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마모토 시치헤이, 『어느 하급장교가 바라본 일본제국의 육군』.

US_propaganda_and_Japanese_soldier 미군이 설치한 일본을 비난하는 광고를 보는 일본군, 1943년 필리핀. 위키피디아.

야마모토 시치헤이山本七平, 『어느 하급장교가 바라본 일본제국의 육군一下級将校の見た帝国陸軍』, 최용우 역, 글항아리朝日新聞社, 2016(1976).

읽는 내내 일종의 데자뷔를 느꼈다면 지나친 몰입일까? 야마모토 시치헤이는 몰락해 가는 일본 제국 육군과 전후에도 미치는 그 영향에 대해서 글을 쓴 것이 분명하다. 그는 『私の中の日本軍』이란 책으로도 유명하다. 번역하면 ‘내 속의 일본군’ 정도가 될 텐데, 보통의 한국인 남자라면 하나씩은 다 가지고 있을만한 성격에 대한 내용이다. 나는 이 책에서 몰락해가는 한국의 수많은 조직들의 형태에 대해서 읽었다. 그중 하나가 교회였다.

야마모토 시치헤이山本七平는 일본인론으로 잘 알려졌으며, 한국에도 그의 책 번역서가 대여섯권에 이른다. 1970년 이사야 벤 다산Isaiah Ben-Dasan이라는 희한한 필명으로 낸 『일본인과 유대인』으로 베스트 셀러 작가되었다. 전쟁후에는 山本書店이라는 출판사를 경영한다. 그는 원래 독실한 기독교 집안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아오야마가쿠인교회에서 세례를 받았고, 아오야마가쿠인학원 고등상업학부를 졸업한 후, 군에 징집된다. 아오야마가쿠인青山学院은 김재준, 강원용 목사들이 공부한 학교이고, 장로교, 감리교 목사들이 많이 유학한 일본의 대표적 신학교 중 하나다. 야마토모 시치헤이의 『일본인이란 무엇인가』는 새로운 『국화와 칼』로 불린다고 한다.

글항아리에서 함께 출간된 호사카 마사야스의 『쇼와 육군』을 읽고 나서, 바로 야마모토 시치헤이의 『어느 하급장교가 바라본 일본제국의 육군』을 연이어 읽었다. 느낌만 말한다면, 앞의 책 보다 훨씬 생동감이 있고, 재미있다. 통찰력이 넘친다. 앞의 책을 읽어서 어느 정도 구도가 눈에 들어와서 그렇기도 했지만, 읽을수록 황당무개한 느낌이 들었던 건, 일본은 도대체 이 전쟁을 왜 했을까라는 궁금증이었다.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드는데도, 정도가 있는 법인데. 어떤 의미에서 일본이 미국과 전쟁을 하지 않았으면, 한국은 독립하지 못했을런지도 모르거나, 지금쯤 독립운동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니, 다행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어처구니가 없다.

야마모토 시치헤이의 일본군의 문제에 대한 지적은 누락에서 시작한다. “제1중대부터 제3중대까지가 제1대대, 제4중대에서 제6중대까지가 제2대대가. 본 연대는 제3대대가 누락이다.”(28) 실상은 2개 대대 뿐인데. 그걸 누락이라고 표현한다는 것이 야마모토 시치헤이의 지적. 그러면서 모든 교육은 허둥대면서 진행되고, 매사가 어중간하고, 실전에 활용될만한 기술은 없이 엄청난 주입식 교육이 진행되었다.(33) 일종의 사대주의라고 그는 표현하는데. 뭐든지 높은 급으로 올려놓고, 허장성세를 취한다는 것이다.

한국군에 가장 많이 지적되는 것이 고위 장교의 수가 너무 많다, 장군의 수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육군이 특히 심한데, 모든 편제를 전시 기준으로 해놓는다. 실제 군인은 그렇게 많지 않으니 자리는 비어있어서 현원은 터무니 없이 모자란 경우도 많다. 동원사단 같은 부대가 특히 그런데, 그런 부대도 사단장은 모두 별 두 개다. 예비군 훈련장에서 예비군을 세워놓고, 장군에 대한 경례를 하면서 장군네 대한 경례 빵빠레를 울려댄다. 이런 부대는 실상 중령급이 지휘를 해도 충분하다. 게다가 요즘 뉴스를 보면 너도 나도 사령부다. 육군에 인사사령부가 있고, 인사사령관이 있다. 인사가 만사라서 그런가. 이게 얼마나 웃기는 명칭인지. 예전엔 육본 인사참모부장이었다. 위기만 한 번 왔다가면, 무슨무슨 사령부가 생겨난다. 사령관의 별도 한 개, 두 개 늘어난다. 미군과 연합작전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계급을 올려야 한다면서 올린다. 이건 고위 장교만 그러는 것이 아니다. 동원 예비군들이 이등병은 무시한다면서, 예비군 조교의 계급은 한 개 내지 두 개씩 올려서 가짜 (가라) 계급장이 군대에서 돌아다녔다. 위가 썩으면 아래도 썩는 법이다.

