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 하르투니언, 『역사의 요동』

식민지 근대화와 근대성.

해리 하르투니언 (Harry Harootunian), 2000, 『역사의 요동: 근대성, 문화 그리고 일상생활』 (History’s Disquiet: Modernity, Cultural Practice, and the Question of Everyday Life), 윤영실·서정은 역, 휴머니스트,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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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은 1920년대에 활동한 일본의 건축가 곤와지로(今和次郞)의 ‘고현학'(考現學, modernologio, 고고학에 대응하는 의미에서, 지금을 세밀하게 관찰하며 연구하듯이 연구한다는 뜻) 연구를 보여주는 일러스트. 위 외쪽부터 남자가 필요한 물건, 여자가 쓰는 물건들로, 자세한 그림과 함께 백화점 등 상점에서 판매하는 가격이 표시되어 있다. 왼쪽 아래는 양복장 안의 물건과 벽장 안의 물건을 역시 같은 방법으로 묘사하는 것이며, 오른쪽 아래는 도시의 한 곳에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사회계층, 신분, 직업에 따라 수를 세고, 그를 묘사한 것이다. 일러스트들은 2014년 미국의 Parsons New School에서 열린, Design and Disaster: Kon Wajiro’s Modernologio에 출품되었던 것으로, 일본의 고카구인대학(工学院大学) 도서관 소장품이다.)

“식민지 근대화”는, 식민지를 지난 한국의 근대를 표현할 때, 가장 논란이 되는 말이다. 식민지 근대성이든 식민지 근대든 다소간 차이가 있지만. 논쟁이 광범위하게 일어난다. 왜일까?

대부분의 한국인들 혹은 식민지를 벗어나서 근대화 경로를 걸어가는 나라들에서 근대화와 근대성은 “善”이다. 식민지와 전쟁으로 굶주림을 견뎌내야 했던, 한국인들에게 근대화란 미국이 가지고 있는 힘, 식민지에서의 해방, 풍요로운 음식, 일자리, 집(아파트), 자가용, 가전제품과 같은 것들이다. 강한 힘, 풍요, 재산, 여유 등과 같은 모든 좋고 귀한 것들. 한국에서 근대성, 근대화란 서구가 오래전 이룬 성과를 각고의 노력 끝에 이루어내서 갖게 된 것을 뜻한다. 반면, 국민성이 모자라고 게으르고 나태한 우리보다 원래 가난했거나 지금은 가난해진 나라들이 이룩하지 못한 그런 어떤 것이다. 해외 원조를 위한 기부금을 모집할 때, 흔히 내세우는 말이 있다. 2차대전 이후 원조받던 나라(피원조국)가 원조하는 나라(원조공여국)로 된 나라는 한국 밖에 없다는 식의 발언에 그런 정서가 보인다. 옳고 그르고를 떠나 이것이 한국인이 근대화, 근대성, 근대를 이해하는 방식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흔히 이렇게 말한다. 미국에는 몇 년 뒤졌다. 유럽에는 몇 년 뒤졌다. 일본을 20년 혹은 30년 뒤를 따라서 가고 있다. 이런 서열들은 국가발전의 정도, 사회발전의 정도, 경제성장의 정도가 되기도 하고, 문명의 정도가 되기도, 도덕적 정당성이나 정치적 올바름의 근거가 근대화와 근대성, 즉 서구화의 지향임을 보여준다. 다소의 억압과 고통을 감수해야 하긴 하지만 노력의 결과로 얻게 된, 성과와 삶의 넉넉함, 이런 것들이 바로 근대와 근대성.

식민지 근대성 혹은 식민지 근대화라는 표현은 두 단어가 가지는 의미망의 상호충돌과정에서 격렬한 정서적 반응을 가져온다. 식민지라는 더할 수 없이 나쁜 것에서 가져온 근대성 혹은 근대화라는 좋은 것이 있을 수 없어한다. 나쁜 것도 때로는 좋은 것을 가져오기도 하고, 좋은 것의 기원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나쁜 것이라고 항상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러니까, 식민지 지배는 때로는 좋은 것이다. 문명을 빠른 속도로 이식하는 데. 물론 이런 논리는 제국주의 영국, 프랑스, 미국, 일본의 논리 그 자체이기도 하다. 그리고 식민지 시기에 받았던 고통과 수탈을 기억하는 이들에게는 식민지 시대에 주어지는 이런 상찬을 견뎌내기 어렵다. 식민지란 언제고 좋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까지가 한국의 식민지 근대성 혹은 식민지 근대화를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처한 딜레마다. 그래서 식민지 근대성, 근대화 연구자들은 바로 이런 식으로 가지고 있는 식민지가 근대화에 기여한 점을 찾아 헤맨다. 철도, 도로, 항만, 기업, 은행, 행정, 경찰, 제도, 문학, 잡지, 신문, 단체 그리고 어떤 이는 거기서 근대성에 기여한 점을 어떤 이는 거기서 수탈을 발견한다. 이런 사실은 식민지 근대화, 근대성에 찬성하는 사람과 반대하는 사람이 모두 근대성 혹은 근대화에 대해서 어느 정도까지는 혹은 상당한 정도로 인식의 일치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바로 그래서 식민지 근대성 혹은 식민지 근대화 논의에는 한 걸음도 진전이 없다.

