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른스트 H. 칸토로비치, 『왕의 두 신체』(6-1).

아베로에스의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론』에 대한 주석을 13세기 후반 프랑스에서 만든 필사본. 아베로에스의 본명은 이븐 루시드(1126-1198)로 12세기 후반에 오늘날의 스페인의 안달루시아 지방인 코르도바에서 태어나 세비야를 오가며 이베리아 반도를 이슬람이 지배하던 시절의 인물이다. 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거의 모든 저서에 주석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아랍어로 저술했으며, 100년이 지나지 않아 스코틀랜드 출신의 마이클 스콧이 그의 저작들을 라틴어로 번역했는데, 이 번역은 프리드리히 2세의 후원을 받아 시칠리아 궁정에서 이루어졌다. 여기서 다시 한번 프리드리히 2세와 이어진다. 그의 저술은 파리로 전해져, 특히 프란체스코 수도회 출신의 학자들에게 인기를 누렸고, 아리스토텔레스를 전유한 아퀴나스도 그를 비판하며 극복하려 하기는 했으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 칸토로비치가 언급하는 사건은 1274년 토마스 아퀴나스가 사망한 3년 후에 벌어진다. 1277년 3월 당시 파리 주교 에티엔 탕피에는 5장에서 인용하는 장엄박사 헨리쿠스 간다벤시스(겐트의 헨리) 주도로 라틴 아베로에스주의를 금지하는 219개 항목에 대한 단죄를 실시한다. 여기에는 아퀴나스의 주장에 대한 몇 가지 비판도 포함되어 있었다. EKa가 주목하는 것은 이때 이루어진 “세계의 영원성”에 대한 금지 및 단죄이다. EKa의 논의에는 항상은 아니지만, 중요한 사건이 깔려있는데, 그는 이를 굳이 드러내지 않는다. 간혹 주에서 슬쩍 언급하고 가는 정도랄까. 이번에도 그렇고.

Ernst H. Kantorowicz, The King’s Two Bodies: A Study in Mediaeval Political Theology,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57, “VI. On Continuity and Corporations. 1. Continuity.”

제6장 연속성과 단체들에 관하여

1. 연속성

“왕의 두 신체” 개념은 연속성의 문제를 숨기고 있다. 13세기 중반 “세계의 영원성”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 학설과 아베로에스주의 해석을 수용한 결과로, 영속적인 연속성 자체가 철학적 문제가 되었다. 세계의 영원성에 대한 학설의 부흥은 국헌 및 법적-정치적 영역에서 연속성을 향한 유사한 경향과 일치했다. 실천이 이론에 선행했지만, 실천은 정신이 이론에 더 수용적이 되게 했다. 하지만 동시성이 인과성을 함의하는 것은 아니다. 시간의 무한한 연속체를 옹호하는 철학이 다른 분야의 관련된 경향과 수반되어 출현했고, 정당화, 강화 및 촉진했다는 점, 철학적-스콜라 학적 이론과 정치적-법적 실천의 두 가닥 모두가 형성기 서방 사회정치사상의 일반적 유형에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부흥의 여파로, 아베로에스주의 극단주의자들, 온건한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 반-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들은 각각 세계의 영원성에 대한 자신의 찬반입장을 제시해야 했고, 연속성continuity, 지속성duration, 영속성perpetuity, 항구성sempiternity, 영원성eternity 및 관련된 관념들의 정의가 반복되어 논의되었다는 사실은 시간의 영역 안에서 시간에 대한 인간의 관계 안에서 심각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드러낸다. 그 시기에 표면화되었던 시간에 대한 새로운 가치판단은 중세말 그에 의해 서방사상이 변형되고 활력이 불어넣어진 가장 강력한 작용들 중 하나였으며, 여전히 현대사상을 지배하고 있다. 양차대전 이전 세대가 소중히 여겨왔던 무한한 진보에 대한 낙관주의적 철학은 13세기를 뒤흔든 지적 변화에 근원과 전제를 두고 있었다.(273-275)