야마모토 시치헤이가 징집되어 훈련 받던 때는 1943년으로 이미 태평양에서는 패색이 완연한 때음에도, 장교교육은 예전의 장교교육을 압축해서 내용은 대충 건너뛰는 식으로 주입식 교육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게다가 미군을 대비한 교육도 없었다. 왜 그랬을까?

“오늘부터 교육변경이다. 대미 전투를 주제로 한다. 이것을 ‘A호ア号교육'(미국을 적국으로 한 군사 교육)이라 한다.”(42) 1943년 8월의 일이다. 야마모토 시치헤이는 이거야 말로 최대의 누락이었다고 탄식한다. 일본은 실상 미국과 전쟁을 할 방법을 몰랐다. 전투는 중국에서의 전투, 시베리아 벌판에서의 전투를 상정하고 교육이 진행되었다. A호 교육과 함께 ‘정신력’이 더욱 강조되었다. 그는 ‘일본 육군은 미국과 싸울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 확신하게 되었다.(45) 미국과 전쟁하자고 큰 소리를 쳐온 이들은 실상 육군이었는데. 도면 한 장 없고, 작전계획도 없는 전쟁이었다. 맨 첫 문제가 말 문제 였는데. 일본군은 석유자원이 부족해서 전쟁을 일으킨데다, 석유가 없어서 말로 포를 이동했다. 그러나 동남아시아에서는 말을 사용할 수도 없고, 말도 없었다.(47) 게다가 A호 교육을 하면서 무엇을 가르쳐야 할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숲속 내 사격 훈련이 추가된 정도.(49)

야마모토 시치헤이가 제시한 가장 통찰력 있는 단어는 ‘자전’이다. ‘조직 자체의 일상적인 필연’에 의한 목적없는 자전.(52) “‘자전’하는 조직을 어떻게 움직일지는 고민해도, 길었던 중일전쟁 중에도, 누구하나 자전하는 조직의 내실이 과연 목적에 상응할 만큼 합리적인지에 대한 고민은 하지 않은 것이었다. …… 장기의 말을 어떻게 움직일지에 대해서는 고민해도 근본적으로 말의 질을 바꾸고 다른 기능을 부여하여 새로운 사태에 대처하려는 생각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이다.”(57) 자전하는 조직이란, 관행대로 움직이는 조직을 말한다. 그냥 해오던 대로, 하던 일을 하는 조직이다. 어떤 성과를 내는지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고, 그런 활동이 유의미한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없는. 일본 군대에는 ‘성규유취成規類聚’라는 방대한 군대 내규집도 있고, 이에 대한 살아 있는 사전이라 불리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57) 그리고 이를 다루는 것은 무학력장교, 병사나 부사관 출신의 초임장교였다. 실제 이들이 조직을 장악하고 있다.(59)

일본의 관료제와 이를 본딴 우리나라의 관료제. 일본의 공무원 시험은 소위 1종 시험 출신의 ‘캐리어’들이 고위직을 차지하는 구조다. 이들은 순환보직이 원칙, 우리나라 만큼은 아니지만, 순환한다. 그리고 하위직 공무원은 한 자리를 오래 지킨다. 한국의 행정고시와 7급, 9급 공무원시험이 딱 그렇다. 육사 출신이 대부분 고급장교를 차지하고, 학군장교, 학사장교, 삼사출신이 이를 보충하며, 부사관 출신은 그 부대에 오래 남아 실제로 그 부대를 움직인다. 이들은 관례와 경험에 따라 움직인다. 매일 매일 특별한 목적없이 오늘도 사고 없기를 바라며 자전하는 조직. 내가 경험해본 수많은 ‘공公’자가 들어가는 조직은 물론 사기업에서도 조직이 클 경우, 이런 일을 종종 발견하게 된다. 특별한 목적 없이 조직을 돌리기 위한 뺑뺑이가 오늘도 지속되고 있다.

도대체 왜 그러는가?

