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책을 저술하는 동안 발견한 극우의 전세계적 흔적의 지도. 책 앞부분에 포함되어 있다. 한국도 포함될 날이 멀지 않은 듯.
벤저민 R. 타이텔바움Benjamin Teitelbaum, 『영원의 전쟁: 전통주의의 복귀와 우파 포퓰리즘WAR FOR ETERNITY: The Return of Traditionalism and the Rise of the Populist Right』, 김정은 역, 글항아리, 2024(2020).
바야흐로 폭주의 시대다. 모두들 벌거벗고 춤추기를 마지 않는다. 대법원장과 대법원이 뛰어든 것이 과연 마지막일까? 아니면 다음은. 도대체 왜들 그러는가?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가? 그런 설명이 의미가 있을까? 12월 3일 내란의 그 밤에도 이 작자들은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면, 5월 1일 법원의 지랄발광은 더 이상의 추론을 멈추게 한다. 그렇게 까지는 못할 거라는 이야기에는 곧바로 ‘나이브’하다는 딱지가 붙는다. 이젠 음모론이라고 하지도 않는 의심에는 한계가 없고, 대항하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이런게 사실상 내전 상태라고 하는 거겠지.
이 책은 이 정신나간 시대가 전세계적으로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어느 정도의 통찰을 준다. 이 정도만 해도 대단한 기여다. 이 책의 다소 근엄한 부제인 ‘전통주의의 복귀와 우파 포퓰리즘’은 펭귄출판사판 페이퍼백의 것이다. 원래의 부제는 훨씬 직관적이다. ‘Inside Bannon’s Far-Right Circle of Global Power Brokers.’ 배넌의 극우 글로벌 권력 브로커 서클의 내부. 그리고 이 책은 전통주의(T)로부터 시작해서 트럼프의 1기 선거 캠페인의 전략가이자, 한때 백악관 수석 전략가였던 스티브 배넌의 경로를 따라가면서, 그와 푸틴의 참모 내지는 이론가로 불리는 알렉산데르 두긴, 尹某(그의 이름 석자를 쓰고 싶지 않다)와 하는 짓이 몰락이 꽤나 흡사한 브라질의 보르소나우와 그의 이념적 지주 올라부 등의 이야기를 다룬다. 스티브 배넌이 지금은 백악관에 없다고 2기 트럼프 정부에서 영향력이 없을까? 그가 진행하는 시사 쇼인 ‘War Room’은 지금도 트럼프가 애청하는 프로그램이고, 워룸 기자가 백악관 기자회견장 맨 앞줄에 앉아있다. 尹某도 마지막까지 극우 유튜브에 몰입하지 않았던가. 사실 전통주의의 귀환이란 다소 애매한 부제이다. 언제 전통주의(T)가 표면에 등장한 적이 있었던가?
그럼 이 책은 무엇을 말하고 있나?
우선, 전통주의(T, 대문자 Traditionalism을 이렇게 표기한다.) “이들은 현대성modernity에 반대한다. … 현대성은 사회적 삶을 조직하는 특정한 방법론이라. 또한 그러한 방법론이 유럽 대륙 및 유럽화된 세계를 장악하게 된 특정 시기를 의미한다. 대략 1800년대 이후부터 오믈날에 이르는 기간이다. 과감하게 일반화하자면 현대화modernization는 공적 종교가 퇴조하고 이성으로 대체되는 과정이다. 이에 발맞춰 상징적 세계는 약화되고 대신 문자적 세계가 강화된. 쉽게 수치화되고 수량화될 수 없는 것은 사람들의 관심 영역에서 밀려난다. 영적이고 감성적이며 초자연적인 것은 뒷전이 되고 그 대신 물질적인 것이 앞에 나선다. 현대화 과정에서는 더 크고 더 많은 군중 조직이 더 강력한 정치적 동력으로 작용하게 된다. 국민국가와 식민주의 혹은 산업 생산 및 상품 소비주의 등이 그것이다. 이는 사회적 삶을 표준화하려는 시도를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그리하여 거대한 대중이 생성된다. 마지막으로 현대화의 핵심은 인간이 혁신을 통해 오늘보다 더 나은 세상을 성취할 수 있다는 신념이다. 다시 말해 진보에 대한 신념은 서구 정치에서 더 많은 자유와 평등으로 구현될 것이라는 믿음이다.” (25-26) 이 장황한 인용과 설명을 무엇을 가리키는가? 이 사람들은 인류가 지난 200년 동안 걸어온 길을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선택적으로 부정하고 삭제하려는 것이다. 그래서 자신들은 전통주의(T)라고 부른다.
그렇다면 이들이 따르는 것은? “’진보’를 추구하기보다 자신들이 따르는 영원하고 초월적인 진실과 삶의 방식에 헌신하고자 한다. 일부 전통주의자(T)는 자신들의 가치관을 허울뿐인 현대 정치의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는 사상 체계로 건설하고자 한다. 심지어 파시즘을 초극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결과적으로 보면, 전통주의(T)는 극우적 반이민주의 사고방식에 포퓰리즘과 내셔널리즘 행동주의를 대충 뒤섞은 얼치기 사상이 되고 말았다.” (26) 이런 허무맹랑한 이야기들, 허튼 소리들을 합리적으로 또 사상적으로 이해하려고 하면 안 된다. 그것이 이 책을 읽는 중요한 독법이다. 이 사람들에게서 어떤 사상적 통일성이나 일관성을 찾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어떤 일관되고 설명할 수 있는 계보를 찾으려고 해서도 안 된다. 어떤 역사적 사실에 부합하는 해석을 추구하려고 해서도 안 된다. 그런 사상사를 연구하는 모든 방법론은 던져 버려야 한다. 타이텔바움은 어떻게 이런 것을 발견했을까? 그는 우선 전통주의자(T) 운동권에 대해서 주요 참여자를 인터뷰해, 보존 연구salvage research를 수행했다. 일단 고립된 사상이 소멸하기 전에 기록해 둔다.(124) 그리고 거기서 ‘병렬적 유사성’(302)을 발견해 낸다. 이것이 이들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론이다.