EKa는 13세기 중반의 라틴아베로에스주의가 미친 영향에 주목한다. 그중에서도 “세계의 영원성”에 대한 논쟁. 그리고 이런 철학적 움직임이 사회정치적 변화와 함께 가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촉진시켰다는 이야기이다. 여기서 말하지 않는 배경은 아랍어로 된 아베로에스 저작의 라틴어 번역이 프리드리히 2세의 궁정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실이지만. 이러한 논쟁의 결과 때문인지, 영어와 라틴어로는 영원, 영속을 설명하는 단어들이 많다. 비슷비슷해서 굳이 정의하지 않으면 한국어로는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 이를 모두 영원성으로 새기면 혼란이 오기 때문에 굳이 일대일 대응을 시켜가며 구별해서 읽도록 노력했다. EKa는 이때의 변화를 진보에 대한 낙관주의까지 연결짓는다.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지만, EKa는 이런 식으로 자식의 속마음을 글의 한 구석에 슬쩍 흘려놓는다. 양차대전에서 겪은 그의 경험과 삶의 여정을 생각해 볼 때, 그는 진보에 대한 낙관을 가지고 있었을까 아니면 버렸을까? 그도 저도 아니라면? 어떻든 그것은 EKa에 의하면 13세기에 시작되었다. 그러니까 근대는 13세기에 시작되었다는 걸까?

유구悠久 AEVUM

세계는 창조되지 않았고 무한히 연속한다는 학설이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회복되었을 때, 시간은 덧없음의 대표이며, 현세의 연약함과 소멸, 영원성에서 단절된 시간이라는 시간과 영원성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적 개념이 치명적 타격을 받았다. 아우구스티누스에 따르면 시간은 창조된 것이며 최후의 날까지만이다. 즉 시간은 유한하다. 현세적, 세속적 같은 단어는 시간의 도덕적 저하를 나타내며, 삶의 짧음과 죽음의 가까움을 표현해야 했다. 시간과 영원성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적 가르침의 타당성과 그리스도교 신앙의 근본 전제들은, 아리스토텔레스주의를 철저한 결론으로 이끌어낸 아베로에스주의자들에 의해 광범위하게 공격받았으며, 아퀴나스 같은 온건한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조차 시작 없는 세계의 잠재적 가능성을 인정해야 했다. “세계의 영원성”은 아베로에스주의가 만연하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 교회 당국이 작성했던 정죄된 오류들errores condemnati에서 중요했다. 이는 창조도 최후 심판의 날도 없고, 현재의 세계 자체는 자연의 법칙들에 의해 영구적이며, 시간은 무한하고 영속적으로 굴러가는 계속되는 순간들의 연속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아베로에스주의자들에게 시간은 지속의 상징, 생명의 상징이 되었다. 시간은 인류라는 집합체, 인간이라는 종의 영원한 연속성과 불멸성의 상징이 되었다. 이는 종교적 과학적 진보의 관념과의 관련을 통해, 시간의 딸은 진리였다고 인식했을 때, 윤리적 가치를 획득했다. 인류의 무한한 연속성이 현세적 명성에 대한 갈망, 영속하는 이름에 대한 욕구를 의미있는 것으로 만들었고, 이것이 인간 행위의 결정적 충동이 되었다. “죽은 자들은 영광을 통해서 살아있다”고 법학자 아쿠르시우스의 주석은 말하는데, 국가를 위해 전사한 자가 명성과 영광 속에서 영원히 살아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프리드리히 2세도 마찬가지. 시간의 연속성은 인간의 명성과 이름을 영속화하려는 욕망을 강화했다. 명성은 이 세상과 인류가 영구적이고 불멸하게 존재하는 것으로 믿을 때만, 시간이 죽음이 아니라 생명이라고 믿을 때만 의미있었다. 아마도 우리는 이 세상에서 “불멸의 명성”을 다른 세상에서 불멸의 참행복과 동등한 것이거나 세속적 대체물로 여길 것이다.(275-278)

이 책에서 매우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였다. 라틴아베로에스주의자들의 복원을 통해서 전해진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세계의 영원성에 대한 주장은 아퀴나스를 포함한 모두에게 근원적 충격을 주었다. 1277년의 정죄와 금지가 이루어질 정도로. 아우구스티누스가 무너지면서, 세계와 시간이 영원한 것이 되자, 인간이라는 종, 즉 인류는 무한한 것이 되었고. 다시 말해 이는 창조도 없고, 심판도 없다는 것이 되는데, 당연히 그리스도교 입장에서는 정죄를 하겠지만. 인류의 무한한 영속성은 현재의 명성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것을 아쿠르시우스와 프리드리히 2세로부터 발견해 낸다. 그렇게 불멸의 명성에 주목하면서, 이제 그것이 내세에서의 참행복[beatitude, 至福]을 대체하게 된다면, 전혀 다른 세계관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인간의 생각은 그 둘 중 어딘가에 있겠지만.

