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쇼터Edward Shorter, 『정신의학의 역사: 광인의 수용소에서 프로작의 시대까지A History of Psychiatry: From the Era of Asylum to the Age of Prozac』, 최보문 역, 바다출판사, 2009(1997).
미셸 푸코의 『광기의 역사』, 이 책에서는 영어 축약판인 『광기와 문명』이 정신의학 사학자들에게 사죄학파apologist를 낳았고, 바로 이런 수정주의 역사관에 정면도전하려는 자신은 신사죄학파neoapologist라며 중간정도의 사죄라고 쓰여진 서문에서 허걱했다고 할까 빵터졌다고 할까.(6-7) 실은 번역을 잘못한 거다. apologist는 사죄학파가 아니라 옹호파 호는 변호파/호교파로 읽어야 한다. 수용소가 창궐했던 것은 순수한 진보의식이라는 것이 옹호파다. 푸코와 관련되기도 하는 정신병원과 정신의학은 체제를 따르지 않는 자들을 가두는 악몽의 역사를 제공했다는 것, 광기 또는 정신착란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이들은 수정주의자들로이며, 쇼터 자신은 중간 정도의 옹호를 하는 신옹호파라는 것이다. 처음엔 푸코 식의 주장을 하는 정신의학의 과거를 반성하는 사죄파인 줄 알았으나 그건 수정주의자들이었다. 어쨌거나 뜻은 비슷하게 전달되기는 했다. 일단 푸코 영향이 정신의학 역사학자들의 생각을 뒤집어 흔들 만큼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데서 조금 놀랐다. 그 대표적인 인물로 제시되는 앤드류 스컬Andrew Skull은, 한국어로 『현대 정신의학 잔혹사Madhouse』(2005, 2007) 와 『광기와 문명Madness in Civilization』(2015, 2017)이 나와있는데, 1970년대 후반 푸코에게서 출발한 정신의학 비판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자기 방법론으로 나아갔다고 이야기한다. 어쨌거나 그는 사회학자다. 에드워드 쇼터는 의사학자이고. 임상의사는 아닐지라도, 의료계 내부에서 활동하는 데다, 정신의학 전체가 전개되어 온 좀 더 넓은 지도를 펼쳐보인다. 이런게 필요했다.
알다시피 푸코의 글은 현란하다. 그는 역사 속에서 어떤 한 국면에 현미경을 들이댄다. 논쟁이나 변화가 있는, 지식과 권력이 생성되는 혹은 그런 것으로 자신이 판단하는 어떤 지점에 들이대고는 참여자들과 앎들과 장치들과 욕망을 들이파고는 놀랍게 요리해서 솜씨있게 펼쳐보인다. 필요한 경우 문서고를 뒤져서 지금까지 거들떠도 보지 않았던 고문서의 먼지를 떨어내고는 눈앞에 들이민다. 이것이 진실/진리verité라고. 문제는 푸코가 보여주는 사실이 진실이 아니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모든 진실이 아니라는 데 있다. 푸코의 문체와 그가 보여주는 진실에 접하면 매료되게 되고, 그의 저술과 강연록corpus를 따라가다 보면, 정신의학의 역사를 푸코가 쓰고 말한 『광기의 역사』, 『정신의학의 권력』, 『비정상인들』 그리고 『성(현상)의 역사1: 앎의 의지』 등에 나오는 것으로 구성할 수 있다는 착시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현실은 그보다 훨씬 넓고 복잡한 것이어서 푸코가 보여준 것은 정신의학의 역사 전체에서 특정한 작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되고, 그것 만으로는 정신의학이 무엇이다라고 규정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게된다. 푸코는 사상사가로 읽어야 하는데, 그를 역사가로 읽는 데서 발생하는 오류다. 푸코의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직의 이름처럼 사유체계의 역사, 또는 사상이나 요즘 유행하는 말로 지성의 역사로 푸코를 읽지 않는 이유는 푸코가 소위 말하는 사상의 대가들을 다루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룬다고 해도 비켜가면서 다룬다. 다른 연구자들이 드는 주요한 정치적 사건, 예를 들면 혁명 문서들을 다루지도 않는다, 이것 역시 미끄러져 가면서 슬쩍 언급한다. 그리고 그는 각종 영장이나 판결문, 의사들의 진료기록 따위를 파고들어가서 진실/진리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데,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 당시의 사유체계 또는 사상의 재구성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당시 그 지역(주로 프랑스)에서 벌어진 모든 일을 망라할 필요도 없고, 균형을 맞출 필요도 없다. 푸코는 자신이 역사에서 발견한 것을 현재의 세계를 향해 발언하면 되는 것이다.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의 불일치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역량부족이라고 해야 하나. 여튼 이런 문제는 푸코를 읽은 사람에게서만 발생하는 문제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 단편적으로 전해진 지식, 일종의 정신분석에 대한 수정주의 해석이 대중 또는 지식인의 인식을 점령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 정신의학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기 어렵게 될 수도 있다. 푸코의 연구와 현재의 정신의학의 동향은 그 지향하는 바가 전혀 다르기 때문. 이걸 손쉽게 일치시키는 데서 문제가 발생한다.
