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희생자에게 필요한 공간은 어디인가? – 권헌익, 『학살, 그 이후: 1968년 베트남전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의 인류학 』, Heonik Kwon, After the Massacre: Commemoration and Consolation in Ha My and My Lai.
빈호아 학살 한국군 증오비. “하늘까지 닿을 죄악, 만 대를 기억하리라!”, 베트남평화의료연대, 송필경, 사진, 위키.
권헌익, 『학살, 그 이후: 1968년 베트남전 희생자들에 대한 추모의 인류학 (After the Massacre: Commemoration and Consolation in Ha My and My Lai)』, 유강은 역, Archive, 2012(2006).
이 책은 죽어서는 냉전의 노예가 되기를 거부하는 망령들과 그들의 후손들 그리고 죽은 자들의 자리와 산자들의 추모의 마음을 지배하려는 냉전 및 그 후예인 국가와 지배권력에 대한 이야기이다. 동시에 이 책은 학살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흔히 하는 학살을 다루는 방식으로 학살에 접근하지 않는다. 누가 책임자인가, 누가 방아쇠를 당겼는가, 그들은 처벌을 받았는가,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에 대해 묻지 않는다.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이 필요하지만, 그것을 못해내었다고 해서, 혹은 그것을 해내었다고 해서, 추모와 화해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때 거기에 살았고, 지금 또 거기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기 만의 필요한 무엇이 있다. 이 이야기는 스스로 상처의 회복과 치유의 공간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1차대전 이후 전쟁의 양상도, 그 결과도 격렬하게 변해 버린 후, 집단적 사망과 국가적 추모는 전 세계적으로 하나의 공식이 되었다. 베트남에서도 한국에서도 그것은 마찬가지다. 21세기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비극의 현장은 새로운 국가적 공식적 추모 공간의 건립에 골몰하고 있다. 베트남은 사정이 달랐다. 공식적 추모로부터 배제될 수밖에 없는 사람들, 집단 사망과 집단 매장의 결과, 과거에 대한 선별적 회복 속에서 추모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22) 그리고 이를 가정의례 관습과 가정의례 공간을 통해서 추모한다.
베트남 사람들의 주거 공간에는 죽은 사람을 위한 공간이 있다. 죽은 자의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옳게 지어진 집이다. 그러나 집안의 사당에 자기자리를 가지려면, 좋은 죽음이어야 한다. 길에서의 죽음이든, 폭력에 의한 죽음이든, 유해를 수습하지 못한 죽음이든 나쁜 죽음은 자신을 위한 자리를 가지지 못한다. 자신을 위한 자리를 가지지 못한 혼령은 망령이 되어 떠돈다. 이런 망령을 위한 공간으로 사람들은 옥외사당을 만들었다. 그것은 담모퉁이에 있기도 하고, 길거리에 있기도 하다. 나무 선반이기도 하고, 새장 모양이기도 하고, 펩시콜라 깡통이기도 한 망령을 위한 옥외사당에서라도 공물을 받게 되면, 이 망령은 원통함을 풀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이장을 통해, 마을 사당의 복원을 통해, 망령은 집안으로 이동하기도 하고, 반대고 집안에 머물기를 거부하고, 옥외사당으로 나가버리기도 한다. 집단학살로 죽은 사람들은 유해를 올바로 수습하지 못했기 때문에, 무덤도 집단 무덤을 만들 수밖에 없고, 친족 사당에 머물수가 없다. 그래서 그들을 위한 추모비가 건립되고 그곳에서 제사와 공물을 바친다. 남베트남의 전사나 관리들로 영혼을 수습하는 신원의 과정을 거쳐서 각자 자기 자리를 마련하고, 친족 체계 속에서 자리를 마련하게 된다. 심지어 미군 병사나 한국해병 병사의 망령도 길거리의 어느 망령을 위한 옥외사당에 자기자리를 가지고 있다.
클리포드 기어츠(Geertz)는 어떤 역사적 배경에서는 종교 질서의 부활이 동시에 질서 내의 문제들에 관한 도덕적 관심을 제기하며, 이 문제들에 맞받아치는 실제적인 조치를 만들어낸다고 주장한다. 그는 이런 과정을 ‘종교 근대화’라고 부른다(56). 1968년 원숭이해의 학살 이후 30년이 지나서, 마을로 들어온 근대화는 산 자들에게만이 아니라 죽은 자들에게도 함께 누려야 하는 것이었고, 이에 따라 묘지 개보수, 주택 개보수(가족 사당, 옥외 사당 포함), 마을사당 개보수의 순서로 죽은 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간다(141-142).
