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트 앤더슨, 『판타지랜드』.

커트 앤더슨Kurt Andersen, 『판타지랜드FANTASYLAND』, 정혜윤 역, 세종서적, 2018(2017).

짝퉁은 오리지널을 절대 따라잡을 수 없다.

700쪽에 달하는 『판타지랜드』의 내용은 솔직하게 말해서 너무나 어처구니가 없는 이야기였다. 미국에서 미국의 오늘날의 현실에 비판적인 한 미국의 지식인이 왜 미국이 이 모양이 되었는지를 나름의 역사적 분석으로 설명해낸다. 물론 그는 역사학자가 아니다. 그렇기에 그의 분석이나 자료사용은 엄정하고, 철저하게 비판적이지 않다. 그렇지만 하나하나 비판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거기서 트럼프 시대를 살고 있는 어떤 미국인의 감성 같은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책을 읽고 아마존의 리뷰들을 훑어보았는데. 찬사와 환영이 대부분이지만, 비판도 적지 않았다. 역시나 요즘 자주 느끼는 거지만, 미국은 확실히 분열되어 있다. 요새 미드를 보고 있으면 완전히 양극단으로 흘러간다. 미국은 악마와 좀비가 설치는 악의 제국이거나 평화롭고 목가적인 서부의 이상이 아직도 살아숨쉬는 곳이거나. 안 그래도 지루해지던 참이다만.

이 책을 읽은 나의 감상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짝퉁은 오리지널을 절대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짝퉁이란 물론 한국의 개신교를 말하는 것이고, 오리지널은 미국 개신교다. 미국의 개신교와 넓게보아 카톨릭까지 포함해서 기독교권 전체에서 벌어지는 일은 황당무개 그 자체다. 퇴행과 사기가 미국 답게 전례없이 큰 규모로 벌어진다. 한국에서 목사들이 사고치는 일에는 비할바가 아니었다. 사회적인 사건에 대해 목사들이 발언하고, 그 발언 내용이 황당무개해서 지탄을 받는 일은, 그 정도와 빈도가 미국이 훨씬 크다. 어처구니 없는 말을 하고도 태연하게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행동한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기껏 성령에 취해야 한다고 술에 비교하는 정도 아닌가? 미국에선 LSD와 LSD가 주는 환각에 비교하는 경우도 있었다. 역시 스케일이 달라. 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나 움직임들도 한국은 온건한 편인 거다. 그렇다고 옹호할 생각은 없지만. 그저 왜 저러는지 알고 싶으면 미국을 보면 될일이 아닌가 싶다. 그동안 한국교회에서 벌어진 이상한 일들의 기원은 대체로 미국이었다. 특히 무속적인 것, 그것이야 말로 미국적 기독교의 중요한 요소였다.

더불어 나꼼수와 김어준 현상을 이해할 만한 중요한 키들도 여기에 보인다. 팟캐스트가 최신트랜드라면서 2011년에 시작된지도 벌써 8년 나꼼수의 주역들은 어느새 공중파를 들락거리고 있다. 커트 앤더슨이 지적하는 미국의 라디오 토크 쇼들의 역사는 그보다 20년은 더되는 것 같다. 라디오 토크 쇼에서 정치인들이 나와 밑도 끝도 없이 떠들어대는 수다를 밤새서 듣는 미국인들의 모습에서 나꼼수를 듣던 한국인들의 모습이 펼쳐진다. 말하자면 팟캐스트를 만들어서 정치인들이 혹은 평론가들이 서너시간씩 떠들어대고 또 그걸 밤새도록 넋을 놓고 낄낄거리며 듣는 것 자체가 이미 성공한 모델이었다. 나만 몰랐을 뿐. 물론 내용을 채운 건 그들의 역량이니 폄하할 생각은 전혀없다. 요는 안될일을 한 것이 아니라 될일을 아주 잘한 거였다. 그리고 공중파에 진출하는 것도 수순이다. 미국에선 토크 라디오가 폭스 뉴스를 낳았다. 한국은 이걸 보고 종편을 먼저 만들었지만, 오리지널 토크에 패배한 셈. 이런 토크에서 수많은 음모론이 쏟아진다. 매사 공작을 의심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그래도 한국에선 외계인이나 유엔의 음모를 말하는 데까진 가지 않았다.

그러면서 책을 읽다보니 심지어 이 책에서 비즈니스 모델도 발견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과 한국 사이에 여러가지 차이가 있으니 그냥 가져다 붙였다가는 폭망하기 쉽겠지만. 그러나 한 가지만은 아주 확실한데. 사람들에게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체험을 효과적으로 제공할 수 있으면 그 비즈니스는 무조건 성공할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그걸 소비자의 어디쯤에 맞추느냐의 문제겠지만. 그러고 보니 원래 모든 비즈니스라는게 그런거니 새로울 것도 없다는 생각도 든다. 술부터가 그런 거니까. 맛집 순례 같은 것도 그런 거고.

미국 예외주의. 커트 앤더슨은 미국이 도대체 왜 이 난리냐는 질문에 우리가 미국인이기 때문이라는 대답을 내놓는다. 미국인으로 산다는 것은 자신이 원하는 거라면 무엇이든 믿을 수 있다는 뜻이며, 자신의 믿음은 다른 이들의 믿음과 동등하거나 우월하고, 전문가란 지긋지긋하다는.(17) 미국인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대답은 너무 구태의연한 국민성론 같아 보이지만, 이 책을 읽어나갈 수록 나는 몇 권의 고전을 다시 꼼꼼하게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를 들면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 최근에 『아메리카의 민주주의』라는 제목을 달고 프랑스어판에서 번역한 판본이 새로 나왔는데. 그리고 몇 권의 고전을 다시 손에 꼽게 되었다.

“미국은 진정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과 열정적인 몽상가들, 사기꾼들과 호구들이 만든 나라다. 그게 바로 지난 4세기 동안 미국인들이 환상에 잘 속는 사람들이 된 연원이다. 세일럼 마을의 마녀 사냥에서부터 조지프 스미스의 모르몬교 창시에 이르기까지. P. T. 바넘에서부터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웅얼거림에 이르기까지. 할리우드에서부터 사이언톨로지와 오프라 윈프리 및 도널드 트럼프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들에게서 그 전형을 볼 수 있다. 말하자면 영웅적인 개인주의와 극단적인 종교가 버무려지고, 쇼비즈니스와 그 외의 온갖 것들이 뒤섞여 푹 끓고 있다가. 어떤 진리 주장도 허용되는 1960년대와 인터넷 시대를 거치면서 지금의 이런 모습, 즉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기이하고 위험스럽게 뒤섞여 있는 상태에 이른 것이다.”(24)

실은 이 한 단락이 이 책의 내용 전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종교성이고, 다른 하나가 쇼비즈니스인데. 미국은 시작할 때부터 이 두 가지가 얽혀서 교차하고 지나간다.

