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윌튼 두 폭 제단화(이연판)Wilton Diptych. 1395-99년경에 만들어진 휴대용 제단화로, 오른쪽에는 천군천사들에게 둘러싸인 아기 예수와 성모 마리아가 왼쪽에 무릎 꿇은 봉헌자 리처드 2세를 축복하는 도상이다. 오른편에 있는 성 조지의 십자가 그려진 깃발은 잉글랜드를 뜻하며, 왼쪽의 셋은 잉글랜드의 순교왕 에드먼드, 참회왕 에드워드, 어린양을 손에 안은 세례자 요한이며, 이들이 어린 리처드 2세를 그리스도에게 소개하는 모습이며, 이때 리처드 2세는 대관식 복장이다. 이는 마치 세례자 요한이 아기 예수를 소개하는 장면의 변형 같은 느낌으로, 리처드 2세가 신의 자리를 차지한 신적 권위가 주어져 있음을 보여준다. 세례자 요한이 예수를 소개할 때는 통상, 아기 요한이 또래로 보이는 아기 예수를 소개하는데, 여기서는 성인 요한이 어린 리처드 2세를 성모자에게 소개하는 모습이다. 천사들의 가슴에 리처드 2세를 상징하는 수사슴이 달려있다. 접었을 때, 표지 역할을 하는 뒷면에도 수사슴이 그려져 있다. 내셔널 갤러리, 런던.
Ernst H. Kantorowicz, The Kings Two Bodies: A Study in Mediaeval Political Theology,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57, “II, The Shakespeare: King Richard II.”
제2장 셰익스피어: 왕 리처드 2세
일단 제목부터, 셰익스피어의 이 희곡의 원래 제목은 The Tragedy of King Richard II 즉, 그대로 옮기면 「왕 리처드 2세의 비극」이 되지만, 흔히 「리처드 2세」로 옮긴다. 국왕 리처드라는 익숙한 이름 대신에 왜, 왕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은가? 우선 왕이라는 명칭의 보편성과 포괄성 때문이며, 영토국가가 수립되기 이전의 일들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K2B가 다루는 이 시기의 왕들과 황제들은 어떠한 왕관 혹은 제관의 소유자 또는 담지자가 되었는가? 어떤 칭호를 보유하고 있는가에 따라서 그 권한과 범위가 달라진다. 노르만 공 윌리엄이 잉글랜드의 왕이 된 후에, 형식적으로 잉글랜드의 왕은 프랑스 왕의 봉신이지만, 노르망디 공작과 앙주 백을 겸하고 아키텐 여공작과 결혼한 잉글랜드의 왕이 확보하고 있는 영지와 충성 그리고 군사력이 훨씬 더 크다. 프랑스의 왕위 곧, 프랑스 왕관에 대한 권리를 두고 벌어지는 다툼이 백년전쟁이다. 당시 프랑스의 왕은 파리 근교의 일드프랑스 지역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할 뿐이었다. 누가 어떤 왕인지에 따라서 프랑스 왕관이 미치는 범위는 변화한다. 게다가 동아시아에서처럼 황제는 반드시 왕 위에 있고, 왕들을 관할하는 그러한 구조가 아니다. 여기서 왕의 말도, ‘짐’으로 새기는 이유다. 왕도 황제도 자신의 힘과 기량 그리고 상황에 따라 언제든 우위에 또 아래에 설 수 있다. 어떤 왕에게 황제는 아무런 의미가 없기도 하다. 동아시아는 왕조가 변화하면, 국명이 바뀐다. 한 글자든 두 글자이든 상관없이, 그러나 여기서 다루는 유럽은 왕조가 바뀌고, 심지어 민족이 바뀌어도, 왕관의 이름은, 곧 나라의 이름은 계속 유지된다, 그저 왕가가 왕조가 변화할 뿐이다. 이름이 바뀌어도 잉글랜드인들의 왕이 잉글랜드의 왕으로 바뀌는 정도. 이런 배경이 인식 상의 큰 차이를 가져온다. 이를 늘 염두에 두면서 읽어야 한다. 동아시아 배경을 가지고, 영토국가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늘 시기와 지도를 들여다보지 않으면, 봉건제와 이들의 관계를 이해하지 않으면, 판도와 권력을 알기 어렵다. 나는 국왕이라는 손쉬운 표현이 오해를 사기 쉽다고 생각한다. 특히 한국어가 한자병기를 포기한 후, 기본적으로 통용되는 명사가 대부분 2음절 또는 그 이상으로 구성되기 시작한 후에는 더더욱 익숙해진 이러한 표현에 약간의 신중함이 필요하다. 왕이라는 단음절 명사는 때론 어울리지 않는 듯하지만, 그럼에도 여기서는 ‘왕’을 고수하려 한다. 다소 어색한 표현들, 입안에서 걸리는 말들이, 인식의 거리감을 유지하게 도와줄 것이다.