아르메니아 이민자의 자녀 출신 미국인 일본 근대사학자라는 길고 의미심장한 설명을 가진 해리 하르투니언(Harry Harootunian)이 이 문제에 대해 ‘근대화론’을 재해석함으로써 설명의 길을 연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근대화론’이란 헤겔의 망령에 사로잡힌 망상이고, 중심부 즉, 유럽 이외의 사회를 영구적으로 주변화하는 기획이다. 오리엔탈리즘이 공간적으로 유럽 외부를 주변화한다면, 근대화론은 시간적으로 유럽 외부를 주변화한다. 전통적인 유럽적 사고방식은 보편적이고, 일원론적이면서, 목적론적 시간 위에 위치해 있었다. 그것은 그리스도교의 시간이다. 예수 그리스도 이후 그리스도교 문명의 전파, 구원과 심판의 시간을 기다리면서, 동시대성과 보편성을 확보하고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시간. 경험적이고 합리적인 사유체계의 변화, 지리상의 발견 아니 더 정확히는 비서구 세계와의 조우,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과 산업혁명의 과정을 거치게 되면서, 개별 국민국가는 각자 자신의 시간을 달리게 되고, 비서구세계는 그 나름의 시간을 달리게 된다. 근대화론은 국민국가별로 달려가는 각기 다른 시간대를 다시 하나의 일원적, 연속적, 목적론적 시간 위에 배치하는 것이다. 모두가 다시금 하나의 시간 위에 서게 되었다. 이런 일련의 시간 위의 배치를 따라, 미국에 얼마 뒤진 일본, 일본에 얼마 뒤진, 한국이라는 설명이 나온다. 그는 이를 “헤겔의 망령”이라고 한다. 헤겔은 정말 끈질기기도 하다.

하르투니언은 근대화, 근대성의 시간성을 공간화한다. 써놓고 보니 엄청 그럴듯한 표현이다만, 내용은 단순하다. 근대성은 자본주의의 다른 표현이다. 근대화는 자본주의화를 말한다. 19세기 중반 이후 동양으로 대표되는 비서구 지역에서 근대화에 성공했다는 일본은 자본주의화에 성공한 것이고,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성공적으로 포함되게 되었다. 서유럽 안에서 후발 자본주의화의 길을 걸어 국가 주도적 근대화를 추진한 독일, 이탈리아 등의 나라들도 러시아도, 근대화를 추진한다는 말은 자본주의화를 추진하여, 상품 경제로 돌아가는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포함되는 것이다. 그 결과,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포함되는 지구상의 어느 지역도 근대화되는 것이고, 어느 지역에서도 근대성이 존재한다. 다만, 어떤 형태의 근대성인지 차이가 나게 된다. 근대성, 시간의 공간화. 하르투니언이 명시적으로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1920년대 1930년대 조선의 경성(京城)은 근대적이었고, 근대성이 확산되었다. 그 근대성은 1930년대 조선 경성의 자본주의가 왜곡되고, 굴절된 만큼 또는 그 이상 왜곡되고, 굴절된 형태였다. 그러나 조선 경성이 일본 제국의 일부로서 일본의 식민지라는 형태로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포함되어 상품경제를 통해 전개되는 상품경제의 소비자들인 근대적 주체로 형성되는 것이다. 바로 여기에 식민지 조선의 식민지 근대성을 설명할 수 있는 지점이 생긴다. 앙드레 슈미드가 말하는 ‘한국 문제(Korea Problem)’, 즉 1945년 이전 근대 일본을 설명하는데, 식민지 조선을 배제하는 것이 해석의 오류와 이해의 한계를 가져오듯이, 식민지 조선에 대한 설명 역시도, 제국 일본의 일부로서 존재했던 그 모습을 따라, 동시대의 일본 내지(4개의 섬), 조선, 대만, 만주를 개별적인 동시에 통합적으로 조망하면서, 상호관계와 지위관계를 자본주의 세계체제 안에서 이해해야 비로소 이해의 길이 열린다. 20세기 전반 자본주의 세계체제의 중심부에 가장 가까웠으나 영원히 주변부 일수 밖에 없었던 일본이 다시 주변화시켜서 자본주의화된 조선 경성의 근대성이 바로 식민지 근대성이다. 식민지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한 사람의 한국인으로서 나는 이 주장에서 가장 큰 인사이트를 얻었다.

이제 책(강연)이 기술한 순서를 따라가 보자.

