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른스트 H. 칸토로비치, 『왕의 두 신체』(6-2).

1671년에 출간된 이탈리아의 법학자 벤베누투스 스트라차의 저서 표지에 실린 바르톨루스(왼쪽)과 발두스(오른쪽)의 초상이다. 칸토로비치가 가장 많이 인용하는 주석학파와 후기주석학파의 법학자들이다. 이 장의 논의도 이들에게 기대고 있다. 이 절의 숨은 부제이기도 한 corporation과 그에 상응하는 라틴어 Universitas는 어떻게 새겨야할지 이 책 전체를 통해 고심한 단어들 중 하나다. 이것을 단체로 할지 법인으로 할지, 살짝 다르게 법인체로 할지 고심이 많았지만, 그 동안은 단체와 통합체라는 생각을 굳히고 있었다. 한국어의 법인 개념이 너무 협소하고 현대적인 것이 이유이다. 기르케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었고. 중세적 법인이나 법인단체라는 식으로 설명하기에는 개념이 성장하는 과정을 칸토로비치가 너무 흥미롭게 쓰고 있기도 하고, 애초에 한국어로 논의가 축적되어 있지도 않다. 나를 화들짝 놀라게 한 것은 이 책을 읽어나가는 과정에서 급속하게 성장한 AI였다. 이들에게 corporation과 Universitas를 중세적 맥락에서 어떻게 보면 좋을지 물었더니 너무나 당당하게 법인 또는 법인체라고 모두들 한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나는 살짝 흔들렸다. 그럼에도 그 이유를 물었고, 또 그렇게 주장한 학자들과 그들의 논문을 물었는데, 여기서 혼란이 시작되었다. 내가 사용한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의 범용 AI들은 모두 가짜 논문과 저서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신기하게도 저자의 이름만은 제대로 였는데, 딱 그들이 썼을 법한 제목을 나열하는 것이다. 나는 AI 창을 열고, 제시되는 논문과 저서를 RISS에서 확인해 보기에 이르렀는데, 사람 이름만 제대로고 나머지는 모두 거짓이었다. 10차례에 걸친 질문과 거짓에 대한 지적 끝에, 겨우 관련된 학자 한 명과 논문 한 편을 발견한 것이 고작이었다. 그 논문의 각주에서 또 하나 발견했고, 90년대 후반에 발간된 『민사판례연구』를 하나 헌책으로 주문한 것이 성과라면 성과다. 처음부터 늘 하던 식으로 검색했으면, 몇 분이면 끝났을 일을, 나는 두시간 넘게 AI와 싸우고 있었다. 사실 좀 많은 충격을 받았다. 나는 정확한 정보를 얻기 위해 되도록 자세히 질문했고, 그렇데 답하는 근거를 제시할 것을 요구했다. AI는 사람들이 근거라고 생각할 법한 자료들을 끊임없이 지어냈다. 계속 오류와 거짓을 지적하자, 다소 위축되기는 했지만. 추측해 보면, EKa의 K2B에 대한 영어 자료들을 그냥 번역하는 과정에서 기계적으로 법인 또는 법인체로 옮긴 후 그걸 우긴 과정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계속해서 거짓말을 지적하자, 마침내 AI는 답변을 포기하거나 미안하다고 사과를 반복하면서 뱅뱅 돌고서는 구체적인 학자나 논문 제목을 제시하는 것을 포기하기 시작했다. 어떤 노무사가 가짜 판례를 법정에 제출한 것이 우연이 아니었던 거다. 문득 며칠 전 한국에는 몇없는 아비 바르부르크 연구자에 대해 검색했을때, 끊임없이 내용을 지어냈던 일이 떠올랐다. 당분간 AI는 보지 않아야 겠다. 너무나 그럴 듯한 답변들을 제시하는 AI는 그냥 그럴듯한 말만 제공할 뿐이었다. 유려한 표현,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AI란 진위와는 무관했다. 그냥 거짓말이었을 뿐.

Ernst H. Kantorowicz, The King’s Two Bodies: A Study in Mediaeval Political Theology,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57, “VI. On Continuity and Corporations. 2. Fictio Figura Veritatis.”