K2B에 실린 여러 글 중에서도, 가장 많이 주목받은 글이 셰익스피어의 「리처드 2세」를 논한 장일 듯하다. 셰익스피어 사극의 정치적 의미를 논의하는 어떤 논문에서도, 에른스트 칸토로비치의 『왕의 두 신체』에 대한 논의가 빠지지 않는다. 놀라울 정도. 「리처드 2세」에 대한 해제나 설명을 보면, 그 이야기 안에 자세한 인용구 없이, EKa의 논의가 녹아있는 것을 보게 된다. 정말 많은 분야의 글에서 인용되고 있었다.
리처드 2세는 플랜태저넷 왕조의 마지막 왕이다. 물론 뒤이은 랭커스터와 요크도 넓게 보아 플랜태저넷에 속하기는 하지만. 노르만 왕조는 1066년 정복왕 윌리엄이 잉글랜드인의 왕이 되면서 수립된다. 4대를 걸쳐 60여년 지속되던 왕조는 1133년 헨리 2세에 의해 플랜태저넷 왕가가 수립되면서 끝이 난다. 플랜태저넷의 왕은 모두 9명이며, 기간은 260여년간, 그 마지막이 이 연극의 주인공 리처드 2세로 그는 10세인 1377년에 왕위에 올라 1399년까지 재위한다. 그는 선왕인 에드워드 3세의 손자이자 곤트의 존의 아들, 그러므로 자신의 4촌인 불링브루크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그로부터 플랜태저넷의 방계인 랭커스터 왕가가 열려 헨리 4세, 5세, 6세로 60년 정도 이어지며, 1461년 삼종제 에드워드 4세에게 왕위를 빼앗겨 여기서부터 요크 왕가가 3대를 이어간다. 에드워드 5세, 리처드 3세로 이어진 요크 왕가는 24년으로 짧았고, 1485년 헨리 7세에 의해 튜더 왕조가 수립된다. 헨리 8세와 에드워드 6세를 이어 메리를 지나 엘리자베스 1세(1558-1603, 110여년)까지가 튜더 왕조이고, 뒤이어 제임스 1세와 찰스 1세로 이어지는 스튜어트 왕조가 시작된다. 이 희곡은 리처드가 자신의 4촌인 불링브루크에게 왕위를 빼앗기는 그 순간의 이야기다. 이 희곡이 쓰여진 시기는 튜더 왕조가 끝나가던 엘리자베스 여왕의 시대였고, 여왕에게 반기를 든 에식스 백작 데버루에 의해 수십차례는 물론 실패한 반란 전야에까지 공연되었으며, 여왕이 자조적으로 스스로를 리처드 2세라 칭하기도 했는데, 제1장 말미에 묘사된 찰스 1세의 처형을 보여주는 정치극으로 인식되어 공연이 금지되기도 했던, 태생으로부터의 정치극이다. 찰스 1세가 쓴 것으로 알려진 시에는 이 불행한 왕이 왕의 두 신체를 암시하는 구절이 있다.(40-41) 1399년 리처드 2세의 이야기를 1600년을 전후한 엘리자베스 시대에 정치극화하고, 그 다음 세기에도 금지되었다는 사실, 의식적으로라도 연대를 머리 속에 넣으면 내용이 좀 더 다가온다. 1398년과 1400년 두 차례 왕자의 난을 거쳐, 1400년에 방원이 즉위하여 태종이 되었다. 시기가 아주 놀랍게 겹친다. 