[한 가지 더 지적해 둔다면, 1961년 푸코가 『광기의 역사』를 프랑스에서 출간한 후, 1964년에 축약판이 영어로 『광기와 문명: 이성의 시대의 광기의 역사Madness and Civilization: A History of Insanity in the Age of Reason』이 출간되고, 이것이 반反정신의학 운동가들에게 각광을 받게 된다. 푸코 만은 아니고, 어빙 고프만의 『수용소』나 다른 연구자들도. 정작 푸코가 반정신의학 운동과 자신을 동일시한 건 아니다. 여하튼 이걸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 1991년 김부용 역으로 나온 『광기의 역사』(인간사랑). 나도 이걸로 처음 접했다. 읽어보면 알겠지만, 도식적이다. 반정신의학 구미에 딱 맞을 듯한 느낌. 게다가 엄청나게 축약되어 있고. 실제 푸코의 『광기의 역사』를 읽어보면, 서술이 섬세하고 현란한데다, 결정론 언급을 하지 않기 때문에 결론을 딱 내리기 어렵다. 그래서일까. 『광기의 역사』 전체가 History of Madness라는 제목으로 영어로 완역되어 출간된 것은 2006년. 이때는 한참 푸코의 콜레주 드 프랑스 강의록이 출간되고, 영역되고 있던 시점으로 미국에서도 푸코의 corpus를 전체적으로 보기 시작했음을 뜻하고, 반대로 푸코를 운동의 한 동력으로 삼던 시대는 지나갔다는 뜻이기도 하다. 『광기의 역사』 한국어 완역은 2003년. 그렇다면 미국에서의 푸코에 대한 오해를 가져왔다는 평가를 하도록 하게 된 영어판 출간에 푸코는 동의하지 않을 것일까. 푸코의 『광기의 역사』가 1961년 갈리마르 프랑스에서 출간되었을 때의 제목은 Folie et déraison, 광기와 정신착란. (부제가 Histoire de la folie à l’âge Classique). 푸코 자신이 프랑스에서 1964년에 축약판을 발간한다. 그때의 제목이 Histoire de la Folie, 바로 광기의 역사다. 영역판인 Madness and Civilizaiton은 이 책의 번역본. 약간 증보했다고. 축약되지 않은 원래의 책은 1972년에 갈리마르에서 Histoire de la folie à l’âge Classique, 고전주의 시대의 광기의 역사라는 제목으로, 새로운 서문을 달고 출간된다. 지금 사용되는 한국어 번역본은 이를 번역한 것. 그래서인지 흥미로운 1961년판의 서문은 빠져있다. 1991년의 김부용 역에는 실려있고. 여기에 다른 판본에 부록이 있고, 없고 하는데. 그런 것까지 따질 건 아니고.]
그런 점에서 에드워드 쇼터의 『정신의학의 역사: 광인의 수용소에서 프로작의 시대까지』는 많은 부분에 도움을 준다. 번역자가 신경정신과 전문의이면서 인문사회의학을 하는 점이 가장 맘에 드는 부분이었다. 간혹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번역어는 정말 신중하게 고른 것 같다. 그러나 동시에 한계가 없는 것은 아니어서 그건 바로 ‘프로작의 시대까지’라는 부제가 보여주는 한계다. 1980년 공개가 결정되고, 1983년부터 본격적인 실험이 전개되고, 1987년에 FDA의 승인을 얻어 판매가 된 프로작은 90년대의 약물이다. 이 책이 쓰여진 것도 1997년이고, 그로부터 23년이 지난 지금 의료계에서 20여년의 시간의 변화는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다. 실제 이 책에서 언급하는 지난 200년간의 변화 중 여러가지 것들은 동시적으로 일어나는 경우가 많았고, 20세기의 경우는 특히 그렇다. 1장부터 8장까지가 꼭 시대 순이 아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시간대는 그 정도로 겹쳐있다. 프로작 이후 지난 20년간 정신의학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특히 2013년의 DSM-5와 그 이후의 전개를 알아야 지금을 평가할 수 있을 듯한데. 비전문가가 알 수 있는 부분은 확실히 아니다. 하지만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는 그만큼 움직여나가고 있다는 점.
