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구치 지로, 세키카와 아쓰오, 『도련님』의 시대.

도련님의시대1-5

이건 만화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나 어찌보면, 시대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도련님』의 시대(『坊っちゃん』の時代). 만화를 두고 너무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건 재미없는 일이니 그런 건 그만 두기로 하자.

제목은 이렇다. 『도련님』의 시대: 혹독한 근대 및 생기 넘치는 메이지인. 사실 이 제목이 거의 모든 걸 말해준다. 메이지 시대에 열정과 고통 그리고 영광에 대해서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메이지 말기의 정세가 이미 쇼와20년의 비극, 즉 1945년의 패전으로 달려가는 길을 열었다. 그런 전체주의의 시대가 열리기 전, 막 근대를 맞이한 이들의 삶과 인생에 대해서 그리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한국인 입장으로 보면, 좀 재수 없는 장면들도 있지만, 그런 건 별로 따지고 싶지 않다.

나쓰메 소세키를 좋아하니까.

나쓰메 소세키를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그에 대해서 통 아는 것이 없었다. 그래도 읽다보니 나쓰메 소세키가 정말 좋아졌다. 정말은 영국 유학 따윈 가고 싶지 않았던 나쓰메 선생. 실상 그 유학은 청일전쟁 배상금으로 가게 된 것이었다. 국가에도 속하기 싫었고, 조직(대학)에도 속하기 싫었고, 겁은 많았지만, 자유인으로 살고 싶었고, 강박성 신경증에다가 위장병 환자. “쓸데없는 사람은 쓸데없는 길로 가야지”라고 말하며, 작가의 길을 선택한 사람. 그의 소설 쓰기, 신경증에 대한 일종의 치료법이었던 셈이다.

이 만화는 한 권, 한 권이 한 사람, 한 사람을 중심으로 이루어진다. 1권은 나쓰메 소세키가 소설가가 되기까지. 2권은 『무희』라는 소설로 유명했던 일본 육군 군의 모리 오가이. 3권은 천재 시인이었지만,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무책임하게 빚을 지고 살았던 이시카와 다쿠보쿠. 4권은 사회주의자이고, 무정부주의자였던 고토쿠 슈스이와 간노 스가코. 5권은 다시 나쓰메 소세키의 죽음을 다룬다.

2권의 주인공인 모리 오가이에 대해서는 극우파 소설가로 알려진 시바 료타로 원작의 드라마 『언덕 위의 구름』을 보다가 알게 되었다. 만화에도 종종 등장하는 마사오카 시키의 지인으로 나오는 모리 오가이는 청일전쟁 장면에서 군의관으로 등장한다. 마사오카 시키가 청일전쟁의 의미를 묻자 모리 오가이가 답한다. 조선에게 개국하라, 근대화하라고 무기를 들고 나서는 건, “쓸데없는 참견”이라고. 모리 오가이는 독일 유학 시절, 만난 엘리스를 일본으로 데려오지만, 가족의 반대로 결혼을 포기하고 돌려보낸다. 이걸 가리켜서 이렇게 말한다. “어차피, 도련님은 못 이겨”. 엘리스를 피하던 모리 오가이는 이렇게 말한다. “일본은 공사중”이라고.

“화혼양재(和魂洋材)”라는 이름으로 서구의 것을 받아들여, 서구화, 근대화의 길을 가던 일본에 파열이 오기 시작한다. 그 파열은 바로 그 근대화의 성공 직후에 일어난다. 1906년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고, 포츠머스 강화조약이 맺어졌을 때, 그 성과가 사할린 남부의 할양이라는 사실에 격분한 일본의 민중들이 폭발한다. 히비야 공원과 전차를 불태우는 일이 벌어진다. 전쟁을 준비하기 위한 세금과 고통의 댓가가 너무 작았다고 생각했던 것. 실제 얼마나 세금을 걷었을까. 작중 인물들은 러일전쟁 이전 월급의 10%를 건함비(함선건조비)라는 이름으로 떼고 받았다. 전국의 샐러리맨의 월급에서 10%가 건함비라니 엄청난 금액이다. 게다가 전차요금이 4전이었는데. 이중 1전은 전비였다. 전쟁 부가세가 25%였던 셈이다. 그래도 전비를 조달하지 못해 막대한 외채를 지고 있었으니, 일본인의 고통이 얼마나 심했을지 알만하다. 그런 장면은 곳곳에 등장한다. 빈민가의 모습에서, 언덕을 올라가는 짐수레를 밀어달라고 1전을 주겠다고 하자, 달려드는 거리의 날품팔이들.