엘리자베스 여왕의 재위기는 선조와 겹치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으로 고통스럽던 시절이기도 했다. 동양과 서양은 또 그렇게 조응한다.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하나 더. 이 장은 반드시 셰익스피어의 작품 「리처드 2세」를 손에 쥐고 읽어야 한다. 약간씩 언급되는 「헨리 5세」와 각주에 등장하는 「존 왕」도 있으면 좋겠지. 그럼 「리처드 2세」 번역본은 뭐가 좋을까? 일단 무엇이든 있는 것으로 하는게 좋겠지만, 4대 비극도 아니고 없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일단 시중에 나온 한국어 번역본은 모두 살펴보았다. 그 결과 우선, 운문이 아닌 것은 건너뛰고, 행 표시가 안된 것도 건너뛰어야 한다. 여러 명이 모여서 한 작품 씩 번역한 시리즈도 곤란하다. 통일성이 없어서. 이것저것 들춰 보았더니 뜻밖에도 셰익스피어를 전공한 영문학 전공 교수가 아닌, 문화운동가이자 시인인 김정환의 번역(아침이슬)이 적어도 K2B를 읽기에는 가장 좋았다. 우리말로도 좋았지만, 또 셰익스피어의 글을 느끼기에도 좋았다. 전체를 가능한 한 줄을 맞추어서 번역한 것은 김정환의 것뿐이었다. 단어의 수까지 비교적 비슷했다. 그 다음으로는 열린책들에서 나온 박우수의 번역이었다. 공교롭게도 둘 다 유학파가 아니었던. 유려하게 미사여구가 들어간 번역이야 얼마든지 있지만, 칸토로비치의 분석을 따라가면서 읽기에는 적절하지 않았달까. 어떤 것은 행 번호는 붙어있지만 숫자는 제멋대로 이기도 했다. 이런 번호를 붙이는 것은 원문에 맞춘다는 것인데. 다만 불링브루크 라는 이름은 박우수를 따랐다. The Oxford Dictionary of Original Shakespearean Pronunciation이라는 책이 있다더라. 나머지는 내가 전문가가 아니므로 논평 생략. 안타깝게도 두드러진 오역이 하나 있는데. 본문에 인용된 3막 3장 190행의 ‘Fair cousin'(33)을 ‘공명정대한 나의 사촌’으로 번역한 것(김정환 역, 『리처드 2세』, 103). 준수한 사촌 내지는 고운[곱상한], 멋진 사촌 정도로 옮겨야 한다. 프랑스의 왕 필리프 4세의 별명이 Philip the Fair인데, 프랑스어로는 Philippe le Bel, 예전에는 공정왕 필립이라고 잘못 옮겼지만, 요즘은 알기 쉽게 미남왕 필리프라고 한다. 좀 어려운 한자어로 단려(端麗)왕이라고도. 그냥 잘생겼다는 말이다. 덧붙여서 셰익스피어의 사극이라고 해서, 역사적으로 모두 정확한 것은 아니다. 「리처드 2세」는 대략 2년 정도의 긴 기간에 벌어진 일을 14일 동안으로 옮겨두었고, 극적인 인물조형과 전개를 위해 생략하거나 변형한 부분도 적지 않다. 이런 부분은 박우수의 역자 해설이 도움이 된다.