타이텔바움은 음악학 연구자다. 그것도 민족음악학. 나는 음악학을 연구해 본 적이 없기에 어떤 사유방식을 가지고 있는지 모른다. 모계는 스웨덴계이고, 부계는 유대계인 그는 북유럽의 바이킹 메탈을 연구하다. 이들로부터 북유럽 극우의 편린을 발견하고, 거기서 연결해 나가다. 이 시대의 극우이론가들의 전세계적 얽힘을 발견하게 된다. 인적인 얽힘과 돈의 얽힘까지. 책의 앞표지에 세계지도와 이들이 발견된 지점들이 표기되어 있는 것도 인상적이다. 이 책이 올해 나왔다면, 한국에도 서울과 대구에 그리고 부산에 점이 찍혔을 것이 분명한데. 그에게 이런 식의 연구가 가능했던 것은 음악학 연구자였기 때문일 것이다. 근거 없는 짐작이지만, 자신도 그렇게 표현한다. 전통적으로 정치사상이나 이념을 연구하는 접근법이었다면, 애초에 이런 것들은 사상이 아니라며, 폐기해버렸을 그런 주장이다. 그러나 그런 것에 동조하는 이들이 하나는 트럼프 곁에 다른 하나는 푸틴 곁에 있으며, 심지어 이들은 만나기도 했다. 브라질의 보르소나우는 덤이고. 요즘 브라질 극우집회에서도 성조기와 이스라엘기가 보인다.
다시 전통주의(T)로 돌아가자. 사실 반복하는 것이 역겨울 때가 있다. 일단 창시자는 프랑스 출신의 개종 무슬림인 르네 그농René Guénon(26)으로, 그는 단 하나의 태초의 근원적 종교 만을 인정하고, 이슬람 수피즘이 진리를 전달하고 있다고 믿는다.(27) 일단 여기서 이게 뭐지라고 의문이 든다. 자, 이들의 시간관, 이들은 또 힌두교의 가르침에 따라서(여기서 또 뭐지? 이슬람은 일신교이지만, 힌두교는 다신교 아닌가? 그런데 거리낌 없이 뒤섞는다고?) 인간의 역사가 네 가지 시대를 거치면서 반복하는데, 금의 시대(성직자 지배), 은의 시대(전사 지배), 동의 시대(장사치 지배), 암흑의 시대(노예의 지배, 민주주의와 공산주의를 가리킴). 그리고 지금이 바로 암흑의 시대다. 이를 칼리 유가Kali Yuga라고 한다. 이들은 현재를 저주한다.(28-29) 이런 말세는 파괴되어야 한다.
현재를 저주한다, 그것이 바로 현대성에 대한 반대이다. 그리고 황금시대를 꿈꾼다만, 가장 확실한 것은 현재를 부정하고 현재를 암흑시대라고 부르는 것이다. 尹某의 파면이 확장되자 마자. 나붙은 현수막에 이런 말이 있었다. ‘칠흙 같은 암흑시대. 횃불이 되겠습니다.” 나는 암흑시대라는 표현에서 전율했다. 그렇기에 이 작자들은 시스템 파괴를 개의치 않는다. 그 이유가 깊은 신앙적 사상적 동기이든, 아니면 현재의 이해관계든 또는 그 무엇이든. 이런 순환론적 세계관은 한국에는 없을까. 지난 세기말에 유행했던 후천개벽 사상을 기억하는가? 증산도를 비롯한 수많은 신흥종교들에서 퍼져나갔던. 기독교라고 무관할까? 세대주의적 종말론 같은 이 시대가 말세이며,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열리는 새로운 세상을 고대하는 신앙은 얼마나 뿌리깊은가? 평양 부흥의 주인공이자 독립선언서 33인의 한 사람이었던 길선주 목사가 말년에 침잠했던 말세론은 둘러싼 정서는? 지난 세기 말 한국 교회를 휩쓸었던 선교의 열풍, 그 중에서도 미전도종족에 모두 복음이 전파되면, 그리스도의 재림을 다시 말해, 종말을 앞당길 수도 있을 것 같은 현혹하는 메시지들은?
현재를 비관하는 이러한 사회적인 분위기는 세기가 바뀌면서 사라졌을까? 왜 그렇게 전세계적으로 아포칼립스 물이 유행하는가? 영상물에서는 좀비가 넘쳐흐른다. 바이러스로 멸망한 세계, 외계 침공으로 무너진 세계, 핵폭발로 망해 버린 세계, 그 어떤 이유로든 망해버린 세상에 대한 이야기가 넘쳐흐르는 이유는 자신이 살고 있는 삶이 망한 세상 속의 삶처럼 여기기 때문이다. 칼리 유가 속을 살고 있는 느낌이 들 때, 이런 사상이나 흐름으로 쉽사리 이끌리지 않겠는가? 웹툰이든 OTT든 온갖 서브컬처와 스낵컬처에 등장하는 이야기의 배경 중에 이미 망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얼마나 많은지 들여다보면 놀랄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하나의 심리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모두 함께 망한다면, 거기서 나는 다시 출발할 수 있을 텐데. 어떤 부모나 가족, 재산, 학력, 사회적 지위도 의미없는 좀비와의 투쟁만으로 평가받는 세상이라면 나도. 전통주의(T)라는 바로 그 사상이 구체적으로 전파되어야만 그렇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우린 이미 그런 세상 속에 있다.