제6장 연속성과 단체들에 관하여

2. 진리의 모상이라는 의제

제국은 항상 영원하리 IMPERIUM SEMPER EST

싸우는 교회Ecclesia militans의 종말론적 사명의 절정은 심판의 날, 그것이 승리한 교회Ecclesia triumphans와 융합된 날의 소멸이다. 최후 심판의 날에 이르는 교회의 연속성에 대한 믿음은 영적인 문제 및 교회의 행정과 법에도 영향을 주었다. 그라티아누스 『교령집』에 “교회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구절이 포함되었으며, 싸우는 교회의 교의적 항구성은 “교회는 결코 죽지 않는다는” 격언에서 법학상의 등가물을 발견했다. 항구성sempiternity은 로마 제국에도 귀속되는데, 이는 교의의 문제가 아니었다. 세상의 종말까지 제국의 연속성에 대한 중세의 믿음은, 로마라는 도시의 영원성에 대한 고대 후기의 믿음만큼 확립된 사실이며, 적그리스도에 대항하는 투쟁은 그리스도교의 제국에 종말론적 기능을 부여했다. 세상의 네 군주국에 관한 다니엘의 환시를 히에로니무스는 마지막이 로마인들의 것이라고 동일시했고, 이에 대해 아퀴나스의 논저를 계승한 루카의 톨로메오는 “세계의 참된 주이자 제왕인” 그리스도의 군주국이 다섯번째로 이어졌고, 그 첫번째 대리자는 황제 아우구스투스였다고 말했다. 바르톨루스는 그리스도의 강림과 함께 로마인들의 제국은 그리스도의 제국으로 있기 시작했다고 서술하였으며,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로마 제국은 종말까지 지속할 것이라는 결론이 뒤를 이었다. 이런 신조를 지지했던 유스티니아누스 법전은, 제국이 신에 의해서 직접 기초되었고, 제국은 영원하며, 이와 마찬가지로 교회도 영원하다고 단언했다.(291-294)

종말의 날을 넘어서는 교회의 항구성 내지는 영원성은 로마 제국에 귀속된다. 이 과정에서 기묘하게도 구약성서 다니엘에 등장하는 네 국가에 대한 환시가 활용된다. 그리스도의 군주국과 로마 제국이 결합하면서, 제국이 항구성을 확보하게 된다. 이것은 고전 고대의 개념이 이어진 것은 아니었지만, 제국은 영원하다는 고대 사상을 되살려낸 것이었다.

초월적으로 기초지워진 로마 제국의 연속성은 내재적 연속성을 지지하는 논의에 의해 보강되었다. 왕권법lex regia은 인민 주권의 옹호자에 따르면, 제권과 모든 권력을 군주에게 수여하는, 로마 인민의 시효의 제약을 받지 않는 권리를 확립했다. 로마 제국이 영원하다면 로마 인민도 마찬가지도 영원하며, 로마 및 제국에 로마 인민을 표상하는 자들이 항상 존재할 것이다. 로마법의 해석자들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있는 동일성”의 원칙을 인정했다. 아쿠르시우스의 『표준 주석』은 판사가 교체되어도 법정의 동일성과 연속성을 옹호했는데, 볼로냐의 인민이 100년 전과 동일하듯, 법정도, 군단도, 배도 동일하다. 주석학자가 옹호한 것은 “형태”의 연속성과 불변성이었다. 발두스는 사물의 형상이 변화하지 않는 곳에서 사물 자체는 변화하지 않는다고 말하는데, 어느 공동체에 부과된 성무금지령은, 이 일을 초래했던 모든 개인이 죽었다 할지라도 인민은 죽지 않기 때문에, 100년 혹은 그 이상 유효한 것으로 남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294-295)

제국의 연속성은 제국의 왕권을 형성하는 인민의 연속성으로 내적으로 보완되게 된다. 아쿠르시우스의 주석에서 등장하는 이 이야기의 원천은 테세우스의 배의 역설이다. 배의 모든 부분이 교체되더라도 동일한 배인가? 아쿠르시우스와 발두스의 대답은 그렇다는 것이다. 형상을 근거로 불변하다는 것.

