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아송의 항아리와 클로비스. 불랭빌리에와 그의 일파들이 만들어낸 이야기라고 하는데, 이 책에서는 게르만 전사들의 자유와 민간 법권리 즉 민법에 까지 군사적 지배가 장악하는 두 에피소드로 소개된다.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콜레주드프랑스 강의 1975-76 《Il faut défendre la société》, Cours au Collège de France, 1976』, 김상운 역, 난장, 2015.
정말 오랜만에 푸코의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를 꺼내 들었다. 이번이 마지막이다 하는 심정으로 꼼꼼하게 읽으려 노력했다. 계기가 없다면, 필시 다시 보기 어려울 터이다. 요즘은 부쩍 그런 생각이 든다. 젊은 날에는 다음에 이 책을 다시 볼 기회다 있으리라는 막연한 기대로 책장을 어설피 넘긴 적도 있지만 요즘은 부쩍 느낌이 다르다. 그때 읽은 책을 다시 펼친 적도 드물지만, 지금 읽는 책들은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읽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 이 책을 읽은 건 2000년이라고 메모가 남아 있다. 답답했던 때였을테지, 1998년 연말에 동문선에서 나온 박정자 역으로 그때 역시도 흥미롭게 읽었다. 이번에 두 책을 비교하면서 보니, 이전의 판은 유려하지만 곤란한 점이 너무 많았다. 역사적 용어 선택이나 개념어나. 이 책이 그간 여러 나라 말로 번역된 경위에 대해서는 역자가 밝혀두었으니 그걸 보면 되겠다. 나 역시도 그 여러 판본의 도움을 받았다. 그래서인지 시간을 너무 소모했지만, 이번에는 확실하게 소화하고 넘어가고 싶었다. 번역에 대한 소회를 말한다면, 최근에 읽은 푸코 번역본 중에 이 정도로 잘못된 점이 적은 건 없었다. 그렇다고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닌데, 그 점은 글 말미에 밝혀 두겠다. 앞서간 여러 번역들의 도움을 받는 일은 그래서 중요하고, 주요 언어로 번역이 없을 때, 섣불리 손대는 일에 대해서는 그래서 우려가 생긴다. 최근에도 일어난 일이다.
사회계약론에 대한 신랄한 야유.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사회계약론을 신봉하거나 전제하는 사람들, 묵시적으로 동의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 강의를 나의 말로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바로 이것이다. 이토록 신랄한 야유는 들어본 적이 없다. 요즘도 정치사상 그 중에서도 근대 정치사상사는 그 시발점인 마키아벨리, 그리고 그 다음으로 토마스 홉스, 존 로크, 장-자크 루소, 이 세 사람의 사회계약론을 공부한다. 그리고는 서둘러서 헤겔과 마르크스로. 내가 이런 걸 공부한지 너무 오래되어서 최근의 트렌드는 잘 모르겠지만. 플라톤에서 시작하여 아리스토텔레스를 경유한 다음, 중세는 대충 건너 뛴다. 마키아벨리에게서 정치를 발견하고는 사회계약론에 집중한다. 이런 식의 정치사상사의 구성이란 무엇인가? 그건 결국 근대 자유주의 국민국가(상당히 모순적인 개념들의 조합이다)를 정당화하기 위한 사상적 발전 또는 담론의 구성이다. 지금 여기 있는 국민국가가 채택하고 있는 자유민주주의 곧, 자유주의적 민주주의 국가의 정당성을 사상적으로 뒷받침 하기 위해서, 아니 그 자체를 창출해 내기 위해서,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도시=국가)의 민주주의(그 실상은 노예제)로부터 출발해서, 홉스・로크・루소를 통해 민중(인민)이 창출해낸 권력, 권리의 포기 내지는 양도를 통해서, 곧 국가권력과 대의제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그 최종적인 목표점으로 하는 정치사상사의 구성이다. 어찌보면, 해당 시대의 연구자들을 제외하고선, 다른 사유를 봉쇄하기 위한 목적이 더 큰 것 같다. 그렇다, 이런 정치사상사의 구성에서 빼앗아간 것은 다른 생각을 할 자유이다. 이건 마치 그 최종 목표로서의 근대 자유주의 국민국가를 하나의 천년왕국으로 상정한 채, 그를 향해 달려가는 목적론적인 종말론에 다름아니다. 헤겔의 그림자는 이렇게나 큰 것인가.
푸코는 이 강의에서 사회계약론이 탄생한 시대로 되돌아간다. 근대적 주권이론이 탄생한 시대로, (실제로는 중세에 이미 있었지만) 그리고 그 시대에 있었던 다양한 주권이론들, 사회계약론에 대한 대항담론을 살핀다. 잉글랜드의 다른 당파들, 예를 들면 수평파 또는 프랑스의 대항담론, 왕당파나 귀족의 대항담론을 살핀다. 그 과정에서 불랭빌리에에게 주목한다. 불랭빌리에를 언급하는 것이 푸코가 처음은 아니다. 데이비드 흄도 한나 아렌트도 역자에 의하면 레비-스트로스도 언급한다고 한다. 푸코가 발굴해 낸 사람이 한 둘이 아니니까. 에른스트 칸토로비츠도 그렇고, 벤담의 판옵티콘도 사실 그렇고. 푸코가 따져가는 것은 역사적 담론이 정치적 주장을 세우기 위한 수단과 정당화 논리로 어떤 식으로 활용되어 왔는지, 그리고 그 와중에서 어떤 것들이 묻혔는지. 푸코 답게 교과서적으로 모두 언급하지도 않는다. 자기 생각에 중요해 보이는 몇 가지만 언급한다. 그리고 그 묻혀진 사라진 논의가 가지는 효용성에 대해서 말한다. 이 과정에서 전쟁이 살아 돌아오는 것이다. 다 언급할 수는 없고, 몇 가지만 정말 몇 가지만 말해 보려고 한다.
최근 10년 혹은 15년 전부터 사물들, 제도들, 실천들, 담론들에 대한 막대하고 계속 증식하는 비판가능성이 나타났습니다. …… 그런 연약함과 불연속적이고 개별적이며 국지적인 비판들의 놀라운 실효성과 함께 …… 총체적인 이론, 즉 좌우간 포괄적이고 전반적인 이론들에 고유한 억제 효과 …… 담론들의 이론적 통일성이 중지되는 조건 …… 비판의 국지적 성격 …… 비판의 유효성을 정립하기 위해 이른바 그 어떤 공통 체계의 허락도 필요로 하지 않는, 중심화되지 않은, 일종의 자율적 이론적 생산 …… 국지적 비판은 ‘앎(지식)의 회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에 의해서 …… ‘예속된 앎’들의 봉기 …… 비개념적 앎, 국지적이고 지역적인 앎, 미분微分인 앎, 만장일치란 있을 수 없는 앎, 그 주변의 모든 것에 대립된다는 예리한 차별에 의해서만 그 힘을 얻는 그럼 앎. 서민들의 국지적인 이런 앎, 자격을 박탈당한 이런 앎이 재등장함으로써 비판이 이뤄진 것… 투쟁에 관한 역사적 앎이 문제 …… 투쟁들의 정확한 재발견인 동시에 싸움의 생생한 기억 …… 박식한 앎과 서민적 앎의 짝짓기 …… 박식한 지식과 국지적 기억들의 ‘계보학’.(22-25) 계보학은 역사적인 앎들을 탈예속화하고 자유롭게 하는 기획이라고, 달리 말하면 통일적이고 형식적이며 과학적인 이론적 담론의 강제에 대립하고 투쟁할 수 있도록 하는 기획의 일종.(28)
첫 강의에서 올해의 강의를 예고하면서, 이렇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 첫 강의 만으로도 왜 콜레주드프랑스 강의록 출판이 이 책으로부터 시작되었는지 말해준다. 흥미로우면서, 영감을 자극하는 데다, 헛점을 찔러온다. 그 자신의 표현을 따르면, 예속된 앎들의 봉기 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참으로 푸코 답게 설명해 낸다. 국지적 비판, 싸움, 투쟁 등으로 말해지는 새롭게 또는 다시 등장하고 있는 것들을 이제까지 억누르고 있던 것들은 포괄적이고 전반적인 이론들이다. 흔히 일반이론이라고 말하는 것들. 그것은 이 강의에서 말하면 우선 마르크스주의를 들 수 있다. 정확하게는 당시 프랑스 좌파에게 큰 영향을 끼치고 있던 소비에트 스탈린주의를 말하는 것일 터이다.(30) 그리고 또 하나는 18세기의 철학자 또는 법학자들이 말하는 사회계약론인데.(36) 이것은 다름아닌 자유주의 정치사상의 기초이다. 오늘날의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든 다원주의 민주주의이든 그 근거는 모두 거기에 있다. 게다가 슬쩍 걸치고 넘어가는 것이 라이히 가설, 즉 억압 가설인데.(36) 부르주아 사회가 성을 섹슈얼리티를 억압했다는 가설에 대한 비판은 『성의 역사 1: 지식의 의지』에서 상세하게 다뤄진다. 라이히 뒤에는 당연히 프로이트가 있을 터이고. 소위 그 시대에 그리고 지금까지도 가장 보편적이면서, 논단을 혹은 학계를 배후에서 지배하고 있는 거대한 이론들을 타격하려 하고 있다. 그런데, 새로운 거대한 이야기를 꺼내서 타격하는 것이 아니다. 그 거대한 담론들이 억누르고 있던 이야기들에게 관심을 보이고, 그 이야기를 되살리는 방식으로 전개해 나가는 것이다. 그러니 푸코를 읽으면서 흔히들 하는 말, 도대체 대안이 뭐냐는 식의 질문이 얼마나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인지 깨닫게 된다.
