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적 민족주의의 정해진 결말 – 마이클 로빈슨, 『일제하 문화적 민족주의』. Micheal Robinson, Cultural Nationalism in Colonial Korea: 1920-1925.
사진 왼쪽은 잡지 『개벽』에 실린 이광수의 「민족개조론」, 오늘쪽은 그가 동인으로 참여했던 잡지 여명. 사진은 모두 위키피디아.
마이클 로빈슨, 1988, 『일제하 문화적 민족주의』, 김민환 역, 나남, 1990. Michael Robinson, Cultural Nationalism in Colonial Korea, 1920-1925, 1988.
마이클 로빈슨의 『일제하 문화적 민족주의』는 번역서 제목을 고치는 게 좋을 것 같다. ” “식민지 조선의 문화적 민족주의 (Cultural Nationalism in Colonial Korea: 1920-1925)”로 바꿔불러야 옳다. 그게 그거인것 같지만, 그게 그게 아니다. 일제하와 식민지 조선이라는 말의 거리는 어감 만큼이나 멀다. 일제하라는 말은 ‘식민지’라는 표현을 의도적으로 회피하는 표현이다. 일제 강점기도 마찬가지이다. 이 시대를 공부하면 공부할 수록 “식민지 시기” 또는 “일본 식민지 시기”라고 불러야 한다고 생각된다. 그 기간은 1910년에서 1945년까지로 잡을 수도 있고, 1905년부터 1945년까지로 잡을 수도 있고, 아주 길게는 1895년(청일전쟁)부터로 잡을 수도 있다. 어찌되었든 이 시기를 식민지 시기라고 불러야만, 당시 한국이 처했던 상황과 환경을 정확하게 알 수 있다. 일제하라는 표현은 오해를 불러일으킨다.
지금은 인디아나대학교 블루밍턴에 있는 마이클 로빈슨은 ‘식민지 근대성’ 논의를 사실상 시작한 연구자다. 물론 이 책에서 ‘식민지 근대성’ 논의를 본격적으로 전개시키고 있지는 않지만. 그가 연구하는 ‘문화적 민족주의’란 1919년 3.1운동 후에 열린 공간에서 문화운동, 경제운동, 사회운동 등으로 형성되었던, 점진주의적 민족주의자들, 자강론의 후예들이고, 실력양성론자들이다. 가장 대표적인 사람은 이광수의 ‘민족개조론’.
마이클 로빈슨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듯. 점진적 민족주의의 사상적 한계 등에 대해서 논하지 않는다. 어디까지 이 운동은 ‘일본의 한계’ 속에서 움직인 것임을 지적할 뿐이다. 사이토 마코토 총독과 그의 관료들, 그리고 일본 제국주의가 그어놓은 한계.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 탈정치화된 운동으로서의 문화적 민족주의를 말한다. 그리고 사실 그런 민족주의는 말하자면 자기 모순이다. 주권회복을 포기한 민족주의란. 마이클 로빈슨은 이런 타협적 태도는 간디의 비타협 불복종 운동과 근본적으로 다른 것임을 지적한다. 스와라지 운동은 발전하지 않은 현상태에서의 독립을 추구하는 운동이었다.
덧붙이면, 식민지 문화적 민족주의란 식민 모국이 헤게모니를 관철하는 상황에서, 즉 한계를 넘어서는 주장에 대해서는 검열과 제재를 엄격하게 가하고, 물리적인 힘을 철저히 동원하는 동시에, 체제 내 공간에서 합법적인 활동을 추구하면 그에 해당하는 당근을 주는 정책, 즉 식민지 하에서 교육기관을 운영하고, 언론기관을 운영하고, 엘리트로 활동하고, 자본가로서 산업발전을 기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의 허용이 이루어지고, 그 허용을 통해서, 결국은 협력자로 포섭된다는 것이며, 실제 점진적 민족주의자들은 이길을 걸었고, 비판적 사회주의자들은 이 문제를 지적했고, 민족운동 진영은 붕괴하게 된다.
마이클 로빈슨은 점진주의적 민족주의 운동이 엘리트 중심의 중간계급 형성을 위한 운동이고, 실패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리고 비판적 사회주의 지향이 농민을 주체로 내세우는 모순을 또 지적한다. 결국, 물산장려도 대학 설립도, 식민지 자본가와 식민지 엘리트에게 도움을 주었을 뿐이고, 1925년 이후 일제의 탄압이 가혹해지면서, 공간이 좁아지고, 대중적 지지를 획득하지 못하자, 몰락하고 말았음을 지적한다.
1979년 저자의 워싱턴 대학 박사학위 논문을 출판한 것으로, 아직 국민형성(nation-building)에 대한 논의가 충분하지 않고, 민족주의에 대한 전통적 견해에 머물러 있는 점이 다소 한계이지만, 민족주의를 주체형성이라는 관점에서 본 것은 큰 수확이다. 국내의 점진주의자들은 중간계급 형성을, 사회주의 세력은 농민을 주체화하려고 시도한 셈이다. 그리고 해외의 비타협적 민족주의자들은 무조건적으로 민족을 호명했는데, 그 호명에 응답할 민족이 실상 아직 없었기 때문에 어쩌면 이들은 실패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말하자면, ‘식민지 근대성’에 대한 논의는 결국 식민지에서 어떤 주체가 형성되었는가의 문제, 어떤 주체를 형성하려고 했는가의 문제이다. 결국, 식민지의 유산이란, 어떤 민족 혹은 국민(nation)인가의 문제이다. 이 점에서 실상 남북한 모두에서 국민(nation)과 공민(북한)의 형성은 해방정국과 한국전쟁을 통해서 형성되었기 때문에 식민지에서 형성되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양자가 기반으로 삼은 농민과 중간계급은 식민지에서 지향하던 지점과 일정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식민지’의 유산 혹은 ‘식민지’적 형성이라는 문제를 완전히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물론 해방 이후 각각의 ‘nation’인 공민과 국민형성에서는 외세의 힘과 전쟁 등이 훨씬 큰 영향을 미치게 되지만.
마이클 로빈슨 책은 이것과 신기욱 교수와 함께 편집한 『한국의 식민지 근대성』이 모두 번역되어 있지만, 오래 전에 절판되어 구하기 쉽지 않다. 나도 이 책 구하느라 엄청 고생했다. 그래도 식민지 근대성 문제를 파고들려면, 마이클 로빈슨에서 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카터 에커트.
아무래도 이광수의 “민족개조론”을 포함한 논설들을 읽어야 할 것 같아서 찾아 보았는데. 1963년에 삼중당에서 간행한 전집을 1979년에 우신사가 다시 펴낸 이후, 한번도 손댄 적이 없다는 것을 보고 매우 놀랐다. 게다가 최근 출판된 건 소설 뿐이고, 논설은 나와 있지도 않다. 이광수는 동아일보 편집국장에 조선일보 사장을 지냈는데. 친일 행적 비판에 앞서 출간해서 읽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식민지 시대를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역사 문제에 있어서 우파든 뉴라이트든 주장은 하고 소리는 높이지만, 너무 공부를 안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것을 존중할 줄도 모르고. 이광수 전집을 다시 편집 출간할 정도의 열의는 있어야, 우파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권력을 잡고 있을 때, 교과서만 뜯어고치려는 건 너무나 안일한 발상이다. 될리도 없고.
* 필요한 경우 번역서의 쪽수를 인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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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1. 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