세속화되었고 현세에 내재하는 영원성은 어떤 종류의 영원성인가? 신의 영원성은 무시간적이기 때문에, 운동이 없고 과거나 미래도 없는 정적인 영원성이며, 아우구스티누스가 말했던 “항상 정지된 현재nunc semper stans”이자 단테가 말한 “모든 시간이 거기 현재하는 시점이다.” 이는 아베로에스주의자들이 옹호했던 영구적으로 계속되는 순간이 연속적으로 흐르는 가변적 시간은 아니다. 답은 스콜라 철학에서 나오는데, 시간과 영원성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적 이원론을 수정하고 시간도 영원성도 아닌 제한없는 연속성 문제에 착수한다. 위僞디오니시우스, 요하네스 스코투스 에리우게나, 보에티우스의 재흥과 아비센나 저작에 대한 수용은 “강력한 활력의 기운”을 산출했다. 이것은 유구aevum이라는 관념, 아우구스티누스의 단순화한 이원론으로 설명하지 못했던 끝없는 시간이라는 범주의 재흥으로 이끌렸다. 영원성aeternitas은 과거도 미래도 알지 못하는 신[하느님]의 무시간적이고 부동不動의 지금-그리고-영원히now-and-ever이다. 그러나 유구aevum은 운동을 가졌고 과거와 미래를 가졌던 무한함과 지속의 종류로, 끝없는 항구성sempiternity이다. 그럼에도 창조된 항구성이 시간 보다 먼저 창조된 것인지, 시간과 함께 창조된 것인지, 말하자면 미래에 대해서만 무한한 것인지 과거에 대해서도 무한한 것인지에 대한 견해 차이가 있다. 영원성과 시간이라는 이원론 안으로, 영원성과 시간 모두를 분유하고 있었으며, 아퀴나스에 의해 영원성aeternitas과 시간tempus 사이의 중간에 위치한” 것으로 정의된 유구aevum라는 제3의 범주가 끼어들었다.(279-280)

세계의 영원성은 그러나 답이 될 수 없었다. 그것은 단지 종교의 문제 만은 아니었다. 문제는 부동성 즉 정지 상태에 있다. 영원한 것은 변화하지 않는다. 변화란 무의미하다. 그렇다면 지상에서의 삶은 명성의 추구는 인간의 활동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다시 한번 아랍세계의 철학자를 불러온다. 아비센나, 본명은 이븐 시나로 그는 오늘날 우즈베키스탄 출신의 페르시아 제국의 인물이며, 아베로에스보다 150년 전에 활동했다. 이제 이들은 제한없는 연속성, 변화를 담은 연속이라는 주제에 몰두하며, 그 결과 유구aevum이라는 개념을 창출하게 된다. 운동을 포함하고 있는 끝없는 항구성이라는 의미로. 이는 과거에는 영세永世라고 하기도 했고, 항구라고 하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아퀴나스 번역자들의 표현을 따라 유구悠久라고 새긴다. 산천은 유구한데 라고 할 때의 그 유구다.

