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른스트 H. 칸토로비치, 『왕의 두 신체』(1).

1642년 잉글랜드 내전의 시작을 전후하여 찰스 1세와 “의회 안의 왕”이라는 정치적 신체를 묘사한 기념표장의 비교. 자세한 설명은 마지막 부분.

Ernst H. Kantorowicz, The Kings Two Bodies: A Study in Mediaeval Political Theology,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57, “I, The Problem: Plowden’s Reports.”

제1장 문제: 플라우던의 『판례집』

에른스트 칸토로비치의 『왕의 두 신체』는, 이 책이 인용될 때 늘 등장하곤 하는 유명한 문구로 시작된다.

왕(K)은 그 안에 두 신체, 곧 자연적 신체와 정치적 신체를 가졌기 때문이다. 그의 자연적 신체는 (만일 그것이 그 자체로 고려된다면) 필멸의 신체로서, 본성이나 우유성으로 말미암는 모든 허약함의, 그리고 유아기나 노령기의 우둔함의, 또한 다른 인민의 자연적 신체에 일어나는 동일한 결함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그의 정치적 신체는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신체로서, 정치체와 정부로 이루어져, 인민을 지도하고 공공복리를 경영하기 위해 설립되어 있으며, 자연적 신체를 대상으로 하는 유아기와 노령기 및 다른 자연적 결함과 우둔함도 이 신체에는 전적으로 결여되어 있는데, 이러한 이유로 왕이 그의 정치적 신체에서 행하는 그 무엇은, 그의 자연적 신체에 있는 어떤 무능력에 의해서도 무효가 되거나 방해받을 수 없다.(7)

[저자는 몇몇 단어들을 대소문자를 구별하여 사용한다. 대표적인 것이 King과 king으로 King은 왕 그 자체 정도를 뜻하고, king은 개별적인 한 사람 한 사람의 왕을 가리키는 데, 여기서는 대문자 왕은 왕(K), 소문자 왕은 왕(k)로 표기한다. 다른 단어도 괄호 안에 대소문자가 표기되어 있으면, 저자의 구별이 유의미한 경우에 표기한다.]

