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른스트 H. 칸토로비치, 『왕의 두 신체』(8).

단테 알리기에리와 『신곡』. 단테의 왼쪽 뒤편으로 보이는 원뿔 모양이 바로 연옥산이다. 단테는 이 길을 자신의 이교도인 스승 베르길리우스와 함께 올라가며, EKa에 따르면 고대 후기에 형성된 7주 간의 세례준비자의 신앙검사 과정을 인간성에 기초하여 넘어가게 된다. 낙원으로 들어가는 그 순간 스승 베르길리우스가 씌워준 왕관과 주교관은 인간성에 기초한 세례이므로, 성사 없이 낙원에 이르게 된다. 아담이 쫓겨난 후 화염검을 든 천사가 막았던 길을 뚫고 되돌어가듯, 단테는 불의 벽을 넘어간다. 비록 이교도 베르길리우스는 낙원으로 들어가지는 못하지만. 이를 구원이라 말하지는 않지만,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먹고 낙원에서 쫓겨난 아담의 그 원형의 낙원으로 단테는 오직 인간의 방법으로 되돌아 가는 길을 보여준다고 EKa는 논평하는 것. 그 방증으로 7개의 대죄의 구체적 내용이 신과 인간의 관계를 다루는 것이라기 보다 악의 덕목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악덕은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 단테의 입장이라는 것. 얼마나 많은 동조자가 있는 지는 모르겠으나, 나는 이 부분을 줄곧 감탄하면서 읽었다. 어느 한 장, 한 절에서도 나를 실망시킨, 진부한 내용이 없이, 매 번 놀라면서 기대하며 눈을 비볐다.

Ernst H. Kantorowicz, The King’s Two Bodies: A Study in Mediaeval Political Theology,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57, “VIII. Man-Centered Kingship: Dante.”

제8장 인간 중심 왕권: 단테

시인 단테에게 남겨진 것은 순수하고 단순한 인간이 중심이고 표준이었던 왕권의 형상을 확립하는 것이다. 인간성의 도구인 인간Homo instrumentum humanitatis이라는 신학적-법적 격언의 곡해는 단테의 도덕적-정치적 관점을 관통하는 표어였다. 정치철학자 단테도 자신의 세기의 정치적 학설을 최대한 흡수했는데, 1300년경 정치적이고 지적인 논의에서 주요한 위치를 차지했다. 그는 아퀴나스를 활용했지만, 토마스주의자가 아니었고, 주해자[아베로에스]를 인용했지만, 아베로에스주의자가 아니었다. 교황령주석가를 혹평했지만, 교회법 사상의 정통 노선을 상당히 따랐다. 유스티니아누스에 정통했고, 로마법 일반에 대해 긍정적이었지만, 법학자들에 신랄했다. 단테는 저작의 모든 장마다 자기 시대의 일반적 지식을 재현했지만 모든 정리에 새롭고 놀라운 관점을 부여했다. 단테의 준거점이자 공통항은 항상 제도 배후에 있는 인간이었다. 단테의 군주 내지 제왕에 대한 형상은 단테가 없었다면 결여되었을 인간 중심 왕권 개념 및 순수하게 인간적 존엄[위] 개념을 반영하고 있다. 단테 자신의 복잡함 때문에 모든 단테 해석은 단편적일 수밖에 없다. 시인 단테의 환상과 정치철학자 단테의 논거는 서로를 끊임없이 방해하는 것처럼 보인다. 단테의 엄격한 논리는 결코 선형적이지 않다. 철학자 단테의 사상을 직설적으로 재현하려는 어떠한 노력도 시인의 관점의 복합성을 소홀히 여겼기에 실패할 가능성이 있다. 문예비평가가 추적하기 바라는 논거의 직선으로부터 행한 어떤 일탈도, 미지의 것을 향한 마지막 항해를 떠난 단테의 율리시스처럼, 해석자가 길을 잃게 될 단테 사색의 대양으로 이끌어 갈 것이다. 단테 해설자는 단테가 말하지도 않았고 의미하지도 않았던 것을 단테에서 읽어내려는 유혹을 너무나 자주 받게 될 것이다. 시인의 의식 바깥에 있는 것을 우리는 받아들일 수 없다. 단테 사상의 한 가닥을 분리하는 위험과 단테가 떠올린 적도 없는 학설을 읽어내려는 위험 모두를 인정하면서도, 신학 사상을 세속 세계에 배분하는 단테의 양상을 예증하고, 인류와 인간이라는 기본개념의 이원성 및 이 세상과 저 세상에서 인간의 궁극적 목적의 이원성과 풀어낼 수 없이 뒤엉킨 주제를 지시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다.(451-454)

사실 7장으로 끝날 줄 알았다. 7장의 마지막에서 잉글랜드에서 왕의 두 신체가 종결되는 것을 보면, 단테는 튜더 시대보다 300년은 앞서는 인물이고 이야기는 다소 동떨어져 있다. 그런데 어떻게 생각해 보면, 인간에 초점을 맞추는 그의 정치철학의 전개는 가장 르네상스적이고 또 가장 근대에 가깝다. 중세에 속한 정치철학자로 중세적 논법과 중세적 참조 속에서 움직이지만, 그가 주목하는 인간만큼은 너무나 뚜렸하다. 그럼에도 K2B 전체에서 이 장이 가장 이해하기 까다롭다. 번역본을 통한 독해의 어려움도 있다. 단테의 주요 작품들은 대부분 번역되어 있지만, 번역자가 모두 다르다. 그 중에서 가장 통일성을 찾기 어려운 것이 『제정론』이다. 번역자의 라틴어 실력이 너무나 뛰어나고, 너무나 문학적으로 유려한 번역을 하는 바람에, 동일한 어구나 표현을 통해서 논의를 전개하는 칸토로비치를 읽는데는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국어 번역본에는 윗줄과 아랫줄에 달리 번역되어 있지만, 원문에는 한 단어를 사용하는 경우도 몇 차례 발견했다. 앞과 뒤에 통일성도 없는 경우가 있다. 해당 번역에 장점이 있으니, 독자가 알아서 해결하는 수밖에 없다. 국가와 사회는 서로 다른 것이다.

단테의 저작에서 인격과 직무 사이의 구별은 명료하고 예리하며 드물지 않다. 『신곡』에서 보니파키우스 8세는 새로운 바리사이인들의 군주였고 다시 깊은 곳으로 밀어 넣어질 것이었지만, 교황의 예복을 입은 그는 그리스도의 참된 대리인이자, 그리스도 자신이기도 했다. 도나투스파가 아니었던 그는 무가치한 재임자인 인간 속에서 직무의 유효성을 부정하거나 무시하지 않았다. 개인 교황과 교황의 존엄[위], 베네데토 가에타니와 보니파키우스 8세는 명확하게 구별되고 분리되어 있었다. 『향연』에서도 유사했는데, 황제로서 프리드리히 2세의 권위와 철학자로서 그의 권위 사이를 통렬하게 구별했다. 황제로서 황제는 가장 철학적이며 철학으로 가득한 것이었으며, 인류의 최종 목적에 대한 단테의 개념에서 인류를 현세 생활의 지복으로 이끌기 위해 황제의 권위와 철학적 권위가 일치해야 했고 필수불가결하게 결합되어야만, 황제로서의 황제가 철학자로서 구속력있는 권위를 가졌음을 부인했다. 단테가 존엄[위]과 그의 인간 재임자 사이를 구별했던 방식을 예증하는 수많은 구절이 있다. 『신곡』의 등장인물에게 할당된 장소는 그런 구별을 암묵적으로 드러낼 수 있다. 어떤 때 그는 직무를 개별 직무담당관이 아니라 인간에 대립시켰을 때 그는 완전히 새로운 화음을 울린 것이다. 개별적 인간이자 자기 종의 대표자 양자 모두인 인간, 그 단어의 가장 강조된 의미에서의 인간.(454-456)

