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징을 통해 국민국가를 만들어내기 – 에릭 홉스봄·테렌스 레인저, 『만들어진 전통』. Eric Hobsbawm, The Invention of Tradition.

Picture Credit : Paul Tomkins / VisitScotland
스코틀랜드에 가면, 하이랜드 게임(Highland Games)라고 알려진 이 게임을 직접 볼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결국 TV 아니 텔리(Telly)를 통해 볼 수 있을 뿐이었다. 재미난 것은 모두가 한결 같이 입고 나온 이 킬트 스커트와 클랜의 상징인 체크가 몽땅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이다. 그래도 전통은 한 번 수립되면, 그 자체로 나름의 발전을 거듭하고, 진화한다. 만들어진 전통의 진화를 우리는 즐기고. 그런데, 줄다리기는 얼마 전 한국이 유네스코 무슨 유산 어쩌고로 등록한 것 같은데. 사진은 모두 Visit Scotland에서 가져옴.
에릭 홉스봄·테렌스 레인저,『만들어진 전통』, 박지향·장문석 역, 휴머니스트, 2004. Eric Hobsbawm, Terence Ranger, The Invention of Tradition, 1983.
홉스봄 책을 손에 든 건 오랜만의 일이다. 『만들어진 전통』이 여튼 너무 여러 곳에서 인용되고 있어서 결국 손에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근대에 우리가 전통적이라고 믿는 것은 대부분 만들어진 것이라는 것. 어떤 것은 먼곳의 기원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어떤 것은 완전히 날조된 것이기도 하고, 어떤 것은 단순한 흉내라는 것. 그리고 이 모든 것은 정치적, 사회적 목적이 있다는 것. 이제는 너무나 상식적인 주장이라 새롭지도 않지만, 이 책에는 꽤 흥미로운 내용들이 있다.
“만들어진 전통의 특수성은 대체로 과거와의 연속성을 내세우려 든다는 데에 있다. 요컨대 전통은 새로운 상황에 대한 반응인데, 여기서 역설적이게도 예전 상황들에 준거하는 형식을 띠거나, 아니면 거의 강제적인 반복을 통해 제 나름의 과거를 구성한다. 따라서 지난 두 세기를 연구하는 역사가들이 ‘전통의 발명’을 그렇게 흥미로워하는 까닭 역시, 근대세계 안의 지속적인 변화 및 혁신과, 사회적 삶의 몇몇 부분만큼은 고정불변의 것으로 구조화하려는 시도 사이의 대립에 있는 것이다.” (21)
“이와 관련해 사건을 불문하고, 근·현대사가들이 ‘만들어진 전통들’에 대해 갖는 한 가지 특정한 관심을 지적해 둘 필요가 있다. 그들은 비교적 최근의 역사적 혁신물인 ‘민족(nation)’과 그것에 부수된 현상들, 예컨대 민족주의(natinalism)·민족국가(nation state; 국민국가)·민족적 상싱들·민족사 등에 깊이 관련되어 있다. 역사적 새로움이 혁신을 내포한다는 점에서, 이 모든 것은 종종 의도적이고 항상 혁신적인 사회공학(social engineering)작업들에 의존한다.”(40)
“근대 민족과 그것에 수반되는일체의 부속물들은 일반적으로 새로움의 정반대, 즉 아주 먼 고대성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구성된 것의 정반대, 즉 너무도 자명해서 더 이상 정의할 필요도 없는 ‘자연적인’ 인간 공동체라고 간주된다. 그러나 역사 내적이든 역사 외적이든, ‘프랑스’와 ‘프랑스 인’이라는 근대적 개념에 묻혀 있는 연속성이 무엇이든 간에-누구도 이 점을 부정하려 들지 않을 것이-바로 이 개념들 자체가 구성되거나 ‘발명된’ 요소를 포함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근대 ‘민족’을 주관적으로 구성하는 것 대부분이 그런 구성물들로 이루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일반적으로 최근에 만들어진 적합한 상징이나 혹은 알맞게 재단된 담론(‘민족사’와 같은)과 관련되어 있는 까닭에 민족적 현상은 ‘전통의 발명’에 대한 진지한 관심 없이는 결코 적절하게 조사될 수 없을 것이다.”(41) 에릭 홉스봄, “서장: 전통들을 발명해 내기.”