“조직의 요구에 따라 움직이기 시작하면 모든 상념이 사라지고 오히려 방금 생각했던 것들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면서, 조직의 요구에 순응하는 순간이야말로 비로소 ‘본연의 나로 돌아간’ 듯한 착각에 빠진다. 그리고 일상은 그날그날의 일과에 따라 시곗바늘처럼 돌아가며 흘러 지나간다.”(65)

그게 편하기 때문이다. 위기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위기가 다가오고 있고, 긴장을 해결할 방법이 없을때, 어찌하면 좋을지 모를때, 그냥 하던 일을 반복하는 것이다. 누구나 다 한국 경제가 위기라고 말하고, 누구나 다 한국 교회가 위기라고 말한다. 경제는 잘 모르니 교회 이야기를 해보자. 교회가 위기라고 말하면, 모든 사람이 교회의 목적은 무엇이고, 우리가 속한 사회는 어떠하니, 교회는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을 찾으려 하고, 그를 위해 구체적인 행동을 해야 한다. 그런데, 실상 대부분의 교인들이나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할지 잘 생각이 들지 않는다. 위기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딱히 뭘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교역자들을 쳐다본다. 목회자들도 위기라고 생각하지만, 딱히 방법은 없다. 이동현 목사 사건이 터질때, 경남의 한 노회장 이야기가 터질때, 모두 욕을 하면서, 걱정을 한다. 그러나 딱히 다른 방법도 모르겠다. 여전히 주일은 다가온다. 하루 종일 주일 사역을 한다. 여전히 관리해야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 다양한 예배가 있다. 곧 수련회도 있고, 단기 선교도 있다. 제자훈련도 있고, 전도도 있다. 일단 오늘 교회를 돌려야 한다. 그렇게 뺑뺑이를 돌린다. 조금씩 줄기는 해도, 아직 교인들이 헌금을 하고, 그 돈으로 월급을 받아서 생계를 꾸려나간다. 이 강사를 불러오고, 저 목사를 불러와도, 대단한 뾰족한 답이 없다. 그냥 바퀴를 돌리는 것 외에는. 오늘날 교회는 ‘자전’하고 있다. 교회 뿐이랴, 한국의 얼마나 많은 곳에서 자전이 반복되고 있는지.

일본인의 점령지, 점령민 비하는 유별났다. 다른 나라들이 그렇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야마모토 시치헤이는 이를 일본이 자기 마음대로 지어낸 ‘아시아’ 혹은 ‘아시아인’ 상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하고, 비하하거나, 비국민 취급한 것이라 말한다. 현실의 필리핀인들 자신들이 ‘피리코’라 비하했던 이들이 그 그림에 맞지 않는다면, ‘미국은 아시아 마음에 맞지 않아’ 따위의 구호에도 불구하고, 미국인을 따라 철수하고, 미국인은 꽃 세계를 받고, 일본인은 돌세례를 받는다면.(80-83) 내 생각을 바꿔야 한다. 그런데 일본인들은 그러지 않았다. 일본인들은 사람들이 승자를 환영하는 것이라고 얼버무렸지만, 바탄반도의 죽음의 행진, 즉 미군에 대한 강행행군으로 포로 중 10%가 죽은 사건에서. 필리핀 사람들이 꽃을 던지고, 담배를 던지고, 물을 건넸다는 사실이다.(87) 일본인들은 해방자를 자칭했으나 그들은 환영받지 않았다. 야마모토 시치헤이가 민간 버스로 이동할 때, 나눈 대화가 있다. 일본군이 발행한 군표는 종이일 뿐 돈이 아니라며, 이걸 돈으로만 바꿔준다면, 해결될 것이라고 현지인은 말한다.(206) 일본은 허상의 점령, 허상의 지배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야마모토 시치헤이는 “일본군의 가장 큰 문제는, ‘미국과 싸울 생각이 전혀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필리핀이란 국가를 점령해서 실질적으로 통치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는 데 있었다. …… 벼락치기 대응일지라도 미 해군의 일본어 학교와 같은 속성 교육기관이라도 만들었다면 그나마 나았을 것이다……. 그러나 ‘영어 교육 금지’ 조치를 내리는 등 흐름에 역행하는 상황에서.” 이쯤되면, 필리핀 점령과 동남아시아 점령은 왜 했는지 알수가 없다. 그냥 점령하면 될 줄 알았던 모양이다. 점령해서 어떻게 통치할지, 어떻게 운영할지, 그런 생각이 전혀 없는데, 왜 점령했을까. 이 점령으로 일본군과 군속, 민간인이 50만명 정도가 죽는 참혹한 결과를 가져오는데.