이 문장은 플라우던의 『판례집』에서 가져온 것으로, 랭커스터 공국 내의 토지 임대와 관련된 사건인데, 현재의 왕인 엘리자베스 1세의 전임왕인 에드워드 6세가 준 임대를 무효화하려는 엘리자베스 1세의 시도를 무력화한 재판을 가리킨다. 왕의 시도를 무력화하기 위해서 ‘정치적 신체’가 동원된 것. 해당 토지는 그 이전의 왕인 헨리 8세에 의해서도 21년간 임대가 되어있었고, 에드워드 6세도 이에 바로 뒤이어 다른 사람에게 21년간 임대를 주었다. 엘리자베스는 이 임대를 무효화하고 다른 사람에게 임대를 넘기려고 한 것인데, 그 이유로 에드워드 6세가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해당 임대계약이 무효라고 주장한 것이다. 에드워드 6세는 9세에 즉위하여 15세에 사망했다. 재판의 요지는 왕에게는 정치적 신체가 있기 때문에, 정치적 신체는 자연적 신체의 미성년을 무시한다는 것. 이 내용은 보면, 정치적 신체를 근거로 왕권을 제약하려는 시도에 가깝다. 『판례집』에 이 사건은 1561년에 일어난 것으로 Case of Dutchy of Lanc. at Serjeant’s Inn(상급법정변호사 회관에서의 랭커스터 공국 사건)으로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랭커스터 공국이다. 랭커스터 공국[공작령]은 원래 랭커스터 가의 세습재산이다. 따라서 다음 장에 나오는 리처드 2세를 폐위시켜 플랜태저넷 왕가를 끝내고, 헨리 4, 5, 6세의 랭커스터 왕가가 들어섰을 때, 헨리 4세는 랭커스터 공국을 잉글랜드의 왕관에 합병하기를 거부했다. 그리고 그 유명한 장미 전쟁으로 요크 왕가의 에드워드 4세가 권력을 장악했을 때, 1461년 의회 제정법을 통해, 랭커스터 공국은 법인이 된다. 과문한 탓에 확실치 않지만, 법인 등장의 최초 사례가 아닌가 생각되는데, 이 랭커스터 공국 법인은 영미법상의 단독법인, 즉 1인으로 구성된 단체로서 왕이 혼자 구성원이자 그 법인의 장이며, 잉글랜드의 왕이면 또한 그러하다.(403-404) 그가 서론에서 왕이 “주임사제화parsonified”되었다고 말하는 것이(1) 그것인데, 영국의 작은 마을에서 주임사제parson 한 사람이 교회 전체를 이루고 있는 것을 말한다. 관련된 정보를 조금 가져왔지만, 더 혼란스러워진 것일까? 하필 EKa가 가져온 사례는 랭커스터 공국에 관한 것이었고, 랭커스터 공국은 이미 100년 전에 ‘법인’ 그것도 단독법인이 되었으며(나는 이 점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법인의 장으로서 왕을 말하는 것이니만큼, 당연히 ‘정치적 신체’에 관한 사건이 된다. EKa는 의뭉스럽게도 이 모든 이야기를 7장까지 미루고 있지만. 그러나 미국에서 법학사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아는 사실일지도 모르고. EKa의 전개는 친절하지 않다. 판례를 제시할 때도, 사건에 대한 상세한 설명 같은 것은 하지 않는다. 그가 판례를 가져오는 것은 판결 근거에 ‘정치적 신체’와 ‘자연적 신체’의 구분 및 그들의 권능의 차이가 드러났기 때문이다. 그러한 구별과 차이가 판결의 근거가 되었기 때문이다. EKa는 판결문의 내용만 따진다.

요크 왕가의 첫번째 왕인 에드워드 4세는 도대체 왜 랭커스터 공국을 법인으로 만들었을까? 사실 개인적으로 이 점이 훨씬 더 흥미롭지만, 이 책에는 답이 없다. 다만 추정해 볼 근거들은 몇 가지가 있다. 우선, 이전의 랭커스터 왕가의 왕들은 이 공국(공작령)을 잉글랜드의 왕관에 합병하기를 거부하고 랭커스터 가의 세습재산으로 남겨두었다. 훗날을 생각했을 수 있다. 헨리 6세에서 에드워드 4세로의 권력 이양이 순조로웠던 것이 아니다. 한번 빼앗겼다가 다시 되찾는 과정이 있었다. 에드워드 4세는 랭커스터 공국을 손쉽게 자신의 세습재산으로 할 수 없었다. 그는 헨리 6세를 대역죄로 처벌했고, 랭커스터 공국을 국유재산으로 몰수했다. 이를 랭커스터 가의 어느 후손에게, 다시 돌려주는 일이 없이 왕관에 합병시킬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법인화였던 것 같다. 하지만 구체적인 부분에 대한 이해는 아직 부족하다.

