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밀 뒤르케임, 『종교 생활의 원초적 형태』.

Billy
1973년 여의도광장에서 열린 빌리 그레이엄 전도집회 사진 중 하나. 당시 5일간 연속된 집회에 연인원 300만명이 모였고, 매일 수십만의 인파가 모인 기록적인 사건으로, 한국 교회 특유의 부흥회와 집회 문화 대형화의 한 전환점이 된다. 이 집회에서 조영남은 독특한 창법으로 찬송을 불러서, 교회에 찬반양론을 일으키기도 했다. 물론 이런 집회문화의 전통은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으로 불리는 장대현교회 사경회에서 시작되었지만, 오늘날 보다 익숙한 형태로 이런 대규모 집회의 형식이 시작된 것은 1970년대이다. 이후 Explo, 대규모 수련회, 부흥회, 경배와 찬양 등으로 이어져서 오늘날에는 특별새벽기도회 혹은 부흥회, 즉 ‘특새’라는 이름으로 남았다. 이런 집회에서 ‘아멘’을 외치고, 박수를 치면서, 혹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손을 들고 찬양하거나 통성기도할 때, ‘주여’ 삼창을 하는 등의 행위는 한국 개신교의 전형적인 ‘의례(儀禮, ritual)’이다. 특히 최근 대형교회 특새의 경우, 새벽 2시반 정도부터 기다리거나, 혹은 교회에서 밤을 지새면서, 본당의 자리를 ‘사수’하려는 열정적인 행위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는 ‘성스러움(거룩함)’과 만나기 위해 자기 스스로를 준비시키는 ‘금기’와 ‘금욕’의 실천으로 예배(숭배)의 한 부분이다. 이런 일련의 행동들은 한국 개신교가 어떤 형식으로 자기의 종교적 특징을 드러내는지 보여주는 전형적인 사례이다.

에밀 뒤르케임(뒤르켐, 뒤르깽, 뒤르카임, Émile Durkheim), 『종교 생활의 원초적 형태 (Les Formes élémentaires de la vie religieuse)』, 노치준 · 민혜숙 역, 민영사, 1992.

읽기가 고되었다. 주위에서 말한 것처럼 번역이 고르지 않은 것은 분명하지만, 이해에 크게 방해되는 수준은 아니었다. 교열에는 분명히 문제가 있다. 오역보다 오탈자가 많았고, 같은 단어는 통일하는 일이 필요했다. 에밀 뒤르케임 만년의 대작이라 그 자체가 주는 부담이 있었다. 『사회분업론』과 『자살론』을 읽은 것이 크게 도움이 되었다. 안읽었으면 독해가 어려웠을 것 같다. 뒤르케임과 마르셀 모스가 함께 저술한, 『분류의 원시적 형태들』(김현자 역, 서울대 출판부)은 이 책의 선행 연구에 해당한다. 이해를 위해서는 함께 읽어도 좋겠다. 번역에서 딱 한 단어를 지적하자면, ‘비인격적’이라고 번역된 용어는 ‘비개인적’으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 김현경도 『사람, 장소, 환대』에서 이렇게 고쳐두었다. 신기하게도 결론에서는 ‘비개인적’으로 되어 있다. 아마, 역자도 번역하다가 깨달은 모양이다. 흥미롭게도 번역자 중 한 명은 현재 유서 깊은 어느 교회 담임목사다. 다시 번역되어 출간되면 좋을 것 같다. 이 번역을 저본으로 해서 고치고, 역자 주를 넣고, 색인도 만들고, 도판을 좀 넣으면 이해에 도움이 될 것 같다. 그리고, 해제를 두 개쯤 마련해서, 종교학에서 뒤르케임의 위상과 사회학에서 뒤르케임의 위상을 언급하는 글을 넣으면, 좋을 것 같다. 딱 이걸 할 만한 사람이 눈에 띄기는 하는데. 내 입으로 말하는 건 실례가 될테니.

책을 오래전부터 구하고 있었다. 번역서가 절판된지 꽤 오래된 모양이다. 중고가격만 12만원 선에서 형성되어서, 망설이다가, 페이스북으로 알게 된 어느 분의 선의로 책을 받아서 읽게 되었다. 한 번 더 고마움을 표한다. 지금은 그나마도 구하기가 어렵다. 그렇지만, 꼭 보실 분들을 위해 좋은 방법을 알려드리겠다. 국립중앙도서관에서 절판된 도서들 중 일부를 전자책 형태로 만들어서 소장하고 있다. 그리고 이 책은 국립중앙도서관을 방문하거나, 도서관 웹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는 제휴도서관에 가면, 열람이 가능하다. 단, 제휴도서관의 특정 컴퓨터에서만 가능하도록 지정되어 있다. 다행히 제휴도서관의 수가 수백개가 넘으니 마음만 먹으면 볼 수 있다. 유료로 출력도 가능하다. 이런 식으로 볼 수 있는 책이 꽤 있다. 지금도 여전히 재출간을 원하고 있지만.

뒤르케임을 읽은 사람이라면 쉽사리 이해하겠지만, ‘사회’에 관한 한, 종교학자들은 그를 사회환원론으로 보기도 하는 모양이다. 그의 사회에 대한 입장은 사회가 ‘신(神)’이자 ‘총체(totalité)’라는 입장이기 때문에, 어떤 의미에서는 사회환원론으로 부족하다. ‘사회적 사실’에 대한 그의 연구는 사회실재론인 동시에 사회실체론이며, 사회총체론이기도 하다. 그러나 개인들의 의식을 넘어서는 외재적 실체로서의 사회를 상정하지 않고, 사회은 개인들의 의식 속에 존재하고, 개인은 사회 속에서 탄생한다는 상호적 관점을 가지고 있지만, 단순한 상호의존은 아니다. 명백하게 개인 위에 사회가 있다는 입장이다.