EKa의 셰익스피어에 대한 해석은 리처드 2세로 곧바로 가지 않고, 헨리 5세에게로 향한다. 그는 리처드 2세에게서 왕위를 빼앗아 헨리 4세가 되는 불링브루크의 아들이다. 흥미롭게도 EKa는 “위대함과 쌍둥이로 태어나(TWIN-BORN with greatness)”로 시작되는 한 구절을 인용한다. 위대함 말하자면 신격과 인간격을 모두 가진 쌍생인 왕. 셰익스피어는 왕의 두 신체가 아닌 “왕의 쌍생화”를 말한다. 셰익스피어가 “왕의 두 신체”를 몰랐던 것은 아니고, 1603년 프란시스 베이컨은 제임스 1세에 의한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동군연합을 정치적일 뿐 아니라 자연적인 신체들의 완벽한 결합의 표현으로 대 브리튼이라는 명칭을 제안했다. 셰익스피어는 플라우던도 잘알고 있었지만, 왕의 쌍생적 성격twin nature에 대한 시각은 순수하게 인간적인 층위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국헌[국체]의 토대에 의존하지 않는다. 모든 삶의 유형을 따라, 어떤 인간 속에서도 활동하는 다양한 평면들을 드러내 보이거나, 서로 대립하도록 장난치거나, 혼란스럽게 만들거나, 평형을 유지하게 하는 것이 그의 예술의 본질이었다. 왕의 그리고 일반적 인간의 쌍생적 성격twinned nature에 대한 심상은 셰익스피어의 고유하고 적합한 시각이다. 셰익스피어 풍의 헨리 5세가 왕의 이중적 신분을 탄식하고 있을 때, 즉각적으로 그 형상을 리처드 2세에 결부시키고 있다. “오늘은 제발, 오 주님, 오 오늘은 제발, 생각지 말아 주소서 제 아비가 왕관을 빼앗으면서 저질렀던 잘못을. 제가 리처드의 시신을 새로 묻었고, 그 위에 흘린 뉘우침의 눈물은 더 많습니다. 그 몸에서 강제로 쏟아진 핏방울 보다 더.”(「헨리 5세」, 4막 1장, 312행 이하) 헨리5세가 자신과 왕국의 운명을 건 아쟁쿠르 전투를 눈앞에 두고, 자신의 아비가 왕관을 빼앗은 잘못에 대해 용서를 비는 모습은, 잉글랜드의 왕으로 대관을 받는 리처드 2세의 모습이 하느님으로부터 직접 인정받은 왕이자 일종의 신의 원형으로 드러나는 윌튼 두 폭 제단화Wilton Diptych를 연상시킨다.(24-26)
셰익스피어가 「리처드 2세」를 통해서 “왕의 두 신체”를 직접 보여주지는 않는다. 그는 왕의 이중화와 쌍생적 성격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왕의 두 신체가 물론 이중화이긴 하지만, 변주되는 방식이 다르다. 이처럼 EKa는 K2B 전체에서 “왕의 두 신체”가 되는 것만 꼭 꼬집어서 계보를 정리하는 것이 아니다. 유사하게 이런 상상력을 주고받은 것으로 보이는 비유나 논의들을 총 망라한다. 그런데 헨리 5세가 아버지의 죄를 빌다니, 어떻게 보면 조금은 뜬금없는 느낌이다. 리처드의 정통성을 논하는 셰익스피어라니. 셰익스피어와 왕권신수설은 거리가 가장 멀어보이는데. 정통 왕권에 대한 옹호사상이라니 갑작스레 『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촉한정통론을 엿본 느낌이다. 물론 셰익스피어가 살던 시대의 튜더 왕조의 정통성을 찬양하는 튜더 신화가 있었다고는 하지만, 이는 튜더 왕조의 시작인 헨리 7세의 조상이 랭커스터 왕가라는 점을 상기하면 일종의 랭커스터 정통론이 아니던가. 헨리 5세도 랭커스터인데, 왜 플랜태저넷의 마지막 왕 앞에 무릎꿇는 모습으로 그렸을까. 리처드 2세는 실상 오만하고, 무능하며, 무모한 왕으로 알려졌는데. 물론 윌튼 두 폭 제단화 만큼 상징적으로 리처드 2세의 왕권을 보여주는, 그의 신적 지위와 성격을 보여주는 것도 드물지만. 그렇지 않고서는 그의 신적 본성을 보여줄 방법이 없었던 것일까? 흥미롭게도 이 도입부분은 「헨리 5세」라는 다른 희곡에서의 인용이다. 준거점을 빌려온 느낌이랄까.
