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칸토로비치의 『왕의 두 신체』가 처음 출간되었을 때. 흥미롭게도 뒷면 광고는 한스 바론의 저서 『초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위기』이다.
Ernst H. Kantorowicz, The Kings Two Bodies: A Study in Mediaeval Political Theology, Princeton University Press, 1957, “Preface” & “Introduction.”
입문, 서문과 서론
에른스트 칸토로비치(EKa)의 『왕의 두 신체(K2B)』는 덧붙일 필요가 없는 걸작 이자 고전이 된 지 오래지만 ‘자연적 신체’는 죽는다 해도, ‘정치적 신체’는 죽지 않는다고 하는 1장에 나오는 유명한 문장, 딱 그 한 문장만 알려져 있다. 책의 제목이기도 하고, 주권국가의 항구성을 다룬다는 면에서 중요한 문장이기는 하지만, K2B에는 그보다 훨씬 더 넓은 세계가 펼쳐져 있다.
K2B는 허들이 생각보다 높다. 이 책을 읽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이야기를 몇 가지 적어둔다.
사람들은 이 책이 결국 국민국가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석한다. EKa본인도 서론에서 주권국가의 항구성에 대한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는 아주 근대적인 문제에 대한 이야기다. 허지만 EKa는 근대 국가 또는 국민 국가라는 자신의 출발점은 그대로 둔 채, 일단 16세기와 17세기로 뛰어든다. 에드먼드 플라우던Edmund Plowden이라는 법학자로부터 시작해서, 엘리자베스 1세와 찰스 1세의 시대를 통한 전개를 다룬다. 어찌보면 이 이야기는 K2B의 결론에 가깝다. 그런데 결론이 아니다. 1장에 나오는 이 시대가 가장 최근의 이야기일 뿐이다. 2장으로 넘어가면 16세기 잉글랜드의 셰익스피어의 작품 『리처드 2세』로부터 시작해서, 그의 작품과 14세기 말인 리처드 2세의 시대를 오고 간다. 3장에서는 노르만 무명씨의 11세기로 들어간다. 한 장은 11세기 다음 장은 12세기와 같은 식으로 전개되면 좋겠지만, 주제를 따라 전개되는 논의는 연대에 개의치 않는다. 한 장의 논의 안에서도 연대기는 간단히 무시된다.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야기와 논지를 따라 자연스럽게 전개된다. 8세기나 9세기로 갔다가, 13세기로 왔다가 다시 2~4세기로 자유자재로 옮겨 다닌다. 제법 긴 하나의 문단 안에서도 순서가 일정하지 않다. 연도를 써줄 만큼 친절하지 않다. 권말에 연표도 없다. 게다가 잉글랜드,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헝가리의 인명과 지명이 모두 영어로 쓰여져 있기 때문에, 누군지 하나하나 따져봐야 알 수 있다. 중세 서양사의 연대와 대부분의 주요 인물이 모두 머리 속에 들어있지 않은 대부분의 한국인이라면, 끊임없이 검색을 통해서 연표를 확인하면서 읽어야 한다. 맞게 검색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하지만 연대와 논의의 전개가 완전히 무질서한 것은 아니다. 당연히 EKa가 구성하는 논지를 따라 아름답게 직조되어 있다. 마치 대성당의 흩어져 있는 제단화들과 천장화, 벽화와 장미창에 덧붙여진 아름다움 공중버팀벽처럼. 이 점이 중요한데, 바닥에 깔려있는 연대와 지역은 그 순서를 따라 일이 전개되는 결정적인 방식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의미 관계를 파악하려면 염두에 두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EKa가 그려내는 개념 지도를 위치지을 수 있다.
물론 연대가 전부는 아니다. 그런데 연대가 뒤섞여 있으면, 20세기를 거쳐서 21세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불편감을 느낀다. 왜일까? 이 시대의 우리는 역사를 대체로 직선적이고 목적론적으로 이해하는 데 익숙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중세란 우리가 위치해 있는 여기 이곳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 일종의 준비라고 생각한다. 단순하게 암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없지는 않겠으나. 고대에서 중세를 거쳐, 근대와 그 이후의 번영을 이루고 있다고 하는 식의 사고 방식은 일종의 고정값에 가깝다. 그러니 이 시대는 헤겔과 마르크스의 거대한 그림자에 뒤덮혀있는 셈이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K2B를 읽는 사람은 자동적인 반사에 가깝게 이렇게 생각한다. EKa가 생각하고 겪은 20세기 전반기의 국민국가와 내셔널리즘, 주권국가라는 개념의 원형적 사고가 중세에서 발견되고, 그것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그것의 역사적 전개를 기술한 것일 것이라고. 이것이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는 생각의 틀이고, 해석의 방법론이다.