식민지 개척기의 미국에서부터 이런 모습들이 드러난다. 흥미진진한 요소들이 많다. 그런데 인상적인 인용구가 있다. 프란시스 베이컨의 글이다. 이 책에 인용된 다른 수많은 글들과 마찬가지로 출전이 붙어있지 않다. 그건 아마도 이 책의 장르와 인용방식일텐데. 그래서 실은 읽을 때 불편한 점도 꽤 많다. 반면에 각주가 아주 없지는 않은데. 그 각주들은 엄청나게 흥미로운 내용들이다. 예를 들어 천천히 온도가 올라가는 물에 들어 있는 개구리가 왜 죽는가? 같은 것인데. 커트 앤더슨은 실제 개구리를 넣고 물을 끓이면, 개구리는 튀어나오지만, 19세기의 개구리가 삶겨 죽은 실험은 개구리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뇌를 제거하고 한 실험이었기 때문이었다.(14) 역시 인용출처가 붙어있지 않아 더 이상의 확인은 어려웠지만. 여튼 프란시스 베이컨이다.

“인간은 일단 어떤 의견을 취하고 나면 (그것을 자신의 의견으로 받아들이든, 그 의견에 동의를 하든 상관없이) 다른 모든 것들을 끌어들여 그 의견을 지지하거나 동의를 표한다. 그리고 설령 상반된 의견을 입증하는 사례의 수가 더 많고 더 비중 있더라도 그런 것들을 아예 무시하고 하찮은 것으로 취급하거나, 특수한 경우로 간주하여 따로 밀쳐놓고 기각해 버린다. 이 엄청나고 치명적인 숙명론의 힘으로, 이전에 내린 결론의 권위는 침해 불가능한 것으로 남는 것이다. (중략) 그것이 바로 점성술이나 꿈, 징조나 신의 심판 등 어떤 형태가 됐든 모든 미신이 작용하는 방식이다. 인간은 이런 공허한 것들에서 기쁨을 느끼며 이 미신이 들어맞는 경우를 반드시 짚고 넘어간다. 사실 그런 미신이 들어맞지 않는 경우가 훨씬 더 많지만 그런 것들은 그냥 무시하고 넘어가버리면서 말이다.”(40)

실제로 자신의 의견을 수정하는 데 무엇보다 큰 지성과 용기가 필요하다. 새로운 정보와 잘못된 판단의 결과에 직면해서 이전 견해를 고집하지 않고, 수정할 자세가 되어있다면, 거기서 참된 자신감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판타지랜드』는 무엇이든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믿을 자유, 설령 그것이 초자연주의라고 해도.(62) 그것이 미국이 본질, 미국이 말하는 종교의 자유, 신앙의 자유라고 말한다. 미국 개신교의 더 깊고 넓고 지속적인 영향은 초자연적인 현실이나 사실이 아닌, 현실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꿈꾸고 그것들을 열렬히 확신하며 믿을 자유를 허용해준 데 있다.(71) 만일 미국 개신교가 아무거나 마음대로 믿을 자유에 집착했다면, 그 형성과정에서 이미 몰락했을 것이다. 그렇게 간단하게 움직이지 않았다. 물론 가능성은 열려 있었지만. 중요한 것은 ‘현실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가능하게 했다는 점이다. 즉 현상에 대한 자기 나름의 이해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열어두었다는 것이다. 대안적 이해 다시 말해 요즘 말하는 대안 사실. 그러면서 조나단 에드워즈에 대해 냉정하고 싸늘한 평가를 내리는데. 그는 미국인들에게 열정을 불러이르켜 신이 살아있다는 증거라며 뉴잉글랜드인들이 믿는 고통스런 환각과 섬망을 겪도록 북돋울 수 있음을 알았고, 그 대상이 된 것은 젊은이들이었다고 평가한다.(76) 조나단 에드워즈는 대중에게 격정과 공포를 불러일으키고, 사람들은 한 방향으로 추동할 수 있었다. 이런 움직임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젊은이들이었다. 이런 것을 ‘대각성’이라고 불렀다. 존 웨슬리에 대해서도 충격적인 이야기를 써두었는데, 서른 넷에 미국에서 10대 여자친구와 사귀다 헤어지고는 그녀를 교회 밖으로 축출한 뒤, 그녀에게 소송을 당하자 영국으로 도피하고 다시 태어나는 경험을 한 후 감리교의 공동창시를 이어갔다는 내용이다.(79) 에드워즈, 웨슬리, 화이트필드(휫필드)는 모두 기존 제도에 도전장을 내민 사람들이다. 결국 이런 흐름이 규범으로 받아져 극단으로 치달았을 때, 설교자는 누구든 될 수 있고, 설교는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가능하며, 열정이 더 분명하게 드러날 수록 좋은 설교이고, 모든 신도들이 자기가 가장 좋다고 느끼는 에수 그리스도와의 사적 관계를 맺기 위해 원하는 믿음을 표현하는 분파와 모임을 찾을 수 있다. 이렇게 일상에서 초자연성을 찾는 것은 미국의 초기 감리교의 특징다.(82) 그리고 “현실에 대한 오만 가지 독단적 해석이 난무하도록 방치한 결과, 그 극단적 상대주의는 종교를 넘어 거의 모든 종류의 열정적인 믿음으로 퍼져나가기에 이르렀다. 내가 무언가를 진리라 생각한다면 그 이유나 객관적 타당성 여부와 상관없이 그것은 진리이고, 그 어느 누구도 내게 내 생각이 틀렸다고 말할 수 없다. 이것이 바로 미국적 개인주의가 현실을 인식하는 귀류법적 전제다.”(83) 이 나라는 자유 국가free state라고 외치는 사람들의 망상이 떠오른다.

문제는 실은 계몽주의자들이다. 처음부터 이 종교적 열광과 계몽주의는 영합하게 된다. 전혀 그렇지 않을 것 같은데. 조지 화이트필드와 벤저민 프랭클린의 관계가 딱 그렇다. 벤저민 프랭클린은 조지 화이트필드의 설교집을 팔아서 돈을 벌었다. 네 권짜리 설교집은 엄청난 베스트셀러였다.(85) 커트 앤더슨은 계몽주의의 사고 전환, 사상의 자유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초자연적인 믿음과 종교적 교리를 부차적인 것으로 취급하거나 거부할 자유가 있다는 결론은 양날의 칼이 되었다고 말하면서 UCLA의 앤서니 패그든Anthony Pagden을 인용한다. “계몽주의는 오로지 이성이 열정을 비롯한 다른 모든 형태의 인간 감정이나 애착을 지배하게 만드는 운동이라는 주장이 흔히 무분별하게 제기되곤 하는데, 그것은 (중략) 잘못된 주장이다. 계몽주의는 이성과 합리적 선택을 옹호하는 것 만큼이나 그런 것들을 거부하는 것과도 관련된다.” 계몽주의는 종교 안팎의 양식 있는 생각과 진리만이 아니라 불합리하고 진리가 아닌 것에 이르기까지 모든 사상의 자유를 공식적으로 허용했다. 계몽주의가 승리를 거두고 과학이 득세하며 관용이 의무 사항이 되었떤 1700년대 말에는 광기 또한 새로이 제 모습을 드러내게 되었다. 키스 토머스Keith Thomas는 비정통적인 것에 대한 숭배가 공공연히 행해질 수 있었던 것도 계몽된 관용의 분위기 덕분으로 칸트의 명령을 암암리에 따른 것이라고 지적한다. 커트 앤더슨은 칸트 조차 계몽주의가 맞닥뜨린 난제를 목격했다는 것이다. “인간의 이성은 영적이고 존재론적이며 삶의 의미를 밝히는 종류의 지식과 관련해서 무시할 수도, 대답할 수도 없는 (중략) 질문들을 떠안는 기이한 운명을 맞게 되었다.”(『순수이성비판』)(88)

