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훈,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양승훈, 『중공업 가족의 유토피아: 산업도시 거제, 빛과 그림자』, 오월의 봄, 2019.

조선산업이 위기라는 이야기를 들어온 지 이미 오래다. 불꺼진 거제에 관한 기사는 인터넷을 조금만 검색하면 넘친다. 한동안 조선산업은 한국경제의 걸림돌이나 문제거리였다. 그러더니 최근에는 조선업이 살아난다는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을 사겠다는 이야기까지. 책에 나오는 비관을 넘어서서 중국 조선은 한국 조선을 당분간 따라잡을 수 없으리라는 낙관이 넘친다. 무엇이 진실인지 실은 아무도 알 수 없다. 이 모든 일들은 시간이 지나면 알게될 것이라 생각된다. 내가 이 책에서 읽어낸 것은 의외로 왜 민주노총은 외면 받는가였다.

프롤로그에 보이는 조선산업의 모습은 80년대 또는 90년대 초의 서울을 연상하게 한다. 모두 작업복을 입고 있다는 점은 다르지만, 학교 근처든 회사 근처든 아는 사람들의 술자리를 돌아다니는 일이 흔했다. “와, 너희도 회식이냐?”고 묻는 옥포 골목의 불야성(11)은 어찌보면 지나간 한때 같은 느낌이다. 그리고 “조선소의 하루는 이미 술이 떡이 된 아빠가 들고 온 신발 상자를 받고 투덜대는 딸의 잔소리로 끝이 난다.”(12) 이런 가벼운 스케치에서 왜 거제가 몰락했고, 또 몰락하고 있다고 말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것은 실상 한 세대의 몰락을 뜻하는 것이다. 아니 IMF이래 수도권에서는 이미 몰락한 모델이 유지되고 있을 뿐이다. 중산층의 상징으로 꼽히는 4인 핵가족, 이성애 정상가족이든 남성 생계부양자 모델은 산업도시의 가족에서 지켜지고 있었다.(25)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조선업의 호황과 강력한 노동조합의 투쟁에다 하청과 물량 등의 저임금 노동자 군의 희생을 통해 유지되고 있었다. 말하자면, 거제를 다루는 이 책은 이제 더 이상 그렇게 유지될 수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니 이들이 상위 10% 귀족노조와 같은 지탄을 이해할 수도 어리둥절해 하는 것도 역시 당연하다.(26-27) 노동조합의 조직율이 올라간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어딘가 비장한 느낌이 들었다. 지키지 못하면 죽는다는 절박감이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싸워도 지킬 수 없다면 그땐 어찌할 것인가.

하루 종일 어디에서도 소속과 이름이 쓰여져 있는 작업복을 입고 있는 데서 중공업 가족이란 무엇인지 드러나 보인다. 작업복을 잘 입지 않는 삼성의 사무직과 달리 대우 사람들은 사장부터 용접공 신입사원까지 작업복을 입고 다닌다.(59) 조선소가 만들어낸 가족을 양승훈은 이중적으로 말한다. 중공업 가족, 대우 가족, 삼성 가족, 그리고 그들 자신들의 가족. 거제 등의 산업도시는 4인 가족 남성 생계 부양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다.(67) 조선소는 남초 직장으로 이들의 소비는 수로가 레저에 집중된다.(68) 여성 직장은 적지만 시간적 여유가 있어 자신들의 네트워크에 시간을 쏟는다.(70) 남자와 여자의 일은 칼같이 분리된다.(72) 그러나 실제 가족의 이야기는 어떨까? 거제에서 자라 대학에 진학하는 딸들은 거제로 잘 돌아오지 않는다. 여성이 일할 수 있는 정규직 일자리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86-87) 그러나 사무보조라는 이름의 여성 사무보조직의 형태로 있다가 결혼과 함께 퇴사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들은 인적 구조조정의 희생양이 되기도 한다.(90-92) 이것 역시 바깥 세상과는 괴리가 있지만, 나름의 안정적 삶의 선택지였다. 그래서 인지 영화 <땐뽀걸즈>에서는 ‘여자 어른’이 등장하지 않는다. 거제도는 남성 도시다.(93) 그와 동시에 직영과 외주라는 이중노동시장의 문제가 있다. 대량 수주로 인한 물량 처리는 사내하청화를 통해 해결했다.(95-96) 2014~2015년 가장 많은 선박과 해양플랜트 건조를 진행할 때, 80%에 가까운 생산을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맡았다. 2000년대 초반의 LNG 물량 확대기에는 비율이 1:1 정도였다.(96-97) 호황기에도 하청 노동자 가족은 하위주체subaltern으로 만들었다. 소득 격차를 만들고, 하청 노동자와 그 가족을 배제하고 발언권을 박탈하면서, 중산층 노동계급 가족과 하청 노동자의 차별을 통해 일조의 카스트를 형성했다.(101) 공구 분배에서의 차별, 명절 근무는(102-103) 물론이고, 일터 밖에서 이루어지는 “직영이세요?”라는 질문은 더욱 쓰라리다.(106) 게다가 스스로 중공업 가족에 편입되기를 원치 않는 사람들, 주로 수도권 출신 엔지니어들과 사무직들이 생겨났다.(108) 2015년 조선산업의 구조조정이 시작되자, 수도권 대학 출신들이 이탈했고, 동년배 동남권 소재 대학을 나온 젊은 토박이들은 심난해 졌다. 유능한 동료가 이탈한 후 젊은 토박이들은 지방 회사에 다닌다는 열등감에 휩싸인다.(112-113) 중공업 가족은 하청 노동자를 배제했고, 여성들과 딸들의 공간은 결혼 생활의 영역에 한정 지었으며, 젊은 세대들에게 그 약점을 드러내게 된다. 그것은 한낱 보수적인 삶의 형태에 지나지 않고, 조선산업 경기가 위축되면서 중공업 가족 내부의 모순과 긴장이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114)