사람들이 위로부터와 아래로부터의 두 연속성을 결합하여, 그 결과 군주에게 제권을 수여한 것은 영원한 신과 항구적인 인민이 공동으로 행한 작업이 되었는데, 이를 정식화한 것이 파리의 요한이 말한 “행동하는 인민에 의해서 그리고 영감을 주는 신에 의해서populo faciente et Deo inspirante”이다. 그는 아베로에스를 따라 왕은 자신을 선택한 인민을 통해서 자연에 의해서 통치했지만, 특정한 개인이나 왕가의 선택은 멀리있는 원인인 신에 의해 영향받고, 은총에 의해 영감받았다고 말했다. 아쿠르시우스는 “신은 하늘로부터 제국을 확립했다는 논의를 주석하면서, 오히려 땅으로부터 로마 인민이 라고 덧붙였다. 그는 제국의 초월적 기초를 인식했고, 인민을 신적 의지의 시종으로 명했다. 제국의 초-개인적 정치적 신체는 신으로부터 유래한 반면, 개인으로서 인격적 군주는 그 자체로 항구적인 인민에 의해 임명되었다. 영원한 신과 항구적 인민의 공동-작업은 교회의 협력을 불필요한 것으로 만들었는데, 연속성이 신과 인민 내지는 자연의 힘에 의해 준-교회적으로 성취되는 한, 실제 교회는 배척되었다.(296-298)

위로부터의 신적 연속성과 아래로부터의 인민에 의한 연속성이 결합되었다. 행동하는 인민과 영감을 주는 신이라는 멋진 정식도 등장하게 된다. 그러나 그 결과는 교회의 배척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더 이상 교회에 의존할 필요성이 사라지는 것이다. 준-교회적, 준-종교적 성취는 교회의 협력을 더 이상 필요로 하지 않게 된다. 이런 방식도 EKa가 계속해서 발견하는 것 중 하나다. 중세 성기를 지나면서 교회가 교회 자체를 정당화하고 강화하기 위해 무엇인가를 발명하고 정식화하면, 그것을 세속과 국가가 처음에는 교회에 의지하여 유비로 활용하다가 자체 설명 방식을 찾아내고, 고전고대로 연결하면서 교회를 밀어낸다. 따지고 보면 교회는 고전 로마의 방식을 슬쩍 베낀 것인 경우도 많고.

인민의 양도불가능한 권리를 나타내고 그에 따라 로마 인민의 대권을 선언하는 왕권법은 로마에만 한정되는 것은 아니었다. 이 기본법은 모든 유럽 국가의 법률 문헌에 나타났다. 인민의 영속적 대권이라는 관념이 로마인들로부터 유럽의 국가들과 공동체들로 이전된 것은 파도바의 마르실리우스도 있지만, 발두스는 “정치[공동체]는 자유롭고 왕을 창설할 권리를 가진다는 전제 하에서, 로마 인민의 모범을 따라 자신의 대권을 가지고 있다”고 정의했다. 함축적으로 어떤 왕국이나 모든 인민은 법적으로 로마 인민의 연속성과 그의 대권의 영속성을 부여받았다. 변화에도 불구하고 형상이 영속하는 동일성에 관한 학설은 주석학파와 후기-주석학파의 저술에서 강화되었다. 발두스는 아리스토텔레스를 인용했으며 세계는 배치가 변화했고 소멸과 생성에 복종해야 했음에도 불구하고 영원히 이어지는 세계의 영구적인 지속을 가정했다. 그는 영구적 지속의 학설을 영원한 제국imperium quod semper est에 적용했고, 국가[공동체]와 국고 전반에 대해, 이들은 죽을 수 없고, 배치는 빈번하게 변화하지만 본질은 영원하고 영속적인 어떤 것이라고 말했으며, 정치[공동체]는 영원히 살아있기 때문에 상속자도 없다고 덧붙였다. 물론 고해실에서 발두스는 세계의 창조성을 인정하고 영원성을 부정했을 것이다. 하지만 법학적으로 그는 발견적 가설이 필요했다. 그에게 아리스토텔레스적 관념이 유용했고, 유類genera와 종種species의 불멸성과 연속성에 대한 학설도 필요불가결했는데, 법학자에게 불멸의 단체적 신체와 다른 집합체를 종과 동일시하는 것이 가장 편리했다. 『학설휘찬』에 대한 오도프레두스의 주석이나 발두스의 1183년 콘스탄츠 화약에 대한 주석 등은 14세기까지 영속성에 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신조가 법률 사상이 깊이 뿌리내렸음을 보여준다. 요약하면 인민과 국가의 연속성은 많은 출처로부터 유래했다, 통치기술, 왕권법의 이전, 아베로에스 학설, 법학적 이유와 유용성.(298-302)