조너선 스미스가 벤저민 슈워츠를 인용해서 말하듯, 뒤르케임은 “칸트의 머리 위에 올라섰다.”(『자리 잡기』, 82. 89) 여러모로 둔감한 나는 결론을 읽기 전까지는 이 책이 칸트와의 논쟁임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결론에서 뒤르케임은 자신의 인식론적 입장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그는 개인으로부터 출발하는 인식 전체에 대해 반기를 든다. 이런 의미에서 직접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이 책은 동시에 데카르트적 인식론에 대한 반론이기도 하다. 결론의 마지막 부분에 나오는 시공간론이 그 분명한 사례이다.(602-611) 결론의 마지막 절에 나오는 이 이야기를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사람이 자신의 각감을 통해서만 인식한다면, 그는 자신의 감각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할 것이다. 따라서, 삶을 따라서 흐르는 시간과 움직임의 범위의 한정된 공간을 넘어서는 범주적 개념으로서의 시공간의 개념은 불필요하면서 또 성립할 수 없다는 것. 시간과 공간은 개인으로부터 연장(extention)된 것으로 보는 데카르트 철학에 대한 명백한 반립이다. 시간, 공간, 인과율과 같은 개념과 범주는 사회가 있을 때만, 인간이 사회를 형성하고 있을 때만, 의미가 있으며, 또 형성된다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그는 칸트를 직접 거명하면서, 칸트 철학은 범주의 기원을 설명하는데 실패했다(609)고 지적한다. 『순수이성비판』과 『프롤레고메나』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칸트에게서 범주(공간, 시간, 인과율 등)는 ‘선험적’이고 ‘초월적’이다. 이런 범주과 구체적 사실, 즉 경험과 만나, 지식을 형성하게 된다. 이를 칸트는 ‘종합’이라고 명명하는데. 여기서 지식이 창출된다. 칸트는 범주의 기원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 반면, 뒤르케임은 이 범주는 사회로부터 생겨났다고 말한다. 모든 것은 사회로부터 창조되었다.

뒤르케임은 종교를 이렇게 정의한다.

“종교란 성스러운 사물들, 즉 구분되고 금지된 사물들과 관련된 믿음들과 의례들이 결합된 체계이다. 이러한 믿음들과 의례들은 교회라고 불리우는 단일한 도덕적 공동체 안으로, 그것을 신봉하는 모든 사람들을 통합시킨다…… 종교는 현저하게 집합적이다.”(81) 성과 속의 분리, 신앙과 의례, 통합과 의무(도덕), 이 모든 것의 기원인 집단성. 이런 기준을 가지고 그는 정령숭배와 자연숭배 보다 토템적 신앙이 훨씬 원형적이라고 결론 짓고, 토템신앙을 본격적으로 분석한다. 이때 분석대상은 주로 호주 중앙부의 원주민(아보리진)에게서 나타나는 토템신앙이고, 보조적으로 북미와 멜라네시아, 폴리네시아의 토템신앙이 간간이 언급된다.

이때 뒤르케임은 철저하게 문헌에 입각해서 분석한다. 뒤르케임이 이 책을 쓴 1912년까지 호주를 방문하거나 토템이즘을 현지조사했다는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실제 책에서도 현지 방문을 했거나 직접 보았다는 언급은 없다. 그는 당시 유행하던 수많은 ‘민속지(ethnography)’를 이용했고, 이런 ‘민속지’들은 제국주의적 관점, 인종주의적 관점으로 뒤덮여 있다. 이런 기록의 저자들 중에는 비판적 훈련을 받지 않은 사람도 많았기 때문에, 뒤르케임의 문헌 비판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뒷날, 아직도 뒤르케임을 읽느냐(에릭 샤프)는 주장이 나올 정도로 종교학의 세세한 부분들에서는 비판을 받았다. 그럼에도 조나선 스미스 등이 다시 뒤르케임을 언급하는 것은 것은 뒤르케임의 문제제기 방식 때문이다. 따라서 이 글에서도 종교학의 논쟁을 불러일으킬 세부사항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책의 거의 절반을 차지하는 2권은 토템신앙에 대한 연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토템적 상징에 대해서, 토템적 동물이 가진 특성에 대해서, 토템과 인간과의 관계, 동물과 식물의 관계에 대해서, 토템적 본체와 마나 개념에 대해, 그리고 영혼의 개념과 영과 신의 개념에 대해. 그의 입장을 요약하면, 토템신앙은 씨족사회의 산물이며, 씨족 사회 그 자체이다. 씨족 사회가 토템, 조상, 문명개화자라는 이름으로 숭배하는 일련의 행위들은 씨족 사회 그 자체를 숭배하는 것으로, 사회는 영혼이라는 이름과 토템이라는 형태로, 사회와 개인을 일치시켜왔다는 것이다. 그의 정의에 따라 말하는 믿음의 대상은 사회 그 자체이다.

마지막 3권은 의식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에 대해서 말하는데, 우선, 소극적 숭배와 적극적 숭배로 나누어 소극적 숭배인 금지의 세계를 검토하고, 금지와 금욕, 스스로에게 가하는 고통을 통해 스스로 성스러움으로 넘어가며, 적극적 숭배, 즉 희생의식은 봉헌과 영성체로 나누어진다. 희생의식은 신과 인간이 함께하는 식사로 결론 짓는다. 종교 의식을 구성하는 모방적 의식이 의례의 기본을 구성하며, 이는 인과법칙, 즉 과학의 기원이 되었다. 마지막으로 장례를 포함하는 속죄의식을 설명한다. 희생의식과 속죄의식에 대한 설명을 통해서 그는 결국 순수와 불순의 대립과 모호함을 통해, 모든 종교적 의례의 양극단은 같은 특성을 지닌다고 결론 짓는다.