인격과 직무의 구분은 존엄[위]과 인격의 구분이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단테가 두 신체든 두 인격이든 두 인간이든, 이원성 속의 긴장이라는 EKa의 K2B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를 자신의 방법으로 변주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제정론』 3권에서 단테는 황제가 자신의 제국의 권력이 교황의 중재를 통해서가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직접 유래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과업을 할당했다. 이 문제는 12세기 교회법학자들에 의해 광범위하게 다루어졌는데, 일원론자들이라 불렸던 성직자정치주의자들의 한 집단은 최종적으로 모든 권력은 영적인 검과 물질적 검 모두를 자유재량으로 처리하는 성직위계제의 영적인 머리에 달려 있으므로, 제한된 의미에서 교황의 대리자라 명명되었던 황제는 위임받은 권력을 향유했을 뿐이라는 논제를 옹호했다. 단테는 교회법학자들과 정치선전가의 급진적 집단에 대항해서, 그는 확대되고 있던 온건파인 이원론자 편에 섰다. 12세기의 저명한 대변자로, 피사의 휴구치오가 있었는데, 그들은 교황과 황제의 상호독립이라는 겔라시우스의 오래된 표현형식을, 두 권력은 모두 하느님으로부터 직접 유래했고, 황제는 로마에서의 대관 이전에도 선출에 의해서 권력을 행사했다는 것이다. 물론 황제는 교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종교적 사항에 관해서는 교황의 성사적 권력에 의존했고, 어떤 현세적 사항에 대해서도 그러했지만. 단테는 이원론자를 수용하면서, 그 창시자들이 꿈꾸지 못한 목표까지 진행시켰는데, 보편적 제왕이 교황의 재판권으로부터 해방되어 있음을 입증하기 위해, 교황 만이 아니라 교회에서도, 그리스도교 종교에서도 독립되어 있었던 세계의 부분적 영역의 총체를 구축해야 했는데, 이는 지상 낙원의 상징으로 현실화되었고, 인간의 고유한 권력의 행사로 구성되었고, 이는 영원한 지복의 입구로 도움이 되었다. 단테의 지상 낙원은, 신적 조명의 도움으로 상승할 수 있는 천상의 낙원과 병치되어 자체로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기능을 가졌다. 인간은 부패하기 쉬운 신체와 부패하지 않는 영혼으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모든 피조물 중에서 유일하게 중간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데, 이는 두 반구들 사이의 중앙을 차지하는 수평선에 비견할 만하며, 그러한 이원성의 결과로 모든 피조물 속에서 인간 만이 목적의 이원성을 달성할 의무가 있었다. 이들은 인류의 두 가지 다른 목적이었다. 섭리에 의해 교황과 황제의 직무에 상호 독립적이었던 다른 과업과 기능이 부여되었다. 교황직과 황제직은 서로 너무나 달랐기에, 비교가 불가능했으며, 비교하려면 공통의 기원으로 되돌아간 후에만 비교할 수 있는데, 무구한 상태가 아닌 타락한 인간 같은 경우에, 두 직무의 구제책이 필요했다. 교황직과 황제직 모두는 인간을 올바르게 인도하기 위해 하느님에 의해 확립되고, 유래했고, 속해 있는 제도였다. 그렇기에 모든 지배영역이 보편적으로 통합되어 있었던 하느님 그 자체로 환원되었을 때에만, 신격이 그 안에서 특수화된 형태로 나타나는 하느님의 하위에 있는 어떤 실체로서, 직무의 어떤 천상의 원형으로 환원되었을 때에만 비교가능한 것이 되었다. 양자 모두가 하느님에 직접적으로 의존했기 때문에, 어느 직무와 관련해서도 인간 중개자의 가능성을 단테는 배제했다. 중개자가 있다면, 교황직과 황제직 각각의 천상의 원형인, 천사, 하느님의 하위에 있는 어떤 실체이다.(456-458)

단테의 철학은 그의 정치적 이력과 함께 했다. 단테는 피렌체에서 교황파인 구엘프를 지지했다. 이 투쟁은 황제파인 기벨린의 승리로 끝나지만, 패배한 구엘프는 흑당과 백당으로 나뉘어진다. 단테는 백당에 속했는데, 흑당은 보니파키우스 8세와 가까웠다. 정치투쟁에서 패배한 단테는 라벤나로 망명해서 생활했고,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단테는 철학적으로 온건파 이원론자라 평해지며, EKa에 의하면 그는 이원론을 끝까지 밀고 나가서 아예 보편 영역을 둘로 나누어버리게 된다. 이 둘 사이의 수평선처럼 인간이 존재할 뿐이다. 교황과 황제는 기원으로 돌아간 후에야 비교할 수 있다고 말하는데, 그렇다면 현실에서 둘은 상관해서는 안된다. 이는 이원론 수준을 넘어서는 두 세계론이라고도 볼 수 있다.

교황과 황제는 신과 천사라는 하늘의 기준에 의해서만 아니라 지상에서 타당한 기준, 인간이라는 기준으로 환원되었을 때도 비교가능하다. 인간이라는 것과 교황과 황제는 별개이다. 단테는 인간이 유類적으로도 질적으로도 이해되기를 바랬기에, 교황과 황제가 인간으로 비교가능했던 것은 필멸하는 인간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가장 고양된 형태인 인간[최선의 인간(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학』, 일자]으로서 두 직무 담당자들이 공통으로 가진 기준이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황직과 화제직은 신의 천명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하느님이라는 기준에 의해서, 직무의 인간인 재임자는 인간이라는 기준에 따라 일자, 형상, 자신의 인간성에 의해 인류genus humanum를 가장 완벽하게 포괄했을 뿐 아니라 대표했던 자에 따라 측정되어야 했다. 기능에 따라 다른 영향권에 제한되어 있어 비교불가능했던 독립체인 교황과 황제는 하느님과 인간과 관련하여 비교가능한 것이 되었으므로, 이들은 태양과 달이나 두개의 검 같은 공리공론이 아닌 신성deitas이나 인간성humanitas에 의해 측정되어야 한다.(458-460)

교황과 황제가 비교되려면, 서로 평가하려면, 인간이라는 지점에서 평가할 수 있다. 그런데 함정이 있다. 필멸자인 구체적인 삶을 살아가는 인간이 아니다. 가장 고양된 인간, 최선의 인간, 유적 존재로서의 인간 인류로서의 인간으로 비교 측정되어야 한다.