권력, 법/권리, 진실로 이뤄진 삼각형에 있습니다. …… 요컨대 우리 사회와 같은 사회에서는 결국 어떤 사회에서든 복수의 권력관계들이 사회체를 가로지르고 특징짓고 구성한다고 말입니다. 이 권력관계들은 진실담론의 생산・축적・유통・기능 없이는 분리될 수도 없고, 수립될 수도 없으며, 기능할 수도 없습니다. 이 권력 속에서, 이 권력으로부터, 이 권력을 가로질러 기능하는 진실담론들이 지닌 일정한 경제 없이는 권력의 행사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권력에 의해 진실의 생산에 복종하며, 진실의 생산에 의해서만 권력을 행사할 수 있습니다. …… 법/권리의 규칙들, 권력의 메커니즘들, 진실의 효과들, 또는 권력의 규칙들, 진실담론의 권력.(40-41) 문제는 권력을 그 극단에서, 마치 모세혈관처럼 가늘어진 그 끄트머리의 윤곽 속에서 파악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권력의 가장 지역적이고 가장 국지적인 형태들과 제도 속에서, 특히 이 권력을 조직하고 그 범위를 정하는 법/권리의 규칙들로부터, [권력이 스스로] 비어져 나오고, 따라서 이 규칙들을 넘어서 연장되고, 제도들 속으로 투여되고, 기술들로 실체화되며, 때로는 폭력적이기까지 한 물질적 개입의 도구가 주어지던 그런 곳에서 권력을 파악하는 것입니다.(44) … 요컨대 권력이 뿌리내리고 그 실제적 효과를 생산하는 곳에서 연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신체・힘・에너지・물질・욕망・사유의 다양성에서 출발해 조금씩, 점진적으로, 실제로, 물질적으로 주체들이, 주체가 어떻게 구성됐는지 알려고 하는 것입니다.(45) 권력을 다른 사람들에 대한 한 개인의 지배, 다른 집단들에 대한 한 집단의 지배, 다른 계급들에 대한 한 계급의 지배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권력이란 유통하는 어떤 것, 아니 오히려 연쇄 속에서만 기능하는 어떤 것으로서 분석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47) 고유한 역사, 고유한 해석, 고유한 궤적, 고유한 기술과 전술을 지닌 무한소의 메커니즘에서 출발해, 나름의 견고성을 지니고 어떤 의미에서는 고유한 테크놀로지를 지닌 이 메커니즘이 어떻게 더욱 더 일반적인 메커니즘과 전반적 지배의 형태에 의해 투여[포위]되고, 식민화되고, 사용되고 굴절되고 전위되고 확장됐는가를, 또 여전히 그렇게 되고 있는가를 살펴봐야만 한다는 것.(49) 부르주아지의 지배라는 일반적 현상으로부터는 그 어떤 것이든 연역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 부르주아 체제는 광인들이 배제된다는 사실에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런 배제의 기술과 절차 자체 안에서 자신의 이익을 발견했고, 실제로 전력을 다했습니다. 즉, 배제의 메커니즘, 감시의 기구들, 성욕의, 광기의, 범죄비행의 의료화, 이 모든 것, 다시 말해 권력의 미시적인 기제가 어떤 순간부터 부르주아지의 이해관계를 대변했고 구성했던 것입니다.(51) 권력의 분석을 주권이 아니라 지배 쪽으로, [권력의] 물질적 작동자 쪽으로, 예속의 형태 쪽으로, 이 예속의 국지적 체계가 어떻게 접속되고 이용되는가 하는 쪽으로, 그리고 마지막으로 앎[지식]의 장치들 쪽으로 향하게 해야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컨대 리바이어던 모델을 쫓아버려야만 합니다. 즉, 실제의 모든 개인들을 포괄하고, 시민은 그의 신체이고 그의 영혼은 주권이라고 하는, 인공적이고 자동적이며 제조되고 통일적인 인간의 모델을 제거해야만 합니다.(53) 그런데 17세기와 18세기에 중요한 현상이 산출됐습니다. 권력의 새로운 기제가 등장한 것입니다. 아니, 발명됐다고 말해야만 하겠네요.(55) 더 이상 새로운 유형의 권력은 부르주아 사회의 위대한 발명품 중 하나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권력은 산업자본주의와 이것과 상관적인 사회의 유형이 성립되기 위한 근본적 도구들 중 하나였습니다. 주권적이지 않은 이 권력, 즉 주권의 형태에는 낯선 이 권력, 바로 이것이 ‘규율적’ 권력입니다.(56)
규율 권력에 대한 이야기는 『감시와 처벌』을 이야기할 때 하기로 하자. 나는 늘 푸코의 글을 읽을 때, 권력 분석의 방법론에 대한 내용이 눈에 들어온다. 이건 어쩔 수 없는 개인적 편향인 셈이다. 이 강의의 내용에서 규율 권력을 이해하지 못하게 가리고 있는 것들이 지적되지만 그것들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바로 홉스가 말하는 리바이어던이다. 이 모델이야말로 실제 권력이 작동하는 장치와 메커니즘을 가리는 거대한 픽션이라고 비판하는 것. 본래 리바이어던은 주권 권력을 정당화하기 위한 모델이기 때문에 어찌보면 아주 당연하다. 문제라면 리바이어던 모델에 빠져들어서 모델을 자연화하는 것 때문이겠지만. 픽션의 힘이 너무 강해지니, 픽션을 픽션이라고 깨우치는 것만도 쉽지 않다.
