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른스트 H. 칸토로비치, 『왕의 두 신체』(3-2).

아헨 대성당에 있는 아헨 복음서, 다른 말로 리우타르 Liuthar 복음서의 삽화.

Ernst H. Kantorowicz, The King’s Two Bodies: A Study in Mediaeval Political Theology,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57, “III. Christ-Centered Kingship, 2. The Frontispiece of the Aachen Gospels.”

제3장 그리스도 중심 왕권

2. 아헨 복음서의 권두삽화

「성용Volto Santo di Lucca」으로 알려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십자가는 머리에 황제의 보관을 쓰고, 어깨에 자의를 두른 채 십자가에 못박힌 예수를 보여주는데, 두 본성을 가진 한 인격이라는 점은 뚜렷하다. 대략 900년부터 1100년까지의 수도원 시대, 서방 문명의 타협하지 않는 그리스도 중심성이 만개하여 도취되었던 시대에만, 지상을 지배하는 그리스도 모방자인 황제의 두 본성들 또한 비슷하게 간략한 방식으로 묘사될 수 있는데, 973년 라이헤나우Reichenau 수도원에서 만든 아헨 복음서의 유명한 수사본 채색장식화는 왕좌에 앉은 오토 2세를 보여준다. [위의 도판] 왕좌는 견고한 기초가 아닌 쭈그러져 있는 대지의 여신 텔루스에 의해 떠받쳐지고 있으며,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하느님의 손이 황제의 머리 위 보관에 닿아 있다. 하느님의 손을 둘러싼 신의 광배와 황제의 광배가 교차하는 데, 거기 형성된 삼각소간 안에 황제의 두상이 위치한다. 이 도상은 중첩된 세 평면을 보여주는데, 황제의 인물상 위쪽은 네 복음사가를 상징하는 묵시록의 네 생물이 하얀 띠장식을 들고 있고, 황제의 발 아래쪽 낮은 부분에는 네 고관[위엄]이 보이는데, 둘은 대주교이고, 둘은 전사로, 성속의 군후들을 대표하며, 가운데 부분 발판의 오른편과 왼편에서 자색 삼각기를 든 채 공경하는 동작인데, 이들은 영지를 수여받은 공작이거나 왕국의 지배자일 것이며, 이들 모두 젊은 세계의 지배자kosmokrator, 하늘을 향해 또는 하늘 안으로 들려 올려진 이에게 종속된 군후들과 왕후들이다. 노르만 무명씨의 말을 빌리면, 황제는 하늘에까지 높이 들려 올렸고, 지상의 모든 권세들은 그보다 열등하며, 그는 하느님에게 가장 가까운 자이다.(61-64)

근래에 나온 영어판 책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그림에 대한 간략한 설명이다. 이 절 전체는 이 그림에 대한 도상학적 해석을 중심으로 끌어나간다. EKa의 장기 중 하나이다. 모든 사람 위에 있고, 하늘에 높이 들려, 하느님의 손이 닿아 있는 황제에 대한 묘사. EKa는 이 채식화가 973년 오토 2세의 것이라고 보는데, 이는 앞서간 학자들을 따른 것이고, 특히 슈람Percy Ernst Schramm[Die deutschen Kaiser und Könige in Bildern ihrer Zeit]이 주장한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이를 오토 3세의 초상으로 본다. 이는 플로렌틴 뮈털리히Florentine Mütherich(“Zur Datierung des Aachener ottonischen Evangeliars”, 1966)의 견해를 따른 것으로, 그는 슈람 사후에 책이 다시 출간될 때(1983) 편집을 맡기도 했다. 그는 도상의 표현양식과 황제가 젊은 사실을 들어 오토 3세가 세 살의 어린 나이로 독일왕이 되었던 983년에서 로마인의 황제[신성로마제국]가 된 996년 사이의 것으로 추정한다. 이런 미니아튀르(채식화)들을 뒤지다보면, 국내에 있는 도서관의 열악함을 새삼 느끼게 된다. 플로렌틴 뮈털리히가 빌헬름 쾰러의 뒤를 이어 8권으로 마무리한 Die karolingischen Miniaturen 같은 걸, 개인이 살수는 없지 않나? 이미 대부분 절판이고 다 흩어져서 모으기도 어렵다. 중세의 화려한 수사본들을 높은 해상도로 영인본을 만들어내고 또 판매도 하던데, 그런 걸 모아두는 도서관도 하나쯤 있었으면 좋겠다. 가서 보기만 해도 좋겠는데. K2B를 읽다가 그림 하나 때문에 유럽의 헌책방을 뒤져 산 책이 한두권이 아니지만, 한계가 있는 법이라. 참고로 가운데 있는 오토 3세의 좌우의 왕들은 폴란드의 왕 볼레스와프Bolesław와 헝가리의 왕 이슈트반Stephen라는 이야기가 있긴 한데. 연대와 여러 문제가 있어서 정확하다고 하기는 어렵겠다. 칸토로비치의 글도 이제 반세기가 훌쩍 넘었기 때문에, 사실적 엄밀성에 대해 간혹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하지만, 이 그림의 경우 주인공이 오토 2세든 오토 3세든 연대가 10년내지 20년 차이가 난다고 해서 해석의 의미가 달라질 리가 없다.

