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 매킨타이어Lee McIntyre, 『포스트트루스: 가짜 뉴스와 탈진실의 시대Post-Truth』, 김재경 역, 두리반MIT Press, 2019(2018).
지금 막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가지고 선거 개표가 사기라면서, 민주당이 승리를 도둑질하고 있다고 개표를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이런 주장을 할 것이라는 이야기는 이미 한 달 전부터 들어왔지만, 막상 그가 실제로 민주주의 제도를 공격하는 모습을 보는 건 충격적이면서 탄식이 나왔다. 동시에 두려움이 생겨났다. 시스템은 생각보다 취약하고 쉽사리 무너질 수 있다. 시스템의 내부에서 계속해서 수선하고 고치면서 유지하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시스템의 가장 큰 수혜자인 현직 대통령이 시스템을 공격하면 시스템은 취약해지게 마련이다. 그와 동시에 지난 몇 개월 간 친트럼프 진영과 싸운 반트럼프란 결국 미국의 현재 시스템을 유지하고 지키려는 사람들이었다. 어떻게든 선거 제도 안에서 트럼프를 이기려고 내지는 시스템을 지켜내려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노력하고 있다. 24시간 선거 뉴스만 전하는 미국 방송들을 보고 있으면 이들의 노력이 눈물겹다는 생각이 든다.
친트럼프 진영이 모두 비성적인 것은 아니다.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이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도 미국식 생활방식American way of life 다른 말로 American way. 흔히 생명, 자유, 행복의 추구라고 표현되지만, 자신들은 자신들의 방식대로 살아가겠다는 고집스런 표현이다. 에이미 배럿 판사의 임명 강행이 막판에 트럼프와 공화당에 표를 모아주어서 상하원에서 공화당이 선전했다고 하는데. 배럿 판사는 낙태에 반대하는 가톨릭 신자이자 오바마케어에도 반대하는 극보수로 불린다. 당장 로 대 웨이드 판결이 뒤집히진 않겠지만. 이것 역시 연방정부가 자신들의 삶의 방식에 끼어드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투표장으로 불러내고, 보수적인 라티노들을 공화당에 투표하게 이끌었다. 문제는 이런 사람들의 힘을 모으는 정치적 상징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투표로 대통령 선거에 이기기 어려워 보이자 시스템 자체를 공격하는 방식을 택했다는 점이다. 그렇게 해서 승리를 가져갈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되지 않지만. 그럼에도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고, 경합주들을 돌아다니는 트럼프의 마지막 2주간은 경이로웠다. 지치지 않는 전사 같은.
지금 많은 사람들이 예상하는 대로 바이든이 당선된다면, 그러니까 트럼프의 대통령직을 연장시키지 않는다면, 파국은 지연될 것이다. 그러나 얼마나 지연시킬런지 솔직히 알 수 없다. 시스템은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손상된 것 같다. 최소한의 회복력을 발휘하는 중인데. 이것이 마지막 회복일수도 있고. 정치적 종말론이 할 수 있는 건 그저 파국을 조금씩 뒤로 미루는 것뿐이고, 사람들은 현재를 살아갈 뿐이니까. 트럼프가 쉽사리 포기할 것 같지 않고, 바이든이 재선에 나서지 않겠다고 선언한 이상, 2024년 선거를 노리고 그걸 위해서 지금 저렇게 싸우는 게 아닌지 하는 의심도 생긴다. 더 강해져서 돌아오는 트럼프는 생각만해도. 제도와 시스템을 지키기 위해, 계속해서 그걸 보수하면서 지키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생각보다 아주 취약하다는 걸 보고 있다. 트럼프는 무엇이고, 무엇이었으며, 또 앞으로 무엇일 것인가를 생각하다 보면, 그 핵심에 포스트트루스가 있다.
