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이외 태피스트리의 장면 26. 참회왕 에드워드의 장례식. 웨드워드 왕이 죽어 성 사도 베드로 대성당(웨스트민스터)에 매장하는 장면이다. 교회 위에 하느님의 손이 보인다. 여러 도상에서 발견하게 될 것. 수녀들에 의해 자수로 만들어진 이 태피스트리는 길이가 70m에 이르며, 정복왕 윌리엄의 승리를 다루고, 그의 잉글랜드 왕위에 대한 요구가 정당함을 묘사한다. 마지막 부분은 보존되어 있지 않은데, 아마도 이 부분에 윌리엄의 대관식이 그려져 있지 않았을까 추정된다. 노르망디 바이외에 있는 이 박물관이 2년간의 개보수에 들어가 당분간 볼 수 없다. 내년 가을부터 1년 간은 마크롱의 호의로 영국박물관에 대여되어 전시될 예정. 영국의 오랜 숙원 중 하나였다.
Ernst H. Kantorowicz, The King’s Two Bodies: A Study in Mediaeval Political Theology,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57, “III. Christ-Centered Kingship, 1. The Norman Anonymous.”
제3장 그리스도 중심 왕권
3장부터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전개되기 시작한다. 그리스도 중심 왕권이라는 제목에서 보이듯,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을 둘러싼 변주일 것. 3장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는데, 1절은 노르만 무명씨에 의한 Tractatus Eboracenses를 다룬다. 문자 그대로의 뜻은 ‘요크의 논고’가 된다. 노르만 무명씨가 요크의 주교가 아닐까 추정하는 이유이기도. 1100년경에 카톨릭 교회에 대한 왕권의 우위를 강력하게 주장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EKa는 아마도 베를린 시절에 MGH에서 원문을, 하인리히 뵈머의 연구를 통해서 이 자료를 접했을 것이다. K2B에서는 1951년 하버드에서 출간된 조지 윌리엄스의 노르만 무명씨의 정체성에 관한 연구를 빈번하게 인용한다(그는 이 연구가 EKa의 세미나에서 출발했다며, 연구과정에서 받은 무수한 도움에 대해 밝히고 있다). 2절은 아헨 복음서의 권두삽화를 다루는 데, 책 표지를 장식하는 그림이기도 하다. EKa는 수사본의 채색장식화를 도상학적으로 해석하는데 뛰어나며, 논리 전개가 흥미롭다. 3절은 영속성의 후광이라는 제목으로, 후광이 둘러진 사례들을 통해 그 성격을 분석한다.
1. 노르만 무명씨
일단 칸토로비치의 논의를 충실하게 따라가 보자. 읽다 보면, 왜 이런 논의를 하고 있지, 왜 이런 이야기를 따라 읽어야 하는지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그럼에도, 결론만 딱 따서 이야기하면 너무 싱거워진다.
