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직목록Notitia dignitatum』 의 도상 중 하나이다. 후광을 두른 여성 또는 여신으로 그려져 있는 셋은 히스파니아의 로마 속주들로, 왼쪽부터 바이티카, 루시타니아, 갈라이키아(오늘날의 갈리시아). 여러 사본이 존재하기에 그림의 모양도 조금씩 다르지만, 후광을 두른 여성 만은 변함이 없다.
Ernst H. Kantorowicz, The King’s Two Bodies: A Study in Mediaeval Political Theology,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57, “III. Christ-Centered Kingship, 3. The Halo of Perpetuity.”
제3장 그리스도 중심 왕권
3. 영속성의 후광
노르만 무명씨의 논고에서 카이사르인 한에서 티베리우스는 후광을 지녔지만, 개별적 인간인 부정한 티베리우스는 후광이 없었다. 도상학 형식에서 사용되는 은유로서의 후광은 지배자의 쌍생 인격에 대한 중세적 개념의 한 측면을 명확히 하는데 도움이 된다. 고대 후기 예술에서 개별자를 초월하는 관념이나 일반적 개념이 의인화된 것일 수 있는 그러한 인물상들에 후광이 부여된 것을 발견한다. 이 표시는 그 인물상이 하나의 연속체를, 영구적이면서 항구적인 무엇인가를 표상하는 것으로 여겨짐을 나타냈다. 아이깁투스, 갈리아, 히스파니아 및 로마 속주들은 후광과 함께 표현되었는데, 예를 들면 고대 후기의 『관직목록Notitia dignitatum』이 있다. 이러한 후광을 띈 여성상을 “추상화” 또는 “의인화”라고 부르며, 여기서 가장 의미있는 특징은 그들의 초-시간적 성격, 시간 안에서 그들의 연속성이라는 점이다. 후광에 의해 눈에 띈 것은 개별 속주의 수호신Genius, 그것의 끊이지 않는 창조력과 생산력이었는데, 수호신은 낳다[산출하다]gignare로부터 유래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영원한 로마, 영원한 프랑스 같은 구호와 연결짓는 생각이 아이깁투스, 갈리아, 히스파이나가 광운으로 장식되었을 때 표현되었다. 관념이나 덕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여서, 고대 이교의 여신들이었던 정의Justitia나 현명Prudentia이 그리스도교 예술에서 후광과 함께 묘사될 때, 영속하는 효과를 지닌 힘이나 영속하여 타당한 존재의 형태를 표상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한 관념을 대문자로 표기하고, 영어에서 성을 중성에서 여성으로 변경할 때, 실제 그 단어나 관념에 후광을 비치게 하고, 관념이나 힘의 항구성을 지시하는 것이다.(78-79)
EKa는 후광을 파고들어 간다. 후광이 사용되는 경우는 다양했다. 속주의 명칭, 덕목들, 비잔틴 황제들, 서로마 황제, 교회의 품급들, 로마, 예루살렘, 마침내 어린 나귀까지. 말하자면 그는 후광의 정상적인 사용, 즉 예수, 사도, 성자들, 성인들의 경우를 넘어서서 사람이 아닌 직무, 도시, 건물을 거쳐 마침내 동물에까지 이른다. 카이사르[황제]인 한에서 티베리우스에게 둘러진 후광. 카이사르는 정확히 말하면 부황제 정도가 되지만 어떻든. 여기서 흥미롭게도 『관직목록Notitia dignitatum』이 등장한다. 이 책은 대략 5세기 초의 서로마, 5세기 중반의 동로마의 관직 명칭의 목록이라는데, 정확성에는 한계가 있겠지만, 군대와 민간의 관직 명칭을 다룬다. 이 책은 15세기와 16세기의 사본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흥미롭게도 그림에 채색이 되어 화려함을 더했다. 여기서 보여주는 것은 로마의 속주들은 의인화된 여성 말하자면 여신으로 묘사하고, 거기에 후광을 두른 것이다. 다음으로는 정의, 현명 같은 덕목들이다. 이들은 고대 이교의 여신이기도 하다. EKa는 여기서 추상화와 의인화 및 영속성과 항구성을 발견한다.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함락 이전부터 그 이후까지 비잔틴 황제들은 후광이 비친 채로 표상되었다. 비잔틴 황제의 후광은 그리스도교 시대 조차 여전히 황제의 수호신인 튀케τύχη를 지시하는 것이었지만, 후대에는 영속적이며 항구적인 것으로 간주되고, 제국의 권력 그 자체를 지시하는 것으로 황제의 자질 그가 성인인지 여부와 무관했다. 황제는 하느님으로부터 유래한 영속하는 권력의 담지자이자 집행자를 가리켰고, 어떤 종류의 원형의 불멸하는 존재로 거룩한 것의 육화로 만들었다. 