당시 후보였던 도널드 트럼프조차 자신이 선거에서 패배한다면 그 이유는 선거가 조작되었기 때문이라고 아무 근거도 없이 주장하는 …… 선거가 끝나자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트럼프는 이번에도 아무런 근거도 없이, 부정 투표를 저지른 수백만 명을 제외하면 사실상 자신이 일반 투표에서도 승리한 셈이라고 주장했다(실제로는 힐러리 클린턴이 일반 투표에서 거의 300만 표를 더 획득했다.)(16)
2016년 선거 때 있었던 일이다. 그때는 선거가 트럼프의 승리로 끝났고, 이런 ‘헛소리Bullshit’는 그가 늘 하는 것이라 묻혔지만, 지금 그는 4년전에 했던 것과 똑같은 주장을 하고 있다. 그때는 이겼었고, 지금은 지고 있다는 것이 차이일 뿐. 일반 투표 차이도 400만표 가까이 되어가고 있다. 게다가 개표를 중단하라는 요구도 처음이 아니다. 2018년 중간선거에서 플로리다 주지사와 연방상원의원 선거에서 재검표가 결정되자, 이를 중단하라는 요구를 끊임없이 했었다. 선거 사기, 부정 투표, 선거 조작, 개표 중단 같은 주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4년간 그는 반복적으로이런 주장을 해왔다. 문제는 사람들의 기억력이고, 거기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최고위직에 있는 사람의 이런 행위는 시스템을 침식한다.
‘옥스퍼드 영어사전’에서는 탈진실을 가리키는 영어 단어 ‘포스트트루스post-truth’를 “여론을 형성할 때 객관적인 사실보다 개인적인 신념과 감정에 호소하는 것이 더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현상”이라고 정의한다.(19) 탈진실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거리낌 없이 현실을 왜곡해 자기 생각에 끼워 맞추려고 애쓰는 세계적인 트렌드로 자리 잡고 있다. 이는 진실이 중요하지 않다고 외치는 캠페인 정도로 끝나지 않는다. 정치적 맥락에 따라 어떤 사실이든 마음껏 선별하고 수정할 수 있다는 신념으로까지 이어진다.(20) 탈진실 시대에 새롭게 나타난 중요한 문제는 현실을 파악할 수 있는지는 물론 애초에 현실 자체가 존재하는지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개인이 잘못된 정보를 믿거나 오해를 저지르는 경우에는 그 개인이 대가를 치르면 된다. …… 하지만 사회의 리더가 혹은 사회의 다수가 기본적인 사실들마저 부정해버린다면 세계가 뒤흔들리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26) 진실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싶지 않은 사실에는 지나치게 높은 검증 기준을 들이대는 반면 자기 의견에 부합하는 사실은 덮어두고 맹신한다. 자신의 신념을 뒷받침하는 사실만 진실로서 받아들이는 것이다. 결과는 일부 사실들이 버려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신뢰할 만한 방식으로 사실을 수집하고 활용함으로써 세계에 대한 믿음을 구축하는 과정 자체가 변질된다. 어떤 사실들은 개인의 감정과는 무관하게 참이며 그처럼 참인 사실들을 찾으려고 노력할 때 정치인들은 물론 우리 모두에게 최선의 이익이 된다는 생각이 흔들리게 된다.(27) 탈진실이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라기보다는 ‘진실이 개인의 정치적 입장에 종속된다’는 입장이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다. …… 불편한 진실 때문에 자신의 신념을 포기하느니 차라리 진실에 도전하는 쪽을 택하는 것이다. 이는 의식적인 차원에서도 일어나지만 (때로는 우리가 확신시키고 싶은 대상이 자기 자신이기 때문에) 무의식적인 차원에서도 일어난다. …… 진실 자체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무언가를 확고히 하고자 할 때 탈진실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결국 탈진실은 일종의 이데올로기적 우월주의나 마찬가지다. 이러한 우월주의를 장착한 사람들은 충분한 근거가 있든 없든 자신의 신념을 다른 사람에게까지 강제로 주입하려고 애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은 정치적 우위를 점하고자 한다.(28-29)
탈진실은 지배를 목적으로 한다고 요약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른 사람을 또는 사람들을 지배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자신의 신념을 받아들이도록 해야하면, 이를 손쉽게 하기 위해 또는 이에 성공하기 위해서 진실을 뒤집거나 조작하건 축소하거나 확대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권력을 행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배하기 위해서다. 권력은 진실을 두고 투쟁하는 장에서 형성되는 것. 리 매킨타이어는 탈진실을 이데올로기적 우월주의라고 요약한다. 불편한 진실을 인정하고, 자신의 생각을 바꾸고, 입장을 조정하기 싫은 사람들은 탈진실을 받아들이고, 지배를 받아들이는 편을 택함으로써, 의사 결정과 판단을 해야하는 부담을 내려놓고, 마음의 평화를 얻게 된다. 지배당하는 자의 정신은 안락할 따름이다. 트럼프가 눈앞에 있어서 거기에 주목하지만 그 기원은 훨씬 더 깊다.