EKa는 다시 한번 엘리자베스 시대로부터 시작한다. 1575년 대주교 매튜 파커가 코퍼스 크리스티 칼리지에 증여한 귀중본 안에 현존하는 유일한 사본이 들어 있었다. 1100년경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성직자는 열정적인 반-그레고리오파이자, 정력적인 왕권파 정서를 드러낸다. 아마도, 노르망디 공국의 성직자일 것으로 추정만 되는. “혼성 인격persona mixta, 혼합된 인격” 곧 그 안에 다양한 권능과 층위가 동시에 발생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논의한다.(EKa는 천사적이며 인간적인 수도사와 기사의 혼성태를 고려할 것 권유, 현세의 육체 안에 있으면서 천사적 삶이 모범.) 주교와 왕 같은 종교적-정치적 영역의 혼성 인격이 고려 대상, 혼성태는 단일한 인격 안에 통합된 영적 세속적 권력과 권능의 혼합을 가리킨다. 이중 권능은 주교들이 교회의 군주일 뿐 아니라 왕의 봉신이기도 했던 봉건시대 성직자의 관습적 특징이기도 하다. 샤르트르의 이보의 발의 하에 잉글랜드에서 1107년 정교협약에 의해 교회에 의한 축성과 나란히 주교에 대해 세속 권력을 수여하는 문제가 규정되었고, 잉글랜드의 주교-제후bishop-barons라는 이중 지위가 명확히 정의되었다. 에드워드 1세 치하에서는 더햄 주교이자 궁정백이던 이에 대해 두 개의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선언한다. 왕도 혼성 인격으로 나타나는데, 축성과 도유 시에 일정한 영적 권능이 그에게 귀속되었기 때문이다. 노르만 무명씨가 논고를 저술했을 때, 영적 자질을 부여받은 인격으로서의 왕이라는 개념이 만개해 있었기에, 저자의 논의는 중세의 사제-왕권priest-kingship이라는 이상을 배경으로 해서 보아야 한다. 왕의 두 신체와 혼성 인격에 대한 학설을 어떠한 직접적 관계도 없다. 혼성 인격에 의해 표현되는 이중화는 세속적 권능과 영적 권능을 말하는 것이지만, 중세 초기에 왕의 직무의 성직화로부터 비롯되는 왕의 영적 성격이라는 이념 그 자체에 왕의 비인격적이고 불멸하는 초-신체super-body가 깊게 새겨진 것이 아닐까? 노르만 무명씨는 그리스도와 유사한 왕권의 영적 본질에 대한 가장 견결한 옹호자 중 하나다.(42-45)
엘리자베스 시절에 발견된 문서는 우리를 11세기 말에서 12세기 초로 이끈다. 대륙에서 성직서임권 투쟁이 한참이었던 시기이고, 정복왕 윌리엄이 잉글랜드의 왕이 된 것이 1066년 그의 뒤를 이은 아들 윌리엄 2세 1087년 왕이 되고 대주교 란프랑크 사후에는 캔터베리 대주교령을 두고 안셀무스 등 교회와 대립한다. 1100년에 그 뒤를 이은 헨리도 비슷했다. 정복왕조의 왕권은 생각보다 허약했던 모양이다. 노르만 무명씨는 이름도 쟁쟁한 안셀무스나 교황청 편에 서지 않았던 왕권파였다. 노르만 무명씨 또는 익명저자는 흔히 요크나 다른 지역의 고위 성직자 내지는 주교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성직자였던 그는 왜 왕권파로 나섰을까? 이런 의문에 대한 직접적 해답은 없지만, K2B를 계속 따라가다보면 알게 되는 것이 있다. 이 시대 논쟁에 참여하는 학자의 기본값이 성직자 또는 사제라는 점. 유의미한 정도로 순수한(?) 내지는 세속 학자가 등장하는 것은 르네상스 가까이되어야 하는 것 같다. 아주 없다는 증거는 없지만. 교황파나 교회파는 물론이고 왕권파 또는 황제파라 할지라도 일단 성직자로 공부와 이력을 시작한다. 그러니 학자로 정치적으로 어떤 무리에 속해서 활동하는 지가 그의 이력을 결정한다. 성직자는 일단 기본값이라는 점. 여기서 노르만 무명씨가 직접적으로 왕의 두 신체에 대해 언급하지 않지만, 왕의 이중성과 혼성 인격을 이야기한다. 정치적 신체가 아니다. 노르만 무명씨가 주목하는 것은 영적 권능과 영적인 성격이다. 여기서 초-신체로 넘어가는 길이 열린다고 EKa는 보고 있다.