“쇼부商武 집단(필리핀 파견 제14방면 군)의 대부분이 굶어 죽음.” 미군의 보고 내용이다.(97) 통수부 즉, 대본영은 식량을 현지조달하라고 보낸다. 군표를 발행해서 사들이라고. 그러나 실제 필리핀은 식량 수입 국가였다. 마닐라 같은 대도시는 화교의 수입에 의존했다. 필리핀의 농촌을 플랜테이션으로 사탕수수나 담배, 삼麻 농장 외에 논이 없다. 가족의 식량을 위한 약간의 논 외에는. 밭 한가운데서 굶어죽는다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94-95) 이런 나라를 상대로 삼모작을 하는 나라니 식량 걱정은 없을 것이라며 군대를 대규모로 보낸다. 군인들은 감자와 고구마를 먹어치우고, 다음 부대는 잎을 그 다음 부대는 덩굴을 먹어치웠다고 한다. 중국인들은 일본군을 황군皇軍이 아닌 황군蝗軍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메뚜기 군대라는 말이다. 모든 것을 먹어치우고, 죽어버리는 메뚜기 군대.(96) 현지사정·간부교육이 마닐라 상륙 후에 장교 이상만 대상으로 짧게 이루어진다. 그 여단장은 ‘부텐無天’ 장교 였다. 부텐이란, 육군대학 출신이라는 휘장, 덴보센天保鐵(에도 시대 동전)과 유사한 휘장이 없는 장교였다.(99) 교육도 문제지만, 육군대학 출신 여부를 휘장으로까지 표시하다니 육군대학 출신의 엘리트주의, 군도쿠미軍刀組의 엘리트 주의가 실감이 난다. 카톨릭 국가 필리핀의 후원자-피보호자patron-client 구조가 세례시의 대부godfather-대자godson구조와 중첩되는 사실을 이해할리 만무하다.(102)

일본군의 가장 잔혹한 행위로 알려진 바탄반도 죽음의 행진에 대해서 일본군들은 이렇게 항변한다. 100킬로미터를 무장해제된 상태로 하루 20킬로미터씩 5일 동안 걸었고, 약 10%인 2,000명이 쓰러졌다.(111) 이걸 죽음의 행진이라고 하면, 일본군은 지옥의 행진을 날마다하고 있다는 것이다. 30킬로그램의 짐을 지고 300킬로를 걷는 것이다. 3톤짜리 포차와 전차를 끌면서 걷는 300킬로미터.(116) 바탄반도를 정당화하려는 것이 아니고, 실제 일본군이 처한 상황이 얼마나 열악했는지 보여준다. 만주에서는 6필의 말로 마차를 만들어서 이동하던, 포차를 필리핀에는 조랑말 정도 밖에 없기 때문에 사람이 대부분 움직여야 하고, 간혹 물소를 이용하는 데, 하루에 3시간 이상 끌기 어렵다.(117-119) 이런 사실은 대본영에서는 알려주지 않았는지 몰랐는지, 가면 말이 있다고 보냈다는 것.

사람이 끄는 걸 비력반송이라고 했다는데. 포와 포탄을 사람이 나르게 되면, 지쳐서 전투를 할 수 없게 된다. 싸우기도 전에, 쓰러진다. 그래도 시키는 대로 끌고 간다. 야마모토 시치헤이는 이 과정에서 ‘사고 정지’를 보았다. 자신의 태도에서도 ‘사고 정지’를 했다고 한다.(126) 자기를 보호하는 방법이다. “이런 ‘사고 정지’는 병사·하급 간부·상급자 순서로, 소위 아래에서 위로 조금씩 번져갔다.”(127) “조금 전까지 절대로 해선 안 된다’고 가르치고 명령했던 일을 마지막에 가서는 ‘해라’라고 명령하기 때문에 ‘사고 정지’ 상태가 된다. 아니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큰일은 큰 일대로 작은 일은 작은 일 그 나름 대로 모든 일이 그렇게 돌아가지 않았던가.”(128) 이런 일이 가능한 것을 야마모토 시치헤이는 “발령자의 심리적 변화에 따라 난데없이 다른 기준이 불쑥 튀어나온 것에 불과했다. 오히려 그 사람 내부의 ‘이중 잣대’가 문제였을 것이다.”(130)고 한다.

한국 사회를 50년 조금 못되게 살아온 나는 이런 일은 정말 많이 겪었다. 불합리한 일을 그냥 해내기. 한국 남자가 군대에서 배우는 핵심내용이다. 군대를 다녀와야 사회화가 된다는 헛소리의 맨 앞에는 바로 이런 것이 담겨져 있다. ‘까라면 까’라는 너무나 익숙한 말. 내가 지나온 모든 조직에서 나는 이런 일을 겪었다.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더욱이 야마모토 시치헤이 처럼 나도 때때로 이런 명령과 지시를 내리곤 했다. 나에게 그건 일종의 책임회피거나 도피가 아니었을까.