‘비개인성’은 뒤르케임이 제시하는 이 모든 이론적 논의의 핵심이다. 책 중간에 ‘비인격성’이라고 언급된 것은 모두 ‘비개인성’으로 고쳐야 한다. ‘비개인성’에 대한 그의 논의는 멜라네시아 사람들이 사용하는 마나(와칸, 오렌다)에서 시작한다. 컴퓨터 게임에서 흔히 등장하는 마나(mana)가 실제로 정의된 말이었다. 하긴 있으니 게임에서 사용했겠지만. 마나는 종교적 혹은 주술적 에너지를 측정하는 단위로 토템, 개인, 사회를 자유롭게 옮겨다닌다. 특정 개인의 특성에 귀속되지 않는다. 모든 종교적 에너지는 옮겨다닌다. 주술적 에너지도 종교적 에너지와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주술적 에너지는 집단이 아닌 주술사 개인에게 귀속되며, 전승되지 않으면 사라진다. 그러나 종교적 에너지와 주술적 에너지의 차이는 없다.(279-289) 이 지점이 뒤르케임이 종교를 탄생시킨 사회를 발견한 지점이다. 그는 마나의 신기한 능력에 대해서 설명하려는 것이 아니라, 종교 현상은 ‘비개인적’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 종교에서 그는 에너지의 근원, 힘의 근원을 발견한다.(293)

뒤르케임의 사회 환원을 모두 받아들이지는 않는다고 해도, 주술과 종교를 구별하는 이 지점, 즉, ‘비개인성’을 지적하는 이 지점은 매우 통찰력이 있다. 잘알다시피 개신교의 수많은 종교의식에 자연스레 샤머니즘적 요소들이 들어와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눈에 뜨이는 것이 유명한 목사나 특정한 어떤 사람에게 안수기도를 받는 행위, 특정한(신령한) 집회 등을 쫓아다니는 행위 등은 신앙을 종교적으로라기 보다는 주술적으로 이해하는 행위들이었다. 뒤르케임의 표현을 빌면, 그런 사람에게는 종교적 에너지가 많은 것이다. 그러므로 그런 종교적 에너지의 전수를 통해, 병고침이나 고뇌의 해소, 종교적 체험 등을 바라는 일이다. 이런 일은 워낙 만연해 있기 때문에, 따로 떼어서 비난하려는 것은 아니지만, 종교란 특정한 개인의 어떤 능력을 통해서 효력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다. 마치 카톨릭의 오래된 설명, 인효성(opus oprans)과 사효성(opus operatum)과 유사하다. 카톨릭은 개신교의 성사(sacramentum) 이해가 인효적이라고 지적해왔다. 이 논의에 따르면, 개신교는 성사의 효력이 받는 사람의 신앙 정도에 관계되기 때문에 인효적인 반면(이신칭의를 생각해 보라), 카톨릭은 성사 자체에 효력이 있기 때문에 사효적이라고 말한다. 이 논쟁은 타락한 성직자가 베푸는 성사가 효력이 있는가에 대한 논란에서 시작되었고, 교황 이노센트 3세가 사효성을 공언하면서, 마무리 되었다. 오늘날의 카톨릭은 사효성을 인정하면서도 인효성을 부정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성사의 사효성이란 교역자와 신자의 주관적 상태와 무관하게 성사가 효력이 있다는 주장, 즉 ‘비개인성’을 주장하는 것이다.

잠시 논쟁을 떠나 교역자(목사, 신부 등)에 초점을 맞추어 보자. 교역자의 종교적 행위가 효력을 가지기 위해서 교역자는 특별한 능력이 필요한가? 물론 교역자가 교역자가 되는 과정에서 요구되는 교육과 절차 등을 이수할 것, 타락하지 않을 것, 도덕적일 것이 요구되며, 종교적 거룩함을 유지할 것이 요구되지만, 교역자에게 특별한 다른 능력을 요구하지는 않는다. 이것은 카톨릭과 개신교 모두 마찬가지다. 교역자 개인의 역량이 더 많은 신자에게 영향을 주어 사람들을 불러모을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이 종교의 기본적인 기능, 즉 사람을 거룩함으로 이끄는 지의 여부와는 무관하다. 사람을 거룩함으로 이끌어내는 힘은 종교, 그 자체에 있다. 그래서 우리가 흔히 개척교회나 대형교회나 아무런 차이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실제 감각적으로 개인은 효능상의 차이를 느끼면서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또 한편에 더 있었다. 나는 개인적으로 안수기도나 부흥회 등의 때론 인위적 사람을 고양하는 것으로 보여지는 일체의 종교행위에 거부감이 있다. 인위적인 것과 주술적으로 보이는 일들 양쪽 모두를 가능하면 회피하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문득 깨달은 것이 있다. 나 자신도 교역자와 주술사를 혼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안수나 그와 유사한 일들을 할 말한 어떤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사람에게 손을 얹을 때, 내 손에서 어떤 기가 나가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그런 일을 하는 것을 몹시 꺼려왔는데. 이것조차 종교를 주술적으로 이해하고, 나는 주술사가 아니기 때문에 주술적인 행동을 멀리해온 결과였던 셈이다. 결국 나는 안수나 일종의 집단적인 종교적 고양을 종교적 의례의 한 부분으로 이해하게 되었는데, 이 점에서는 뒤르케임이 나에게 큰 도움을 준 셈이다. 신앙적으로 말하면, 교회의 전통이고, 성경에도 기록된 일이기 때문에 예배와 집회에 도입해도 무방하고, 필요하면 시행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안에 있는 능력은 내 소관이 아니다. 내가 능력을 이끌어 낼 수도 없고, 능력을 끌어모을 수도 없다. 모든 능력은 그리스도에게 속한 것이므로. 다만, 일련의 일들은 모든 교역자에게 맡겨진 일종의 임무이다. 다만, 여기서 사람들을 조작(manipulation)하려는 일들은 금지되어야 마땅하지만.

