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른스트 H. 칸토로비치, 『왕의 두 신체』(9).

오른쪽은 포스투무스가 헤라클레스와 겹쳐진 모습이고 왼쪽은 콘스탄티누스가 태양신과 겹쳐진 모습. 포스투무스는 갈리에누스 황제 시절, 반란을 일으켜 갈리아 제국을 수립했고, 위의 금화는 그 시대의 것이다. 갈리에누스는 자신을 여신 세레스른쪽은 포스투무스가 헤라클레스와 겹쳐진 모습이고 왼쪽은 콘스탄티누스가 태양신과 겹쳐진 모습. 포스투무스는 갈리에누스 황제 시절, 반란을 일으켜 갈리아 제국을 수립했고, 위의 금화는 그 시대의 것이다. 갈리에누스는 자신을 곡물의 여신 세레스와 동일시하여, 옥수수 이삭으로 된 관을 쓰고 자신을 여신의 이름인 갈리에나로 칭하는 화폐를 발행하기도 했다.(502)

Ernst H. Kantorowicz, The King’s Two Bodies: A Study in Mediaeval Political Theology,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57, “IX. Epilogue.”

제9장 후기

“왕에 관한 계율은 다음에 포함되어 있었다. 당신이 인간이라는 것을 기억하시오Memento quod es homo 그리고 당신이 신 또는 신의 대리자라는 것을 기억하시오Memento quod es Deus, vice Dei.” 프란시스 베이컨은 「제국에 대하여」에서 하나는 권력에 굴레를 씌우고 다른 하나는 군주의 의지에 굴레를 씌우는 것이다. 베이컨의 첫번째 기억은 카말돌리 수도회의 표어 죽음을 기억하라Memento mori로 오인되어서는 안 된다. 이는 고전기 고대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개선식 날, 승리한 로마 황제가 백마가 이끄는 이륜전차를 타고 갔을 때, 함께 타고 가던 노예가 속삭였다. “당신의 뒤편을 보시오. 당신이 인간이라는 것을 기억하시오.” 다른 기억은 시편 81:6의 너희들은 신들이다를 인용했던 것일 수 있으며, 절대주의 시대 정치 저술가와 제임스 1세의 취향에 맞는 시구이다. 두 표어의 결합에 담겨있는 대립은 베이컨이 상당히 빈번하게 물러섰던 주제의 다른 다양성을 함의했던 것일 뿐인데, 즉 왕은 필멸하는 존재이지만, 그럼에도 그의 존엄[위]과 그의 정치적 신체에 관해서는 불멸하는 존재이다. 말하자면, 통치권에 대한 이분법적 개념이 고전기 고대에 뿌리를 두고 있음을 시사한다는 것이다. 역량에 관한 학설, 즉 인간과 직무 사이의 단순한 구별은 고전기의 것이다. 플루타르코스에 따르면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알렉산드로스의 친구와 왕의 친구를 구별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정치학』에서 군주의 벗과 군주의 지위의 벗 사이의 명료한 구별을 수립했다. 세네카는 배의 조타수에 대해서, 조타수는 두 개의 인격, 선객의 인격과 조타수의 인격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서 쌍생화의 원칙, 유사한 것으로부터 유사한 것으로de similibus ad similibus가 제시된다.(496-498)

프란시스 베이컨이 언급한 내용은 왕의 두 신체에 관한 논의가 고전고대적 기원을 가지고 있느냐에 대한 것이다. 튜더 시대에서 왕의 두 신체를 시작한 칸토로비치는 셰익스피어를 경유하여, 10세기부터 14세기까지 사상을 따라 주유하더니, 마침내 왕은 죽지 않는다는 명제로 튜더 시대로 되돌아 갔고, 왕의 두 신체와 단독법인이라는 사고의 결과로 만들어낸 장치가 잉글랜드의 발명품이라고 결론짓는다. 이 책의 주요논제는 7장까지가 일단락이다. 그럼에도 마지막 8장의 단테는 여운이 크다. 그가 정말 말하고 싶었던 것은 인간이었던 것인가. 본문의 논의를 끝내고, 다시 돌아가 이제는 왕의 두 신체 사상이 고전고대에 기원을 두는지 묻는다. 우선 통치권에 대한 이분법 자체에 대한 단서가 고전고대에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렇다면 다른 것은 없을까.