여기서 또 한 사람 르네 그농을 계승한 이탈리아 출신의 율리우스 에볼라Julius Evola가 등장한다. 그는 토착 유럽 문화를 수호해낼 도구로서 전통주의(T)를 추구했으며, 위계상으로 영성은 상위, 물성은 하위, 인류는 인종에 따른 위계를, 흰 피부의 아리안, 유대인, 아프리카인, 기타 인종. 남성이 여성에 우월, 북반구가 남반구에 우위. 전통시대를 황금시대로 묘사. 사회질서의 상위에 차별성, 하위에 대중적 균질성. 영성, 고전성, 아리안 혹은 백인종, 남성성, 북반구, 태양 숭배, 사회적 위계질서의 뒤얽힘. 현대의 암흑시대는 과거에 대한 멸시, 진보에 대한 맹신,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페미니즘과 세속주의, 성적 쾌락주의 등등.(30-31) 이런 개념도 아닌 말들이 얼기설기 뒤섞이면서, 전통주의(T)라고 하는 것을 구성해 낸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런 사람들이 앞에 있다고 계보학적 접근을 시도하지 말아야 한다. 그럴 필요가 없다.
그러면서 타이텔바움은 스티브 배넌과의 만남과 그의 인생궤적을 추적한다. 흥미롭지만 직접 읽어보시면 된다. 그는 다양한 방법으로 스티브 배넌과의 만남과 그를 통한 여러 전통주의자(T)들과의 만남을 이어간다. 인상적인 이야기 몇을 소개한다.
서구 문명은 위기에 처했다. 자본주의는 국가 권력을 등에 업고 정치권과 유착된 소수의 특권층만 배불리는 부패 패거리들과 이기심만 가득한 자유지상주의자들이라는 괴물로 탈바꿈했다. 청년들은 타락하고, 신종 이슬람 극단주의는 날로 대담해지고 있다. 이제 자본주의는 영성에 복종해야 한다. 인간을 상품으로 대하는 천박한 본능을 제한하고 유대교와 기독교적 가치에 귀의해야 한다. 보수혁명을 촉구한다. 좌파에 맞서는 것이 아니라 서구 문명의 보수적 기득권에 맞서는 혁명이 필요하다.(56) 저자가 정리한 배넌의 이야기들이다. 마침 이 책과 시몬 베유Simone Weil의 『쿠튀리에 신부에게 보내는 편지』를 번갈아가면서 읽고 있었는데. 이야기의 유사성에 흠칫 놀랐다. 정치적으로는 서로 정반대의 길을 걸었던 르네 그농과 시몬 베유의 이야기는 어딘가에서 흡사하게 교차하고 있다. 참고로 일본에서는 1960년대에 르네 그농이 처음 소개될 때부터 시몬 베유가 언급되고 있다. 70년대에 연구서가 나왔고, 80년대에는 그농의 책이 두 권 번역 출간되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게논ルネ 문명은 위기에 처했다. 자본주의는 국가 권력을 등에 업고 정치권과 유착된 소수의 특권층만 배불리는 부패 패거리들과 이기심만 가득한 자유지상주의자들이라는 괴물로 탈바꿈했다. 청년들은 타락하고, 신종 이슬람 극단주의는 날로 대담해지고 있다. 이제 자본주의는 영성에 복종해야 한다. 인간을 상품으로 대하는 천박한 본능을 제한하고 유대교와 기독교적 가치에 귀의해야 한다. 보수혁명을 촉구한다. 좌파에 맞서는 것이 아니라 서구 문명의 보수적 기득권에 맞서는 혁명이 필요하다.(56) 저자가 정리한 배넌의 이야기들이다. 마침 이 책과 시몬 베유Simone Weil의 『쿠튀리에 신부에게 보내는 편지』를 번갈아가면서 읽고 있었는데. 이야기의 유사성에 흠칫 놀랐다. 정치적으로는 서로 정반대의 길을 걸었던 르네 그농과 시몬 베유의 이야기는 어딘가에서 흡사하게 교차하고 있다. 참고로 일본에서는 1960년대에 르네 그농이 처음 소개될 때부터 시몬 베유가 언급되고 있다. 70년대에 연구서가 나왔고, 80년대에는 그농의 책이 두 권 번역 출간되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게논ルネ・ゲノン이라고 음역하는데. 사실 이것도 충격이지만, 역시 일본에는 보수, 극우, 근대초극 등의 사상이 뿌리가 깊다.
배넌으로부터 알렉산드르 두긴으로 이어진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시작된 후 국내에서도 관심을 가지게 된, 두긴의 지정학은 자유주의적 ‘대서양 세력’과 그에 반대하는 ‘유라시아’ 세력의 갈등으로 그려낸다.(68) 이런 사람과 트럼프나 배넌이 조응한다면 그건 간단한 이야기다. 서유럽과 아메리카는 미국이 유라시아는 러시아가 분할해서 영향력을 행사하자는 것. 지금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결말지으려는 미국의 행동이 딱 이렇지 않은가. 두긴의 말을 좀 더 들어 보자. 러시아는 “미국의 국내 정치활동에 지정학적 혼란을 주입해야 한다. 온갖 종류의 분리주의와 민족적·사회적·인종적 갈등을 부채질해야 한다. 극단주의자, 인종주의자, 사이비 종교 단체 등 온갖 저항운동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 그리하여 미국의 국내 정치 과정을 불안정한 상태로 빠뜨려야 한다.” … “동시에 미국 정계에 고립주의적 성향을 부추기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69) 작금의 미국 정치 상황을 보면 성공한 것 같지 않은가? 흥미롭게도 최근에 두긴의 『민족사회학』이 한국어로 출간되었다. 게다가 『지정학의 기초』가 한국어로 발췌번역되어 있다는 사실을 한 친구가 알려주었다. 『러시아의 지정학적 미래』라는 제목으로 육사 화랑대연구소에서 무려 2000년에 출간된 바 있다. 이 제목은 원 저작의 부제였다. 이 책은 비판매 자료이긴 하지만, 대학도서관이나 국립중앙도서관 전자자료로 접근도 가능하다. 그농은 7~80년대에 일본에서 두긴은 21세기 한국에서. 확실히 요즘 번역되어 나오는 걸 보면, 일본 학계의 전성기는 다소 지난 느낌이다. 예전에는 무조건 일본어 번역부터 찾아봤는데. 언젠가부터 흐름이 가늘어졌다. 한국어 번역도 지금의 40~50대가 늙으면 가늘어지려나. 그땐 인공지능으로 다 해결되려나, 뭐 어쨌든. 두긴에 대한 일본어 자료는 온라인 상에선 대학 학술지에 실린 서평 하나와 아즈마 히로키東浩紀가 운영하는 「겐론」에 실린 글이 전부였다. 내가 모르는 게 많겠지만.