EKa는 근대 국헌[국체]사상에서는 거의 완전하게 사라져버린 [왕의 두 신체라는] 진기한 심상이 오늘날에도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셰익스피어 덕분이라 단언한다. 그는 이 은유를 영원하게 만들었고, 그의 가장 위대한 희곡 중 하나의 실체와 본질로 만들었다. 바로 「리처드 2세」.(26) 하지만 그는 왕의 두 신체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는다. 대신에 그는 중요한 세 장면에서의 이중화를 통해서 이를 나타낸다. 리처드에게 있는 이중화는 모두가 하나이면서, 모두가 동시에 활동하는 이중화는, “이렇게 난 한 인격으로 많은 사람 노릇을 해보았고[이처럼 나는 혼자서 여러 역을 하는데](5막 5장 31행),” 왕King, 바보Fool, 신God에 잠재적으로 현존하는 이중화이며, 거울 속에서 용해되는데, 이들 쌍생twin-born의 세 원형들은 지속적으로 서로 교차하고, 겹쳐지며, 간섭한다. 웨일즈 해안 장면을 왕(3막 2장)이, 플린트 성 장면을 바보(3막 3장)가, 웨스트민스터 장면을 신(4막 1장)이 각각 지배하는데, 인간의 비참함이 모든 장면에서 영속적인 대립항으로 있다. 이 세 장면에서 동일하게 신적 왕권에서 왕권의 이름으로 다시 인간의 적나라한 비참함으로 폭포수처럼 하강하는 것과 만나게 된다.(27) 왕의 두 신체의 자연적 신체와 정치적 신체의 정식과는 한참 멀어 보이는 왕/바보/신에 대한 대립항으로 등장하는 비참한 인간이라는 세 가지 이중화로 표현되는 셰익스피어의 은유. 어쩌면 자연적 신체에 해당하는 비참한 인간의 모습은 한편에 존재하고, 정치적 신체에 해당할 수도 있는 왕, 바보, 신을 통해서 리처드의 몰락을 차례로 설명해 낸다. 논의를 따라가다보면 놀라게 된다. 셰익스피어가 놀라운 것인지 아니면 칸토로비치가 놀라운 것인지, 아니면 둘 다.
우선, 웨일즈 해안 장면(3막 3장). 셰익스피어가 상세히 설명한 것은 신 같기도 하고, 천사 같기도 한 왕의 정치적 신체의 지울 수 없는 인호indelible character[성사가 남긴 지울 수 없는 특성, 축성을 통해 왕에게 부여된 일종의 신적 특성]이다. 리처드에게 왕권과 상반되는 것은 인간의 숨[호흡]이다. 이 장면의 시작에서, 리처드는 가장 고양된 모습으로, 주님이 뽑으신 대리인이었고, 지난날 신에 어울리는 칭호로 총신의 찬사를 받던 모습이며, 오만하게도 자신이 누군가를 바라보았으면 그는 무릎을 꿇어야 한다고 요구했던 그 사람이었으며, 반란을 제압해 줄 천사의 원군을 확신했다.(27-29) 하지만 비극적인 소식들이 들어오면서 “실재론에서 유명론으로의” 변용이 일어난다. 왕권이라 불리던 보편자가 해체되기 시작하고, 그 초월적 실재와 찬란하게 빛나던 객관적 진리 신과 같은 존재가 아무것도 아닌, 하나의 이름으로 퇴색한다.(무기를 들라, 무기를, 나의 이름이여!, 3막 2장 86행) 남아있는 절반의 실재는 기억상실이나 수면상태를 닮았다. 왕의 망각과 가수면이라는 半실재[반은 헛된 현실]는 플린트 성의 왕이자 “바보”를 어렴풋하게 예시한다. 리처드가 유다의 반역을 암시할 때, 쌍생geminataion의 신적 원형인 신-인이 자신의 현전을 나타내기 시작한다. 왕관의 신격에 대해 왕의 인간격이, 불멸성에 대해 필멸성이 우세할 뿐 아니라, 왕권 그 자체가 그 본질에서 변화한 것처럼 보인다. 미성년이나 노령기 또는 다른 자연적 결함과 우둔함에 의해 영향받지 않는 존재인 대신에, 왕권 그 자체가 죽음 만을 의미하게 된다. “결코 죽지 않는” 왕은 여기서 항상 죽는 왕으로, 다른 필멸자들보다 잔인하게 죽음으로 고통받는 왕으로 대체된다. 남아있는 것은 나약한 인간 본성을 지난 한 사람의 왕일 뿐. 이중 신체의 단일성에 대한 의제가 분해되었다. 왕의 두 신체의 신격과 인간격, 둘 모두 몇 획의 붓놀림으로 명확하게 윤곽이 그려졌고, 서로 대조를 이룬다. 첫번째 바닥에 도달했다.(29-31)
첫번째 웨일즈 해안 장면, 측근의 복수를 위해 무모하게 떠났던 아일랜드 원정이 실패하고, 추방시켰던 불링브루크가 반기를 들고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와 웨일즈 해안에 상륙했을 때만해도, 리처드 2세에게는 아직 자신감도 희망도 있었다. 그러나 들려오는 절망적인 소식들 속에서 그 희망은 빠르게 식는다. EKa는 셰익스피어에게서 실재론에서 유명론으로의 전환을 발견한다. 왕권이라는 실재는 사라지고 이름만 남았으며, 나약한 한 인간인 왕만 남았다. 존재하는 것은 이름 뿐이라 더니. 왕의 이중 신체는 분해되어, 한 인간이 되었다. 리처드의 첫번째 몰락이다.
