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루이런 吳叡人Wu Rwei-ren, 「천민선언, 혹은 타이완 비극의 도덕적 의의賤民宣言——或者,臺灣悲劇的道德意義」, 최원식・백영서・신윤환・강태웅 편, 『제국의 교차로에서 탈제국을 꿈꾸다: 남쪽에서 본 동북아시아』, 창비, 2008, 293-307, 335-339.
이 글은 서남포럼의 2007년 “제국의 교차로에서 탈제국을 꿈꾸다”라는 제목의 동아시아 거점도시 순회토론회에서 발표되고, 2008년에 위와 같이 한국어로 출간된 후, 2010년 저자 자신의 번역에 의해 이와나미岩波書店에서 발간하는 『思想』에 「賤民宣言――或るいは、台湾悲劇の道徳的意義」라고 실렸고, 2016년에 출간된 『受困的思想』에 다시 수정되어 실렸다. 토론회의 제목에서도 자연스럽게 사용된 동아시아라는 호칭은 지리적 범위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지만, 제국주의 일본의 영토, 식민지, 점령지 등 전체 활동영역이 되었던 지역에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다. 그 전쟁의 이름이 대동아전쟁이었다. 한국과 대만/타이완은 일본 제국의 중요한 두 식민지였고,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식민지 경험을 가졌으며, 2차대전 후 미국이 지원하는 반공 독재국가를 구축했고, 80년대에 한국이 90년대에 타이완이 조금 늦게 민주화를 이룩한 유사하면서도 서로 다른 경로를 걷고 있다. 냉전이 지속되던 90년대까지 중화민국(타이완)과 대한민국(한국)은 강력한 유대관계를 맺고 있었지만, 소련동구권의 붕괴와 민주화는 관계를 갈라서게 만들었고 오늘에 이르렀다. 그러나 2014년 타이완의 해바라기와 2016년 한국의 촛불이 각각 민진당과 민주당으로의 정권교체를 이룬 점을 보면, 타이완과 한국의 어떤 식으로든 공명하고 있다는 점은 무시하기 어렵다. 제국주의 일본의 식민지배는 냉전기 미국 주도의 서방진영과의 관계이든 중국의 부상 이후 중국경제와의 관계이든 또는 중국의 위협에 대한 경계심이든. 저자 우루이런은 1962년생이자 80학번으로 83년 국립타이완대학 최초의 비非국민당 학생회장으로 학생운동을 이끌었고, 90년대 민주화운동(들백합野百合)과 격변기에는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베네딕트 앤더슨의 『상상된 공동체』의 타이완판을 번역하고, Formosa Ideology라는 학위논문을 발표했지만, 2014년 해바라기太陽花 운동에는 앞장섰던, 학자이자, 활동가인 동시에 사상가이기도 하다.
“세계사 속에서 오직 이미 국가를 형성한 민족만이 우리들의 관심을 받을 가치가 있다”는 헤겔의 말로 시작하는 이 글은 민족자결의 물결이 만들어낸 민족국가체계가 모순되고, 위선적이며, 보수적인 체계라고(293) 비판하면서 시작한다. 유엔이란 국가형성권을 농단하고 현실의 권력균형을 유지하는 주권국가의 카르텔 조직에 불과하다.(294) 반식민 민족주의 물결 속에서 아직 자신의 국가를 건립하지 못한 약소민족들은 대부분 현대 주권민족국가체계에서 영원히 배제되어 있으며 거기에서 벗어날 길이 보이지 않는다(294)고 고통을 호소한다. 국가가 없는 자들이나 혹은 국가가 있더라도 주권국가체계로 인정받지 못한 자들은 고립무원의 상태에서 수모를 당하고 있다. …… 노예는 여전히 반란상태에 있으나 이성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그러나 제국의 주재자들은 오히려 역사의 종결을 선포하기에 바쁘다. 이것이 현대 타이완 비극의 세계사적 근원이다(294)라고 헤겔과 후쿠야마를 이끌어들인다. “노예는 여전히 반란상태에 있으나 이성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1971년 유엔에서 사실상 축출, 정확히 중국 대표권 다시 말해 상임이사국의 권한이 현재의 중국으로 넘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안보리 거부권을 가지고 있었다. 1979년 미국과의 단교로 본격적으로 고립되기에 이르지만. 이때의 중화민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가 하나. 그러나 현재 타이완의 위치는 국가형성권을 부정당한, 국가가 있으되 주권국가로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인 것은 분명하다.