그렇다면 EKa는 어떨까? EKa도 다른 모든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살아온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전반기에 자신의 사상의 토대를 두고 있다. 그는 무엇이라고 할까?
가장 큰 것으로부터 가장 작은 것에 이르기까지 국가들 전체가 가장 기괴한 교의들의 희생물이 되었고, 정치적 신학사상이 많은 경우에 인간의 이성 및 정치적 이성의 근본을 거부하는 진정한 집착이 되었던, 우리 자신들의 시대의 무서운 경험 때문 만으로, 저자가 근대 정치 종교의 몇몇 우상의 출현을 조사연구하려는 유혹을 느꼈다고 가정하는 것은 너무 멀리 나간 것이다. 널리 인정되고 있는 것처럼, 저자가 후대의 착란상태를 자각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었으며; 사실 그는 이른 시기의 발전에 대한 지식을 확대하고 심화해 올수록 더욱더 이념형태의 일종의 거미줄gossamers을 의식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러한 종류의 고찰이, 여기 있는 조사연구로부터 결과한 것이고 그것의 원인이 되거나 그 과정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었던, 나중에 덧붙인 생각에 속했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언제나처럼 역사적 자료 자체로부터 발산되는 매혹이 실제적 또는 도덕적 적용에 대한 어떤 욕망보다 우세했으며 말할 필요도 없이 어떠한 나중에 덧붙인 생각보다 선행했다. 이 연구는 주권 국가와 그 영속에 대한 특정한 암호들을(왕관, 위엄, 조국, 그외) 다루는데, 그것의 초기 단계에서 이해되고 있던 그대로의 정치적 신조를, 곧 초기 근대 정치공동체commonwealth들을 자립화하는 매개물로서 도움이 되었던 시대에 이해되고 있던 정치적 신조를 제시하는 그러한 관점에서만 다룬다.(xxxiv-xxxv)
1957년에 이 책을 출간하는 EKa는 자신도 함께 헤쳐나 온 지나온 시간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 연구는 괴물과 같은 근대국가들의 탈선의 원인을 파헤쳐보려는 그 머나먼 기원을 해석하려는 그런 이념적 저작이 아니다. 파시즘과 나치즘으로 대표되는 근대 국가들의 일종의 자멸을 자신은 목도했지만, 그것은 원인이나 결과가 아닌 나중에 덧붙인 생각이었다는 점을 아주 분명하게 지적한다. 연구해 놓고 보니 결국은 그렇게 연결될 수도 있겠구나 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며, 이를 정식화하지도 않는다. EKa를 이끌었던 것은 역사적 자료 자체의 매혹이었다.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EKa의 K2B가 칼 슈미트와 무엇인가 관련이 있거나, 책의 제목이 그에 대한 응답 같은 거라고 추측하지만, 실상 아무런 관련성이 언급되지 않는다. 칼 슈미트가 언급되는 것을 본적이 없다. 이 서문에서도 『국가의 신화』를 쓴 에른스트 카시러가 언급되기는 하나 자신은 그의 거대한 프로젝트와는 상관이 없는, 작은 실타래 하나를 풀어낼 뿐이라고 이야기하기 위해서이다. 그렇다면 사료만 정교하게 엮어 놓았을 뿐, 자신의 해석이 없느냐 하면 그렇지는 않다. 의외로 유의미해 보이는 해석이나 자신의 입장이 뜬금없이 중간에 등장한다. 장의 서론이나 결론 부분이 아닌 중요한 사료의 해석을 마치는 특정한 지점에서 갑작스레 자신의 해석이나 입장 또는 방법적 방향성을 몇 개의 문장으로 전개한 후, 시치미를 뚝 떼곤 다시 원래의 논의로 돌아가 버린다. 앞서 말한 것처럼 나중에 덧붙인 생각afterthought인 것처럼, 본문의 논지에는 포함되지 않는 사족이나 부연처럼. 이게 참 기묘한 느낌의 전개랄까.