전쟁은 국가의 탄생을 주재했습니다. 법권리, 평화, 그리고 법률은 전장의 피와 진흙창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렇지만 이 말을 철학자나 법학자가 상상했던 관념적 전투나 경쟁상태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이것은 일종의 이론적 야만상태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법률은 최초의 목동들이 자주 다녔던 샘 가까운 곳에서 자연에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법률은 실제 날짜와 무시무시한 영웅을 지닌 실제 전투, 승리, 학살, 정복에서 태어났습니다. 법률은 전화에 휩싸인 도시에서, 초토화된 땅에서 태어났습니다. 법률은 동이 트자마자 죽어가는 순진무구한 사람들과 더불어 생겨난 것입니다.(70) 우리는 서로서로 전쟁상태에 있고, 전선이 사회 전체를 연속적이고 영구적으로 가로지르고 있으며, 바로 이 전선이 우리들 각자를 한 진영이나 다른 진영에 위치시키는 것입니다. 중립적인 주체 따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불가피하게 누군가의 적입니다.(71) 이런[영구적 전쟁의] 담론에서는, 한편으로 어느 한 진영에 속함으로써 진실을 더 잘 말할 수 있습니다. 한 진영으로의 귀속이야말로, 즉 편향된 위치야말로 진실에 대한 판독을 가능케 하며, 질서정연하고 평화로운 세계 속에 있다고 사람들로 하여금 믿게 만드는, [즉] 적이 그렇게 믿도록 만드는 환상과 오류를 고발할 수 있게 해줍니다. “편향되면 될수록, 나는 진실을 더 잘 본다. 내가 힘관계를 강조하면 할수록, 내가 싸우면 싸울수록, 이 전투의, 생존의 혹은 승리의 이런 전망 속에서, 진실이 내 앞에서 더 잘 펼쳐진다.”(73) 다른 인종이란 근본적으로 다른 곳에서 온 인종이거나 일시적으로 승리를 거두고 지배했던 인종이 아니라 영구적이고 끊임없이 사회체에 스며들거나 아니면 오히려 영구적으로 사회의 세포조직 속에서, 그리고 이로부터 출발해 재창출되는 인종이라는 관념, 극히 새로우며 담론을 완전히 다르게 기능하도록 만드는 이런 관념을 갖고서 말입니다. 달리 말하면, 우리가 사회 속에서 양극성으로 이항 균열로 간주하는 것은 서로 외적인 두 인종의 대결이 아니라, 하나의 동일한 인종이 상위 인종과 하위 인종으로 둘로 쪼개진 것 입니다.(84)
영구전쟁에 대한 담론에서 인종주의에 대한 논의로 끌어간다. 영구 전쟁을 실제적인 전쟁에서 시작한다. 앞으로 사회계약론의 자연상태를 어떻게 다룰지 미리 보여주는 전조다. 법률은 실제로 피비린내 나는 전쟁에서 시작되었고, 이런 전쟁은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라는 담론을 전개해 나가면서 이때 진실은 한 진영에 속해서만 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불쑥 꺼낸다. 이런 말을 선뜻 받아들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 말은 한 마디로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평가자로서의 지식인의 자리 따위는 없다는 말이다. 싸움을 관람하면서 평론하면서, 자신은 마냥 중립적인 척 인생을 즐길 수는 없다는 것. 어찌보면, 이런 식의 전통적인 지식인의 지위를 향유하려는 사람들이야말로 가장 불쌍한 사람들인지도 모르겠다. 지식인을 자처하면서도 진실은 알 수 없으니 얼마나 허망할까. 그러느니 차라리 기득권 편에 붙는 게 훨씬 솔직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런 싸움 또는 투쟁, 오늘날의 현실에서 보면, 사회 속에서 벌어지는 이 싸움은 인종 간의 투쟁이며, 인종주의는 사회 내부에 침투해 있다. 피부색이나 국적의 문제가 아니다. 한 가족 안에 있어도 서로 다른 진영에 속해 있으면, 이들은 서로 다른 인종이다. 곧 인종주의적 배척을 서로에게 행한다. 인종주의자로서 최소한의 예의를 보여주는 것 뿐이다. 이 인종주의의 테마는 강의의 마지막에서 국가 인종주의로 이어지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이만큼 현실적이고 통찰력있는 주장도 드물다. 2019년 연말의 한국 국회를 그리고 거리를 보고 이것을 인종 간의 전쟁이 아니면 무엇이라고 부를 것 인가. 한쪽은 다른 쪽을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이 분명하다.
저는 16-17세기에 나타난 이 인종투쟁의 역사가 또 다른 의미에서, 더 단순하고 더 기본적인 동시에 더 강한 의미에서 대항역사라고 생각합니다. 이 역사는 …… 권력에 대한 비판일 뿐만 아니라 공격이자 요구이기도 합니다. 권력은 정의롭지 않습니다. 그 높은 예로부터 실추됐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우리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96) 두 집단이 있을 때 두 인종이 있는 것입니다만, 서로 동거함에도 불구하고 특권, 관습, 권리들, 부의 분배와 권력의 행사방식에서 기인하는 차이, 비대칭, 장벽 때문에 서로 뒤섞이기 못한 두 집단이 있을 때, 두 인종이 존재한다고 말해지는 것입니다.(102) 사람들은 중세 말기에, 16-17세기에, 역사의식이 여전히 로마 유형이었던 사회, 즉 여전히 주권과 의례와 주권의 신화를 중심으로 했던 사회에서 벗어났다고, 또는 벗어나기 시작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사회, 달리 표현할 단어도 없고 그 단어의 의미가 완전히 텅 비어 있으니까 쓰는 것이데, 이를테면 ‘근대적’ 유형의 사회 속으로 진입했던 것입니다. 주권과 그 창설의 문제가 아니라 혁명, 미래의 해방에 혁명의 약속과 예언을 중심에 둔 역사의식을 가진 사회 속으로 말입니다.(105) 인종의 순수성이라는 테마가 인종투쟁이라는 테마를 대체할 때 인종주의가 탄생한다고, 또는 대항역사가 생물학적 인종주의로 전환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인종주의는 서구의 반혁명적 담론과 정치에 우연히 연결된 것이 아닙니다 …… 인종투쟁의 담론이 혁명의 담론으로 변형됐던 그 순간에, 인종주의는 인종투쟁의 담론이라는 동일한 뿌리에서 출발해 다른 방향으로 역전된 혁명적 사상・기획・예언이었습니다. 인종주의는 말 그대로 혁명적 담론입니다만, 뒤집힌 형태로 그러합니다.(106-107)
16~17세기에 서양에서 역사에 대한 다른 해석이 생겨났다. 푸코가 근대적 유형의 사회라고 말하는 것. 프랑스든 잉글랜드든 그 안에서 현재의 권력에 반대하는 세력이 귀족이든 왕당파든 하층민들이든 자신들의 다른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역사적 담론은 하나의 정치적 무기가 되었고, 누구의 권력인지가 권력의 옳고 그름의 판단기준이 되었다. 이런 형태의 신분, 계급, 진영에 입각한 투쟁은 인종투쟁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 그리고 이런 인종투쟁이 인종의 순수성이라는 테마로 전환될 때, 반동적으로 역전된다는 것이다. 사회 내적으로 투쟁하는 사회적 진영, 계급은 실상 다른 인종들 간의 투쟁이라는 것, 서로 뒤섞이지 못하는 두 집단이기에. 감탄을 자아내는 통찰이었다. 인종의 순수성을 추구하려는 즉, 섞일 수 없는 다른 집단을 제거하려는 시도가 가져오는 결과란.