동북아에서는 민족국가의 형성이라는 역사운동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295) 타이완에서는 일본 식민통치가 1920년대에 최초의 타이완 민족운동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1945년의 강제적인 영토이전과 1949년 중국 국민당에 의한 중화민국 망명정권의 수립은 타이완 민족주의의 진일보한 발전을 제한하였다. 아이러니한 것은, 반세기 동안의 모국 없는 식민통치의 경험과 80년대 이후의 민주화를 겪은 뒤에, 망명한 중화민국은 점차 본토화하였으며 ‘타이완 속의 중화민국’이라는 절충적 형식의 영토국가를 형성하였다는 점이다. …… 민족주의[내셔널리즘]의 관점에서 보면 동북아지지역의 지난 1세기 반 동안의 국가형성은 좌절당하고 완성되지 못한 상태에 놓여 있다. 중국 민족주의는 …… 타이완 ‘수복’을 완성하기를 강렬하게 갈구하고 있다. 일본 민족주의는 …… ‘정상적인 국가’가 되기를 갈망하고 있다. 한국 민족주의는 남북한의 통일이라는 …… 지역내 강대국의 길로 매진하기를 갈망한다. 타이완은 민족국가의식이 나날이 성숙하고 있는 가운데 주권민족국가체계 속에 받아들여져서 ‘정상적인 국가’가 되기를 힘써 추구하고 있다. …… 좌절된 열정은 국가 정상화라는 공동의 주제를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각국의 국가 정상화의 목표 사이에는 드러나거나 감추어진, 그리고 직접 혹은 간접적인 모순들로 가득 차 있다. 동북아 민족주의자들은 서로 시기하고 방해하지만.(296-297)
모국 없는 식민지 통치란 중화민국(국민당 정권)에 의한 타이완 통치를 가리키는 우루이런의 표현으로 국민당 정부는 일종의 외래정권으로 그 국가 형태를 遷占者國家(천점자 국가)라고 부르는데, 이는 로널드 웨이처Ronald Weitzer의 settler state의 타이완판 번역어다. 단순히 정착민이라고 하면, 아마도 원주민을 무시하는 말이 될 테니, 이식(정착)식민지 국가 정도의 의미가 되려나. 더욱이 1949년 국공내전에서 패배한 후, 모국 없는 식민지 통치라는 유례없이 기이한 모습을 띄게 된다. 가장 비슷한 걸 꼽으라면, 지구가 멸망한 후, 우주선을 타고 외계 행성의 식민지를 개척하는 것 같다고 할까. 우루이런은 타이완만 아주 특별하다고 특이성을 주장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도 한국, 중국, 타이완, 일본이 모두 국민국가의 완성이라는 내셔널리즘 프로젝트에서 성공하지 못하고 서로 시기하며 방해하는 모순 속에 있다고 선언한다.
이들 모두는 진보민족주의의 변형이다. 이들 전후 아시아주의의 목적은 민족주의에 순종하는 데 있으며 그것을 버리는 것은 아니다. 그것들을 결코 주권민족국가체계가 국가형성권을 농단하는 것에 도전한 적이 없으며 또한 권력균형이라는 현실주의 원칙을 넘어설 수도 없다. 이것이 바로 전후의 각종 아시아주의의 주장 가운데서 타이완의 위치를 줄곧 찾을 수 없었던 이유다. 왜냐하면 타이완은 심지어 아직 이 진보게임에 참가할 자격, 즉 주권국가의 신분(sovereign statehood)을 취득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중국이 타이완을 영유하려는 영토회복주의(irredentism)을 포기하지 않는 한 타이완은 주권국가의 자격을 취득할 수 없으며 어떠한 형식의 동아공동체에도 참여할 기회를 갖지 못할 것이다.(299)
이 글이 발표된 후, 불과 15년 밖에 경과하지 않았는데, 아시아는 이미 놀랄 만큼 암울해졌다. 우루이런이 타이완의 자리를 찾을 수 없다고 안타깝게 외치던 아시아는 온데간데없어 보인다. 날이갈수록 포용력을 잃고 피해자 의식만을 표출하는 일본은 태평양 너머 미국에만 호소하고 있고. 전세계에서 그리고 주변국들에게 날로 반감을 사는 중국의 패권적 태도와 자신의 역량을 자각하면서 커져가는 한국의 목소리는, 동아시아, 동북아시아 아니 아시아라는 이상이 있는지 조차 의심스럽게 한다. 그러니 현실은 “강대한 제국들의 패권다툼이나 약소국가들의 활로 모색을 막론하고 이들은 피차의 민족주의(내셔널리즘)을 날마다 강화하고 있다”(300)는 지적이 유효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21세기는 분명히 국가와 내셔널리즘의 세기로 시작하고 있다.