생각해보면 계몽주의와 종교적 자유의 결합은 커트 앤더슨이 처음 지적한 것이 아니다. 그도 종종 인용하는 리처드 호프스태터도 여러번 한 말이다. 종교적 극단주의 열광주의자들과 계몽주의적 이신론자들이 손을 잡은 것이 아메리카합중국의 헌법이라고. 결국 가장 미국적인 것이 가장 해로운 결과를 가져왔다고. 나는 문득 여기서 볼테르의 한 경구를 떠올렸다. 그동안 아주 유명해진 이야긴데. “나는 당신의 의견에 반대한다. 하지만 난 당신이 그 의견을 말할 수 있는 권리를 위해 죽을 때까지 싸울 것이다.” 꽤나 그럴듯해 보인다. 실제로 한국에서 어떤 사람들이 다른 이들의 표현의 자유를 위해 죽도록 싸워왔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일베와 워마드와 그리고 네트워크에서 현실로 옮겨지는 그 수많은 혐오표현들을 보면서 나는 요새 종종 생각한다. 말같지도 않은 주장은 애초에 싹을 잘라야했다. 공론의 장에서 즉시 퇴출시켜야, 그 더러운 악이 여기저기 번져가는 걸 막을 수 있었다. 악은 끊임없이 퍼져만 갈 뿐이다. 애초부터 아닌 건 아닌 것이니. 선을 그을 때 처음부터 분명하게 그을 필요가 있다. 그래야 그나마 남은 한줌의 공론장이나마 보존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아, 나는 점점 보수적으로 변해가는 것인가 아니면 애초에 보수적이었던 것인가.

커트 앤더슨은 19세기 그러니까 1800년대를 대망상의 시기라 말한다. 건국에 대한 매력적인 허구를 미국인들은 신봉하고 있지만 예일대의 종교사학자 존 버틀러John Butler가 말했듯, 남북전쟁 이전의 초창기 미국은 ‘오만 가지 영적 차원의 주장들로 들끓는 냄비’였다. 기독교 신앙은 오컬트, 신통력, 무속치유, 예지몽 등 온갖 종류의 민속신앙에 대한 믿음과 자유자재로 뒤섞였고, 이런 것들의 부분은 더 이상 청교도적 원칙이나 질서의 제약도 받지 않았고, 다양한 초자연적인 생각들도 우후죽순 생겨나 널리 퍼졌다. 19세기 전반기의 두 번째 대각성은 대망상Great Delirium이라는 더 큰 흐름의 한 부분으로 단순한 종교적 환상뿐 아니라 문화, 유사과학, 유토피아, 정치 등 모든 차원에서 갖가지 새로운 환상들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며 분출했다.(95) 대각성운동의 한 현장인 켄터기의 케인리지Cain Ridge를 폴 콘킨Paul Conkin과 해럴드 불룸Harold Bloom은 기독교의 우드스톡이었다고 평한다. 사람들은 정신을 잃는 경험을 하러 모여들었다. 그리고 여기서 완전히 새롭고 미국적인 기독교가 발명된다. 다른 어떤 종교보다 더 기상천외하고 분명하며, 철저하게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종교. 블룸에 따르면 “자칭 기독교라고 하는 체험 위주의 신앙.” 케인리지 이후 예일대 학생 중 3분의 1이 개종하고 다시 태어나는 경험을 한다. 케인리지 이후 케인리지 종파들이 태어나고, 가장 민주적이고 멋진 종교가 된다.(101-102) 찰스 피니에 따르면 기독교는 일종의 쇼비즈니스다. 그는 흥분을 불러일으키지 않고 종교를 전파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중략) 어리석은 일이라고 했다.(103) 제칠일안식교를 만들어낸 윌리엄 밀러와 세대주의자 존 넬슨 다비.(106-107) 특히 다비가 학자라는 점이 중요했는데, 미국인들은 같은 신앙을 가진 학자가 나서서 자신들의 믿음을 확인해주고 신앙을 더 인상적이고 정교하게 만들어주는 것에 흡족해 한다. 전근대적 환상을 현대적으로 증명해주길 원하기 때문. 다비 이후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의 노력을 과학으로 포장해 주는 데 열광한다.(108) 창조과학에 대해서는 나중에 보다 자세히 언급한다. 그리고 퀘이커에서도 환영받지 못했던 히스테리 행위에 집착한 셰이커Shakers. 토크빌은 미국에서 종교적 광기를 너무 쉽게 발견한다. 영국 이민자 광신도들의 종교적 광기(108)

모르몬교. 예수 그리스도 후기 성도교회는 이런 미국식 종교의 전형이다. 커트 앤더슨은 모르몬 경을 성경에 대한 성공적이며 선구적이고 기념비적 팬픽션이라고 말한다. 미국식 기독교는 애초부터 성경을 알레고리가 아닌 문자 그대로 맏아들이고 히스테리를 동반하며 집단적으로 자기중심적 성향을 보였다. 그리고는 성경을 미국 쪽으로 끌고 들어갔다. 모르몬경을 읽어본 적이 없어서 어떤 주장을 하는지 몰랐었다. 기원전 6세기 바빌로니아에 점령당한 예루살렘에서 빠져나온 레히Lehi라는 선지가 배를 타고 미국으로 건너왔고, 그 후손이 한 집단은 백인, 다른 한 집단은 흑인이라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종말론은 천국에 대한 등급이 있어서 평범한 이들의 천국, 선한 기독교인의 천국, 모르몬 교인의 최상급 천국. 제각기 행성 영지 하나씩을 소유한 왕. 그리고 여러 명의 여자들과 갖는 섹스.(113-115) 이건 뭐 ISIS가 확산시킨다는 72명의 미녀들과 함께 누리는 천국이야기랑 다를 바가 없다. 거참. 이 모든 것을 만들어낸 조지프 스미스Joshep Smith는 30대에 사형을 당했지만, 신도는 늘었다. 커트 앤더슨은 그가 철저히 미국적인 인물이며, 미국적 특징을 극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로 미국은 사실 여부에 대한 확인을 거부하고 진리에 대한 특별한 접근권이 자신에게 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이 세운 나라, 거대한 환상이 만들어질 수 있게 세워진 나라라고 한다.(117) 19세기 유럽의 종교부흥운동이 경건과 자선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면, 미국에서는 초자연적인 종파들이 번성했다.(117-118) 아, 이런. 내 주변에 모르몬 교인이 있었는데. 이런 걸 읽고 믿고 있었구나. 누가 모르몬경을 미국의 건국신화라고하던데. 정말 그말이 맞았다. 그리고 실상 모르몬교가 교리를 좀 바꾸고서는 요즘엔 기독교 중 하나로 대충 편입된다고 하던데. 미국에서 말이다. 모르몬교 출신이 유력한 대선 후보로 나오는 상황이니까. 무엇보다 미국 개신교의 어떤 특징들은 왜 한국 개신교가 그 모양 그 꼴을 하는지 그 원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기에 읽다보면 소름끼칠 때가 많다. 그 정도까진 아니라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걸까.