하르투니언은 역사를 현재의 역사로 보며, 이를 일상성에서 찾는다. 근대성을 과거로부터 이어져 나오는 것 혹은 과거의 혁신 내지 과거의 극복으로 보는 시각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과거를 고정된 어떤 것으로 만들어서 과거를 신비화하는 관점, 즉 역사주의를 극복해야 한다. 하르투니언은 일상생활, 현재, 현실성에 주목하며, “현대인에게 개인의 삶과 거리의 삶을 구분해 주는 실제적인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챈”(40) 포르투갈의 시인 페르난도 페소아로 논의를 시작한다. 그리고 이런 경험과 감수성을 동시대(1920~30년대)의 일본인 곤 와지로(今和次郞)와 곤다 야스노스케(権田保之助)에게서도 발견한다.(41) 이런 사유의 경험에 이론적 기반을 마련해주는 것은 발터 벤야민의 사색이다. 근대적 경험에서 말하는 “현재가 거대한 산업도시에서 실제로 살아지고 경험되는 시간이라는 점에서 현재를 일상의 현실성이라고 명명”했다.(44) 기억은 과거의 고정된 사실 위에 기초되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현실성’ 위에 정초된다. 벤야민은 ‘유령적 역사 경험’의 철학적 가능성을 다듬기 위해 ‘메시아적 예외’라는 역사 기술방식을 제시하고, 일상이라는 최소단위로 현재를 말한다.(45) 벤야민이 말하는 ‘메시아적 순간’은 각각의 예외들이 폭발하여 과거의 상실된 정의를 구원해 주는 순간으로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지금 순간이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의미한다. 이는 과거를 재생하는 것이 아닌 다른 종류의 시간을 위한 역사를 모색하는 것이며, 과거의 매개 없이 직접적으로 현재를 인식하고, 이 ‘현실성’을 과거를 ‘구성하는’ 조건으로 삼는 것이다.(67) 하르투니안은 일상성이라는 관점에서 서구와 비서구(즉 외부)로 구분지어 비서구의 근대를 서구에 대한 복제나 혹은 대안으로 취급하려는 경향을 극복한다.(48) 일상성은 당대적이면서 역사적 범주로서 특권을 가지는데, 일상성은 “산업도시들에서 사람들이 살아가고 표상했던 어떤 경험의 형성을 보여주는 당대적 범주”이자, “자본주의적 근대성의 모순을 탐사할 시야를 넓혀주는 역사적 설명 범주”이다.(49-50) 이렇게 흔히 말하는 서구도 자기 소외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면 18세기 영국이나 서구 지역의 극소한 경험을 환유하여, 서구 전체로 보는 가상의 근대 서구의 구성, 서구가 하나의 통일체라는 허상은 부재하는 타자인 비서구를 부정으로 외부화하는 동시에 서구 내부에서도 외부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68-69) 서구 외부의 근대에서 출몰하는 서구라는 유령의 뒤에 “소멸되지 않은 과거의 전근대적 준거문화”라는 더 큰 유령이 존재한다.(71) 서구와 비서구를 구별하는 유령은 역사적 현재에 출몰하고 이를 동요시킨다. 벤야민은 그래서 “과거라는 유령을 불러내는 현재”라고 인식했다. 과거와 현재는 내부와 외부의 근대성이 동시대적인 것처럼 그렇게 동시적으로 생산된다.(71) 하르투니언은 현재를 특권화하고 현재가 필연적으로 과거를 구성한다는 것을 인정하는 관점으로 나아간다.(76) 일상성은 지금(now)이 현재(present) 안에서 기다리고 있는 과거를, ‘잊혀졌으나 결코 잊을 수 없는’ 것으로서의 과거를 현실화하는 방식으로, 일종의 불안한 ‘요동(disquiet)’이며, 중단된 순간이다. 새로운 현재, 역사적 상황, 현실화 행위이며, 정치적 양식을 따른다.(77)

하르투니언은 지역연구, 근대화론, 탈식민주의를 같은 맥락에서 비판한다. 그의 지역연구 비판은 통렬하다. 2차대전 중에 적국연구로부터 시작된 지역연구는 실제 존재하지도 않는 아시아를 연구한다고 말하지만, 실제하는 것은 개별 국민국가에 대한 연구이다. 지역연구가 계속되면서 동양은 지속적으로 분리·고립된다.(87) 즉 연구대상으로서의 가치만을 유지한다. 처음에는 정부에 의해 주도되고, 다음에는 기업의 이익이 반영되, 때론 심지어 외국정부를 위해 기여하는 지역연구는 일종의 지식노동의 특징을 가지고 있고, 학문적 고려사항은 마지막에 재정문제로 환원된다.(93) 지역연구의 이론적 배경인 근대화론은 구조기능주의에 근거하고 있는데, 이 연구들은 근대화의 두드러진 성공사례로서 일본을 특권화하며, 일본은 지역을 대리하며, 동시에 고립된다.(96-98) 선교사 자녀들과 점령군의 어학병 출신들이 주도하는 지역연구에서, 동양 혹은 아시아라는 장소는 관찰되고, 표상될 필요가 있는 ‘원주민’들이 거주하는 공간으로 연구가 이루어지는 대상으로서의 ‘현장(field)’이 된다. 연구자들은 종종 평생의 정보원이 되는 현지인 여성과 결혼한다.(103-105) 이런 지역연구에서는 해석학적 동일시를 통해 습득한 ‘토착지식’에 집착한다. 순수하게 고유한 것으로 남아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토착지식에 대한 탐구.(105-106) 이런 연구형태가 원주민(현지인)을 끊임없이 타자화시키고, 이론적 자기성찰을 거부하는 것이 문제다.(109) 근대화론에 근거한 지역연구를 극복하기 위해 등장한 문화연구는 탈식민주의로 연결된다. 그러나 탈식민주의는 오염되지 않은 토착문화를 호소하면서, 이를 기호로 삼는다.(122) “때 묻지 않은 영혼과 오염되지 않는 내면성”에 근거한 반식민 민족주의는 저항의 형식이자 진정한 토착성의 기호(123)이다. 문제는 이렇게 대상지역에서의 토착지식을 신비화시키면서 토착지식을 찾아나가는 것이 근대화론과 자본주의 전략이라는 점이다. 근대화론으로 무장한 지역연구자들의 현장조사에서 연구목표는 토착지식의 발견이다. 토착지식을 정립함으로써 해당지역을 식민지배하거나, 개발 혹은 인구와 자원을 활용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한다. 지식을 전유함으로써 지역, 즉 땅과 사람을 지배하는 것이다. 반대로 반식민 민족주의, 탈식민주의 운동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다시 한 번, 토착지식에 의존한다. 하르투니안은 이런 토착지식의 존재 가능성과 신비화 모두에 의문을 제기한다. 토착지식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근대 및 자본주의와의 접촉과 근대화 및 자본주의화 과정에서 영구적인 소외와 배제의 근원이 된다. 예를 들어, 탈식민주의 담론에서 벵골이 모든 아시아, 혹은 참으로 모든 식민지를 대표한다고 말할(환유할) 때, 탈식민주의는 자본주의의 서사, 지역연구라는 자신의 기원으로 되돌아간다.(126-127) 하르투니안은 공간을 넘어서서 불균등한 자본주의를 드러내기 위해 드 세르토와 르페브르가 말하는 일상성에 눈을 돌린다. 정치적인 함의가 담긴 일상성과 근대성은 자본주의 경험을 공유하면서 동시대적인 문화형식을 구성한다.(131)