배넌은 유럽에서 활발하게 활동했다. 브렉시트 운동과 영국독립당, 그리스의 황금새벽당, 헝가리의 오르반 빅토르 총리와 요비크당 등. 그리고 마침내 트럼프 1기 선거운동의 핵심에 서게 된다. 이때 그의 당선에 핵심적 역할을 한 시골 출신 저학력 백인 노동자 계층을, 마술적이고 영적이며 형이상학적 힘으로, 미국 정신의 영원한 본질을 수호하는 사람들로 보았다. 이들은 현대성에 맞서는 군대로 조직될 영적 병사들이었다.(98-99) 그러니까 적어도 한 두번의 선거에 동원된 것만은 아니었다. 여기서 전통주의(T)와 포퓰리즘의 결합이 이루어진다. 전통주의(T)는 현대성을 비판한다. 현대성의 특징은 가치관의 ‘전복’이므로, 현대 사회의 모든 공식적인 것을 불신하도록 촉구해야 한다. 진보라는 변화는 사실 퇴보이다. 이상의 위계의 맨 위에 영성이 위치하며, 말하자면 모두가 성직자가 되어야 한다. 일종의 영적 자수성가론이다. 이런 이상적 가치를 추구하고 진정성 있는 삶을 살아가는 데 특정 유형의 사람들이 다른 이들보다 더 적합한 자질이 있는데, 이들은 위계질서 맨 아래에 자리하는 자들로, 육체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노동자 계층, 민중, 진정성의 원천, 국가정신의 대표자. 소방관, 경찰, 교사들. 영원한 이상의 담지자이자 영혼의 운반자들.(100-108) 비록 저자는 트럼프를 지지한 이들이 ‘인종적으로 고립된 공동체에 거주’하는 사람들이었다고(111) 비판하지만. 다시 한번 느껴지는 기시감. 이건 농민운동이나 거슬러 올라가면 동학사상 같은데서 많이 보던 건데. 게다가 80년대 후반의 노동운동 하던 사람들에게서도. 아마도 이제는 전혀 다른 옷을 입은 김문수 같은 이도. 이제보니 이건 NL, PD의 문제가 아닌 건가. 여기서 한발짝 움직이면, 소비에트 평의회 같은 것으로도 가는 게 아닐까? 이걸 다 정리하고 있다가는 내가 미쳐버리는 게 아닐까? 이젠 정말 중요한 것 몇 가진 옮겨보자.
2018년 8월 스티브 배넌은 중국공산당에 적개심을 품고 있으며 망명 중인 중국인 억만장자 궈원구이郭文貴로부터 자금 지원을 받았다. 스티브는 중국 자금과 인프라의 전 세계적 확산은 글로벌리즘의 해악이라며, 국민국가의 주권을 침해한다고, 중국이 종교를 감시하고 억압하는 것 역시 전통주의(T)에 대한 위협이라고 떠들었는데. 이제 그 일을 하는데 연봉 100만 달러를 받게 되었다.(120) 이제는 글로벌한 현상이 된 혐중이 등장한다. 헌데 흥미롭게도 중국에서 쫓겨나 망명 중인 인사의 자금지원을 받는다. 물론 스티브 배넌은 아래에서 보이듯, 원래 중국 비판과 혐중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거기에 반중인사의 자금지원이라는 휘발유가 부어진 것 뿐. 하지만 이 점은 좀 흥미롭다. 유라시아 대륙을 지배하는 게, 중국이면 왜 안되고 러시아는 왜 가능한가? 원래 대륙을 지배하던 건 중국에 가깝지 않나? 그건 오토 폰 비스마르크의 말을 따르면 된다. 러시아는 백인이니까.(122) 이들의 논의에서 인종주의란 디폴트 값이다. 피부색은 희고 볼 일이다. 이쯤 되면, 꼭지가 돌 지경이지.
이제는 이런 책들을 출판하는 전진기지인 출판사, 악토즈의 편집장 존 모건으로 이어진다. 그는 뭄바이의 힌두교 신비주의 아슈람 공동체에서 자기를 발견한다. 백인종 국가주의를(white nationalism의 이 책의 번역, 달리하면 백인 민족주의) 추구하는 그의 영적 여정은 경탄스럽다. 힌두교는 어떻게 우월한 자들의 종교가 될까. 인도는 인도유럽어족의 영역에 속하기 때문에. 여기서 다신교적 믿음과 순환적 시간관이 생겨났기 때문에. 중동의 일신론이 아니라.(128) 그는 이런 여정을 통해 ‘영혼의 인종’이 된다. 영혼과 육체가 모두 순수한 아리아 인종의 창조에 도전한다.(130-131) 인도 유럽어족과 아리아 인종. 할 말이 없다. 하지만 나중에 자신의 부계가 이란계인 어떤 미국인은 페르시아 제국과 아리안 인종의 연관성도 주장한다. 이들이 이런 식이다.