반란의 논리적・역사적 필연성은 전쟁이 사회적 관계들의 영구적인 특질이며, 권력제도와 권력체계의 씨실이자 비밀이라고 폭로하는 폭로하는 모든 역사 분석의 내부에 기입됐습니다. 저는 홉스의 가장 거대한 적수가 바로 이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홉스가 무엇에 맞서 『리바이어던』의 모든 전선을 배치했는가 하면, 그것은 국가의 주권을 정초하는 모든 철학적-법학적 담론이라는 적수입니다. 그러니까 홉스는 이 적수에 맞서 주권의 탄생에 관한 분석에 힘을 쏟았던 것입니다. 그리고 홉스가 그토록 강력하게 전쟁을 제거하려고 했다면, 그것은 그가 격통을 동반하는 역사적 범주, 까다로운 사법적 범주인 잉글래드의 정복이라는 이 끔찍한 문제를 적확하고 성실한 방식으로 제거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궁극적으로는 정복의 문제를, 즉 17세기 전반기의 모든 정치담론과 정치 프로그램이 그것을 둘러싸고 분포됐던 바로 그 문제를 피해야만 했기 때문이죠. 바로 이것을 제거해야만 했습니다. 더 일반적으로는, 또 더 장기적으로 제거해야만 했던 것은 제가 ‘정치적 역사주의’라고 부른 것, 다시 말해 제가 말씀드린 논의를 통해 윤곽이 드러나고 가장 급진적인 국면 중 몇 가지로 정식화됐던 담론이었습니다. 이 담론은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권력관계에 관련되자마자 사람들은 사법 속에 있는 것도, 주권 속에 있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은 지배 속에 있으며, 역사적으로 비한정적이고 비한정적으로 두껍고 다수인 지배관계 속에 있다. 사람들은 지배에서 [바깥으로] 나가지 않으며, 따라서 역사로부터 나가지도 않는다. 홉스의 철학적-법학적 담론은 17세기의 정치투쟁에서 실제로 작용했던 담론이자 앎이었던 이 정치적 역사주의를 차단하는 방식이었습니다. 19세기에 변증법적 유물론이 정치적 역사주의의 담론을 차단했던 것과 똑같이 이를 차단했던 것입니다. 정치적 역사주의는 두 가지 장애물과 마주쳤습니다. 17세기에 이것의 자격을 박탈코자 노력했던 것은 철학적-법학적 담론이라는 장애물입니다. 19세기에 그것은 변증법적 유물론입니다. 홉스의 작업은 정치적 역사주의 담론을 침묵시키기 위해 철학적-법학적 담론의 모든 가능성, 가장 극단적인 가능성조차도 [무기로] 동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역사를 연구하고 찬미하고 싶었던 것이 바로 이 정치적 역사주의의 담론입니다.(144-145)
이 강의의 앞부분에서 반유대주의에 대한 간략한 대답이 있다. 앞서의 강의에서 나타난 인종주의에 대한 질문이다. 푸코는 인종투쟁이 계급투쟁을 선취한 것이라고 언급한다. 마르크스가 발견한 것이 이것이라고. 이 강의는 홉스에 할애되어 있다. 그러나 홉스의 리바이어던을 기반으로 어떻게 재구성하는지 보다 흥미를 끄는 건 홉스는 당시에 대체 누구와 싸웠는가에 대한 설명이다. 홉스는 역사를 정치적으로 동원하는 담론들과 싸웠다. 이때 역사는 정복인데. 그것은 물론 영국에서는 정복왕 윌리엄의 헤이스팅스 전투에서의 승리를 말한다. 그 결과 잉글랜드에 노르만 왕조가 성립한다. 이 정복 서사를 해석하는 세 당파에 대해 말한다. 첫번째가 왕의 담론으로 노르만족의 정복의 권리 위에 절대주의 왕정의 근거를 수립하는 것이다. 두번째는 의회파의 논리인데, 이들도 노르만 왕조를 인정하지만, 정복에 의한 것이 아니라 색슨 왕조를 정당하게 계승한 것이라는 설명으로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수장을 선출하고 법을 만들 색슨 족의 권리를 왕은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세번째는 프티 부르주아들인 수평파와 디거스(개간파)의 입장인데, 실제로 노르만족의 정복으로 색슨족이 패배했기 때문에, 모든 법과 지배상태는 배신과 약탈의 체계라는 주장이다. 이 세 정파 또는 진영 모두 노르만의 정복을 어떻게 해석해서 현재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에 기초하고 있다. 홉스가 피하려고 한 것은 이런 역사-정치적 담론이 가져오는 반란이나 내전 상태이므로, 역사나 정치와 무관한 철학적 법학적 담론을 가장 극단적인 형태로 만들어서 제시했다는 점이다. 그는 전쟁을 회피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 정치학 연구자들은 당연하다면서 뭐 새로울 것 없다고들 하겠지만, 오늘날 실제 홉스를 전유하여, 활용하여 언급할 때, 이런 역사-정치적 담론 투쟁의 맥락 속에서 하지 않는다. 리바이어던은 이제 거대한 국가기구 내지 주권권력의 괴물 같은 상징처럼 남았고, 그것은 온갖 불의와 부정과 부패의 상징처럼 되어버렸으며, 불가항력을 표시하는 동시에 르상티망을 나타내기도 한다. 다음 강의부터는 프랑스에서 이 문제를 계속 풀어나간다.
역사의 이 새로운 주체/주제는 역사적 서사에서 말하는 자인 동시에 이 역사적 서사가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국가에 관한 국가의 행정적 혹은 법적 담론을 배척하려고 할 때 나타난 이 새로운 주체/주제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당시의 한 역사가가 ‘사회’라 불렀던 것입니다. 즉, 신분에 의해 결집된 개인들의 연합, 집단, 전체[집합]로 이해된 사회, 또한 자신의 고유한 습관・관행이나 자기만의 특별한 법률[법칙]을 지닌 일정수의 개인으로 이뤄진 사회 말입니다. 이제부터 역사 속에서 말하고 역사 속에서 발언하고 역사 속에서 말해지게 될 이 어떤 것은 당시의 어휘로는 ‘민족’nation이라는이라는 말로 지칭됐던 바로 그것입니다. 그 당시에 민족은 영토의 통일성[단위]에 의해 정의된 것도, 어떤 정해진 정치형태론, 혹은 어떤 지배에 종속된 체계에 의해 정의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민족에는 국경선이 없고, 정해진 권력체계도 없으며, 국가도 없었습니다. 민족은 국경과 제도 뒤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었습니다. 민족, 아니 오히려 민족’들’, 다시 말해 신분, 습관・관행, 국가가 정한 법률이라기보다는 신분에 따른 규칙성으로 이해되는 어떤 특별한 법률을 공통적으로 지닌 사람들, 개인들로 이뤄진 집합들[전체], 사회들, 집단들입니다 …… 민족이 발언할 것입니다. 국가 속에서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서로 대립하는 다른 민족들에 직면해 귀족도 하나의 민족이게 됩니다. 이 통념으로부터, 이 민족이라는 개념으로부터 민족에 관한 혁명기의 저 유명한 문제가 생겨납니다. 물론 이로부터 19세기 민족주의의 기본 개념들이 생겨나죠. 또한 이로부터 인종 개념이 생겨납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로부터 계급 개념도 생겨납니다.(170-171)
이야기는 프랑스로 넘어간다. 흥미롭게도 프랑스인들이 자신들의 기원을 트로이인으로 삼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푸코가 이야기를 하지 않지만, 브리튼도 트로이 기원설이 있는데. 이런 기원설들은 모두 로마의 트로이 기원설 때문이다. 로마의 직접적 후예가 되거나 로마와 동등하고 싶은 그런 소망의 표현 같은 것이다. 프랑스 역사에 전쟁 개념을 도입했다고 하는 프랑수아 오트망이나 갈리아를 모든 민족의 모체로 보는 피에르 오디지에를 언급한 후, 이 강의에서 깊이 다루는 알랭 드 불랭빌리에 백작의 사례를 가져온다. 불랭빌리에는 부르고뉴 공의 정치교육을 위한 총람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그의 아버지 루이 14세가 수립한 절대주의 왕정은 판사, 검사, 법률가, 법원 서기 등의 법적인 앎과, 행정감독관과 관료조직의 행정적인 앎, 경제적 앎에 기반하고 있다고 보고, 대항적 앎을 시도하게 된다. 그것이 nation에 대한 개념이다. 편의상 민족이라고 번역한다. 여기서는 국민이라는 번역은 적합하지 않고, 종족이라고 하기도 어렵고. 그냥 네이션이라고 하거나 나시옹이라고 하면 더 좋을 듯도 쉽고, 이 단어는 참 어렵다. 여튼 이런 시도를 하는 것은 프랑스가 한국 식으로 말하면 일종의 단일 민족국가 같은, 외부로부터 정복의 역사가 아주 뚜렷하기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구분 또는 나눔이 필요해 진다. 여기서 불랭빌리에는 귀족 만으로 하나의 네이션을 구성한다는 주장을 내세우게 된다. 귀족은 왕 또는 왕가와도 제3신분인 부르주아들과도 다른 nation을 구성한다는 것이다. 