그렇기 때문에, 목적과 인과관계, 적어도 연대기적인 줄세우기를 통해, 고대에서 중세를 거쳐 근대 국가로 이어지는 논리적 연계를 찾는데 익숙한 독자는 1장만 읽고 끝나기가 쉽다. 1장은 어떻게 사상사 같은 느낌이지만, 그 뒤에선 도대체 뭘 끌어내야 할지 막막해지기 때문이다. K2B는 끊임없이, 주제를 중심으로 자료들을 배치하며, 그것은 각각의 부분들이 아주 섬세하게 그려진 모자이크 같다. 그가 연구하기도 하는 라벤나의 산 비탈레 대성당의 모자이크 같다. 성서의 이야기와 당대의 주교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부처가 함께 새겨진. 그는 시대와 지역과 인물을 가로지르면서 그 일을 해내지만, 아주 꼼꼼하게 이들의 관련성을 이어간다. 거기서 그리스도-법-정치체-인간을 중심으로 하는 왕권의 사상사를 직조해 나간다. 이것은 아주 아름다운 태피스트리다.
또 하나의 어려움은 언어인데. 더 정확히 말하면, 라틴어와 영어다. 칸토로비츠는 라틴어를 자유자재로 활용한다.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K2B의 전체 분량의 40% 정도가 주로 구성되어 있고, 그 절반 가까이에 라틴어가 뒤섞여있다. 중세 프랑스어나 그리스어는 일종의 양념이다. 놀랍게도 EKa는 책에 수록된 수많은 라틴어 인용구들이 정치사상사 연구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xxxvi) 중세사가가 아니라, 여기에 인용된 수많은 구절들, 특히 법률연구와 관련된 저서들의 원문은 당시 미국에서 대략 5-6개의 도서관에서 밖에 구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친절하게 덧붙였다. 주를 꼼꼼하게 읽다보면 알게되는데, EKa는 본문을 구성할 때, 주에 인용되어 있는 구절들을 자유롭게 발췌하고 결합하면서 기술해 나갔다. 인용된 구절이든 본문에 녹아있는 구절이든, 이는 사실상 주를 꼼꼼하게 읽으면서, 그 해석과 관련해서 본문을 읽어나가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냥 본문만 읽으면 사소한 오독이 쌓이게 될 것이다. 라틴어 어순을 따라가는 듯한 문장구조나 문장부호의 사용은 말할 것도 없고. EKa와는 사례가 다르지만, 파노프스키도 비슷한 구석이 있었던 모양이다. 김율이 번역한 에르빈 파노프스키의 『고딕건축과 스콜라철학』의 옮긴이의 말에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첫째는 파노프스키의 영어다. 그가 골라 쓰는 희귀한 어휘야 사전을 찾으면 되고 그가 섞어 쓰는 고전어 역시 해석하면 그만이지만, 어휘는 분명 영어이되 문장은 도대체 영어가 아닌 것 같아 수십 번을 고쳐 보면 또 딱히 위배한 영문법이 있는 것도 아니어서, ‘이건 영어가 아냐’라고 외치며 분개하려던 기세가 맥없이 잦아들 수밖에 없었던 그런 문장이 무수히 많았다. 파노프스키의 구술을 타이핑하는 업무를 맡았던 비서 (Roxanne Heckscher)가 말년의 비망 인터뷰에서 말하기를, 파노프스키의 어휘력은 토를 달 필요 없이 출중했으나 어순은 매우 특이했는데, 희한한 어순 때문에 “당신 지금 독일어를 하는 건가요”하고 물어보면 “아니 라틴어를 하는 중이요”라고 대답했다고 하거니와, 아니나 다를까 어순이 별 의미가 없는 고전 라틴어 문장을 연상시키는 파격 속에 그는 정치한 의미를 새겨 넣고 때로는 심지어 운(韻)까지 가볍게 앉혀놓곤 한 것이니, 옮긴이로서는 독일어와 프랑스어 번역본을 일일이 대조하며 문장에 담긴 그의 속내를 고민 끝에 짐작하는 것이 최대치요, 만족스럽게 번역하는 것은 언감생심, 요령부득인 경우가 숱하게 많았다고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본래의 뉘앙스를 포기하고 내 속 편하자고 의역을 자행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사라져서는 안 될 유산 같은 영어 문장의 기운을 남겨두려는 욕심이 앞서, 때로는 직역의 소화불량에 걸린 한국어의 아우성을 듣고도 모른 체했음을 미안스럽게 밝혀두거니와, 그 아우성이 독자들에게 부디 작게 들리기를 바랄 뿐이다.(『고딕건축과 스콜라철학』, 238)