근대성 담론은 일상성에서 자리를 확보한다. 근대성은 모든 곳에 자신의 생산과 소비의 체제를 건설하겠다고 약속하는 자본주의적 욕망기계에 의해 추동되기에, 특정장소가 아닌 더 넓은 시공간적 맥락에 연결되어 공간마다 특색을 드러내며, 다양한 도시의 일상성 속에서 독특하게 자본주의의 불균등성을 드러낸다.(144-147) 1920년대의 도쿄, 오사카가 대도시가 되면서, 일본에도 본격적인 아메리카니즘이 달려온다. 산업도시, 금융도시는 소비재를 생산하고, 새로운 산업, 새로운 대중, 새로운 금융기관, 새로운 유권자, 새로운 주체와 정체성, 새로운 이데올로기, 새로움에 기초한 시간적 논리를 형성한다.(149) 찬성하든 반대하든 일본의 아메리카니즘은 미래를, 무한한 현재와 닮은 미래를 그려낸다. 그러나 동시에 아르노 메이어(Arno Mayer)가 지적하듯, 구체제, 즉 농업사회에 기반한 전통권력이 계속 유지되고 있었고, 일본은 이 점에서 소비에트 연방이 겪어온 근대화의 길과 닮은 길을 가게 된다.(151-153) 병리현상으로 드러나는 대도시의 일상은 단순히 실증주의적 사실성의 장소가 아니라 평범한 경험 속에 심층의 투쟁과 모순이 감추어진 장소로 자리매김된다. 일상생활은 사회의 가장 깊은 속에 자리잡은 모순과 열망이 드러나는 장소로 인식된다.(156) 이 대도시 속의 상품성의 세계를 짐멜(Georg Simmel)이 말한다.(168) 소비에트의 보리스 아르바토프와 일본의 토사카 준(戸坂 潤) 등은 소비에트와 일본의 상품화를 지적한다. “사물은 이제 상품이라는 가면을 쓴 채 ‘일상적 의례의 구조’ 속에 자리 잡고 그 ‘핵심부’를 장악한다. (중략) 사물들이 상품의 가면을 씀으로써 자신의 ‘실용적이고 기술적인 목적’과 생산조건을 억눌러 눈에 잘 띄지 않게 만든다.(173-174) 아르바토프는 아메리카니즘이 새로운 사회주의 사회에서 생산과 일상을 재편할 프로그램을 위한 모델이 되기를 기대했으나(175) 이는 실패하고 만다. 크라카우어는 베를린을 샐러리맨(die Angestellte)의 도시로 르포르타주한다.(183) 모자이크, 넝마, 콜라주. 삶의 단편들, 찌꺼기들, 철학적 의미가 담긴 경구들로 묘사되는 도시.(188) 오노 슈키치(靑野秀吉)가 분석하는 새로운 도시의 오락거리에 집착하는 일본의 신흥 중간계급은 새로운 상품들의 소비에 완전히 길들어 있으면서도 소비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킬 경제적 능력을 상실해 버린 사람들이다.(193) 크라카우어의 지적처럼 이들은 자신들과 별반 다를 바 없는 프롤레타리아화를 거부하고, 문화적·사회적으로 그들보다 우월하다는 이미지를 고수하지만, 실상은 경제발전에 따라 한때 자신들이 거주한 부르주아적 사상과 감정의 안식처에서 추방당한다.(194) 놀랍게도 하이데거는 일상에 철학을 제공하는 동시에, 일상성을 다른 시간성의 구조에 재정초시키기 위해, ‘본래적 역사학’, ‘죽음에서 자유로운 존재’, ‘본래성(Eigentlichkeit)’을 말한다. 근대는 세인(das Man)들이 살아가는 시대로서의 일상생활로 나타나며, 이는 부정적인 장이다. 여기서 세인의 독재, 즉 대중독재가 발생한다.(202-205) 하이데거는 운명으로서의 미래의 명령에 따라 역사가 형성되며, 이를 위해 허구적 오늘을 벗어나는 탈현실화를 요구한다. 이런 결단은 과거의 반복이자, 공동체 혹은 현존재의 가장 고유한 과거가 제공하는 가능성을 반복하는 것으로, 멀리있는 미래로 달려가는 결단(210)이라고 설명한다. 이런 충격적인 역사관을 따른다면, 하이데거의 나치 협력은 그의 사유의 귀결이었다. 반면 벤야민의 역사는 현재에 현실화되기를 기다려온 과거의 기대에 응답하는 것이다. 잊혀져버린 것의 새로운 현실화. 벤야민은 역사를 정치화하며, 역사에 정치적 소명을 부여한다.(211) 벤야민은 시간이 아라베스크 문양처럼 서로 얽혀있는 것, 과거, 현재, 미래라는 세 순간이 전치, 혼합, 뒤엉키고, 뒤집힌 시간의 낯선 지형도를 만들어낸다.(213) 일상을 재검토하여 역사유물론에 대한 새로운 접근법을 구상한다.(214) 벤야민의 현재는 지금에서 자양분을 섭취한다. 그러나 크라카우어는 현재를 그저 긍정한다.(215) 앙리 르페브르는 일상생활의 특징으로 다양한 시간의 공존을 든다. 에른스트 블로흐는 비동시성의 동시성으로 더 명료하게 표현한다.(216) 초현실주의자들은 일상생활을 도구로 일상을 전복하려 했으나, 벤야민은 이들의 전략을 일상이 강요하는 소외와 불균등성에 대한 인식으로 대체하려 했다. 르페브르는 이를 이어 “”평범한 것은 소박하지만 견고하며,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으로, 오늘과 내일, ‘날짜도 없고’ ‘어떤 중요성도 없는’ 예측 가능한 사슬들의 변함없는 연속”이라 쓴다.(221-222)