하늘에까지 높이 들려 올려진 황제imperator ad celum erectus라는 개념이 도상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이는 「히스파니아 교령집」 등에서 나타나는데, 이는 칼케돈 교령집의 신앙의 질투로ad zelum을 필사자가 하늘로ad celum으로 잘못 옮긴 것이, 「위 이시도루스 교령집」을 거쳐 왕권주의자인 노르만 무명씨에 이르렀다. 라이헤나우의 화가가 이를 알았을 법하지는 않지만, 이 수사본 채식화의 황제 미화는 동방과 서방 예술의 어떤 관습도 능가하는 것으로, 이 도상은 그리스도의 영광[대권]maiestas을 속에서 그리스도의 보좌 위에 있는 황제, 그리스도처럼 비어있고 펼쳐진 왼손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전신후광을 지닌 황제, 영광의 그리스도의 상으로부터 거의 분리할 수 없는 네 복음서를 상징하는 생물들과 함께있는 황제를 보여준다. 성 갈렌 수도원과 다름슈타트의 복음서의 상아로 세공해서 만든 표지에 이와 유사한 그리스도가 새겨져 있다. 이는 황제가 단지 그리스도의 대리자이자, 위에 있는 세계의 지배자의 인간으로 있는 대응형일 뿐 아니라, 영광의 왕 그 자신으로, 즉 그리스도 모방자, 그리스도 구현자, 그리스도를 연기하는 자로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마치 하늘의 눈에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C)를 지상의 그리스도(c) 안에 명백해지도록 하기 위해 신-인이 천상의 왕좌를 지상의 황제의 영광에 양도한 것 같다. 팔레르모의 마트로라나 성당에 있는 그리스도의 손으로 왕 루제루 2세에게 행해지는 대관의 모자이크가 있는데, 왕 안의 하느님을 명백히 나타내겠다는 의도는 루제루와 그리스도의 얼굴 사이에 현저한 유사성으로 성취되었으며, 이런 이중화(쌍생아형성Zwillingsbildung)은 다른 도상이나 주화에도 사례가 있다. 하지만 「아헨 복음서」의 황제의 그리스도로의 동화는 얼굴이나 본성에 따른 유사성이 아니라 그리스도론적인 초본성적인 닮음에 의해 표시되는 것로, 이 도상은 황제의 신적이자 인간적인 두 본성을 표현하며, 당대의 언어로는 “자연으로는 인간적이고 은총으로는 신적인” 지배자를 표현한다.(64-65)