이보다 더 적확한 설명은 없을 듯하다. 문장을 새겨서 읽어가다보면, 정말 그런 느낌이다. 실제로 프린스턴에서 파노프스키와 EKa는 아주 가까웠다. 둘은 나이도 비슷하며, 부유한 유대계 출신으로 독일에서 교육받고 미국으로 이주했다는 배경도 비슷하며, 연구분야도 겹친다. EKa는 파노프스키의 도상해석학의 도움을 여러 차례 언급한다. 둘의 대화는 옆에서 듣기에 때때로 라틴어로 시를 주고받는 것 같았다는 전언도 있다. 파노프스키와 아내 도라를 합해서 판도라라고 불렀다고 한다. EKa의 K2B는 심지어 읽다보면, EKa가 타자수에게 친절하게 불러주는 걸 듣고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불라불라불라, 콤마, 불라불라, 세미콜론, 불라불라, 콤마, 불라불라 피리어드. 영어로 읽으면, 이해되는 듯하지만, 내용을 머리 속에 새겨넣을 때는 결국 누구나 모국어로 하게 된다. 그래야만 의미망 속에 위치하게 되는데, 머리 속에서 한국어로 해석하는 과정이 아주 어렵다. 읽으면서, 여러나라의 번역본들을 함께 읽었는데. 우선, 내용을 개략적으로 이해하고, 문장의 의미가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독일어 번역이다.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으면, 독일어 번역을 보면 된다. 복잡한 문장들을 간결하게 의역하면서 적절하게 옮겼다. 물론 생략이 있다. 역자가 보기에 무의미한 중첩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압착기로 눌러서 납작하게 만들었달까. 올리브 오일을 짜거나 포도주를 만들 때처럼. 프랑스어 번역도 유용하다. 도대체 무슨 단어인지 이해되지 않을 때, 프랑스어를 보아야 한다. EKa는 1934년 영국 체류 시절에도 프랑스어 단어를 영어식으로 발음해서 과감하게 사용했다고 한다. EKa의 영어는 11~12세에 가정교사로부터 배운 것이고, 프랑스어는 김나지움에서 배운 것이다. 아마도 차이가 없을 수는 없을 듯하다. K2B에 반복해서 등장하는 royalty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는 사실 프랑스어 단어인 royauté를 영어로 옮겨 쓴 것이다. 그러니까 그냥 왕권이다, 굳이 나누자면, 왕권성. 뭔가 말하고 있는데, 잘 이해가 되지 않으면, 의미는 독일어 번역본(1990)을, 단어는 프랑스어 번역본(1989)을 보면 확인할 수 있다. 더욱이 EKa 특유의 오용이 있는데, 예를 들어 equivocation은 equivalence로 읽어야 한다는 것.(Radiances, 6) K2B에도 있다. 무수하게 등장하는 라틴어를 해석하는 데는 일본어 번역본(1992)의 도움이 아주 크다. 가끔은 너무 나간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주에는 인용해 놓았지만, 본문에는 말줄임표로 생략된 어구들을 라틴어에 근거해서 되살려 놓았다.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참고로 러시아어 번역본(2015)과 두 개의 중국어 번역본(2018, 2020)도 있다. 