「주교와 왕의 축성에 관하여De consecration pontificum et regum」가 가장 주목할 만한 논고로, 왕과 주교의 서임도유식 효과에 중심을 두고 있다. “왕 안에서 쌍생 인격twin person을 인정해야 하는데, 하나는 자연으로부터, 다른 하나는 은총으로부터 유래한다. 하나는 다른 인간과 일치하며, 다른 하나는 신화deification의 탁월함과 성사의 권능에 의해 다른 모든 인간을 능가했다. 자연에 의해 개별적 인간이지만, 은총에 의해 그리스도, 곧 신-인이었다.” 튜더 법률가들의 논증과 평행하는데, 주목할 것. 노르만 무명씨와 튜더 법학자들은 모두 왕의 자연적 개별적 신체에 어떤 신비스러운 방법으로 결합한 왕의 초-신체라는 유사한 의제에 도달했다. 무명씨가 언급하고 있는 왕들은 도유받은 자들christi로, 영원성의 도유받은 자 곧, 참으로 왕 같은 그리스도의 강림의 전조였던 구약성서의 도유받은 왕들이다. 그리스도가 육체로 강림하고, 승천하며, 영광의 왕으로 찬미받은 후, 지상의 왕권은 변화하여, 구원의 경륜[경제] 안에 고유한 기능을 부여받았는데, 새 언약의 왕들은 더 이상 그리스도의 전조가 아니라 그림자들이며 그리스도의 모방자들로 등장한다. 그리스도교도인 지배자는 그리스도 모방자, 곧 지상의 무대에서 두 본성을 가진 신의 살아있는 형상을 공연하는 자가 된다. 그리스도는 그의 자연[본성] 자체를 따라 왕(K)이자 도유받은 자Christus임에 반해, 지상에서 그의 대리인은 은총에 의해서만 왕(k)이자 도유받은 자christus이다. 왕은 은총에 의해서 짧은 기간 동안 “신화된 것defied”이 되는 반면, 천상의 왕(K)은 영원히 자연[본성]에 의해 신이다. 자연과 은총의 대립관계는 실제 축성되고 도유받은 왕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초기 그리스도교의 일반적 인간들의 “신화[신이 되는 것]”을 위한 수단으로 형성되었다. 무명씨는 은총에 의한 신화를 왕에게 도유와 축성의 의례행위로부터 발출되는 것으로 적용, 대립관계를 신화의 탁월함이 왕에게 그것으로 다른 모든 사람들을 능가하는 “다른 인간”이 되는 은총의 신체를 제공하였음을 지적하는 데 사용했다. 대립관계는 신과 왕을 구별하는 경계선을 흐릿하게 하기도, “자연[본성]에 의한 신God”과 “은총에 의한 신god”의 차이가 끝나는 곳을 보여주고, 포테스타스, 즉 권력을 보여주는 데도 도움이 되었다. 권력의 본질과 실체는 신God과 왕king 양자 모두에 동등하다. 왕의 권력은 그리스도의 권력과 동일하기에, 권력에 관련해서도 완벽한 그리스도 모방자이다. 자연에 의해서 신God이자 도유받은 자인 일자One는 자신의 왕인 대리자를 통해 행위하는데, 그는 은총에 의해 신God이자 그리스도Christ이며, 직무에 있어 그리스도와 신의 형상과 모양인in officio figura et imago Christi et Dei est이라고 저자는 덧붙였다. 왕은 직무에 있어 하늘의 도유받은 자the Anointed의, 따라서 신God의 모양이자 형상이다.(46-48)
자연과 은총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가리키는 것이다. 노르만 무명씨는 좀더 나가는데, EKa의 인용에 의하면 그는 반복해서 신화deification와 아포테오시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이걸 뭐라고 해야할까. 어느 시점 이후로는 서방교회에서는 거의 사용하지 않던, 교리이다. 하지만, 동방교회에서는 신자의 신화라는 교리가 있었다. 가파도키아의 세 교부와 관련된. 물론 여기서는 일반 신자의 이야기가 아니고, 왕과 주교에 대한 이야기기는 하지만. 아마도 신화라는 표현을 쓸 때, 상당히 조심스럽지 않았을까? 하지만, 신화와 신-인[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논의를 통해 튜더 법률가들과 접점이 마련된다. 은총에 의해서 지상에서 도유받은 짧은 시간 동안 신화된 왕(k). 그리고 그는 이를 전례와 연결시킨다. 도유와 축성으로부터 발출되는. 대관 전례에서 행해지는 성사들이, 실체적인 효력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 모방자이며, 신의 모양과 형상인 왕. 이쯤 되면, 왕권신수설 따위는 저리 물러가라 해도 좋을 현세의 신으로서의 왕의 모습이다. 어쩐지 마르크 블로흐의 『기적을 행하는 왕』이 연상되는.