일단 제국에 대해서 보편 국가에 대해서 한 번 항구성이 확보되면, 새롭게 성장하는 국가와 공동체 대표적으로 도시나 대학이 동일한 항구성을 주장하게 된다. 그 배경에는 라틴 아베로에스주의를 따라 복원된 아리스토텔레스의 “세계의 영원성”이라는 논제가 숨겨져 있다. 1277년의 단죄를 따라 발두스도 이를 포기했을 것이 분명하지만, 필요에 의해서 때로는 편의적으로 이 법학자는 대체제가 필요했다. 대표적인 것이 유와 종의 불멸성과 연속성 같은 것이다. 어찌되었든 영속적인 정치적 신체를 설명하고 정당화할 필요가 있었으며, 뭐라도 가져와야 했는데, 가져올 것도 많았다.

통합체는 죽지 않는다 UNIVERSITAS NON MORITUR

법학자들은 스콜라 철학의 어휘를 풍부하게 차용했고, 신학, 철학, 법학의 경계영역을 자유롭게 이동했고, 자신들의 사상을 표현하기 위해 스콜라학의 모체를 다소 절충적으로 사용했다. 법학자들의 의제적 또는 지성적 인격은 유명론자들이 지성적 의제라고 부르기 선호했던 보편자들Universals과 거의 구별할 없다. 볼로냐 공동체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영속적인 동일성은 볼로냐의 형상을 언급하는 것이며, 둔스 스코투스를 따르는 철학자들이 유적 인간을 개별적 소크라테스로 만드는 소크라테스성Socratitas같은 추상적 관념을 용이하게 형성했다고 볼 수 있다. 법학자들은 유적 공동체, 통합체와 볼로냐의 개별적이고 질료적 공동체 사이의 제3의 독립체가 생겨났는데, 이는 개체화를 결여하지 않음에도 비질료적이고 불변하는 독립체이며, 영속적인 유구aevum안에 존재했고, 볼로냐성Bolonitas 또는 볼로냐다움이라 불릴 수 있는데, 무체물일지라도 단체적인 볼로냐성은 천사처럼 종과 개체화를 동시에 표상했다. 법학적 사색에 의해 창출된 공동체, 도시 및 왕국의 인격화는 고전 고대에 있었던 지명의 개인화(여신, 고대 신인동형론의 영역에 속하고 있는)가 단순히 부활한 것도 아니고, 도시는 자신의 가시적 신체를 박탈당한 채 법률 사상에 의해 불멸하고 영속적인 비질료적 존재의 신체였다. 법률가들은 중세적 사고 체계에 동의하면서 “천사형태론적” 인격화를 창출했는데, 법적 단체는 이교의 여신이 아닌 그리스도교의 천사와 비교되었다.(302-304)

이때 법학자들이 도입한 것이, 일종의 하나의 대체적인 형상을 발명해 낸다. 그 사례가 바로 볼로냐성이다. 무체물이면서 단체적인 볼로냐성은 질료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천사와 닮았다. 3장에서 등장했던, 여신이나 신인동형론이 아니었다. 의인화가 아닌 천사론이 등장한다. 유구 속에서 존재하며, 비질료적인 영속적이며 불멸하는 존재, 천사형태론적 인격화. 도시는 여신에서 천사로 비교 대상을 바꾸면서, 영속성을 확보한다.