백악관 근무 초기 스티브는 전지구적 폭력과 분쟁이 시작될 것으로 보고, 미국 내부 갈등은 반드시 군사적으로 폭력적으로 해결할 필요는 없지만, 파괴는 필요하다고 보았다. 공적 기관의 파괴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암흑시대가 어두운 이유는 위계질서가 없기 때문으로, 거대한 대중을 파괴하려면 혼란의 활동이 요구될 수도 있다. 온전한 창문은 광기이며, 산산조각나 흩어진 유리가 오히려 조화다. 현대정치의 붕괴를 추구해야 한다. 거대한 “행정국가”를 해체해야 한다. 위에서 시작하는 방법이 있다. 자신이 속한 제도권에 적대적인 인물을 권력의 위치에 올려놓아, 기관의 임무와 기능을 망가뜨리는 것.(139-140) 트럼프 1기의 교육부 장관, 연방 환경보호국장, 국무장관, 백악관 예산관리국장. 이들은 자신이 다스리는 영역을 파괴하고, 행정 국가를 파괴하려고 조직의 지도자 위치에 투하된 자들이다.(140-143) 애초부터 국정 계획이 없고, 트럼프 행정부 초기의 혼란 이면에 나름 정교한 신학적 동기가 보인다는 점.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은 영국의 정치이론가 로저 그리빈의 개념인 재연성palingesis로, 이는 파시즘의 특징인데. 잃어버린 과거의 위대한 순간을 막연하게 일컬으면서 현재를 쇠락의 시간으로 묘사하고, 다시 영원성을 획득하려는 시도라는 점.(144) 배넌이 보기에 트럼프는 “혼란을 일으키는 자”이며, “파괴자”이다. 그는 “행동파로 책을 읽거나 시대 순환의 뜻을 할거나 그럴 필요가 없이 그냥 해버리는 자”이다.(146) 배넌은 단기간에 연달아 행정명령을 남발하는 전략을 세운 사람이었는데. 그는 트럼프의 정적들을 혼란에 빠뜨리기를 원했고, 언론을 교란하며, 적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의료보험, 환경, 낙태, 이민 문제를 공략하고, 빠르게 공격해서 혼을 빼버리자. 반대파가 우왕좌왕하는 동안 트럼프는 반박도 안 듣고 일을 추진할 수 있다.(148) 트럼프의 파괴행위에는 질서, 방향 목적이 있다. 그는 ‘시간 속의 사람’이다. 이는 사비트리 데비의 논의로, 계몽을 담당하는 ‘시간 위의 사람’이 있고. 이 시대 새롭게 의미를 확보하게 된 단어. ‘시간을 거스르는 최후의 인간’ 신, 창조자. 아돌프 히틀러는 ‘시간을 거스르는 자’였다.(!49-151)
그러니까 트럼프가 시스템을 때려부수는 것 자체가 목적이다. 그 혼란 속에서 새로운 질서가 구축될 것이다. 그리고 자세한 목표는 몰라도 된다. 그는 ‘때려부수는 자’ 이므로. 트럼프를 이해하려면, 신학이 필요하다. 어떤 종류의 정치신학이. 그리고 이 모든 일들을 지난 尹某의 3년간 우리가 겪어 온 일이다. 도자기 박물관에 들어간 코끼리는 너무나 고급스런 해석이었다. 도대체 왜 그러는가? 우리는 끊임없이 왜라고 물었지만, 답은 없었다. 그는 때려부수는 자였기 때문에. 그렇게 대법원장의 지랄발광도 이해된다. 합의와 설득에 의한 법원의 권위, 지금까지 쌓아올렸던 것 따윈 중요치 않다. 다 때려부수고, 다시 위계를 세우면 된다. 그 질서의 최상단에는 서울법대와 사법고시 합격자가 있으려나? (이제보니 둘 다 없어졌다.) 그래서 그들이 자연스런 지배자이고 또 그래야만 하는건가? 이런 점에서 보면, 시험귀족, 엘리트는 한국 사회에서 아무래도 인종의 한 형태이다. 인종은 신화이며, 모든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단일한 종이라는 바로 그 의미에서 그렇다. 피부색에 의한 인종이란 비유하자면 개나 고양이의 품종 같은 것이다. 개나 고양이의 품종은, 비슷한 것들이 반복적으로 교배되어 형질이 고착되어 보이는 것 뿐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품종에 집착하고, 그 마음 한 구석에는 인종이 자리잡고 있다. 선호하는 품종이자, 브랜드 만으로도 우월성이 상정된다는 의미에서, 이념으로서의 인종인 셈이다. 자신들끼리 모여들려는 성질도 마찬가지고. 시험귀족의 고착화 시고, 위계질서와 인종주의, 흥미롭네, 자연스럽기도 하고.
여기서 또 한 사람 열대의 트럼프. 브라질의 자이르 보우소나루가 있다. 선거에서 패배하자 쿠데타를 획책하고, 사법부를 동원하고, 그러나 지금 재판 중이지만 거리를 휘젖고 다니는 그런 인물이다. 그의 이론가라 할 수 있는 올라부 지 카르발류를 추적한다. 미국의 시골에 살고 있는 그는, 언론과 대학을 비판하고, 사회의 영적 기초가 필요하며, 브라질의 진정한 국민은 기독교인이라고 주장한다.(157) 그는 수피즘의 일파인 타리카tariqa를 거쳤다. 이들의 행동은 넷플릭스의 다큐 「나는 신이다」에서 공개된 정명석의 모습 그대로였다. 전통주의자(T)였던 그는 밀교Esoteric를 따르는 자였다. 이성과 과학으로부터 거절당한 지식, 개인적으로 영적인 느낌을 따르는.(167) 그러나 올라부는 후에 카톨릭으로 옮겨간다. 그는 진지한 카톨릭이 되는데. 이 과정은 전통적 의미의 개종과는 다르다. 이 모든 것은 연결되어 있다. 이들의 세계에서 전통적인 또는 관례적인 종교적 분류 또는 해석이나, 친소관계 따위는 아무 의미가 없다.