일상성과 불균등성에 대한 이해는 일본 근대성을 이해할 수 있는 열쇠를 제공한다. 당연히 식민지 조선의 근대성에 대해서도 설명의 길이 열린다. 고바야시 히데오(小林秀雄)은 일본은 유럽 근대사의 희미한 모방이라고 보았고,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은 유럽과 일본의 차이를 불완전함으로 보았으며, 다케우치 요시미(竹內好)는 일본이 서구를 흉내내고 있다고 비난하여, 완성을 복제로 착각함을 보여준다.(228) 하르투니안에 의하면 일본 근대사에서 발견한 불완전함이 그 자체로 근대성의 기호다. 벤야민의 통찰과 일본의 실례가 확인해 주듯, 선행하는 역사의 망령을 불러낸 것은 근대성 자체이기 때문이다. 유럽은 근대성을 단지 살고 있는 시간성이라고 가정하지만, 일본에게는 따라잡을 상대인 미국일 뿐이었다.(229) 급속하게 대도시화를 겪는 1920년대의 도쿄는 민속학자 야나기타 구니오(柳田國男)와 탐정소설 작가인 에도가와 란포(江戶川亂步)의 관찰에서 보면 익숙한 균형감이 사라지고 자본주의적 삶의 새로운 구조와 패턴이 부상하면서 불균등한 것이 마구 뒤섞인 거대한 도가니가 되었다. 일본의 자본주의적 근대화도 도시와 시골, 본국과 식민지 간의 불균등한 발전을 보여준다.(233) 문화적 불균등성이 나타나고, 근대성은 일본인들에게 속도와 충격, 사건 및 상품들의 연속,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화려한 구경거리로 받아들여진다. ‘모던 걸’ ‘마르크스 보이’ ‘엥겔스 걸’, 카페 웨이트리스 같은 주체들. 히라바야시 하쓰노스케(平林初之輔)에 의하면 여자가 직업세계에서 활동하는 근대성은 문화의 여성화로도 규정된다.(235) 애초에 도시 중간계급을 위한 것이었던 ‘문화 생활’은 도시의 거리를 통해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한다. 영화를 통해 전파되는 아메리카니즘은 모던 걸의 모습을 낳고, 다양한 곳에서 모방된다. 영화는 근대 일본 일상생활의 교과서였다.(243) 이런 상품문화에 대한 불만이 터져나온 것은 일본 군대가 만주를 점령한 것과 거의 같은 시기였다. 일본제국의 팽창정책은 일본의 자본주의적 근대화에 내재된 발전의 불균등성과 주요 사회 모순들을 인식하고 출구를 모색하는 과정에서 비롯된 것이다.(247) 이미 1920년대와 30년대에 일본에서 일상성에 대한 참여와 열광이 나타난다. 곤 와지로, 아오노 스에키치, 곤다 야스노스케, 토사카 준, 고바야시 히데오 등이 이런 논의에 참여한다. 반면 당시 에도 연구자들은 과거에서 일본 민속의 근원적이고 원초적 존재를 찾으려고 한다.(하이데거를 연상시킨다.)(250) 건축가 곤 와지로는 고현학(考現學, modernologio)이라는 학문분과로 수행적 현재에 참여한다. 고현학은 1923년 관동대지진 이후 새로이 형성된 도시의 일상생활을 이해하려는 시도로, 근대적 풍속이 새로운 주체성과 맺고 있는 관계를 묘사한다.(254) (우리에겐 관동대지진은 조선인 학살이 우선 떠오르지만, 관동대지진으로 인한 도쿄의 대화재는 에도시대의 다닥다닥 붙었던 오래된 목조건물을 불태우고, 새롭게 거리와 지진 및 화재시 대피 공간으로 공원이 건설되면서, 근대 도시의 모습을 더욱 갖추게 된다. 건축가인 곤 와지로가 고현학에 몰두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상품은 교환가치를 넘어서서 사용가치로서의 의미를 가지고, 구매자로서의 주체성 개념이 발전되며, 현재의 사회를 자신이 현대라고 부른 시간성에 걸맞는 것으로 변모시키려 했다.(254-255) 고현학은 스쳐지나가는 현재를 지금의 이름으로 포착하는 것이다.(261) 아오노 스에키치는 『샐러리맨의 공포시대』에서 일본의 소부르주아, 즉 화이트칼라 계급이 중상층과 하류층 사이에서 경제적으로는 빈곤하지만, 사회적으로는 상층 부르주아와 나란히 서 있으나, 스스로 사회적 곤경에 대해 어떤 조직도 형성하지 못하고, 투쟁하지도 못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오노의 표현에 의하면 엄청난 궁핍과 총체적인 ‘영혼의 피폐화’였다. 직업의 불안정함과 물질의 불충분함.(264-265) 근대 진보적 지식인으로 여겨졌던 이들은 침착, 명료, 평정심, 진실함, 의무 등 낡은 윤리적 관념을 온존하는 데 기여하고 있어, 그들의 삶은 소외와 불만으로 점철되었다.(266) 샐러리맨들이 부르주아를 욕망과 모방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 곤경에 빠진 원인이었다.(267) “샐러리맨의 비극은 프롤레타리아로 전락한 삶의 현실과 봉건적 풍속이라는 부르주아의 심리적 이상이 한데 묶인 ‘완벽한 자기모순’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그것은 ‘근대의 개인주의적 추구와 (과거의) 조화로운 가족주의적 추구 사이의 모순’을 보여주기도 한다.”(268) 샐러리맨은 지식 프롤레타리아로 되살아난 후, 그들의 공포를 도시의 재즈클럽, 댄스홀 등 근대적 데카당스와 난센스 에로티시즘이라는 새로운 스타일의 섹스의 확산으로 표출했다.(271) 토사카 준은 일상의 철학화를 시도한다. 이미 과거의 형식은 현재의 경험을 소통할 수 없게 되었으며, 일상을 강조함으로 철학은 종교나 내세에 의존하지 않고, 공간적 범주로서의 일상성을 연구했다.(276) 토사카는 의복, 풍속, 유흥 산업과 관련하여, 도덕성, 실재성, 현실성을 모색한다.(285) 토사카에게도 오늘이야말고 ‘일상성의 근간을 이루는 원리’다.(286) 토사카의 일상성은 물질성으로 귀결되는데, 오즈 야스지로(小津安二郞)가 전후의 영화에서 포착한 것도 이것이다.(288) 일상성은 비판이라는 작인을 통해 관습을 전복하고 어제와 오늘의 차이를 드러내는 무한한 실천의 공간이다. 일상은 비판적 실천을 향해 열려있다.(290) 고바야시 히데오는 문학에서 일상경험을 가장 잘 소통할 수 있는 형식으로 사소설을 든다.(291) 1인칭 소설은 현재를 진보의 정점으로 보는 본질적 기억행위이다.(292) 부동의 신비로서의 역사는 역사 기술에서 누락된 것, 즉 일상생활에서 무수히 반복되는 공통적일들 페소아가 ‘요동(disquiet)’의 장소라고 부른다. 일상생활(역사적 요동) 경험의 공통성 속에서 역사는 움직이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일상을 특수한 것에서 예외적인 것으로, 현재에서 과거로 전환했다. 일상은 비판의 장에서 소비의 장으로 남는다.(296-298) 이마무라 쇼헤이(今村昌平) 감독은 다큐멘터리 영화 『일본전후사: 마담 온보로의 생활(にっぽん戰後史 マダムおんぼろの生活)』(History of Postwar Japan as told by a Bar Hostess, 호스테스가 말하는 일본전후사)에서 일상으로 다시 쓴 역사를 보여주며, 사람들이 저마다 살아가는 광범위한 불균등성의 시대를 열어놓는다. 이마무라의 여급은 ‘여기에 있는 것’ 너머의 ‘요동(disquiet)’, ‘결코 알려지지 않은’ 어떤 것에 대한 향수, 그리고 저 깊은 곳의 “너무나 오래되었고, 감추어져 있으며, 이 모든 것으로부터 비춰지는 의미와는 너무나 다른” 근대성에 대한 느낌을 이해하고 있다.(300)