흥미롭지 않은가. 네이션nation이란 절대주의 왕정과 신흥 부르주아 사이의 압력에서 몰락해 가던 귀족의 발명품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그리고 이런 nation 개념을 없애버리고, 한정된 고장, 국경선, 고유한 법률과 정부라는 개념 안에 고착시켜, 국가 형태 안에 가둔 것이 백과전서파 즉 부르주아의 정의이다. 귀족도 nation이고, 부르주아지도 naiton이라고 말하하는 것을 배제하려는 목표였다.(178) 이는 뒤에 나오는 시에예스 텍스트 분석에서 분명해 진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전쟁이 사실상 역사적 담론의 진실의 모체였다는 관념에 이르게 됩니다. ‘역사적 담론의 진실의 모체’란 다음을 뜻합니다. 철학이나 법이 믿게 만들려고 했던 것과는 반대로, 진실과 로고스는 폭력이 멎은 곳에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반대로 귀족이 제3신분과 군주제에 맞서 동시에 정치투쟁을 벌이기 시작했을 때, 이 전쟁 내부에서, 그리고 역사를 전쟁으로 생각함으로써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역사적 담론 같은 것이 수립될 수 있었습니다 …… 보편적인 것의 가치와 합리성의 역량을 동시에 담지하는 것은 상승하고 있는 계급이라는 상투적인 말이 있음을 여러분도 아실 것입니다. 다들 아시다시피, 역사란 합리적이기 때문에 역사를 발명했던 것은 부르주아지였음을, 그리고 대두되고 있는 계급인 18세기의 부르주아지가 보편적인 것과 합리적인 것을 담지했음을 사람들은 기를 써서 증명하려고 했죠. 물론 사태를 좀 더 정확하게 들여다보면, 완전히 쇠퇴해 자신의 정치적・경제적 권력을 박탈당한 경우에도 한 계급[즉, 귀족계급]이, 훗날 부르주아지가, 그리고 뒤이어 프롤레타리아트가 움켜쥔 어떤 역사적 합리성을 수립한 예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 프랑스의 귀족계급이 쇠퇴하고 있었기 때문에 역사를 발명했다는 것이 아닙니다. 프랑스의 귀족계급은 전쟁를 했기 때문에 전쟁을 바로 자신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었으며, 전쟁은 동시에 담론의 출발점, 역사적 담론이 출현할 가능성의 조건, 참조점의 가능성의 조건, 대상이었던 것입니다. 전쟁은 이 담론의 출발점인 동시에 이 담론이 그것에 대해 말하는 것이기도 했습니다.(205-206)
불랭빌리에에 따르면, 프랑크족이 갈리아에서 발견한 것은 통념대로의 행복하고 목가적인 갈리아가 아니라 정복의 땅이며, 프랑크족에 갈리아족이 예속되어 지배와 군림이 실시되었다는 것이다. 결코 동의된 주권이 아니다. 이전에 갈리아에 들어온 로마인들은 전사 귀족 계급을 무장해제시키고, 하층민들을 평등관념으로 치켜세우는 평등화 덕분에 전제적 통치를 실시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신들에게 필요한 행정적 귀족을 만들어냈다. 이로써 행복하고 목가적 갈리아는 해소되었다. 그리고 군사 귀족이 없는 갈리아를 방어하기 위해서는 용병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 비용을 치르기 위한 과세로 통화량이 늘고 화폐의 가치하락으로 화폐가 희소해지면서, 가난에 빠져 황폐해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프랑크족이 침입하게 된다. 이 프랑크족 귀족 전사계급은 왕에 종속되지 않은 권력이 최소한이면서 자유로운 사회였다. 여기서 수아송의 항아리 이야기가 나온다. 프랑크족 전사의 독립성과 자유를 상징하던 수아송의 항아리는 두번째 에피소드에서 군주의 권력이 군사적 형태와 규율이 민법을 조직하는 상황으로 변했음을 보여준다. 게다가 재산을 빼앗긴 갈리아 귀족계급은 교회로 피신하여, 로마법과 라틴어 법의 실무에 능통한 자들로 변신하여 군주제의 동맹자가 된다. 라틴어를 모르던 전사 귀족, 앎 즉 지식에서 배제된 이들은 도태된다. 이렇게 봉건제는 형선된다. 따라서 불랭빌리에는 귀족 계급에게 앎, 즉 지식을 재개할 것, 기억을 되살릴 것, 역사의 신비화를 고발하고, 자의식을 되찾으며, 앎, 즉 지식의 씨실에 지식의 질서에 재기입될 것을 요구한다. 그리고 불랭빌리에는 법권리의 기반, 전투의 형태, 침략의 사실과 반란과 관련해 전쟁을 일반화한다. 불랭빌리에는 모든 사회체와 사회체의 역사에 두루퍼지는 일반화된 전쟁을 말하게 된다. 앞서 인용한 것은 그 결론이다. 그는 귀족 계급에게 필요한 지식을 제공하려 한다. 그 지식은 역사적이면서 정치적인 지식인 동시에 역사를 다시 쓰는 것이며, 그 핵심은 역사의 추동력인 전쟁을 말하려는 것이다.
불랭빌리에는 역사의 이 새로운 소재를 부동의 실체로서가 아니라 힘 혹은 힘들로서, 이런 힘들 중 하나일 뿐인 권력 자체로서, 사회체 내부에서 서로 싸우는 모든 힘들 중에서도 일종의 특이한 힘, 가장 기묘한 힘으로서 분석했습니다. 권력은 권력을 행사하지만 힘을 갖고 있지는 못한 사람들로 이뤄진 소집단의 권력입니다. 하지만 이 권력은 결국 모든 힘들 중에서 가장 강력한 힘이 되며, 폭력이나 반란을 빼면 그 어떤 것도 저항할 수 없는 힘이 됩니다. 불랭빌리에가 발견했던 것은, 역사란 권력의 역사가 아니며 그 어떤 법적 허구[의제]fiction에 의해서도 수수께끼를 풀거나 분석할 수 없는 괴물적이고 매우 기묘한 짝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인민의 원초적 힘들과 힘은 없으나 그럼에도 권력인 어떤 것으로부터 마지막으로 구성된 힘이라는 짝의 역사인 것입니다. 자신이 행한 분석의 축과 중심을 이동시키며 불랭빌리에는 중요한 어떤 것을 했습니다. 왜냐하면 우선 권력의 관계적 성격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의 원리를 정의했기 때문입니다. 권력은 소유물도, 힘도 아닙니다. 권력은 늘 관계일 뿐이며, 이 관계가 작용하고 있는 항들 사이에서 기능하고 있는 항들을 연구할 수밖에 없고 연구해야 합니다 …… 주권이라는 법적 용어가 아니라, 힘관계들 사이의 지배와 작용이라는 역사적 용어로 불랭빌리에는 권력의 이런 현상을 서술했던 것입니다. 바로 이런 장을 불랭빌리에는 자신의 역사적 분석의 대상으로 두었습니다.(208-209)
불랭빌리에는 그때까지 국가 경영에서 합리성의 원칙이었던 것을 역사에 대한 이해가능성의 원칙으로 기능하게 만들었다. 역사의 서사와 국가 경영이 연속성을 가지게 된 것인데, 국가경영의 합리적 모델을 역사에 대한 사변적 이해가능성의 격자로 활용하여 역사적-정치적 연속체가 구성된다고 푸코는 말한다. 이 연속체에 의해 역사를 말하는 것은 국가 경영을 분석하는 것이 같은 어휘를 따라 이해가능성 또는 계산의 같은 격자를 따라 이뤄질 것이다.(211) 그리고 18세기 프랑스에서는 전문기술적 지식이 출현한 것이 아니라 상이한 지식들이 다원적, 다형적, 다층적으로 분산되어서 실존했다. 지식들의 투쟁에 국가는 제거와 자격박탈, 분산된 지식의 규범화, 위계적 분류, 피라미드적 중앙집중화를 시도한다. 선별, 규범화, 위계화 집중화다. 이 시기는 지식들의 규율화, 지식들의 규율적 조직화가 행해지던 시기라고 푸코는 평가한다.(222-223) 그리고 국가는 역사적 지식이 권력과의 관계에 의해 적출되고 정치투쟁의 도구가 됐을 때, 역사를 되찾아 규율화하려고 시도했다. 왕권에 중요한 것은 역사적 지식, 역사적 지식들을 규율화하고, 국가의 지식을 수립하는 것이며, 역사가 본질적으로 반국가적 지식인 한에서, 국가에 의해 규율화된 역사, 공식적 교육의 내용이 된 역사는 투쟁과 연결된 역사, 투쟁하는 주체의 의식으로서의 역사와 끊임없이 대결하게 된다. 규율화는 비국가적 역사, 탈중심화된 역사, 투쟁하는 주체들의 역사를 막지 못하고, 투쟁, 몰수, 상호대결의 방식으로 이런 역사를 강화하게 된다.(228-229) 역사적 지식을 둘러싼 정치세력들, 민족들, 권력들의 투쟁이 17세기와 18세기 프랑스를 뒤덮는다. 역사적 지식을 둘러싼 투쟁은 가장 본질적인 권력투쟁이다. 21세기 한국에서도 마찬가지로 그렇듯이. 대항하는 역사들의 투쟁은 끊이지 않는다.