여기서 EKa는 포테스큐의 거룩한 영들[요정들]과 천사들을 언급하면서, 왕(K)의 천사적 성격character angelicus를 슬쩍 언급한다.(8) 자연적 신체의 육체적 연약함에 구애받지 않는 왕은 천사적이다. 이는 결국 나중에 천사의 시간 aevum(유구)과 영속하는 정치적 신체에 대한 이야기로 전개된다. 천사적 근거 위에, 왕의 자연적 신체는 정치적 신체와 결합되어 있으며, 결합된 단체적[단체로서의] 신체Body corporate를 이루며, 이는 하나의 인격이다. 하지만 정치적 신체가 더 크고 우월하다. quia magis dignum trahit ad se minus dignum(더 가치 있는 것은 그 자신으로 덜 가치있는 것을 끌어들인다)이라는 라틴어 격언을 인용하며, 이렇게 형성된 혼성 인격에 대한 설명에는 양성구유자에 대한 설명이 연결되어 있다.(9-10) 이것 역시 뒤에 자세히 설명되는 EKa의 중요한 발견이다. 일시적 시간과 영원한 시간 사이에서 천사적 시간을 발견하는데, 내용은 간단하다. 시작과 끝이 있는 tempus, 처음도 끝도 없는 aeternitas 사이에서 시작은 되지만 끝이 없는 천사의 시간 아퀴나스에 의해 정립된 aevum이 발견된다. 아퀴나스 연구자들은 이를 유구[悠久]로 옮긴다. 산천은 유구한데. 신학적 기원은 아주 간단한데, 천사는 언젠가 창조된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시작 개념으로 넘어가면, perpetual, perpetuality, perpetuity 즉, 영속, 영속성 개념이 되며, 이것이 바로, 정치적 신체로서의 왕(K)에서 국가의 영속성으로 이어진다. 참고로, perpetuity는 영구연금, (재산의) 영구구속, 영대소유권(영대차지권) 등을 뜻하기도 한다.

이어서 등장하는 윌리온 대 버클리 사건에 대해서도 역시 EKa는 친절하지 않다. 본문과 각주 그리고 여러가지를 합해 대략 사건을 추론해 보면, 다음과 같다. 일단 재판은 엘리자베스 재위 3년인 1560년. 사건은 헨리 7세 때 일어났다. 윌리온과 버클리가 동일한 영지에 대해 소유권을 주장하는 데, 그 근거가 하나는 헨리 7세가 왕이 되기 전에 그에게서 땅을 받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헨리 7세의 궁정에 한사상속에 대한 세금을 납부했다는 것을 근거로 한다. 헨리 7세가 요크가의 리처드 3세를 살해하고 즉위한 것이 1483년이므로, 이 일들은 이를 전후해서 일어난 것일 터이다. 그리고 이제 80여년이 지났다. 버클리 경이 불법침입을 했다고 주장하는 쪽은 윌리온의 유족일 것이고, 이 토지는 버클리 경이 점유하고 있는 상황이 아닐까 싶다. 판결내용을 보면, 헨리7세가 왕(K)이 되기 전에, 사권이 박탈되었을 때, 자연적 신체로서 행해진 증여행위라고 할지라도, 왕(K)이 되어서 정치적 신체와 결합된 후 완전한 행위가 되었기 때문에, 그 행위의 효력이 있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둘 모두는 유지된다.(11-12) 이 판결의 내용은 헨리 7세가 왕(K)가 되기 전에, 자연적 신체로 행한 행위도 정치적 신체가 결합된 완전한 행위로, 그것이 앞서기 때문에 헨리 7세가 왕이 된 후의 정치적 신체의 행위를 넘어선다는 설명이다. 단순히 먼저 앞서는 사건이 문제가 아니라, 아직 왕이 아닌데도, 뒷날의 정치적 신체를 가져온다. 앞서의 재판은 미성년인 왕(K)이었는데. 이점이 다르다.