치료적 수용소가 생기기 전에 정신질환자의 황금 시기 따위는 없었다(19)는 이야기로 시작된다. 심한 정신이상자는 가족이든 수용소든 풀어둘 수 없다는 것. 버려지면 비참한 상황에 처하고 결국은 살아갈 수 없다는 것. 중앙집권이던 프랑스에도 대감호/대감금이라고 부를 만한 일은 없었으며 수용할 수 있는 장소가 절대부족, 작은 국가들이 모인 중앙유럽 어디서도 대감금이라고 할 만한 일은 없었다는 것.(24-25) 중세 광인에 대한 푸코의 평가는 문학, 소설, 연극, 회화 등을 통해 평가하는 것이지, 중세에 실제로 어떠했다고 사료를 통해 분석하는 것 아니다. 대감금의 ‘시대’란 아마도 영역자의 번역이겠지만, 실제 정신의학의 역사를 보면 수용되는 사람의 숫자는 약물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계속해서 늘어났다는 것이다. 어느 경우는 늘었다 줄었다 했겠지만. 쇼터에 따르면 1955년 55만 9천명이 미국의 최대치였다.(455) 아무리 열악한 환경이라해도 이 정도 숫자를 수용하고, 먹이고 입히고, 최소 수준의 치료라도 제공하려면, 어마어마한 자원을 동원해야 한다. 19세기 내내 수용소의 환자는 계속 늘어났다. 독일의 경우 감금된 환자의 수는 1852년 인구 5300명당 1명에서 1911년이 되자 500명당 1인으로 프랑스도 1911년이 되자 수용인원의 2배를 넘는 곳이 허다했고, 잉글랜드도 1859년 인구 1000명당 1명의 수용 인원이던 것이 1909년 3.7명으로, 1827년 한 수용소 당 평균 116명이던 것이 1910년이 되자 1072명으로 증가했다.(89) 물론 인구도 증가했지만, 그보다도 중요한 것은 치료는 고사하고 최소한의 관리 능력이 없으면, 더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없다. 현대사회가 될수록 수용인원이 늘어나는 것은 수용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17세기에 프랑스에서 설립된 종합병원(보호원)에 파리 인구의 1%가 수용되고, 영국의 구빈원, 빈민원 등에 대감금/대감호가 있었다는 푸코의 주장에 대해 감금 또는 수용이 없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고, 사회전체의 일탈자들을 청소할 만큼의 대감호/대감금이 있었다고는 볼 수 없다고 반박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푸코가 분석하는 대감금 또는 대감호의 의미가 퇴색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시도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고,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니까. 문제는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보편적 사실이었다고 확장해석하기 어렵다는 데 있다. 푸코를 사유체계의 역사로 사상사로 읽어야만 해결책이 나온다.
에드워드 쇼터가 지적하는 또 하나의 지점은 정신의학의 발전 또는 전개가 나라마다 다르다는 점이다. 특히 푸코가 주목하는 프랑스에 대해서는 중앙집권 국가였기 때문에 정신의학의 발달에서 뒤쳐지고 큰 역할을 하지 못한 반편, 독일이 정신의학의 선도자가 된 것은 작은 주의 왕조들의 학문을 통해 이름을 높이려는 경쟁 때문이었다는 것이다.(71-72) 파리와 파리의 대학들이 프랑스 전체를 통제했기에 새로운 치료법이나 대응책이 개발되거나 전파되지 못했다. 19세기를 수용소의 시대라고 볼 수 있는데. 1800년에는 소수의 환자들만이 수용되어 있었지만(할 수 있었지만), 19세기의 수용인원의 폭발적 증가는 1904년 미국의 정신병원에 15만의 환자로 인구 1000명당 2명. 한 세기도 지나지 않아 도시에서만 필요했던 정신병자 감금 정책이 기본 정책이 되어버렸다.(68-69) 이런 19세기 정신의학이 시도한 치료적 수용소는 결국 실패했는데. 