불랭빌리에와 그 후계자들의 커다란 적수는 자연, 자연인일 것입니다. 혹은 이런 점에서 불랭빌리에에게 도구와 전술이 될 이런 장르의 분석에서는 두 가지 의미로 이해된 자연인, 미개인이 커다란 적수입니다. 선하든 악하든 미개인이란 법학자들이나 법의 이론가들이 사회 이전에, 사회를 구성하기 위해 그로부터 사회체가 구성되는 요소로 상정하는 자연인입니다. 불랭빌리에와 그 후계자들은 구성점을 찾을 때, 어떤 면으로는 사회체에 선행하는 이 미개인을 찾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푸닥거리하고 싶었던 것은 미개인의 또 다른 측면, 즉 경제학자들에 의해 발명된 이상적 요소로서의 자연인, 역사도 없고 과거도 없으며 자신의 이익에만 이끌려 행동하고 자기 노동의 생산물을 다른 생산물과 교환하는 인간이었습니다. 즉, 불랭빌리에와 그 후계자들의 역사적-정치적 담론이 푸닥거리하고 싶었던 것은 이론적-법적 미개인, 계약을 맺고 사회를 창설하기 위해 숲에서 나온 미개인, 교환과 물물교환을 할 운명인 호모 에코노미쿠스로서의 미개인입니다 …… 19-20세기의 인류학적 사유에서 그러했듯이, 18세기의 법 사상에서 이 미개인은 본질적으로 교환하는 인간입니다. 법의 교환자로서, 미개인은 사회와 주권을 창설합니다. 재화의 교환자로서, 미개인은 경제체이기도 한 사회체를 구성합니다. 미개인은 18세기 이래로 기초적 교환의 주체입니다. 18세기 법이론에서 대단히 중요했던 이 미개인에 맞서 불랭빌리에가 개시한 역사적・정치적 담론은 다른 인물을 내세웠습니다. 법학자들과 그 뒤를 잇는 인류학자들의 미개인처럼 처럼 기초적인 인물이지만, 아주 상이하게 구성된 인물을 말입니다. 미개인의 이 적수, 그것은 야만인입니다.(237)
이 미개인은 법학자와 철학자들이 구성한 담론, 즉 권리의 양도에 의해 정치체를 창설하는 사회계약론의 원자인 사람들이다. 그들은 호모 에코노미쿠스라는 상상의 존재들이다. 푸코는 사회계약 만이 픽션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기반이 되는 원자인 한 사람, 한 사람을 호모 에코노미쿠스로 상정한 것 자체가 픽션 아니 거짓말이라고 조소하는 것이다. 현대의 유럽인을 과거에 투사한 것에 불과하는 이야기다. 그러면 불랭빌리에의 후계자들은 누구를 내세우는가? 그들은 문명과 영구적 반목상태에 있는 야만인에 주목한다. 그들은 침략하고 정복하는 악독하고 거만하고 비인간적이면서 역사의 인간인 것이다. 푸코가 제시하는 미개인, 야만인, 문명인의 구성은 들뢰즈, 가타리의 『안티 오이디푸스』에서 가져온 것이라 한다. 미개인과 야만인과 인류학을 연결지을 때, 나는 즉각적으로 스스로 문명인을 자처하는 백인들이 다른 세계의 다른 인종을 만났을 때 저지를 행위들을 기억한다. 그들이 교환에 응하면, 백인들은 이들을 미개인으로 규정하고, 그들을 지배하려고 들었고, 그들이 저항하면, 야만인으로 규정하고,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멸절시키려 들었다. 야만인과 미개인은 현실의 역사이고, 미개인으로 규정되는 것이 살아남는 길이었다. 구한말 이래 한국과 서양 또는 일본과의 관계는 모두 미개한 조선을 문명인 서양 또는 일본이 문명화시키는 과정이고, 그 과정에서 지배와 비용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이 제국주의 논의의 근간을 이룬다. 그리고 푸코는 그 이후의 프랑스에서 나타난 역사 담론을 야만인을 어떻게 여과하는 지에 따라 설명한다. 군주제는 야만인 따위는 없었다고 지워버리려 한다. 프랑크 족은 이민과 동맹이며, 갈리아-로마에 흡수된 것이고, 중앙권력이 쇠퇴한 후 관리들이 행정관할구역을 봉토로 삼는 내적 침략이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귀족계급은 갈리아에 들어온 털복숭이 무리는 야만적이면서 민주적인 무장한 인민들인 프랑크 족들이었지만, 권력 행사와 민주적 집회를 소홀히 하여서 군주제가 구성되도록 내버려 두었다는 것이다. 귀족들이 왕을 선택하기로 동의했을 때, 봉건제는 형성되었다. 훗날 티에리나 기조 같은 부르주아 역사가들의 해석이 되는 세번째 견해는 게르만족의 나쁜 야만성과 갈리아족의 좋은 야만성이 있었다는 것으로, 로마인들이 남겨둔 갈리아인의 자유가 도시의 권리로 남아서, 그러 고대적 자유와 도시의 권리라는 명제하에 자유주의적인 로마니테la romanité가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부르주아지는 가장 오래도록 반역사적으로 남았는데, 이들은 침략에서 자신들의 근거를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지식, 철학, 기술, 행정에 기반하는 군주제에 호의적인 이들은 역사주의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연법이나 사회계약에 의존했다고 평가한다. 물론 이들은 곧 역사를 전유하지만. 동일한 역사를 다루는 이 셋을 계급이나 신분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들은 서로 다른 인종들이 아닐까. 고딕소설에 대한 이야기도 흥미롭다.
아시다시피 민족에 관해 대략적으로 말하면 민족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설령 존재하더라도 적어도 왕의 인격에서 그 가능성의 조건과 실질적인 통일성을 찾아볼 수 있는 한에서만 존재한다는 것이 절대 군주제의 테제입니다. 하나의 땅에서 살고 동일한 언어, 동일한 관습, 동일한 법률을 지닌 집단, 군중, 다수의 개인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민족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민족은 만드는 것은 서로 나란히 존재하지만 그저 개인들일 뿐이고 하나의 전체를 형성하지도 않는 그런 개인들이 존재한다는 사실, 그러나 개인들이 모두 각자 개별적으로 왕의 실제적이고 살아 있으며 신체적인 인격과 법적인 동시에 물리적인 어떤 관계를 맺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민족이라는 신체를 만드는 것은 그 신민들 각자와 물리적-법적 관계를 맺는 왕의 신체인 것입니다.(263) 민족의 기능과 역사적 역할의 본질을 구성하는 것은 다른 민족들에 대해 지배관계를 행사하는 것이 아니며 …… 스스로를 다스리고, 국가의 형상과 국가권력의 구성과 기능을 스스로 관리하고 통치하며 보증하는 것일 것입니다. 지배가 아니라 국가화입니다. 따라서 민족은 본질적으로 더 이상 야만적이고 호전적인 지배관계 속의 한 파트너가 아닙니다. 민족은 국가의 적극적이고 구성적인 핵심입니다. 민족은 적어도 점선으로 그려진 국가입니다. 국가가 지금 막 생겨나고 형성되려고 하는 한에서, 국가가 개인들로 이뤄진 집단 속에서 그 역사적 실존조건을 발견하려고 하는 한에서, 민족은 국가인 것입니다.(270)
위의 인용은 군주제의 민족을 가리키는 말이고, 아래의 인용은 제3신분은 모든 것이라고 말하는시에예스의 주장에서 전개된 것이다. 그 사이에는 민족을 둘 이상으로 구성하는 반동적 귀족인 불랭빌리에의 민족이 있다. 부르주아의 민족nation은 국가화된 민족이다. 이제 민족은 국가이고, 국가는 민족이 된다. 물론 제3신분으로 구성된 nation이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국민국가nation-state이다. 여기서 푸코는 다층적 종속관계를 말하는 몽로지에를 언급한다. 그는 프랑스의 역사 전체에서 군주제와 인민반란의 연계를 설명한다. 특히 프랑스 혁명은 왕의 절대주의를 구성하기 이전 과정의 마지막 에피소드로, 군주제적 권력의 구성을 완수한 것은 프랑스 혁명이다. 왕의 목을 베었으나 군주제는 정점에 달했다. 국민공회는 벌겨벗겨진 군주제의 진실이며, 왕이 귀족에게서 빼앗은 주권은 왕의 정당성있는 후계자인 인민의 손아귀에 있다고 설명한다. 인민은 왕의 후계자, 그것도 정당성 있는 후계자라고 말한다.(280-281) 몽로지에의 이 주장은 2017년의 촛불시위와 그 이후 한국에서 우리가 목도한 바로 그 현상이다. 사회계약의 현장인 것처럼 여겨지던 그 겨울의 종교적 분위기는 결국 새로운 군주제로 귀결되었다. 그렇기에 촛불혁명이란 가장 정확한 명칭이다. 청원은 그 군주제적 요소를 가장 극명하게 보여준다. 진정한 군주는 스스로 주권자라 자칭하는 국민이지만. 그들은 자신의 권력을 반복된 투쟁 속에서 재차 확보해야 할 터이지만. 티에리는 혁명이란 도시사회가 농촌사회에 대해 승리했음을 보여주는 마지막 에피소드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도시 사회의 부, 행정능력, 도덕의식, 생활방식, 존재양식, 의지, 혁신 본능, 활동성들이 그렇다. 그리고 모든 국가적 기능을 흡수함으로써 유일한 민족이 된 제3신분이 실효적으로 자신들만으로 민족과 국가를 떠맡는다는 것이다. 새로운 보편성이다. 이원성, 민족들, 계급들이 소멸하는 순간이다. 이를 푸코는 역사적 담론의 자기 변증법화라고 부른다.(283-286) 다시 한번 21세기의 한국으로 돌아오면, 지금 의회에서 그리고 거리에서 벌어지는 투쟁은 누가 유일한 민족의 담지자인지를 확인하려는 바로 그 투쟁이다. 