발두스는 도시를 보편적인 어떤 것, 죽지 않는 인간의 유 또는 종과 비교했는데, 보편적인 어떤 것quoddam universale이 법률용어에서 의미하는 것은 애매하지 않았으며, 로마법에서 유래한 통합체universitas라는 전문용어의 동의어로 단체론적 집합체 전반을 말한다. 바르톨루스는 왕국, 도시, 세계 전체가 일종의 통합체라 주장할 수 있었으며, 발두스는 인민을 하나의 신비체 안에 있는 사람들의 집합으로, 왕국을 사람들과 사물들 모두를 통합적으로 포함하는 총체적인 어떤 것, 어떤 보편적 인격이라고 이야기했다. 하나의 집합체를 하나의 인격으로 무디게 해석하는 것은 로마법 자체에 의해 제시되었다. 이세르니아의 안드레아스가 조국을 교회적인 단체와 비교했을 때도 마찬가지인데, 로마법학자들이 추론하고 개인화하기 전부터 교회법학자들은 통합체의 법적 관념을 교회 전체 및 다양한 교회적인 단체들, 주교좌 성당참사회, 수도회 등에도 적용했기 때문이다. 보편적 교회는 신자들의 통합체이자 법적으로 제한없는 통합체였다. 교회적인 집합체를 의인화하려는 유혹이 있었겠지만, 인노켄티우스 4세가 1245년 리옹 공의회에서 통합체나 교회적 단체의 파문을 금지했고, 성당참사회, 인민, 씨족과 같은 통합체가 인격이 아니라 법의 이름으로 파문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했을 때, 그는 통합체가 신체가 없는 인격이며, 순수한 지성적 이름이라 지적했고, 혼이 없기 때문에 단죄받을 수 없고 신체가 없기에 참수당할 수도 없는 무체물이라 지적했다. 인격화된 통합체는 상상의 “표상된 인격persona repraesentata 또는 의제적 인격persona ficta”였다. 인노켄티누스의 획기적 정의 자체는 긍정적인 어떤 것을 창출했는데, 모든 통합체를 법적 인격으로 취급할 가능성, 법적 인격을 자연적 인격으로부터 구별될 가능성, 다수의 개인들을 법학상 하나의 인격으로 취급할 가능성이다. 아우구스티누스를 따른 아퀴나스는 “의제”를 긍정적인 의미에서 리의 모상figura veritatis이라 정의했는데, 발두스는 아쿠르시우스와 바르톨루스의 주석을 설명하면서 아리스토텔레스를 비틀어서 “의제는 자연을 모방한다. 그러므로 진리가 장소를 점할 수 있는 곳에서만 의제는 장소를 점한다”고 선언했다.(304-306)