물론 이런 ‘비개인성’ 또는 ‘비개인적’에 대한 이해는 뒤르케임의 의도와 꼭맞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뒤르케임은 이 ‘비개인성’에 의지하여, 과학, 철학은 물론 개념과 범주의 형성까지 논의를 이어나가 모든 것을 사회로 환원시키고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마나 부분을 읽다가 강독모임을 하던 이들이 박장대소 한 건, 마니토(manitou)에 대한 설명이었다. 북미 원주민의 하나인 알곤킨족이 말하는 초월적인 힘(mana)의 발현, 비슷한 그 어떤 개념이 마니토인데.(279) 흥미롭게도 우리는 이것을 게임으로 바꾸어서 도와주거나 선물하는 게임으로 하고 있었다. 요즘에는 대안학교에서 많이 한다고도 하고, 얼마전 『응답하라 1988』에도 나왔다고 하던데.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에 어디에서건 흔하게 하던 게임이고, 특히 교회에서 많이 하던 게임이다. ‘마니토’의 뜻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기겁하고 이름을 바꾸었으려나. 뭐 이제는 다 추억이 된 이야기다. 그때 마니토가 유행했던 건 아마도 미묘한 연애감정을 표출하는 방법이었겠지, 지금은 그냥 사귀면 되니까, 별 관심이 없는 것일 것이다.

뒤르케임이 또 하나 지적하는 점은 종교와 집단의 문제이다. 집단이 흥분을 가져온다. 개인들이 모이면 평상심을 잃어버리고 흥분하는 반면, 일단 군중이 해산되고 나면, 군중 안에서 제한받지 않고 작용하던 격렬한 감정들은 냉각되고 가라앉는다.(329) 종교적 흥분이란, 집단성 그 자체에서 나온다. 물론 여러 사람이 모인 것 만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모인 사람들이 같은 노래를 부르거나, 같은 함성을 지르거나, 같은 동작을 하거나, 같은 의례에 참여하거나 해서, 집합적 감정이 발현되어야 한다. 이 집합적 감정의 표출은 개인의 의식을 초월한다. 뒤르케임 자신도 인용하고 있지만, 『사회분업론』이 바로 연상되었다. 앞부분에서 그는 형법의 형성을 이야기하면서, 집합적 감정이 상처받았을 때, 이에 대한 보복이 형법의 원형을 이룬다고 말한다. 특히 고대의 종교법(구약성서)이 규정하는 세세한 사형 규정에 대해서 그런 식으로 해석하는 데, 『종교 생활의 원초적 형태』에서 그 짝이 맞춰지는 느낌이었다.

너무나 상식적인 이야기다. 현대 한국 개신교 만이 아니라 미국 개신교 교회들이 점점 더 커지는데, 바로 이런 이유가 있다. 예전에는 이런 경험을 특정한 집회에서만 할 수 있었다. 빌리 그레이엄 전도집회와 같은 거기에 사람이 많이 모였다는 사실 자체로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경험이 된다. 예를 들어 촛불집회 같은 것에 나갔을 때, 사람들이 가장 관심을 두는 것은 모인 사람의 숫자이다. 얼마나 모였는가? 그래서 경찰은 인파의 수를 줄이고, 집회 참가자는 인파의 수를 늘인다. 돌이켜보면, 80년대 후반에서 90년대 초반에는 대규모 연합수련회가 전형적인 형태였다. 몽산포에 몇 명이 모였다. 어디에 몇 명이 모였다가 나름의 화제였고, 그 숫자는 권위를 확보해 주기도 했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모인 집회에서 혼자만 은헤를 못받으면 무엇인가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듯이 여겨지기도 했다. 그리고 온누리교회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미국식 대형교회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대규모 집회의 분위기와 느낌을 매주 열리는 예배에서 실현시키는 일을 도와준 것 결국 기술과 자본이었다. 초대형 예배당 건축에 들어가는 돈, 일상적인 상황에서도 그러한 효과를 낼 수 있는 음향과 각종 장비. 새로 교회를 건축할 때, 총건축비의 약 20% 정도는 음향과 영상에 투자하는 일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효과적이었다.

어제인가 오래 교회 반주를 해온 청년에게 이야기를 들었다. 자기는 키보드와 피아노를 연주할 때, 두려운 마음이 든다고. 같은 찬양곡이라고 해도, 단조(마이너 코드)로 변주해서 연주하면, 사람들이 막 울면서 회개하고, 눈물을 흘리고, 세븐 코드를 넣기만 해도, 몽환적인 분위기가 사람들에게 퍼져나간다고. 화려한 음악을 자유자재로 사용할 수 있게된 기계장치의 발전은 마음만 먹으면, 사람들을 조작할 수 있는 기회를 수많은 사람들에게 부여한 셈이다. 한국에서 중년을 넘어가는 세대는 감정을 억누르는 것을 미덕으로 교육받고 살아왔지만, 젊은 세대들은 이와는 좀 다르다. 감정 표현이 자유롭다. 나이든 분들도 한 번 감정 표현의 영역이 열리면 자유롭게 느낌을 발현한다. 그렇다고 모두 검정색 양복과 가운을 입고, 시편 찬송가만 부르자는 것은 명백한 퇴행이다. 감정 자체가 금기시 되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집단행위가 가져오는 이 집합적 감정을 아주 조심스럽게 다루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을 조작하지 않고, 그러나 때로 필요한 감정의 고양을 거부하지 않으면서, 풍요로운 감정의 발현을 북돋우면서.

뒤르케임에 따르면 영혼의 불멸이란, 집단의 연속성의 표현이다. 사람의 영혼이 죽은 후에도 유지된다고 믿는 것은 남은 영혼이 다른 사람에게 재화신 될 때까지 유지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379-380) 영혼의 불멸은 집단의 영속성 유지를 설명하기 위한 기제이며, 개인의 영혼, 선조의 영혼, 토템 상징은 트라이앵글을 이룬다. 그렇기 때문에 영혼도 당연히 비개인적이 된다. 왜냐,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으로 이전하기 위해서는 영혼은 ‘비개인성’을 띄어야 하며, 한 집단 전체의 구성원들은 같은 영혼(선조의 영혼)을 공유하고 있는 것이고, 그것은 바로 사회라는 주장이다. 신과 인간이 영혼을 공유하며, 집단 구성원이 동일한 영혼을 공유한다는 발상 자체는 매우 오래된 것이다. 문제는 거기에 어떤 내용을 담는가일 뿐이다.