알렉산드르 두긴의 입장은 ‘반자유주의’이다. 두긴이 말하는 리버럴리즘은 서구 전체의 주류적 좌파와 우파가 공유하는 공통 기반이다. 자신의 사유지를 수호하겠다는 몬태나주의 생존주의자, 이민자 권리를 옹호하는 파리의 시위자, 프랑크푸르트의 투자은행가, 브루클린의 페미니즘 운동가. 정부로부터의 자유, 자신의 계급으로부터의 자유, 경제·정치·사회적 환경으로부터의 자유. 모든 자유의 실천은 개인주의로 귀결되며, 이를 경멸한다. 자유주의는 집단적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인간을 종교, 가족, 국가, 나아가 자신의 육체로부터 관념적으로 단절시켜 생각한다. 20세기에는 자유주의에 맞서는 공산주의와 파시즘이 있고, 이들은 모두 대안적 실체를 내세웠다. 개인이 아니라 집단적 실체인 계급과 인종.(178-179) 현대성을 초월하고 넘어서자, 현대성의 결과 뿐 아니라 원천도 거부하자. 전근대성의 과거가 지녔던 가치를 위해 싸우자, 그것이 미래의 가치이다. 전통주의(T) 사회에 살아 숨 쉬던 영원성을 위해 투쟁하자. 두긴의 정치학은 영적·문화적 공동체에 집중한다. 두긴은 각자 구별되는 사회 및 혈족을 숭상하고 보존하는 정치, 각자의 언어로 세상을 히애하고, 고유의 의미와 존재 방식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 하이데거의 현존재Dasein을 차용한다.(180-181) 다극성 세계를 위해 미국에 도전해야 한다.(182) 이런 이야기들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실체라는 말이었다. 근대 국민국가는 실체가 아닌 이념에 기반한다. 그 이념은 헌법이라는 형태로 현전한다. 그러면서도 실체를 기웃거린다. 단일민족국가와 백의민족이 그것이다. 실체가 있는 듯이 집착하면, 인종주의, 외국인혐오, 배타주의가 싹트게 된다. 독버섯이다.
이제 이야기는 알렉산드르 두긴과 스티브 배넌의 로마에서의 만남으로 이어진다. 두 사람의 만남에서 오간 이야기의 몇 토막. 우리 러시아는 공산주의에 모든 걸 빼앗겼다. 전통주의(T)적 관점에서는 완전한 무. 반면 미국은 현대성의 국가지요. 유럽에는 과거와의 연결이 있지만, 러시아는 폐허 아래에 묻혀 있다. 다시 파내면 된다. 두긴의 말이다. 미국은 관념이 아니고 국가이며, 민중이다. 뿌리가 있고, 정신이 있고, 운명이 있으며, 노동계급과 중산층이 있다. 순례자와 청교도가 존나게 이어져 왔다. 미국인도 리버럴리즘과 글로벌리즘의 피해자이다. 미국 사회의 뼈대, 미국에 영혼을 부여하는 자, 미국인들은 피해자다. 배넌의 말이다.(190-191) 이들은 서로의 주장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지만, 각자 자신의 미국과 자신의 러시아가 파괴되었다고 말한다. 여기서 또 하나 식민지와 한국전쟁 이후 완전히 파괴된 한반도에 있는 남북한의 두 나라를 연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뿌리가 없다는 의식과 관련이 있는 것일까?
트럼프 운동은 미국의 민중이 폭정에 맞서는 것이며, 미국은 러시아의 적이 아닌 동맹으로 같은 영혼과 가치관을 공유한다. 유대 기독교 서방 세력으로, 내셔널리즘과 포퓰리즘, 전통주의(T)를 향해서 함께 해야 한다. 배넌의 말이다.(192-193) 미국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전쟁을 마치려는 방식은 왠지 둘 만 서로 인정하는 모습이라 의심스럽기 그지 없는데. 덧붙인다. 중국은 전지구적 자유주의의 적이 아니라. 글로벌 세력은 중국의 중상주의적 전체주의에 깊이 연루되어 있다. 중국은 이 모든 것을 추동하는 경제적 엔진이다. 중국이 시스템을 움직인다. 시스템 전체가 중국의 이윤을 극대화하고 부를 축적하는 단계이다. 중국의 노예들이 서방 세계 실업자들을 대신해서 상품을 제조하는 것이 현재의 시스템이다. 배넌의 말이다.(194) 이 둘이 얼마나 동의했는지. 이들이 실제 동맹으로 이어졌는지. 정책으로 얼마나 이어졌는지 알 수 없지만. 지금 트럼프의 관세전쟁과 반중 정책에서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것이 딱 이것이다. 이런 정신상태mentality가 밑바탕에 깔려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리밸런싱 같은 그럴 듯한 말 아래 감추어진 속내는, 동아시아의 근면한 노동과 집약적 생산은 노예노동이라는 것이 아닐까. 최근의 신안 염전의 노예 노동에 대한 지적이나 신장 위구르의 죄수노동이나 강제 노동에 대한 지적은 사실에 대한 직시일 뿐 아니라, 단순한 사실을 넘어서는 광범위한 심증을 입증하는 하나의 결정적 사례였던 것은 아닐까?