이렇듯 K2B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니지만, 오독하지 않으려면 보통 조심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서양중세사를 이해하는 데, 그리스도교에 대한, 특히 그 신학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는 필수적이다. EKa처럼, 교리와 교회 문건, 교회법 문건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정도에 이른 저자의 글을 읽는다면 한층 더 그렇다. 도상을 해석하는데도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전반부를 읽을 때, 그리스도교 교리와 신학을 역사적으로 이해하려고 해야 한다. EKa는 어느 정도의 신학적 소양을 상식인양 두고서는 이야기를 전개한다. 이 정도는 다 알지? K2B의 논리전개는 그리스도교 교리의 특정 부분을 황제파 또는 왕당파 주교나 성직자가 해석해서, 황제권 또는 왕권 확립의 기제로 활용하고, 그 결과가 다시 교회로 돌아가서 교황권 확립에 이용되고, 그 결과가 다시 궁정으로 넘어오는 식이다. 교회와 왕좌 사이에서만 주고받는다면, 그리 복잡하지 않을 것이다. 교회와 왕좌의 주고받음이 법으로 넘어갔다가 돌아온다든가, 유기체론적인 정치체론을 거친다든가. 수 세기를 거치면서 관념들의 순환, 교대, 눈덩이 굴리기와 확장이 신학 논고, 교회법 및 세속법 법규, 수사본의 채색장식화나 벽화 또는 주화의 도상, 교회와 대관의 전례 문구, 시와 희곡, 서한, 정치 논고 등을 넘나들면서 변주되어 나간다. 다른 것들 것 중요하지만, 종교, 특히 그리스도교 신학에 대한 기본적 이해가 필수적이다. 조금은 알려고 해야 한다. 직접적으로 인용된 성경의 구절들도 간단치 않다. 11세기에서 15세기에 인용된 성경 구절들이기 때문에, 현재 사용되는 라틴어 성경의 텍스트와도 다르다. 영어라면 두에-랭스판을 라틴어는 불가타를 보아야 한다. 다행히 놀라운 인터넷의 힘으로 찾아볼 수 있지만. 그때와 지금은 장절도 조금씩 다르며, 내용이 바뀐 경우도 있다. 16세기 이후 근대 성경 본문에 대한 연구는 보다 오래된 사본을 통한 본문 수정이 끊임없이 이루어져 왔고, 우연찮게 EKa가 인용한 도상과 관련된 몇몇 구절은 오늘날 사용되는 본문에서는 바뀌어진 때로는 삭제된 경우들도 있다. 사실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단어나 문장의 중의적 사용이다. 그리스도교와 관련된 용어로부터 출발한 단어들이 세속화과정을 거쳐 현대적 의미로 사용되어 대응하는 번역어들이 있지만, EKa가 다루는 이 주제는 의미가 종교와 정치를 오고가는 점이 중요한 특징이다. 분명히 오늘날에는 세속국가에 대한 설명이지만, 그 기원이 종교인 말들에 대해 중의적으로 이해하려는 습관이 필요하다. 의외로 이런 점이 쉽게 무시된다. 교회를 다니는 것 정도로는 안된다는 사실을 주변에서 발견하곤 한다.
로마법도 가볍지만 어려움을 더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법은 크게 보아 세 가지다. 우선, 로마법, 즉 고전고대의 로마법. 공화정 시대로부터 시작해 제정을 거쳐서,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에 의해서 법전의 형태로 구축된 것을 말한다. 이 법은 크게 넷으로 구분된다. 『법학제요Institutiones』, 『학설휘찬Digesta』, 『칙법휘찬Codex』, 『신칙법Novellae』. 『법학제요』는 법학입문, 개론서. 『학설휘찬』이 가장 중요한데, 고전고대 로마법학자 50인의 학설을 모아놓은 것으로 그 중에서 울피아누스의 것이 가장 많고, 다음이 파울루스이다. 학설이 법원이 된다는 아주 중요한 관점을 제공하며, 가장 많이 인용된다. 『칙법휘찬』은 유스티니아누스 시대까지의 칙령을 모아 놓은 것이고, 『신칙법』은 그 이후의 칙령 모음집으로 당연히 후대에 편찬된 것이다. EKa는 이 법전들을 단독으로 인용하기도 하고, 주석학자들을 통해서 이용하기도 한다. 