아직 주권국가의 형식을 갖추지 못하거나 갖추었다 하더라도 여전히 주권국가체계로 인정받지 못한 이들 약소자들은 심지어 제국을 상대하여 동맹을 담판할 본전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타인은 칼과 도마이며 자신은 생선과 고기이다. 그들의 운명은 제국에 의해 좌지우지되며 제국의 패권다툼의 바둑알에 불과하다. 그들의 민족생명사는 타율적이고 외부결정적이다. 그들의 민족주의는 본래 제국의 패권다툼과 연속적인 식민의 우연한 산물이며, 그들의 민주는 타율적이 숙명에 발버둥치며 자주(自主)를 추구하는 겸손한 갈망이다. 그러나 현대 약소민족의 민족주의는 완성되지 않았으며 완성할 수도 없는 것이고, 그들이 ‘날마다 실시하는 공민투표’를 통하여 건립한 민주는 틀림없이 완정(完整)되지 못하였으며 또 완정될 수도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완정된 민족주의는 자신의 주권민족국가를 추구하며 완정된 민주는 자아결정(自我決定)하는 주권인민(sovereign people)을 추구하지만, 이는 지역의 권력균형을 깨뜨리고 제국의 패권다툼의 구조를 교란시키기 때문이다. 현대 제국주의자는 이러한 완성되지 않았으며 완성할 수도 없는 약소민족의 곤경을 ‘현상’(status quo)이라고 부른다.(301) 제국의 틈바구니에 낀 약소민족 …… 구조적인 존재의 비극이다. 착한 사람도 나쁜 사람도 없다. 선과 악을 초월하여 강자와 약자가 공동으로 연출하는 ‘출구 없는 공간’(huis clos)의 비극이다. Formosissima Formosa! 세계사가 시작된 그 시각부터 타이완은 아름답지만 고달픈 고통받는 존재, 즉 영원한 천민의 역할을 하도록 운명지어지지는 않았는가?(302)
완성되지 않았으며, 완성될수도 없는 민주주의와 민족주의(내셔널리즘), 그 사이에 놓인 영원한 천민. 그리고 그들을 부르는 이름인 현실주의와 현상status quo. 데모크라시와 내셔널리즘의 완성불가능성, 성취불가능이라는 의제는 타이완 만의 것도, 천민이라서 만도 아니다. 이것은 모든 정치체제가 지향하지만, 도달 불가능한 문제이며, 어느만큼 성취했는가 싶지만, 어느 순간 퇴행을 발견하고 좌절하는 일이다. 천민은 이를 알고, 천민인데도 천민인 줄 모르는 자는 이를 깨닫지 못할 뿐이다.
타이완 비극의 도덕적 의의 중의 하나는, 주권민족국가체계에서 천민계급의 일원인 우리들과 기타 모든 배제된 천민들의 존재가, 국제정치 중의 경고하여 깨뜨릴 수 없는 현실주의라는 진리와 이들 천민의 처지를 무시하는 이상주의와 도덕교조의 위선을 입증하였다는 것이다. 타이완인으로서 우리들은 구조적인 회의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다.(302) 타이완 비극의 도덕적 의의 중의 둘째는, 구조적 회의주의는 결코 허무주의를 야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 회의주의는 일종의 고통스럽지만 깨어 있는 생존욕망(생존희망이 아니라 생존욕망)을 불러일으킨다. …… 천민이 영원히 직면하는 멸망의 그림자는 그로 하여금 생명을 갈망하는 존재—이렇게 잔혹하고 무의미하고 황당한 그러나 또 이렇게 아름다운 현실세계에서의 존재를 갈망하도록 한다. 이러한 고통스럽지만 깨어 있는 생존욕망은 무의미하고 잔혹한 현실세계에 대하여 의미와 인정認定을 요구하는 욕망이며 천민이 추구하는 ‘자유’의 형식이다. …… 세계가 우리를 추방할지라도 우리들은 오히려 더욱 집요하게 세계를 지향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세계 역시 우리들의 세계, 우리들의 유일한 세계이기 때문이다.(301-302)
구조적 회의주의 그러나 허무주의가 아닌 생존과 존재의 욕망, 인정 욕구, 천민이 지향하는 ‘자유’. 천민 타이완의 존재는 국제정치의 현실주의도, 이상주의도 위선임을 존재 자체로 폭로하는 존재가 된다. 생존, 현실 세계에서의 존재와 인정을 요구하는 이유는, 존재 가능한 유일한 세계이기 때문이다.