왕권에 대한 관념은 신-피타고라스 학파 저술가의 「왕권에 대하여」에 의해 독립적으로 전개되었다. 단편 에크판투스Ecphantus에서 지상의 장막(육체)의 왕은 나머지 사람과 같지만, 왕으로서 그는 왕을 만들어 낼 때, 스스로를 원형으로 사용했던 지고한 조물주의 사본이라 설명한다. 16세기 전반에 스토바에우스가 편집하고 번역했기에 절대주의 정치이론가에게 영향이 있었는데, 그 세기 말 왕관의 대소인 자크 드 라 겔르는 프랑스 고등법원에서 이를 인용했고, 대주교 어셔의 『신에 의해 군주까지 전달된 권력에 대해서』를 다루는 논고에 인용되었다. 또 하나의 피타고라스 학파의 논고에서 디오토게네스는 절대적 지배권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이 살아있는 법인 왕은 인간들 사이에서 신deity으로 변형되었다고 선언했다. 왕의 변형metamorphosis도 중세정치사상에 알려져 있었는데, 구약성서의 영향을 받은 것이지만, 노르만 무명씨의 다음 말은 디오토게네스를 듣는 것 같다. 왕 안에서 하나는 자연에서, 다른 하나는 은총에서 유래하는 쌍생 인격을 인정해야 한다. 하나는 자연 조건에 의해 다른 사람과 일치했고, 또 하나는 하느님deity의 탁월함에 의해서 성사의 힘에 의해 다른 모든 사람을 능가했다. 노르만 무명씨는 왕은 축성 시에 뛰어드는 은총의 힘에 의해서 변형되었다고 주장할 것이지만, 피타고라스 학파는 왕의 모방mimesis, 신격에 대한 모방의 결과인 변형이라 주장했다. 그러나 은총과 모방은 상호배제적이지 않다.(498-500)

EKa는 자신의 논지를 전개하는 순서대로, 먼저 철학적 논의를 살핀다. 신-피타고라스 학파의 저자의 저술에서 유사한 내용이 있었고, 마침 16세기 전반기 그러니까 튜더 왕조 시대헤 라틴어이기는 하지만 출간되어 영향을 미친 흔적이 드러난다. 쌍생인격과 왕의 변형까지 하지만, 직접적 연관성은 발견되지 않는다.

왕의 이중화에 대한 고대의 문제는 왕의 정치적 신체를 헬레니즘 시대의 왕과 로마 화제의 신성과 대등화하고 싶어하면, 점점 더 복잡해지고 뒤얽히게 된다. 한 사람 안에서 인간적 본성과 신적 본성의 이중화는 고전기 사상에서 낯설지 않다. 헤로도투스는 불멸하는 헤라클레스에게 희생을 바치고 그를 올림포스의 신이라 부르지만, 죽은 영으로서 다른 하나에 공물을 바친 도시를 칭찬했다. 신으로서 필리포스의 상이 극장 안으로 옮겨지는 동안, 마케도니아의 왕 필리포스 2세는 극장에서 자리에 앉아있었다. 로마 제국에서도 기묘한 상황이 있다. 기원전 7년, 로마에서 아우구스투스의 수호신에게 제단이 봉헌되었고, 신관단이 설치되었는데, 황제는 대신관의 자격으로 희생을 바칠 수도 있었고 이를 받을 수도 있었는데, 동시에 공물을 바치는 자이면서 받는 자일 수 있었다. 칼리굴라는 하나의 사원을 자신의 신성numen에 봉헌하고, 날마다 자신과 동일한 의복을 입힌 황금 예배용 조상을 두는 데까지 나아갔는데, 상당히 불가해하기는 하지만, 이중화의 완벽한 형태이다. 이 모든 것이 함의했던 것은 지배자의 공적 인격에 대한 대상화였다. 법정에서 황제의 수호신을 걸고 서약해야 했던 의무도 사실이며, 신민이 황제(E)를 걸고, 황제(e)에게 충성을 다하겠다고 서약을 행해야 했으며 그럴 수 있었다. 이런 특징이 왕의 불멸하는 신체에 대한 후대의 대상화와 막연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것도 의심할 바 없지만, 유사점만큼이나 차이점도 크다. 황제의 수호신 또는 신성은, 공적 예배의 대상이기는 했지만, 개별자로부터 분리되었던 것이 아니라 개별적 인간에 내재하는 구성요소였다. 중세 후기의 군주가 존엄[위]의 도구이며, 불멸하는 직무의 화신이 되었다는 의미에서 황제가 신성의 도구 또는 수호신의 도구가 되었다고 주장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화신[육화]도 고대 지배자 숭배 안에 있었다.(500-502)

논의는 고대 종교로 넘어간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의 종교 및 황제 숭배 예식에는 왕 또는 황제가 자기자신을 신으로 만들어, 스스로 숭배의 대상이 되는 경향이 분명히 있다. 심지어 여기서 언급되는 사례처럼, 자신이 숭배하고 자신이 숭배받는 기묘한 모습조차 등장하다. 실제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이 시대 사람들이 그걸 어떻게 생각했을까이다. 칼리쿨라는 자기자신의 신관이 되어 비웃음을 샀다고 하기는 하는데. 황제숭배는 어떤 자기정당화에 근거해 시작되었던 것인지. 황제 숭배에 대한 EKa의 결론은 이렇다. 통합체나 단체까지는 아닐지라도, 스스로를 대상화하는 데까지는 나아갔지만, 분리와 이중화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고, 자기자신이었을 뿐이라는 평가다.