단테의 개념에서 존재하는 인간의 능력이 그 자체로 직무에, 인류에 대해 고도로 책임있는 인간의 직무에 해당하지 않았던 것인지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이 직무는 지위, 책임, 보편성에서 교황직 및 황제직과 동등하고 황제나 교황 못지 않게 항구적인 존엄[위], 즉 인간Man의 존엄[위]으로 장식하고 있었다. 인간의 형상을 가장 완벽하게 표상했던 그는 부수적 개별성을 초월했고 자기 종의 초-개인적 대표, 인간의 집단적 유類적 존엄[위]이 명료해진 인격적 존엄[위]의 재임자가 되었던 것인가? 단테의 최선의 인간optimus homo은 아리스토텔레스의 현자와 동일했고, 철인-현자가 교황/황제와 별도로 제3의 영향권에 있는 것처럼, 그와 독립적인 제3의 인격을 표상하기도 했지만, 교황-황제-철인의 삼분법은 천상과 지상이라는 『제정론』의 이원성에 적합하지 않다. 『제정론』은 인류를 지상의 지적 철학적 완성으로 이끄는 황제의 과업을 입증하려는 것으로 황제와 철인은 일치하며, 그렇지 않으면 황제는 철학적 이성의 사용으로 인류를 자연적 목표로 인도하는 과업에 부족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도에 대한 초자연적 목표로의 인도가 영적 목자인 교황의 책임이었던 것처럼. 단테의 이원성의 도식 전체는 인간성과 관련하여 그리스적인 철인-현자가 아니라 로마적인 황제-철인의 형상을 요청하고 있는데, 그리스도교다움Christianitas와 관련해서 로마 교황의 형상을 요청하듯이. 두 완벽한 목표로 인도하는 두 도로가 있고, 두 가도는 로마의 두 태양인 황제와 교황에 의해 밝혀지고 있었는데, 그가 제시하는 인간의 목적과 지도력의 근본적 이원성을 보여준다. 단테는 그 자체가 목표인 도덕적 윤리적 목표가 (자체의 목표를 가진) 교회로부터 독립된 인간공동체에 속한다고 생각했는데, 이것이 『제정론』 전체 도식의 주요 전제이다. 도덕적-윤리적 가치와 영적 가치의 이원성은 단테 시대 법학자들에게 공통적이었다. 단테는 인류통합체universitas generis의 자족성과 주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세속 정치적 신체에 대한 견해를 표명하기 위해, 신학의 언어와 교회의 사상을 전유했고, 교회라는 종교적 관념의 세속화된 모방을 구축했으며, 자신의 창조물에 지복, 지상의 낙원을 부여했다. 그 결과는, 하나는 인간적-제국적이고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교적-교황적인, 상호 독립적인 단체적 신체의 이원성이었는데, 둘 다 보편적이고, 자신의 목적을 추구했고, 인간적 완성이라는 자신의 목표를 갖고 있었다. 이는 세속적 목적이 영적 목적에 종속되어 있었던 토마스주의와는 달랐으며, 도미니크회 성직자 귀도 베르나니는 현생에서 도덕적이거나 지적 덕행만의 작용으로 획득할 수 있는 최종 목적인 정치적 참행복은 없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다른 목표를 향해 보조를 맞춰 행진하는 단체적 신체들의 이원성은 교황에 의해 통제받지 않는 자족적 세계-군주정에 대한 단테의 환상을 위해 필수적이었다. 단테의 제왕은 자체의 권리에서 철학적-지성적 권력이었는데, 자연이성과 법학이 속해 있던 도덕철학을 수단으로 인간의 정신을 세속적 지복으로 인도하는 것이 황제의 주된 책무였기 때문이다.(460-464)

단테가 추구했던 것은 최선의 인간이었다. 하지만 황제-교황-현자와 같은 식으로 제3의 항으로 최선의 인간이 등장했던 것이 아니다. 최선의 인간은 시[하느님]과 함께 교황과 황제에 하나의 준거점으로 기능했다. 단테가 추구하는 세계에서 황제는 철인이어야 했고, 그가 통치하는 세계는 인간공동체로서 모든 이교도까지 통합된 세계이니 적어도 현세에서는 심지어 그리스도교세계보다 더 클 수도 있다. 이 세계는 도덕적-윤리적 가치가 중요하며, 이 세계는 지상의 낙원을 목표로 하고, 거기서 인간으로서 지복을 누리게 된다. 이 모든 것에 대해, 교황과 그리스도교세계에 대응하는 항목이 있는 것은 물론이다. 읽을수록 단테는 둘 다 이야기하기 보다 하나만을 설명하고 싶어하는 것 같지만.

목표의 이원성이 반드시 충성의 갈등이나 대립까지 함의하는 것은 아니라서, 단테의 저작 속에 인간적 대 그리스도교적이라는 대립은 없지만, 인간적 완성과 그리스도교적 완성 사이를 구별했는데, 이들은 인간의 가능한 행복이 심원하게 다른 두 양상으로, 두 인간의 잠재적 능력의 현실화는 서로를 지지하도록 되어 있다. 단테의 철학 체계 안에서 인간성 영역은 그리스도교다움의 영역과 근본적으로 분리되어 있으며, 인간 사회의 자율적 권리가 강력하게 강조되었기에 단테가 영적인 것과 현세적인 것의 통합을 철저하게 분쇄했다고 말할 수 있다. 단테의 형이상학적 수술은 다른 사람을 능가했는데, 그는 인간성을 그리스도교다움에 적대시키지 않고, 철저하게 분리했으며, 인간적인 것을 그리스도교적인 복합물로부터 들어냈고 그 자체로 하나의 가치로 떼어놓았다. 정치신학에서 가장 독창적 성취라 할 것. 단테의 분리주의는 다른 사회조직적 층위의 창출로 이끌렸는데, 그의 인간통합체는 그리스도교도와 비-그리스도교도가 동등한 모든 인간의 세계공동체로 상상되었고, 인간이 되는 것이 보편적 평화, 정의, 자유 및 화합을 위해 지상 낙원에서 세속적 자기-실현으로 철인-황제에 의해 인도되어야 했던, 인간공동체의 성원이 되기 위한 기준이었다. 단테의 인간공동체는 모든 인간을, 어떤 이교도도 포함했고, 단테는 인류가 결국은 이교도 황제인 신적인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인도되었을 때 세상이 최상의 상태에 있었다고 주장할 수 있었고, 그의 치세 하에서 그리스도 자신이 인간, 로마 시민이 되는 것을 선택했다. 13-14세기 교회법학자들과 교황파 저술가들은 교회 바깥에 정당한 제국은 없다고 했지만, 단테는 이를 역전시켰다. 바울이 그리스도가 육화한 시점을 가리키는 “때가 차다”는 표현에 아우구스투스를 포함시켜, 그리스도와 아우구스투스 모두가 이 땅을 밟고 있었던 섭리의 시점을 “때가 차다”고 불렀다. 완벽한 황제 신적인 아우구스투스 치하에서만 완전한 제정이, 로마인들의 제국이 완벽한 평화 상태에 있었다. 전에도 후에도 존재하지 않았던 완전한 제정은 하나의 이교도 군주, 가장 인간적이자 신적인 아우구스투스 치하에서만 발견되었다.(464-467)

단테 정치신학의 가장 큰 전개는 분리주의라고 EKa는 평한다. 단테의 분리를 통해서 쫓겨난 것은 세속일까 아니면 교회일까? 인간성 영역과 그리스도교다움의 영역은 완전하게 나뉘어진다. 거기서는 이교도 황제 치하에서 완전한 평화를 누리며, 인간 예수도 그의 치하에 있다. 이런 식의 분리와 후대 잉글랜드에서 두 신체를 생각해 보면 어떨까? 왕의 두 신체 논의에서 마지막에 살짝 언급되는 수장령을 생각해 보자. 잉글랜드에서 성속의 주권이 한 사람에 통합되자, 두 신체 이론이 간명해지게 된다. 단테는 이원론에 이원론을 겹치고 겹쳐서 어지러울 정도로 도형을 그려내야 했다.