자연과 은총이라는 양극성과 잠재적인 단일성, 둘 모두에 대한 이러한 고찰은 “쌍생twinned” 존재로서의 그리스도를 체현하는 왕이라는 개념으로 이끌렸다. 은총으로 도유받은 그는 쌍생인격gemina persona으로서 두 본성을 지닌 그리스도와 평행한다. 왕은 인간적이고 신적인 쌍생의 존재로서 신-인과 꼭 닮았으나, 그럼에도 왕은 두 본성을 가졌고 은총에 의해서만 시간 안에서만 쌍생이며, 자연[본성]에 의해서 또 영원성 안에서는 그렇지 않다. 지상의 왕은 도유와 축성을 통해서 쌍생 인격성이 되는 것. 정통 교리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한 인격una persona에 두 본성duae naturae을 가졌기에 쌍생 인격은 회피되어야 하는 표현이지만, 쌍생성twinship의 형상이 히스파니아 초기 교회회의서 빈번하게 발견된다. 교회회의는 쌍생의 본성을 강조하고, 쌍생의 인격은 아니라고 하지만, 쌍생의 실체gemina substantia라는 표현으로 옮겨갔다. 그는 자기자신보다 더 크기도 하고 동시에 자기자신보다 더 작기도 하다고 믿어야 한다(Item et maior et minor se ipse esse credendus est). 쌍생 의지twin will이라는 표현도 등장한다. 쌍생 실체의 거인gigas geminae substantiae라는 말이 그리스도가 육화하기 전에 쌍생의 존재geminatus였다는 주장을 논박하기 위해 12세기 그리스도론 저술에서 등장한다.(49-50)
쌍생 존재이자 그리스도를 체현하는 왕은 그리스도의 두 본성을 따라서, 은총에 의해서만 쌍생 인격을 구축하게 된다. 앞에서도 등장했던 그리스도론의 논의를 활용한다. 교리를 다루는 신학을 교의신학이라고 하는데, 흔히 조직신학이라는 명칭도 사용된다. 성부, 성자, 성령, 인간, 죄, 구원 등을 다루는 신학적 분과를 통합해서 가리키는 말이며, 그 중에 K2B에서 빈번하게 등장하는 그리스도론과 교회론이 있다. 그리스도론의 핵심이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논하는 것. 하지만 쌍생이라는 또는 쌍둥이라는 표현이 성서나 신학에서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여기서 EKa가 말하는 7-8세기 히스파니아 교회회의 문헌들은 교리가 충분히 정리되기 이전의 것들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훗날 정통교리로 남느냐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렇게 인식하고, 통용되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으로 충분하니까. 쌍생의 실체의 거인이라는 인용구가 근거하는 시편 구절도 이제는 용사라고 번역하고 있다. 하여간 이런 걸 인용하는 주는 왜 그렇게 길고 복잡하게 쓰셨던 건지. 네네 하면서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게 만드는. 신기하게도 이런 논의나 도상에 활용된 성경 구절 중에 15세기 이후 고대사본의 발견으로 본문이 수정된 경우들이 있다. EKa가 이런 걸 몇 개 인용한다. 이런 논의는 교리적으로 12세기에 정리된 것이고, EKa는 12세기 이전의 논의, 네스토리우스파의 영향이 보이는 논의들을 활용해서 이런 주장을 전개한다. 그러나 이런 사실 역시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 시기에 EKa가 주장하는 논의가 얼마나 통용되었느냐는 것 뿐이다. 그리고 EKa는 이를 도상으로 입증한다. 이 시기에도 그 이후에도 거인으로 그려진 왕과 황제와 그리스도의 도상이 얼마나 많은가.
히스파니아 교회회의의 결의는 위-이시도르 교령집Pseudo-Isidorian Decretals의 항목을 구성하고 있고, 노르만 무명씨는 이를 인용했으며, 왕은 자신의 왕국에서 황제이다[rex est imperator in regno suo]라는 주장이 아직 정식화되지 않았던 서고트의 왕들이 교회회를 주재했음을 입증하려 했다. 그는 톨레도 교회회의의 왕권의 쌍생성이라는 은유도 역으로 차용했을 것으로 보이지만, 기묘하게도 그리스도론적으로 보아 네스토리우스주의와 양자론의 풍미를 가지고 있는 쌍생 인격gemina persona이라는 표현 단 하나만을 그리스도 중심적 왕권학설로 이전해 왔다. 신(G)으로 있는 것과는 반대로 신(g)이 되는 것, 즉 신화deificatio라는 자명한 이치는 1100년경 왕의 그리스도론 안에 네스토리우스주의와 양자론의 정식화된 교의와 친화성을 가져왔다.(51-52)
EKa가 이런 식으로 연결고리를 분명하게 드러내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것이 이전 시대 학자들의 방식인 듯해서 답답하기 그지없는데. 여기서 드물게 분명히 드러낸다. 노르만 무명씨가 그리스도 중심적 왕권에 대한 학설에 도입한 것은 쌍생 인격gemina persona이라는 표현 단 하나다. 이는 신이 되는 것, 네스토리우스주의 등과도 관련이 있다. 이 둘 모두 후대 교리에서 모습을 감추는 내용들.