비전문가들이 [과학자의] 연구결과에 의혹을 제기하는 …… 실제 이유는 학계에서 내린 결론이 자신들의 이념과 상충되기 때문이다. 어떤 경우에는 과학자들의 의도와 경쟁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이득이 된다고 판단하기도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과학부인주의science denialism’가 탄생한다.(36) 과학부인주의는 경제적인 이유나 이념적인 이유 때문에 발생한다. 일반적으로는 가진 것을 잃기 싫어하는 자들이 처음 의혹을 던지면 역정보misinformation를 퍼뜨리는데 혈안이 된 정치꾼들이 바통을 이어받는 식이다.(40) “우리는 의혹을 팝니다. 대중에 정신에 박혀 있는 ‘사실의 실체’에 맞서려면 의혹만 한 게 없기 때문이지요.”(44) 오늘날의 정치인들이 과학부인주의가 남긴 교훈을 놓칠 리가 없었다. 이제 자신의 정치적인 술수를 감출 필요조차 없다. …… 새롭게 탄생한 탈진실 세계에서는 자신의 입장을 지지하는 사실만 선택적으로 이용하고 자신의 입장을 지지하지 않는 사실은 완전히 부인하는 것이 현실을 창조해내는 핵심 수단이 되었다.(53) 지지자들이 실제 증거보다는 어느 편에 속하는지에 더 관심이 많다면 ‘사실’은 ‘의견’보다 아래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54)
리 매킨타이어는 담배 유해 논쟁을 과학부인주의의 출발점으로 지적한다. 담배 유해성 여부를 두고 40여년간 소송을 벌인 후, 그동안 담배를 팔아서 충분히 돈을 번 다음, 1998년에 2,000억 달러를 배상하기로 하고 합의에 도달한다. 이제 담배회사들은 대중이 담배의 위험성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다는 전제하에 계속해서 담배를 판매하고 있다.(43) 그 방법이 의혹을 파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은 고스란히 기후변화에 옮아갔다. 그 배경에는 화석에너지기업들이 있고. 그리고 정치로 옮아갔다. 이젠 과거처럼 복잡한 과정을 거칠 필요도 없다. 독감백신과 접종 이후에 사망했으나 관련성은 확인되지 않은 사람의 숫자를 늘어놓는 일이 가져온 피해는 지금 당장은 확인되지 않겠지만. 그 영향은 결국 나타나게 된다. 그래서 바이든은 자신이 당선되면, 제일 먼저 트럼프가 탈퇴한 파리기후협약에 되돌아가겠다고 하는 것인지.