해리 하르투니언이 말하려는 것은 1920년대에서 30년대에 이르는 일본의 근대성이다. 1925년을 기점으로 쇼와천황이 즉위한 후, 일본은 군국주의와 전체주의 달려간다. 일본식 표현인 쇼와 20년의 비극, 즉 1945년의 패전 이후, 전후 사회는 일본 근대화를 불완전한 것으로 이해하고, 개인주의와 자유주의의 발견을 모색한다. 전후 마루야마의 천황제 비판과 개인주의 및 자유주의에 대한 재평가가 이런 위상 위에 서있었다. 그러나 1920년대의 동시대로 돌아가면, 당시 일본에서는 ‘근대 초극’의 담론이 횡행한다. 일본혼, 즉 야마토다다시(大和魂)에 대한 주장, 일본 특유의 가족주의에 대한 강화, 만세일계라는 천황 국체의 신성화 등을 통해, “지나친” 근대화와 서구화를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두 가지 담론은 이 책에서 하르투니언이 비판하는 두 입장과 상통한다. 전후의 개인주의 및 자유주의의 복권이란, 실패한 근대에 대한 재근대화론인 반면, 전전의 근대 초극이란 탈식민주의 담론에서 등장하는 토착지식과 순수한 과거로의 회귀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 두 가지는 같은 선상에 서있는 것이다. 하르투니언은 일본이 근대 자본주의 세계체제에 편입되어 자본주의 사회의 일상성을 드러내는 그것이 근대성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그 사례로 곤 와지로의 ‘고현학(modernologio)’, 아오노 스에키치의 ‘샐러리맨의 공포’, 토사카 준의 ‘지금(いま, 今)’을 들고 있다. 서구와 일본의 불균등성, 일본 내부에서의 불균등성 등, 불균등성이야말로 근대성의 본질이며, 정치적인 일상성을 파악하는 것이 근대성 이해의 출발점임을 간파하고 있다.

다시 식민지 조선에 대해 생각한다. 해리 하르투니안의 말처럼, 결국 사유는 국민국가를 근거로 해서 시작할 수밖에 없다. 식민지, 일본이라는 국민(nation)이 존재하고, 대항하는 혹은 하위의 민족이라는 이름의 ‘nation’도 형성되지 않은 그 어떤 단위에서의 근대성의 단위는 한반도라는 영토성 내지는 경성이라는 도시를 기준으로 형성될 수밖에 없을 터이다. 여기서 찾을 수 있는 근대, 찾아지는 근대는 어떤 모습으로 드러나야 하는가? 모던 경성의 모던 걸과 모던 뽀이들, 미쓰코시 백화점과 경성 라디오 방송이 모더니티를 형성하는 것인가? 하르투니언을 따르면, 식민지에서 찾을 수 있는 근대란, 지금 혹은 현재에 대한 당대인의 인식, 자기 자신에 대한 인식. 그리고 그런 인식의 기반을 이루는 자본주의 세계체제로의 편입 정도 및 그 근간을 이루는 전근대적 농업경제, 지주-소작 관계와 이를 옹호하는 체제. 그리고 그것이 만들어내는 불균등성과 불평등, 상품화되는 일상성과 총독부의 통제 사이의 충돌. 그 일상성과 불균등성 아래 깔려있는, 그 불균등성을 강제하고, 유지하는 식민지 통치자들, 즉 식민국가의 형태들. 일상성으로 표출되는 그 정치성. 식민지에서 형성되어 일상화된 원형적 근대의 구조와 그 불균등성 현재성. 일상을 통한 재생산.