이유는 단순하게도 환자 수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87) 한 세기 내내 환자 수는 계속해서 증가하게 된다.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증가한다. 쇼터는 환자 수 증가가 사회적 구성이나 낙인찍기의 결과가 아니고, 단순히 사회적 설명만으로 충분하지 않으며, 사회적 상황 변화가 마음과 뇌에 영향을 미쳐 질병의 빈도가 달라졌다고 주장한다는 쪽에 속한다. 광기를 해체해서 어떤 병이었는지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19세기에 수용소 환자가 급증하게 된 현상은 기존 환자가 재배치된 결과인 동시에, 새로운 환자가 늘어났다는 점을 들어야 한다. 그 대표적인 것이 신경매독, 알코올성 정신병, 그리고 조현병(정신분열증)이다.(91-92) 환자의 재배치란 조증 환자나 치매 노인을 더 이상 가족들이 용인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96) 친밀하고 작은 부르주아 가족의 이념으로 더 이상 이들을 데리고 있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95) 감옥과 구빈원의 환자가 이동.(97) 신경매독이 유럽에서 주목받게 된 것은 18세기 말이고, 19세기 유럽 전역과 북아메리카에 성병이 만연하고 매독의 유행은 10~15년 뒤쳐져서 나타났다. 중류층 남자들의 질병이었다.(104-105) 쇼터는 여기서 흥미로운 점 하나를 지적하는데, 사회적으로 구성되는 것은 이 병[신경매독]을 앓는 사람들의 경험이지, 뇌의 생물학적 병리에 따른 진단명이 아니라는 점이다.(106) 19세기에는 술 소비량도 엄청나게 증가했는데. 이것은 생활수준 향상과 첨채당(사탕무로 만든 설탕)으로 값싸게 알코올을 생산하게 된 것이 원인이다.(108) 가족이 구빈원이 끌어안고 있던 환자들은 수용소로 몰려왔고, 광기든 광증이든 정신질환이든 환자가 실제 늘었다. 성병이 원인이든, 알코올 남용이 원인이든, 조현병(정신분열증)이 증가했든지. 이런 상황에서 개혁을 자처했던 치료적 수용소는 환자가 넘쳐나면서 실패와 좌절로 마치게 되는데. 그건 아마도 완치 또는 퇴원이 쉽지 않아서가 원인일 것.
19세기 정신의학 연구와 교육은 독일이 장악한다.(128) 여기서 1세대 생물정신의학이 생겨난다. 뇌와 신경에서 정신질환의 원인을 찾는 것이다. 반대로 프랑스는 제도적 한계로 실패하게 된다. 그런 사례 중 하나가 샤르코다. 그는 내과의사이자 병리학자였으나 신경학 연구에 몰두했고, 히스테리아라는 사상누각을 쌓아올리게 된다. 그는 정신과에 속한 적이 없었지만, 당대 젊은 연구자들의 사고방식을 왜곡시켜 프랑스 정신의학에 영향을 끼치게 된다.(148-149) 마냥은 퇴행이론을 만들었고, 이것이 유럽전역에 퍼진다.(151) 훗날 단종, 안락사, 유태인 말살의 이론적 근거가 된 퇴행 개념은 오귀스탕 모렐이 창안했다.(164) 졸라의 『제르미날』에 등장할 정도로 널리퍼졌던 퇴행의 운명론을 우생학자와 사회위생운동가들이 차용하게 되면서, 정신지체는 단종으로 말살시키고, 동성애자나 유태인과 같은 “퇴행자” 집단에 대한 증오심은 반민주적 정치동력으로 전환시키는 데 이른다.(171) 나치가 어떤 결말을 가져왔는지는 다시 반복할 필요가 없다. 독일 만의 문제라기 보다는 프랑스에서 시작되고, 잉글랜드에서 함께 확산되고, 독일에서 확실하게 결말을 맺은 전유럽의 합작품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크레펠린에 의해 1세대 생물정신의학은 확실하게 끝맺게 된다.(182) 18세기에서 20세기에 이르는 길지 않은 기간 동안 프랑스, 독일, 잉글랜드, 미국에서 정신의학의 경로와 발전은 생각보다 몹시 달랐다. 이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았지만, 그 중에서도 프랑스는 지리멸렬하는데. 그게 프랑스의 중앙집권적 구조 탓이 크다는 지적이다. 1세대 생물정신의학은 퇴행 이론을 통해 스스로 몰락의 길로 들어가게 된다. 환자가 두려워해서 오지 않으면, 수용소만 끌어안고 있어야 한다.