다음은 플린트 성 장면(3막 3장). 리처드의 왕권, 정치적 신체가 절망적으로 요동친 것은 사실이나, 속은 텅비었다해도 왕권과 유사한 것이 남아있고, “하지만 그분은 왕다운 모습이오”(요크). 리처드의 기분도 처음에는 왕으로서 위엄에 대한 의식이 지배하고 있다. 왕으로 나타나기로 결단하고, 주군이자 신의 대리인 앞에서 무릎 꿇기를 생략한 노섬벌랜드에게 코웃음을 친다. 그러더니, 앞의 장면처럼 폭포수같이 하강하기 시작한다. 다시 한번, 천상의 군대를 요청하고, 왕권의 “이름”이 자기 역할을 연기한다. 왕권의 그림자 같은 이름으로부터, 다시 한번, 새로운 해체의 경로에 이른다. 리처드는 더 이상 그의 신민들과 국가의 신비한 신체를 체현하지 못한다. 왕(K)으로서의 왕(k)을 대체한 것은 외로운 인간의 비참하고 필멸하는 본성이다. 뒤이어 고딕 성기 죽음의 무도의 소름끼치는 형상들이 풍부하게 이어진다. 그러나 자기연민의 분출을 넘어서 훨씬 더 절망적인 상태가 이어진다. 노섬벌랜드가 왕에게 성의 바깥마당으로 불링브루크를 만나러 내려올 것을 요구하고, 리처드는 “구름 속에서 솟아나는 태양”인 자신의 개인 문장을 혼란스럽게 만드는 명민한 언어와 무서운 언어유희로 반박한다. 상징으로서의 태양은, 이따금 로마의 화폐 「아우구스투스[존엄자, 황제]의 아침해Oriens Augusti」에 대한 묘사처럼 읽히기도 한다. 이런 장면들 속에서 리처드는 횡설수설하는 것으로 간주되고, 또 다른 인간 존재인, 바보의 형상이 떠오르는데, 그는 하나-안의-둘two-in-one이고, 영주들과 왕들에 대응형counter-type으로 자주 도입된다. 리처드 2세는 이제 왕인 자기자신의 바보와 왕권의 바보, 두 역할을 모두 연기한다. 그는 단지 “인간” 보다 못한 존재 또는 “자연적 신체로서의 왕” 보다 못한 존재가 된다. 바보의 새 역할 즉, 왕을 연기하는 바보이자 바보를 연기하는 왕 속에서만 리처드는 승리를 거둔 사촌을 만날 수 있고, 그 앞에서 무릎 꿇는 불링브루크와 함께 부서지기 쉽고 미덥지 않은 왕권의 희극을 연기하는데, 다시금 언어유희로 빠져나간다. 여기서는 법학자들이 정치적 신체에 전적으로 결여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우둔함이 지배하지만, 아직 맨 밑바닥은 아니며, 각 장면은 점차적으로 새로운 바닥을 지시한다. 첫번째 장면은 자연적 신체로서의 왕을, 두번째 장면에서는 “왕다운” 바보를, 마지막으로 반은 성사적인 퇴위 장면에서, 두 쌍생의 존재는, 보다 낮은 신분으로 있는 쌍생의 신위deity와 결합한다. 바보는 왕에서 신으로의 전환을 표시하며, 그 어떤 것도 인간의 비참함 속에 있는 신보다 더 불행할 수는 없을 것.(31-34)
플린트 성은 에드워드 1세가 웨일즈에 지은 첫번째 성이자, 유명한 요새다. 리처드 2세가 기댈 구석인 웨일즈인의 군대가 흩어진 후, 플린트 성에 틀어박힌 리처드 왕을 불링브루크의 군대가 포위하고, 항복을 종용한다. 마침내 리처드 왕이 성에서 나와 내려와서 불링브루크를 만나게 된다. 사실상 항복하는 순간을 묘사하는 장이다. 노섬벌랜드가 항복을 종용할 때, 왕의 모습을 회복하려 하면서, 허세도 부려보지만 이미 부질없다. 그는 다시 한번 폭포수처럼 무너져내린다. 이제는 이름도 소용없다. 여기서 리처드의 상징인 ‘떠오르는 태양’을 둘러싼 자조적인 언어유희가 전개되고, 리처드는 정신이 나가서 횡설수설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는 이제 인간보다 못한 존재인 바보가 된다. 여기서 바보로서도 이중적이다. 왕권의 바보와 왕 자신의 바보. 리처드는 바보를 연기함으로써만, 자신의 패배를 불링브루크를 대면할 수 있다.