세 가지 실험 결과(인지부조화, 집단 동조, 확증 편향)는 모두 오늘날의 탈진실 현상과 관련되어 있다. 오늘날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합리적인 표준을 따르거나 높은 증거 기준을 활용하는 대신 자신 혹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직관에 순응하는 방향으로 믿음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탈진실이 1950년대나 160년대에 등장했던 것은 아니다. 2000년대 초에 극단적인 당파적 편향 현상이나 소셜미디어의 사일로silo화 현상 등이 폭풍처럼 몰아치면서 탈진실 역시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67) 탈진실을 설명할 때 가장 중요한 현상을 꼽아야 한다면 확증 편향의 뒤를 이어 밝혀진 두 가지 편향 현상을 떠올릴 수 있다. 바로 의도적 합리화motivated reasoning 개념에 뿌리를 두고 있는 ‘역화 효과backfire effect’와 ‘더닝-크로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다.(69) ‘역화 효과’ …… 실험에 참가한 열성적인 정당 지지자들은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반하는 증거를 맞닥뜨리자 증거를 부정하고 잘못된 신념을 계속 고집하려고 했다. 반대 증거를 확인한 뒤 잘못된 신념을 더욱 강화시키는 경우도 있었다.(73) 더닝-크루거 효과는 저능한 사람이 자신의 저능함을 인식하지 못하는 현상과 관련된 인지 편향이다(때때로 ‘너무 멍청해서 멍청한 줄도 모르는 현상’이라고도 한다.(77) 스스로를 과대평가한 학생들은 그저 다른 사람을 속이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자기기만에 빠진 것이었다. 인간은 자기 자신을 너무나 사랑한 나머지 자신의 약점을 보지 못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자신의 정치적 신념에 감정적인 애착을 느낀 나머지(때로는 정치적 신념을 정체성의 일부로까지 느낀 나머지) 자신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는커녕 전문가들이 제시하는 사실보다 자신의 ‘본능적인 직감’을 앞세운다고 하더라도 드리 놀랄 일은 아니다.(81) 일부 인지 편향 현상은 개인의 정치적 신념에 따라 다르게 작용할 수 있다. ….. 역화효과는 진보주의자에게 덜 영향을 미치는 경향이 있었다. …… 보수주의자는 위협적인 거짓 진술을 훨씬 더 높은 확률로 신뢰하는 것으로 나타났다.(83) 오늘날 사람들에게는 상호작용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선택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져 있다. 정치적 신념이 어떻든지 간에 본인이 원하는 ‘뉴스 사일로’ 속을 살아갈 수 있다. 페이스북에서 누군가가 남긴 댓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친구 삭제’를 하거나 ‘숨기기’ 기능을 이용하면 된다. 음모론에 한껏 심취하고 싶다면 종일 음모론을 소개해주는 방송 채널을 찾아보면 된다. 자신과 생각이 같은 사람들로만 주위를 가득 채우기가 이전 어느 때보다 쉬워진 것이다. 게다가 일단 사일로 속에 들어가고 나면 자신의 생각을 집단의 생각에 맞춰야 한다는 압력이 더욱 강해진다.(87)
인지 편향에 관한 이야기들을 처음 들은지 얼마되지 않아, 인지 편향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 넘치기 시작했다. 당파 현상과 소셜 미디어를 통한 정보 사일로 현상에 대해서는 굳이 덧붙일 말이 없을 정도.