혼령들 즉, 죽은 자들에게 적절한 자리를 찾아주려는 산 자들은 정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이장을 시도하여, 개장을 통해 과거와 단절하고, 새로운 추모방식을 확보하며, 이 과정에서 혼령은 개별성을 확보하고(222), 리엣시(열사)로서 히싱(희생)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219) 기념비와 증오비가 점차 사라져 가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죽은 자를 기억하는 장소는 점차 가정으로 옮겨지고, 구체적인 역사적 개인들로 바뀌고 나자, 공식적 기억으로서의 기념비는 사람들의 관심 밖으로 떠나간다.(250)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념될 수 없는 조상들이 있다. 어린 망령, 남베트남 관리와 군인, 시신을 수습할 수 없었던 사람들, 시신이 흩어진 사람들, 남은 가족이 없이 일가가 몰살한 사람들. 길에서 죽은 망령들을 때로 빙의를 통해서 자기 자리를 찾아간다. 옥외 혼령 신당에 머물기도 하고, 빙의를 통해, 자신의 원통한 죽음을 풀면서, 가족 사당으로 복귀하기도 한다(167). 이런 혼령들은 집을 거부하고 길에 남기도 한다(170). 옥외사당에 자리를 정한 자기 것을 지키거나 말썽을 일으키거나 사람들을 돕는 혼령들은 공물과 의례를 통해, 사회관계 속에서 살아남고, 자신의 개별성을 확보한다.(282)
“츠베탕 토도로프(Tzvetan Todorov)는 집단학살 희생자들의 정체성을 개인화하는 것은 폭력의 원천에 대항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주장한다. 토도로프에 따르면, 폭력은 기본적으로 탈개인화의 동학이기 때문이다.”(151) 국가적 영웅숭배를 해체하고(287) 지방적이고 코스모폴리탄적인(285) 추모가 베트남에서 탈냉전을 가져오고 있다. 그 핵심에는 망령의 개별성과 자기 정체성의 회복, 그리고 그것을 의례행위로서 확인하는 의례참여자들의 행위가 있다. “인간의 모든 죽음에는 애도와 위로를 받을 양도할 수 없는 권리가 있다.”(294)
한국문화는 유교문화임에도 죽은 자를 멀리하는 문화이다. 죽은 자들에게는 죽은 자들을 위한 공간이 있다. 무덤과 사당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생활인에게 무덤과 사당은 멀리 떨어져 있다. 그리고 대부분의 한국인에게는 사당이 없다. 사당은 오래된 가문의 문중에나 있을 뿐. 베트남과 유사하게 죽은 사람을 집에 모시는 나라는 일본이다. 가정에 자그마한 제단을 두고, 유골함을 두고 그들을 기린다. 무덤이나 납골당에 가지 않으면, 죽은 자의 넋을 위로하는 장소는 주로 사찰에 있다. 죽은 자와 공간을 공유하는 생각은 유교적인 동시에 불교적이기도 하다. 무덤도 납골당도 비교적 먼 곳에 있다. 죽은 자들은 죽은 자의 공간에 있으며, 특정한 기일에만 초대받아 방문할 뿐이지, 그 이외에는 그들의 공간에 머물러야 한다. 일상적인 교류의 공간이 아니다. 이점이 권헌익이 『또 하나의 냉전』에서 한국전쟁을 다루면서, 4.3이외의 다른 사례를 언급하지 못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산자들의 삶의 일상 공간에 죽은 자를 위한 자리가 없기때문에 상실의 아픔은 한층 더 커지고, 일상의 복원은 어려움을 겪는다. 오늘까지 이어지는 수많은 집단적 죽음을 추모할 때, 집단적 추모를 넘어서서 내 곁에 개인적 추모 방식을 찾을 필요가 있다.
정확한 희생자 수는 아무도 모르고, 얼마만큼의 민간인이 희생되었는지도 모른채, 70년이지났지만, 전쟁희생자들은 아직도 이름과 적절한 추모의 공간을 얻지 못한 채, 억울하고 원통한 죽음을 덮어버린 채 쌓아올린 사회는 철저하게 상호배제적인 사회구조를 내재화하고 있다. 고 김대중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을 한 다음해 였던가, 추석에 아버지와 함께 임진각에 갔었는데. 한복을 입은 어느 나이 지긋한 실향민이 이렇게 소리쳤다. “그럼 6.25때 죽은 사람은 다 뭐야” 아버지는 나직하지만, 단호하게 동의했다. “그럼” 분단과 냉전의 희생자들과 남은 자들에게 각인된 상처와 기억은 직면해서 녹여낼 수 있는 문제가 아닌지도 모르겠다. 상상 속에서라도 사랑하고, 질투하며, 살려고 애쓰던 개인을 복원하는 일이 오히려 필요할런지도.
권헌익은 케임브리지대 교수이고, 이 책은 기어츠상 수상작이다. 오랜 만에 정말 좋은 연구를 읽어서 정신이 머리가 다 쭈뼛하다. 권헌익의 탁월성은 필드가 아니라 이론이다. 고전과 현대를 넘나드는 이론적 통찰이 자료와 조화를 이루면서 한데 어우러져 있다. 대상의 특이성과 자료(사료)의 독특성에 함몰된 국내 연구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론으로 모델을 삼는 사례 연구, 거창한 이론적 구성이 자료(사례)와 조화하지 못하는 연구, 이론을 포기하고 자료더미로 숨어버린 연구는 설자리가 없을 것 같다.
* 필요한 경우 번역서의 쪽수를 인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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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0. 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