소위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의 문제는 언급하기도 번거롭지만, 식민지시기의 물질적 성장 내지 축적이 있었느냐에 집착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부설된 철도나 도로의 길이, 전국에 깔린 전신, 전화 등의 통신망, 전력생산량이나 화학산업의 생산량(주로 비료 등), 생겨난 은행과 축적된 자본 그리고 그것이 가져온 농업생산량, 일부 공업생산량의 증가 수치. 거기서 한 걸음 더 나가면, 그 과정에서 이루어진, 일본 유학과 일본 자본주의 등에 의해 훈련된 기술인력이나 기업경영인, 금융인력 등이다. 그래서 그런 수치들에 집착하며, 그 수치들이 해방 이후 한국 자본주의 수립과정에서 어떻게 더 나은 수치로 나아가는지를 시계열적으로 비교하면서, 한국 자본주의의 성장 배경과 그 토대가 되었다 혹은 아니다라는 식의 논의 만이 무성한 상황이다. 그런 수치의 이면에 어떤 문제와 어떤 한계가 있는지 정치사회적인 문제를 고려하지 않은 채, 결과적으로 경제성장이 되었으니, 그에 기여한 나름의 의미가 있다는 식이다.

한편, 식민지 근대성의 다른 한 축인 문화적 민족주의나 공공성의 형성에 대한 논의는 같은 형태지만, 다른 문제를 낳는다. 예를 들어 식민지 경성의 신문들과 잡지들에 대한 연구나, 식민지 교육기관 및 단체들에 대한 연구, 그런 것들을 가지고 다양한 공공성에 대해서 말하기 시작하고 있다. 실제 이런 신문, 잡지의 내용을 보면, 일본에서 나타나는 모던 걸, 모던 뽀이, 영화, 백화점 등 거의 대부분의 현상들이 드러난다. 문제는 비슷한 현상이 있으니까, 거기에도 나름에 근대성이 있다. 그러나 제한적이니 이런 것을 식민지 근대성이라고 말하자는 식으로 접근하는 방식이 무의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식민지 근대화의 경제적 문제들에 대한 총체적 이해 위에 근거하고 있지 않은 현재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그래서 현재 식민지 근대성에 대한 연구들이 소위 식민지 일상성과 식민지 일상생활로 접근하고 있는데. 일상생활에 대한 연구를 또 하나의 이론으로, 방법론으로 수용한 나머지, 이 과정에서 정치적인 것에 대한 문제가 사라지고, 사소한 것들에 대한 미시사 연구들만 포말(담예) 혹은 분말(안재원)로 나타난다.

식민지 근대화/근대성/근대에 대해서 이야기하려면, 자본주의 세계체제에의 편입과 그것이 낳고 있는 불균등성에 대한 접근에서 출발해야 한다. 식민지 조선이 가지고 있는 불균등성은 삼중사중의 불균등성이었다. 자본주의가 가져오는 불균등성(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도시 프띠 부르주아의 붕괴), 중심부와 주변의 차이가 가져오는 불균등성(서구와 일본 자본주의간의 차이), 식민제국과 식민지의 불균등성(일본과 조선의 차이가 가져오는 불균등성), 구체제의 권력 작동방식과 즉 농업에 기반하고 있는 생산구조가 가져오는 불균등성(지주 소작 관계의 문제, 새로운 지주로 등장하는 일본인의 이중적 지배). 이런 삼중사중으로 중첩되는 불균등성 위에, 해방 이후에 냉전구조에 의한 분단체제라는 새로운 불균등성이 그 위에 중첩되면서, 거미줄 같은 불균등성의 망이 전쟁과 운동으로 찢어지기도 하고 이어지면서 현재의 경제성장과 근대화와 함께 불균등성을 형성시켜왔다. 식민지 근대화와 식민지 근대성에 대한 연구는 한국이 어떻게 경제를 성장시켰는가에 대한 연구가 아니라, 한국은 어떤 식으로 불균등한가에 대한 연구여야 한다. 그리고 식민지 근대화/근대성/근대에 극복은 불균등성의 완화, 해체, 극복이라는 정치적인 것에 대한 추구로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식민지 근대성을 근대적 정체성으로 극복해내는 새로운 정체성 수립과정은 문화투쟁이 아니고 정치사회적인 투쟁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그 투쟁의 장은 4년, 5년에 한 번씩 있는 선거가 아니라, 일상생활이다. 일상생활에서 일상성에서 정치적인 것의 회복, 불균등성의 극복이 바로 식민지성의 극복이며, 식민지 근대를 근대로 전환시켜서, 지금 오늘을 살아가는 것이다.

하르투니언이 말하는 근대성의 또 하나의 특징은 중간계급(middle class)의 붕괴다. 중산층이란 현실을 오도하는 표현이다. 중간계급이 중간자산층, 즉 중간자본가층이 아니다. 그들은 단지 생활상의 중간을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에 불과하다. 이 중간계급은 대부분 봉급생활자들(샐러리맨, die Angestellten)이다. 소규모 자영업자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봉급생활자들이 결국은 지식 프롤레타리아 층을 형성하면서, 이들이 근대성을 구현하는 주체로 등장한다. 자본주의 성장과 함께 성장하는 것처럼 보였던 중간계급은 자본주의의 확대과정과 더불어 경제적으로는 프롤레타리아화하지만, 사회문화적으로는 부르주아를 지향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들이 도시의 일상생활, 대량생산에 의한 상품소비의 주체, 현재에 집착하면서 표피적으로 흘러가는 문화, 대중적 퇴폐로 표출되는 근대성 담지자들이다. 식민지 근대성의 문제 중 하나가, 식민지에서 봉급생활에 걸맞은 직장을 구하기 어려웠다는 것이다. 기업의 수도 적고, 공공기관에서의 근무는 제약이 있고, 학교도 대학도 별반 없고, 박태원의 『소설가 구보씨의 하루』에서 그려지는 할 일 없는 소설가의 모습. 날마다 소설쓰기를 결심하는 모습이 그렇다. 식민지의 나쓰메 소세키 같은 모습.