스콜라 철학은 영원성, 유구, 시간이라는 세 범주를 구별해야 했는데, 무시간적 지금-그리고-영원히는 신과 동일시되었고, 유한하며 창조된 시간은 인간에게 속했다. 천사론적 연구로부터 자극을 발견하던 시대에, 유구는 천사들과 천상의 지성체들, 신과 인간 사이에 위치했던 유구한 존재들에 속했다. 천사는 피조물이었지만, 영원한 존재로 육체가 없고 불멸하며 심판의 날보다 오래 지속하기에 일시적인 시간은 그들의 것일 수 없으며, 피조된 존재로 창조주와 영원히 공존할 수 없다. 천사는 신의 무시간적 영원성에도 참여하고, 불멸하는 영들은 지상의 시간에도 관여하는데, 특유한 천사적 방식을 따라 이전과 이후를 가졌기 때문이다. 유구는 무시간적 영원성과 유한한 시간 사이의 가교 역할을 했는데, 신이 시간 없는 불변자이고 인간이 유한한 시간 안에서 가변자라면, 천사는 무한하지만 변화하는 유구 안에서 불변자였다. 아베로에스주의자들이 요구했던 이 세상의 유한한 시간에 대한 저 세상의 대응물로 하늘의 천사들의 유구가 존재했다. 천상의 지성체들, 물질적 신체가 없는 영들, 신에 의해 창조된 형상들 내지는 원형들. 이들은 플라톤적 형상의 그리스도교적 후예가 아니라 분리된 유형의 내재적 현실화 곧 아리스토텔레스적 형상들[εἴδη]의 그리스도교적 후예가 초월화된 것이었다. 유類와 분리된 종種의 불멸성을 전제로 하며 그 결과인 아리스토텔레스적 “세계의 영원성”의 재흥은 천사적 유구의 세속화였고, 시간의 무한한 연속체가 하늘로부터 땅으로 이전되어, 인간에 의해 회복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아베로에스주의자들을 이어받은 연속성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개념의 세속화였다. 공식 견해는 순환적 연속성을 그리스도교 사상의 특징이자 천사적 유구의 특징이기도 한 관례적인 선형적 연속성으로 대체했다.(280-281)

유구aevum은 당시에 연구되기 시작하던 천사론으로부터 자극받게 된다. 신과 인간 사이의 존재들에 주목하게 된다. 천상의 지성체, 질료가 없는 영, 형상, 원형. 무한하지만 변화하는 유구 안에서의 불변자. EKa는 이를 요약하길, 순환적 연속성을 관례적인 선형적 연속성으로 대체한 것이라 평가한다. 선형적 연속성, 선형적 시간이라는 그리스도교적 전제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시작은 있겠지만 알 수 없고, 끝은 모르겠지만, 일단 최후의 심판 이후로는 이어진다는 식으로. 일종의 기막힌 기만적 타협 같은. 이것은 인류의 세속화된 영원성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 개별자인 인간에게 감히 영원을 부여할 수는 없겠으나.

아퀴나스의 가르침에 따르면 모든 천사는 하나의 종을 표상했는데, 천사의 비물질성은 다수의 질료적 개체로 개체화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법학상 불멸하는 종이었던, 법학자들의 인격화된 집합체가 천사에게만 귀속되는 특징을 내보이는데, 법적 “의제적 인격”은 순수한 현실화였고, 천사적 의제와 가장 가까웠다. 법학자의 단체론 학설의 중심에는 집합적인 추상 또는 불멸불변하는 종이 있었다. 법률가의 탈-개인화된 의제적 인격은 필연적으로 천사를 닮았고, 법학자도 그들의 추상화와 천사적 존재 사이의 유사성을 인정했다. 중세 후기의 정치적 법적 사상 세계에 크고 작은 비물질적 천사적 신체가 거주하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는데, 이들은 비가시적이고 나이를 먹지 않으며, 항구적이고 불멸하며, 때때로 편재하고, 천상의 존재의 영적 신체와 비교할 수 있는 지성체 내지 신비체를 부여받았다.(282-283)

EKa가 설명하고자 하는 목적은 의제적 인격의 등장이다. 아직은 법인격은 아니고. 의제적 인격의 성격을 갖추고 있는 것이 바로 천사였다. 일단 하나의 천사는 하나의 종이다. 물질, 즉 질료가 없기 때문에 개체를 형성하지 못한다. 9품 천사라고 해서, 9단계의 위계질서가 있는데. 가장 높은 세라핌, 다음의 케루빔이런 식이다. 개별자를 초월하는 특성을 가진 구체적(?)인 대상이 등장했기에, 탈-개인화된 의제적 인격은 여기서 유사성을 발견하게 되고, 지성체나 신비체와의 유비를 찾게 된다.