보편적인 어떤 것이라 불렸던 이것은 통합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다. (사실 오늘날의 말로 하면 법인체랄까. 하지만 현대 한국어의 법인이란 의미가 너무 협소해서 사용하기 곤란하다.) 일단 통합체는 사람과 사물을 모두 포함하는 보편적 인격이며, 교회와 제국 같은 보편적인 모든 것을 포괄하는 단체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나누어지는 비교적 작은 단체들에게도 적용되기 시작한다. 수도회나 성당참사회 같은. 이때 의인화된 인격으로 바로 옮겨지지 않는다. 중세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인 파문과 단죄가 걸렸다. 후대에 따라올 아직 태어나지 않은 사람들을 미리 모두 파문시킬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따라서 신체가 없는 인격, 순수한 지성적 이름, 상상된 표상의 인격, 의제적 인격 등의 이름을 획득하게 된다. 인격은 인격이되 자연적 인격과는 구별된다. 이러한 의제는 진리의 모상이라고 아퀴나스는 말하게 된다. 스콜라 철학을 자세히는 모르지만 여기서 유명론의 흔적이 보이는 것도 같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연속성의 문제 뿐으로 인노켄티우스가 통합체는 죽을 수 없는 지성적 인격이지 실제 인격이 아니라고 판단했는데, 유죄인 개인에게 국한되지 않고 단체적 신체 전체로 확대된 파문은, 추후에 대체 구성원으로 통합체에 가입한 무죄인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변화에도 불구하고 유지되는 동일성이라는 관례적 학설을 미래에 대해 적용했던 것이다. 통합체는 승계로 번창하고, 구성원들의 계승성에 의해 정의되며, 계승적 자기-재생 덕분에 통합체는 죽지 않고 영속적이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신비체 안에서의 계승성 문제를 정의했는데, 인간의 신체에서 사지는 모두 동시에 현존하지만, 신비체의 사지는 세상의 시작으로부터 종말까지 영구적 승계를 통해 점진적으로 생겨난다고 말했다. 이 신비체는 장래에 교회에 가입할 수 있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미래 세대의 그리스도인이나 아직 세례받지 않은 이교도에게까지 확장되는데,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는 자연 만이 아니라 은총에 의해서도 성장하기 때문이다. 그의 정식화는 신비체가 교회론상의 보편교회oikumene에서 보편 공간 안에서, 보편 시간의 모든 구성원을 망라했다. 보편적 교회의 신비체에 대한 아퀴나스의 정의에서 표현된 원칙은 교회나 세속의 어떤 신비체 어떤 통합체에도 적용가능하다. 지역교회, 성직자 단체, 주교좌성당참사회, 수도회 등. 바르톨루스는 학자의 통합체universitas scholarium, 대학에 대해서도 동일한 진실을 주장했다. 로마법학자는 인민populus이나 통합체가 천년 전과 동일하다고 생각했다. 중요하지 않은 소규모 공동체는 적어도 자신들의 창립 이후 세상의 종말까지 동일성을, 시간의 보편성을 주장할 수 있었다. 발두스는 로마 제국을 동시대와 후대 모두에서 제국의 모든 신자들을 자기 안에 망라하는 위대한 통합체라 명명했으며, 과거의 사람들도 은연중에 포함하고 있다. 제국은 교회처럼 공간의 보편성을 주장할 수 있었으며, 황제 프리드리히 7세는 “모든 혼은 로마 군주에게 복종해야 할 것”이라 선언했다. 모든 단체적 신체의 본질적 특징은 단순히 현재의 시점이 아닌 승계에 따른 다수성이었다. 동시 공동거주자들은 동시에 현존했던 인간의 자연적 신체와만 유사했을 뿐 진정한 신비체를 형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승계에 있어서의 다수성과 시간에서의 다수성은 통합체를 연속성에 결합시키고 불멸하는 것으로 만드는 본질적 요인이었다.(307-310)

통합체는 보편적인 것이었다. 이 보편성은 공간적으로만 즉 어떤 시점에서 온 세상에만 적용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았다. 시간적인 보편성도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교회가 이미 죽은 자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자를 포괄하지 못한다면 여러 개의 교회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통합체에서는 계승성이 중요해진다. 사람들은 계속 죽어가는데, 실제로도 중요하고. 보다 작은 덜 중요한 단체들에서 오히려 계승성이 더 중요했을 것이다. 교회적인 단체들에서 계승성이 활발하게 전해지기 시작한다. 제국이나 정치공동체가 이를 관망할리 없다. 로마 인민은 천년 전과 동일하다는 대담한 문장이나, 죽은 혼들도 황제에게 복종해야 한다는 광오한 선언까지 등장하게 된다. 시간적 보편성에 의한 통합이야 말로 자연적 신체를 넘어서는 진정한 신비체를 이루는 핵심요소가 된다. 사람들의 상상이 한계를 넘기 시작했다.