마지막 웨스트민스터 장면(4막 1장). 다시 성사적 왕권의 형상이 압도한다. 웨스트민스터에서 그는 자기 왕권을 설명할 능력이 없고, 다른 인격이 그를 대신해서 이야기하고 신이 수립한 왕권성의 형상을 해석한다. 칼라일 주교가 이제 상서logothetes 역할을 연기한다. 그는 다시 한번 신의 형상으로서의 왕rex imago Dei이 나타나도록 강요한다. 그는 최종 결정의 도출과 비천해진 왕과 비천해진 그리스도가 유사함을 명확히 하는 것도 리처드에게 맡긴다. 그럼에도 주교는 잉글랜드의 골고다를 예고한다. 리처드 왕은 자신을 재판할 판사들에게 십자가에 넘겨지기 전에, 자기자신을 “비왕화un-king”해야만 했다. 리처드가 그의 왕권을 무효화하고 정치적 신체를 흔적도 없이 해제하는 장면은 성사적으로 장엄하다. 추기경단에 사임한 교황 첼레스티누스와 달리 세습에 의한 왕 리처드는 자식의 직무를 하느님에게 사임했다. 자신의 권리를 신에게 포기했다[Deo ius suum resignavi]. 셰익스피어는 리처드가 신비한 의식 해설자hierophantic의 장엄성으로 자기자신을 무효화하는 장면을 그려냈다. 리처드 왕은 자기자신의 성직을 박탈할 때 그 자신의 의식집행자로 나타났다. 그는 자신의 정치적 신체로부터 그의 위엄의 상징들을 박탈하고, 초라한 자연적 신체를 노출한다. 과거의 영광을 스스로 박탈한 리처드는 바보 역할도 소용없고, 이름 뒤에 숨을 수도 없어, 내면의 왕권을 외향적 왕권과 대립시킨다. 내면으로 물러난 왕권과 경멸과 조롱에 노출된 육체와 평행을 이루는 것은 조롱받는 인자 예수다. 유대인의 왕으로 조롱당하고, 십자가에 넘겨진, 빌라도 앞의 그리스도의 형상을 리처드의 대응형으로 셰익스피어는 도입하는데, 다른 글에서 랭커스터 반대파처럼 불링브루크를 빌라도에 비견한다. 하지만 아직 완전한 밑바닥은 아닌데, 인자 예수는 굴욕과 조롱에도 불구하고 내적 인간과 관련하여, 숨어 있는 하느님deus absconditus이고, 셰익스피어의 리처드도 내적 왕권을 잠시 신뢰할 수 있었다.(34-38)
4막은 1장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웨스트민스터 의사당에서 리처드에 대한 재판이 이루어진다. 리처드는 그 재판의 결과 런던탑으로 가게 된다. 다시 한번 왕의 정치적 신체, 성사적 왕권으로 시작되지만, 이제 리처드는 이름 만이라도 스스로 주장하지 못한다. 이제 왕권은 그의 충신인 칼라일 주교의 입을 통해서 전개된다. 왕이 되는 과정에서 성사와 축성이 이루어지는 만큼,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EKa는 유일하게 스스로 퇴위한 교황 첼레스티누스의 사례를 든다. 여기서 리처드는 즉위와 반대의 과정을 스스로 수행한다. 그는 비왕화unking하며, 왕권을 무화undo한다. 그는 내면의 왕권 속으로 잠시 숨는다. 그러면서 등장하는 것이 비천에 처한 인자 예수의 모습이다. 이것이 ‘신’의 모습이다. 그런데, 인자로 나타난 ‘신-인’ 예수의 가장 비천한 모습 속에서 잠시나마 자신의 내면의 왕권을 구축한다. 그러나 그것은 곧 붕괴했다.