시간과의 관계에 대한 인간의 새로운 태도는 삶의 거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쳤다. 세상이 아베로에스주의로 변화하지는 않았고, 그리스도교적인 것으로 남았지만, 13세기 유행병은 14-15세기에 풍토병이 되었는데, 사람들은 종말이 없는 세계의 무한한 연속성을 수용하지 않고 준-무한한 연속성을 수용했으며, 세상의 비피조성과 종말 없음을 믿지 않았지만 세상에 종말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기 시작했고, 이전에 연속성을 인정하지 않았던 곳에서도 연속성을 전제했으며, 시간의 한계와 인간의 덧없음에 대한 감정을 폐기하지 않았으나 이를 변경, 수정, 억제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시간의 새로운 관념을 창안한 것이 아니라 시간의 다른 양상을 받아들인 것이다. 시간의 덧없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다른 양상인 연속성과 실천적 무한성을 강조하는 한에서, 시간의 본성에 대한 인간의 관념 변화가 있었다. 시에나의 한 비문은 고전적 및 그리스도교적 영웅과 덕의 형상을 언급하며 수천 수만년 동안 통치하기를 원한다면 지배하는 당신은 이를 보라고 말한다. 이런 변화는 시간에 대한 재평가를 함의하는데, 시간의 연약성으로부터 끊임없이 흐르는 생생한 활력으로의 변증론적 전환이었다.(283-284)

시간에 대한 태도 변화로부터 인간 견해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것은 어찌 보면 대담하고, 어찌 보면 무모해 보이지만, EKa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홀리게 된다. 주요단어만 뽑아내면 이렇다. 준-무한한 연속성, 종말이 없는 것 같은 세상, 연속성과 실천적 무한성. 거의 무한한 연속성은 그리스도교 세계에서 수동적이 되어 있던 인간에게 생생한 활력을 주었다. 사람들은 종말이 없는 것처럼 역동적으로 살아가기 시작했다 라고 EKa는 말하고 싶은 거다.

영속적 긴급사태 PERPETUA NECESSITAS

철학적 논의와는 독립적으로 왕국과 공동체의 실질적인 필요가 공적 제도의 준-무한한 연속성이라는 의제fiction로 이끌었다. 왕령지의 양도불가능성에 대한 법격언, 결코 죽지 않는 비인격적 국고라는 관념은 로마법과 교회법에 의해 영감받은 제도적 연속성의 표시였다. 시간 요인은 다른 면에서도 공적, 재정적, 법적 행정의 일상적 기술에 스며들었다. 중세 초기 공적 과세는 언제나 이례적이고 임시적인 것으로 특정 사건의 신고에 따라 부과되는 것이었다. 봉건적 상납금은 영주의 몸값, 영주의 장남의 기사작위서임, 영주의 장녀의 지참금을 위해 부과되었는데, 12세기 이후부터 주저하면서 공적 긴급사태의 경우에 왕국을 수호하기 위해 부과되었다. 마지막 경우는 왕국 또는 조국을 가리키며 공적이자 초-개인적인 것과 연결되어 있다. 앞의 셋과 달리 긴급사태는 기술적으로 해마다 선포될 수 있었다. 왕과 왕국의 긴급사태necessitas regis et regni는 사건이 아니라 시간에 의존하는 영구적인 매년 과세로의 문을 열었다. 프리드리히 2세는 교황과의 투쟁의 최종단계에서 매년 초 성직자를 포함한 신민에게 새로운 분담금을 부과하기 위해 제국의 불운하고 엄혹한 긴급사태를 선포했다. 앙주의 카를로[샤를]도 프랑스의 미왕 필리프도 다른 군주들도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반복될 수 없는 사건이자 유례없는 비상사태이며 과세는 이례적인 것이라는 의제fiction은 아직 유지되고 있었지만, 새로운 의제가 나타났고 정기적이고 공공연한 재정요구는 매년 반복되었다.(284-285)

준-무한한 연속성이라는 의제는 정치의 실질적 필요로부터도 생겨났다. 그것은 조제의 문제였다. 중세 봉건적 조세란 일회적 사건에 부과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일회적 사건에 왕국 수호라는 공적 긴급사태가 포함되었다. 긴급사태necessitas는 뒤로 가면 필요라는 의미가 되지만, 일단 여기서는 그 시작을 따라 긴급사태로 새긴다. 처음 시작할 때만해도 과제는 이례적이고 예외적인 것이라는 의제가 유지되고 있었다. 비록 매년 부과된다고 해도, 매년 긴급사태가 있다고 말하는 식이다. 교회가 십자군이라는 성지의 긴급사태를 활용했던 것도 기여했고.