전선에서 계획을 자꾸만 바꾸어 가면서 패배를 자초하는 일본군 사단장의 이야기. 결국에는 어떤 방법도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야마모토 시치헤이는 “하늘은 사람들을 자멸시키고자 하면, 먼저 그들을 미치게 한다”고 표현한다. ‘미친다’는 건 자신의 관점을 절대시·신성시하고 관점이 다른 사람을 배제하고 자신의 관점에 동조하는 사람과만, 자신의 관점으로 모든 문제를 정리하는 것으로 표현한다.(149) 그의 말대로라면, 페이스북이나 트위터는 모두 미친 셈이다. 실제로 그렇지 않은가. 이렇게 된 이유를 ‘속전속결, 눈앞의 적을 정리’하는 방식의 일본군이 문제였다고 지적한다.(151) 단지 일본군의 문제일까, 이건 너무 보편적인 이야기가 아닌가. 나는 매일 이런 모습을 눈앞에서 목도하는데. “‘정리되지 않는다’고 미쳐서 날뛰다가 결국 스스로를 ‘정리하고’ 소멸하는 것'” 이것이 전진을 감행한 진짜 원인일 것이라고 한다.(153) 한진해운 법정관리가 꼭 이런 것 아닐까.

군인은 숫자를 중시할 것이라고 말하면서, 언제나 서류상의 숫자만 맞으면, 물품이나 장비 개수만 맞으면 그만이었다. 고무줄 숫자도 조직의 자전이었다.(156) 아마 지금도 한국군은 그럴 것이다. 장비검열 때만 되면, 타부대에서 빌려서라도 일단 숫자를 채우는 일. 회사를 설립할 때, 초기 자본금을 넣다 뺐다 하는 일, 세무서 근처에 가면 고리로 이를 잠시 빌려준다. 통장에 숫자만 찍히면 되니까. 유학 비자 받을 때도 흔히 하던 일. 뭘하든 일단 숫자만 맞추는 일. “자전하는 ‘조직’ 위에 군림했던 ‘불가능한 명령과 이에 대한 고무줄 숫자 보고’로 구성된 허구의 세계를 ‘사실’로 여겼기 때문이다. 일본군은 미군에게 패한 것이 아니었다. 현실에서 미군에 의한 타격을 받고서 허구의 세계가 산산조각 나자 항복한 것이었다.”(162) 본토결전하겠다는 육군대신의 상주 앞에 천황이 시종무관을 파견해서 해안진지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항복하기로 했다던가.(162) 이런 생각의 근저에는 “다른 무엇보다 눈 앞에 있는 사소한 ‘동료 사이의 마찰’을 피하는 데 급급한 정신상태”였을 것이다.(167) 야마모토 시치헤이는 패전 이후 일본의 기업에도 이와 똑같은 시스템이 돌아갔다고 말하는데. 한국은 어떨까.

여기에 사물私物명령과 기백이 더해진다. 일본 군대 용어로 사물이라면, 우리식으로 하면, 사제(싸제라고 소리내야)명령이라고 할까. 이런 사적 명령이 발령자가 누구인지도 분명하지 않게 내려오고, 포로 학살 등이 행해진다.(184-5) 이런 일이 행해지는 구조를 야마모토 시치헤이는 “일종의 허구세계로 사람들을 끌어들여서 그 세계를 현실이라고 믿게 만드는 이상한 연출력”이라고 설명한다.(185) 굳이 어빙 고프만을 끌어들이지 않는다 해도, 모두가 연기중이었던 셈이다. 이런 연기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기백’이었다. ‘기백과시’.(186) 이 정도되면, 386꼰대들 혹은 산업화 꼰대들이 하던 이야기가 귓전에서 들리는 것 같다. 요즘 애들은 배짱이 없어, 기백이 없어라는 식의 비난. 나도 가끔 하던. 기백이 없는 것은 자세히 보면 실상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 아닐까.

“이런 허구가 외부에 대응하면서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동료 사이의 마찰 피하기’, 더 나아가 ‘동료 칭찬’이라는 사기 수법 덕분이었다.” 내부에서는 격렬한 비판을 한다 할지라도, 밖에서는 서로 칭찬한다.(203) 패전 한 후 포로수용소에서 일본군 장군들은 서로 서로 ‘각하’라고 호칭했다고 한다.(327) 이들은 하이쿠를 읊으며 속세를 등졌다(335)고도 하던데. 동료 사이의 칭찬에서는 분명하지 않던 이 말이 서로 ‘각하’라고 부른다는 지점에서 분명해진다. 흔히 그러지 않는가, 교회 안의 문제는 교회 안에서 말하고, 밖에서는 교회 문제를 이야기하지 말자고, 그러면 하나님을 욕되게 하게 된다고. 신학교에 가면, 누구나 다 전도사님이 된다. 그래서 신학생들끼리는 서로가 서로를 전도사님으로 부른다. 신학교에 가기 전에, 신학교 진학 전문학원이 있다. 요즘엔 좀 덜하지만, 경쟁율이 10대 1에 달하던, IMF 외환위기 직후에는 모두 거길 다녔다. 그런 학원에서도 서로가 서로를 ‘전도사님’이라고 부른다. 난 신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그게 싫어서 이름을 부르고, 나이가 많으면 형님이라 부르라 했지만. 그런 말을 들을 때, 싫은 정도가 아니라 역겨웠다. 저렇게 끼리끼리 서로 높이다 보면 고꾸라질텐데. 그러다가 목사가 되고 보니, 목사들은 목사들끼리 서로 목사님이라고 부른다. 게다가 많은 목사 부인들(이른바 사모들)은 남편을 ‘우리 목사님’이라고 부른다. 완전 판박이다. 이런 상호존칭이 허위의 세계를 낳는다. 사람들이 교회나 목사들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아무 상관없이 자신들의 마음과 감정 속에서 자신들의 세계를 만들어서 그 안에서 안주한다. 그리고 자기들만의 언어로 서로 위로한다. 성서의 한 두 구절을 가져다가 자기 맘대로 쓰면서. 나는 불안해서 그렇게 행동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대본영 참모들이 만들어 놓은 허구의 세계, 자신들의 생각대로 적이 움직일 것이라는 거대한 착각의 세계에서 마구 부려지는 병사들은 “허구에 저항하거나 언급조차 하지 못하고 ‘요령’ 있게 허구에는 허구로 대응하며 지내고 있었다. 일상 용어처럼 쓰였던 “군대는 요령이다” “바보 같으니라고, 요령껏 하라고 요령껏”이란 말에도 그 실체가 여실히 드러나 있다.”(221-222)