요약하면, 위의 도상은 그리스도를 닮은 도상이다. 그것도 영광의 그리스도라고 하는 일정하게 정형화된 형태의 도상을 닮았다. 영광의 그리스도란 지상에서 승리한 후 승천해서 심판자의 자리에 앉은 그리스도를 묘사하는 도상이다. 이에 대비되는 것은 십자가의 그리스도. 그런데 EKa가 주장하는 것은 이 도상에 그려진 황제는 그리스도를 신학적으로 모사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히스파니아 교령의 “하늘에 까지 올려진”에 대한 분석으로 이어진다. 심지어 이는 칼케돈 신조를 잘못 옮겨쓴 것이기도 하다. 이런 실수를 발견하는 것이 사본 연구자들의 즐거움이기도 하다. K2B에는 도판으로 실려있는 몇몇 그림들과의 비교를 통해 그 의미를 더욱 상세하게 드러낸다. 책 뒤에 도판에 대한 설명이 있고, 이를 따라서 인터넷을 헤매다 보면 대부분은 상세하고 선명한 사진들을 만날 수 있으니, 여기서는 옮기지 않겠다. 영광의 그리스도를 신학적으로 그의 말을 따르면 초본성론적으로 모사한 황제의 도상은 보다 상세하게 설명된다. [시칠리아에 있는 팔레르모의 마트로라나 성당에 있는 루제루 2세의 대관 모자이크는 정말 멋진 작품이지만, 보고 있으면 홍모시장이 대구역 광장에 만들었다는 그를 닮았다는 어떤약하면, 위의 도상은 그리스도를 닮은 도상이다. 그것도 영광의 그리스도라고 하는 일정하게 정형화된 형태의 도상을 닮았다. 영광의 그리스도란 지상에서 승리한 후 승천해서 심판자의 자리에 앉은 그리스도를 묘사하는 도상이다. 이에 대비되는 것은 십자가의 그리스도. 그런데 EKa가 주장하는 것은 이 도상에 그려진 황제는 그리스도를 신학적으로 모사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히스파니아 교령의 “하늘에 까지 올려진”에 대한 분석으로 이어진다. 심지어 이는 칼케돈 신조를 잘못 옮겨쓴 것이기도 하다. 이런 실수를 발견하는 것이 사본 연구자들의 즐거움이기도 하다. K2B에는 도판으로 실려있는 몇몇 그림들과의 비교를 통해 그 의미를 더욱 상세하게 드러낸다. 책 뒤에 도판에 대한 설명이 있고, 이를 따라서 인터넷을 헤매다 보면 대부분은 상세하고 선명한 사진들을 만날 수 있으니, 여기서는 옮기지 않겠다. 영광의 그리스도를 신학적으로 그의 말을 따르면 초본성론적으로 모사한 황제의 도상은 보다 상세하게 설명된다. [시칠리아에 있는 팔레르모의 마트로라나 성당에 있는 루제루 2세의 대관 모자이크는 정말 멋진 작품이지만, 보고 있으면 홍모시장이 동대구역 광장에 만들었다는 그를 닮았다는 어떤 동상이 떠오른다. 1000년도 전의 일이건만, 사람들이 하는 일의 본질은 잘 변하지 않는다. 참 솔직한 동상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황금이, 정성이 모자랐던 건 아니었을까? 루제루 2세의 손자인 굴리엘모 2세가 봉헌한 몬레알레 성당은 전체가 황금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고, 2톤이 넘는 황금이 들어갔다고 하던데.]