무명씨는 왕의 두 인격을 교묘하게 양립시키기를 좋아하고, 같은 방식으로 예수 그리스도(C)와 예수 그리스도(c), 곧 영원으로부터 도유받은 자와 지상에서 그의 사역 중 요단 강에서 도유받은 자라는 두 개의 형상을 끓이지 않고, 서로 대결시킨다. 저자는 이 이분법을 이교 고대로까지 가져가서 하늘에서 높여진 왕이 된 그리스도Christus regnaturus를 미리 형상화하는, 구약성서의 도유받은[그리스도가 된] 왕들reges christi이, 어떤 의미로는 승천Ascention 이전의 나사렛의 비천한 그리스도 보다 왕들로서는 우월하다고 간주되어야 할 것이라고 암시했다. 이는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와 육화된 하느님 곧 예수 그리스도 사이의 유사한 관계성으로 확인된다. 세금[으로 바치는 돈]을 납부할 때 티베리우스에게 굴복하는 것인 인자 예수이다. 무명씨는 티베리우스 황제 안에서 또 다른 쌍생인격gemina persona을 창출한다. 그는 정당한 권력이자 선한 카이사르와 부정한 티베리우스를 구별한다. 이때 카이사르는 신적인 권력이 되며, 그리스도는 그의 인성을 따라 연약하다. 지나치게 공들인 원칙이기는 하나 권력의 고양과 수난의 복종은 교회의 가르침과 일치한다. 훈족의 아틸라를 주의 이름으로 오는 이라 축복하며(그 안에 있는 신의 대권을 숭배), 성문을 열었다가 살해당한 주교의 전설도 있다. 이는 수동적 복종의 극단적 사례이자, 권력은 하느님으로부터 제정된 것이라고 사도가 권고한 정신에 따른 권력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굴종의 극단적 사례이다. 노르만 무명씨가 인간 티베리우스 안에 명시된 카이사르의 신성을 신-인 예수의 인간격보다 우위에 두었을 때, 그는 권력 그 자체의 신성을 같은 극단으로 관철시킨 것이다. 지배자가 그리스도교도인지 상관하지 않고, 지배권 일반의 쌍생성이라는 고정관념에서 출발한다. 그는 신과 왕의 이중의 인격성을 자신의 교묘한 체계 속으로 통합하고, 솜씨있게 쌍생geminatio을 자신의 모든 논증의 원동력으로 만든다. 티베리우스의 이중의 인격성을 다른 쌍생 인격 예수 그리스도[신성을 따라서는 독자, 인성을 따라서는 장자]에 대립하는 제국의 쌍생 인격에 관련된 것이다.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기묘한 교차대구법이다. 카이사르인 한에서 후광에 둘러싸인 티베리우스, 인간으로 부정한 티베리우스, 인간으로 농노인 그리스도, 육화되어 숨어있는 신으로 인간인 채 후광에 둘러싸인 그.(52-55)
앞에서도 잠깐 나오지만, 여기서 왕은 세 종류가 있다. 먼저, 그리스도에 앞서서 그리스도의 예표가 되는 왕들, 이 왕들은 구약성경에 나오는 왕들이다. 사울, 다윗, 솔로몬이 있고, 그 후손인 왕들이 있으며, 그에 앞서 왕이라는 명칭은 쓰지 않았지만, 사실상 왕이었던, 모세와 아브라함이 있다. 그 사이의 판관[사사]들도 있고, 아주 앞에는 살렘 왕 멜기세덱,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평화의 나라의 왕 정의의 왕이라는 뜻. 그 이후에 그리스도가 왕으로서 등장하며, 그 다음에 현세의 그러니까 중세 곳곳의 왕들과 황제들이 있다. 그런데 노르만 무명씨는 여기서 논의를 신기하게 변형시킨다. 우선, 그리스도의 승천 이전, 그러니까 그리스도가 하늘 보좌에 올라 왕으로 통치하기 전에는, 그의 앞에서 도유받았던 지상의 왕들, 그리스도의 예표가 되었던 왕들이 그보다 높을 수 있다는 해석이다. 뭐 그 이후의 왕들은 당연히 그리스도의 모방자이니까. 