19세기는 동시에 신경성 질환의 시대이기도 했다. 1830년대 이후 정신질환 혹은 광기는 대중의 마음에 신경성 질환으로 인식되고, 정신과 의사들은 대중과 소통하기 위해 신경 혹은 신경성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기질성 질병에도 사용했다.(198) 환자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어야 하는 점도 있었고,(199) 정신질환에 대한 대중의 혐오 때문이기도 했다.(201)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다. 정신질환자가 되지 않기 위해, 진단을 거부하다 병이 악화되는 경우가 흔하다. 그래서 프랑스 전국의 온천이 온갖 질병을 치유한다는 명목의 사기판이 되지만.(209) 이런 상황에서 광기와 신경성 사이의 연결도구인 신경쇠약이라는 용어가 등장한다.(219) 무엇보다 신경성이 중요했던 것은 개인클리닉이다. 휴식치료와 신경쇠약 그리고 개인 클리닉. 더 이상 수용소나 정신병원이 아닌 도시 또는 마을 한 가운데 있는 자그마한 개인 클리닉에서 정신병자로 간주될 위험이 없이 치료받을 수 있게 된 것이다.(229) 어떤 의미에서 환자의 문제와 돈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치료를 원하는 환자들이 있다. 그리고 경계를 획정하기 어렵지만, 질병 또는 질환이 있다. 그런 신경학이 정신치료를 발명하게 된다. 비최면 암시치료가 시작되는 것이다.(233) 한편에서 정신의학이 생물정신의학으로 발전하여, 정신질환의 결과는 퇴행으로 나타난다고 하자, 사람들은 정신질환자라는 또는 정신질환자의 가족이라는 낙인을 두려워하게 된다. 그럼에도 이제는 신경증이라는 이름으로 모두들 클리닉으로 몰려든다. 드디어 개인 클리닉에서 치료가 가능해진다. 신경증 또는 신경성이라고 말하면서 모두들 정신질환을 다루고 있다. 증세가 가벼운 것들이겠지만. 수치료와 온천이 널리 권유되고. 정신질환에서 환자가 구성된다는 이야기는 쇼터가 내미는 압도적인 증거를 보면서 지속하기가 어렵다. 환자는 이렇게도 증가하고, 저렇게도 증가한다. 사람들은 정서적인 신경상의 정신적인 불편감을 참지 않고, 어떤 방식으로든 의사를 찾는다. 증세가 심각하면 가족들은 감당하기를 거부하고, 수용소에 집어넣고, 증세가 가볍거나 돈이 풍족하면, 클리닉을 찾아가서 처방을 받고 온천이라도 다닌다. 이들 중 일부가 자유를 위해 억압 때문에 질병에 자신을 끼워맞추었을 수 있다해도, 기질적이든 아니든 광범위하게 정신질환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수가 그만큼 많았다는 사실이 밑바탕에 깊이 깔려있다.
그리고 프로이트가 등장한다. 정신의학은 단절된다. 1939년 프로이트가 사망한 후 지금까지 전혀 다른 세계가 보이지만 20세기 중반 중간계급 사람들은 자신들의 심리적 문제가 오래전의 사건과 연관된 무의식적 갈등, 특히 성적 갈등에서 생긴다는 이론에 열광했다. 그러나 프로이트 이론이 생존했던 시간은 아주 짧다.(245) 1970년대 정신의학계의 과학이 발달하면서 정신분석은 변방으로 밀려났음, 생물정신의학의 진화과정을 늦추었을 뿐이다. 의사가 프로이트 기법을 독점적으로 소유하려 했던 이유는 심리학자, 정신과 사회사업가social worker 그리고 경쟁자들을 배제시키려는 이기적 발상이었을 뿐. 1990년대가 되면 정신분석이 과학적으로 파산하게 된다.(246-247) 문학, 심리학, 영화 등 미디어로 퍼져서 다른 방식으로 생존하고 또 영향력은 여전하거나 어떻게 보면 강화된 듯도 보이지만. 