신비한 백색 띠장식 또는 어깨띠 같은 휘장은 이 도상 해석의 출발점이다. 묵시록의 상징들인 네 복음사가에게 들려있고, 양끝은 왕후王候들의 왕관에 살짝 스친다. 접힌 띠가 황제의 신체를, 머리, 어깨, 가슴은 경계 위에, 팔, 몸통, 발은 아래로 분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백색 휘장이 땅으로부터 하늘을 분리하고 있다는 의견은 오래된 것이다. 황제의 머리는 하늘에 닿을 뿐 아니라 하늘 안에 내지 하늘의 여러 층들을 넘어서 있는 반면, 발판 위에 있는 그의 발은 굴종하는 텔루스에 의해 떠받쳐지고 있는데, 다른 도상에서는 테라가 떠받치고 있는 모습은 세계 지배의 특징이다. 이 백색 현장[어깨띠]은 띠나 띠장식도 아니고 장식용 휘장도 아니라, 장막이다. 이는 천상으로부터 지상을 분리하는 창공을 상징하는 성막의 휘장[성소의 휘장]이다. 성막의 장막을 창공으로 보는 해석은 흔했으며, 대속죄일에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이 성막의 창공-휘장sky-curtain을 통과할 때, 실제로 하늘 그 자체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베다는 말했다. 휘장이 걸린 네 기둥은 4추덕도 사도도 아니라, 네 생물 곧 복음사가들이다. 황제는 영원한 왕의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서 하느님에게 대관받은 것이다. 몇몇 카롤루스 왕조의 성서들에서 장막을 머리 위에 걸친 사람이 왕좌에 앉는 모습과 함께 네 생물을 보여주는 그림이 발견된다. 이 띠장식을 창공으로 해석하는 또 다른 근거는 남성 인물상 머리위에 펄럭이는 장막이 고대 로마의 하늘의 신 카일루스가 창공을 자신의 머리 위에 붙들고 있는 장막을 가리키는 것에서 유래한다. 성막의 장막은 땅으로부터 하늘을, 지성소로부터 성소를 분리했다. 베다에 의하면 이 성전의 구분은 인간과 성인 및 천사들로 이루어진 교회의 상징이다. 장막은, 지상에서 인간 예수인 동시에 천상의 영원함에서 하느님과 공동-통치자인 매개자 그리스도의 두 본성을 지시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66-69)

그림을 나누는 선명한 휘장 또는 황제의 현장(懸章, 어깨띠)처럼 보이는 이 띠장식을 잉글랜드의 가경자 베다와 그의 「성막론」을 따라서 해석한다. (신기하게도 그의 「잉글랜드인의 교회사」가 「영국민의 교회사」라고 하는 살짝 의미가 다른 제목으로 번역되어 있다) 주의할 점은 베다의 연대는 673-735년으로 대략 2.5세기는 차이가 난다는 점, 지역도 다르다는 점이다. 물론 히스파니아 교령들도 2-3세기는 앞서는 것이니까. EKa가 인용하는 사람들과 지역은 항상 주의를 요한다. 요는 이 그림의 도상에서 황제의 몸을 둘로 나누는 것처럼 보이는 휘장은 그 자체로 창공, 즉 눈에 보이는 하늘의 역할을 하며, 창세기 용어를 쓰면 궁창firmament이라고 할까, 그 위는 천상Heaven이고, 휘장에서 황제가 있는 곳 까지는 창공이면서 하늘이고, 그 아래가 지상이다. 그래서 이 세계지배자들은 도상에 따라 텔루스나 테라를 밟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렇게 휘장이 천상과 지상을 나누는 비유는 성경 탈출기[출애굽기]의 성막에 대한 묘사에서 왔다는 것이다. 지성소 즉 천상[하늘]과 성소를 나누는 휘장, 이 휘장이 걸쳐져 있는 네 개의 기둥 대신에 네 명의 복음사가를 상징하는 묵시록의 네 생물이 휘장을 들고 또 물고 있다는 설명이다. 사람(천사)는 마태, 사자는 마르코[마가], 황소는 루카[누가], 독수리는 요한. 그래서 베네치아의 중심에 있는 성 마르코 대성당에는 사자 그것도 날개달린 사자가 장식되어 있다. 베네치아는 가는데 마다. 하지만 EKa는 텔루스와 함께 이교적 상징물을 하나 더 보여준다. 창공을 휘장으로 사용하는 로마의 하늘의 신 카일루스의 조각이 그것. 순수한 전승이나 혼합물이란 없는 법.