배넌은 올라부와도 만난다. 배넌의 워싱턴 DC 사무실은 자칭 대사관이다. 올라부는 브라질이 아닌 미국의 시골에서 대안 교육을 주창한다.(202) 대안 교육을 말한다거나 종교에 교육을 맡기자는 건 전통주의(T)의 단골 메뉴다. 올라부는 전통주의자(T)는 과학을, 현대과학을 적극비판한다고 주장한다.(204) 엊그제 트럼프가 또 과학예산을 삭감하고, 하버드를 비롯한 대학과 싸우던데. 대학에서 좌파를 몰아낸다며. 이것도 전통주의(T)와 연결되어 있던데. 尹某도 연구개발 예산을 깎았지. 도대체 이것들은 어떤 생각으로. 올라부가 카톨릭이 된 것은 반공이기 때문이다. 올라부는 만국의 기독교 세력을 지지한다. 세계 각국, 이스라엘, 미국 보수주의 내셔널리즘을 지지한다. 미국 시골 사람들의 사회적 관습에는 신성한 면이 있다. 올라부는 미국 보수층의 상투적 표현을 구사한다. 미국 정치계가 뒷전으로 물러날수록 미국 사회에는 통합, 자선활동, 자원봉사가 넘쳐난다고 주장한다.(218) 보르소나우를 지지하는 브라질의 극우파 시위현장에서도 성조기와 이스라엘기를 흔드는 이들이 등장한다. 지구의 서로 반대편에서 이렇듯 닮은꼴이 가득하다.
대안우파라는 용어는 비주류 철학자이자 교수인 폴 고트프리드가 만든 말이다. 대중의 관심을 끈 것은 2016년 대선 당시 스티브 배넌이 브라이트바트뉴스를 “대안우파의 플랫폼”이라고 소개한 것으로, 배넌이 트럼프 대선 캠페인을 총괄하면서 용어는 굳어졌다. 힐러리 클린턴의 비판대로 대안우파는 백인종 국가주의자들이다. 대안우파는 다양했지만, 이들은 모두 이민에 대한 강한 반감, 공화당 내부의 제도권 보수 정치에 대한 적대감, 인터넷 행동주의에 집중하는 방법론을 공유했다.(253) 저자의 말처럼 서구 민주사회에서 극우지하운동을 통해 주류 정치적 영향력을 획득한 사례다. 유럽 내셔널리즘, 브렉시트, 트럼프 당선. 그리고 한국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10년 전만해도 유튜브 카메라를 들고 사람들을 괴롭히고 다니거나, 골방에서 떠들어대기만 하던 이들이 이제는 보수적인 종편 채널에 패널로 당당하게 등장하는 일이 일어난다. 이들은 이제 전면에서 자신들의 자리를 어느 정도 확보했다.
미국이 먼저다라는 것이 스티브 배넌의 원칙이며, 자신을 위한 내셔널리즘이 타자를 위한 내셔널리즘이 된다. 누구도 남들과 달라서는 안 되는 세상, 그것은 균질화homogenization이며, 칼리 유가의 디스토피아다. 전통주의(T)는 위계질서를 중시한다. 그들에 의하면 계급에 따라서 사회적 차별성이 존재하는 것이 건강한 사회다. 중요한 것은 각각 잠재적으로 동등한 주체들이 동등하게 차별화된 채 공존하는 것이다. 이것이 다원주의이고, 수평적 차별성이다. 이렇게 수정된 전통주의(T)는 2차 대전 전후 세대, 베트남과 아프가니스탄 전후 세대에게 큰 설득력을 가지고 다가왔다. 차별성의 적대자는 보편주의다.(266-269) 이들은 이런 식으로 언어과 개념을 전유하면서 다른 말을 만들어 낸다. 다원주의, 차별성은 이제 전혀 다른 말이 되었다. 표현의 자유가 어떤 이들에게는 혐오할 자유를 의미하는 것처럼. 차별성에 관한 논의를 읽으면서 나는 수저론을 떠올렸다. 수저론의 어원은 ‘은수저’다. 실버스푼으로 이유식을 노예나 하녀가 떠먹이는 걸 뜻하는 말. 그게 21세기 한국에서 흙수저에서 금수저, 다이아수저 등으로 변화했다. 처음 수저론이 등장했을 때, 좌파 아저씨 꼰대들은 이 수저론이 전복의 담론이자, 혁명적 불만의 담론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다소 관성적으로 반응했다. 그러나 수저론을 내뱉는 이들은 그런 서투른 선동에 호응하지 않았다. 이들은 때로는 자조적이고, 때로는 순응적이었다. 운동과 연대를 말하는 꼰대 아재들에 대해 위선이라고 비아냥대는 한편으로, 금수저나 다이아수저에 대한 동경이 나타났다. 언제부터인가 대중 문화에서 재벌 3세나 4세가 형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자신의 돈과 권력을 써서 정의를 구현하는 재벌. 배트맨인가? 수저론을 단순한 사회비판의 담론이 아니었다. 그건 순응과 동경의 결합인 동시에 기득권을 수호하는 논리이기도 했다. 비록 그것이 시험으로 획득한 아주 작은 기득권에 불과하다고 해도.