쇼터는 정신분석의 문제점이 인간이 사회와 포괄적으로 연결되었다고 주장하는 점이라고 지적한다. 게다가 프로이트는 치료도 믿지 않았다.(256) 성기 처럼 생긴 수도꼭지를 보고 친밀함에 대한 공포나 억압된 동성애적 갈망을 연상한다면 그건 과학이나 의학이라기 보다는 신화 또는 신앙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다. 그러나 정신분석은 무엇보다 돈의 문제였다. 신경성 질병을 다루던 개인 클리닉이 정신분석을 배척할 이유가 없다.(255) 1925년 베를린 중류계층에 열등감 콤플렉스Minderwertigkeitskomples를 줄여서 민코Min-ko라는 단어거 유행했다니.(258-259) 게다가 1930년대 파시즘이 유럽의 유태인들을 미국으로 몰아내면서 분석가들이 대거 미국으로 가는데, 이들은 교조적으로 프로이트의 딸 안나의 이론에 무조건적 충성을 보냈고, 미국 정신의학계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278-279) 쇼터의 주장 중 가장 흥미로운 것은 역사학자 존 커디히를 인용하는 정신분석에 탈식민지 사람들이 가질만한 이데올로기가 있었다는 주장으로. 정신분석은 유태인들에게 자기 정체성을 확인할 가능성을 열어주는 것이라는 점이다. 프로이트가 융은 기독교인이고 목사의 아들이라 자기 이론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고 했다는 전언도.(304-305) 융은 실제 영지주의 영향이 큰데. 쇼터는 미국의 유태인들이 정신분석의 경험이 많았고,(310) 1970년대 미국에서 정신분석이 쇠퇴할 때, 미국 유태인들도 정체성을 잃고 유태 문화권으로부터 이탈해 가고 있었다고 지적한다.(314) 물론 이건 쇼터 주장 중에 일부분이니까. 얼마나 받아들여받 할는지 모르지만, 정신분석을 유태인들이 주도하고 확산시킨 것만은 또 분명한 사실이기도 하고. 유태인이 아닌 중간계급의 자기성찰을 통해 정체성을 확인하려는 성향이 정신분석으로 쏟아져 들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할 수 없다. 정신분석이 정신의학에서는 1970년대 이후 사실상 근거를 잃었다는 점만은 정말 중요하다. 이 사람들은 어디서 왔을까. 19세기에 신경증 클리닉에 다니던 사람들 온천장을 찾아다니면서 요양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정신분석을 하러 몰려들었다. 새로 형성된 신흥 중산층들도 여기에 합세했고, 동화주의에 의해 자리를 인정받게 된 유태인들도 몰려들었다. 자신의 정신적 문제를 어떻게든 다루어야 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늘어났다. 이 점이 가장 중요하다. 요즘 정신과에서는 약처방이 제일 중요하다는데. 무엇보다 약이 있으니까 처방이 가능한 것이지만.
20세기 전반에는 대안적인 다양한 치료법이 등장한다. 수용소의 환자들은 늘어만 갔고, 수용소는 마땅한 치료책도 없었다. 말라리아 환자의 혈액을 주사하는 신경매독 열 치료법, 페니실린의 등장, 모르핀계 알칼로이드의 남용, 브로마이드를 이용한 수면연장 요법, 인슐린 쇼크요법과 혼수요법, 그리고 훗날 반정신의학의 표적이 된 전기충격요법ETC. 역시 표적이 된 뇌엽절제술. 사회 정신의학, 지역사회 정신의학. 영국에서 시작된 그룹 정신치료와 낮병원이 그중 하나인데,(384-387) 이게 훗날 프란츠 파농이 알제리와 튀니지에서 시도했던 바로 그것이다. 미국은 모습이 달랐고. 이런 방법들은 2차 생물정신의학의 도래와 함께 사라지고 만다. 그러나 동시에 반정신의학이 주요 타겟으로 삼았던 것이 뇌엽절제술과 ETC이기도.