어느 하나가 다른 하나를 멸절할 수는 없겠지만, 헤게모니를 장악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고 패배한 쪽은 소수인종으로서의 투쟁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선 19세기의 생물학적 이론과 권력 담론 사이에서 재빨리 아니 즉각적으로 맺어진 연결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결국 넓은 의미의 진화론, 즉 찰스 다윈의 이론 자체가 아니라 진화의 공통적 계통수에 따른 종들의 위계, 종들 사이의 생존경쟁, 더 부적응한 것을 제거하는 선택 등 [그 이론에 포함된] 개념들의 전체, 다발은 아주 자연스럽게도 19세기의 몇 년 동안에 정치적 담론을 생물학적 용어로 단순히 옮겨 적고 과학적 치장으로 정치적 담론을 숨기는 방식이었을 뿐만 아니라 식민지화의 관계들, 전쟁의 필요성, 범죄성, 광기와 정신병의 현상들, 상이한 계급으로 이뤄진 사회의 역사 등에 관해 진지하게 사유하는 방식이 됐습니다. 달리 말해서 대결, 처형, 투쟁, 죽음의 리스크 등이 있을 때마다 사람들은 문자 그대로 진화론의 형태 안에서 이것들을 사유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생명권력의 양식을 따라 기능하는 근대 사회에서 왜 인종주의가 발전되는 지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307) 근대적 인종주의의 특정성, 이 특정성을 만든 것은 심성, 이데올로기, 권력의 거짓말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것은 권력의 기술, 권력의 테크놀로지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인종 간의 전쟁 및 역사의 이해가능성과 멀리 떨어져 있고, 생명권력의 행사를 가능케 하는 메커니즘 속에 우리를 위치시키는 것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근대적] 인종주의는 주권적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 인종을, 인종의 제거를, 인종의 정화를 이용할 수밖에 없는 국가의 기능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 이제 여러분은 어떻게, 왜 가장 많은 인명을 빼앗는 국가가 동시에 가장 불가피하게 가장 인종주의적인지를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결국 나치즘은 18세기 이래 수립됐던 새로운 권력메커니즘이 실제로 절정에까지 도달한 것입니다. 물론 나치 체제만큼 규율적인 국가는 없었습니다 …… 보편적으로 보험적이며, 보편적으로 안전적이며, 보편적으로 조절적이고 규율적인 사회가 나타난 동시에, 이 [나치즘의] 사회를 통해 살인적 권력이, 다시 말해, ‘죽이다’라는 옛 주권권력이 가장 완벽하게 맹위를 떨칩니다.(309)
마지막 강의는 인종주의를 주로 다룬다. 이 강의의 시작에서 주권권력과 생명[관리]권력에 대한 간략한 소묘가 있다. 죽게 하거나 살게 내버려 두는faire mourir ou laisser vivre 주권권력로부터 살게 만들고 죽게 내버려두는faire vivre et laisser mourir 생명관리권력으로의 변화. 이 변화는 인간을 종으로 파악하는 것에 기반을 둔다. 인간-신체를 개별화/개인화하는 규율 권력의 테크놀로지와 인간-종의 균형, 평균치, 보상, 최적화를 추구하는 조절이라는 권력, 생명권력의 테크놀로지. 신체-유기체-규율-제도들의 계열과 인구-생물학적 과정-조절메커니즘-국가의 계열. 제도적인 유기체적 전체, 즉 제도에 의한 유기적-규율과 생물학적이고 국가적인 전체, 즉 국가에 의한 생명 조절이 있다. 그리고 이들은 같은 수준에 있는 것이 아니기에 서로 배제하지 않고 서로 연계된다. 구너력의 규율 메커니즘과 권력의 조절 메커니즘, 신체에 대한 규율 메커니즘과 인구에 대한 조절 메커니즘은 서로 연계된다.(299-300) 이 생명관리권력에 대한 이야기는 안식년 후 이어지는 『안전, 영토, 인구』와 『생명관리권력의 탄생』이라는 통치성에 관한 연속적 강의에서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규율 권력은 물론 『감시와 처벌』에서 다루고 있다. 생명관리권력, 민족과 인종 개념의 형성과 전개, 진화론, 인종주의, 국가인종주의의 자기파괴적 대학살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개인적으로 흥미를 느꼈던 구절들 위주로 발췌해 놓았지만,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책 전체에 있으니 직접 읽는 수밖에 없다. 이해가 어려운 것은 아마도 프랑스의 역사에 대해서 대부분 잘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냥 프랑스의 역사만 다루는 것이 아니라, 프랑스에서 역사를 해석하는 담론들의 논쟁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접근은 더 쉽지 않다. 그렇지만, 다소의 어려움을 무릅쓰고 읽어내면, 여러가지 새로운 시야를 얻게 된다. 민족 또는 국가로 번역에 고심하고 있는 nation에 대해서, 인종이라는 것에 대해서, 사회계약과 원자적 개인에 대해서, 그리고 역사를 정치적 투쟁에서 활용하는 것에 대해서 끝도 없는 시사점을 얻게 된다. 푸코의 이야기는 저서와 강연과 인터뷰를 통해서 끊임없이 변주되지만,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만큼은 다른 곳에서 자주 반복되지 않는다. 이 강의는 규율권력과 생명관리권력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또한 동시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견해를 꽤 많이 보여준다. 전통적인 정치적 개념의 계보를 이렇게 많이 추적하는 경우는 달리 없다. 여러 면에서 흥미롭다.
이 책에서 역자에게 굳이 할 말이 있다면 아마도 그건 옮긴이 해제다. 물론 해제를 어떻게 쓰는지는 전적으로 역자의 자유에 속한다. 그럼에도 해제를 읽어보면, 자신이 이해한 푸코의 통치성 등에 대해 도식화된 설명을 하고 있다. 그리고 여러 푸코 연구자들을 언급하고 있는데, 좋은 자료들을 소개해 준데 대해서는 고마운 마음이지만, 굳이 이런 식의 도식화를 해야하는 지 솔직히 의문이 든다. 게다가 분량도 긴편이고, 논의의 초점이 무엇인지 솔직하게 잘 모르겠다. 가장 뜨악한 표현은 자신의 해제가 푸코에 대한 ‘표준적 이해’(349)를 표적으로 삼고 있다고 문제제기를 시작하고 있는 점이다. 일단 푸코 해석에 있어서 표준적 이해라는 게 있는지도 모르겠고. 푸코 자신이 자기 연구를 도구 상자tool box라고 한 것도 잘 알려져 있는 터인데 말이다. 말년의 푸코에게 자기 자신에 대한 표준적 이해에 대해 묻는다면, 아마도 읽는 당신이 알아서 하라고 답변할 것이 분명해 보이는데. 그러나 푸코의 독자들을 위해서는 푸코 이해를 위한 어느 정도의 길잡이를 해주는 건 필요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강의가 푸코의 전체 사유에서 차지하는 맥락, 이 강의에서 다룬 주요한 내용에 대해 지금까지 알려져 있던 사실, 이 강의의 이해에 대한 논쟁, 이 세 가지 정도를 아주 간략하게 다루면 충분하지 않을까. 해제가 언급해야 하는 부분은 사회계약, 민족-국민-nation, 인종, 자연, 권리 같은 일견 보편적이면서 그 개념이 정돈된 것으로 보이는 개념들을 푸코가 역사적으로 해체하거나 계보를 구성하는 과정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을까. 과연 푸코는 분석 모델로서의 전쟁을 나름의 방식으로 지속해 온 것일까. 아니 애초에 푸코가 전쟁을 분석 모델로 삼기라도 한 것일까. 푸코는 전쟁을 분석모델로 삼은 담론들에서 무엇인가를 발견하려고 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푸코는 더 이상은 이를 방법으로 삼은 담론을 분석하려고 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게다가 푸코는 마지막 순간까지 어떻게 싸울 것인가. 즉 투쟁에 대해서, 그 방법과 그 모범과 그 태도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이 둘이 무관하진 않겠지만, 반드시 연결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쉽지 않고. 이렇다 저렇다 단정하는 일이 꼭 필요한 것인지 나는 모르겠다. 푸코를 읽으면 읽을수록 더더욱 그렇다.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푸코가 어렵다고 겁먹고서 다른 사람의 해석에 매달리지 말고, 그냥 푸코의 논의에 푹빠져보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서 역자 해제부터 읽는 사람들에게는 좀 염려가 있다. 어떤 선입견을 가지게 될 까봐.