갈리에누스가 주화에서 여신의 상징물인 옥수수 이삭의 관을 쓰고 턱수염이 있는 초상을 전시했을 뿐 아니라 여황제 갈리에나라는 명각 명각으로 둘러쌀 때 그는 여신 세레스와 자신의 동일성을 극단까지 이르게 했다. 3세기에 디오클레티아누스가 4분통치 및 유피테르, 헤라클레스 왕조를 수립했을 때, 수호신의 다수성은 풀기 어려웠는데, 황제의 수호신은 유피테르와 헤라클레스의 수호신 자신이라고 선언되었기 때문이다. 신이 아우구스투스의 동반자comes Augusti로, 황제의 영속적 동반자로 인정되었을 때, 이는 동일한 관념의 혼합물에 속했고, 아우구스투스의 수호신과 신은 거의 구별할 수 없었다. 포스투무스는 두 얼굴을 겹쳐 황제와 헤라클레스의 옆얼굴이 결합된 주화를 발행했다. 헤라클레스와 황제의 용모는 강력하게 동화된 까닭에 그러한 심상은 쌍둥이 관계 또는 신과 지배자의 동일성을 시사했다. 프로부스와 존엄한 프로부스의 동반자인 태양, 황제의 정복되지 않은 동반자, 투구를 쓴 프로부스의 머리 뒤에서 신기루처럼 광선이 있는 태양 신의 두 얼굴을 겹쳐 그린 흉상도 마찬가지다. 신의 용모가 황제와 닮았다. 콘스탄티누스의 화폐 주조에서 정복되지 않는 동반자인 태양은 용모를 바꾸어 마치 콘스탄티누스 자신의 형상으로 창조된 것처럼 나타난다. 어떤 종류의 이중적-존재가 제시되었음을 나타내는 쌍생화를 인식하는데, 인간적-신적 이중화는 콘스탄티누스와 정복되지 않는 태양Sol invictus를 교환가능한 크기로 표현하고 지배자의 필멸하는 인간적 신체를 그에 수반하는 신이기에 불멸하는 신적인 초-신체와 함께 보여주고 있다. 이는 왕의 모상인 신Deus imago regis인데, 하느님의 모상인 왕rex imago Dei라는 그리스도교의 격언을 비틀어서 이렇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로마 명각의 다른 조합들은 도구성 문제에 가까워지고 있는 것도 보인다. 공화정 말기, 로마 인민의 수호신이 주화에 묘사되었는데 이때는 헤라클레스 같았으나, 3세기 주화에서 황제 자신이 로마 인민의 수호신으로, 로마 인민의 영원한 생산적 힘의 화신으로 환호받는 것을 발견한다. 여기서 황제는 어떤 것의 도구로 볼 수 있는데, 로마 인민의 수호신의 도구이고, 결코 죽지 않는 정치체의 전형이다. 3세기 여러 차례에 명각이 황제의 신성과 지상의 대권에 봉헌되었을 때, 황제가 로마 인민의 대권이며 그 화신이었음을 기억할 수 있다. 세네카의 군주는 국가의 혼이고, 국가는 군주의 신체라는 표현형식이 철학적으로 매우 유사하다는 것이다.(502-505)

EKa는 자신의 주특기 중 하나인 도상연구로 되돌아간다. 이런 연구를 고전古錢학이라고도 하던데. 옛 화폐에서 황제와 겹쳐 그려진 모습을 보면, 헤라클레스나 신이 황제와 닮게 그려져 있다. 훗날의 벽화나 모자이크에도 이런 현상이 등장하는데. 이 부분에서 쌍생이라는 주제가 싹트고 있다고 보는 것이다. 다음 주제는 도구성인데. 도구성이라는 주제는 존엄[위]을 다루는 부분(7장 3절)에서, 존엄[위]과 재임자를 연결하는 아퀴나스의 철학적 논리인 도구성이 3세기 주화에서 흔적을 보인다는 것.

