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Dmitry Avdeev – Provided by email, CC BY-SA 3.0,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18550211
수디르 벤카테시 (Shudir Venkatesh), 『플로팅 시티 (Floating City)』, 문희경 역, 어크로스, 2014 (2013).
시카고 마약상들의 세계를 연구해서 명성을 얻은 수디르 벤카테시는 젊은 학자들이 바라는 하버드대 특별연구원을 거쳐, 아이비 리그 중 하나인 콜럼비아 대학 사회학과에 자리를 잡았다. 종신재직권(tenure)을 얻기 위해 새로운 프로젝트를 기획하던 그는 이번에는 뉴욕의 실내 성매매 산업 속으로 들어가 노동자와 중개자(포주, broker)를 연구해서 다시 한 번 더 큰 명성을 얻고 콜럼비아 대학 종신재직권을 따냈다. 이런 사실은 그의 간단한 이력, 『괴짜 사회학』, 『플로팅 시티』를 슬쩍 보기만 하면 정리해서 얻을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말하면 왠지 그가 매우 부도덕한 사람인 것처럼 보이지만, 그 자체는 사실이다. 그는 범죄를 통해 부정수익을 얻는 사람들의 세계를 연구했다. 그들은 그런 부정수익으로 근근이 살아나갔다. 반면, 세금을 납부하고, 법의 보호를 받는 일을 하는 수디르는 부정수익자들과 친해지고, 그들이 털어놓은 비밀로 학위, 교수직, 명성, 종신재직권을 얻어냈다. 그러나 연구자료 수집에 대한 법과 규정을 지키느라, 정말 필요한 도움을 주지 못했고, 그가 얻어낸 정보의 가치만큼 비용을 지불하지도 않았다. 시카고에서 불법으로 부정수익을 얻던 수디르의 연구 대상들은 연구가 끝날 무렵 너도 부정수익자라고 일침을 가했는데. 20년에 걸친 연구와 두 권의 책, 연구 업적과 명성을 보면 분명 그런 것 같다. 그러나 수디르도 나름의 댓가를 치렀다. 두번째 연구가 끝나갈 무렵, 연구 중반 쯤 별거하던 그는 결국 이혼했다. 물론 그게 꼭 연구의 결과라 할 수 없을지 모르지만. 나는 이런 수디르를 비난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런 점이 바로 부정수익자의 세계다. 부정수익자들은 세금 없이 적잖은 수익을 얻는 것처럼 보여도, 끝없는 먹이사슬과 포식자들 사이에서 실상 근근이 먹고 살기 위한 투쟁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런 부정수익자들의 세계와 연관된 이들은 마음만 먹으면 충분한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마치, 마피아 변호사가 큰 소득을 올릴 수 있는 것처럼. 구조 차이가 수익을 만들어 낸다.
빅 애플(Big Apple, 뉴욕)에서 명성과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조급해 하던 수디르는 뉴욕에서도 시카고 처럼 불법행위와 부정수익자들의 세계를 연구하려고 마음먹는다. 이번엔 좀처럼 그들의 세계로 들어갈 수 없었다. 뉴욕은 다른 도시였다. 마약상은 미술관에 드나들었고, 하버드 출신의 부유한 금융업자의 딸은 마담(포주)이 되었다. 뉴욕 사람들은 끊임없이 이동했다. 진정한 공동체는 이들이 맺은 관계의 총합, 곧 뉴욕의 여러 지역을 오가면서 얻은 사회적 유대였다. ‘지역사회’를 네트워크로 표현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본질적으로 위험한 지하경제, 삶의 유형이 취약하고 규정하기 어려운 세계에서는 어떤 의미일까? 게다가 뉴욕 사람들은 물리적 공간만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예정된 운명까지 뛰어넘고 있었다. 한 개인의 출신이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정의한다거나 교육은 성공의 주요 예측 요인이라는 법칙은 접어두어야 한다.(39)