자연적 신체와 정치적 신체의 분리란 결국 죽음이다. 왕(K)의 자연적 신체는 죽지만, 정치적 신체는 결코 죽지 않기 때문에, 왕(K)의 자연적 죽음은 왕(K)의 죽음이라 부르지 않고, 왕(K)의 승하[또는 붕어, 서거]Demise라고 부르는데, 이는 두 신체의 분리를 의미하며, 정치적 신체는 다른 자연적 신체로 옮겨가는 이동을 뜻한다. 이것은 영혼의 이동, 왕권의 불멸하는 부분의 이동이며, 정치적 신체가 왕(K)의 육체에 육화되는 것은 자연적 신체의 인간적 불완전함을 일소하지 않으며, 오히려 불멸성이 왕(K)으로서, 곧 초월체에 관련된 것으로, 개별적 왕(k)에게 전달된다. 헨리 8세가 왕(K)라고 언급되면, 왕(K)는 결코 죽지 않으며, 영원히 지속한다. 이 사건[힐 대 그레인지Hill vs Grange, 역시 불법침입 사건, trespass, 뜬금없이, 미국 영화나 드라마에서 사유지라며, 총을 들고 나서는 장면이 떠오른다. 연조가 깊은 이야기라는 생각이]에서 이미 10년 전에 죽었지만, 여전히 살아 있다.(13-14) 반대로 토마스 로스 경 사건Sir Thomas Wroth’s Case(에드워드 6세의 즉위 전 왕세자시절 의전관의 연금 수령 문제)에서는 인간격manhood 또는 왕의 자연적 신체가 매우 중요하다.(14) demise는 단어 그대로 옮겨간다는 뜻이 담겨있으며, 법적으로 양도, 양위, 계승 등을 의미한다. 흔히 서거라고 하는데, 이는 죽음의 단순한 높임말이며, 뜻으로 보면, 먼 곳에 오르다는 뜻의 승하가 임금이 무너졌다는 뜻의 붕어보다는 나은 듯 한데, 딱히 들어맞지 않는다.

에드워드 쿠크Coke는 캘빈 사건에 대해, 판사들은 모든 신민들이 왕에게 선서하는 것이 왕의 자연적 인격에 선서하는 것으로, 왕의 그의 신민들에게 자연적 인격으로 선서하는 것과 꼭 같다고 추론한다. 반역의 경우도 정치적 신체가 아닌 자연적 신체에 대해서 이다.(14-15) 캘빈 사건Calvin’s Case, 다른 말로는 post-nati, 즉 사후-출생에 대한 사건이다. 1567년부터 스코틀랜드의 왕이었던, 제임스 6세는 헨리 7세의 증손자였는데, 여왕 엘리자베스 1세가 후사없이 사망하자, 1603년 그의 뒤를 이어 잉글랜드의 왕위에 올라 제임스 1세가 되며, 이때로부터 대브리튼 연합왕국을 이루게 된다. 이 재판은 1608년의 일로, 1605년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 로버트 캘빈(실명은 콜빌)이 잉글랜드에서 영지를 소유할 수 없다는 이의에 대한 재판으로, 1603년 제임스 1세가 잉글랜드의 왕이 된 이후부터는 스코틀랜드에서 태어난(즉, 선서한) 사람에게는 잉글랜드인으로서의 모든 권리가 부여된다는 판결이다. 이는 제임스 1세의 자연적 신체와 관련된 판결이며, 훗날 미국에서의 속지주의에 의한 시민권 부여나 아메리카 원주민의 시민권 문제 등에 활발하게 원용된 사건이다.

윌리온 대 버클리 사건에서도 인용된 국가를 인간의 신체로 비유하는 것은, 헤일스 대 페팃Hales vs Petit 사건에서 강조된 신비체[신비한 신체]corpus mysticum라는 정치-교회론적 이론을 가리키는 데, 이 사건에서 자살은 자기보존의 법칙을 위반하는 자연에 대한 범죄, 제6계명을 위반한 신에 대한 범죄이며, 한 신민을 잃는 동시에 자신의 신비한 지체 하나를 잃은 수장인 왕에 대한 범죄의 삼중 범죄인 중죄로 규정된다. 정치적 신체와 신비한 신체는 큰 구별 없이 사용되었다.(15) 왕은 자연적 신체와 정치적 신체가 있는데, 이 둘은 하나로 결합되며, 정치적 신체가 우월하긴 하나 동등하고, 자연적 신체도 정치적 신체에 영향을 미치며, 자연적 신체와 정치적 신체의 분리는 왕의 죽음이고, 이 정치적 신체는 정치공동체로서 국가유기체론에 해당하는 인체론적 비유와도 연결되며, 그리스도교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신비한 신체인 교회의 비유와도 연결되며, 그에 따라 자살까지도 중죄로 취급된다.