회심과 함께 임하는 치유의 기적은 최면술, 골상학 그리고 온갖 대체의학의 출발점이 된다. 아, 정말 다시 한 번 가슴을 쓸어내린다. 한국은 이 정도는 아니지. 그러고보니 구원파의 박**은 집회에서 건강보조식품을 팔던데. 하긴 유기농이나 건강보조식품을 파는 목사가 적지 않다. 미국은 역사가 길어서 웨슬리는 양파와 꿀이 탈모를 치료한다고 했고, 그레이엄 크래커의 주인공인 장로교 목사 실베스터 그레이엄Sylvester Graham은 고기와 향신료가 건강에 나쁘다고 하고, 켈로그 시리얼의 존 켈로그John Kellogg는 제칠일안식교예수재림교 신자로 수치(물로 치료)요법을 하기 위한 병원을 세운 사람이다. 유사과학과 영성의 교차 수정이 낳은 신종파가 신사고 운동으로 크리스찬 사이언스 훗날 사이언톨로지 및 뉴 에이지 운동의 효시가 된다.(126-127) 십일보 성공예화로 맨날 등장하는 록펠러의 아버지가 실은 자칭 유명 암 전문가 윌리엄 A. 록펠러 박사로 암이 낫는 약을 팔고 다녔고, 미생물 박멸제는 모든 병을 치료해 준다고 주장하면서 미생물 박멸제 공장으로 부자가 되었다고 하니.(129) 이런 사람들에게 반대하는 일들도 있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미국에서는 비판이나 진실 폭로가 광기의 연료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철학이든 종교든 박해든 오로지 새로운 이론을 선전해 주는 역할밖에 하지 않는다. 어리석은 생각은 버젓이 전파되고, 박해받았다는 주장 또는 사실 만이 존재의 유일한 근거인 사상들이 있다. 커트 앤더슨은 미국 예외주의를 반복해서 지적하는데, 미국인 다수가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기적을 원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에서다.(131) 그리고는 마크 트웨인이 역사는 반복되진 않지만 비슷하게 변주된다고 말한대로 캘리포니아에 골드러시가 왔다. 미국인들에게 골드러시는 불가능한 꿈과 행운, 그리고 현실의 모습에 대한 사고방식을 영원히 바꾸어놓는 변곡점이라 말한다. 천국의 영원한 보상도 있을 테지만, 이곳 이승에서의 삶 역시 멋진 모험이나 어떤 환상적인 이야기 못지않을 엄청난 현실이 될 수 있다는.(135) 반대로 음모론 역시 퍼져나가고.(144) 그와 동시에 미국적인 환상 중 하나인 자연 속에서의 삶을 헨리 데이비드 소로가 펼쳐 보인다. 그것은 중상층 계급에게 주어지는 일종의 확장된 청년기 경험이다. 실상 월든 호숫가에서 30분만 걸어나가면 부모와 수천명이 살고 있는 도시가 있었고, 30킬로만 더 가면 미국에서 세번째로 큰 도시가 있었다. 그는 실제로 도시로 돌아와 부친의 연필 공장 일을 도우면서 저택에서 살았다. 그러나 소로는 달콤한 면만 부각하여 보기 좋아하는 미국적 환상의 전형, 즉 지나치게 불편하지 않은 만큼만 자연과 어우러져 사는 모습을 시현해 보였다.(161-162) 이런 환상의 쇼비즈니스의 한 극점에 P. T. 바넘Phineas Barnum이 있다. 그는 아메리카박물관에 161세된 조지 워싱턴의 유모나 인어공주시체 따위를 전시했는데. 물론 가짜다. 그는 박물학자의 조작이라는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인어의 존재를 믿는다면서 전시를 강행했다. 물론 큰 돈을 벌었다. 그는 어떤 상상적 이론이 흥미진진하고 아무도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증명할 수 없다면 미국인인 내게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믿을 권리가 있다는 주장을 실현시킨 것이다. 재미있는 거짓말을 좋아하는 미국인의 취향, 환상과 진짜 사이의 분명한 구별을 별로 중시하지 않는 경향을 반영하고 강화시켰다.(170-171)

“19세기는 미국 대중이 기적치유나 달에 살고 있는 박쥐 인간의 문명, 161세의 전직 조지 워싱턴 보모의 이야기를 사실로 믿기 시작한 시기였다. 프리메이슨과 가톨릭에 대한 공포가 분출되어 수시로 반복을 거듭했으며, 수백만명이 갑자기 종말이 임박했다는 예언을 믿었는가 하면 신이나 사탄이 자신들의 몸과 마음을 조종한다고 확신했다. 교회가 분화되어 단숨에 새로운 종파가 주먹구구식으로 만들어지기 무섭게 또 다른 미국식 기독교가 형성되곤 했던 것도 이 시기의 일이다. 또한 현대의 뉴스 미디어, 광고, 엔터테인먼트, 정치, 제약 산업 등 미국적인 것 일체가 등장했는데, 그 모두는 환상과 실제를 자유자재로 뒤섞은 전망을 바탕으로 했다. 전국적 차원에서 사람들에게 꿈같은 허구를 파는 일이 미국 특유의 일상이 되면서 미국에서는 판타지 산업이 광범위하게 자리 잡았고, 그 이후 이 산업은 상승효과를 불러일으키면서 멈출 줄을 몰랐다.”(180)

밑에 깔려 있는 것이 종교성이고 환상을 좋아하는 심리라면, 실제 추동력은 앞으로 가면서 점점 더 분명해지겠지만, 그것이 돈이 된다는 사실이다. 판타지는 돈이 되었다. 신흥종교도 약장사도 쇼엔터테인먼트도 모두 돈이 되었다. 그걸 달리 부른다면 그건 바로 아메리칸 드림이다. 아메리칸 드림은 미국의 상징이자 미국의 일종의 근거 내지는 기원이 아니던가.