2차 생물정신의학의 도래는 유전학 연구와 약물과 함께 등장한다. 일란성 쌍둥이의 양극성 정동장애(조울증), 조현병(정신분열증) 발병을 연구해서 유전과의 관계를 밝힌 것(402-404) 그리고 프랑스에서 1952년에 시작된 클로르프로마진의 사용이다. 클로르프로마진 같은 새 약물의 발견과 적용 과정의 배경에 있는 힘은 과학자도 임상의사도 아닌 제약회사였다. 제약회사 운영진과 과학자들이 약물의 시대를 이끌어 간다.(411) 제약회사는 새로운 약을 사용하기를 꺼리는 주립 수용소, 주립병원을 공략하기 위해 주 입법부에 찾아가 약물을 사용함으로써 관리비를 경감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417-418) 리튬의 효과 역시 발견되었지만, 받아들이는데, 20년이가 걸렸는데, 자연물질이다 보니 제품화하는 데 후원할 기업이 없었다.(423) 우울증, 조증에 사용되는 약들이 등장하는 것과 동시에 신경과학도 발달한다. 뇌의 사신을 찍어서 정신분열증의 원인 중 몇 가지를 찾아내게 된다. 태아의 뇌 발달 이상 그리고 바이러스의 영향 등.(440) 바로 이 때, 정신약물학과 신경과학으로 기질적 질병을 치료할 능력을 갖추게 된 그 순간 반정신의학 운동이 생겨난다. 새로운 약물의 등장으로 돌봄에 무관심해지고, 좌파와 페미니스트들이 부르주아 계급의 지배의지와 가부장제 권력을 주입하는 장치라는 비난에, 정신질환이 의료의 대상이 아닌 사회적, 정치적, 법적 대상이라는 주장을 하는 지식인까지, 정신병이란 신화라는 주장, 가장 유명한 것은 미셸 푸코였다.(445-446) 환자는 지역사회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탈기관화라고 하는데. 프로이트 파 사람들의 비난을 무릎쓰고 클로르프로마진과 레세르핀을 사용하기 시작한 후부터 입원환자 수는 눈에 뜨이게 감소하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탈기관화는 반정신의학 운동에 의한 것이 아니라 2차 생물정신의학에 따른 결과라고 볼 수 있다.(455) 탈기관화로 병원을 떠난 사람들은 약을 끊고 거리를 배회하게 된다. 노숙자의 3분의 1이 정신질환자들이다.(456) 1980년대에는 이에 대한 반작용으로 종합병원과 사립 정신병원에서 환자들을 입원시키기 시작했다. 반정신의학 운동은 실패했다고 쇼터는 평가한다.(457) 20세기 후반에 비로소 기질성 정신질환이 치료가능한 질병이 되었다. 정확하게는 약물로 조절가능한, 그러나 약물로 조절하는 것은 누군가의 돌봄과 가족의 뒷받침이 없으면 지속되지 못한다. 시설에 있는 것만 못해진다. 시설에서는 약만 주고, 잠만 재운다고 쉽게 비판하지만, 모든 사람에게 섬세한 돌봄을 제공하는 건 불가능하다. 중세의 귀족이나 근대 초기 부르주아 가족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는 것. 운동하는 사람들은 쉽게 말하지만, 기관이나 시설을 악마화하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 기관이나 시설에 사람을 보내는 것은 가족이다. 17-8세기 프랑스의 국왕 봉인영장이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가족이 할 수 없다면, 기관이나 시설에 투자해서 개선하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지역사회에서 관리할 수 있는 정도를 넘어서는 경우라면, 자신을 위해서도. 가족과 개인에게 그리고 지역사회에 얼마나 부담을 지울 수 있을 것인지는 이념이나 이상의 문제가 아니라 실현 가능성과 관리 가능성의 문제다.
20세기 말의 변화는 스트레스의 심리화는 대중의 새로운 경향과 관계가 있다. 심리적 서비스에 대한 요구가 경악할만큼 증가하면서 질환 역치, 즉 질환이라고 간주하는 기준이 낮아지고, 질환이 아닌 스트레스와 삶의 문젯거리를 의사에게 상담하려는 경향이 증가했다. 이는 대중이 삶의 어려움을 의료화하기 보다는 심리화해 왔음을 보여준다.(472-473) 소년기를 병리화하는 미소 대뇌 기능부전이라는 진단명은 과잉행동을 가진 주의력결핍 장애(ADHD)라는 질병이 되고, 치료 권한은 의사에게 주어지며, 1995년이 되자 250만의 미국 어린이들이 리탈린을 복용하게 된다.(474) 영화를 보고 무서워하는 아이들에게까지 PTSD 진단이 확대되고, 미국 정신의학은 196년대 이후 행복하지 않은 상태 혹은 불행감, 식욕감퇴, 수면 장애 들을 포함하는 불유쾌함을 우울증으로 정의한다.(475) 그리고 성격장애.(476) 질병역치가 낮아지면서 정신과 환자의 범위가 확장되고, 질병역치 이하의 증상이라는 용어가 사용된다.(477) 정신의학계는 질병 역치를 낮추면서 시장을 확장했지만, 대중 역시도 정신치료를 갈구하고 있었다.(479) 심리학이나 사회사업이 이 영역에서 맹렬하게 활동한다. 1970년대말 DSM-III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동성애자들의 노력으로 동성애에 관한 모든 질병 명칭이 사라진다. 