이쯤 읽다보니 혹시 많은 교인들이 연기를 하고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교인들도 이런 저런 행사를 한다고, 갑자기 교회가 부흥하거나, 자기 삶의 어려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게다가 교회서 하자는 이런 저런 일을 하려니 힘도 들고, 돈도 들고 여러가지로 복잡하다. 그래도 일단 내가 이 교회에 적을 두고 이 교회에 다니는 이상, 떠날 것이 아니라면, 이 교회 담임목사나 교역자들 혹은 힘있는 장로나 권사들과 잘지내야 한다. 그래서 일단 그들의 기분을 맞추어주기 위해서 뭔가 하자는 대로, 억지로 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러다 보니, 적당히 적당히 하고 있는 건 아닐까. 그렇게 어제도 오늘도 흘러흘러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루 하루 마지막 전투의 순간이 다가올 때, 그들은 자신이 생명을 단축시키는 만큼 가족의 생명이 연장된다거나, 희생을 통해 산다는 사고방식을 가졌다고 한다.(233) 야마모토 시치헤이가 빅터 프랑클에게서 발견한대로, 아우슈비츠에서도 흔히 발견되던 관점이다. 그러나 차이가 있다. “프랑클은 그런 사고방식을 자신의 주체적 의지에 근거한 신과의 계약이라 생각했고, 우리는 위에서 내려온 ‘누군가의 지시’라고 여겼다. 아마 그런 ‘지시’는 없었겠지만 말이다. 이런 차이는 결정적이다. 바로 여기에 ‘일본인의 파시즘’의 정신적 뿌리가 있었던 것 아닐까.”(234-235) 위에서 내려온 누군가의 지시에 의존하는 의존성. 그런 지시에 따라 헛된 희생을 감내하는 태도. 그는 마지막 순간에 동료를 구하지 못했다. 그러면서 ‘역전의 겁쟁이’는 있어도 ‘역전의 용사’는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 ‘역전의 겁쟁이’ 세대는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내며, 그다음 ‘전쟁을 극화劇畵를 통해서밖에 겪지 못한 용사勇者의 폭주를 걱정한다. 평화를 외치는 사람들의 배후에서 그런 징후를 발견한다.(242) 과연 그의 말대로다.

야마모토 시치헤이는 자결 혹은 자살이 타살일 수 있다고 이야기 한다. 굴욕과 죽음을 함께 할 것인가 아니면 죽음과의 사이에서 죽음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사체를 향한 채찍질과 유족을 향한 세상의 규탄을 피하려고 한다. 일본어로 세켄世間이라고 한다.(264) 아마 이 세켄이 일본 병사들로 하여금, 옥쇄를 감당하게 하고, 죽음을 향해 불나방 처럼 달려드는 ‘반자이 돌격’, 텐노 헤이카 반자이를 외치면서 뛰어가 죽는 것을 감당하게 하는 지도 모른다. 그래서 포로 없는 일본군. 포로를 거부하고 죽어가는 일본군의 신화가 생겨났다. 그러나 그것은 용기가 아니라 중첩된 두려움일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죽음의 공포 바로 앞에서도 지금 이 순간 안전한 기분이 들면, 움직이지 않게 된다. 해군의 고참 부사관은 이렇게 말한다. “배가 가라앉을 때도 그런 기분이 들어요. 곧 배가 가라앉는다는 걸 논리적으로 알면서도, 갑판에서 하얀 파도의 물마루만 흐릿하게 보이는 새까만 바위로 뛰어내리려면 왠지 뒷걸음을 치게 되죠. 갑판에 계속 있는 게 안심되고 1분이라도 괜히 더 머물고 싶은 기분, 그리고 어쩌면 이 배가 가라앉이 않고 버틸 수 있지 않을까라는 기분도 들고……”(281)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면서 문득 세월호를 떠올렸다. 안에서 기다려라, 그러면 구해주겠다는 말을 사람은 믿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 배가 침몰하는 듯한 공포는 얼마나 큰 공포일까. 그 상황에서 갑판으로 뛰어올라가지 못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른다. 두세번의 방송이면, 모두 배 안에서 기다리도록 할 수 있었으리라. 그 조용히 기다리라는 말은 얼마나 위선과 배반의 언어였나. 이제와서 잘난 척하면서, 뛰어나오지 못한 아이들을 비난하는 이들의 그 말이 얼마나 잔혹한지.