“왕의 왕관은 법률의 상형문자였다.” 엘리자베스 시대 법학자들의 발언은 그 취지가 최종적으로 신학적 어법으로부터 파생된 것이고, 또 그들의 발언 자체가 적어도 은밀하게 신학적crypto-theological이었다는 점을 통렬하게 느끼기 위해서, 우리는 두 신체의 기이한 심상을 두 본성[곧,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에 관한 보다 관습적인 신학용어로 대체하기만 하면 된다. 半종교적인 용어법으로 왕권성Royalty은 그리스도론적 정의에 기초를 두고 설명되었으며, 로마법에 의해 시사적으로 “정의의 사제들”이라 불리게 된 법학자들은 잉글랜드에서 “왕권Kingship의 신학”을 발전시켰을 뿐 아니라 진정한 “왕의 그리스도론”도 이끌어 냈다.(16) 메이틀랜드는 이를 잉글랜드 법률가들이 아타나시우스 신조에 비견되는 왕권성의 신조를 구축했다고 평했다. “[하느님이시고, 인간이시지만] 두 분이 아니라 한 분의 [그리스도이시며] … 신성이 육신으로 변화되어서가 아니라 하느님 안에서 인성을 취하시어 한 분이시며 … 실체의 혼합이 아니라 위격의 일치로 완전히 한 분 이시옵니다.”(16-17) 칼케돈 신조의 “혼합되지 않고, 변화되지 않으며, 나뉘지 않고, 분리되지 않는다”도 연상된다.(17) 아리우스주의[신성과 인성이 동일본질이 아니라는 주장으로, 정치적 신체와 자연적 신체가 동등하지 않게 됨]는 배제되었고, 정치적 신체 대해 자연적 신체가 그 자체로 열등함은 정통 신조와 공인 교의(아타나시우스 신조) 인성에 따라서는 성부보다 더 낮으시며minor Patre secundum humanitatem]와 완벽히 일치한다. 네스토리우스주의[인성과 신성을 분리, 두 신체가 분리됨], 사벨리우스주의[성부수난설, 정치적 신체는 죽지 않음], 도나투스주의[배교나 범죄한 사제의 성사 무효(인효설), 왕의 행위는 미성년이라고 모두 유효] 모두가 배제된다. 약간의 부인할 수 없는 단성론만 남아있는데, “우리는 왕(K)을 옹호하기 위해 왕(k)과 싸운다”는 청교도의 절규가 그렇다. 교환할 수 있는 여러 자연적 신체들의 반복하는 육화의 연속성은 왕권에 대한 “노에투스(3세기 양태론적 단일신 주장)적” 해석을 제시하는 것이고, 왕의 “단의론(그리스도의 의지는 하나)”의 위험도 있다.(18) 이는 법률가들이 공의회 결정을 차용했다는 것이 아니라, 왕의 두 신체라는 의제가 신-인God-man의 두 본성을 참작하여 생성된 것을 부득이하게 닮은 듯한 해석과 정의를 생성했음을 함의한다.(18-19)

가끔은 이런 이야기를 읽다보면, EKa가 동료와 제자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얼마나 즐거워했을까 눈에 떠오르는 듯하다. 초기 교회 공의회의 신조와 시대를 명멸해간 이단론을 법률가들이 왕권 신학에서도 회피하는 모습들이 흥미롭다. 그렇지만 바로 다음에서 말하듯, EKa는 어떤 형태의 인과성을 가져오지 않는다. 이것은 유사성이다. 유사한 것들의 연쇄이고, 유사한 것에서 유사한 것으로 계속해서 영향을 주고받는다.