인간성이라는 단어의 양면성도 또한 고려되어야 할 듯하다. 인간성은 질적으로 인간적 행동을 의미했으며, 이는 양적으로 인류 전체를 의미했다. 인간성의 질적 완성을 성취하기 위해서 모든 인간은 인간의 전체적 신체에 기여해야 했다. 따라서 인류, 또는 인간성은 양적으로 한 사람, 모두를 포괄하는 단 하나의 공동체, 보편적 단체적 신체 내지 인간통합체 또는 인간공동체라 불렀던 어떤 총체성으로 단테에게 나타났다. 공동체civilitas는 인간의 보편적 시민성, 시민적 사고, 인간다운 예의, 교육까지도 가지고 있다. 인간 공동체는 실제적 문제를 넘어서, 지적, 교육적, 유대 만이 아니라 자연적 유대에 의해서도 결합되어 있는, 세계-정치체의 한 시민이 가졌던 그러한 정신적 태도에 의해 결합되어 있는 보편적 공동체를 함의했다. 단테는 신비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지만 인간공동체 안에 있었을 것인데, 보편적 인간의 공동체는 이른바 인류의 아버지인 아담의 신비체를 표상했고, 그 머리는 인류를 자신이 나왔던 곳인 지상낙원으로 돌아가도록 인도하는 과업을 부여받은 황제였기 때문이다.(467-468)

단테의 인간공동체, humana civilitas를 인간공동체로 옮기는 것은 다소 궁색하지만, 어쩔 도리가 없다. 인간 국가, 인류 문명 등의 용어도 사용하는데. 의미상 그런 것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인간은 질적 완성을 추구하되, 인류 전체로서 추구한다. 질적, 양적 동시적 완성을 추구하는 말이 바로 인간공동체이다. 여기에는 시민성과 교양까지 포함된다.

지상의 낙원으로 가는 노정은 지적, 도덕적-정치적 덕들, 고전적-이교의 주요한 덕인, 현명, 용기, 절제, 정의에 의해 표시되어 있다. 스콜라 철학은 4추덕은 지적인 덕, 획득된 덕이라 불렀는데, 인간 안에 존재했고, 인간적 본성과 인간적 이성의 조건에 따라 손에 미치는 곳 안에 있었다. 세 가지 대신덕, 신앙, 참사랑, 소망은 신적 은총에 의해서만 인간에게 부여될 수 있으므로 그리스도교도들에게만 부여될 수 있는 하느님에 의해 주입된 덕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논거를 따라가면서 12, 13세기 신학자들은 주입된 덕 만을 지정한 것으로 제한 없이 참된 덕으로 인정했다. 처음으로 이성에 따라 도덕적-정치적 덕에 완전하고 고유한 가치를 돌린 것은 아퀴나스였다. 정치적 덕의 행위는 결과가 결여된 것이 아니며, 오히려 그 자체로 선하다. 단테는 아퀴나스의 제자였다. 그는 지적인 덕의 독립적 가치를 격리하여 주입된 덕의 초-자연적 가치에 대항하여 대립시켰다. 하지만 아퀴나스는 지적인 덕과 대신덕 사이를 구별했을 따름으로 칠주덕의 전체적 기능적 통일성을 해체하지 않았지만, 단테는 덕의 두 집단을 분리하여 두 낙원 개념과 결합했고, 지적인 덕을 지상의 낙원에 주입된 덕을 천상의 낙원에 할당했다. 인간은 적절하게 인도된다면 자기 자신의 궁리를 통해 자연이성과 네 가지 덕의 힘으로 최초의 인간의 지상 낙원에 도달할 수 있다. 그리스도교도인 한에서 인간은 천상의 참행복의 영원한 평화를 얻고 또 내세의 삶에서 신적인 빛으로 상승하기 위해서 교회의 조력과 하느님에 의해 주입된 덕, 교황의 지도를 필요로 했지만, 인간인 한에서 인간은, 네 가지 지적 덕의 작용을 통해 그 자신의 손이 미치는 곳 안에 있던, 철학적 지복, 현세의 평화, 정의, 자유, 화합에 도달하기 위해 교회의 지지가 필요하지 않았다. 이런 관념은 단테에게 반대하는 자와 찬성했던 자에게 모두 이해되었는데, 페루자의 환전상회관 접견실 벽면 프레스코화는 인문주의자 프란체스코 마투란치오의 조언에 따라, 신학적 정경과 함께, 네 주요한 덕이 각각 세 명의 모두가 이교도인 영웅과 현인이 따라 수행하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여기에 13번째 인물, 카토 우티켄시스가 발견되는 것은 단테의 책임이다. 단테는 지성을 영혼과의 통합으로부터 분리하는 것과 지적인 덕을 신적으로 주입된 덕과의 통합으로부터 분리하는 것에 의해서, 이제 자유로운 지성의 힘을 풀어주었다. 그는 이 세상의 행복을 추구하기 위해 모든 인간들로 세계-공동체를 하나로 결합하는 데 이를 사용했다. 인간의 지성과 자연이성은 이교도를 포함한 모든 인간에게 공통된 것이며, 순수한 지적 완성과 지상 낙원에서 철학적 자기-구속은 모든 인간의 손 닿는 곳에 있었다.(468-471)

카톨릭 세계에서 주요한 덕들로 꼽히던 7가지, 대신덕과 사추덕을 가리키는 데, 전통적으로 대신덕이 우월하고, 사추덕은 이를 보완하는 것이지만, 단테는 이마저도 갈라놓는다. 대신덕은 천상의 낙원 그리스도교의 세계에서, 사추덕은 지상의 낙원 인간성의 세계인 인간공동체에서. 영혼과 통합되어 영혼의 주도권에 이끌리고 있던 지성의 분리는 지성의 해방이다. 지성으로 이 세계에서 해방을 추구하는 힘의 정당화는 실로 놀라운 것이다. 근대의 세속국가들이 이 정도로 정교분리를 수행했을까.

교황으로부터 세속 제왕의 독립을 입증하려는 노력으로 단테는 “보편적 그리스도교 세계의 이상을 교회로부터 차용했고 이를 세속화”했으며, 그리스도교세계를 인류라는 관념으로 대체했다. 동시대 파리의 아베로에스 철학자들은 현세에 철학자의 지복을 인간적 개인의 궁극적 목표로 옹호했는데, 단테는 지상의 행복을 궁극적 목표로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주의 학설의 대부분을 개인으로부터 인간통합체로 이전했고, 이 세상에서 철학적-지적 지복을 개인간의 단체적 신체 같은 큰 집단에 대해서도 옹호했다. 인간의 단일성, 지적 단일성, 정치적[제왕적-철학적 지도력] 단일성의 결합은 외견상 비정통적인 담대한 결론을 재촉했는데, 개별적 인간의 신체 및 지성과 유비에 의해, 단테는 보편적 인류의 단체적 신체에 보편적 지성을 제공했다. 지성의 통일성은 아베로에스주의의 공리 중 하나였으며, 단테도 그를 인용했다. 인류의 단체적 신체 전체 만이 개인도 국부적 단체적 신체도 달성할 수 없었던 것을 달성할 수 있었으며, 인간 지성의 총체의 모든 가능태들이 항상 그리고 모두 동시에 현실화되도록 허용할 수 있었다. 양적 및 질적으로 인간성 전체의 영속적 현실화를 확보하기 위해 세계-제정이 필요했다고 단테는 결론지었다. 그는 로마의 철인-제왕에 의해 완성으로 인도되었던 거대한 정치적 집단을 가시화했다.(471-473)

인간의 단일성은 지성의 단일성으로 연결된다. 이 역시 놀랍고 대담한 전개다. 원죄와 타락에 근거하는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배교하지 않고 어떻게 이런 사상 전개가 가능했을까? 모든 인간을 인간통합체로 보는 것은 지금까지 전개된 논의에서 흔했다. 유기체론이든 단체론이든 어떻게든 인간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다. 그러나 단테는 한편으로 지성도 하나로 모아 지성통일성을 함께 주장한다. 그것은 아베로에스의 공리였는데. 라틴 아베로에스주의가 정죄된 것도 그가 아주 어릴 때. 사제도 신학자도 아닌 그에게 그게 중요하지 않았던 걸까.