포로수용소에서도 사람들은 조직을 만든다. 미군은 집을 지어서 그 안에 살 수 있게끔 조직을 만들고 질서를 세운 뒤 그 안에서 사는 것이 가능했다.(341) 산토 토마스 대학에 필리핀에 있던 미국인, 영국인이 수용되었을 때, 일본인들이 숫자만 파악한다는 것을 알자, 그들은 조직을 만들었다. 실행위원회, 치안,공중위생, 풍기, 건설, 급식, 방화, 보건, 교육. 질서유지를 위한 재판소까지 만들었다.(343-344) 일본은 어떠했나, 수용소에 들어간 순간부터 허구의 계급 조직이 사라지고, 자연발생적 질서, 인맥·금맥·폭력의 질서가 형성되었다. 폭력단이 생겨났다.(347) 원래 제국 육군의 ‘군대사회’는 절대 계급질서가 아니고 연차질서였는데, 이는 ‘별의 숫자보다 반합(식기)’이라고 일컬어졌으며 이런 질서는 최종적으로 인맥적 결합과 폭력으로 유지되었다.(346) 폭력이 과도하면, 미군이 개입하여 폭력단을 일소하지만, 곧 다시 생겨났다. 이를 “동물적 공격성에 근거한 질서” 또는 “서식 나무의 질서”라고 표현하고, 제국 육군은 오로지 ‘공격정신 왕성한 군대’를 목표로 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고 본다.(349) 왜 일본군은 민주적 질서를 형성할 수 없었나. “인간의 질서란, 말의 질서, 말에 의한 질서다. 육군과 해군 구분 없이 모든 일본군의 가장 큰 특징이자 사람들이 그다지 지적하지 않는 특징으로 ‘말을 빼앗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변명하지 마라, 조용히 한 번 맞는게 낫다는 식이다.(351) 말을 빼앗기면 정신은 막대기에 불과해 지고, 해군에서는 ‘정신봉’이라 불렀다. 다른 사람의 말을 빼앗으면 자신의 말도 잃게 된다. 야마모토 시치헤이는 일본적인 파시즘이 ‘태초에 말이 없었다’는 기본적인 형태를 지녔다고 한다.(352) 이 정도의 유사점은 사실 공포를 가져온다. 나도 어느샌가 말이 줄어들고 있다. 말을 많이 하면 머리가 울려서 아프다. 한층 더 두려운 마음으로 떠올려야 하는 것도 있다. 포로수용소가 조직의 원형을 그리고 있다면, 한국 사회에서 조직의 원형도 거제도 포로수용소에서 나타난다고 보아야 한다. 친공포로와 반공포로 사이의 폭력적 대결. 아무 의미도 없는 깃대 높이 올리기 경쟁. 생존. 큰소리. 외부에 대한 맹종. 이데올로기 의존. 지금은 이런 것들로 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스스로 조직하는 민주적 훈련은 받지 않았으니 그렇다고 친다해도.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에 이념이 침투한 정도랄까. 아직도 그 유산이 느껴진다. 시간이 지난다고 자연스러이 흔적이 사라지지 않는 모양이다. 지금이라도 입을 벌리고, 말을 해서, 질서를 수립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말의 질서, 이외에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아시아태평양전쟁시기 또는 15년 전쟁기의 일본군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통수권 문제. 야마모토 시치헤이는 일본이, 입법권, 행정권, 사법권, 통수권의 사권분립국가상태였고(358) 일본이라는 국토 안에 일반인의 나라와 군인의 나라가 있어서 상호간에 내정 불간섭을 약속하고 공통의 군주는 천황인 나라가 있었다고 말한다.(359) 오히려 만주사변으로부터 태평양 전쟁으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제국 육군이 필사적으로 점령하려던 나라가 사실은 일본국이었다고 말한다.(360) 1947년 본토로 돌아와 보니 구점령군 천황의 군대가 떠나고, 신점령군 맥아더 군대가 왔는데, 맥아더 군대가 천황 군대보다 오히려 말이 더 잘 통한다. 맥아더 군정의 성공은 천황 군대에 의한 길고 긴 피점령 기간 동안 점령 상태에 익숙해진 일본 국민으로 가능했다.(362) 그런 일본군을 실제로 움직인 실력자들은 ‘대독하는 역할’에 불과한 사령관이라기 보다는 실질적으로 결정을 내리고 실행에 옮긴 실력자들이었다. 흔히 말하는 하극상의 세계요, 실제로는 상의존하上依存下, 즉 위에서 아래에 의존하는 세계였다.(370) 일본인들은 누가 명령하는지 알 수 없는 군대에 의해, 어떤 명령이 이루어지는지 알 수 없는 군대에 의해 점령당했다고 야마모토 시치헤이는 정리한다. 그의 이 명제는 오히려 일반화가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모든 군대가 점령하려는 나라는 자국이다. 해외에서 승전할 수록, 점점 더 자국이 점령된다. 위기가 심화될 수록 자국이 점령된다. 자국은 군대에 의존하고, 군대에 자원과 예산과 인력을 제공하고, 군대에 의존한다. 군대는 전쟁을 통해서 점점 더 커져 나간다.