번역에 대해서는 큰 불만이 없지만, 읽는 사람의 도움을 위해서 몇 가지 언급해 두려한다. 이 정도면 사실 놀아운 편에 속한다. 우선 가장 어려운 droit, 영역자는 일관되게 right로 번역하고, 일본어 번역자는 법과 권리 사이를 오간다. 아주 가끔 법권리라는 어색한 표현을 쓰기도 하는데. 이 책에도 몇 번. 틀린 것이 아니라, droit가 법과 권리를 모두 뜻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래서 요즘에는 그냥 법/권리 라고 쓰자는 이야기도 있다. 권리에 가까우면 권리/법이라고 해도 좋고. 루소 연구자들 말로는 루소가 원래 그렇게 썼다고 하니까. 번역자도 droit와 loi를 구별하기 위해 droit은 법으로 loi는 법률 또는 법칙으로 옮겼다. 자연법droit naturel과 자연법칙loi naturelle의 구별이 그것이다. droit naturel은 말할 것도 없이 사회계약론의 맥락에서 나온다. savoir를 일관되게 앎이라고 하는 건 사실 좀 걸린다. 더 많은 사람은 지식으로 번역한다. 그러면 connaissance와 헷갈린다. 그래서 이건 인식이라고 하기도 하는데. 또 그러면 곤란할 때도 있고. savoir/connaissance 문제는 아주 처음부터 있었다. 푸코는 이 두 단어를 섞어쓰는 것 같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구분한다. 굳이 앎이라고 옮기고 싶었으면, 간혹 지식과 섞어 쓰는 게 좋지 않았을까. savoir를 문자적으로 앎과 지식 중 어디에 가깝느냐고 묻는다면, 지식에 가깝지 않을까 한다. 분명 곤란함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니 이 점을 알아두는 게 좋겠다. 앎-권력이라니 좀 어색하다. 지식-권력이 더. 그래서 나는 일본 사람들이 하듯 그냥 ‘지知’라고 쓰는 게 더 좋을 듯 싶은데. 헤세의 「지와 사랑」처럼. 요즘은 한 글자 한자어를 다들 너무 어색해 한다. 한국어의 빈약함을 벗어나려면 더 과감하게 말을 많이 만들어내야 한다고 늘 생각한다. 홉스를 다루는 부분에서 공화국이란 좀 당혹스러운데, 이는 commonwealth의 프랑스어 번역어가 république였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당연하게도 국가로 번역하는 편이 좋겠다. 홉스를 살려서 코먼웰스라고 해도 되지만, 그건 너무 나간 느낌이다. 이럴때 역자 주가 필요한 법. 우두머리chef도 종종 등장하는데, 틀린 건 아니지만 수장이 더 매끄럽다. dressage는 훈련이라고 되어 있는데, 『감시와 처벌』을 고려해서 말한다면, 훈육이라고 옮겨야 한다. 비슷한 말들이 많아서 구별해야 한다. 처음 나올 때 괄호 안에 ‘훈육’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반복될 때는 잊게 마련. parlementaire는 영국에서는 의회파지만, 프랑스에서는 고등법원이다. 그래서 영역자도 맥락이 프랑스일 때는 번역하지 않고 이탤릭체로 그대로 두었다. 이건 푸코의 일종의 말놀이다. 의회파로 번역된 단어는 영국 상황에서는 의회파로 프랑스 상황에서는 고등법원 또는 고등법원파 정도가 좋은데. 역시나 어색하다. 앙시앙레짐에서 고등법원의 법관은 세습직이었다. 이들은 법복귀족noblesse de robe에 속하는데, 그렇다고 동일하다고 보기는 자신이 없다. 의회파로 번역할 영국 맥락은 5강에 주로 있고, 그 이후는 한 두번 뿐. 흥미롭게도 맨마지막엔가는 의회파[고등법원]이라고 하고 있다. civil을 일관되게 시민이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사실 이 책에서 civil은 어디까지나 군사적이 아닌 민간/민사/문민이라는 뜻이다. 근데 또 이걸 이전 번역본 처럼 민간의, 민간적이라고 번역하면 어딘가 어색한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래도 할 수 없다. 국왕을 시민적 행정관이라고 하는 것보단 문민 행정관 쪽이 나으니까. le droit civil도 시민법 보다는 민법이, 너무 현대적이다 싶으면 민간법이나 민사법이 더 나을 것이다. 영국의 diggers는 개척파라고 되어있는데, 굳이 한국어로 하면 개간파이고 그냥 디거스라고 하는 경우가 더 많다. multiplicité를 다양체라고 번역한 것을 보았다. 무엇인가 전달하려 했겠지만, 좀 어색하다. 단어의 의미는 다수 이거나 다양성이니, 둘 중 하나로 적당하게 이해하면 된다. singularité를 특이성이라고 쓰는 건 요즘의 유행이자 경향인 모양이다. 그러나 그 의미로 볼 때, 단독성이 훨씬 낫다. 형용사형은 독자적이라고 했는데. 이것 역시 조금 어색하다. la romanité는 로마성[로마적 성격]으로 되어있는데. 다른 번역어 찾기는 어려웠을 것이나 역시 어색하다. 역주와 함께 로마니테라고 음역하는 편이 낫지 않을까. 요즘에는 흔히 국민으로도 번역되는 nation은 거의 대부분 민족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국민국가 또는 국가화 이전을 다루기 때문에 불가피한 번역이다. 읽는 사람이 알아서 새겨들어야 한다. grille는 영역자는 grid라고 했는데, 한국어판에는 격자와 틀, 두 가지로 사용했다. 격자 하나로 통일하는 게 좋을 것 같다. 참고로 박정자 번역본에는 암호판 또는 방법론으로 되어 있고, 일본어로는 解読子라고 했다. 아마 어려웠으리라고 생각한다. 사전에는 두 의미가 다 있고. 이럴 땐 건조한 용어가 제일 좋다. 게다가 푸코가 ‘격자’나 ‘표’를 좀 좋아하기 때문에. 설명만 좀 덧붙인다면. 푸코의 다른 몇몇 책과는 달리 번역어의 일관성은 지키고 있기에, 큰 문제는 아니다.
발견한 몇 가지만 덧붙여 둔다. 100쪽 3행, 고전기는 고대antiquité이다. 137쪽 1행, ‘공통법’은 원고에 쓰여진 대로 ‘Common Law’이며, 영국이므로 ‘보통법’이다. 각주의 ‘관습법’도 ‘보통법’이 옳다. loi commune이란 이를 단순히 프랑스어로 옮긴 것이다. 그런데, 푸코가 시에예스의 글을 다루면서 loi commune이라 할때는 번역된 대로 ‘공통의 법/법률’이 좋다. 그런 뜻이다. 영어와 프랑스어를 넘나드는 말놀이는 흥미롭지만 포착하기 쉽지 않다. 141쪽 11행, 무표화는 무효화이다. 166쪽 11행, 조세관도 맞지만, financier이다. 172쪽 15행, 프랑스 법 사상은 프랑스 우익 사상이다. 173쪽 1행, 행정에 대한 군주의 절대적 순종은 문맥의 흐름상 맞지만, 이 문장만 보면 군주에 대한 자기 행정부의 절대적 순종 쪽이 맞을 수도 있다. la volunté absolue du souverain de l’absolue docilité de son administration. 174쪽 15행의 법무장관은 국새상서이다. 199쪽 18행, 경기명은 보병fantassin이다. 206쪽 5행 이 담론의 향하는 참조점은 일본어 번역을 따른 것인데, 참조점의 가능성의 조건이 더 문자적이다. 213쪽 16행, 19행의 인문과학은 모두 인간과학이다. 290쪽 17행, 시찰·기록·관계는 시찰·기록·보고이다. 293쪽 18-19행의 실존환경은 생활환경이 더 낫지 않을까. 299쪽 14행의 신체-유기체-제도들의 계열은 신체-유기체-규율-제도들의 계열이다.
2019. 12. 3.
* 괄호 안의 숫자는 번역서의 쪽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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