1968년 CBS에서 <식스티 미니츠60 Minutes>라는 뉴스 프로그램을 내놓으면서 상황이 바뀌기 시작했다. <식스티 미니츠>는 방송 시작 3년 후 역사상 최초로 ‘수익을 내는 뉴스 프로그램’ 자리에 등극했다.(95-96) 1980년, 다음 주자로 CNN이 경쟁에 뛰어들었다.(97) 사람들은 당파적인 뉴스 보도가 시장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다. 1996년 7월에 MSNBC가 설립되었다. 얼마 뒤 1996년 10월에는 폭스뉴스가 등장했다. 양쪽 다 스스로를 CNN의 대안으로 꼽았다.(100) 폭스뉴스에서는 ‘객관적인 뉴스’와 ‘당파적인 의견’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졌으며 골수 폭스뉴스 시청자들은 뉴스에서 접한 잘못된 사실을 아무 거리낌 없이 믿고 퍼뜨릴 수 있었다.(102) [전통적인] 언론이 객관성에 집착한 결과, 사실 문제를 전달할 때조차 모든 입장에 ‘균등한 시간’을 배정하고 양쪽 이야기 모두를 공평하게 전달하고자 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만약 찬반 의견이 갈리는 주제였다면 이러한 태도가 합리적이라거나 바람직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 문제를 전달하는 보도에서는 재앙과도 같았다. 언론은 실제로는 믿을 만한 양쪽 입장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는 주제를 다룰 때도 ‘동일 시간 배분’의 원칙을 따르느라 양쪽 입장 사이에서 ‘기계적 중립성’을 지키게 되었다.(110) 트럼프가 자신의 책 《거래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에서 서술한 내용 중 단 하나의 진실이 있다면 그건 바로 미디어가 진실보다 논란을 더 좋아한다는 점이다.(115) 균형 잡힌 보도를 해야 한다는 압력에 굴복한 언론이 열성 당원들(결국 언론을 진실로부터 떨어뜨려 놓을 때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제공하는 정보마저 모두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 결과 극단적인 의견에도 지나친 신뢰성을 부여하는 ‘반대 담론’이 형성되었다. …… 요리를 하면서 썩은 재료를 하나만 넣더라도 요리 전체가 썩은 맛이 나는 거소가 유사하다. …… 균형을 좇다보면 종종 사실 확인 절차를 빠뜨릴 위험이 있다.(117) 오늘날 저널리즘의 전통적인 가치를 지키려는 미디어는 절망적인 상황에 빠져 있다. …… 진실을 옹호하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도 편향된 방송이라는 비판을 뒤집어쓰고 있다. 대통령이 거짓말을 하고 있기에 거짓말쟁이라고 말하면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는다. 과학적 사실에 의혹을 퍼뜨리려는 사람들을 무시하면 한쪽 이야기만 들려준다고 비난을 받는다. …… 도널드 트럼프는 본인 마음에 들지 않는 뉴스 보도를 모두 ‘가짜 뉴스’라고 부르기 시작했다.(119)
방송사 입장에서 2016년 대선은 빅히트를 친 사건이었다. 시청자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수익이 굴러들어오기 시작했다.(127) 방송사들은 대중이 원하는 것을 보여줬다. 다시 말해서 도널드 트럼프라는 인물을 집중 취재했다. …… CNN마저 트럼프의 유세 과정을 빠짐없이 생중계로 내보냈다. 내용을 조사하지도, 논평을 붙이지도 않았다. 한 추산에 따르면 1016년 대선 기간에 케이블 뉴스 방송이 트럼프에게 무료를 제공한 미디어 노출 기회를 돈으로 환산한다면 50억 달러 가치에 이른다고 한다. …… 트럼프가 뉴스 보도를 통해 이익을 얻는 만큼 방송국 역시 트럼프 뉴스로 수익을 얻었다. 트럼프의 거짓말을 확인해야 할 의무를 잊어버린 것 역시 이러한 배경 때문이었을 것이다. 거의 모든 방송사들이 진실을 말해야 한다는 높은 표준 대신 과학적인 주제를 다룰 때 이미 활용했던 기계적 중립성’의 원칙에 고착했기 때문이다.(128)
이런 식의 역사적 전개는 마치 써커스를 보는 것 같다. 뉴스가 돈이 되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파적일 수록 더 많은 돈을 벌게 되었다. 당파적 뉴스 채널이 성행했다. 그러자 전통적 미디어는 객관적 뉴스, 균등한 시간, 기계적 중립성에 집착했다. 이런 통로를 통해 거짓말, 신념, 헛소리가 사실로 둔갑해서 퍼지기 시작했다. 기후변화에 대한 거짓말, 백신과 자폐성 장애의 관계에 대한 거짓이 퍼져나갔다. 이번 선거에 대한 미국의 방송 뉴스를 보면, 적어도 기계적 중립성은 마냥 고집하지만은 않는 것 같다.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트럼프 대통령이 하는 말이 거짓이면 바로 거짓이나 근거가 없다고 말한다. 트위터나 페이스북도 사실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플래그를 붙이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트럼프가 타격을 입는 것 같지는 않지만. 국내 언론들도 기계적 중립성의 함정을 조금씩 벗어나려는 노력도 보인다. 아직도 그 뒤에 숨는 경우가 적지 않지만.