스코틀랜드 체크, 킬트라고 불리는 치마, 백파이프는 모두 18세기말 19세기 초에 만들어진 것이다. 특히 킬트라는 치마를 입게 된 것은 영국인 자본가가 광산과 공장 노동자의 노동을 쉽게 하기 위해 만들어냈고, 가문별로 모두 문양이 다른 스코틀랜드 체크 무늬들은 포목점의 농간과 이야기를 지어내는 거짓말장이의 합작품이었으나, 대중의 열광으로 오늘날도 만연한 전통이 되었다. 잉글랜드 지배권이 강화되면서 더 열광적으로 확산되었다. 휴 트레버-로퍼, “전통의 발명: 스코틀랜드 고지대의 전통.”
웨일스어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사실상 사어나 다름없이 사라져가던 웨일스어를 지켜온 것은 원래 웨일스어 전례를 지켜오던 국교도(성직자)들이었다. 그리고 웨일스 연대 등 군대. 감리교와 비국교도들의 포교활동이 활발해 진 후, 웨일스의 전통적인 낭만적인 문화는 점차 사라져가고, 음침하고, 부를 노래라고는 성가대와 찬송가 뿐이었으며, 사회는 음침하게 기독교적으로 변해갔다. “청서의 반역”(웨일스어가 웨일스의 문제라고 지적한 의회보고서, 잉글랜드 지배 강화에 대한 반감) 이후, 웨일스에서는 웨일스어가 다시 맹렬하게 보급되었으며, 웨일즈어를 지켜온 국교도 성직자들은 쫓겨나고, 감리교와 비국교도가 판을 치게 되었다. 프리스 모건, “소멸에서 시선으로: 낭만주의 시기 웨일스의 과거를 찾아서.”
오늘날 화려해 보이는 영국의 군주제와 마차 등은 실상 19세기에는 별볼일 없는 것이었다. 이런 부분에서 영국이 가장 취약했다. 빅토리아 여왕은 개인적 취미도 없었다. 그러나 영국의 입헌군주정으로 국왕이 실권이 없었고, 점차 잃어갔으며, 다른 나라의 군주정은 다 사라졌고, 왕고 왕실이 국가 상징과 국민 통합 역할을 할 수 있을 보여준 왕들이 있어서 20세기 초에 영국 왕실은 가장 인기있는 왕실이 되었다. 여기에는 라디오 등 대중매체의 발달이 크게 기여했다. 데이비드 캐너다인, “의례의 역사적 맥락과 의미: 영국 군주정과 ‘전통의 발명’ 1820-1977.”
영국이 인도를 지배하던 시절. 영국 총독들은 국왕 알현행사를 통해, 인도 제국의 다양한 제후, 토후, 왕들을 통합하고, 이 과정에서 인도적 의례와 영국적 의례, 인도적 관계 수립 방식과 영국적 관계 수립 방식을 적절하게 활용했고, 보이기에는 인도적으로 보이면서 내용적으로 영국적인 관계로 변모시켜 갔다. 이런 영국적 의례의 허구성을 간파한 것은 간디였다. 버나드 S. 콘, “빅토리아 시대 인도에서 권위의 표상.”
영국과 독일 등 식민제국은 식민지 아프리카에서 전통을 만들어서 통치 수단으로 삼았다. 그것은 ‘부족 공동체’라는 개념. 식민시기 이전의 아프리카는 부족적이라기 보다는 토후, 귀족 지배 등 복잡한 상황이었다. 식민세력이 선교사와 학교를 통해 새로운 식민지의 하위지배계급을 형성하지만, 이것이 결국 식민지배가 농업에 집중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위협으로 변했다. 식민세력은 ‘부족 공동체’라는 전략을 창출하고, 촌장 혹은 족장에게 토지 소유권 등 권리를 부여해 근대적 교육을 받은 젊은 세대와 여성을 통제했다. 테렌스 레인저, “식민지 아프리카에서 전통의 발명.”
