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 균열 위로 미끄러지는 타자의 형상 – 미셸 드 세르토, 『루됭의 마귀들림: 근대 초 악마 사건과 타자의 형상들』, 문학동네, 2013. Michel de Certeau, La possession de Loudun, 1973.
켄 러셀 (Ken Russell)의 영화 『악마들 (The Devils)』 (1971), 트레일러 동영상.
위르벵 그랑디에가 악마와 함께 서명한 계약서라고 한다. 돌아가면서 있는 것은 악마의 서명들. 위키피디아에서 가져왔음.
90년대말과 2000년대 초반을 걸쳐서 한국 교회에서 축귀 혹은 축사 열풍이 일었다고들 한다. 나는 그 시절의 교회가 어떻게 돌아갔는지 세세한 사정은 잘모른다. 중산층 거주지역의 대표적인 대형교회와 Y모선교단체가 본산이었다. 나도 그 즈음 가정 집에서 하는 어떤 집회에서 ‘방언’을 받았고, 꽤 오랜 기간 ‘방언’으로 하는 장시간 기도에 집착했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어떤 이는 1993년 정도가 다른 이는 1997년 즈음부터 한국 교회 하향세가 시작되었다고 하니, 이런 축사와 은사 열풍은 교회의 몰락과 함께 시작된 셈이다. 신비주의나 축귀 혹은 축사는 종교가 하락세에 접어들었을 때, 폭발하는 모양이다.
그러면서 한국사회는 세속권력과 교회권력이 충돌하면서 상호교차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4년전 2011년 한국판 카놋사의 굴욕이라고 하면 다소 과장이 될지도 모르지만, 국가조찬기도회에서 모목사가 당시 대통령 이명박의 무릎을 꿇린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대통령에 대한 호불호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 특히 비기독교인들의 분노를 자아냈다. 나는 이 퍼포먼스의 모든 출연자들을 싫어하지만, 이건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국가조찬기도회라는 행사 자체는 세속권력이 종교권력에 앞선다는 사실을 명백히 보여주는 연출의 장이다. 종교권력은 세속권력의 비위를 맞추고, 때론 정통성없는 권력에도 복을 빌어주면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박정희의 초상을 크게 걸고하는 추모예배 같은 일도 바로 이런 연장선에 있다. 게다가 교회 재판은 최대로 6심까지 진행한다. 교회 내부에서 3심, 일반 법정에서 3심. 요즘 교계 재판은 교회 안에서 끝나는 법이 없다. 교단이든, 목사든, 장로든, 평신도든 아무도 교회재판의 최종적 효력을 인정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대법원 판결문을 손에 들어야 멈춘다. 그리고 드디어 오랫동안 바라던 종교인 과세가 시작되려 하고 있다. 이 모든 일들의 의미가 드 세르토의 책을 읽으면서 연결되기 시작했다. 교회가 억압받는 자의 피난처가 되기를 거부한지는 이미 오래되었고.
미셸 드 세르토(Michel de Certeau)라는 이름은 꽤나 낯설다. 나도 소위 ‘식민지 이후 혹은 탈식민(postcolonial)’을 지향하는 역사가들의 책에서 간간이 그 이름을 발견했을 뿐이다. 그렇지만, 무시할 수 없는 저자들이 꾸준히 인용하는 바람에 The Writing of History와 Heterologies를 찾아보았는데, 생각지도 않게 『루됭의 마귀들림』이라는 제목부터 눈에 확뜨이는 책을 발견하게 되었다. 번역된 책이 이것 뿐이라서이기도 하다. 저자약력이 눈에 확들어온다. 예수회 사제, 신비주의 연구자, 68혁명 참여, 아날학파 관여, 라캉학파 참여, 타자성과 일상의 층위에서의 미시저항 문제를 오래 파고들어 연구한 문화이론가.