이 영혼관념은 인격 혹은 인성(personnalité) 관념의 통속적 형태라고 말한다. 인격은 개인적 영역과 비개인적 영역으로 나뉘어진다. 비개인적 영역은 집단의 영혼으로 사용되는 정신적 본체다. 그리고 그 내용은 도덕, 의지, 지성과 같은 것들이다. 뒤르케임은 이 논의에서 라이프니츠의 ‘단자’와 칸트의 이성에 부합하게 행동하는 ‘의지’를 말한다. 뒤르케임에 따르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도덕, 의지, 지성과 같은 것들인데, 이것은 한 개인의 특징인 감각이나 육체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는 주장이다.(381-382) 어찌보면 이 부분도 칸트를 교묘하게 비트는 말이다. 칸트가 딱히 그렇게 말했다고도 아니라고도 할 수 없는. 칸트의 선험적인 도덕률에 대한 설명 같은 것을 연상해 보면 역시 그렇다. 칸트는 이런 부분에 대해 설명을 멈추는 것으로 보이는데, 뒤르케임은 그것의 기원이 사회라고 말하는 것이다.

나는 물론 개인의 영혼이 집단의 영혼의 분유(分有)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 책을 읽다보면, 이런 식으로 내 입장을 자꾸만 정립해야할 것 같은 강박관념을 느낀다. 그래서인지, 강독회 참석자 중 한명은 이 책을 ‘불온서적’이라고 까지 말하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을 이 책의 내용을 잘 이해하고 있다고 받아들였다. 그러나 신과 인간의 영혼의 공유, 뒤르케임에 있어서는 이것을 사회라고 설명하지만. 영혼과 육체의 불가분리성, 뒤르케임은 이것을 개인은 사회를 떠나서는 존재하지 않고, 사회는 개인의 의식 가운데 존재한다고 설명한다. 공동체 구성원이 동일한 영혼을 공유한다는 사고방식은 토템이즘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현대 개신교에서 우리는 각 사람 안에 그리스도가, 그리스도의 영이 있다. 모든 사람에게 성령이 임재한다고 말하지 않는가. 교회는 성령을 공유하는 혹은 성령으로 하나되는 공동체이고.

뒤르케임의 이런 주장은 신에 대한 설명에서 점입가경에 이르게 된다. 호주 북부와 중앙부의 원주민에게서 드러나는 부족신이 있다. 이 부족신은 불멸이고, 영원하며, 일정 기간 땅에서 살다가 하늘로 들어올려졌고, 도와주는 가족을 소유하며, 해와 달 같은 천체에 대한 지배력까지 있고, 그는 인간을 만든 창조자이며, 신도들에게 생존에 필수적인 모든 것을 공급해 주며, 도덕의 수호자요, 위반할 때는 벌을 내리며, 인간이 죽은 후 심판관의 직분을 완수한다는 것이다.(402-405) 솔직히 말해 읽는 순간 소름이 끼칠 정도. 일단 이 문제에 대해서 두 가지 점이 지적된다. 첫째, 초창기 민속지를 기록한 사람들 중에 선교사들이 많았기 때문에, 선교사들이 부족신에게서 기독교의 ‘하나님’과 유사한 모습이 발견되면, 흥분하고, 과장했다는 것이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바울의 아레오파고스 설교를 기억해 보면, 더 그렇다. 혹은 기독교 선교사들이 전파한 기독교의 신개념이 이 원주민들의 부족신 개념에 영향을 주지 않았을까 하는 해석이다. 이 책은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카고 컬트(cargo cult) 같은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뒤르케임의 입장은 선교사들의 과장이지만, 기독교의 영향력은 부인하는 편이다. 그 기원이 훨씬 오래되다는 것.(406-408) 생각보다 좁은 부족신의 역할과 기능을 과장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씨족의 영역을 넘어서 부족의 신 관념을 만들어 내게 된 것은 부족이 모여서 치르는 입문의식의 결과, 즉 사회가 폭이 넓어진 커뮤니케이션의 결과라는 해석이다. 그리고 이 부족의 신은 선조의 영인 비개인적 힘으로, 부족의 감정, 부족의 통일성 그 자체라는 해석이다.(414-415)

부끄럽게도 나는 목사이지만, 이 책을 읽고서 비로서 종교라는 것의 중요성에 깨닫기 시작했다. 나의 기독교 이해는 어디에서 결점을 노출하고 있을까. 그것은 종교로서의 기독교에 대한 이해였다. 나는 늘 종교의 사회적 기능이나 종교의 역할 등에 대해서 쉽게 말하곤 했지만, 그 내용이 무엇인지는 그저 상식수준에서만 막연하게 하고 있었다. 종교학을 좀 열심히 공부해야 겠다는 생각이 비로소 들었다. 그러니 생각해 볼수록 참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내가 속한 교단에서는 종종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신앙이라면서, 종교는 낡은 제도라고 큰소리를 뻥뻥치고 있었고, 나는 그런 주장에는 늘 거리를 두고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뭔가 잘 모를땐 동조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여러 종교에서 원형적인 형태들, 공통의 모습들, 즉 그릇을 발견할 때마다, 입이 다물어진다. 기본적인 형태에서 고유한 것이 있을까.