단테가 말했던 것은 인간 지식의 총체성, 그것에 의해 인간(M)이 인간(m)이 되었던 것의 총체성 또는 인간성의 총체성은 오직 인류의 단체적 신체의 집단적 노력에 의해서만 현실화될 수 있을 것이다. 아퀴나스가 설명했던 것처럼, 원죄와 관련하여 인류 전체는 하나의 신체와 하나의 인간과 같았다. 첫 사람 안에서 잠재적으로 죄에 빠져 있었던 인류의 총체성에 대항하여 단테는 “그 자신의 존엄[위]”과 낙원도 또한 잠재적으로 회복할 수 있는 인류의 총체성을 설정했다. 아담의 자신의 사지 안에 인류와 죄를 잠재적으로 지녔던 것과 똑같이, 자신의 총체성에서의 인류는 자신의 사지 안에 아담과 그의 완성태, 그의 단순한 상태를 지니고 있었다. 아담으로부터 펼쳐졌던 것, 인류는 다시 단체로서의 아담으로 축소되었다. 이는 단테가 인류를 마치 단 하나인 인격, 법학자들의 통합체와 똑같이 언제나 그리고 모두 동시에 현실태였던 단 하나인 단체적 신체로 상상했다. 이러한 항구적 인간 공동체에 비하면, 개별적 구성요소들의 지적인 힘은 어떤 다른 단체적 공동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단편적이고, 단명하며, 불완전할 수 있다. 그렇기에 영속적 현실화 상태는 오직 단체 전체, 인간 종에 의해서만 달성될 수 있었는데, 단테는 여기에 보편적이면서 단일한 지성을 돌리고 있다. 단테가 보편적 지성을 아베로에스로부터 차용했지만, 아베로에스주의자는 철인, 개인 안에서 현실화되었던 분리된 세계-지성을 꿈꾸었지만, 그럼에도 단테는 집단적인 것을 생각했는데, 개별적 인간 구성요소로부터 분리되어 있지 않지만, 각각을 초월했으며 집단적 개인으로서 오직 “한 인간”으로 행동하는 통합체에 의해서만 충분히 현실화될 수 있었던 내재적 세계-지성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아베로에스주의를 수용한 단테의 개념에 이단의 기미가 있을 수 있다. 보편적 지성이 항상 그리고 동시에 현실화되어야 한다는 단테의 요청, 개별적으로는 충족되는 것이 불가능했던 영속성의 요구이다. 이 시점에서 단테는 동시대 법학자와 철학자 사이에 통용되던 단체론적 학설과 일치하게 되었다.(473-476)

인간의 총체성은 인간 지성의 총체성에서 인간 지식의 총체성으로 연결된다. 이것은 인간성의 총체성이다. 그리스도교의 원죄 이론이 원래 총체성, 유적 인간의 개념이기는 하다. 아담 안에서 모두가 죄를 지었다니. 이러한 인류 전체를 모두 다시 아담 안으로 불러들여, 단 하나의 단체적 신체를 상상한다. 인간 종은 영속적 현실화 상태에 들어간다. 신과 인간이 영역적으로 분리되자, 인간 안에서는 모든 것이 하나로 응축된다. 하나의 인간으로 행동하는 통합체의 내면적 세계지성. 이것은 가장 극단적 단체론이다.

법학자에게 통합체의 유죄성과 책임성을 정확하게 정의하는 것이 비록 어려웠지만, 적어도 단체적 신체들이 머리도 영혼도 지성도 갖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에 대해 어느 정도의 합의는 있었다. 단테의 세기에 법학자들은 통합체가 자체로 분리불가능한 전체이며, 부분들로 구별되지 않는 일종의 개체라고 주장했다. 통합체를 조국이라는 관념으로 대체할 때, 전체가 그것의 구성요소의 합계를 초월하는 독립체였다는 것이 명백했는데, 조국을 주민들의 수로 나누는 것은 분할이 아니라 절단이기 때문이다. 바르톨루스는 통합체가 인격을 표상하고 있다고 논했으며, 발두스는 공동체를 단일한 인격의 지성을 가지고 있지만 다수의 신체들로 구성된 보편적 인격이라 명명했는데, 단테의 논의방식이 이와 밀접했다. 이탈리아 법학자들의 개념적 집단론은 아퀴나스만큼이나 아베로에스적이지 않았다. 아퀴나스도 역시 인류의 죄에 대한 단체론적 설명을 내놓았는데, 아담에서 태어난 모든 인간은 하나의 인간으로 간주될 수 있으며, 한 공동체의 모든 인간이 하나의 신체로 간주되듯 전체 공동체는 하나의 인간으로 간주된다. 아퀴나스의 집단론은 인류가 지성의 단일성에 의해서가 아니라 원죄의 단일성에 의한 단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아퀴나스의 제자이자 단테의 스승인 레미지오 데 지롤라미의 극단적이고 급진적 단체주의는 개인적 완성이라는 가치를 사실상 거의 질식시켰으며, 공동체, 전체 안에서만 완성이 있었다. 시민은 자신보다 더 도시를 사랑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도시는 그의 유일하게 가능한 현실화이기 때문이다. 전체, 도시는 개별자 보다 더 완벽하며, 그렇기에 하느님에 더 유사하다. 레미지오는 토마스주의적 원시-헤겔주의자였으며, 반-개인주의 극단론자였다. 도시 바깥에서 개별자는 완성될 수 없고, 인간인 것은 시민인 것에 의존하고 있었다. 단테도 인간이 시민이 아니었으면, 더 악화되어 있을 것이라 인정했다. 레미지오가 혼을 가지고 있지 않았던 의제적 인격을 지옥의 형벌로 단죄할 가능성을 인정했던 것과는 별도로 다른 모든 점에서 자신의 논거를 불법적인 극단으로 가져갔다. 그가 옹호했던 것은 단순히 조국을 위해서 죽는 것, 공동체를 위해서 신체의 자연적 죽음의 고통을 받는 것과 지상에서의 희생에 대한 하늘에서의 보상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레미지오는 혼의 영원한 죽음을, 현세의 조국을 위해서, 개인적 구원과 천상의 참행복이 위험에 빠질 것을 주창했다.(476-480)

단테에 앞서 단테에게 영향을 주었을 통합체론을 검토해 보면, 지금까지 논의했던 이탈리아의 법학자인 바르톨루스와 발두스를 들 수 있다. 하지만 단테 측에서 주목해 볼 인물은 아퀴나스와 레미지오이다. 아퀴나스의 집단론은 상상하기 쉽다. 원죄의 단일성에 의한 단체, 아담의 후손을 모두 가리키는 지극히 신학적인 명제다. 그의 제자이자 단테의 스승인 레미지오는 극단적이고 급진적 단체주의를 몰고 나갔다. 오직 집단 뿐이며, 개인은 무의미하다. 어느 정도로 무의미한가? 집단의 한 예인 도시를 위해 죽을 때, 내세에서의 영광을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소멸할 지라도, 영혼의 영원한 죽음까지도 감수하라는 주장이었다. 교황이든 황제든 그 뒤에 하느님을 업고 있는 세력과 싸우라는 이야기겠지.