“신교와 구교 간 종교전쟁과 흑사병이 휩쓸고 간 17세기 프랑스 남부의 작은 도시 루됭, 어느 날 이곳 수녀원에서 수녀들이 몸을 뒤틀고 비명을 지르는 등 악마에 사로잡히는 증상을 보인다. 사건을 해결하고자 찾아온 당대 권력자 리슐리외의 특사 로바르드몽, 마법사로 지목된 사제 위르벵 그랑디에, 마녀에서 성녀로 거듭나는 원장수녀 잔 데장주, 구마사로 왔다가 정작 자신이 악마에 사로잡히고 만 쉬랭 신부. 이들이 이 역사적 무대의 주인공들이다. 중세와 근대, 종교권력과 세속권력, 구교와 신교, 남성과 여성, 과학과 영성, 역사와 전설의 대립과 충돌이 빚어내는 세기의 드라마” – 책날개. 이쯤되면 읽어보지 않을 도리가 없다. 펜데레츠키는 오페라를 만들었고(1968-1969), 올더스 헉슬리는 소설을 썼고(1952), 켄 러셀은 영화 「악마들」(1971)을, 카발레로비치는 영화 「잔 데장주 수녀」(1962)를 만들었다. 드 세르토의 이 책은 1970년에 처음 나왔고, 그 이후 여러번의 개정이 이루어진다. 60년대말과 70년대초에 이들의 관심이 집중되는 것도 눈여겨 볼 일이다.
이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루됭이라는 도시의 배경이다. 1632년 10월 ‘마귀들림’ 현상이 있기 전, 5월에서 9월까지 루됭 시에 흑사병이 돌아 인구의 3분의 1 가까이가 죽는다. 루됭은 프랑스 종교개혁의 싸움터 중 하나였고, 1598년 낭트 칙령 후 위그노(칼뱅주의 개혁파)가 신앙의 자유를 얻은 곳이었다. 이곳으로부터 서쪽은 위그노 교세가 동쪽은 카톨릭 교세가 강한 지역이었다. 루됭은 카톨릭과 위그노가 공존했는데. 루이 13세가 즉위한 후 점차 카톨릭이 세력을 확장해 와서 수도원과 성당을 만들고, 위그노를 압박하던 곳이었다. 루이 13세의 특사들은 저항의 상징인 성곽을 철거하고, 성탑을 무너뜨릴 것을 반복해서 요구한다. 데카르트가 『방법서설』을 발표하고 근대적 사유의 시작을 알린 것이 1637년으로 새로운 사유방식에 대한 다양한 관심이 솟구치던 시기였다. 루이 13세가 추기경 리슐리외를 등용해, 절대왕정을 강화해 가던 시기였다. 흑사병을 기점으로 한 의학적 지식의 유무, 혹은 과학을 중심으로 한 하나의 균열. 위그노(신교)와 카톨릭(구교) 사이의 균열. 절대왕정의 강화로 인한 세속권력의 강화로 인해 종교권력이 쇠퇴하는 또 하나의 균열. 중세적 사유와 근대적 사유 사이의 균열. 남자와 여자 사이의 균열. 이 균열들은 결코 포개지지 않는다.
“이상한 것들은 보통 우리 발밑에서 은밀히 돌아다니게 마련이다. 하지만 위기가 닥치기만 하면 이들은 홍수라도 난 것처럼 곳곳에서 지상으로 올라와, 하수구 뚜껑을 들어올리고 지하실에 스며들며 급기야는 시가지를 침범한다. 야음(夜陰)의 존재가 난폭하게 백주대낮으로 밀려오는 것은 낮의 주민들에게 언제나 놀라운 일이다.”(9)
“예전에는 이러한 이상한 움직임이 악마의 모습을 취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탈종교적 사회나 비종교적 사회라면 이는 다른 얼굴을 하게된다. 그런데 16세기말에서 17세기 초에 걸쳐 유럽을 휩쓸었던 것과 같은 마녀 사건(sorcellerie)과 마귀들림(possesion)의 거대한 부상은 종교적 문명 내부에 심각한 균열이 생기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아마도 종교라는 도구를 통해 표현될 수 있었던 마지막 균열이었을 것이고, 새로운 시작 이전의 마지막 균열이었다.”(10) “몇몇 집단은 사회 질서와 가치 체계가 상정하고 있던 어떤 ‘당연한 사실들’을 (스스로 입증할 수 없기에) 더 이상 믿지 않는다. (중략) 악마사건(diablerie)는 이런 상태의 징후이자 잠정적 해결책이다. (중략) 이 위기는 한 문화의 균형이 깨졌음을 폭로하는 한편 그 변화 과정을 가속화하기도 한다. (중략) 여기서 무엇보다 확연히 드러나는 것은 한 사회가 기존의 확실성을 잃어가고 새로운 확실성을 만들려 하는 와중에 이 확실성들과 대면하는 과정이다. 모든 안정성은 불안정한 균형에 기초하고 있으며, 이 균형을 더 안정적으로 만들려는 모든 노력은 이 균형을 교란한다. (중략) 하지만 어찌되었든 역사는 결코 확실한 법이 없다.” (11)
도처에서 광기가 폭주하고, 비이성이 거침없이 폭력성을 드러내는 2010년대 중반의 남한이 균형을 상실한 것은 분명한데, 균형이 있었던 것인지, 얼마나 불안정한 균형이었던 것인지. 새로운 균형을 어디서 찾게 될 것인지.