내적 왕권 역시 용해된다. 리처드는 갑작스럽게 자신이 그리스도와 전혀 닮지 않았으며, 스스로가 자기 자신의 불멸하는 정치적 신체에 대한 반역자이자, 왕권에 대한 반역자라는 사실을 발견한다. 자연적 신체로서의 왕은 정치적 신체로서의 왕, 왕의 화려함[화려한 의상]을 입은 신체에 대한 반역자가 된다. 반역에 대한 리처드의 자기 고발은 1649년의 고발, 왕(K)에 대해 왕(k)이 저지른 대역죄에 대한 고발을 예견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리처드의 인격을 가차없이 계속해서 분열한다. 리처드의 왕권과 자아는 녹아 없어지는데, 이는 새로운 태양 앞에서가 아니라, 그의 파산한 대권과 그의 이름없는 인간격은 자신의 일상적 얼굴 앞에서 녹아 없어진다. 거울 장면이 이중화된 인격의 비극의 절정이다. 마침내 거울에 반영된 자기 얼굴의 “덧없는” 영광을 보자, 리처드는 거울을 바닥에 던지고, 거기서 리처드의 과거와 현재, 초월 세계의 모든 양상이 산산이 부서진다. 거울에 비추어진 용모는 화려한 정치적 신체나 신과의 유사성 만이 아니라 바보의 어리석음도 내적 인간에 머무르던 가장 인간적인 슬픔마저 박탈당했음을 폭로한다. 조각나 흩어진 거울은 모든 가능한 이중성이 산산이 부서졌음을 의미한다. 모든 양상은 비참한 인간의 진부한 얼굴과 중요하지 않은 본성physis으로, 어떠한 초자연성metaphysis도 모두 결여된 자연physis으로 환원된다. 이는 죽음 이하의 것이기도 하고 죽음 이상의 것이기도 하며, 리처드의 승하[붕어]demise이자 새로운 자연적 신체의 소생이다.(38-40)
그의 최종적 붕괴는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었다. 자신의 일상적 모습, 어떠한 화려함도 외피도 사라진. 덧없는 일상적 얼굴 앞에서 리처드는 최종적으로 무너진다. 그는 자신이 정치적 신체에 대한 반역자요. 왕권에 대한 반역자임을 알게 된다. 마치 찰스 1세에 대한 판결을 예견하듯이. 이런 해석의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짐짓 몸이 떨려온다.
플라우던은 승하[붕어, demise]를 두 신체의 분리가 있음을 의미하는 단어로, 죽은 또는 왕의 위엄으로부터 제거된 자연적 신체로부터 또 다른 자연적 신체로 정치적 신체가 옮겨가는 것으로 설명한다.(40) 리처드 2세가 스스로 왕의 자리에서 내려와 스스로를 왕이 아닌 것으로 만들고, 불링브루크가 새로운 왕 헨리 4세가 되는 과정이 바로, 플라우던이 말한 demise로 왕의 죽음 또는 퇴위/양위로 인한 정치적 신체의 이동이다. 셰익스피어의 이중화는 왕의 두 신체로 귀결된다.
다시 한번 말하는데, 칸토로비치의 글은, 그의 거침없는 전개는 아름답다.
2025. 8.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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