단테는 스승의 가차없는 단체주의와 반-개인주의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영향을 받았는데, 인간 지성의 총체의 현실화가 모든 가능한 공동체 중 가장 위대한, 로마 세계-제정에서 조직된 인류의 통합체(인간의 단체적 신체)에 의해서만 집단적으로 수행될 수 있는 과업이라고 반복해서 강조했을 때, 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극한까지 진행시켰다. 단테는 이 도식 안에 자신의 세계-제왕을 끼워맞춰야 했는데, 『제정론』 독자는 완성에 가까운 개별자로, 그의 자연적 신체 보다는 세계-제왕의 정치적 신체를 닮은 개별자로 인식했을 것이다. 그의 논적 베르나니가 가상의 세계-제왕을 덕으로 모든 신민을 능가해야 했던 군주로 묘사한 것이 완전한 잘못은 아니었는데, 이는 군주는 국가 안에 있고, 국가는 군주 안에 있다는 법학자들의 학설에 가까운 것이다. 단테의 경우 국가는 인간의 통합체에 의해 대체되었고 극한까지 넓어졌기 때문에, 베르나니는 인류전체의 제왕은 덕과 지혜에서 인류 전체를 능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베르나니에게 남은 단 하나의 존재는 그리스도였다. 베르나니의 결론은 그리스도교다움의 모든 독점적 우위를 인간성에 속하는 대응물로 배제하거나 보완했던 단테 사상의 이중성을 보여준다. 『제정론』의 독자에게 주어진 질문은 단테의 세계-제왕이 최고의 하나, 자기 종류의 형상, 인간성 전체가 그 안에서 현실화되었던, 완벽한 인간이었던 최선의 인간의 모상에 어느 정도까지 필적했느냐 였다. 그러한 완벽성은 아담과 그리스도에서 존재한다고 『신곡』에서 말한다. 그들은 하느님으로부터 나왔으며, 원죄의 부담을 지지 않았다. 둘 모두 모든 인간 가능태의 현실화였고, 다른 방식으로 인간의 총체성을 집약하고 있어 철학적으로 완벽했다. 아담은 창조 당시 무죄 상태로 있는 유일한 인간으로 개체이자 종이며 인간이자 인류로서 일치했고, 그리스도는 하느님이자 인간이었기 때문이며, 그리스도의 육체 안에서 처벌받은 것이 인류전체였기 때문이다. 아담과 그리스도는 특유한 이중적 방식으로 인간이었다. 첫 사람 아담은 무죄한 불멸하는 순박한 아담과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맛본 후의 필멸하는 아담의 모두였으며, 그리스도는 순박한 아담의 본성과 필멸하는 아담의 본성의 우유성을 자신의 자유의지로 취했다. 단독의 개인 안에 있는 인류의 두 현실화들은 아담과 그리스도인데, 지상과 천상의 낙원의 주인들이며, 현세와 내세에서 완성의 귀감이고, 섭리에 의해 숙고하도록 인간 앞에 설정된 두 가지 목적들에 관한 단테의 철학적 이원성을 지시하는 형상이다.(480-483)

로마 세계-제정에서 조직된 인류의 통합체는 결국 모든 인간을 포괄하는 통합체의 이름인데, 인간의 단체적 신체를 부르는 단테의 이름이며, 거기서 세계-제왕이 통치하게 되는데, 이 세계-제왕은 단지 완벽한 인간이라는 말로도 부족한, 최선의 인간의 모상이며, 인간성 자체가 한 개인 안에서 현실화되어야 했으니 달리 말하면, 인류 전체가 한 인간 안에서 현실화된다는 말도 된다. 그런 인간의 모상은 둘이 있다. 하나는 첫 사람 아담,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 이 아담은 순박한 아담과 필멸하는 아담으로 설명된다. 이들은 지상과 천상의 낙원의 주인들이다. 여기서 『신곡』으로 이어지는 길이 열린다.

그리스도교 시대의 모든 세기에는 인간의 쇄신, 개혁, 재생, 초자연적일 뿐 아니라 도덕적 갱생에 대한 관념이 있었으며, 타락 이전에 그랬던 것과 같은 천사보다 조금 낮고 하느님과 닮은 것으로 창조된 인간의 원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 모든 그리스도교의 목표였다. 모든 신자는 하느님의 아들의 육화 덕분에, 그리스도의 신성에 참여하도록 또 인간본성의 원래의 무결성을 재확립하도록 잠재적으로 선택되었다. 낙원의 아담의 형상은 그리스도, 새 아담의 형상과 합쳐졌고, 낙원에서 아담의 원래 하느님과의 유사성은 신적 은총의 지지에 의해 그리스도를 통해 회복되었다. 새로운 인간의 형상은 타락 이전의 아담의 형상보다 우월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아담의 원래 본성의 회복이라는 관념을 다시-인간화하는 것과 인간적인 것을 그리스도교 사상의 집적으로부터 다시 해방하는 것이 단테의 몫이었다. 그의 이원성 철학의 귀결은 통용되던 아담-신학의 세속화와 그리스도교적이지 않은 순수하게 인간적인 재생의 교의를 구축하는 것을 피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483-484)

아담의 회복, 창조 그대로의 모습으로 인간의 원래의 모습을 회복한다면, 이때 단테의 논의를 유추하면, 그리스도를 경유하지 않고서도 인간성을 회복할 수 있다. 단테가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단테는 그리스도를 통한 인류의 구원이나 회복 보다는 아담 안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인간성의 회복이 중요하다고 본 듯하다. 인간적인 것을 그리스도교 사상에서 해방하는 것. 이것이 EKa의 신념이었던 것일까?

『신곡』의 앞의 두 부분, 지옥편과 연옥편은 단테가(인간 일반, 인류)가 철학과 세속적 지혜에 의해 죄가 있는 상태로부터 타락 이전의 최초의 인간의 순수하고 선한 본성으로 돌아가도록 인도되었는지 입증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다. 현세적 완성은 인간 자신의 힘에 의해서, 그의 자연적 이성과 지적 덕에 의해서 달성되어야 했다. 단테에 의해 시각화된 인간의 재생은 필연적으로 교회의 외부에서 진행되어야 했다. 그가 그리스도교다움, 주입된 덕, 천상의 낙원으로부터, 인간성, 지적인 덕, 지상의 낙원을 분리한 결과로, 그는 그리스도로부터 아담도 구별해야 했고, 은총에 의해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의 초월적 완성으로부터 독립적인 지상에서 인간의 원래의 형상으로 복귀하도록 해야 했다. 단테는 인간을 비-성사적인 방식으로 원죄로부터 세정해야 했다. 단테에 따르면, 최초의 인간의 순수성을 회복하고, 에덴 동산 안으로 되돌아가며, 마침내 지식의 나무로 돌아가 열매의 효과를 취소하는 것은 인간 자신의 힘 안에 있었다. 『신곡』에서 신학적-성사적 의미가 아니라 철학적 의미에서 인간의 정화를 의미했던 것은, 연옥을 통과하는 순례였고, 순례와 정화의 결과는 세례의 결과와 어느 정도 평행했다. 단테는 연옥으로부터 새로운 아담 같은, 자유롭고, 바르고, 온전한 존재로서 나타날 것이다. 단테에게 있었던 갱생은 도덕적이고 윤리적이지, 성사적이지 않았다. 도덕 철학과 시민적[국가적] 덕을 정화하고 재생하는 힘은 단테가 연옥편 제1곡에서 울렸던 주제로, 연옥 앞의 입구를 지키는 수호자 카토 우티켄시스는 정치적 자유를 위해, 자살하여, 자기 생명을 희생했던 철인-영웅인데, 이는 철학적-지적 자유와 거의 동일했다. 단테에게 그는 네 가지 덕의 체현자였고, 거룩한 네 빛의 광선이란 남십자성이었으리라. 에덴에서 아담과 이브에게 네 별이 보였지만, 타락한 후 자취를 감추었다. 단테는 네 가지 지적 덕, 세속적 완성과 지복을 향해 조타하기 위한 지적 세례지원자들의 길잡이 별의 십자형을 다시 보는 최초의 살아있는 인간이라 자칭했다. 네 미인의 인도 하에서, 단테의 세속적 교리교육은 시작되었다. 지옥편과 마찬가지로 안내자는 시인 베르길리우스이다.(484-486)