천민의 곤경은 그들을 강요하여 도덕적 민족으로 만들었다. 그러나 곤경의 도덕적 의의가 곤경으로 종결될 수는 없으며 도덕주의가 천민을 해방시키지도 못한다.(303) 강요된 도덕. 천민이기 때문에, 그 존재 자체가 스스로 도덕의 빛이 되지만. 여기서 스스로 도덕을 표방한다 해도 천민은 해방되지 못한다. 도덕주의가 천민을 해방시키지 못한다는 것은 실로 견고하고, 깊은 통찰이다. 천민으로서의 타이완은 이상주의 위에 설 수 없고, 현실에 서야 한다. 도덕은 강요당한 것일 뿐이며, 존재의 모순이 표출하는 것이지, 천민에게 내재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피해자, 희생자에 근거한 사상이 빠지기 쉬운 혼란. 도덕을 강요해서도 안되지만, 스스로 도덕을 표방해서도 안된다. 도덕의 모순에 빠져들지 않으려면. 날마다 경험하는 일.
우리들은 이처럼 제작과 상업에 뛰어나다. 그러나 현재 우리들은 반드시 한걸음 더 나아가 정치의 기술을 학습해야 한다. 우리들은 반드시 정치현실의 구조적 곤경 속에서 정치의 기술을 학습하고 단련하고 연마해야 한다. 우리들은 반드시 불공정한 세계에서 공정한 도시국가를 창조해야 한다. 그러나 공정한 도시국가가 천민들을 인솔하여 제국의 포위를 돌파할 수 있을까? 그것은 아무도 모른다. 다만 우리들이 확실히 알고 있는 것은 공정한 도시국가는 하나의 횃불로서 그것은 제국의 황폐함과 위선을 비추어준다는 사실이다. …… 곤경이 억지로 우리들로 하여금 세계를 지향하도록 하였다. 핍박당하여 선(善)을 지향하게 된 것, 이것이 천민의 도덕계보학이며 노예가 복수하는 또다른 형태이다. 그러므로 천민이 기대할 수 있는 해방은 구조적인 해방이 아니라 정신적 자아를 지탱하는 것이며 존엄한 자아를 회복하는 것이다. 또 세력을 축적하여야, 즉 불가지한 미래의 역사를 위하여 세력을 축적하여야 한다. 자유를 위하여 세력을 축적하고, 혹은 존엄하게 죽기 위하여 세력을 축적해야 한다.(305)
프로메테우스의 비극을 인용하면서, 정치의 기술을, 그리고 공정한 도시국가를. 핍박당하여 선을 지향하게 된 천민. 모든 저항하는 자들의 원형이다. 내가 선해서 선한 것이 아니며, 처음부터 선을 그러니까 도덕을 지향하려 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노예의 복수가 해방으로 이어지지는 못한다. 해방으로 이어지려면 전혀 다른 것을 요구한다. 타이완이 원하는 것과 오늘 내가 느끼는 것이 다르다고 할지라도 해방으로 이어지지 못한다는 이 한 가지 지점만은 분명하다. 그는 여기서 존엄과 자유와 죽음을 위한 세력 축적을 말한다. 타이완의 힘으로는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없겠지만, 변화의 순간 또는 파국의 흐름에서 스스로를 지켜낼 세력을. 우루이런이 여기서 아이스킬로스의 희곡을 인용하지만, 『受困的思想』을 출간하면서 스스로 영어 제목을 ‘Prometeus Unbound’라고 붙인다. 중문 제목인 『受困的思想: 臺灣重返世界』(곤경의 사상, 타이완이 세계로 복귀한다)와 영문 제목인 Prometheus Unbound: When Formosa Reclaims the World (해방된 프로메테우스, 포모사(타이완)이 세계를 되찾을 때)를 저자가 병치시켰다. 영어판이 출간된 것은 아니고. 영문 제목이 셸리의 시극 「해방된(풀려난) 프로메테우스」를 참고한 것이 분명한데. 그렇다면, 重返은 타이완이 세계를 되돌리는 것으로, reclaim은 포모사가 세계를 환원 또는 회복시키는 것으로 해석할 여지도 있을 것이다. 해방된 프로메테우스로서. 그것이 우루이런이 지향하는 ‘천민’일 것.
이것이 우리 생존의 의미를 와해시킬 수도 있지만 현재 포스트 모더니즘 같은 이론들이 현재 타이완과 일본에서 상당히 성행하고 있는데, 이런 사상들은 대부분 해체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가령 국경을 해체하자는 의견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사상들이 사상적으로는 해체가 가능하지만 실제 정치적으로 국민국가가 해체될 수 있겠습니까? 이런 진보적이고 숭고하고 세계주의적이 사상을 만약 타이완에 대입할 경우 우리 자신까지도 해체되지 않을까요? 그렇기에 타이완의 입장은 너무나 무력합니다. 우리는 진보적인 사상을 채택할 만한 처지도 될 수 없는 것입니다.(337)
해체든 탈구조주의든 포스트모더니즘이든 페미니즘이든 그 어떤 진보적인 사상이 실제로 진보를 가져오는지 또는 가져왔는지 의문이고. 우루이런이 타이완은 그런 사상을 채택할 처지도 되지 않는다고 말할 때, 그 안에서 파악할 수 있는 의미는 이런 진보적인 사상들은 안정된 구조나 시스템 안에서 그 시스템을 보다 자유롭게 하고, 시스템의 더 여유롭게 더 관용적으로 만들지언정, 시스템으로터 천민을 해방시키지는 못한다는 것.