뒤르케임은 숭배(예배)를 소극적인 것과 적극적인 것으로 나눈다. 그 중 소극적인 것을 금지(tabu)로 표현한다. 이런 금지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음식금지, 접촉금지, 성관계 금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자격, 바라보는 것의 금지, 말하는 것에 대한 금지, 특정 단어 금지 등. 그리고 금지를 어기면 처벌을 받는다. 때로는 육체적 처벌이 때로는 종교적 도덕적 처벌이 이루어진다.(421-427) 금지 또 이런 금지의 발전된 형태로서의 금욕주의는 사람에게 성스러운 특징을 얻게 하는 기능을 한다. 속된 것으로부터 박탈되어 신성을 획득하게 되는 것이다.(434-435) 또한 이런 금욕주의는 사람에게 고통을 가져온다. 이런 고통은 사람이 스스로를 자해함으로써 고통을 가져오는 경우도 있고, 헌납을 통해 가난하게 됨으로써 고통을 겪기도 한다. 이런 고통은 예외적인 힘을 만들어 내며, 희생을 통해, 사회적 도덕적 관심을 이끌어 낸다.(437-442) 외부의 종교적 힘이 개인을 관통하면서, 집단적 도덕의 힘을 형성하게 된다.(450-454)

한국 개신교의 개혁을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흔히 불필요한 금지로 여겨지는 것이 ‘금연’과 ‘금주’다. 이를 일컬어서 ‘주초문제’라고 한다. 금연, 금주는 쓸데없는 금지규정이고 개인의 사회생활과 스트레스 해소만 어렵게 한다. 그것은 취향의 문제라는 주장이 있다. 그리고 그 근거로 기독교의 본산인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금연’과 ‘금주’가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없다고 말한다. 모든 율법이 폐지되었다는 교리를 엄격하게 적용해서 말한다면 이것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이런 말을 하는데 머뭇거렸던 이유는 교회의 현실 때문이다. 사실 기독교인이 되는데, 아무 것도 희생하지 않아도 되는 현실에서 ‘금연’, ‘금주’와 같은 사소한 금기마저 없어진다면, 기독교인들의 삶은 어떤 모습을 띄게 될까. 게다가 ‘금연’은 건강때문에라도 모두 하는 추세. 물론 아직도 흡연자가 많은 것도 안다. 사실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걸림돌이나 족쇄가 되는 금지는 ‘금주’만 남았다. 그리고 술을 좋아하는 한국 문화나 사회생활의 습성과 함께 많은 사람이 기독교인이 되는데 걸림돌이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종교를 가지는데, 아무런 걸림돌도 없어야 할까, 어떤 종교를 받아들여 종교적 인간의 삶을 살려고 할때, 어떤 희생도 하지 않아야 할까. 무엇인가를 잃어버리는 어떤 희생없이 한 사람이 거룩함에, 성스러움에 접근할 수 있을까? 게다가 한국의 술문화에서 더더욱. 오히려 2016년의 한국사회에서 가장 적절한 금지가 아닐까. 문제는 술, 담배만 안할 뿐, 다른 어떤 것도 종교인 다운 삶을 살지 못하기 때문인데. 이 금지를 없앤다고, 사람들의 삶의 영역에서 즉, 일상에서의 거룩함 내지는 도덕과 양심을 회복할 수 있을까? 어떤 확신도 들지 않는다. 그리스도교를 안에서도 술과 담배에 비교적 자유로운 교단들도 있다. 이들의 특징은 사회참여적이거나 예전이 강하다는 데 있다. 둘 다를 갖춘 경우도 있고. 공동체를 중심으로 한 강력한 종교적 의례를 형성하고 유지함으로써, 술, 담배와 같은 사소한 금기 문제를 넘어설 수 있거나, 사회참여적인 행동으로 종교적 성스러움을 사회적으로 구현해 내기 때문에, 비교적 술과 담배를 허용하면서도, 자유로운 선택을 한다. 그렇다면, 개인 구원을 우선으로해서, 개인주의적 종교생활을 우선시하는 개신교의 보수적이고 복음주의적 교회들이 금연, 금주 등의 금지조항을 유지하는 것은 일견 자연스러워 보인다. 물론 이것들은 지극히 한국적인 현상인데. 이것은 반드시 근본주의적인 선교사들이 그런 금기를 가져와서 유지된 것이 아니고, 그런 금지가 한국에 딱들어맞았기 때문이다. ‘금연’, ‘금주’야 말로 한국의 보수적이고 복음주의 기독교가 토착화한 가장 분명한 증거인지도 모르겠다.

고통을 신성시하는 것도 매우 깊은 전통을 가지고 있다. 고인이 된 어느 목사의 유명한 책으로 『고통에는 뜻이 있다』라는 책이 있다. 하나님은 감당할 만큼의 시험만 주신다거나, 심지어 고통은 축복의 통로라는 식의 다소 자학적으로 들리는 표현까지 서슴치 않는 교회가 많다. 그러나 반면 고통을 종교적 깨달음을 얻는 수단으로 삼는 것을 반대하는 전통도 있다. 고행이나 자해를 거부하는 현대적인 종교의 흐름들이 그것이다. 그럼에도, 고통, 때로는 사람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극한의 고통을 종교적 체험으로 다다르는 통로로 여기는 견해는 아주 오래된 것이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교인들 대부분은 스스로 고통을 자처하지는 않으나, 고통이 닥쳐올 때, 고통을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고통을 해석하는 데는 매우 능하고 익숙하다. 문제는 고통을 종교적인 깨달음을 얻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생각하여, 지나치게 자기 중심적으로 해석하는 일이다. A라는 고통을 당했을 때, B라는 종교적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를 B라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나에게 A라는 고통이 꼭 필요했고, 그래서 신이 나에게 그런 고통을 지정했다는 식의 자기고백은 때로, 자기과시에 이르거나 혹은 자기기만을 통한 정신승리에 이르는 길이되기도 하다. 그리고 고통당하는 타인에게 대해 당신에게 B라는 깨달음을 위해 A라는 고통이 필요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폭력에 다름아니다. 그러나 고통 자체는 사람에게 허식을 벗어버리고, 깨달음을 가져다 준다. 고통 자체가 깨달음은 아니지만, 때론 결과적으로 고통은 통로가 된다.