인간을 회복하되, 인간 자신의 힘에서, 그리스도교 바깥에서, 비-성사적인 방식으로, 최초의 인간의 순수성을 회복하면서, 지식의 나무의 효과를 취소하는 것. 그것은 정화의 과정인데, 이러한 정화를 단테는 연옥의 순례 과정을 따라 행한다. 그래서 연옥 앞 문지기로 카토 우티켄시스, 소 카토가 등장한다. 그는 정치적 자유를 위해 자살한, 그리스도교로서는 후대 왕정에서도 용서할 수 없는 대죄를 지은 인물이지만, 단테에게는 문을 열어주는 수호자 역할을 한다. 단테가 따라가고자 하는 여정이 엿보인다.

중세교회에서 세례와 참회자의 교회복귀라는 두 가지 정화의례는 공통인 특징이 많았다. 광범위한 교회예식과 결합된 준비가 필요했고, 둘 모두 신자미사에 들어갈 수 없었고, 최종적 조명과 정화로 인도하기 위한 구두 가르침을 받았다. 단테의 연옥편에서 참회와 세례라는 의례는 각각의 위치를 차지한다. 그러나 단테는 교회와 화해해야 할 죄인이었을 뿐 아니라 무엇보다 교회로부터 독립적인 인간의 완성과 교회 안에서의 초-인간적 완성을 모두 추구하려고 노력하는 인간이기도 했다. 북부 이탈리아에서 11세기까지 존속했던 교회의례에 따르면 교리교육을 받은 후 세례지원자를 시험하고 준비시키기 위해 일곱가지 신앙검사가 사순절 칠주간에 분배되어 있었다. 단테는 지적 세례를 준비하기 위해 자신의 신앙검사로 고유한 의미의 연옥으로 진입했고, 정상에 지상 낙원이 있는 정화산을 오르려 준비가 되었을 때 시작되었다. 연옥의 문으로 단테는 꿈에 의해 데려가졌다. 불꽃 속으로 올라가는 꿈은 황제의 (도덕적-철학적) 힘을 통한 정화의 꿈이다. 연옥의 문에서 천사에게 세례지원자 처럼 입장을 간청했다. 천사는 검끝으로 일곱 P(죄)를 새겨 넣는데, 이는 칠대죄(도적적 악적들)을 표시했다. 단테는 정화산의 계단 언덕을 오르고 순회하면서 이들로부터 하나씩 자유로워져야 했다. 마지막 P는 화염의 벽 바깥의 천사가 제거하는데, 에덴 동산을 둘러싼 벽으로, 단테를 지상의 낙원의 지복으로부터 분리하고 있던 유일한 것이었다. 불에 의해 세정되고 셰례받은 인간으로 시인은 마침내, 아담이 화염검으로 지품천사에 의해 금지되었던 에덴동산으로 들어갔다.(486-488)

EKa는 단테의 연옥편의 전개과정에서 세례와 참회자의 교회복귀라는 정화의례를 발견한다. 세례지원자를 심사하기 위한 칠주간의 일곱가지 과정, 이 과정을 단테는 정화산의 계단을 오르면서 하나씩 지워간다. 칠대죄, 칠죄종은 실상 일곱 가지 악덕의 이름들이다. 영화의 주제로도 늘상 등장하는. 단테는 이를 하나씩 정화하며 낙원에서의 지복을 회복해 나간다. 마지막 순간 불의 세례를 받는데, 이때 낙원을 향한 벽을 넘게 된다. 아담이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서, 낙원에서 쫓겨나 낙원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된, 천사가 지닌 화염검과 담이 무너져서, 창세기에 등장하는 인간이 낙원에서 쫓겨난 역순으로 낙원으로 되돌아간다. 『신곡』의 3부는 흔히,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이라 불리지만, 실상 낙원편이라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초기 그리스도교의 세례, 참회자의 교회복귀, 정화의례, 이 모두는 푸코가 말년에 집중했던, 자기배려와 자기돌봄, 파레시아, 진실성, 주체 문제를 풀어가는 중요한 이야기였다. 푸코가 칸토로비치를 인용하기는 하는데.

지상의 낙원에서 베르길리우스는 더 이상 자격이 없었다. 죄에 대한 형벌인 죽음은 그리스도에 의해 정복되었고, 그의 죽음과 부활은 영원한 생명에서 인간의 불멸성을 회복시켰다. 그러나 인간의 순수하고 선한 본성은 단지 인간적인 지혜와 지적 덕에 의해서만 회복되었고, 인간의 원래의 본성은 불멸하게 된 존재로서 가치가 있었다. 자신의 자유의지에 의해 지도되었을 때 더 이상 비틀거릴 수 없었고, 습성처럼 인간의 참된 본성은 불변하는 것이 되었다. 그렇기에 원죄는 순박한 아담의 인간적 존엄[위]의 상실을 의미했고, 그의 자연적 판단력과 내적 외적 자유의 상실을 의미했던 한에서, 원죄의 결과는 단테가 화염을 횡단했을 때 무효화되었으며, 인류에 대한 저주는 교회와 성사의 개입 없이 지성과 최고 이성의 힘 만에 의해서 정복되었고, 이는 이교도 베르길리우스에 의해 상징되었던 힘들이며, 그는 단테 개인과 관련하여 인류 전체, 인간 공동체와 관련하여 황제에게 위임되었던 지위와 기능을 받아들였다. 단테가 들어갔던 지상의 낙원에는 『제정론』 저자가 꿈꿨던 주민이 없었는데, 제국과 교황직이 자신의 의무에서 태만했기 때문이었다. 최이제는 타락 이전의 아담과 참으로 닮았으며 최종적으로 자신의 제자를 두고 물러가게 될 베르길리우스를 통해서 단테는 인간적 완성과 그 자신의 현실화에 도달했다. 섭리가 인간 앞에 설정했던 목표 중 하나에 도달했다.(488-489)

이제 베르길리우스는 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그는 인간을 인간성으로 이끄는 스승이지만, 이교도이다. 이교도인 시의 스승으로 지옥과 연옥을 통과시키는 단테의 의도가 투명하게 보인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도덕으로 이 난관을 넘고자 하는 것이다. 지혜와 지성으로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교회와 성사의 개입 없이, 지성과 이성의 힘으로 악을 정복하고, 인간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다는 신념이다.