20세기 전반기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합리성이 이기기 시작했다. 그러나 반동의 씨앗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남부 백인들 사이에서 환상이 자라났는데, 자신들이 싸운 진짜 이유는 미국인으로서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믿을 권리를 지키기위해서라는 거였다.(189) 가장 큰 반동은 옛 종교의 귀환이었다. 드와이트 무디, 캔자스의 부패한 알콜중독 변호사였던 사이러스 스코필드Cyrus Scofield(194) 그리고 빌리 선데이(196) 그리고 원숭이 재판 즉 스콥스 재판이 시작되었다. 두 진영의 정직한 열성파, 냉소적인 미디어 기획자, 흥미진진한 볼거리에 목마른 일반인의 합작이었다.(198) 「볼티모어 선」 멩켄을 파견해서 이 재판을 코미디로 근본주의를 괴이하고 비상식적인 것으로 취급했으며,(201) 테네시 사람들이 방언을 하는 모습을 발견하고 기사화했다.(204) 남북전쟁 후 등장한 성결운동Holiness Movement와 하나님의 교회the Church of God이 시작이었다. 미국인들은 의식이 혼미한 가운데 성령이 임하는 경험을 매주 스스로 직접하고 싶어했다. 오순절 교회는 찰스 파햄Charles Parham에 의해 토피카에서 시작되었다. 파햄의 제자 윌리엄 시모어William Seymour는 아주사 거리에서 즉각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2주간의 광란의 나날 후에 샌프란시스코 지진이 발생했는데, 이는 신도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아마겟돈과 예수 재림에 관한 중요한 계시를 받고 싶다고 믿게 만들었다. 10여년 만에 주요 오순절 교파는 수백만의 신도를 거느리게 된다.(204-207) 스콥스 재판이 끼친 영향은 엄청났다. 양측 모두 이 재판에서 자기의 믿음을 확인했고, 주류의 사람들은 진지한 기독교인들을 미래에 대한 전망이 없는 촌뜨기로 치부했고, 이성이 승리한다고 믿었으나, 중산층 보수주의자들은 수백만 명의 열성 기독교 환상가 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었고, 그들은 과학과 성경이 충돌한다면 그 과학은 진리가 아니라고 믿을 뿐 아니라 자녀에게도 그렇게 가르친다.(210) 이런 상황에서 퍼져나간 교외 거주는 백일몽과 같은 미국의 독특한 생활 방식, 고유한 옛 초록 땅의 행복한 모사처럼 보였다.(227) 지극히 정상적으로 보이던 1950년대에 사이언톨로지는 확산되었고, 지극히 주관적 기준에 따른 실용적인 자기계발을 강조했다. 무엇인가 당신에게 전능한 느낌을 준다면 말할 것도 없고, 당신의 기분을 더 낫게 해주기만 한다면, 그것은 분명 진리임에 틀림없다.(254-255) 동시에 현대 미국인들이 지니고 있는 ‘체제 수호’라는 환상도 전에 없이 뿌리 내려 널리 퍼지고 자라게 만들었다. 메카시즘적 사고의 틀, 정부와 미디어 및 학계에는 강력한 음모를 꾸미는 미국인들이 존재하며, 외국의 공산주의자들과 연합해 나라를 망칠 거라는 생각.(259) 매카시는 상원 연설에서 해리 트루먼 대통령이 내각에 포진해 있는 일부 공산주의자의 꼭두각시이자 포로라고 설명했다는 데,(258) 문재인 대통령이 주사파 청와대 비서관의 포로이자 꼭두각시라는 가짜뉴스와 똑같다. 너무나도 지독한 방법으로 반복되고, 변주된다. 지겨울 정도다. 특히 이 오순절 교파의 역사와 한국이란. bapticostal이라고 순복음장로교와 흡사한 표현도 있었다. 무엇보다 창조과학과의 싸움이 그리 간단치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커트 앤더슨이 끊임없이 반복하고 있지만, 믿음이 틀렸다는 것은 증명할 방법이 없다. 하나의 증거를 제시하면, 그걸 반영해서 곧 다른 믿음을 만들어낸다. 이런 싸움에서 어떻게 이길 수 있겠는가.

그리고 뒤 이어 커트 앤더슨이 빅뱅이라고 부르는 1960년대와 1970년대가 등장한다. 그는 1960년대부터 미국 문화에서 절대적인 관용의 원칙이 공리가 되고, 이것이 미국인의 심리에 내면화되어 내가 믿는 것이 진실이다. 내가 그렇게 믿고 싶어 하고 그렇게 느끼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하며, 개인주의가 유아론으로 추락했다고 말한다.(271) 자기만의 길을 가라, 권위를 불신해라, 자기만의 진리를 찾아라.(272) 그러나 동시에 개신교의 불길도 활활 타오르던 시대였다.(273) 히피족의 환각제 사랑이 폭발한 장소는 에솔렌Esalen으로 뉴에이지란 거의 모두 여기서 개발되고 확산되었고, 교회나 종교는 좋아하지 않지만, 초자연적인 것을 빋고 싶은 사람들의 모태이다.(277) 지식인들 미셸 푸코, 토마스 쿤, 버거와 루크만, 파이어아벤트 등과 인류학이 큰 영향을 미쳤지만,(298-302) 특히 찰스 타트Charles Tart는 초심리학을 정규 학문 분과로 끌어들였는데. 그는 현실 대신 합의된 현실 지향consensus reality orientation이란 단어를 유행시켰고, 합의된 현실이라는 표현으로 정착되었다.(306) 그리고 뭐든 허용된다는 식의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한 역풍으로 기독교인들은 열렬한 전통의 수호자가 되었으며 동시에 더 마법적인 것에 대한 믿음도 널리 퍼지고 극단적으로 변했다. 이 시기에 방언을 하는 현상은 모든 주류 개신교 교회에서 나타나기 시작했고, LSD처럼 환각제를 복용하듯 마법적 체험을 주장한 방언대사 데이비드 듀 플레시스David du Plessis는 미스터오순절교회로 불렸고, 이런 신비적 경험을 회복의 은사charismatic renewal이라고 선언하기 시작했다.(315) 드리어 1967년 일부 로마 가톨릭 신학 교수들이 방언을 내뱉기 시작하면서 카리스마타 가톨릭이 탄생했다.(316) 이 카리스마타 신도들이 세운 교회가 갈보리 채플Calvary Chapel이고, 진짜 프랜차이즈 처럼 브랜드 사용권을 나눠주었다. 오렌지 카운티에서 존 윔버John Wimber는 음악을 배경으로 예배를 드리는 카리스마타 기독교 집단과 함께 했고, 영적 아버지가 되었다. 이것이 빈냐드(빈야드vineyard)다. 주류 교회의 기독교인들이 이런 양식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이들은 스스로를 오순절교회라 부르지도 방언에 집착하지도 않았다. 나는 운다. 나는 웃는다. 나는 나도 모르게 무릎을 꿇거나 예언을 토해내거나 방언을 한다. 내 등의 통증이 사라졌다. 꽉 막혔던 도로가 갑자기 시원에게 뚫린다. 이 모든 일은 하나니과 예수가…(317) 그러면서 보수적 복음주의자들이라 자칭하는 근본주의자들은 성경을 더욱더 문자주의에 입각하여 읽는 방향으로 나아갔다.(318) 프린스턴대학과 라이스대학 출신 교수들이 『창세기의 대홍수』를 출간했고, 토목공학 교수는 창조론 연구회와 연구소를 세웠다. 강경 복음주의자들은 더욱 보수주의적 복음주의교파의 우월함을 재확인 했다. 강경파들이 교단을 장악했다.(319) 그러니 1948년 이스라엘 건국은 예언이 실현된 증거였고, 미국에 종말 열병이 생겨난 1967년은 이스라엘이 아랍 침략군을 패배시키고 예루살렘을 수복한 해였다.(323) 그리고 복음주의 기독교인 지미카터는 중앙정치에 개입했다.(324) 초자연적 믿음과 문자주의는 서로 반대편으로 움직일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이 정도까지 읽어나가자 모든 것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여기에 모든 것이 다 있었다. 이제 필요한 것은 음모론 뿐, JFK 암살 음모론은 오래된 음모론을 되살렸다. 미국은 건국 이전부터 아메리카 인디언은 아시아인들로 미국을 막으려는 음모라고 주장하지 않았던가. 좌우 양 진영의 음모론자들은 서로의 명백한 적이었지만, 그들은 사실상 2인조였다. 상대주의적 입장을 가진 교수가 과학을 부정하는 기독교인을 자극한 것이나 반정신의학 열기가 좌우진영 동시에 호소력을 가진 것이다. 홈스쿨링이 근본적인 기독교인과 우드스톡 순례자 모두에게 환영받은 것이나.(339-340) 한쪽은 진화를 공부시킬 수 없다고 다른 한쪽은 체제에 순화된다면서. 1967년 톰 스토파드Tom Stoppard가 햄릿을 희극으로 바꾼 작품으로 대성공을 거두었는데, 그것은 허구와 현실이 뒤죽박죽 섞여 혼란을 주는 작품이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지금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에 대해 갖고 있는 외적 이미지에 스스로를 끼워 맞추려 애쓰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마치 스크린에 비친 자신을 보는 것처럼 말이죠.”(356-357) 이 시기에 주정부들이 복권으로 도박에 뛰어들었고,(361) 머리를 염색하고, 음식색깔은 식용색소의 사용으로 알록달록해졌꼬, 성형수술이 활성화되었다.(364-365) 저자는 필립 K. 딕을 인용한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그저 지적 게임의 차원에서가 아니라 실제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오늘날 우리는 미디어, 정부, 대기업, 종교 집단, 정치 집단이 만들어 놓은 그럴싸한 모습의 거짓 현실 속에서, 그리고 전자 장치들이 이런 유사체계를 독자와 시청자 및청취자 속으로 곧장 실어 나르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중략) 그리고 이런 거짓 현실에는 온 세상과 정신세계를 만들어내는 엄청난 힘이 있다. 나는 알아야 한다. 한 세계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똑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중략) 결국 그 일이란 무엇이 실제인지를 규정하는 문제라는 것이 내 생각이다. 나는 이것이 바로 진지한 한 가지 주제, 아니 가장 핵심적인 주제라고 까지 생각한다. 유사 현실의 집중 포격은 급격히 빠른 속도로 가짜인간, 그럴싸하게 자신을 포장할 줄 아는 인간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사방에서 밀려드는 정보만큼이나 가짜인 인간들 말이다.(중략) 가짜현실은 가짜인간을 만들어낼 것이다. 혹 가짜인간은 가짜현실을 만들고 그것을 다른 인간에게 팔아, 결국엔 타인을 자기 자신의 복제물로 바꿔놓고 말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결국, 가짜현실을 발명하고 그것을 다른 가짜인간들에게 유포하고 다니는 가짜인간으로 끝나게 된다. 우리는 그저 거대한 디즈니랜드에 살고 있을 뿐인 것이다.”(368)