왜 타이완은 한국처럼 일본을 그렇게 싫어하지 않을까요? 이 문제는 복잡하면서도 간단한 문제입니다. 간단히 대답하면 타이완과 한국의 역사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한국은 자유, 독립적인 국가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일본의 식민지배를 받았습니다. 한국은 일본 통치를 받기 전에 이미 민족의식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한국인에게 있어 일본과의 합병은 치욕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타이완은 청제국주의의 주변으로서 타이완은 청제국에 의해서 일본에 할양된 것입니다. …… 그 이유는 타이완은 중국에 의해 버림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한국과 타이완은 이렇게 시작점부터가 다른 것입니다. 해방 후의 국민당의 통치는 형식적으로 봤을 때는 동일민족의 통치지만 실제적으로는 식민통치의 연속이었습니다. 따라서 타이완인의 정체성이 혼동을 갖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복잡한 역사적인 요소가 있는 것입니다.(337-338)
국민당의 청산도 중요하지만 일본 청산도 중요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해 답변을 드리겠습니다. 타이완은 일본에 대해 청산을 한 적이 없습니다. 1945년 전쟁이 끝난 후에 타이완에서는 일본 앞잡이에 대한 재판이 있었습니다. 전쟁이 끝난 후에 친일분자 혹은 앞잡이에 대한 재판은 두 가지로 진행되었는데, 친일분자에 대한 청산에서는 타이완인이 아니라 중국인의 입장에서 청산을 한 것이고, 전범(戰犯)에 대해서는 청산을 할 때는 외국인으로서 심판을 했던 것인데, 타이완인은 전범과 친일의 두 가지 신분의 경험이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경험으로 볼 때 타이완은 중국, 일본의 정복야욕의 희생양이었고, 국민당 정권에 의해 희생당하는 대상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타이완에서는 어떤 날을 탈식민의 날로 제정하기가 어렵습니다. 특히 현재 타이완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들의 구성으로 볼 때 단일하고 공통적인 역사경험을 가진 것이 아니라 적어도 세 가지 다른 역사적 경험을 가진 부류로 형성되어 있습니다. 1949년 이전에 중국에서 건너온 본성인들의 경우에 1990년대 이후 민주화운동이 달성된 이후가 탈식민의 시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1949년 국민당 정부와 함께 이주해온 외성인들에게는 바로 1945년이 탈식민의 시점이며, 원주민들에게는 탈식민의 날이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저희가 얼마나 어렵게 살고 있는지 아시겠습니까?(338-339)
왜 타이완은 일본은 좋아하는가 또는 싫어하지 않는가라는 질문은 정말 여러 곳에서 들어왔다. 왜 싫어하지 않느냐는 질문 자체가 폭력적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싫어하든 좋아하든 그거야 자유고, 또 나름 이유가 있을터. 그에 대한 여러가지 추정에 따른 답변이 있는 것을 보았지만, 가장 설득력있는 주장이었다. 청제국에 의해 버림받는 것이 먼저다. 일본을 마냥 좋아하는 것만은 아니고 복잡하다. 그러나 국민당 통치도 식민통치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2.28과 국민당 통치만을 원인으로 드는 것보다는 훨씬 설득력이. 게다가 탈식민을 셋으로 나누어서 설명하는 것. 외성인의 탈식민과 본성인의 탈식민 그리고 원주민. 일본은 청산한 적이 없다. 타이완인 스스로 일본을 청산한 적은 없다. 실제 타이완 내셔널리즘은 1920년대 일본 통치 시기에 형성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러나 국민당이 오면서, 청산 방식이 달랐고. 중국인에 의한 청산, 외국인에 의한 심판이었다. 따라서 외성인과 본성인 갈등이 더 중요한 문제였다. 『受困的思想』의 일본어판 서문을 보면 소년 시절에 느꼈던, 일본과 일본어에 대한 친밀감, 나쓰메 소세키의 ‘산시로’ 등에 대한 소년기에 가졌던 일본에 대한 동경을 털어놓지만, 이제는 지나간 프리미티브한 노스탤지어일 뿐이라며 선을 긋고, 역사의 정체와 목적 상실에 빠진 일본에 고립무원의 타이완이 오히려 새로운 시작을 제시해 줄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요즘 타이완 젊은이들 중에는 일본을 싫어하는 경우도 적지않다고 들었는데, 어쩌면 이제부터 일본 청산을 하게될런지도 모르겠다. 타이완 내셔널리즘이 대두되면, 어떤 식으로든 일본과의 관계 정립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한국이, 중국이 그랬듯이.