베트남전 참전 군인들은 PTSD를 포함시켰고, 페미니스트들은 자기패배성 인격장애를 삭제하기에 이른다.(496-498) 성 지향성에 관련된 문제, 스트레스 관련 주제, 여성 혹은 월경과 관련된 주제는 다수의 의지에 좌우되거나 압력집단의 끈질긴 캠페인에 의해 병리화되기도 하고 탈병리화될 수도 있다.(499) 정신분석은 정신의학이 아닌 언어학, 사회과학에서 열렬히 받아들여진다.(507) 마침내 미용 정신약물학의 시대가 등장한다. 신경안정제 메트로바메이트(밀타운), 벤조디아제핀(바리움과 리브리움)은 폭발했지만, 부작용과 약물남용의 위험성이 지적되면서 열풍이 끝난다. 여기서 제약회사들은 경쟁적으로 항정신성 약물 개발에 뛰어들게 되고, 이들은 정신과 의사의 진단 감각을 왜곡시킨다. 틈새시장을 만들어 내기 위해 질병 범주를 부풀린다.(520) 자낙스와 프로작은 행복을 주는 약으로 유행한다. 이것은 쿤이 말한 과학주의scienticism로 살아가며 어쩔 수 없이 맞닥뜨리게 되는 어려움과 곤란을 우울증으로 명명하여 질병으로 전환시켜 버림으로써, 인생사를 우울증이라는 척도로 측량하고 이 모든 것은 ‘기적의 약’으로 치료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정신과 스스로가 제약회사에 끌려 들어갔기 때문이고, 과학의 한 분야인 정신의학은 약물 쾌락주의라는 대중문화를 양성하고, 약을 먹으면 자의식의 무거움을 떨쳐 버릴 수 있고 날씬한 몸매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528)
신경성 클리닉을 다니던 이들은 정신분석가의 진료실에 몰려들더니 이제는 약물을 찾는다. 정신분석을 그만둔 것도 아니다. 심리학자든 상담자든 사회사업가든 심리상담을 할 사람은 도처에 널려있다. 삶의 문제를 심리화하고 약물로 해결하려는 경향. 이런 경향에 정신의학은 자신의 영역을 확보하기 위해서 적극적으로 나서고, 제약회사들은 이를 활용하고 또 조종한다. 새로운 약물의 발견은 단지 적응증만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질병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다른 한편 질병 분류는 과학의 평가 영역에만 머물지 않는다. 이전에도 과학자들의 갈등이나 정치적 압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제는 특정 이해관계자들의 캠페인과 지속적인 압력이 어떤 것은 병이 되고, 어떤 것은 병이 아닌 것이 되기도 한다. 원래부터 질병이 아니었거나, 아직도 질병이거나 둘 중 하나일텐지만. 아마도 미셸 푸코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단지 국가권력과 부르주아 계급에 의한 통제수단으로서의 정신의학을 비판하는 것만이 아니라 무엇을 정신병으로 규정할 것인지 압력집단과 이해관계자들과 정신의학과 제약회사가 서로 권력을 행사하고 지식과 이데올로기를 창출하면서 역동적으로 움직여가는 이 현상 자체가 푸코의 지식-권력을 통해 분석하려는 바로 그것이라고 말할런지도 모르겠다. 다만 거기서 단 하나의 악마를 찾아내어서 단죄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후 20년간 또 어떻게 변했을런지도. 그러고보니 『비정상인들』이 출간된 것이 1999년, 『정신의학의 권력』은 2003년이니, 시차도 있고. 또 미국에서의 푸코 수용이 가져온 대중적 효과에 관한 평가니 꼭 푸코를 다 읽어야만 하는 것도 아니고.
에드워드 쇼터의 이 책에서 단 한 가지 분명하게 읽을 수 있는 것은 늘어났고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정신질병을 가진 사람도 늘어나고, 자기 자신에 정신적/신경적/심리적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늘어나고, 그걸 치료해야 겠다는 사람도 늘어나고, 약물을 먹겠다는 사람도 늘어나고, 점점 더 삶의 문제나 불행을 심리화하고 의료화하고. 구체적으로 하나하나 전개되는 과정에 제약회사와 같은 자본과 수용소나 공공병원 또는 의료 시스템을 운영해야 하는 국가권력 그리고 자기 영역을 확보하고 경쟁자들에 맞서야 하고 권위를 확보하고 무엇보다 환자를 치료해야 하는 정신의학 의사들이 개입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이들이 구성해낸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리고 누가 구성해낸 것인지도. 환자/소비자 측면을 파악해야만 어느 정도 해답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2020. 7. 8.
* 괄호 안의 숫자는 번역서의 쪽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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