일단 이런 해석이 신학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 그리스도가 육화하기 전, 즉 세상에 오기 전에는 그럼 왕보다 낮은 존재냐는 문제가 생기는데, 그 이전에서 완전한 신성을 가진 신[하느님]이기 때문. 하여튼 이런 문제는 덮어두면, 그럼 여기서 등장하는 티베리우스 문제가 등장하게 된다. 티베리우스가 세금을 받아갔으니, 아직 승천하기 전의 예수보다 높았다는 주장. 예수는 총독 빌라도에 의하긴 했으나 티베리우스의 명령으로 죽은 셈이다. EKa가 여기서 직접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 세금 문제야말로 성직 서임권 분쟁의 핵심이 아니던가? 제후를 겸하는 주교에 대한 임명권이 교황에게 있다면, 충성은 어디에 바치며 세금은 누구에게 내겠는가? 이때는 특별한 일이 있을 때만 세금을 냈고. 특히 제후의 세금 중 가장 중요한 것은 군대의 동원인데. 주교가 이끄는 군대 문제가 엄청 중요했다. 정복왕 윌리엄의 이복동생인 바이외의 주교 오도를, 후일 잉글랜드의 켄트 백작이 된, 생각해 보면 아주 분명해진다. 그러니까 노르만 무명씨는 티베리우스가 인간 예수보다 높았고, 예수도 그에게 세금 내는 것을 거부하지 않았느니, 노르만 왕들의 성직서임권을 거부하지 말라는 주장이 아니겠는가? 그러면서 권력자에게 무조건 복종하는 그리스도교의 굴종 사례를 슬쩍 끼워넣는다. EKa는 정말이지.
주교도 또한 쌍생 인격이므로, 이러한 점에서 왕과 주교는 차이가 없다. 품계가 다를 뿐. 왕 그리스도와 사제 그리스도를 구별하며, 사제는 열등한 직무와 본성, 그리스도의 인성의 예표이고, 왕은 우월하므로, 신성의 예표로 행동한다. 그는 인격-분할 방법을 온갖 존재, 인격, 제도에 박아 넣기 때문에, 캔터베리와 요크 사이의 주교좌의 수위권을 둘러싼 논쟁도, 대주교와 인간, 직무와 인간, 대주교좌와 벽돌을 대조하며, 무형의 하늘에 유형의 창공을 대조한다. 비슷한 방식으로 로마 교황의 단일성을 산산조각 내고, 교황의 인격에 교황의 직무를 대조하며, 유비로 말하면 교황의 “자연적 신체”에 교황의 “정치적 신체”를 대조하는 것이다. 이 경우 죄인일 수도 있는 교황을 위해 “인간 이하”의 층위를 덧붙여 두었다.(55-57)
인용하는 논문 제목이 주교인 만큼, 주교에 대해서도 쌍생 인격이 도입된다. 왕과 제사장이라는 그리스도의 두 가지 직무를 따라 나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삼중의 직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 선지자 즉, 예언자는 한 번도 언급이 안된 듯하다. 칼뱅이 중시해서 그런가. 그런데, 여기서 EKa가 흥미로운 논법을 전개한다. 쌍생 인격, 혼성 인격이 주교와 교황에게 적용되면, 이때는 오히려 로마 교황의 통일성[단일성]이 깨지는 것이라고. 왕은 쌍생 인격을 통해서 권위를 강화해야 했지만, 교황은 그 반대였다는 것인가? 하지만, 교황권이 강력해진 것도 역사적으로 얼마되지 않았는데. 사실 세속 군주들의 권한 강화와 교황의 권한 강화는 비슷하게 시기가 겹친다. 양자가 모두 10세기 말에서 11세기와 12세기이며, 같은 시기에 권한이 강화되다 보니 서로 충돌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런 권한 강화의 배경에는 보통 기술의 변화, 교통통신의 발달, 농업 생산성의 변화 같은 것이 깔려있지 않은가? 이런 생각을 하는 나는 어쩔 수 없는 유물론자인가. 여튼 교황권에 균열을 가져오는 논리라는 점을 슬쩍 언급하지만, 굳이 이를 깊이 논의하지 않는다.