이러한 무의식적이면서 정확한 신학적 정의의 이용을 한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 정의의 이전으로, 주고받기quid pro quo method로 설명한다. 반대도 마찬가지라 그리스도교 시대 초기 수세기 동안 제국의 정치적 용어와 의례는 교회의 필요에 맞게 개찬되었다.(19) 세속적 목적으로 교회론을 차용하고, 교회론 용어를 사용하는 법학자들의 관례는 오래 지속된 고유의 전통을 가지고 있는데, 유사한 것으로부터 유사한 것으로[ad similibus ad similia] 결론을 끌어내는 것은 오래된 만큼이나 정통한 관행이었기 때문이다.(19) 은밀하게 신학적인 관용어구가 튜더 법학자들 중 어느 한 사람의 개인적 변덕이나 작은 규모에 국한된 것도 아니었으며,(19) 이것은 그 시대와 뒤따르는 세대의 잉글랜드 법학자들의 통상적으로 관례적인 용어였다. 대륙 법률학도 수많은 유사한 구별과 함께, 인민의 물적 주권과 황제의 인적 주권이라는 이중 주권[대권]에 도달했으나, 대륙 법학자들은 잉글랜드에서 발전된 의회 제도, 주권이 왕 단독으로나 인민 단독으로 동일시되지 않고, “의회 안의 왕King in Parliament”과 동일시되는데 익숙하지 않았으며, 대륙 법학은 용이하게 추상적인 국가 개념을 획득하거나 군주와 국가를 동일시하는 까닭에, 의회로 대표되는 정치적 신체를 결코 제외할 수 없는 “단독법인[일인단체]”으로서의 군주를 상상하는 데 결코 도달하지 못했다.(20)

“의회 안의 왕”, 의회로 대표되는 정치적 신체를 제외할 수 없는 “단독법인”으로서의 왕. 이것이 순수하고 고유하게 16세기 잉글랜드 만의 것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16세기 대륙의 어느 곳에서도 세계의 어느 곳에서도 이런 형태의 국가 상징 내지 국가에 대한 표상화가 없었던 것만은 분명하다. EKa의 탁월함은 “의회 안의 왕”이라는 결합물의 발견이다. “의회” 또는 “의회주의”의 등장이라는 것이 지금까지 정치사 내지 민주주의의 사상의 역사에서 중요한 것이었다면, EKa의 주장은 왕과 결합된 의회, 의회와 결합된 왕이 국가의 정치적 신체를 구축하고 있다는 발견이다. 이들의 연계를 위에서도 보여주는 기념표장에서 발견할 수 있다.