또 다른 특징인 머리는 하늘에 둔 채로 발은 땅 위에 놓여있는 황제의 거대한 신장이다. 오토의 동시대 동방의 황제 바실리오스 2세의 수사본 채식화에도 마찬가지로 땅에서 하늘까지 거인처럼 우뚝 솟아 있다. 이것은 초기 그리스도교 대중 신앙, 특히 영지주의 집단과 가현설 집단의 특징이었고, 첫번째 사람은 땅으로부터 궁창까지 연장되어 있다고 하는 아담에 대한 랍비 전통으로부터 유래한 것일수도 있다. 거인 같은 그리스도라는 환상도 역시 정통이었다. 시편에서 하느님의 거인 같은 신장이 두 본성들과 명백한 관계는 없지만, 성 암브로시우스는 그리스도를 쌍생 실체의 거인과 연관시켜 언급하고, 이 시편(18편)은 후에 그리스도의 육화나 그의 부활 및 승천을 암시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암브로시우스의 두 실체의 거인은 동방에서 유포되던 그리스도의 머리와 발에 대한 표준 해석과 연결된다. 머리는 그리스도의 신격을, 발은 그의 인간격을 의미한다고 예루살렘의 키릴로스는 쓰는데, 묵시록의 발은 놋쇠라는 표현으로 발은 육화를 시사한다고 흔히 설명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시편 주해』는 암브로시우스의 쌍생 실체의 거인을 실례를 들어 설명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느님의 장막은 육체이고, 육체 안에 말씀이 거주했고, 육체는 하느님의 장막이 되었다. 바로 이 장막 안에서 황제가 우리를 위해 싸우고 있다. 머리는 하늘에 몸은 땅에 있지만, 머리가 신체로부터 분열된 것은 아니며, 사랑으로 결합되어 있다고 말한다. 이 주석은 여러 차례 반복되었고, 표준 주석의 일부가 되었다. 라이헤나우 예술가가 이를 참고했을 수 있다. 시편 90[91]편은 승리 시편이자 탁월한 황제 시편이기 때문이다. “너는 살무사와 독사 위를 밟고 걸으며, 사자와 용을 발 아래 짓밟으리라.” 이 시편은 제국적이며, 로마 황제의 완전한 군복을 차려입은, 즉 황금색 갑옷과 세개의 늘어뜨린 장식이 있는 황제의 어깨 장식 고정쇠를 갖춘, 그리스도에 대한 매우 드물고 다소 예외적인 표현들이 모두 시편 90[91]:13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군복 입은 신들”은 고대 후기에 드물지 않은 주제였다. 그러므로 아우구스티누스의 주해가 그리스도-같은 살아있는 황제를 장막[성막] 안에서 싸우는 황제로 표현하도록 촉발했을 것이다. 그는 양가적 단어인 장막을 비유적 의미 (육체)에서 원래의 의미인 장막으로 되돌렸고, 그의 그림에서 성막의 휘장[막]은 황제의 신체를 분할하고, 그의 쌍생 본성을 가리키는-발은 땅에, 머리는 하늘에-필수적인 소도구가 되었다.(69-73)

여기서 몇 가지 의미상의 특징이 나온다. 우선 앞의 절에서도 언급했던 거인, 쌍생 실체의 거인. 일단 현대어 번역성서에서 거인은 용사로 되어있다는 점을 먼저 지적해두자. 거인은 좀 다른 의미를 가지기에. 아마도 이것은 EKa시대에도 마찬가지였을 듯. 그래서 그 시대에는 정통이었다고 굳이 부기해 둔 느낌이다. 자신의 논변을 뒷받침하기 위해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암브로시우스와 아우구스티누스이 주해를 가져온다. 그렇다면 적어도 당대에는 그렇게 해석되었을 것이다. 그리스도로 묘사되는 거인의 신체는 하늘에 닿은 머리와 지상을 디디고 서있는 발로, 곧 육화와 승천 모두를 묘사하는 것으로 본다. 황제를 거인으로 그린 다른 도상도 제시된다. 여기서 슬쩍 인용된 군복입은 로마 황제의 도상은 라벤나 대성당에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모자이크를 가리키는 것이다. 6세기 비잔틴 양식. 군복입은 황제는 자신의 연구 주제 중 하나로, “Gods in Uniform”이라는 논문으로 회화와 조각, 주화의 도상을 연구한 바 있다. 여기서 중요한 묘사는 장막 안에서 싸우는 황제라는 표현이다. 장막은 지상 곧 이 세상이다. 이 세상에서 싸우는 그리스도의 구현자로 싸우는 황제란, 실상 지상에서 싸우는 교회 ecclesia militant를 가리키는 것이다.