요즘에는 뉴스의 출처가 너무나 많기 때문에 신경써서 확인하지 않으면 어디가 신뢰할 만하고 어디가 신뢰할 만하지 않은지 구분하기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게다가 일부 뉴스 공급원들은 최대한 믿을 만한 출처처럼 보이기 위해 교묘하게 위장하기도 한다. …… 전통적인 방식으로 사실 확인 과정을 거친 기사가 있다고 한들 온갖 거짓말이나 선동과 섞여 있는데 무엇이 진실인지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정치적 이념을 내세우려는 자들이 사람들의 무지와 편향을 이용하기에 너무나도 적절한 환경이 갖추어지고 말았다. …… 어떤 사람들은 ‘뉴스’라는 개념이 탄생하는 순간 가짜 뉴스 역시 함께 나타났다고 주장한다.(135) 기술은 우리 자신에게도 영향을 미쳐왔다. 인터넷이 등장한 뒤로 뉴스를 접하기가 너무나 쉬워지고 비용이 들지 않는 탓에 우리는 게을러졌다. 특권의식에 사로잡힌 나머지 비판적 사고 능력이 감퇴했다.(142) 의도적인 거짓을 보도해야 가짜 뉴스다.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꾸며낸 뉴스인 것이다. …… 가짜 뉴스는 단순한 ‘낚시 기사’에서 ‘정보 공작’ 사태로까지 발전했다. 다시 말해 금전적인 이익을 얻으려는 수단에서 정치적인 술책으로까지 변모했다.(143) 트럼프가 이미 여러 고전적인 프로파간다 수법(감정 고무하기, 비평가 폄하하기, 희생양 만들기, 분열 조장하기, 정보 날조하기)을 사용하고 있는 만큼, 스탠리는 우리가 권위주의 체제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경고한다.(152) 스탠리는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를 참고해 이렇게 말한다. “대중을 확신시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렇다고 꾸며낸 사실도 아니다. 대중을 확신시키는 것은 노골적인 무시다.” 비슷한 주제에 대해 아렌트는 이렇게 언급한 바 있다. “전체주의 지배가 노리는 가장 이상적인 대상은 확신에 찬 나치주의자도 공산주의자도 아니다. 사실과 허구 혹은 참과 거짓을 더 이상 분간하지 못하는 일반 사람들이다.”(153) 탈진실이 정말로 파시즘의 전조에 해당한다면, 가짜 뉴스는 대중을 본격적으로 억압하기 전에 경계심을 푸는 용도로 사용하는 초기 전략일지도 모른다.(157)
이 책을 읽는 내내 부정할 수 없었던 것, 한국과 미국은 너무나 똑같이 닮은 꼴처럼 움직인다는 것. 어디가 먼저이고 어디가 나중인지 구별도 못할 정도다. 가짜뉴스가 움직여가는 방식, 잘못된 정보가 기계적 중립성의 탈을 쓰고 퍼져나가는 방식, 그런 중립성이 정략적으로 이용되는 것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판단능력을 상실하고, 비판적 사고를 포기한 채 정보의 바다에서 빠져죽는 사람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다.