이 법전에 오늘날의 『로마법대전Corpus Iuris Civilis』라는 이름을 붙인 이는 16세기의 고토푸레두스(고드프루아)가 붙인 이름으로 역시 16세기에 나온 『교회법대전Corpus Iuris Canonici』에 대응하는 명칭이다. Civilis, 즉 시민의 또는 [도시]국가의라는 형용사에 주목해 보자. 교회법을 연구하는 이는 Canonist로, 로마법을 연구하는 자는 Civilian으로 불린다. 보통은 로마법학자로 번역하는데. 문제는 여기서 말하는 Civil이라는 단어는 교회법에 대응하는 의미를 가진다는 것. 원형으로서의 로마법이 있다. 5세기에 그 이전의 법을 모아서 편찬된 것과 그후 몇 세기 동안의 것을 모은 것이다. 교회법은 그 중요한 분기점이 12세기에 편찬된 『그라티아누스 교령집』이다. K2B에서도 빈번하게 인용된다. 교령집을 직접 인용하기도 하지만, 교회법연구자들의 주석서를 통해서 인용하는 경우가 많다. Civilian이라는 의미에서의 로마법은 11세기와 12세기에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교권과 속권의 분쟁 및 왕권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왕들은 법복 귀족을 일종의 신흥 엘리트로 양성하게 되고(물론 이들은 종종 성직자들과 겹치지만), 이들은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 자신의 논거를 고전고대의 로마법으로부터 가져온다. 그래서 이들을 로마법학자라고 부른다. (고전고대 로마법연구자는 Romanist라고도 하는데, Civilian들은 당대의 Romanist들이었던 셈이다.) 어떤 의미에서 실제 이들이 한 일은 ‘국가법’을 구성하려는 노력인 셈이다. 이런 표현은 너무 근대적인 냄새가 난다. 단어를 그대로 번역하면 시민법이 되지만, 이게 또 근대적인 의미의 시민과는 다르다. 그리고 근대에는 Civil Law는 결국 민법이 된다. 실제 고전고대 로마법의 상당 부분은 가족의 구성과 상속 등에 집중되어 있다. 그렇다면, 중세의 교회법은 독자적으로 성서의 내용과 교회의 가르침을 통해서만 구성되었는가? 그럴리가 없다. 교회법이라는 것도 결국 로마법을 흡수해서 구성된 것이다. 게다가 6세기부터 10세기까지 교황권이 제대로 구축되기 전에는 교회법도 역시 체계를 갖춘 형태로 구축되었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즉, 교회법과 로마법(세속법, 국가법)은 비슷한 시기에 고전고대의 로마법을 흡수하면서, 서로 참조하고 서로 경쟁하면서 형성된 것이다. 이와 달리 봉건법이 있다. 봉건법 역시 하나의 체계를 이루고 있다기 보다는 게르만 각 부족을 따라서 형성되고 발전된 것이다. 중세 전기에만 해도, 봉건법은 지배자인 게르만족에게, 로마법은 피지배민들에게 적용되는 것이기도 했다. 법이라는 이름으로, 로마법이라는 이름으로 내용이 전개되지만, 이런 익숙하지 않은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한다. 많은 경우에 특정 학자의 이름 만으로 소개되기 때문에, 자주 등장하는 10여명은 누가 누군지 따로 찾아서 알고 있어야 한다. K2B의 가장 중요한 점이 법률 문헌을 중세연구사료로 들여온 것이니만큼, 로마법, 그리고 교회법과 국가법 양측으로 전개된 중세법에 대한 개략적인 이해는 따로 할 필요가 있다.
이제 서문과 서론을 가볍게 살펴보자.