과세에 대한 스콜라 학파의 학설은 매년 과세와 정기적으로 반복되는 과세에 대한 국가의 권리를 엄격하게 부정했다. 하지만 교회도 인정했던 긴급사태의 경우에 의해 새로운 원칙이 마련되었다. 14세기가 되어 임시 과세라는 겉치레는 사라졌고, 과세는 통상적이 되어, 대륙에서 공적 과세는 매년 과세의 동의어가 되었다. 이전에는 반복될 수 없는 사건에 연계되어 있던 과세가 이제는 역법, 영원히 회전하는 시간의 수레바퀴에 연계되었다. 국가는 영구적이 되었고, 국가의 비상사태와 필요, 즉 국가의 긴급사태는 영구적이었다. 이에 따라 긴급사태라는 관념도 완전히 새로운 의미를 획득했다. 과세의 근거로서 긴급사태의 경우란 외부에서 일어나는 일로, 적대적 침략에 대한 조국의 수호, 정치적 종교적 적, 반란, 이단자, 영적 권력에 대항하는 전쟁이었으나, 1300년경 긴급사태라는 관념은 행정의 통상적인 예산상의 필요에 초점이 맞춰지기 시작해, 통치기관은 정의상 예외의 영속화를 함의하는 영속적 긴급사태라는 새로운 의제에 도달했다. 긴급사태의 영속화에 대해 14세기 초의 법학자 올드라두스 데 폰테는 고래의 단일한 긴급사태와 새로운 영속적 긴급사태 사이를 구별하여, 실제적 비상사태necessitas in actu와 상태적 즉, 영속적 긴급사태necessitas in habitu 사이를 구별한다. 올드라두스는 “공적이며 공통의 유익과 긴급사태”를 위한 직접세의 부과가 이전에는 예외로, 즉 이례적 과세로 이해되었음을 인식하고 있으며, 이것이 비상사태에 공납을 부과하는 왕이 지닌 군왕으로서의 권리 와 마찬가지로 고래의 봉건적 관습에 부합했음도 알고 있었고, 매년 조세를 부과하는 것이 새로운 행위로 조세를 통상 과세indictio ordinaria임도 인정했다. 긴급사태가 양자 모두를 충족했다.(286-287)

14세기가 되면, 과세는 통상적인 것이 된다. 통치행정상의 통상 예산의 필요에 초점이 맞춰진다. 이를 정당화하기 위해 다시 학자가 등장한다. 올드라두스는 긴급사태를 둘로 나누어 실제적 긴급사태 그러니까 전쟁이나 재앙 같은 진짜 비상사태와 상태적 긴급사태, 늘상있는 습관적인 상습적인in habitu 긴급사태를 구별하고, 통상과세를 정당화하게 된다. 학자의 용도야 말로 변한 것이 없는 듯.

또한 프랑스 왕이 공적이며 공통의 유익과 긴급사태를 위해 매년 조세를 요구했을 때, 특정한 귀족이 조세의 면제를 요구할 수 있는지도 그에게 문제였는데, 올드라두스는 프랑스 왕이 제국의 권리와 제국의 특권을 가졌기에 조세를 부과할 권한이 있다고 선언했다. 그는 다른 면에서 귀족들이 어떤 상태적 필요를 충족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던 조세를 실제로 매년 지불했다는 것을 입증했는데, 이는 숙소제공의무나 기마행진 같은 고래의 봉건적 책무였다. 이들은 임시적 성격에도 불구하고 매년 조세로 전환되었다. 이들은 매년 금전으로 지불되고 있었는데, 더 이상 재판하기 위해 왕이 지방을 순회하지 않고, 이 일을 하는 판사들이 왕에게 공적으로 왕으로부터 급여를 받기 때문이다. 임시적 책무로부터 영구적이고 통상적 과세로의 변화에 덧붙여서 긴급사태necessitas라는 단어의 의미가 외부의 비상사태로부터 내부의 행정상의 필요로 전환되었다는 점과 조국을 수호하기 위한 일회적인 긴급사태 분담금이 요구되었던 것처럼 영속적인 사법 행정을 위해 매년 비상사태 공납을 요구했다는 점은 명백하다. 14세기에는 아직 개별적 정부의 직업적 상비군은 없었지만, 군사적 목적을 위한 영구적 과세는 있었다. 기마행진이나 기마약탈행진은 원래 군사 복무를 수행하는 봉건적 책무였으나, 이는 매년 지불하는 봉토부담금이나 병역면제금으로 대체되었다. 그는 또한 미래의 잠재적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실제적 긴급사태가 상태적 긴급사태로 대체되었음을 설명한다. 매년 과세는 공적 필요의 영속화에 의해 합리화되었고, 법률적 행정의 경우처럼 현재에 속하거나 군사적 대비의 경우처럼 미래에 속하는 영속적인 긴급사태에 의해 합리화되었다.(287-290)