2015년의 한국이야 어떻든, 1632년 루됭에서는 우르슐라회 수녀원의 원장 수녀를 포함한 여러 명의 수녀가 ‘마귀들림’ 현상을 보인다. 그리고 이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구마사들이 파견된다. 구마사들은 처음에는 ‘마귀들린’ 수녀들을 고문해가며, 오염되지 않은 신의 언어인 라틴어로 자백시키고, 이 문제를 종교적으로 해결하려 했으나, 쉽게 결말이 나지 않는다. 이 사건으로 국왕은 판사들을 보내서 종교재판에 대한 재판권을 행사한다. 항소도 재심도 거부하는 특허장을 가진 총독을 보낸다. 국왕이 보낸 판사들은 모두 타지역(카톨릭 우세) 출신들이었으나, 이들의 임무는 세속권력으로 종교재판을 단죄함으로써 왕권이 종교에 대한 심판권을 확보하게 되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신학자들은 신학자들의 보내온 보고 내용에 따라 ‘마귀들림’ 사건을 추인했고, 의사들은 과학의 눈으로 다소 미심쩍지만 ‘마귀들림’을 인정한다. 과학이 권력을 가지려면, 아직 좀 더 시간이 필요했다.
수녀들이 ‘마귀들림’이 확실하다고 인정된 순간, 이들 모두는 희생양으로서의 ‘마법사’를 요구한다. 이 모든 혼란과 소동에 대해서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했다. 수녀원의 지도 신부였던 생 피에르뒤마르셰의 주임신부인 위르벵 그랑디에가 수녀들에 의해, 그리고 사람들에 의해 희생양으로 간택된다. 그는 키가 크고 잘생겼으며, 언변이 뛰어나고, 수많은 여인들과 스캔들이 난 마마보이였다. 여러 번 재판에 걸렸다가 무죄석방된 전력이 있었고, 부인했지만 사생아도 있었다. 그는 연인에게 보내는 사랑의 밀어로 나중에 재판에서 증거로 채택된 「독신에 대한 논고」를 쓰기도 한다. 이 논고는 은총의 법에 근거해 사제들에게 결혼이 허용된다고 주장한다. 그는 끝까지 결백을 주장하나, 인정되지 않았다.
‘마귀들림’ 사건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말’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마녀’ 사건과 갈라진다. ‘마녀’ 사건은 시골 촌구석에서 벌어지지만, ‘마귀들림’은 도시에서 일어나며, 훨씬 덜 야만적이고, 몇몇 스타들에게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된다. 결정적으로 ‘마귀들림’ 사건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중간계급 출신이라, 판사와 피고 사이에 계급차이가 없다. ‘마귀들린’ 여인과 한 쌍을 이루는 남자 마법사는 성직자나 의사 같은 자유사상가로 간주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말’로 심문이 이루어진다. 따라서 담론이 형성된다. 심문관들인 구마사들은 거룩한 언어인 라틴어로 질문을 하고, 심문받는 이들은 라틴어로 답변할 것이 요구된다. 라틴어로 하는 답변은 성체 앞에서 혹은 성체를 모시고, 즉 밀병을 먹고, 예수 그리스도 앞에 굴복한 후, 정직하게 답변해야 한다. 이런 심문이 모두 대화를 통해 이루어지는 까닭에 ‘마귀들린’ 여인들의 답변, 그 중에서도 얼굴 표정의 변화 같은 신체적 특징으로 구별되는 ‘마귀’에게 사로잡혔을 때의 답변의 정직성이 문제가 된다. 알다시피 마귀는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반복되는 고문과 심문이 이어진다.