1960년대가 생각하지도 않았던 큰 변화를 가지고 왔다. 그는 이것을 빅뱅이라고 부른다. 자유와 해방만 폭발한 것이 아니다. 자세히 옮기진 않았으나 쇼비즈니스도 폭발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기독교가 폭발했다. 그리고 카리스마 기독교와 문자주의 기독교 양쪽 방향으로 동시에 움직였다. 현대 한국 기독교가 가지고 있는 전형적인 두 개의 모습은 여기에 있었다. 문자주의 기독교가 비교적 새로운 현상이라는데 주목할 팔요가 있다. 물론 둘 모두 20세기 초반에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냈고, 그 뿌리는 그 훨씬 이전으로 돌아가지만. 대중적으로 확산된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그리고 양극단은 끊임없이 서로를 필요로하면서 통하고 있다. 거기에는 현실감각을 잃어버린 가짜인간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커트 앤더슨은 1980년대와 1990년대에는 미국 전체가 24시간 운영하는 거대한 테마파크가 되어버렸고,(374) 지적 흐름에는 상대주의가 견고하게 자리를 잡았다(371)고 말한다. 그중 하나 특이한 것이 1990년대에 절반가량의 주들이 카지노를 합법화하면서 강물 위에 더 있는 배에서만 할 수 있게 했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정박이 허용되었고, 그 중심에는 라스베이거스가 있었다.(383) MB가 사대강 운하를 파면서 말했던 건 하나가 선상카지노였다. 논란이 되자 절대 아니라고 우겼지만. 레이건은 복지 여왕Welfare Queen을 주장하고, 베트남 전쟁의 패배는 미국의 비남부인들에게 ‘잃어버린 대의’의 강한 쓴 맛을 보게 한다.(397-398) 이 복지여왕 프레임은 어찌나 강력한지, 지금도 한국의 언론은 그 알량한 한국의 사회복지체제에서 부정수급자를 끊임없이 찾아다닌다. 한 두명을 응징하려는게 목적이 아니라, 사회안전망을 약화시켜서, 세금을 덜내고, 무엇보다 보험 등 사기업이 걸신들린 듯 사람들을 갈아마시면서 이익을 챙기도록 돕고있는 중이다. 레이건이 실제 정책으로는 옮기지 않았으나 초개인주의적 해방은 시장에 대한 일종의 근본주의적 믿음을 심어주었다. 새로운 초자본주의가 나에게 유리하기만 하다면, 이전에는 이기심이라 이해되던 행동을 옮음이라 말하게 되었다.(398) 자신의 이익을 위해 타인을 희생시키는 일에 사람들이 아무런 부끄러움이 없어졌다. 폭스 뉴스가 등장했다. 림보 류의 토크 라디오르 전국TV 버전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지만, 문제는 정식 뉴스를 뉴스처럼 들리는 해설과 뒤섞어서 내보낸다는 사실이었다. 폭스뉴스는 시청자들에게 끊없는 정치선전 속에 완전히 빠져사는 경험을 선사했다.(408) 생각해보면 MB때 추진한 종편은 어떤 의미에서 늦어도 너무나 늦게 미국을 따라잡으려는 시도였고, 반드시 성공한다는 성공 모델을 가지고 있었던 셈이다. 정치적 지형변화가 목적이었다기 보다 돈이 된다는 확신이 아니었을까. 실제로 사람들을 정치에 빠져들어서 살게 만들었다. 예전에는 뭔가 떠들려면 신문과 잡지라도 읽어야 했지만, 이제는 채널을 틀어놓고 분노하거나 욕하기만 하면 되는 시대가 되었다. 역시 미국에 가서 뭐가 성공할지 보고 경험하고 와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터넷이 출현했다.(409) 여기서 음모론이 확산되게 되는데, 그 기반은 종교적 믿음이다. 종교적 믿음은 사람들로 하여금 우연히 혹은 무작위로 일어나는 일은 거의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게끔 만든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예일대 인지과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개인의 종교적이고 신비주의적 믿음은 삶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엔 특수한 목적이 있다는 생각, 세상을 지휘 주체, 목적, 기획의 관점에서 보는 경향이 주된 동력이라고 말했고, 또 운명이나 종교 따위를 믿는 사람들의 다수가 타인의 숨겨진 동기에 집착하는 매우 편집광적인 사람들 다수와 일치한다고 말했다.(412) 초자연적 믿음은 음모론으로 이어지는 관문이다.(413) 게다가 지금 미국에서 종교적 현상은 제도신학을 부정하면서도 뉴에이지 마법을 믿고, 특정 종교에 속해 있지 않은 사람들이 종교적, 신비주의적 경험을 하고 있다.(419) 미국인의 70퍼센트 이상은 기독교인이며, 그중 70퍼센트는 개신교도다.물론 교파는 다양하겠지. 스스로를 근본주의자라 부르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복음주의자들은 실상 옛날의 근본주의적 신앙을 가지고 있다.(420) 미국인의 4분의 1은 성경의 단어 하나하나 까지 하나님의 말씀이라 확신하며, 3분의 1 이상은 자신과 동료 카리스마파 신도의 마법적 힘에 초점을 맞춘다.(426) 그가 이 책을 쓰게한 도드라진 미국만의 특징이란 바로 종교성이며, 미국만큼이나 종교적인 선진국으로 두 곳이 더 있는데, 종교국가 이스라엘과 한국이다. 마법과 미신의 잔재가 많은 한국의 많은 한국인들은 독특한 미국식 개신교 신자들이다. 오순절교회도 미군 군목에 의해서 쌍까풀 성형수술도 미국 군목에 의해서 확산되었다.(450-451) 1830년대 토크빌이 목격한 가끔씩 하늘로 시선을 돌리던 미국인들은 200년간 갈수록 삶이 편안해지면서, 그리고 운이 없었던 다수의 사람들은 우울해 지면서 자나 깨나 미친 듯이 하늘만 바라보게 되었다.(459) 그리고 놀랍게도 대체의학이라는 이름의 비과학적 치료나 백신 거부 등이 확산되는 곳이 또 미국이다.(477) 커트 앤더슨 이렇게 말한다. 지금은 너무 많은 미국인들이 아예 생각이라는 것을 하지 않으려 하고, 마구잡이식 상상력에 의한 망상에 과도하게 집착하며, 거짓과 불가능한 것들을 지나치게 믿고, 현실과 비현실을 구별할 능력과 의지를 잃어가도 있는 듯하다고, 어찌 되었건 그럴 권리가 있으니까.(504)