서론은 흥미롭게도, 메이틀랜드F.W. Maitland로 시작한다. 19세기 후반에 잉글랜드 헌정사, 잉글랜드 법학사를 정리한 인물이다. 메이틀랜드는 1장에 등장하는 엘리자베스 시대의 에드먼드 플라우던의 『판례집Reports』으로부터 왕의 자연적 신체와 정치적 신체에 대한 도식을 발견한. 왕의 두 신체의 정식화는 16세기 판례로부터 등장하는 것이다. 왕의 법인격, 의제 등이 여기서 드러난다.(3) 오류가 없으며, 의제적 인격이자 초인간적인 절대적 완전성을 논하는 (미국 독립혁명기 연합왕국의 법률가였고 미국 헌법에도 큰 영향을 미친) 윌리엄 블랙스톤의 『잉글랜드 법 주해』도 경유한다.(5) 이들에 대한 내용은 계속해서 등장한다. 흥미로운 것은 본문에는 등장하지 않고, 오직 주에서만 등장하는 오토 폰 기르케Otto von Gierke이다. 100여회가 넘게 인용되는데도 불구하고, 오직 주석에서만 등장한다. 메이틀랜드는 4권으로 구성된 폰 기르케의 대작 『독일단체법Das deutsche Genossenschaftsrecht』 중 국가법과 단체법을 다루는 3권의 11절을 영어로 번역해서 Political Theories of the Middle Ages라는 이름으로 출간하고, 여기에 유명한 서문을 붙였다. 폰 기르케에 대한 영미권의 관심은 여기서 비롯되었다. 흥미로운 지점은 이것이다. 메이틀랜드는 『잉글랜드 헌정사』 등을 저술한 영미법사학자로 법인에 대해서도 여러 논문을 남겼다. 19세기 중반까지만 해도 영국에서는 국가의 법적 규제를 받게 되는 법인격을 꺼리는 사단(단체나 클럽)들이 많았다고 알려져 있다. 그가 번역하고, 역자 서문으로 유명해진 폰 기르케는 독일 민법 수립 과정에서 로마법의 계수를 반대(특히 민법 1조)한 인물이며, 부족, 길드, 대학, 도시 등의 게르만의 전통적 단체에 대해서 실체가 있다고 주장했다. 19세기에 프로이센에서 제2제국으로 이르는 독일에서는 독일적인 것에 대한 강조가 중요했고, 폰 기르케는 이를 대표하는 독일 역사법학파의 학자이자 독일 민족주의자였으며, 로마법의 배제를 주장했다. 1921년에 사망하여 나치 정권과의 접점은 없었지만, 그의 성향 탓에 2차 대전 후 상당기간 주목받지 못했다. 굳이 말하자면, 메이틀랜드는 법인 의제에 폰 기르케는 단체 실재에 가까운 인물이다. 영어로는 단체 또는 법인으로 번역되는 Corporation의 독일어 대응어는 Genossenschaft이고 이는 단체로 번역되는데. 이 둘은 근대에도 그리고 중세에도 서로 깊이 얽혀 있다. 물론 메이틀랜드는 폰 기르케의 민족주의적인 면모가 아닌 결사의 자발성에 주목해 다원주의적으로 전개해 나가지만. K2B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법인, 의제, 단독법인 등을 영미법 일변도로 해석하는 것이 과연 옳은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본문에는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 폰 기르케, 한때의 민족주의자였던 과거를 뒤로 하고, 미국에서 연구자로 활동하는 EKa의 묘한 대비. 중세 왕권에 대한 그의 논의는 이탈리아, 잉글랜드, 독일, 프랑스를 넘나들면서 전개되지만, 근대로 넘어가는 대목에서는 오직 영국의 사례만 등장하는 것도 흥미롭지 않은가? 영국이 유일무이한 사례도 아닌데.
K2B의 구상은 서문에서 말하는 대로, 1945년에 시작되었다. 원래는 EKa가 버클리에 정착하는 데, 큰 도움을 준 맥스 라딘(포젠 출신으로 어려서 미국으로 이주, 당시 버클리 법학 교수, 저명한 법학 연구자,Handbook of Roman Law와 Handbook of Anglo-American Legal History 등 저술)의 은퇴기념논문집에 넣으려고 기획된 것이다. 본래는 1~3장과 4장의 일부가 원고였다고 한다. 48년에 이것이 무산되자, EKa는 50년 Max Radin의 고희를 기념해 덤바턴 오크스에서 이를 별쇄본으로 인쇄하여 증정할 예정이었으나, 충성서약 사건으로 무산되고, Max Radin도 갑작스럽게 사망한 후, 다시 이를 기획해서 구성한 것이다. 53년까지 출간이 승인된 후, 단테 부분을 저술해서, 57년에 출간되었다. 그가 지적으로 가장 활발했던 시절의 모든 정수가 K2B에 모여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시기에 출간된 대부분의 논문들의 핵심이 조금씩이라도 K2B에 녹아있다.
2025. 8. 22.
서론 추가.