“도구는 언어의 차이들을 신앙개조(信仰箇條)의 부정(신앙개조의 역상 또는 악마적 상)-즉 신성모독-으로 환원시키며, 일단 이 작업이 완수되면 이 차이들이 스스로 부인되어 정확히 출발점으로 돌아가도록 강요한다. 이 출발점이란 바로 악마의 ‘고해(告解)’이다. 그러므로 우선 악마의 말이 있어야 한다.”(246)
악마의 고해라니 정말 상상도 못할 발상이지만, 물리적 ‘교정(correction)’ 즉, 고문을 통해 이 과정이 이루어진다.
“이제 루됭에서 일차적 목표는 마귀들인 여인들의 치유가 아니라 언어의 치유이다. 따라서 방향전환 내지 노선변경이 이루어진다. 과거에는 공통의 믿음이 성직자의 말을 성화와 진정의 행위 쪽으로 이끌었다면 이제는 의심 때문에 흔들리는 말씀을 강화하는 것이 행위의 목적이 된다. 구마의식 속에서 행위와 말이 서로 자리를 바꾼 것이다.”(247)
드 세르토가 간파한 것처럼 종교와 신앙의 문제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말의 문제였다.
“강요에 의해 나온 말을 ‘진실’이라도 되는 것처럼 믿고 의존하는 것이 정당한가? ‘거짓말쟁이’에게 진실을 요구하고 그에게서 진실을 이끌어낼 권리라는 문제는 ‘기독교적 진실’이 타자, ‘무신론자’ 혹은 불신자와 맺는 관계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신성모독자에게 기독교 신앙을 고백케 하고 이에 동의하도록 강요할 권리라는 개념은 비록 연극적이고 악마학적인 모습을 하고 있기는 하지만 동시대의 거대한 호교론 기획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251)
과거에는 특별한 체험을 한 사람들 만이 하던 ‘간증’이 오늘날에는 보편적인 일이 되어버렸다. 특별한 체험이나 극적 경험이 없이도 ‘간증’은 이루어진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자기 죄를 고백하고, 자신이 거듭난 새사람이 된 것을 고백하는 일. 때로는 목사의 권유로 때로는 정서적인 무언의 압력으로 때로는 자발적으로 이루어지는 간증. 자신의 실패와 고백하는 죄가 크면 클수록, 더 큰 감동과 눈물과 공감을 이끌어내는 간증을 내가 불편해 하는 이유가 그것이었다. 감동을 이끌어내기 위한 도식이 제시되고, 아니 이미 모든 사람이 알고 있고, 어떻게 하면 더 큰 효과를 이끌어낼 수 있는지 모두가 아는 상황에서 이루어지는 공개적인 진실의 고백에, 강요나 욕망이나 미화나 과장은 없는 것일까? 회개한 죄인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일까? 아니면 거짓말을 할 수 없을 것일까? 희미해 가는 기억을 윤색하고, 편집해 갈때, 그 안에 담기는 고백은 어떤 고백인 걸까.
“이 시기 동안 기독교의 진리는 별의별 사상, 대담한 학설, 입장 대립이 뒤섞인 대혼란에 빠져든다. 신자들의 경험에서 기독교의 진리는 거짓말 속에서 길을 잃은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아무리 독실한 신도라 해도 무신론자의 면모가 없지 않다. (중략) 실제 구마의식은 두 가지 상반된 반응을 드러낸다. 어떤 이들은 거짓말과의 혼합이 진실의 새로운 장소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중시한다. 그래서 이들은 공개 상연에서 내면의 진실 탐색으로 이행한다. 이는 마음의 이중성 속에 깃들어 있는 진실을 찾는 일로, 어떤 급진적 선택으로 표출되며, 영적 소통이 가져다주는 인식 덕에 표현될 수 있다. (중략) 반면 어떤 이들에게는 이러한 상황은 하나의 권력, 교회 권력이 위협을 받는다는 사실로 요약된다. 영성 탐색과 진리 탐색의 내적 조건이 달라졌지만 이들은 이런 상황을 알지 못하다 보니 진리가 이런 상황 변화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여긴다. 진리는 교회의 제도와 담론에 의해서 정의·한정·지배되고 있으므로 새롭게 떠오른 질문들의 추궁을 받을 필요가 없다. 모든 문제의 근원은 외부에, 예기치 않게 부상하고 있는 역학관계에 있다. 진리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인 것이다. (중략) 교회는 악마를 강제할 권능이 있다는 말이 되풀이 된다.”