11세기에서 12세기로 넘어가는 시기의 변증론적 방법의 영향을 명료하게 드러냈던 노르만 무명씨의 정치이론의 기저에 있는 중요한 문제와, 수많은 쌍생성들의 의의는 무엇인가? 직무와 인격 사이의 구별은 놀라운 것도 새로운 것도 아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나 위-이시도르 교령집의 653년 서고트의 레케스윈트 왕의 법률에서도 인격이 아니라 권력이라하며, 실바 칸디다의 추기경 훔베르토도 교황은 직무에 의해 베드로와 같다고 썼다. 차이는 그의 이론을 구성하는 기초인 신학인데, 왕의 인격의 이중화는 그리스도의 본성들의 이중화를 반영한다. 왕은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구현자이기 때문에, 그도 또한 이중화에 상응해야 하며, 그리스도의 왕권과 제사장직은 그의 대리자들 안에서도 혼성 인격인 동시에 쌍생 인격으로 왕과 주교 안에 반영되어야 한다. 그의 이론은 그리스도론적이고, 그리스도 중심적이다. 아마도 직접적으로 샤르트르의 이보의 영향일 듯. 무명씨는 통일체를 분할하는 방법을 그리스도의 두 본성에 적용하고,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모상인 왕에게로 옮겼다. 왕 안에 존재하는 자연적이고 개별적인 형태와 축성되고 신화된, 아포테오시스화된 형태로 시각화한다. 왕의 쌍생 인격이라는 노르만 저자의 시각은 존재론적이고, 제단에서 수행되는 성사적 전례적 행위의 발출이라는 점에서 전례적이다. 그의 시각은 전례에 그 자체로 형상이자 동시에 현실인 거룩한 행위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다만, 그의 철학은 다가오는 시대의 것이 아니라 과거에 속한 선행한 시대에 통용되던 이상들을 과장하고 약간 왜곡하기도 한 일종의 거울로만 사용되어야 하며, 도상학적 증거가 이를 입증할 것이다.(57-60)
이, 마지막 부분이 노르만 무명씨에 대한 논의 전체에 대한 요약이라고 보아야 할 듯하다. 노르만 무명씨의 그리스도론을 따라 인격을 이중화하고, 쌍생과 혼성 인격으로 왕을 그리고 주교와 교황을 설명하는 것은 왕권에 신성을 부여하는 행위이고. 그것은 바로 전례가된 대관식이다. 단순한 의식이 아닌 성사로서 여기서 전례적 행위에서 발출이 이루어진다고 말하는데. 물론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신학에서 발출이라는 말을 쓸 때, 그것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성령이 발출된다고 할 때, 사용하는 말이 아니던가? 꼭 그때만 쓰는 것은 아니지만. 1절을 마무리하면서, EKa는 이 논의가 이후 시대로 사상적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성직서임권 논쟁의 교황파들은 당연히 이와 반대되는 주장을 펼쳤고, 새롭게 등장하는 영토 중심의 세속국가들은 세속법에 지배자의 거룩성을 두려고 한다.(60) 어쩌면 노르만 무명씨의 논의는 양쪽 모두에서 배척된 논리지만, 그러나 EKa는 그런 논의가 지나간 시대를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말한다.
이제 그의 장기인 도상 해석을 통해 논의가 전개될 것이다. 파노프스키와 가까웠던 건 우연이 아니다.
2025. 9. 4.
*
괄호
안의 숫자는 책의 쪽수이다.
** 이 글의 저작권은 ⓒFELIVIEW.COM에게 있습니다.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