타이완에서 종족문제가 왜 계급문제보다 중요한가 하는 것은 역사적인 문제가 있습니다. 미국처럼 타이완은 이민사회이고, 이민사회에서는 종족문제가 계급문제를 넘어서는 것이 사실입니다. 따라서 미국의 정치사를 볼 때 사회주의 영향력이 크지 않은 것처럼 타이완도 같은 상황입니다. 그리고 타이완이 미국과 같은 이민사회이기 때문에 정체성의 구축이 중요한 것이고, 그 이외에 미국과 다른 점이 있다면 타이완은 계속해서 외래의 지배를 받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것이 바로 일반인들이 말하는 진보적 사회주의가 타이완에서 발붙이기 어려운 이유라고 하겠습니다.(339)
글을 읽는 내내 우루이런의 격정이 느껴졌다. 짧은 글이지만, 읽기 쉽지 않고, 많은 에너지가 소요된다. 종합토론에 있는 발언들에서는 열정과 함께 많은 것을 이해하도록 만들었다. 다른 토론자들의 이야기와는 잘 섞이지 않았지만.
실제로 우루이런은 타이완 민족주의(내셔널리즘)을 다민족적 또는 다종족적 민족주의라고 주장한다고 들었다. 소위 성적省籍에 따른 구분인(호적 상의 본적이나 원적 같아서 한국인에게 매우 익숙한) 외성인(外省人, waishengren, 1945년 이후 국민당과 함께), 본성인(本省人, benshengren, 주로 그 이전 250여년간 타이완에 온) 그리고 원주민(주로 고산족이나 그외에도), 그리고 신주민新住民(동남아 각국의 결혼 이민자나 1990년대 이후 대륙에서 온 사람들). 물론 이들 중 본성인의 비중이 절대적이며, 복건(푸젠) 출신인 민난閩南과 광동 출신인 하카客家로 나뉜다. 민난이 하카의 5~6배 정도 많지만, 선거에서는 하카표가 중요하다고도 하는데. 최근에는 신주민이 원주민 인구를 초과했다는 뉴스도 본 것 같고. 사실 이들이 인종적으로 크게 구분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다종족적multiethnic하다기에는. 이건 미국과 비교하기에는 좀. 그럼에도 우루이런은 타이완 민족주의가 다양성에 기반한 민족주의(내셔널리즘)이어야 한다고 주장한다는데. 여기서 일종의 고민이 느껴진다. 민난도 크게 둘로 나뉘지만, 갈수록 구분이 무의미해 진다면. 타이완 내셔널리즘이, 패권적인 본성인 종족 민족주의(Benshengren ethno nationalism)가 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우루이런의 말처럼 이민사회이자 종족 문제를 중시한다면, 실제 본성인이 멀게는 400년 가깝게는 250년 전에 왔다해도, 원주민 입장에서는 그들이 최초의 식민자들이기 때문에. 다종족적 민족주의를 지향한다고 주장하는 이유가 바로 이 본성인 패권을 우려해서는 아닐까. 그럼에도 유교와 가부장제의 영향권 하에 있는 동아시아의 국가들 중에서 가장 동성애 등 성소수자에 포용적인 타이완이 이런 사회의 다층성 내지 다차원성에서 기인하는 것은 아닌지. 여러가지 생각이 지나간다. 언어도 그렇다. 타이완어臺語라고 부르는 타이완화된 민난어를 이제는 학교에서 가르치기도 하고, 심지어 여권에서 이름을 영문표기할 때, 민난, 하카 등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는 정책도 최근 실시됐다. 평소에 발음하는 대로 쓸 수 있게 해주겠다는 뜻이다. 타이완을 잘 모르면서 감으로 하는 이야기지만, 분명 타이완어도 학교에서 가르치지 않던 시절에는 일상어가 각 지방에서 다양하게 섞이면서 형성되었을 것이다. 그것을 다시 또 학교에서 가르치려면, 교과서를 만들고, 문법, 발음, 표기를 정돈하고, 필요하다면 사전도 만들고, 일종의 언어의 국정화, 공식화 과정을 거치게 되는데. 이 모든 과정을 지나서 형성된 타이완어는 또 다를 것이 분명하다. 기묘한 느낌이 든다.