소위 ‘현대적 삶’의 여러 측면에 불만을 느끼는 것은 흔한 일이나, 전통주의자(T)들은 현대성에 전면 반대한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이들은 현대성의 모든 가치를 파괴하고자 한다. 전통주의(T)의 급부상은 자유민주주의 국가들 전반에 만연한 정치적·사회적 불만을 극적으로 보여주는 표상이다. 전통주의(T)는 현대적 삶의 무의미성을 개탄한다. 국가와 공동체가 문화와 영성을 도외시하고 오직 경제적 이득과 관류주의적 형식성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주의(T)는 전복적인 이념으로, 특유의 신학적 종말론적 정당화 논리를 동원해 대학 혹은 언론을 거부하라고 주장한다. 자유주의적 진보의 기획은 사회 발전이라는 미명하에 인간의 삶을 모독했기에. 전통주의(T)는 인종주의를 부추긴다.(322-323) 전통주의(T)를 관통하는 시간순환론이 가장 우려스럽다. 더 나은 미래, 밝은 미래를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라 영원을 대리하여 싸우고자 한다. 전통주의자(T)는 우리 시대가 파괴의 시간이라 믿으며, 기념비적 업적을 때려 부수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전통주의자들(T)이 주장하는 이념적·영적 신념은 대부분 불특정하다. 스티브 배넌은 내재성과 초월성을 언급했다.(324-325) 전통주의(T)가 그리는 이상적 세상은, 축소된 규모의 세상, 정치적 영역이 줄어든 세상, 근본적으로 다른 목표를 지닌 세상. 제국도 없고 초국가적 기구도 사라진. 국가, 문명, 분리된 민족의 세상. 국민은 과거와 미래를 공유하며, 본질을 소유하고, 시간을 초월하는 영적·문화적 존재 방식이 되는.(325) 국민의 본질을 가장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는 이들은 현대성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세속적인 교육 기관, 세계 시민주의, 시간으로부터 가장 동떨어진 사람들이며, 이들은 노동계급이자, 민중이고, 영원성을 보유한 최고의 존재다. 전통주의자(T)는 영성을 가장 중심에 두어야 한다.(326) 전통주의(T)는 원래부터 물질적 불평등과 불공정을 고려할 의욕이 없는 사상으로, 세상이 뒤집힐 게 뻔하니까 과격한 수단을 동원해서 세상을 바꾸는 것이 정당화된다는 생각이다.(327) 전통주의(T)는 원칙이라는 면에서 포퓰리즘 시위대의 조악한 구호와 상당히 유사한 울림을 지녔다. 이성 비판, 글로벌리즘 반대, 사회적 진보 운동에 대한 혐오, 내셔널리즘과 로컬리즘 찬양, 전문화 및 제도화에 대한 경멸.(327)
여기서 벤저민 타이텔바움의 탐색은 끝났다. 나도 이제 그만 알아볼 때다. 전통주의(T)가 사상으로 복원되어서 활개치고 있는지까지는 알 수 없지만. 이런 자들의 사상을 문헌으로 한국으로 가져와서 읽고 탐구하고 연락하고 만나고, 돈을 주고받고 하는 지 까지는 모르겠고, 알아볼 생각은 없지만. 적어도 외양이나 주장은 놀랍게 닮았다. 여기서 하는 이야기를 저기서 하고 있고, 여기서 하는 정책을 저기서 하고 있다. 행정명령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거나, 시행령 만으로 해보려는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대학 예산을 줄이는 거나 R&D 예산을 깎는 거나. 입만 열면 중국 혐오하는 것도 마찬가지고. 성조기와 이스라엘 국기도 들고 다니고. 사회적 위계질서를 중시하고, 아 그리고 영성, 그렇다 무속이든 극우 개신교든 이들이 머리 꼭대기에서 놀려고 한다.
지금까지 세밀하게든 어설프게든 이들을 합리적으로 이해하려는 시도는 모두 실패했다. 한국에서도 그렇다. 지금 트럼프가 날뛰는 미국에서도 마찬가지다. 尹某가 정권을 잡았던 3년간 비상계엄이라는 친위쿠데타 이후에도 법원난동 이후에도 조금이나마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려던 마지막 사람들은 대법원의 발광 이후에 더 이상 입을 열 수 없게 되었다. 보수는 무엇인가 지키는 사상이라는 등의 헛소리도 모두 사라지게 되었다. 저들이 보수가 아니라고 결별하지 않는 한. 그런데 이들의 숫자와 목소리는 앞으로도 이들이 한 쪽 주도권을 쉽사리 놓지 않을 것임을 보여준다. 이제 과거의 보수 담론은 모두 책장 깊숙이 치워둘 때가 되었다. 트럼프의 행위를 어떻게든 나름의 합리성이 있을 것이라고 트럼프가 천재라고 떠들어 대는 논의가 유튜브에 넘쳐나지만, 다들 헛소리다. 자기 생일에 열병식을 여는 자에게 무슨. 백악관 집무실에 금으로 된 장식이 넘쳐난다던데. 나는 사치를 비판하기 보다는 실은 황금시대를 떠올렸다. 이자들의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한쪽 구석을 차지하고, 권력을 다투면서 살아가는 시대에. 우리는 이들을 이해하고 대응할 어떤 종류의 신학이라도 필요한 것일까? 이들이 위험하게 여겨지는 것은 단지 이들이 일종의 신학을 가지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런 신학이 실체 또는 본질로서의 인종이나 국민을 지향하기 때문이다. 이념으로서의 국민이 아닌 실체로서의 국민이 얼마나 파괴적인 것인지, 상기할 사례가 굳이 필요할까 싶다.
아 마지막으로. 호랑이 이야기. 동아시아 설화라는 이름으로 소개된 기호지세에 대한 이야기가 제사로 등장한다. 익숙한 이야긴데 조금 다르다. 호랑이를 만나서 호랑이 등에 올라탔지만 내릴 방법은 없다. 그래서 늙어서 힘이 빠질 때까지 버티는 거다. 그때 목덜미를 움켜쥐고 조른다. 에볼라가 현대성에 대해서 한 이야기다. 현대성이 지쳐서 힘이 빠질 때까지 기다리다가 그때 목을 졸라 죽이자.(116) 이런 비관주의적 사고에는 대응할 방법이 마땅치 않다. 없는 건 아니지만 찾아내야 한다. 확실한 건 지금까지 하던 대로 대응했다가는 축늘어져서 빠져나가는 껍데기만 만지게 될 것이라는 점이지.
2025. 5. 4.
* 괄호 안의 숫자는 번역서의 쪽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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