산업도시 거제에선 이런 일들은 낯설지 모른다. 그러나 1997년 이후 이미 광풍을 겪고 난 수도권 거주자 입장에서 본다면, 이런 일들은 너무나 당연하게 느껴진다. 그들의 당황함조차 이해되지 않는다. 그럴 줄 몰랐단 말인가. 거제와 몇몇 산업도시만 무풍지대였을 뿐, 이미 다른 곳을 모두 폭풍에 노출되어 폐허를 붙들고 서 있는 형편이다. 동정심을 기대하는 건 너무나 안일하다. 이중노동시장 문제가 가장 심각한 것이 바로 이 산업도시들이었다. 그 반격이 오는 것 역시 너무나 당연하다. 양승훈이 중공업 가족이란 문제제기를 한 것은 꽤나 적절한데. 산업도시들의 문제는 일자리 시장과 연동되는 가족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남성 가장이 생계를 책임지는 이 부양 시스템은 많은 문제가 없는 것처럼 가리는 착시 효과가 있다. 노인문제, 요양문제, 보육문제, 교육문제, 부양에 관한 수많은 문제들이 이 보호막이 벗겨지는 순간 드러나게 될 것이다. 퇴직 후 생계 수단으로 자영업을 택한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완충 역할을 못할 때, 수많은 문제가 드러나게 되듯이.

양승훈은 조선 산업 엔지니어들의 변화가 드러나는 지점을 해양플랜트로 삼는다. 그 이전까지는 현장 출신의 작업장 엔지니어들의 경험과 숙련이 중요했다면, 더 이상 그렇지 않은 시대가 왔다.(137) 작업장 논리가 통하지 않는 시대가 오면서, 조선 산업은 문제 해결책을 찾지 못하고 비틀거렸다. 한 군데서 문제가 발생하면 거의 모든 갈등이 드러난다. 여기서도 부산・경남권 4년제 공대를 졸업한 엔지니어들이 소외된다.(156) 사내하청을 둘러싼 또 하나의 문제점은 노동조합으로부터의 소외다. 노동조합은 어느 정도의 편의는 보아 줄 수 있지만, 정규직화는 철저하게 외면한다.(210) 사내하청의 존재는 정규직의 완충장치다. 그리고 또 하나의 문제가 있다. 정규직 생산직 노동자들이 직접생산직을 기피하는 것이다.(213) 그리고 설계의 외주화.(215)

조선산업의 위기 내지 불황을 타개하려는 수단으로 등장한 해양플랜트는 조선산업의 문제점을 드러내는 계기로 작용했다. 작업장 엔지니어들의 역량으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해양 플랜트의 특성 상 단기적으로 많은 인력을 필요로 하고, 하청 노동자는 극대화되었다. 이 과정에서 장래 조선 산업의 동력이 되어야할 엔지니어들은 거꾸로 산업도시에 정착하지 않고, 노마드 처럼 떠나가 버리며, 남은 사람들에게는 소외감만 남는다. 해양 플랜트는 한때의 위기를 넘어가는 기회처럼 보였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심화될 뿐이다.