개인의 명예보다 조직의 명예를 더 우선시 하는 태도. 살아서 포로로 수치를 당하기 보다 개인의 명예를 찾기 위해 자결을 강요하고, 포로 없음이라는 보고를 위한 개인의 말살. 자전하는 ‘조직의 명예’라는 사고방식이 일본을 파멸시켰다.(375) 일본 육군 및 일본의 명예를 위해 현지인·포로 살해 명령을 내린 사실을 감추라고 했던 무토 훈시.(374) 패전 이후에도, 파멸한 후에도 이런 원칙을 버리지 못하고 전범재판에 대처했다.(381) “군부파시즘을 지탱하는 네 개의 기둥이라 할 수 있는 ‘통수권·전쟁 비용·실력자·조직의 명예에 기반에 있던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죽음의 철학’이었다. 제국 육군이란 살아 있음녀서도 ‘물에 빠진 시체이자 유골’과 같은 존재로서 산 자를 지배하는 그런 세계였다. 그것은 언론의 지배가 아닌 죽음이라는 침묵에 의한 지배였기 때문에 ‘언어가 없는’ 것이었다.”(389) ‘죽음의 지배력’, 집단 자살 조직과도 유사하며, 자신을 죽음과 동일시 하는 사람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태.(389) 죽음의 지배자에 대한 심리적 의존. 죽음과의 동거를 통해 산 자를 절대적으로 지배하는 상태가 일본적 파시즘의 온상이 된다.(390) 본토로 돌아오는 배에서 만난 우쓰노미야 참모부장은 폭력을 과시하는 폭력단에게 ‘정말로 지옥을 본 자는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야마모토 시치헤이는 ‘죽음의 지배’에 대한 극복을 생각한다.(395) 다시 한 번 인간성에 기대의 희망을 거는 것이다. 극복한 자의 인간성에 대해서.

야마모토 시치헤이가 사도 바울을 들어서 슬쩍 지적하듯이 죽음을 극복하는 것이 참된 신앙이다.(390) ‘자전’하는 조직 속에서 그 조직을 돌리기 위해, 환상에 의존하고, 서로 싫은 소리를 피하고, 서로 칭찬하면서 위기를 넘어가는 일종의 역할극에 모두가 참여해서 그것을 신앙생활이라고 이름짓고 있다면. 멈추어 설 필요가 있다. 외부적 이유로라도 자리에 누울 필요가 있다. 그리고 생각을 모아야 하고. 무엇보다 서로 이야기해야 한다. 사람들끼리 목사가 교인들에게 순종이나 복종을 강요하지 말고. 이야기를 듣고, 말을 나누고, 무엇이 목표인지, 무엇을 해야하는지 분명히해야 한다. 그리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자전’하는 조직은 눈사람을 굴리듯 커질수는 있겠지만, 결국 현실을 발견하면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이미 환상의 세계에 금이 갔다. 사람들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자전’하는 통돌이를 세우고, 다시 생각해 보자고 말하는데. ‘자전’이 멈추면, 인력이 없어질 것이 두려워, 계속 ‘자전’하려 한다. 사람들이 내릴 생각을 아예 못하도록 더 빨리 돌리려 한다. 그래서 점점 통이 작아지고 있다. 목표 없이 맴도는 일, 이제 그만 둘 때가 되었다.

2016. 9. 5.

* 괄호 안의 숫자는 번역서의 쪽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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