정치적 신비주의는 그것이 발생한 환경, 시간과 공간에서 분리되었을 때 그것의 마력을 잃어버리거나 완전히 무의미한 것이 될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왕의 두 신체라는 신비한 의제도 이러한 규칙에서 예외가 아니다. 메이틀랜드는 수많은 사례들 속에서 왕이 “주임사제화된parsonified” 것이라고 언어유희를 하고, 이를 형이상학적인-초본성론적인-무의미함의 감탄할 만한 전시”라 불렀다.(3) 동시에 그러한 학설의 불합리함을 예증하는 사례들도 있었는데, 결코 죽지 않는 정치적 신체가 [영주가 죽었을 때의] 관례적인 상속상납금의 납부로부터 해방되었을 것이라고 믿었던 차지인들의 환호에 대해, 의회는 이러한 경우 왕이 죽을 수 있는 사적 인격으로 간주되므로, 조세를 계속 납부하도록 하기도 했다. 메이틀랜드는 심지어 전거가 의심스러운 루이 14세의 짐은 국가라는 말이 잉글랜드에서 공실적으로 인정되었음을 보여주는 1887년의 제정법을, 즉 국가State의 항구적 공무(공적 업무)는 여왕 폐하Her Majesty의 항구적 공무 및 왕관Crown의 항구적 공무와 동일한 의미를 가진다고 선언하는 사례인데, 그는 이를 엉망진창이라 논평했다.(3-4) 그러나 블랙스톤의 『[잉글랜드 법] 주해』에는 왕의 초신체 또는 정치적 신체에 대한 환상적인 동시에 섬세한 기술이 담겨져 있다. 그의 본문에서 근대에서처럼 추상적인 국가에 의해서 또는 중세 성기에서처럼 추상적인 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아마도 세속 사상에는 평행현상이 남아있지 않은 추상적인 본성론적 의제 의해서 행사되는 절대주의의 유령이 떠오른다. 법적으로 결코 죽지 않기 때문에 왕은 불멸한다는 것, … 법적으로 결코 미성년이 아니라는 것 … 왕은 잘못을 행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이를 생각할 수조차 없으며 … 왕은 비가시적이라는 것 … 정의의 원천이지만 그는 결코 판결하지 않는 데도, 법적 편재성을 가지고 있다 … 이러한 왕의 의제적 인격persona ficta의 초인간적인superhuman 절대적 완전성absolute perfection의 상태는 말하자면 의제 안에 있는 하나의 의제의 결과이며, 단체론적 개념의 특이한 양상인 단독법인corporation sole[일인단체]로부터 분리될 수 없다. 단체corporation는 로마인들의 발명품이지만, 단 한 사람만으로 구성되는 단독법인은 잉글랜드 국민의 일상적 재능으로 세련화하고 개량한 것이다.(4-5) 이러한 종류의 사람이 만든 비현실성-실로, 최종적으로 그 자체의 의제들에 대해 노예가 되는 인간 정신의 이상한 구축물-은 통상 냉정하고 현실주의적 주장에 의하면 법, 정치 및 국헌[국체]라는 영역에서보다 종교적인 영역에서 더 발견될 … 메이틀랜드는 이 정리[왕의 두 신체]가 법률가들이 특정한 시기에 “고대의 법과 근대의 법을 조화시키는 데” 도움이 되었거나 또는 통치에 관한 인격적인 개념들을 보다 비인격적인 개념들과 일치에 이르게 하는 데 도움이 되었고 … 그는 “쌍생의 대권twin-born majesty”이라는 호기심을 부르는 의제가 “우리를 중세 법 사상과 정치 사상 속으로 깊이 데려갈 수 있는” 매우 오랜 전통과 복잡한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5) … 이 연구는 역사적 문제를 그 자체로 윤곽을 그리고, ‘왕의 두 신체’의 일반적인 역사적 배경을 아주 피상적이며, 간결하고, 불완전한 방식으로 밑 그림을 그려내는 것, 또 가능하다면 그러한 개념을 중세사상과 정치이론의 고유한 환경 속에 위치시키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6)
메이틀랜드는 이러한 논의를 제시하면서도, 때로는 비판적이고 때로는 냉소적이기도 하다. 하지만 “왕의 두 신체” 논의가 고대와 근대를 연결하며, 우리를 중세 사상 속으로 이끌어갈 수 있음을 부인하지 않는다. 메이틀랜드는 수많은 사료와 사례 안에서 이야기를 끌어가며, 블랙스톤에 의해 전개된 논의는 우리의 추상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하다. 서로의 처음과 마지막은 어디까지나 EKa의 방법론과 입장에 관한 것이다. “정치적 신비주의”는 발생한 환경 및 시간과 공간 속에서 발견되어야 한다. 중세 안으로 깊이 들어가야 한다는 말이다. 또 자신의 연구를 이론이나 정리로 제시하기 보다는 윤곽을 그린 밑그림 곧 소묘라고 말하면서, 중세의 환경 안에 두겠다는 것은, 단순한 겸양이라기 보다는 자기 연구에 대한 입장 표명이다. 이런 연구만 보면, 우리 자신의 현실에 가져다쓰려는 욕망을 이겨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칸토로비치의 “왕의 두 신체”라는 이름으로 된 연구를 확인해보면, 1장에 나오는 정의 몇 문장을 가져온 후에 곧바로 자신의 의제를 풀어나가기 급급하고, 정작 EKa가 꼼꼼하고 아름답게 구축해내는 중세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왕의 두 신체”는 정말로 우리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고, 활용할 만한 이론적 자원들로 가득 차 있지만, 중세 안에서 풍요롭게 이해하는 것이 먼저여야 하지 않을까.
2025. 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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