몸과 머리는 이미 하늘에서 사라졌기에 육화된 몸의 발만 보여주는 그리스도의 승천 도상이 휘장[막]의 특별한 기능을 이해하기 위해서 고려되어야 한다. 거인 그리스도의 개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지금까지 승천은 고대적인 신화apotheosis나 신의 현현epiphany의 형태로 묘사되었지만, 이제 그리스도는 명백히 드러나지 않고, 하늘에서 사라진다. 그리스도의 머리와 신체는 하늘 속으로 사라진다. 그리스도의 머리와 몸은 하늘에 있는 반면, 육화의 상징인 발만 단독으로, 육화된 몸이 지상으로 이주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징표로 남아 있다. 라이헤나우 도상에서 창공이 황제의 신체를 분할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신체를 분할하고 두 본성을 시사하는 것도 창공이다. 휘장[장막]은 황제의 머리, 가슴, 양 어깨, 어깨관절을 휘장 윗부분, 즉 하늘에 남겨두고, 손을 포함한 몸을 아래에 둔다. 머리, 가슴, 양 어깨, 어깨 관절은 황제가 성유로 도유받은 부위로, 이는 주 그리스도를 가리키지만, 몸통과 팔다리는 평범한 인간의 것이다. 손의 도유는 980-1000년 사이에 도입되었지, 961년 아헨의 독일왕 대관식에는 없었다. 휘장[막]의 뾰족한 끝은 왕후들의 왕관에 가까스로 닿아있고, 황제의 머리는 휘장[막] 위에 있는 데, 이는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이야기하는 「성 베드로에 의한 복음서」와 관련이 있다. 두 천사가 무덤에 들어갔다가 셋이 돌아 나왔을 때, 두 사람이 한 사람을 지탱하고 있는데, 두 사람의 머리는 하늘에까지 닿아 있지만, 한 사람의 머리는 하늘을 넘어서 우뚝 솟아 있다. 화가가 외경을 연구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아우구스티누스의 시편 90편 해석과 일치하여, 황제의 머리가 하늘들 저 멀리에 있음을 보여주어야 했다. 하지만 황제에게 종속되어 있는 왕후들의 왕관이 창공에 닿게 함으로써 황제의 머리가 모든 하늘들 저 멀리 위에 있음을 용이하게 설명할 수 있었다. 아래에 있는 네 인물상, 성과 속의 군후들이다. 가장 높은 면은 모든 하늘들 위의 천구층, 중간 면은 하늘 아래지만 창공에까지 이르는 천구층을, 가장 낮은 제3의 면은 숨김없이 천상 아래의 지상을 나타낸다. 이런 3분할은 카롤루스 왕조 시대의 다른 사본들에 의해서 확인된다.(73-76)