메스의 아말라리우스Amalar of Metz는 경건한 황제 루도비쿠스에게 보내는 환호에서 개인으로서의 황제를 항구적인 원형으로부터 예민하게 구별하는데, 신적인 루도비코스에게는 만수무강을 기원하나, 카롤루스 왕조의 황제가 체현된 새로운 다윗에게는 항구성을 기원한다. 루도비쿠스에게 주어지는 후광은 카롤루스 제국의 이념인 다윗 왕국이 절정에 달하고 구현되는 이스라엘의 경건한 왕의 끊임없음을 통해서이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가 비잔틴 황제와의 경쟁에서 직무의 위엄에 따라 모든 교황에게 후광을 요구했던 것도, 위대한 위엄의 정점에 대한 언급 때문이다. 교회의 품급의 대표자들로서 이름없는 주교, 사제, 부제를 장식하는 중세의 사각형 광운 또는 완전성의 광운이, 사람과 무관하게 축성된 직무 그 자체의 또는 위엄의 완전성과 항구성을 지시하는 것일수도 있다.(79-82)
비잔틴 제국의 황제들은 모두 후광을 달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유스티니아누스 이후 동로마 제국의 명맥을 유지했던 비잔틴과 서로마의 결정적 차이는 교회가 황제 아래에 있었고, 마지막 순간까지 그러했다는 것이다. 1453년까지니까, 대략 900년 정도를. 여기서는 설명도 의심도 없이 황제는 후광을 달고 있다. 이때 황제는 물론 제국의 권력 그 자체로서이다. 서로마는 그렇지 않은데. 여기 등장한 경건한 황제 루도비쿠스, 흔히 경건왕 루트비히는 물론이고, 성인으로 인정받지 않은 왕에게는 후광을 두르지 않는다. 루트비히의 도상에서도 후광을 두른 것은 예외적이다. 여기서 EKa는 아말라리우스의 찬사를 사료로 활용한다. Laudes Regiae에서 본격적으로 활용된 사료이다. 여기서 만수무강을 즉 생명을 기원하는 대상은 개인이지만, 다윗 즉 왕조에는 영구적임 부여된다. 교회에도 마찬가지여서 교황에게 후광이 요구될 때도, 주교, 사제, 부제들에 대해서도 직무와 위엄에 대해서만 후광이 부여된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따라가기 어렵지 않다.
비잔틴 사람들은 테베레 강가에 있는 고대 로마의, 후광을 두른 본질 또는 그의 항구적 수호신이 보스포러스의 새로운 로마로 옮겼고, 이탈리아의 강둑에 남아있는 것은 장소의 수호신이자, 끊이지 않는 생명이 소멸해 버린 벽돌들, 돌들, 잔해들일 뿐이라 주장했다. 후광을 두른 로마의 신체는 자신의 물질적 신체를 떠날 것이며, 죽은 신체로부터 다른 자연적 신체로 옮겨간다. 로마는 육화된 것에서 육화로 이주했는데,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다음에는 제3의 로마인 모스크바로 움직였지만, 카를 대제가 라테란 교회를 세웠고 미래의 로마를 수립하려 했던 아헨으로도 움직였다. 이것은 풍유가 아니었다. 콘스탄티노폴리스와 아헨 그리고 다른 도시들 각자가 새로운 로마라고 요구했다. 이것들은 신적이거나 영웅적인 자신들의 원형의 후광을 시간제한이 있는 채로 소유하고 있었다. 초월적 예루살렘은 시간 안에서의 연속성이라기 보다는 무시간적 영원성을 의미한다. 그리스도의 도시인 예루살렘의 물질적 신체는 파괴되었으며, 폐허 위에 하드리아누스가 건설한 아일리나 카피톨리나는 초자연체가 결여되어 있었다. 하지만 후광이 둘러진 예루살렘은 축제의 시간이라면 언제라도 지상으로 하강하여, 어떤 보잘 것 없는 읍내나 마을의 교회에라도 영원성의 광채를 수여하게 될 것이다.(82-83)
흥미롭게도 후광은 이제 도시로 옮겨간다. 중세에 등장하고 했던 새로운 로마Nova Roma라는 명칭을 우리는 흔히 상징성에 대한 요구, 정통성에 대한 요구라고 이해해 왔지만, EKa는 그렇지 않다. 이것은 풍유가 아니라 실체에 대한 요구였다. 그것은 육화의 이전에 대한 요구이자, 정치적 신체에 대한 요구이기도 했다. 예루살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파괴된 예루살렘의 초자연체는 하늘에 있다가 언제라도 지상으로 하강하여 광채를 수여할 수 있다. 비록 시간의 제한은 있지만. 이것은 마치 중세의 카톨릭 신학에서 그리고 지금도 성찬의 빵과 물이 모습은 그대로 있으나 그 실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변한다는 화체설과 유사하다. 프로테스탄트들은 빠른 속도로 츠빙글리가 말하던 상징 쪽으로 옮겨갔다. 물론 신학적으로 임재를 여전히 말하고 있지만, 신자 대중이 이해하는 바는 상징에 가깝다. 하지만 카톨릭 신앙은 성사에서 실체가 변화하고, 성사를 통한 축성의 효력은 실체적인 것이다. 이 장면에서 EKa는 이런 흐름이 도시에서 등장하는 것을 보여줄 뿐이다.