두 가지 시사점이 있다. 우선 마루야먀 마사오에 따르면 메이지 유신기의 일본은 천황제를 도입하면서 이것을 부락공동체와 결합했다. 국체인 천황제가 부락단위까지 행정력을 투사하지 않고, 마을 촌장들을 통해서 자율적 통제가 이루어지도록 했다. 천황제 가족국가를 만들고, 근대화에 수반되는 분열, 대립을 통제했다.(『일본의 사상』, 104-105) 일본의 부락공동체는 정말 원래부터 내려오는 것이었을까? 다이묘는 여기를 자치하도록 했을까? 아니면, 협동적이면서 국가에 충성하는 농민과 부락공동체는 만들어진 것인가? 1920년대 조선에서 총독부가 주도하고, 선교사들 및 기독교인들 그리고 조선일보와 동아일보를 중심으로 한 문화적 민족주의자들이 주도한 농촌개발 운동은 어떤 형태의 농촌운동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혹시 거기서 상부상조하고 서로 협동하는 전통적 농촌사회에 대한 현대의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까? 농촌에서 주장한 이데올로기, 농촌개발과 농촌 정신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근대적이고 어디가 전통적인가? 이런 전통은 혹시 발명된 것은 아닐까? 식민지 시기 농촌 계몽과 농촌 개발에 대한 연구서들을 한 아름 구비해 두었는데, 아직 펼쳐보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의 새마을 운동과의 관련성도.
마지막으로 홉스봄은 근대사회에서 노동자 계급과 중산층이 각자 자기의 상징으로 의복과 스포츠에 집중하는 것을 지적한다. 처음에는 국가가 주도하는 기념물과 건축물 경쟁이 벌어지다가 이제 계급 내부로 들어간다. 노동자들은 모자를 쓰고, 서로 친밀한 2인칭으로 부른다. 그들은 프로 스포츠인 권투와 특히 축구에 열광한다. 반면 중간계급은 아마추어리즘을 내세우고, 테니스와 골프를 즐긴다. 이젠 이런 것들이 모두 프로화 되었으니, 의미가 없는 것일까? 아마추어리즘을 엘리트 체육으로 도배한 한국과 국가대표 축구팀에 대한 열광은 도대체 무슨 의미인 걸까? 에릭 홉스봄, “대량 생산되는 전통들: 유럽 1870-1914.”
국민, 민족, 전통의 발명은 ‘nation’과 ‘state’가 불일치하거나, 불일치가 드러날 때, 확산되는 경향을 보인다. 외세의 지배를 받을 때, 즉 ‘state’없는 ‘nation’을 만들어야 할 때, 강력해진 ‘state’를 빈약한 ‘nation’이 충분히 뒷받침해주지 못할 때. 개화기 한국 민족주의의 등장도 ‘state’없는 ‘nation’의 발명과 관련이 있다. 오늘날 교과서 논쟁으로 폭발하고 있는 정체성 논쟁도 ‘state’를 ‘nation’이 이탈하고 있음을 자각하고, ‘state’를 장악한 권력집단이 새로운 ‘nation’을 만들어 내거나 ‘nation’의 방향을 틀기 위해서 그러는 것이 아닐까, 여기에는 한국 사회에 사실상 세대와 이념을 갈라 두 개 혹은 세 개의 ‘nation’들이 경쟁하고 있는 상황도 관련이 있을 것이다. 한 ‘state’ 안에서 여러 ‘nation’들의 갈등. 지혜롭다면, 맞서지 말고 올라타야 할텐데.
지구 반대편에선 또 테러 소식이 들리고, 광장에선 집회가 열리고, 아이들은 입시로 바쁘고, 참으로 어지러운 세상이다.
* 필요한 경우 번역서의 쪽수를 인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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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11. 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