종교적, 윤리적으로 자질을 갖춘 사람의 자발적 결사체에 해당한다. 당연히 분파에서의 추방은 신용 상실과 사회적 몰락을 의미했다. 여기에 미국 사회의 귀족화 현상을 보여주는 수많은 클럽들이 등장한다. 이런 클럽은 분파의 세속화에 해당한다. 미국 민주주의의 특징은 “모래더미처럼 무정형적으로 모인 사회가 아니라 엄격히 배타적이지만 자발적인 결사체들이 서로 엉켜 있는 사회”라는 점이다. 이런 분파나 클럽의 형성은 성만찬 참여자의 범위를 한정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성만찬은 ‘믿는 자들의 교회’에 국한된 참된 기독교인들에게만 제공되어야 하는 것이고, 이런 성만찬의 정결함을 지켜야 하는 것은 성직자보다는 회중들이었다. 감독제와 장로제를 거부하는 동기가 성만찬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한 것으로, 공동체 구성원 외에는 증명서가 있어야 참여할 수 있었다. 지역의 개별적인 성만찬 회중은 주권을 가진다. 이런 평신도들의 교회 통치는 신학자의 직업 설교에 반대하고 오직 카리스마만이 고려되어야 했다. 이들은 폐쇄적인 취락을 형성하게 된다. 중세와 루터교의 교회규율은 성직자의 손에, 권위적 수단을 통해, 개별적인 행위를 처벌하거나 보상했지만, 청교주의 분파는 전적으로 평신도의 손에, 자기주장의 필요성이라는 수단을 통해, 특정한 자질을 배양하거나 선택했다. 청교주의에서 교회 규율은 평신도들에 의해 자신이 누구임(선택받은, 은총받은 사람)을 주장하기 위해, 근대 자본주의 정신의 독특한 에토스(형식적 합법성과 조직적 금욕주의), 즉 근대 시민계층의 에토스를 낳았고, 근대 개인주의의 역사적 토대를 형성했다.
자. 여기까지가 요약. 아. 길다. 그러나 충분히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한국 기독교와 관련해서 생각해 볼 점이 두 가지 있다.
첫째, 그동안 한국 기독교가 기복적이다, 물신숭배한다, 성공지향이다, 엘리트주의다, 고지론이다, 청부론이다 등 물질적인 가치를 쫓고 배금주의적이면서 가난한 사람과 약자를 차별한다고 옳지 않다고 말해왔다. 물론 이것은 옳지 않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한국 기독교가 모두 왜곡되어서 벌어진 일이라기 보다, 프로테스탄티즘의 본질일지도 모른다. 합리적으로 부를 축적하지 않고, 야만적으로 부를 축적할 수도 있다. 이런 행위는 전통주의적 기독교에 의해 옹호받고 있다. 기독교는 적어도 서구와 한국에서 부의 추구를 옹호해 왔다. 그렇지 않은 기독교도 있었다. 고대 기독교와 중세 수도원이 그랬다. 물질주의적 현대 기독교를 프로테스탄티즘의 왜곡이라고 말하면서, 청교주의와 개혁주의로 돌아가자는 말은 더욱 합리적으고 열정적인 자본축적과 엘리트주의를 주장하는 것일수도 있다.
둘째, 한국 기독교에 신학적 성찰이 필요하고 새로운 신학의 제시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과거로 돌아가는 길을 통해서든, 앞으로 나아가는 방식을 통해서든, 지금 소외되는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조건을 살만하게 만들어주는 것을 정당화하고 신앙적으로 보증하는 것을 내용으로 담아야 한다. 그게 새로운 신학의 목적 그 자체는 아니라고 할지라도. 그 내용은 비정규직과 정규직에 대한 임금을 비롯한 모든 것의 차별 극복, 보다 튼튼한 사회안전망의 구축, 최저임금의 인상, 공공성의 강화 등이 될 것이다. 우연히든 의도적이든 이런 문제에 대한 신학적 보증이 가능하다면 적어도 기독교가 완전히 외면당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종교개혁으로 회귀하거나 원시기독교로의 회귀 등의 온갖 신학적 도피를 자행한다면, 이런 해결책을 찾는 사람들이 더 이상 기독교에서 어떤 해결책도 찾아내지 못하고, 기독교는 버림받게 될 것이다. 기독교가 사회정치사상 체계는 아니지만, 동시에 종교는 여러가지 방식으로 사회정치사상과 영향을 주고 받는다. 기독교가 선진제국에서 소수파가 된 것은 자본주의가 더 이상 기독교에 기댈 필요도 없고, 약자들이 민주주의를 통한 사회적 해결책을 찾을 때, 기독교가 그들의 편에 서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모호한 중립은 자기 목을 죄는 줄이 될 뿐.
2015. 7. 13.
* 이 글의 저작권은 ⓒFELIVIEW.COM에 있습니다.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