일본 색채가 강한 작은 마을 타오위안 …… 그곳의 우 씨 가문은 타이완의 비극적 역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주었다. 그의 집안은 타이완의 전형적인 엘리트 가문이었다. 그의 증조부는 청나라의 옛 지주였고 조부는 일제 치하에서 지방 초등학교 교장 서리를 지냈으며 그의 둘째 큰아버지는 태평양전쟁에 참전해 일본 제국의 타이완군 소위를 지냈다. 이런 가문은 새로운 질서가 들어서면 설령 생사의 화를 면하더라도 결국 주변부에 편입되기 마련이다.
불과 두 세대 동안 타이완은 두 차례의 파괴적인 정신적 궤도의 전환을 겪었다. 먼저 일본어와 일본 제국의 질서가 한문과 청나라 왕조를 대체했고, 뒤이어 국어(표준 중국어)와 당국黨國 일체의 정치 시스템이 전보다 더 신속하고 무자비하게 사회를 억압하기 시작했다. 대륙에서 패배해 타이완으로 온 국민당은 새로운 문화와 언어 체계를 이미 50년간 일본의 통치를 받아온 타이완인들에게 강요했다. 바로 우루이런의 아버지가 그런 갑작스런 전환의 희생양이었다. 그는 일본의 황민화 정책이 절정에 달했을 때 태어나 일본어만 배웠기 때문에 중국어는 커녕 민난어조차 하지 못했다. 훗날 그는 타이완 대학 경제학과에 합격하긴 했지만 한평생을 침묵과 억압 속에서 살았다. 이는 언어 구사의 어려움과 관계있었다. 그는 줄곧 자신의 중국어 표현력이 미숙하다고 생각했다. 또한 2・28사건 이후의 본성인과 외래 정권 사이의 깊은 균열과도 관계가 있었다. 우루이런은 장사를 하던 아버지가 열광적인 독서가로, 서가에 영어와 일본 서적이 가득했던 것을 기억했다. 그는 현실에서 도피해 내면의 세계로 침잠했던 것이다.
우루이런의 첫 타이완 의식은 언어와 관련된 것이었다. 그 일은 그가 고등학교 1학년 때 벌어졌다. 1962년에 태어난 우루이런에게는 국어가 자신이 인지하는 세계의 선천적 언어였다. 비록 집에서는 줄곧 일본어와 타이완어를 사용했고 조모는 그에게 일본어 동요를 불러주었지만, 일단 정규 교육을 받으면서부터는 국어만이 유일하게 허용되었다. 국가의 강력한 교육 기제가 어린 영혼을 쉽게 성형해내기도 했다. 소년 우루이런은 반장을 맡아 동급생들에게 타이완어를 쓰지 말라고 지적하는 임무까지 맡았다. 그런데 한번은 집에서 그의 아버지가 예전처럼 타이완어로 말하고 있는데 고등학교 1학년생이었던 우루이런이 갑자기 “집 안에서 사투리로 말씀하지 말아주세요”라고 지적했다. 이때 아버지의 반응에 그는 옵시 놀랐다. 아버지가 정확하지 않은 국어로 당당하게 “나는 타이완인인 것이 자랑스럽다”고 대답했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을 나는 그때 처음 들었습니다. 나는 곧바로 조용해졌죠.”(『저항자』, 199-200)
쉬즈위안의 『저항자』(글항아리) 중 우루이런 편의 내용 중 일부를 옮겼다. 역사의 격변기를 살아내는 엘리트들은 모순이 가족사와 개인사에 응축되기 마련이다. 그것은 우루이런의 가족도 예외가 아니었을 것. 청나라 지주, 일본 지배하 초등학교 교장, 국어가 능숙하지 않아 국민당 치하에서 주변화된 삶을 살던 아버지, 그리고 국어에 능하지 못한 아버지를 지적한 소년의 부끄러움과 자각은 너무나 전형적이다. 고통으로부터 생겨난 타이완 의식. 국립타이완대학, 국립서울대학교가 식민지 제국 일본이 세운 경성제대(조다이城大)에서 출발한 것과 마찬가지로 다이호쿠제대(臺北帝國大學, 다이다이臺(台)大)에서 출발한 탈식민지 국가의 최고학부, 정치학과에 들어간 그가 깊은 밤 캠퍼스 한 곳의 감시가 소홀한 의대 기숙사의 한 귀퉁이에서 [운동권] 선배에게 당시 금서였던 스밍史明(Su Beng)의 『타이완인 400년사臺灣人四百年史』의 복사본 일부를 받아들고 격정에 사로잡혔다는 이야기는, 너무 흔하고 익숙하지 않은가. 일본으로 망명한 스밍은 이케부쿠로에서 음식점을 하면서 타이완 독립운동가를 길러내고, 이 책을 썼고.