포스트모더니즘적인 접근법이란 모든 것을 의심하고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를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어디에도 ‘정답’은 없으며 각자의 ‘이야기’만 존재할 뿐이다.(169) ‘객관적인 진실’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것이 포스트모더니즘의 첫 번째 논지라고 할 수 있다. …… 두 번째 논지 …… 누군가 어떤 진실을 제시하더라도 그것은 그 사람의 ‘정치적 이념을 드러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170) 포스트모더니즘이 직접적으로 보수진영의 이념을 지지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포스트모더니즘 사상가들은 오늘날의 탈진실 세계에 기여해옸다는 것이다. 그들은 포스트모더니즘 특유의 모호함 속에 숨어 책임을 회피하다가 자신들조차 받아들이기 힘든 목적에 이용당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충격을 받았다.(171)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을 빌려다 쓰는 보수주의자들은 사상에 담겨 있는 세세한 내용 따위에는 딱히 관심이 없다. 일단 도구가 필요하다면 그들은 과도를 가지고도 망치처럼 쓸 사람들이다.(171) 진화론과 같은 과학적인 주장에 불만을 가지고 있는 보수주의자들이 과학 이론이 우수하다는 생각을 약화시키기 위해 포스트모더니즘을 이용했다.(179) 과학부인주의자들이 창조론을 ‘지적 설계Intelligent Design’이론으로 둔갑시키고 창조 대 진화 논쟁을 공립학교 생물 수업에 포함시키려고 여러 차례 시도하는 데에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이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183) “과학지식사회학적 접근법이 다윈의 진화론에는 적용된 적이 없다니 참 의아한 일입니다.”(185) 보수 진영 정치인들과 그밖의 과학부인주의자들이 데리다나 푸코를 직접 공부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들 사시에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이 전염병처럼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들은 과학이 진리를 독점할 수 없다고 확신하기 시작했다.(187) 브뤼노 라투르의 반응은 마치 자신이 판매한 무기가 무고한 사람을 죽이는 데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무기상의 반응과 비슷했다. …… 과거에 나 역시 과학적 사실이 구조상 필연적으로 ‘확실성이 부족하다는 점’을 증명하려고 애쓴 적이 있었다. …… 나는 이미 마무리된 논의의 확실성에 의문을 제기해 대중을 속이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아니, 어쩌면 속인 것이나 마찬가지였을까? …… 동일한 사회구성주의 논리를 사용해 위험한 극단주의자들이 우리가 힘들게 얻어낸 사실, 우리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사실 마저 파괴하려고 하는데도 말이다. 내가 과학학이라는 분야가 만들어지는 데에 기여한 것은 잘못이었을까?(190) 과학을 부정하는 태도가 결국 현실을 부정하는 태도로 이어진다는 사실은 결코 부인할 수 없다. 포스트모더니즘이 탈진실적인 정치 세계에 적용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실, 우리는 이미 주위에서 그 답을 목격하고 있다.(192)
리 매킨타이어의 주장 전체에서 가장 선뜻 수용하기 어려우면서도, 등골이 서늘하고, 완전히 외면할 수 없었던.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사조가 있네 없네, 하는 식의 엄밀성을 따지는 논쟁을 잠시 내려놓는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이 탈진실로 가는 문을 열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스트롱 프로그램과 과학학에 대한 브뤼노 라투르의 탄식은. 앨런 소칼의 ‘지적 사기’는. 그나마 아직은 보수 진영 정치인들이 데리다나 푸코를 본격적으로 공부하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과거에 주체사상에 빠졌던 이들이나 교조적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전향하여, 이제 반일민족주의 비판의 전선에 나서고, 자유주의를 비판하는 오늘, 훗날 푸코나 데리다, 라캉 연구자가 마음을 바꾸어 알기 쉽고 활용가능한 탈진실의 ‘도구 상자’로 푸코를 깔끔한 사탕이나 젤리로 만들어 낸다면, 생각만 해도 소름이 끼친다. 난해함 속에 봉인을 해버려야하는 건 아닌지.
2020. 11. 6.
* 괄호 안의 숫자는 번역서의 쪽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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