후광은 언제나 어떤 방식으로든 시간의 본성의 변화를 시사한다. 인격이든 장소든 후광이 둘러진 개별자는, 중세의 정신이 이해했던 대로 지상에서의 자연적 삶을 결정하는 그것과는 다른 시간의 범주에도 참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후광이 자신의 담지자를, 과거와 미래의 모든 시간이 그 안에 현재하기 때문에 연속성이 없는 하느님[신]의 영원성으로 이동시키는 것은 아니지만, 후광은 스콜라 학파적으로 말하면 시간으로부터 유구aevum로, 시간으로부터 항구성으로, 끝이 없는 시간의 연속체로 이동시켰는데, 후광이 둘러진 인격 혹은 후광인 한에서의 인격 즉 그의 품급은 결코 죽지 않으며, 후광은 일반적인 어떤 원형을, 지상의 가변적인 시간 안에서 불변하는 어떤 것을 대리하여 있었음을 의미했다. 유구aevum는 알렉산드리아화된 그리스도교 철학의 천사들, 동시에 형상들, 로고스들, 원형들의 거주지였기 때문에, 튜더 법률가들의 왕의 정치적 신체가 거룩한 영들과 천사들과 유사함을 드러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고, 노르만 무명씨의 그리스도인 왕rex christus에게 자연에 의해 인간적이면서 은총에 의해 신적인 왕 곧, 중개자의 우월한 본성도 부여되어 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84)
후광은 시간의 도상학적 표현이다. 그리고 그 시간은 천사의 시간, aevum 즉 유구이다. 이것은 영원성은 아니지만 영속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위엄과 직무는 죽지 않으며, 시간 안에서 불변하는 원형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이는 정치적 신체로 이어지며, 왕이 그리스도일 때, 왕에게는 은총에 의한 신적인 새로운 본성도 또한 부여된다. aevum에 대해서는 나중에 더 상세한 설명이 전개된다.
요한 크리소스토무스의 것으로 잘못 알려진 설교에 삽입된 이야기가 있다. 예수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간 구원의 경륜에 참여한 어린 나귀의 자연적 신체는 임무를 다한 후 이전 주인에게 보내졌지만, 나귀의 메시아적 항구적 신체 그것의 이념, 형상, 원형은 그것이 상징했고 실현하는 데 도움을 준 예언적 환상과 마찬가지로 구원의 과정 안에서 필수불가결하고, 메시아의 형상과 분리할 수 없으므로, 그 동물의 불멸의 정치적 신체는 메시아와 함께 거룩한 도시에 남아 있었고, 후광을 두르게 되었다. 육체는 돌아갔지만, 이념은 유지되었다(Caro remissa, ratio retenta!)라는 의미에서 육체로 있는 찰스 1세는 옥스포드로 돌아갈 수 있었지만, 국새의 도상 형태로 있는 그의 후광을 두른 이념은 의회에 남아 있었다.(84-86)
마지막에 어떻게 보면 사족인 듯하고, 어떻게 보면 흥미로우면서 어떻게 보면 뜬금없는 나귀이야기가 나온다. 종려주일에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를 태우고 갔던 그 어린 나귀이다. 이 나귀는 주인에게 돌아갔지만, 그 동물의 말하자면 정치적 신체, 다시 말해 이념, 형상, 원형은 예루살렘에 남아 후광을 두르게 되었다는 믿음이다. 이런 이야기는 라벤나나 북이탈리아에서 생겨났고, 그러한 전설에 따르면 나귀는 아주 오래 살다가 베로나에서 죽었다고 전해진다. 정치적 신체는 속주, 황제, 교황, 사제, 도시를 돌아 마침내 어린 나귀에까지 이르게 된다. 이런 상상력의 전개를 추적해서 연결해 나가는 EKa가 더 놀랍다. 이야기의 마지막은 1장의 끝부분처럼 다시 한번 찰스 1세로 이어진다. 육체는 돌아갔으나 이념은 유지되었다. 찰스 1세는 런던을 떠나 옥스포드로 돌아갔지만, 그의 이념은 의회에 남아서 국체를 이루고 있다. 정말 놀라운 정치적 신체다.
베로나의 한 성당에는 예수를 태운 작은 나귀의 동상이 있다고 한다. 전설의 힘이란. 정치적 신체의 힘인가.
2025.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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괄호
안의 숫자는 책의 쪽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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