「포모사의 이데올로기」라는 제목의 이 논문은 확실히 선구적인 의의를 지닌다. 이토록 자세히 타이완 민족주의의 연원을 연구한 논문은 일찍이 없었다. 그가 얻은 결론은 다음과 같다. 일본이 통치한 50년 동안 타이완인은 이미 정치와 문화 분야에서 민족주의를 보유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전통적인 의미의 중국식 민족주의가 아니라 ‘포모사의 이데올로기’였다. 뿐만 아니라 그는 또 이론적 야심을 품고 타이완의 사례를 통해 두 명의 뛰어난 민족주의 이론가, 베네딕트 앤더슨과 파르타 차터지(빠르타 짯떼르지)의 한계를 증명하려 시도했다. 타이완의 사례는 앤더슨이 말한 ‘해외 이민 민족주의’로 분류되기 어려운 동시에 채터지의 ‘식민지 민족주의의 반反서구 정서에도 잘 들어맞지 않는다고 보았다. 타이완의 이러한 특성은 일본이라는 동양 제국의 통치를 받은 데서 비롯되었다. 유럽 대륙의 식민자들과 달리 이 젊은 제국은 내재적 모순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 즉 자신이 서양 제국주의의 피해자라고 느끼면서도 이웃 나라를 자신의 속지로 만드는 데 서둘렀기 때문이다. 타이완의 민족주의는 바로 이 동양 식 식민주의 아래에서 생겨난 것으로, 그것은 ‘이중의 주변화’였다. 일본 제국주의도 유럽 중심의 근대세계에서 주변부에 불과했는데 타이완은 그 주변부의 주변부가 된 것이다.(『저항자』, 202)
우루이런의 학위논문 포모사의 이데올로기에 대해 내가 지금까지 알아낸 것은 고작 이정도. 놀라운 시대라 논문은 구할 수 있었지만, 아직 펼쳐보지는 못하고 있다. 가장 흥미로운 지점이 50년간의 일본 식민지배 동안 나름의 내셔널리즘이 형성되었다는 부분이고, 이 부분이 국민당 통치기간 중에 내셔널리즘으로 흡수되는 것이 아니라 거꾸로 억압되면서, 일본 식민주의 경험과 청산 문제가 국민당 지배 문제와 뒤얽히게 된다. 이런 논의라면 한국의 식민주의, 탈식민주의와 충분한 대화가 가능할 텐데. 일본 제국의 식민지의 주변성의 주변성이라는 점에서 한국과 타이완은.
우루이런의 책에 대한 영어로 된 서평을 몇 개 읽으니 우루이런을 좌파 타이완 민족주의로 분류한다. 오늘날 타이완의 민족주의 우파는 미국과 중국의 우파와 연대하려하고, 좌파는 타이완 정체성을 해체시키려 하고, 우루이런은 소수 입장이라던데. 우루이런의 글에서 그가 좌파인 것은 알겠지만, 이런 지형에 대한 평가가 얼마나 옳은 것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타이완의 좌우 진영에 대한 판단이나 제국 일본이나 중국에 대한 평가 등은 내가 평소에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느낌이다. 해바라기 운동에서 중국 자본의 타이완 진출을 신자유주의라고 비판한 지점은 서있는 자리가 다르면 입장이 달라진다는 점을 깊이 깨닫게 했다.
우루이런의 글을 생각하는 내내, 타이완이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만큼, 한국도 독립적이고 자유로울 수 있지 않나 생각하게 되었다. 홍콩이 자유롭고 독립적인 만큼 타이완도 그럴 것이다. 홍콩민족주의 담론에 참여하고, 블랙리스트에 올라 입국하지 못하게 된 이유도. 한국인들도 스스로를 천민으로 여기고 살았던 시절이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았다. 갑작스레 신흥졸부처럼 행동하는 것도 아마 그 후유증이겠지. 그런 시절도 있는 거고. 조금 지나면 스스로 부끄러워하기도 하고 그럴 텐데. 그런 과정에서 한국은 이웃국가들과 또 지역에서 어떤 나라가 되어야 하고, 여러 나라와 어떻게 사귀며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면서 사상과 관점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요즘은 오랜 가난에서 겨우 벗어나고 나니, 어찌할 바를 모르는 갑자기 돈을 번 청년 같은 느낌이다. 이제 관계와 구도에 대해 상상할 때가 아닌가. 나는 그저 어렴풋하게, 타이완과 베트남이 중요하지 않을까 한다. 한국이 미국도, 중국도, 일본도 될 수 없고 되어서도 안된다면 말이다. 그건 확실하니까.
2021. 4. 20.
* 괄호 안의 숫자는 번역서의 쪽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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