이 책을 읽으면서 미국식 기독교의 모습 이외에 또 하나 눈에 띈 것이 음모론이었다. 김어준과 나꼼수 그리고 음모론은 어떻게 말해도 21세기 한국의 하나의 키워드가 되었다. 어떤 것도 공작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그 사고방식과 최종적 기획자가 있다는 사고 방식은. 어둠 속의 적그리스도나 사탄의 음모와 똑같다. 김어준이 스스로 무신론자라고 하지만 청소년기까지 교회를 다녔던 기독교적 사고 방식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되었다. 게다가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팬덤은 때로 신도와 같은 모습도 보인다. 물론 김용민은 현직 전도사이고. 언젠가 이들이 찬송가를 개사해서 교회 성가대에서 사용하는 가운을 입고, 합창을 하는 모습을 인터넷에서 보고 기묘한 느낌에 사로잡혔다. 나는 그것이 신성모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신성 쪽을 향하는 것이 아니고,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들에 대한 조롱이다. 실은 기독교인들이 분개하는 것도 신성모독이라고 생각해서 분개한다기 보다 자신들이 조롱당한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겠지. 신성모독은 실상 모두들 삶으로 하고 있으니. 21세기가 들어서 한국 기독교의 많은 기독교인들이 교회를 떠났다고 보고되고 있다. 과연 그들은 건전한 이성주의와 무신론자의 길로 접어들었을까? 아니면, 기독교 신앙의 원형적으로 만들어 놓은 사고방식, 최종기획자다 있다는 음모론과 또 다른 형태의 신비적 체험을 찾아, 즉 영성을 찾아 이리저리 떠돌면서 새로운 산업의 소비자들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물론 맞을 때도 있다. 실은 그게 가장 큰 문제였다. 미국에서 음모론이 이렇게 크게 확산된 이유는 몇 번 맞았기 때문이다.

리처드 호프스태터는 1960년대에 『편집광적인 미국정치The Paranoid Style in American Politics』에서 둘 중 하나는 결론이 완전히 판타지인 것과 대조적으로 결론에 도달란 근거들은 대부분 사실에 기반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미국에 넘쳐나는 음모론을 설명하기 위해 「뉴요커」의 마이클 켈리Michael Kelly는 융합 편집증이란 용어를 만들어냈다.(557) 미국인들이 지나치게 따지고 들게 된, 말하자면 나쁜 것은 무엇이든 어떤 의도적 음모의 결과라고 추측하게 된 이유는 1970년대부터 별안간 몇몇 음모들이 진실로 밝혀지면서 충격을 주었기 때문이기도 하다.(569)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특히 미국 공화당은 판타지 성향의 광신도에게 통제권을 빼앗기도는 이제 확실하게 기독교 정당을 표방하고 있으며, 거대한 백인 기독교 연합의 모습을 보인다. 그 통로는 음로론이었다.(572) 그 내용들은 황당하기 그지 없다. 지구온난화가 공화당 대통령 후보들의 공격을 받게 된 것은 의제21Agenda21 때문인데. 국제연합이 미국을 통제하려는 음모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걸 음모라고 믿은 이유는 그럴 듯하게 숫자로 되어 있기 때문이었다.(575) 특히 이 광적인 지지자들은 특정 정파의 완전한 승리를 꿈꾼다.(577) 공화당은 또한 지금까지 그 어느때보다 백인 정당이라는 의식이 강해졌다.(583) 비백인은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585) 기독교 정당 지지자들에게는 미국에 대한 강력한 세속적 전망이 없다. 공화당 지지자의 3분의 2는 기독교를 국교로 하는 것을 지지한다고 말한다.(588) 반면 진보주의자는 과학을 믿지 않는다. GMO를 거부하고, 백신을 거부한다.(593-594) 실제로 총기보유자는 감소했다. 1970년대에는 미국인의 절반이 총을 가지고 있었으나 지금은 총기보유자는 전체인구의 4분의 1이며, 대신 그들이 3~4자루씩을, 그리고 미국인의 3%인 800만명이 전체 총기의 절반을 가지고 있다.(602) 총기에 열광하는 이들은 환상주의자가 이끈 NRA를 지지했고, 실제로 수정헌법 2조의 해석이 바뀌었다. 미국인의 총기에 대한 열광과 총기 소유권이 헌법적 권리라는 통설 역시도 얼마 되지 않았다.(611) 디지털 게임, 증강현실, 디즈니랜드 등 쏟아져나오는 새로운 환타지 산업의 핵심 문제는 미국 어른들이 근본적으로 보다 아이들처럼 생각하게 되었고 그것이 문제라는 사실이다. 지금 원하는 것은 뭐든 살수 있다. 특히 인터넷의 강력한 매력은.(642) 게다가 뭔가 불만족스러울 때는 제대로 따져보지도 않고, 이건 공정하지 않아!라고 외치고 있다.(643) 트럼프를 움직이는 동력은 기존 제도권에 대한 원한이다. 그는 전문가를 좋아하지 않는다. 자신이 허구를 사실로 믿거나 그런 척할, 자기 나름의 진실을 느낄 미국인으로서의 권리를 방해하기 때문이며, 모든게 다 음모이다. 백인을 피해자로 만든 신화를 이용한다. 트럼프의 피터팬 증후군은 극단적이며, 그는 판타지 산업의 끝판왕이다.(661) 거짓말이 모두 환상은 아니고, 환상이 모두 거짓말인 것은 아니다. 사실이 아닌 것을 믿는 사람은 거짓말 탐지기를 통과할 수 있다. 트럼프의 비현실적 버전은 의도적인 거짓말, 엉터리 지식, 진심으로 믿는 환상으로 이루어진 조각보와 같다. 이것은 단순한 거짓말쟁이라는 사실보다 더 큰 문제다.(674)