3권의 이시카와의 어처구니 없는 삶의 방식. 돈이라고는 못벌면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빚을 지고, 그 돈은 유흥가에서 흥청망청 써버리면서, 정작 가족은 부양하지 못하는. 갚을 생각도 없이 돈을 빌렸지만, 장부 만은 꼼꼼하게 기록했던. 빌린 돈으로 사창가에 들리고, 친구들에게 한턱을 내고, 서양음식을 먹고 맥주를 마시고는 돈이 손에 있으면 어쩔 줄 몰라했던 그의 낭비벽은 어찌보면, 급격한 근대화를 하던 일본과 닮았다. 일본과 다쿠보쿠가 다른 점은 전쟁이라는 도박에서 일본이 이겼다는 점이다. 그의 천재성은 훗날에 빛나 일본의 국민시인으로 불리게 되지만, 살아있을 때 그의 천재적 재능을 빚을 내는 일 그 자체였다. 도움을 줄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고, 돈을 안보내고는 못견디게 만드는 그의 편지는 문재의 증거였다. 꽉 막힌 시대(시대폐색) 속에서, 이 젊은 천재는 요절한다.

4권의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고토쿠 슈스이는 『공산당선언』을 번역해 신문에 실었더, 공상적 무정부주의자 였지만, 체제를 지키려는 야마가타를 중심으로 벌어지던 음모사건의 희생자가 된다. 대역사건으로 불리는 천황 살해 음모사건. 실상 네 사람의 공상적 음모가 중간에 발각되어 증거라고는 폭탄의 재료가 될만한 화약 정도 였던 이 사건을 중심으로 관련자들을 모두 검거하여, 조직사건을 만들어 낸 후, 대법원 단심에 의해 무죄 아니면 사형인 형법73조를 걸어, 기소된 26명 중 24명에게 사형을 언도하고, 그중 12명은 다음날 무기징역으로 감형한 후, 나머지 12명을 선고 6일 만에 모두 사형시킨 사건. 인혁당 사건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한 이 사건의 희생자가 되는 고토쿠 슈스이. 작가는 이 사건을 들어 국가와 개인의 충돌이라고 말한다. 메이지 시대는 국가의 확장과 개인의 성장이 함께 움직이던 시절이었다.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국민교육헌장). 어디서 많이 듣던 이야기다. 그러나 러일전쟁의 부진한 성과로 발생한 폭동은 일본에서 국가와 개인이 분열하기 시작한 시대가 메이지 말기 였음을 보여준다. 이제 국가는 국가의 길을 가고, 개인은 그 안에서 질식한다. 나쓰메 소세키 같은 자유인은 설 자리가 없었다.

나쓰메 소세키는 신경증과 위궤양으로 결국 길지 않은 생을 마감한다. 강박성 신경증, 위장병으로 인한 위궤양. 지금 같으면 손쉽게 치료했을 만한 병이다. 나쓰메가 어느 정도였을런지는 모르지만, 나도 적잖은 강박에 늘 시달린다. 집에 가스렌지를 잠궜는지 확인하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세 번 타고 다시 올라간 적이 있을 정도. 지하철 역에서 집까지 돌아가 문이 잠겼는지 확인한 적도 있다. 게다가 십여년된 역류성 위식도질환, 위산과다, 만성 위염이 약으로 조절되기 망정이지. 약을 이삼일 먹지 않으면, 온 몸의 혈관으로 개미가 지나가는 느낌이 들 정도다. 약이 없으면, 나쓰메 이상으로 강박에 시달렸을런지도 모르겠다. 문부성이 보낸 칙령으로 된 박사학위령을 끝내 돌려보낸다. 어디까지나 국가에 속하고 싶지 않았던 그는. 박사학위를 천황의 이름으로 문부성이 임명하는 것도 기기묘묘한 일이지만.

한국인으로서 가장 흥미로운 장면은 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기 3년쯤 전에 야마가타 아리토모를 저격하려고 기차에 탔다가 여러 사람을 마주치는 장면이다. 만화의 주인공 중 한명인 이쥬인 경시는 안중근에게 미제 리볼버를 권하면서, 조선 병합을 주장한 사람은 야마가타가 아니라 이토라고 알려준다. 그런 안중근을 나쓰메 소세키 집에 머물게 해달라고 지인이 데려오자, 소세키는 단지 겁이나서 혹은 연루되기 싫어서 거절하고, 몇 년 후 이들 모두는 안중근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 소식을 듣는다.

삶에서 자유를 추구한다는 건 고통스러운 일이다. 그렇지만, 할 수 있는 한은 해볼만한 일이기도 하다.

2016. 1.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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