당연히 특권 귀족들은 새롭게 등장한 의무에 대해 면제를 요구하게 되는데. 여기서 다시 한번 신박한 논리가 등장한다. 영주들은 숙소제공과 기마행진이라는 봉건적 의무를 매년 금전으로 납부하고 있었다. 숙소제공은 왕의 궁정이 지방을 순회할 때, 숙박을 제공하던 것인데, 금전으로 대체하여 판사에게 왕이 급여를 주고 있었으며, 기마행진은 군사비를 대체하게 된다. 이미 봉건적 의무를 상태적 긴급사태로 전환하여 매년 금전으로 납부하고 있었으니 이제 매년 과세에 응하라는 것이다. 그것은 황제의 권리이기도 하고.

이례적 필요와 통상적 필요 사이의 구별은 외교적 의사소통에도 적용된다. 중세의 외교사절단은 언제나 일시적 필요에 알맞은 것으로 특별한 목적을 위해 임시로 파견되었으므로, 항구적인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대사를 다른 궁정에 오랫동안 체제시키는 관습도 중세에는 알려져 있지 않았다. 근대 외교의 시작을 통상 15세기 베네치아로 보고 있지만, 왕들이 그레고리우스 9세(1227-41) 시대로부터 그 이후로, 소송이 길어지는 로마에서 법률 사무를 처리하기 위해 법적 훈련을 받은 대리인을 교황청에 거의 영구적으로 유지하기 시작했다. 다시 한번 원칙이 마련되었다. 『아라곤 기록집』이 드러내는 대로 1300년경에 왕들은 정치적 사안을 살펴봐야했던 중요한 세속 궁정에도 상설 대리자들을 임명하기 시작했다. 나아가 이러한 대사의 신임장은 특정한 단일한 목적에 대해서가 아니라 특정한 시기에 대해 작성된 것이 드물지 않았다. 대사의 직무라는 하나의 제도를 시간에 연결하는 경향에 주목한다. 또한 모든 행정상의 법령을 영구 등록부에 기록하는 관습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는데, 이는 기술적으로 해마다 기록부나 서책으로 구분됨으로써, 실제로 역법이나 시간에 연계되어 있다. 새로운 군주국과 통치기관에서 행정 장치의 연속성을 예증하는 사례는 적지 않다. 실제적 필요가 이른바 정치적 신체의 끝없는 연속성이라는 의제fiction를 전제로 하는 제도적 변화를 만들어냈다. 철학사상과 법률이론이 여러 측면에서 행정 실무에 영향을 미쳤고, 당시 존재했던 통치 기술이 이러한 사상과 이론으로부터 지지를 받았으며 발전도 빨라졌다.(290-291)

이런 연속성과 항구성은 외교행위에도 나타난다. 교황청과 궁정에 특정 사건을 이유로만 보내던 대사는 상당 기간 또는 기간을 한정해 보내기 시작한다. 속설과 달리 13세기부터 시작된 일이다. 대사라는 직무도 시간과 연결되었다. 게다가 매년 연서 또는 연감의 형태로 영구 등록부에 행정을 기록하는 일이 시작되면서, 행정장치의 연속성이 시작되고, 정치적 신체의 연속성이라는 의제가 전제되기 시작했다. EKa는 시간의 연속성을 철학과 신학 논쟁에서 출발해서, 명성, 조세, 행정, 외교에 뒤이어 정치적 신체의 연속성으로까지 이어간다.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고, 하나하나 따져들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것도 각자의 자유이고, K2B를 저술한지, 70년이 다되어가니 그동안의 학문적 축적과 성과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비판하기 전에 일단 이 안에서 먼저 놀아보고 싶다. 충분히 즐겨본 후에, 따져볼 일은 따져볼 자의 몫이다. EKa가 나름 제시하는 전거들도 충분히 살펴보고, 생각보다 많으니까.

2025. 12. 25.

* 괄호 안의 숫자는 책의 쪽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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