다시 한 번 다른 도상들과 비교하면서 세계의 분할을 설명한다. 우선, 가져오는 도상들은 그리스도의 모습이 신체의 일부만 보이는 그림들이다. 발만 그려져 있거나 하반신만 그려져 있는, 즉 이 세계를 떠나 천상에 있는 그리스도를 묘사하는 그림들인데. 오토의 도상과 동일한 관점을 제시한다. 특히 이런 해석은 신약 외경에 속하는 「성 베드로의 복음서」에서 뒷받침된다. 그리스도의 머리가 지상에서 사라졌듯, 황제의 머리도 하늘에. 도상에서 오토의 몸은 잘려있지는 않지만, 휘장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EKa는 휘장 위쪽에 있는 부분들이 왕의 대관에서 성유로 도유받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손도 도유받지만, 이것은 980년에서 1000년 사이의 일이라고 해석한다. 그런데 이 도상이 983-996 사이의 오토3세를 그린 것이라면, 바로 이 부분이 무너진다. EKa는 이런 주장을 하기 위해, 대관 전례 예식서들을 제시한다. 솔직히 나는 EKa의 주장이 무너진 것 같지도 않고, 그게 무슨 상관이랴 싶지만. 화가가 휘장을 구부리기엔 각도가 맞지 않았든지, 또는 그래서 손에 십자가를 쥐어줬든지. 그림은 자체로 아름답기도 해야 하는 법인데. 그러나 전통적으로 성유를 도유받던 부분들이 휘장 위에 있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중세인들은 의식이나 전례를 실체로 생각했다는 것에 대한 반증이다. 3단계로 나뉘어진 세계. 천상의 세계. 지상의 세계. 그 중간의 위로는 하늘에 아래로는 지상에 닿은 창공의 황제.

카롤루스 왕조 시대의 모형이 중요한 것은 라이헤나우 예술가가 따라가는 지점에 대한 주해이기 때문이며, 그가 벗어나기로 선택한 지점을 드러내 보여주기 때문이다. 『비비앙 성서』와 『황금 사본』의 독두왕 카롤루스의 왕좌 도상들과 아헨 채식화를 비교하면 명확히 드러난다. 카롤루스 왕조 시대의 수사본 채식화에도 휘장[막]이 있는데, 이는 궁륭으로 덮고 있는 천개-제단의 닫집 기둥에 부착되어 있다. 이 휘장[막]은 지배자의 신체를 과잉절단하지도 분할하지도 않으며, 그의 머리를 하느님의 손으로부터 분리한다. 황제의 머리가 창공을 뚫고 하느님의 손에 닿은 라이헤나우 채식화와 달리, 천개의 기둥에 부착된 막은 성막도 창공도 아니었다. 라이헤나우의 황제의 전신 후광과 생물들은, 그리스도의 자리에 있어 우리를 위해서 싸우는 황제를 가리키며, 신체를 분할하는 휘장[막]은 황제가 그리스도와 공통으로 두 실체를, 자연에 의해 인간적이지만, 은총에 의해서 축성에 의해서 신적인, 실체를 가지고 있음을 강조한다. 이 모든 것은 카롤루스 왕조 시대 왕좌 도상에서 시사하는 것과는 매우 다른 국가철학에서 비롯된 것이다. 카롤루스 왕조의 도상에서 그리스도는 부재하다. 카롤루스 시대의 왕권 개념은 결정적으로 신중심적theocentric이어서, 잉글랜드의 카스울프는 카롤루스 대제에게 당신은 신의 대리관vicegerent이며, 주교는 그리스도의 대리관일 뿐이라고 말했다. 라이헤나우의 화가에게 황제는 그리스도의 자리에 있으며, 위로부터 뻗어 내려오는 손은 십자가의 후광에 둘러싸여 있으니 아마도 그것은 성부의 손이 아니라 성자의 손이다. 요약하면, 라이헤나우 예술가에 의해 드러난 오토 왕조 시대의 지배권 개념은 신중심적이지 않고, 결정적으로 그리스도중심적이었다. 백년 이상 이어진 그리스도 중심 수도원 경건은 지배권 도상에도 영향을 미쳤다. 라이헤나우의 독특한 수사본 채식화는 “전례적 왕권”, 즉 성부 하느님 보다는 신-인 그리스도 중심 왕권이라 불릴 만한 것의 가장 강력한 회화적 표현이다. 결과적 라이헤나우 예술가는 신-인의 “한 인격 안의 두 본성들”을 오토왕조의 황제들에게도 또한 전달하는 모험을 감행했다. 그는 지배자의 쌍쌩 인격이라는 개념을 자세히 설명했다.(76-78)