중간계급은 어떻게 형성되고, 또 재형성되는가? 중간계급은 완전히 새로운 계급인가. 과도한 일반화의 오류를 무릎쓰고 말하면, 이들 중간계급의 직장이란 전통사회의 해체 도중에 있는 혹은 해체의 잔여들이다. 중간계급을 형성하는 소위 전문직업(의사, 변호사, 교사 등), 자본주의와 함께 확대일로를 겪는 관료기구의 공무원, 군인 그리고 새롭게 형성되는 기업에서의 일자리. 신문, 잡지, 각종 문화영역에서의 일들. 이들 모두는 아니지만 상당수는 집단적 이해관계를 통해서 보호받거나(직업을 매개로 한 이익집단의 보호), 새로운 이익에 대한 특권적 보호(식민지를 경영하는 동인도회사나 철도나 상선회사 등), 면허를 통해서 개인 혹은 기업에 주어지는 특권적 권리, 새로운 면허제도의 형성 등으로부터 생겨나는 일자리 들이다. 오늘날 신자유주의의 용어로 말하면, 규제, 역행, 대못, 개혁과 심판의 대상들이다. 이런 것들은 전통사회가 해체되면서, 특권이 해체되고, 분산되는 과정에서 형성되었다. 2차대전 이후에 대공황과 자본주의 한계로 붕괴되었던 중간계급은 전쟁으로 인한 대규모의 파괴, 전통사회의 개혁(토지개혁 등) 등과 자산분배, 신분제 의 연적과 특권의 분산 등을 통해 형성된 것이다. 중간계급의 형성과 재형성은 모두 정치적인 수단과 방법에 의한 것이다. 부르주아 혁명, 개혁, 전쟁, 구체제 폐지 등.

중간계급은 잉여 혹은 초과를 통해 유지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초과 이익이 있을 때에만, 용인되었다. 식민지 초과 이윤이 있을 때, 사업권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독점적 이익이 있을 때, 패권국이 가지는 이익 즉, 무역의 중심이자 기축통화로서 가지는 이익, 무역수지와 경상수지의 흑자를 통한 해외로부터 들어오는 초과이익. 이런 초과가 형성되거나 안정적으로 유지될 때, 중간계급의 공간이 열리고, 자본주의는 중간계급을 용인한다. 일시적으로. 그리고 자본주의가 성숙되어 감에 따라 자본주의는 중간계급의 기반을 흔들면서 계속 파괴한다. 지난 20~30년간 일본과 서유럽을 비롯한 소위 선진국 혹은 OECD 회원국들이 겪어온 일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중간계급의 해체를 경험했다. 그 과정에서 상대적으로나마 중간계급을 보호할 수 있었던 나라는 패권국이거나 수출 혹은 경상수지가 초과이익을 이전시키는 나라들이었다.

중간계급은 불평등, 불균등에 대한 정치적 해결책의 결과로 등장하고 또 유지된다. 부르주아 혁명에 의한 전통사회 붕괴 및 특권계급의 해체, 전쟁으로 인한 대규모 파괴, 자본과 시설의 파괴, 인력의 파괴, 사회혁명과 개혁에의한 토지 및 자산분배.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의 자생적 해결책인 복지사회 구축이 그것이다. 최근 북유럽 국가를 중심으로 기본소득 등의 이름으로 분배를 본격화하려는 움직임들이 보이는 데, 이런 활동이 과연 중간계급을 재형성하거나 유지하게 될지는 확신할 수 없으나, 불균등을 완화시키는 과정인 것만은 분명하다. 그리고 불균등성의 완화, 불평등 문제의 해결은 오직 정치적인 방법으로서만 가능하다.

중간계급과 자본주의는 같은 궤적을 그리면서 함께 움직이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궁극적으로 보면 그렇지 않다. 중간계급은 자본주의의 성장과 함께 형성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자본주의의 성장과 이윤집중 과정은 중간계급의 침식, 붕괴, 파괴 및 프롤레타리아화를 야기한다. 그럼에도 자본주의 상품경제의 번영은 탄탄한 중간계급에 근거해서 가능하다. 하지만, 중간계급 형성과 재형성의 동인은 정치적인 것이다. 자본주의 발전과정이 가져오는 붕괴와 자본주의가 만드는 모순과 한계의 정치적 해결과정에서 중간계급은 형성되고 재형성된다. 하르투니언이 근대성을 동요(disquiet)라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 점에서 설명된다. 근대성이란, 중간계급의 붕괴과정에서 본격적으로 형성되고 드러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전세계적으로 중간계급의 광범위한 붕괴를 목도하고 있다. 새로운 정치적 해결이 모색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근대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해야 한다. 그 근대에 대한 질문은 현재에 대한 질문이고, 일상에 대한 질문이며, 불균등성에 대한 질문이고, 정치적 해답을 추구하는 질문이다. 그리고 그것은 동시대의 자본주의에 대한 질문이며, 역사적인 동시에 현재에 대한 질문이고, 식민지, 탈식민지, 제국, 주변과 중심이 공존하는 세계 속의 그 어느 자리에 대한 질문이다. 내가 여기 서 있는 그 자리. 일상생활에서 각자의 존재는 있는 그대로 정치적이다.

2016. 1. 3.

* 책을 읽을때, 저자 해리 하르투니언과 역자들의 인터뷰 및 역자 후기가 뒤에 실려있는데. 먼저 읽으면 조금 도움이 될듯.
** 필요한 경우 번역서의 쪽수를 인용했다.
*** 이 글은 아포리아에도 게재하였다. [서평] Aporia Review of Books, Vol. 4, No. 1, 2016년 1월. 아포리아로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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