『신곡』의 마지막 연에서 인간이 어떻게 자신의 두번째 목표에 도달하고 그리스도와 합일을 인정할 수 있는 단테에 의해 밝혀질 것인데, 인간의 얼굴의 여러 용모의 환상, 우리 인간의 모습의 어렴풋한 영상은 신의 빛의 둘째 원 안에서만 윤곽이 보이며, 단테도 육화의 신비를 이해할 수 있게 할 것이다. 하지만 삼위일체 하느님 안에서 그리고 영원한 낙원 안에서 인간의 완성에 대해 지상의 낙원 안에서 그의 완성, 아담의 완성이 선행되었다. 교회의 의례에 따르면 무죄한 상태의 죄없는 아담으로의 복귀는 세례에 의해 성취되었다. 세례에 의한 도유는 왕과 사제의 존엄[위]의 수여이다. 실제 동방교회 의례에 새로 세례받은 사람에게 관을 씌우는 관습이 준수되었고, 서방에서도 드물지만 세례의 성유를 보호하기 위해 관모양 붉은 장식이나 두건을 사용해 세례받은 자의 머리에 일종의 주교관처럼 덮기도 했다. 세례가 새로 세례받은 자에게 왕 및 성직자의 존엄[위]을 수여하는 것은 왕이자 대사제인 그리스도의 신체의 한 지체가 되었다는 것을 가리킨다고 널리 유포되어 있었다. 이상으로 보아 베르길리우스에 의한 단테의 대관이 그렇게 많은 억측의 대상이 되었던 것은 이상한 일이다. 황제는 왕관에 주교관을, 교황은 주교관에 삼중관을 썼다. 연옥편 27곡에서 의미는 명백한데, 단테가 영광과 영예로 관을 쓴 또 하나의 아담처럼 지상의 낙원 안으로 다시-들어가는 순간에, 그는 베르길리우스에 의해 왕관과 주교관이 씌워졌다. 새롭게 세례받은 자에게 부여된 왕과 성직자의 존엄[위]이 단테에게도 부여되었다. 주교관과 왕관으로 된 단테의 대관은 성사적이지 않았으며, 그것은 은총이 아닌 자연에 의한natura, non gratia 지적이고, 도덕적인 이전transference에 의한 세례였다. 단테가 네 개의 별을 보며 이교도 카토 앞에 부복하면서, 세례지원자가 되었던 이래 준비되었던 것이다. 단테는 성사-외적이고, 교회-외적인 방식으로 인간성으로 자신의 세례를 성취했는데, 카토는 대부로 예언자 베르길리우스는 그의 세례자로 행동했는데, 이번에는 인간에게 하늘들이 아니라 인간(M)에게 낙원의 자물쇠를 열었던 세례자였다.(489-492)

낙원으로 들어가는 마지막 순간에는 성사가 필요했다. 그러나 단테는 사제에게 의지하지 않는다. 그는 스승 베르길리우스의 손으로 자신의 머리에 관을 씌운다. 왕관과 주교관, 이것은 자연에 의한 세례이고 지적 도덕적 이전에 의한 세례였다. 카토 앞에서 무릎꿇고 시작된 참회자의 여정은 베르길리우스의 대관이라는 세례로 완성된다. EKa의 이런 해석이 얼마나 정통인지 모르겠지만, 감탄스러운 것만은 분명하다.

베르길리우스에 의해 베풀어졌던 지적 세례를 통해서 단테는 교회인 그리스도의 신비체가 아니라 인간성인 아담의 신비체의 한 지체가 되었다. 단테는, 인간의 완성과 현실화의 순수하게 인간적인 모형인, 아담과 닮음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부재했던 것도 아니고, 단테에게 베아트리체가 건넨 처음 몇 마디로, 그녀가 육화된 그리스도를 로마 시민으로서의 그의 인간적-정치적 능력 안에서 불러냈을 때 그는 지상의 낙원 안에 통합되었다. 초월적 예루살렘을 초월화된 로마로 대체하는 것, 그리스도의 순수하게 인간적 능력이, 로마 시민으로서 아담의 신체의 한 지체로서 변용되는 것, 로마인 베르길리우스에 의해 단테가 아담의 동료-시민이자 공동-통치자로서 대관받은 후에 동료 로마인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그의 장래의 공동-시민권을 약속하는 것. 낙원에서 유일한 인간, 인류와 동일했던 아담은 동시에 종種이자 개인이었고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진정한 단독법인이었다. 하지만 단테는 이제 관을 쓴 아담의 공동-통치자였다. 그의 세례적인 대관은 은유적으로 순박한 아담이 그에게 수여되는 것이며, 자신이 현실태였던 초-개인적 인간성이 수여되는 것이거나, 그에게 인간의 단체적 신체와 정치적 신체가 수여되었던 것이다. 그에게 결코 죽지 않는 거의 객관화된 인간의 존엄[위]을 수여했던 것으로, 단테는 그것의 필멸하는 재임자였다. 인간은 주권적 존엄[위]과 보편적 직무로 나타났는데 그것의 담지자는 그가 누구든지 다른 모든 사람의 표준이며, 그들의 형상인 최선의 인간이 듯하다. 그러한 인간의 존엄[위]은 지위와 품계에 관계없이 불멸하는 인간인 한에서 인간에 대한 지고한 재판권을 포함하고 있으며, 자기 종류 안에서 최고의 단계의 일자였던 반면, 존엄[위]의 도구 즉, 인간성의 도구인 인간으로 행동했다. 법적 이론은 단테의 마음 속에 떠오르지 않았을 지라도, 인간의 두 신체에 대한 학설의 본질은 확고하게 그의 마음에 존재하고 있었다. 낙원에서의 순박한 아담과 닮았던 단테. 단테에 대한 대관은 단테 안의 필멸하는 아담 위에 단테 안의 순박한 아담을 대관하는 것을 의미했다. 단테는 단테 자신에게 관을 씌웠는데, 이 시구는 함의와 암시로 가득차 있다. 여기서 의도는 단테의 아담 중심 또는 인간 중심 왕권 개념, 인간과 인간(M)의, 인간과 인간성의, 불멸하는 아담과 순박한 아담의, 그리고 이전에 의한 인간의 자연적 신체와 인간(M)의 단체적 신체의 반영성이다. 잉글랜드의 법률가들은 두 신체 대한 다양한 설명을 해왔다. 시인에게는 두 신체의 바로 그 긴장을 인간 자신 안에서 시각화하고, 인간성(로마법에 따르면 신의 모방의 매개)을 인간의 주권자로 만들며, 이러한 복잡하게 얽힌 교차관계와 상호관계에 대해 가장 인간적이기 때문에 가장 복잡하고 간단명료하며 단순한 표현형식을 발견하는 것이 남아있었다: “나는 너 자신 위에 너를 왕관과 주교관으로 씌운다.”(492-495)

베르길리우스의 대관을 통해 세례를 받아 아담의 신비체를 이룬 단테는 아담과 닮음을 이루고, 아담의 동료 시민이자 공동 통치자가 된 단테는, 아담이 초-개인적 인간성이 부여되는 것이며, 아담이 가진 존엄[위]의 재임자가 된다. 단테에게 주어진 대관은 단테 안의 필멸하는 아담 위에 낙원에서의 순박한 아담을 대관한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단테의 아담 중심의 인간 중심 왕권 개념은 인간의 자연적 신체와 인간(M)의 단체적(정치적) 신체가 서로에게 되돌아가는 반영성을 의미한다. 그리고 EKa는 이를 마침내 아담의 단독법인으로 이끌어 간다. 불멸하는 인간의 단독법인. 세상에서 유일한 인간의 인간성의 단독법인. 그 가장 간명한 형태로, 대관의 언어를 발견한다. EKa는 마지막에서 자신을 이야기하는 느낌이다.

이토록 아름다운 끝맺음이라니.

2025. 12. 30.

* 괄호 안의 숫자는 책의 쪽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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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른스트 H. 칸토로비치, 『왕의 두 신체』(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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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체로서의 왕관을 보여주는 그림이다. 1278년 에드워드 1세가 의회를 개회하는 모습인데. 좌우에 스코틀랜드와 웨일즈의 군주가 앉아있으나, 이는 상상일 뿐이다. 16세기의 그림이다. 여기서 왕관이라고 옮긴 말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