왕의 두 신체라는 관념의 본질이 이교적 고대에 이미 있었음을 시사하는 단발적 특징을 고전기 정치철학과 정치신학에서 인식할 수 있다. 고래의 정리 중 몇몇이 문헌자료 및 고고학적 고전학적 자료와 함께 르네상스 성기에 유효하게 되었다. 고전기 모형이 때로 전적으로 다른 상황과 층위에서 기원하고 발전했던 현상을 합리화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이중화의 모든 고전기 특징의 집약이 중세 후기 법률가들의 이론에 비견할 만하지는 않다. 고전기의 평행현상, 유사점, 선례들에 불구하고, 튜더 왕조의 표현형식의 이교적 기원을 배제할 수 있는 한 가지 세부사항이 있는데, 왕이 두 신체를 가지고 있다는 개념이다. 이를 정당화할 수 있는 이교사상은 없으며, 현대학자들이 로마황제를 단독법인으로 부른다면 이는 잘못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 우주, 도시, 국가가 신체로 해석될 수 있고, 그리스도의 신체인 교회라는 바오로의 정의가 그런 철학을 반영하지만, 바오로 학설의 개념은 결국 고대 후기의 단체에 철학적-신학적 추동력을 부여했던 것이고, 이는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교회를 신체라 언급하고 그에 의해 법의 언어 안에 철학적이고 신학적 관념을 도입하기 전에는 그런 신체에 결여되어 있었던 듯하다. 그리스도의 신체 학설이 법적 통합체 해석에 미친 영향과 중세 단체 이론에 미친 영향도 고려되어야 한다. 노르만 무명씨 개념이 고래의 지배자 신화의 여파로 여전히 표류하고 있다고도 논증할 수 있다. 그러나 튜더 왕조 법학자들의 신조는 명확히 바오로 학설의 언어 및 그것의 후대의 발전에 달려 있는데, 이는 바오로의 그리스도의 신체로부터 중세 교회의 신비체로의 거기서 국가[공동체]의 도덕적 정치적 신체와 그와 동등했던 국가의 신비체로의 변화이며, 최종적으로 모든 대수도원장은 신비체 또는 정치적 신체였고 따라서 왕도 결코 죽지 않았던 정치적 신체였거나 이를 가지고 있다는 표어가 등장했다. 그러므로 일관성이 없는 이교적 개념과의 몇몇 유사성에도 불구하고, 왕의 두 신체는 그리스도교 신학의 파생물이며, 결과적으로 그리스도교 정치신학의 두드러진 표지로 있다.(505-506)

간단히 말하면, 고전고대에 흔적이 있고, 파편이 있지만, 사상적 근거로 볼 만한 것은 없다는 점. 특히, 튜더 왕조의 왕의 두 신체라는 표현형식은 이교적 기원을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교의 영향은 그것도 마찬가지인데. 초기 그리스도교가 이를 사상적으로 발전시켰다는 증거는 없다. 그리스도의 신체(몸)이라는 사도 바오로의 언급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콘스탄티누스 대제 이후 법의 언어 안에 철학적이고 신학적 관념이 부가됨으로서 비로소 유의미한 출발점이 생겼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도, 따져볼만한 것은 중세로 넘어가야 의미가 있고. 콘스탄티누스가 기원이라기 보다 아무리 위로 거슬러 올라간다 할지라도, 그가 한계라는 것. 결론적으로 왕의 두 신체는 이교적 기원을 확인할 수 없으며, 그리스도교 정치신학의 산물이라는 것이 결론이다.

EKa는 마지막으로 후기에 가서, 그동안 핵심으로 다루어 왔던, 주제의 외곽에 있는 부스러기들을 마지막으로 확인한다. 헨젤과 그레텔 같다. 본문의 논의에서 직접 다룰 가치가 없다고 생각되는 부수적이지만 흥미로운 이야기들은 주로 긴 주를 통해서 소화해 왔다. 그의 주를 읽다보면 질리게 된다. 여기까지 살펴봤다는 것인가. 주를 꼼꼼히 읽고나면, 칸토로비치의 논의를 아주 굵은 주제 만 파악해서 쉽게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고개를 끄덕이기가 어렵다. 정말 비판하려면 아주 깊게 따라가야 할텐데. 본문의 주로도 소화할 수 없는 고대의 이야기는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망라하고 간다. 주장은 명확하다. 튜더 법률가들의 발명품. 그리스도교 신학의 기원. 2025년 안에 일단락을 짓고 싶어 마지막 부분은 다소 날림이지만, 일단 이렇게 정리를 마친다.

2025. 12. 31.

* 괄호 안의 숫자는 책의 쪽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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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른스트 H. 칸토로비치, 『왕의 두 신체』(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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