뒤르케임은 로버트슨 스미스(Robertson Smith)를 따라서 희생제의를 신도와 신 사이에 혈연관계를 맺어주기 위해 그들을 같은 살로 영성체하려는 목적을 가진 식사라고 말하며, 희생이란 무엇보다 음식을 통한 교제행위라고 정의한다. 거룩한 성격을 가진 이런 식시에서 음식을 먹어야 하며, 영성체(성찬)의 목적은 씨족의 모든 구성원들이 자기 존재에서 중요한 부분을 이루는 신비한 실체를 흠없이 보존하고, 소모되는 에너지를 보충하기 위해서이다. 이때 아무리 소량이라도 상관없다. 부분은 전체와 같은 가치를 지킨다는 규칙이 적용된다.(469-471) 로버트슨은 희생-봉헌 개념이 위대한 종교에서만 생겨났다는 식으로 설명하지만, 물론 뒤르케임은 이를 가장 원시적인 상태로 까지 끌어올린다.(474-475) 이 부분은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없을 것 같다. 그리스도에 의해 제정된 성찬은 본래 화목제와 유월절 제사의 재해석이다. 이 사건에 여러 제사의 형식을 부여하지만, 여러 제사를 함께 설명하지만, 속죄제 만으로는 설명하지 않고, 유월절 제사로부터 해석하는 데, 이는 제물을 사람들이 먹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화목제를 적시하는 이유도 그것이다.

뒤르케임은 의식과 의례의 중요성을 강조함다. 의례 자체가 종교를 유지시켜 준다. 그리고 종교적 의례는 마음에 영향을 미친다. 예배를 규칙적으로 거행함으로써, 도덕적 위안감을 깨우치거나 각성시키려고 애쓰는데, 설교자들은 증거보다 우선하는 믿음, 마음으로 하여금 논리적 추론들의 부족함을 간과하게 하는 믿음,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는 명제들들 받아들리도록 준비시키는 믿음 등이 생겨나게 하는 성향을 만들어 낸다. 호의적인 편건, 믿고 싶은 마음을 만들어 낸다. 의식의 권위를 만들어주는 것은 믿음이며, 기독교의 유일한 우월성은 기독교인은 그의 신앙이 연유되는 심리적 과정들을 보다 잘 설명한다는 점이다. 즉 그는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뒤르케임은 바로 이런 믿음을 만들어내는 것이 의례라고 지적한다.(500) 이런 모든 일들은 의식의 모방적 성격에서 기인한다. 호주 원주민의 의식은 아주 드러내놓고 모방적이었다. 가뭄이 들었을때, 비가 오도록 하는 의식을 지내고는 이제 비가 올 것으로 믿는다. 자기 토템종을 모방하면서, 번식을 기원하는 의식(인티치우마)를 지내면서, 실제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현대 고등 종교의 신자들은 어떠한가? 오늘의 의례도 상당 부분 모방적이지 않은가? 형식은 모방적이지 않더라도, 의례를 완수하고 난 후, 실제 그렇게 이루어질 것으로 믿고 간주하지 않는가.

뒤르케임은 한 걸음 더 나가서 모방이야 말로 인과법칙의 구체적인 진술이며, 모방의 실행은 인과법칙의 기원이라고 말한다.(503) 오해하면 안된다. 인과법칙 자체가 모방이라는 것이 아니다. 모방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종교의식은 실제 그 일이 이루어진 것으로 본다. 거기에는 힘이 작용한다. 물론 뒤르케임에 따르면 이 힘은 사회적인 것이다.(504) 앞서 말했듯이 힘은 사회적 기원을 가진다. 이런 힘의 작용을 모방적 의례를 통해 설명하는 것, 인과법칙의 원형적 형태라는 주장이다. 게다가 사회는 자신의 필요에 따라 사물의 운행을 맞추기 위해서, 성공을 가져오기 위해, 특정한 동작을 종교에 부여한다. 사회는 이런 식으로 의례를 강화시키는 데, 이것이 바로 여론이다.(510) 인과법칙은 인간의 사고와 산업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512) 종교는 과학의 원형적 형태라고 말한다. 어쩌면 그는 과학은 사회적 기원을 가지고, 사회가 과학을 만들어냈다고 말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종교예식에서 가장 독특한 것이 장례예식이다. 제국주의 일본이 천황제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는 수단으로 콧카신토(国家神道)를 본국과 식민지 모두에서 확산시킬 때, 신토가 종교가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신관의 장례식 집전을 금지시킨다. 그래서 오늘날 일본에서 결혼식은 기독교식으로, 아이들이 태어나거나 자랄 때는 신토의식으로, 장례식은 불교식으로 치른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한다. 한국에도 유명한 건축가 안도 타다오의 잘알려진 ‘물의 교회’나 ‘바람의 교회’는 예배당이 아니라 예식장이다. (빛의 교회는 예배당) 종교는 반드시 슬픔의 관리 즉, 장례예식을 가지고 있다. 원시인의 종교, 토템이즘은 사람들에게, 선조를 기념하는 예식을 통해 즐거움과 놀이, 예술, 미적인 것을 탄생시킴(528)과 동시에 슬름을 강요한다. 자신의 고통을 자해를 통해, 피흘림을 통해 외적으로 표현하도록 강요함으로써 상실을 회복하고, 집단이 슬픔에서 벗어나 원래의 힘을 회복하는 것이 장례의식이다. 슬픔은 일종의 의무이다.(548-550)

뒤르케임의 지적의 핵심은 모든 의례의 동일성이다. 모든 다양한 의례들의 형식이 하나의 동일한 주제의 변이와 동일한 심적 상태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토템종의 번식도, 입문의례도, 가뭄에서 기우제도, 사냥과 농사를 위한 기원에서도 동일한 형태의 인티치우마를 사용해서 동일한 마음의 상태를 만들어내지만, 각기 다른 의미로 해석된다.(538) 그는 한층 더 나아가 속죄의식의 한 형태로 장례의식 등을 설명하면서, 순수-성화-불순이라는 연속 개념을 설정하고, 순수와 불순은 실제 동일한 것이라고 말한다.(567) 따라서 종교는 단일한 것이고, 하나의 단일하고 동일한 요구에 부응하며, 동일한 정신상태에서 기인하지만, 종교는 개인을 고양시키며, 삶을 조직하고 활동을 조절한다.(568-569) 즉, 종교는 사회를 유지하고, 개인을 사회의 수준으로 이끌어 올린다.