이런 모든 문제가 집약되어 등장하는 것이 연공서열과 고용 안정이라는 임금 체계다. 어떤 학습동기도 부여해주지 않는 한국식 임금체계. 이제 젊은 세대가 동의하지 않는 이 시스템은 깨질 수밖에 없다.(236) 이런 시스템은 중공업 가족이라는 단절된 세계 속에서만 작동한다. 이들은 도시대인의 감각을 지니기 어렵다. 일터와 삶터가 분리되지 않은 채 지역민 모두가 산업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외지인으로 형성된 공동체는 ‘봉급’을 ‘따박따박’ 지급하는 조선소 때문에 유지된다.(269) 위기가 닥치자 젊은 여성들과 수도권 출신 직원들이 가장 먼저 자리를 떴다. 여론이 악화되었을 때, 조선소 노동자들은 따가운 시선에 어리둥절할 뿐이다.(270) 1987년을 기점으로 결성된 대규모 노동조합은 결과적으로 대형사업장 노동자들만이 자신들의 이익을 임금 단체협상을 통해 지켜낼 수 있었다. 생활임금을 매개로 단체협상이 정례화되고 연공서열제가 정착되었다. 민주노조운동이 고안한 생활임금 개념은 최저임금과 달리 1인이 4인 가정을 부양한다는 전제하에 생활비를 책정한 것으로 4인 가정이면 1년에 연봉 6천 몇 백 만원이 필요하고 월에 4백 몇 십 만원이 필요하다는 식이며, 급격한 임금 인상을 막으려는 사측의 대응방식이 연공서열제다.(299)

여기까지 읽고 나자 왜 그렇게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한 노동조합 운동이 외면 받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심정이 들었다. 대기업 사업장을 중심으로 전개되어 온 노동조합 운동은 단순히 자신들의 이익과 임금 만을 지키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의 시스템을 지키려고 하는데, 그것이 바로 남성 생계 부양자 모델이다. 남성 가장이 혼자 일해서 4인 가족을 부양하는 시스템. 그리고 그들 조차도 모든 노동자들을 보호하려고 하지 않는다. 중산층 하층, 하위 중산층에 편입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만은 지키려고 할 뿐이다. 광주형 일자리의 등장에 대한 민주노총의 격렬한 반대를 이해하지 못할 것은 아니지만, 그러기에 더 이상 호응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한 사람에게 몰아주어서, 가족을 책임지고 부양하게 하느냐, 여러 사람에게 조금씩 나누어 주어야 하느냐 사이에서 답은 간명하다. 일하려는 사람 모두에게 나누어 주어야 한다. 그것은 남성 생계 부양자를 통해 가족을 유지할 수 없는 현실을 반영하는 결과에 다름아니다. 이미 가족은 분열되고, 해체되어 가고 있다. 가족은 더 이상 보호막도 아니며 안전판도 아니다. 가부장의 권위는 술취한 아저씨의 넋두리에 불과할 때가 많다. 아직도 가정 폭력 문제는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왜 노동조합 운동에 젊은이가 없는 것인지 알 법하다. 가끔은 진보정당을 기웃거리다가 아재 문화를 이겨내지 못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이야기도 듣게 된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출생한 이들이 주류가 되어서 구성해 온 핵가족 사회가 그 효용성을 다하고 사라져 가고 있다. 이들은 더 이상 노인도 젊은 세대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있다. 가족이 깨어져서 부양할 수 없는 현실은 국가와 정부의 개입을 강요한다. 새로운 문제가 등장할 때마다, 새로운 영역에 대한 정부의 개입이 요구된다. 국가와 정부가 슈퍼맨이라서가 아니라 붕괴로 인해 넘쳐나는 약자들을 돌보기 위해서이다. 그러니 이런 대기업 노동자들의 임금 투쟁이 사회적인 호응을 얻을 리 만무하지 않은가. 이들이 자신들의 지갑을 헐어서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들이 차지한 부문이 약화되는 것은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결국에는 노동운동 조직이 방향전환을 하지 않을 수 없겠지만. 이미 부스러진 낡은 가치를 붙들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2019. 2.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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