미국의 음모론은 나의 상상을 초월했다. 리우 데 자네이로 열린 지구 서밋과 거기서 채택된 의제21은 기후변화 뿐 아니라 분쟁의 평화적 해결 등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의제21은 미국 우파 정치에서는 유엔의 미국 지배를 목적으로 한 장치라고 일반적으로 통용되고 있었다. 공화당이 지구온난화를 믿지 않고, 기후 변화에 대한 대응 조치를 반대하는 이유가 UN이 미국을 정복하고 미국 정치를 좌지우지할까 두려워해서라니 정말 코웃음이 나오는 이야기다. 유엔이 무슨 힘이 있다고. 그리고 한 걸음더 나가서는 2016년 공화당 공약에는 주정부, 연방정부 그리고 유엔이 홈스쿨링에 간여하지 못하게 하는 헌법 수정조항도 담겨있었다.(575) 유엔이 홈스쿨링에 왜 간여한다는 건가? 유엔이 창조론을 가르치지 못하게 한다는 건가? 이건 사실이라기 보다 이런 걸 믿는 사람들의 공포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더 나쁘고, 그걸 심지어 대통령 선거 공약에 넣는 공화당 정치인들의 유약함 내지는 교활함에 한숨이 나왔다. 무엇보다 이스라엘의 건국과 관련된 그릇된 믿음은 아마겟돈 전쟁이 곧 발발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고. 이것이 공화당 즉 미국의 대 이스라엘 정책의 근원을 이룬다. 그들은 아마겟돈 전쟁의 적일 이란을 신뢰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이란과의 핵 협상은 믿을 수 없는 것이 된다. 종말론에 대한 종교적 믿음 때문에.(591) 이런 자들의 손끝에 수천개의 핵무기가 달려있고. 세계의 운명이 맡겨져 있다니 이래도 괜찮은 걸까. 흥분한다해도 방법도 없지만.

미국은 꿈에 사로잡힌 환상주의자들이 만들어낸 세상이었다. 모두가 경이로움에 굶주린 사람들이었다. 강력한 종교적 DNA는 그들의 다른 정신적 습성을 규정하는 원인이 되었다. 미국은 개신교 기획국가일 뿐 아니라 최초의 계몽주의 기획국가이기도 했다. 모든 것에서 의미와 목적을 찾으려는 개신교적 충동이 계몽주의의 경험주의와 뒤섞인 결과, 흩어져 있는 점이란 점은 다 이어보겠다는 미국인들의 집착, 그리고 합리주의의 옷을 입은 비합리주의가 등장했다. 미국의 개신교와 계몽주의 독특한 융합은 극단적이고 독선적인 개인주의를 낳았다.(679) 커트 앤더슨은 한나 아렌트의 『전체주의의 기원』을 인용해서 쉽게 속아 넘어가는 성향과 냉소주의의 혼합이 군중 심리의 두드러진 특징이라면서, 그들은 거짓말한 지도자를 버리는 대신 자신들은 그 말이 거짓임을 알고 있었다고 항변하면서, 우월한 전략적 영리함을 갖추었다고 그 지도자를 찬양한다(694)고 말한다. 속았음을 깨달아도 포기하지 않는 군중. 임 문제가 얼마나 지난한지 보여준다. “자신만의 의견과 자신만의 호나상을 가질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자신만의 사실을 가질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특히 그 환상적 사실이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입힌다면 더 말할 것도 없다.”(698)

다시 김어준과 나꼼수를 생각해 본다. 그들이 등장하기 전에는 소위 ‘민주진보’ 세력은 자신의 입장과 처지를 해명하기에 바빴다. 어떤 공격이나 프레임이 들어오면, 그게 아니라고 변명하기에 바빴다. 변명과 해명은 긍정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나꼼수는 소위 프레임을 바꿨다. 그들은 공격을 음모라고 외쳤다. 그건 사실이기도 했다. 사실을 가지고 들어오는 공격도 공격의 일부만 사실이고 나머지는 실제로 덧씌우기였으니까. 그리고 그런 프레임 전환에 성공했다. 보수우파의 공격력은 현저하게 약해졌다. 조중동이 아직도 엄청난 화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는 그렇게 넓지 않다. 진정한 신자들은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있다. 미국인들도 싫어한다는 그들이 든 성조기. 그러나 나는 그들이 성조기를 든 심정을 알것 같았다. 자신들의 판타지가 받아들여지는 나라 미국에 대한 강렬한 마음의 표현 아닐까. 그리고 그 공격을 이겨낸 결과 사람들은 모두 진영, 기획, 숨겨진 목적에 대한 의심을 가지고 사물을 보게 되었다. 자신도 모르게. 물론 재벌과 자본은 보수 지배층은 그리고 군대는 목적이 있었다. 음모론은 김어준이 시작한 것이 아니다. 음모론은 우파가 시작한 일이다. 빨갱이 음모론으로 70년을 지배했다. 걸핏하면 음모론을 내세웠고, 조작 사건을 만들었고, 사람들을 고문했고, 판결하고, 죽이고, 가두었다. 강력한 독재권력은 종이에 그려진 음모를 현실로 만들었다. 실체는 없되, 죄인들만 가득했다. 그리고 그 음모 이론이 이제 그들에게 되돌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파는 현실로 돌아가기는 커녕 익숙한 음모론에 다시 한 번 기대어서 상황을 반전시키려 하고 있다. 이 일련의 과정에서 잃어버린 것은 무엇일까. 순수하게 패배해야 한다는 한심한 소리를 하는 것이 아니다. 이기지 않으면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한다. 아무리 지지부진해 보여도, 그마다 조금이라도 이겼기에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너무 많은 것을 잃어버린게 아닐까. 무엇보다 현실감각이라는 것을. 우연이라는 여유는.

책은 정말 재미있지만, 생각은 자꾸만 무거워지기만 했다. 이 책이 분명 사료에 충실하지 못하고, 과잉일반화의 위험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 두 가지 사소한 잘못을 잡아낸다고 해도, 그가 말하는 담론 자체는 무너뜨리기 어려울 것이다. 미국이라는 나라, 아니 인간이 만드는 국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고전을 다시 읽어야 겠다.

아, 그리고 조지 휫필드를 화이트필드라 하고, 남침례교를 남부침례교라 한 정도는 개신교 전문가가 아니면 할 수 있는 실수다. 이해에는 지장이 없다. 그런데, 년도 오기는 좀 많다. 케네디 이야기하는데 년도는 1920년대고 그렇다. 20세기 이야기하는데, 1700년대로도 표기되고. 눈에 뜨이는 것만 여럿이었는데. 굳이 쪽수를 명기하진 않으련다. 2쇄 찍을 때, 할 것 같으니, 꼭 원문과 대조해야할 것 같다.

2018. 7. 25.

* 괄호 안의 숫자는 번역서의 쪽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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