불멸하는 정치적 신체와 물질적이고 필멸하는 자연적 신체의 구별은 의회가 그와 유사한 의제에 의지하여 왕(K)의 정치적 신체로서의 찰스 1세의 이름과 권위로 왕(k)의 자연적 신체로서의 찰스 1세와 싸울 군대를 소집했고, 1642년 귀족원과 평민원의 선언으로 왕(K)의 정치적 신체는 의회 안에서 의회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데 반해, 왕의 자연적 신체는 배척당했다. “왕(K)의 의지와 개인적 명령에 반하여 판결이 내려져야만 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왕(K)의 판결이다.” 1642년 5월의 결의 후 의회 안의 왕(K)을 보여주는 기념표장들이 주조되었다.(맨 위 그림 중 위의 것) 뒷면 아랫부분에 평민원 의장과 의원들이, 윗부분에는 귀족원 의원들이 단위에 왕좌가 있고, 왕이 옆 얼굴을 보이며 천개 아래 앉아 있다. 정치적 신체로서의 왕이자 의회 안의 왕(K)을 보여 준다. 앞면에는 자연적 신체로서의 왕 찰스 1세의 두상 초상을 둘러싸고 종교•법•왕•그리고•의회를 위하여PRO RELIGIONE•LEGE•REGE•ET•PARLIAMENTO라고 새겨진 명각이 있다. EKa가 제시하는 두번째 기념표장은 찰스 1세가 화이트홀 궁전과 런던을 떠나 옥스퍼드에 거처를 마련했을 때인, 42년말에 제작되었는데, 이제 찰스 1세의 초상은 사라지고, 함선이 등장한다. 이는 관례적인 국가의 배 즉, 플라톤에게서 유래한 국가의 통치를 표현하는 은유로서의 원형 조타기를 보여주는 배가 아니라 해군의 함선으로 해군이 잉글랜드 내전에서 의회의 대의명분을 지지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반대편에 여전히 양원이 등장하지만, 왕은 더 이상 단 위에 앉아있지 않고, 마치 국새의 도상 같은, 액자 안의 그림처럼 존재한다. 나중에는 의회군 총사령관 에식스 백작 로버트 데버루의 초상으로 교체된다.(21-23) 두 차례의 지난한 내전을 거쳐 찰스 1세는 1649년 재판을 거쳐 처형되기에 이른다. 이를 EKa는 왕의 두 신체라는 의제가, 의회로 하여금 대역죄를 이유로 “잉글랜드의 왕으로 인정되되, 그 안에서 제한된 권력만 위탁받은 찰스 스튜어트”를 재판하는 데, 성공했고, 왕(K)의 정치적 신체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거나 회복할 수 없는 손해를 입히지 않은 채로 왕(k)의 자연적 신체만을 처형했다고 설명한다. 이는 1793년 프랑스와는 다르다고. “왕은 지속의 이름이며, 인민이 존속되는 한 (법이 간주하는 대로) 인민의 수장이자 통치자로 항상 지속할 것이다. … 그리고 이 이름으로 왕(K)은 결코 죽지 않는다.”(23)

길고 지루할 듯 이어져 가는 EKa의 논의가 마침내 1642년 찰스 1세에 대한 의회의 선언과 이를 전후하여 주조된 기념표장들에 대한 설명으로 이어지는 순간, 읽는 나도 숨을 멈추게 된다. 이토록 정교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는 몇 개의 기념표장의 도상에 대한 설명으로 아름답게 마무리된다. 우리는 흔히 왕을 처형한 역사를 1793년 프랑스의 루이 16세의 처형으로 생각하지만, EKa에 따르면 이때는 왕의 자연적 신체 만이 아니라 정치적 신체 즉, 군주제도 처형된 사건이다. 이보다 140여년이나 이른 시기에 연합왕국은 찰스 스튜어트를 처형하면서도 정치적 신체를 존속시켰다. 물론 찰스 1세의 처형 직후, 크롬웰이 정권을 잡은 짧은 공화국 시기가 존재한다. 약 10년 정도, 이 시기를 역사에서는 Commonwealth라고 부른다. 그리고 1660년 찰스 2세가 복위한 후에, 잉글랜드 역사에서는 1949년부터 찰스 2세가 왕인 것으로 기록하여, 공위기간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 다음 찰스는 지금의 찰스 3세라는 점이 흥미롭다.

지난 겨울과 봄을 거치면서, 어처구니없는 내란 획책 이후에, 의회 결의에 의해서 대통령은 헌법 재판에 회부되고, 이 시기에 尹家는 대통령이기는 했으나, 권력행사는 제한된, 찰스 스튜어트 같은 처지에 처하게 된다. 그리고 탄핵 재판의 결과로 그를 파면한 후, 다시 대통령을 선출하는 이 과정은 아주 전형적으로 정치적 신체 즉, 국헌을 그대로 유지한 채, 이를 대표하는 자연적 신체를 교체하는 과정이다. 물론 이 민주주의 시대의 대통령은 당연하게도 더 이상 군주가 아니지만. 이 시대 튜더의 법률가들이 만들어 놓은 그림이 얼마나 깊은 흔적을 만들었고, 그것이 우리 삶에 얼마나 튼튼한 기초를 만들어 두었는지, 새삼 생각하게 된다.

거듭 말하지만, 칸토로비치의 글은 아름답다.

2025. 8. 26.

* 괄호 안의 숫자는 책의 쪽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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