과거와 미래를 투영하기 않는, 순수하게 유기체론적인 국가개념은 결함이 있으며, 임시적으로만 단체가 되었고, 재판, 과세, 행정상의 목적은 위해서만 준-단체였거나, 국가적 비상사태와 애국심이 열광하는 순간에만 준-단체였지만, 통합체의 성격으로 영속적인 연속성이라는 의미에서 단체가 아니었다. 솔즈베리의 요한의 유기체론적 개념 단독으로는 제한 없는 시간이라는 요인을 통합하지 못한 것이다. 전환기의 최초의 일보로서 중요했던 유기체론적 비유가, 승계에 의한 머리와 사지도 포용하는 통합체라는 단체론적 개념으로 대체되었다. 조국이나 도덕적이고 정치적 신체 같은 관념이 시간의 연속성이라는 요소도 은연중에 포함하고는 있지만, 이런 결론은 14세기 이전에는 도출되지 않았다. 법학자들의 연구결과인, 계승에 있어서 단체의 동일성 및 단체의 법적 불멸성이, 언제나 살아있는 유기체로서의 국가라는 관념과 조국이라는 정서적 개념에 충분히 침투해서 결합하는 데는 시간이 걸렸고, 이후 세대가 되어서야 영원한 프랑스나 불멸하는 프랑스 같은 표현이 등장했다. 인격화된 집합체와 단체적 신체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이들이 과거와 미래를 투영했고, 변화에도 불구하고 동일성을 보존했으며, 법적으로 불멸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필멸하는 개별적인 사람이었던 정치적 신체의 머리는 어떻게 되는가? 개별적 구성요소로부터 단체로서의 통합체가 분리된 결과 필멸하는 구성요소들은 불멸하는 정치적 신체 자체와 비교하면 중요하지 않았다. 이때 필멸하는 개별적 사람이었던 정치적 신체의 머리는 어떻게 되는가? 불멸하는 통합체는 하나의 새로운 구성체, 시간에서만 승계에 의해서만 배타적으로 존재하는 단체에 도달할 수 있다. 다수성과 전체성이 공간에 제한되지 않고, 시간에서 계속적으로 전개될 수 있다면, 공간에서의 다수성을 폐기할 수 있다. 구성원의 복수성이 배타적으로 승계에 의해서만 형성되었기에, 시간에 관해서만 집합적인, 단체적 인격, 즉 일종의 신비적 인격을 구성했고, 전임자와 후계자의 긴 목록이 현재의 재임자와 함께 인격들의 다수성을 표현하는 일인단체 및 의제적 인격에 도달했다. 구성원들이 수직적으로 배치된 한 단체적 신체, 영속적 이전에 의한 신비한 인격으로 재임자는 불멸하는 단체적 신체에 비해 중요성이 적었다. 이러한 기묘한 개념은 정치적 신체의 머리의 영속성이라는 어려운 문제를 해결했고, 이에 기초하여 승계에 의한 단체론적 다수성을 염두에 두고, 우리는 결코 죽지 않는 왕이라는 문제에 접근해야 한다.(311-313)

3장을 시작했던 솔즈베리의 요한이 주장했던 유기체론적 국가개념은 오랜 시간의 변화를 거쳐서 연속성을 확보하게 된다. 어쩌면 유기체론은 한 시대의 단면도를 그려낼 뿐이었던 것이 아닐까. 카롤루스 왕조나 오토 왕조 시대의 채색장식화들을 기억해 보면, 그것은 한 시대의 단면도들이었다. 거대한 흐름을 한 칼로 베어낸 단면. 이제 유기체론에 의존하지 않는 단체론, 통합체로 설명이 충분해 진다. 계승성에 의해서 연속성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이제 정치적 신체의 머리가 되는 왕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공간이라는 수평적 보편과 시간이라는 수직적 보편을 모두 확보하고 나자, 수평적 보편은 상대적으로 덜 중요해 진다. 아마도 이들이 다루던 공간이 좁아진 것이 원인이 아니었을까? 이제 구성원의 복수성을 승계에 집중하는 통합체를 상상하기 시작한다. 한 사람, 한 사람 승계자의 긴 목록으로 구성되는 통합체, 이것은 교황의 목록이고, 주교의 목록이며, 왕의 목록이고, 영주의 목록이다. 그것이 앞으로 이야기하게 될 일인단체를 구성하게 된다. 그것은 의제적 인격이며 신비한 인격이다. 왕은 한 시대에 홀로 존재하지만, 자신의 선임자와 계승자들과 함께 수직적이고 시간적으로 보편적인 하나의 단체이자 통합체를 구성하면서 영속성을 확보하고, 필멸하는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뛰어넘게 된다. 비로소 의제적 인격이라 말할 수 있게 되며, 죽음을 넘어서는 안정성을 확보하게 된다. 이제 왕에 대해서 이야기할 준비가 되었다.

2025. 12. 26.

* 괄호 안의 숫자는 책의 쪽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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