아, 그렇다. 그 똑똑하고 많이 배우고, 대형교회 목사가 되고, 권력과 부를 가진 이들이 어이없이 비이성적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소위 ‘꼴통’ 소리를 들을 줄 알면서 나서는 것은 이것이 힘의 문제, 권력의 문제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기 때문이었다. 성경을 다양하고 새롭게 해석하자는 제안은, 곧 교회의 제도와 담론과 깊이 연관된 진리에 대한 도전이며, 교회 권력에 대한 도전인 셈이다. 그렇기 때문에 부러지거나 부서지기 전까지 최대한도로 권력으로 대응하려 한다. 그것이 우리 모두가 목도하는 목불인견이다.
훗날 신비가로 명성을 날리는 쉬랭 신부는 수녀 원장 잔 데장주와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한다. 그는 아무 것도 강요하지 않고, 듣는다. 게다가 수녀 원장은 구마의 무대에 올라서지 않았을 때는 너무나 멀쩡하게 여러가지 일을 처리하고, 필요한 것을 요청한다. 쉬랭은 잔 데장주와의 몇 시간, 며칠, 몇 주간에 걸친 대화를 통해 이 히스테리 환자의 병에 공감하며 저항할 수단을 포기하고, 잔 데장주는 그의 기분을 맞춰주면서, 조금씩 원하는 것을 연기한다. 쉬랭의 열광과 잔 데장주의 교활함이 뒤섞이게 되자, 이 구마사에게는 마귀가 들러붙고, 원장수녀는 호전된다.(345-6)
광기의 폭풍이 지나가고, 잔 데장주는 몸에 악마를 물리친 흔적을 가지고, 전국을 순회하며, 큰 인기와 종교적 열광을 얻게된다. 그에게는 종교와 정치 모두의 권위와 보증 그리고 돈과 권력이 따라다닌다. 그는 이 모든 것을 교활함과 작은 술수들을 통해서 얻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을 가져다주는 결정적 계기였던 쉬랭의 착각은 애정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쉬랭은 어느 날 이 절친한 친구에게 편지를 쓴다.
“부탁이니 진실한 영적 생활의 토대를 진실한 마음에 두십시오. 그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듣고 있습니다만 그대의 행동에는 계교와 술책이 너무 많아 그대에게서 진실의 영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고, 초자연적인 계시와 전달에는 모순이 너무 많아 그에 입각하여 바른 판단을 내리기가 힘들며 선한 결과를 어렵다고 합니다.” (379)
드 세르토는 “누가, 누구에게 마귀들렸는지를 아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마귀들림에는 ‘진실한’ 역사적 설명이 없다”(382) 말한다. 문제는 마귀들림이 실제 일어나는 지의 여부가 아니라, 악마로 등장하는 타자들, 그리고 그 타자에 대항하는 사회이다. “타자의 새로운 사회적 형상”(383)이 드러날 때, 사람들은 또 어느 광기에 분노하며, 어느 광기에 감염되어, 어느 누구를 희생자로 만들 것인지. 광기의 체르노빌이 열린 것같은 2015년의 겨울의 남한에서 말이다.
오늘날 루됭은 관광지와 순례지가 되었다. 이 사건이 벌어진 곳들은 ‘비아 돌로로사’를 방불케한다.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해 도시 구조까지 바뀌었다. 진정한 승자는 과거를 팔아서 먹고 살게 된, 도시 자체일런지도 모른다.
내가 ‘방언’과 같은 기도형태로부터 자유로워진 것은 신대원 2년차의 어느 가을날이었다. 여느때와 다름 없이 새벽부터 예배당에서 기도하던 중에 나도 모르게, 나의 강박과 굴레를 보게 되었다. 나는 풍요로운 땅에서 자연스럽고 평화로운 삶을 거부한 채, 간헐적으로 내리는 만나와 이슬에만 집착하며, 신탁과 계시에 갈급해하고 있는 나를 보았다. 내가 신앙의 동산에서 자유롭게 달리기 시작한건, 그때쯤 부터다.
* 필요한 경우 번역서의 쪽수를 인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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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2. 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