뒤르케임을 여기까지 읽고서야 비로서 왜 오귀스트 콩트가 인류교라는 새로운 종교를 시도했는지 이해가 되었다. 뒤르케임 역시 그 자신 사회주의자이고, 국제주의자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원래 그는 프랑스가 점령한 독일 지역에서 유대교 랍비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랍비가 되기를 거부했지만, 유대교 공동체와 평생 연계를 맺고 살았으며, 그를 지지한 사람의 상당수가 유대인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그러나 그는 실상은 현대적 개념으로 말하면 무신론자 이거나 사회 자체를 신으로 믿은 ‘사회교’의 대사제라고 할 수 있다.

사회를 ‘신’으로 믿고 숭배하는 것은 뒤르케임 한 사람에게 그치지 않는다. 사실상 오늘날 수많은 사람에게 ‘국민국가’와 ‘사회’는 하나의 신이다. 신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고, 국민국가와 사회는 가치판단과 차별의 기준이 되면, 사람들의 의식을 형성하고 지배한다. 20세기 후반과 21세기에 있어서 종교들이 쇠퇴하고 있는 것은 국가라는 새로운 신에게 사람들이 만족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유행하는 시민종교라는 말이 그런 말이 아닐까. 어쩌면 이 일은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의 결과인지 모르겠다. ‘국민국가’의 이름을 위해 수천만의 사람이 목숨을 바쳤다. 그들은 같은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었지만, 서로 거리낌 없이 살륙을 감행했다. 오늘날 목숨을 바치는 희생은 순교라는 이름의 종교적 희생이 아닌, 애국자라는 이름의 국가적 희생을 통해 이루어진다. 군인을 영웅시하는 드라마가 한국에서도 드디어 유행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경찰로 시작되었고.

꼭 뒤르케임의 지적을 따르지 않는다고 해도, 종교가 성과 속의 구분임은 명백하다. 종교는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는 사회 속에서 ‘성소(聖所)’를 보존하는 기능을 하고 또 해야한다.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돌아와 성스러움과 만나고, 내면의 성스러움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다. 한국 개신교회가 실패한 지점이 바로 이 지점인 것 같다. 교회가 교회다움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에는 교회 안에 그것이 장소든 의례든 어떤 형태로든 ‘성스러움’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스러움’의 회복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런 일이 교회가 쌓아올린 부에서 나타나든, 목회자들의 일상의 타락에서 나타나든, 그게 무엇이든 간에, 교회가 시급하게 회복해야 하는 것, 아니면, 만들어야 하는 것은 ‘성스러움’ 그 자체이다. 여기서 실패하면, 종교는 정말 설자리가 없어진다. 거기서 비로소 도덕과 윤리의 담당자로서 교회의 역할이 나오게 된다. 흔히 말하는 교회개혁이 교회에 윤리와 도덕, 교역자들의 바른 생활 태도만 회복되면, 교회 문제가 해결될 것처럼 말하고 있지만, 아니다. 실상은 그렇지 않다. 종교의 본질인 ‘성스러움’을 지켜내야 하는 것이다. 그게 어떤 방식으로 가능할 런지에 대한 대답을 나는 아직 가지고 있지 않지만. 그 근본적 개혁은 사회적 영역에서 나타나지 않을까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을 뿐이다. 여기에서 비로소 기독교의 공공성이 나타나게 될 것이다.

종교에 대한 공부는 이제 막 시작하려는 것이기에, 섣부른 언급은 하지 않으려 한다. 나는 입버릇처럼 종교로서의 기독교의 역할과 위치에 대해서 말해왔지만, 정작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러기 위해서는 기독교는 어떤 모습일지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했던 셈이다. 그리고 뒤르케임을 통해서 뜻하지 않게 쏟아져 나오는 종교의 원형적 형태들의 홍수 속에서 익사할 뻔 했다. 결국 유대교의 형성도, 그리스도교의 형성도, 기존 종교에 대한 혁명적 변혁을 통해서 이루어진 셈이다. 원형적인 그릇들은 남았지만, 그 그릇들은 모양이 바뀌었고, 위치가 바뀌었고, 전혀 새로운 것들이 담겼다. 그래서 새롭게 된 것이다. 나는 종교로서의 유대교를 원시신앙과 관련지어서 해석하는 견해가 문득 궁금해졌다. 분명 그런 입장이 찾아보면 또 산더미 처럼 있을텐데.

의례의 중요성에도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종교개혁은 많은 의례를 버리고, 의례를 간소화했다. 한 마디로 현대적이고 지식적인 종교를 지향했다. 그러나 교육받지 못한 농민에게서는 달라진 것은 별로 없을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은 당대 최고의 지적 엘리트들이었지만, 그들이 지향한 것은 농민의 종교가 아니라 결국 부르주아의 종교가 된 셈이다. 그리고 한국에서 다시 한 번 유럽과 미국에서 살아남은 예전 마저 간소화되고 사라져갔다. 그리고 한국적 의례가 새로운 형태로 자리잡게 되었다. 이 기묘한 현상의 한가운데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한다. 오늘날 목사와 기독교인들에게 기독교와 성서에 대한 이해 만큼이나, 종교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것 같다.

2016. 3. 18.

* 괄호 안의 숫자는 번역서의 쪽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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