카롤루스 왕조 시대로 돌아간다. 이 왕조의 시작을 카롤루스 마르텔루스의 732년 투르 푸와티에 전투의 승리로 보아야할지, 741년 프랑크인의 왕 대행을 맡은 시기로 보아야 할지, 751년 아들 피피누스가 프랑크인의 왕이 된 시점으로 보아야할지 모르겠지만, 대략 이때쯤부터 800년 카롤루스 대제의 서로마 황제의 대관을 거쳐 전성기를 이루지만 길지 않았고, 경건왕 루도비코스[루드비히]의 사후 형제들 간의 분쟁으로 인한 내전으로 프랑크 왕국은 843년 베르됭 조약에 따라 셋으로 분할되는데, 이중 서프랑크를 차지한 것이 독두왕 카롤루스, 흔히 대머리왕 샤를이라고도 한다. 아마도 첫번째 프랑스의 왕이라서, 조약문에 갈로-로만어를 사용해서? 그의 치세는 877년까지. 메로베우스[메로빙거] 왕조의 궁재였던 카롤루스 마르텔루스의 시대 만해도, 성직서임권 투쟁 따위는 없었다. 그는 성당과 수도원의 재산도 마음껏 빼앗아 봉신들에게 나누어 주고, 주교도 자유롭게 임명했다. 카롤루스 대제가 황제의 대관을 받은 것도 교회가 보호자가 필요해서가 아니던가. 이들이 신앙심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여기서 등장하는 두 개의 도상이 있는 수사본은 투르의 백작 비비앙이 기증한 『비비앙 성서』(846)와 『성 에메람의 황금사본』(870)으로 모두 9세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예전의 표현으로 카롤링거 르네상스 시기의 작품이기도 하다. 이 시기의 왕 카롤루스 2세의 도상에도 하늘에 하느님의 손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이번에는 천개 아래 드리워진 휘장에 막혀 있다. 하느님의 손과 황제는 분리되어 있다. (그렇지 않은 도상도 있다. 유명한 『 독두왕 카롤루스의 시편집 』의 도상에는 좌우로 나뉜 휘장이 하느님의 손을 막지 않는다. 11세기 후반의 것으로 보이는 바이외 태피스트리에는 교회 위에 하느님의 손이 새겨져 있다. 앞의 3-1 참조.) EKa는 이를 그로부터 100년 이후의 오토 왕조와 비교하면서 신학적 변화를 발견했다고 주장한다. 앞의 황제의 왕권 신학은 신중심적이고 신의 대리자이지만, 뒤의 황제는 왕권 신학은 그리스도 중심적인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다. 이 전례적 왕권은 어느 쪽이 강력할까? 아마도 교회와 권위에 대한 투쟁을 벌일 필요가 없었던 신중심적 왕권 신학이 훨씬 더 간명한 것이 아니었을까? 그로부터 100년 후의 라이헤나우 도상과 또 100년 후의 노르만 무명씨의 혼성 인격 및 쌍생 인격은 한 마디로, 왕 또는 황제가 교황 또는 교회의 권위 아래에 있지 않고, 이와 동등하거나, 그리스도 아래에 있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 위에 있다는 주장을 도상학적으로 강변하고, 신민들을 설득할 필요가 생겨서가 아닐까. 오토의 아래에 있는 두 사람의 주교들만 보아도 그렇다.

이 책을 읽고 나서, 가보고 싶은 곳, 들여다보고 싶은 것이 정말 많아졌다.

2025. 9. 6.

* 괄호 안의 숫자는 책의 쪽수이다.
** 이 글의 저작권은 ⓒFELIVIEW.COM에게 있습니다.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FELIVIEW
FELIVIEW
felixwon.lee@gmail.com

Must Read

에른스트 H. 칸토로비치, 『왕의 두 신체』(7-1).

0
튜더 왕가의 가계도. 앞쪽에서는 아담과 이브로부터의 기원과 노아의 방주도 등장한다. 중간에 리처드 3세에서 단절이 있고, 그 아래로 헨리 8세가 이어진다. British Library, Kings MS 395, fols. 32v-33r. Ernst 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