물론 이렇게 사회를 바꾼 것은 구조적 변화였다. 줄리아니 시장이 시작한 뉴욕의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때문이다. 뉴욕의 맨해턴 클린턴 구역을 이르던 이름 ‘헬스 키친 (Hell’s Kitchen)’, 아일랜드 계 폭력조직의 유혈사태로 유명했던 이 지역에 의욕적으로 도시 정화 정책을 추진한 결과 관광객의 돈의 들어오고 재개발과 재건축 등의 도심 재개발로 고소득층이 저소득층이 거주하는 주거지역에 모여드는 현상, 즉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되었다.(13) 젠트리피케이션에 앞장서서 뛰어드는 중상류층을 젠트리파이어(gentrifier)라고 한다.(65) 그러고 보니 요즘 한국에서 알려진 젠트리피케이션과는 조금 다른 이야기다. 홍대입구나 삼청동 같은 임대료가 저렴하고 한적한 지역에 멋을 부린 작은 가게나 예술인들이 자리를 잡는다. 동네가 유명해지고 유동인구가 생겨서 상권이 좋아진다. 임대료가 오른다. 대기업이 진출해서 대규모 투자를 통해 점포를 낸다. 임대료를 내기 어려운 가게들은 그곳을 떠난다. 특색이 없어지자 사람들의 관심이 적어진다. 이런 일이, 홍대 입구, 삼청동, 신사동 가로수길, 연낭동, 망원동으로 계속 반복된다. 서울의 이런 일들은 유동인구의 이동 변화를 따라 돈이 춤추듯 움직이는 것을 말한다. 반면, 고전적인 젠트리피케이션은 예술가들이나 소상인들이 젠트리파이어로 뛰어드는 점에서 다소 유사하긴 하지만, 노동자들이 거주하던 범죄율이 높은 주거지의 재개발로 이어지고, 주거지 변화로 저소득층이 이 지역을 떠나고, 신흥중상류층이 들어오는 내부 이민(migration)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하는데. 서울에서 요즘 말하는 젠트리피케이션은 그렇지 않다. 반면, 서울에서도 젠트리피케이션은 그동안 매우 많았다. 예를 들면, 목동 재개발, 얼마전 청계천 단장과 동대문 지역, 아현동 재개발 같은 서울의 주요 달동네들을 대규모 중산층 아파트 단지로 재개발한 것이 바로 젠트리피케이션이다. 서울의 젠트리피케이션은 정부의 힘에 의해서 지역과 단지를 형성하고, 용역을 동원한 철거가 이루어지고, 조합을 통해 이익을 분배하는 형태를 띄는 점이 좀 다르다. 어떻게 보면 둘 다 젠트리피케이션이라고 볼 수 있겠지. 거리를 청소하고, 사람들을 내쫓고, 그 사람들을 다시 불러서 거리의 청소부로 쓰는 이 방식은 한 두해의 일이 아니고 수천년 지속된 일이니까.
거리의 한 구석(corner)에 자리를 잡고 마약을 팔던 마약상은 줄어들었다. 조직적인 폭력집단도 점차 사람들 사이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그렇다고 그들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사람들은 여기저기서 마약을 팔았다. 마약은 더더욱 사람들 사이로 숨어들었다. 점점 거리에서 매춘부를 발견하기 어려워졌다. 그렇다고 뉴욕의 성매매 산업이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돈은 이상한 곳에서 튀어나오고 돌아다녔다. 거리의 매춘부는 사라졌지만, 에스코트 서비스를 통해서, 또 성매매 여성들이 호텔이나 바에서 외로운 남자들을 찾는 일은 흔했다. 매춘업은 실내 매춘업으로 바뀐 모양이었다.(65) 문득 두 편의 미드가 떠올랐다. 하나는 얼마전 큰 인기를 끌다 마친, 「Breaking Bad」. 폐암 말기 판정을 받은 고등학교의 화학 교사가 전공을 살려, 순도 높은 ‘메스 암페타민 (필로폰)’ 제조와 판매에 나선다는 이야기. 또 하나는 「Weeds」라는 드라마 였는데. 백인 중산층 여성이 가정의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마리화나를 구해서 판다는 이야기다. 처음에는 좀 어처구니 없고, 그로테스크한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다시 보니 더 이상 마약이 조직의 문제만이 아니고 사람들의 일상 속으로 얼마나 파고들었는지, 풍자한 거였나 보다. 두 드라마와 『플로팅 시티』가 함께 ‘경계’가 없어지고 있음을 지적한다. 범죄조직과 개인의 경계가 사라지고, 마약이라는 엄청나게 위험한 물건도 그냥 보통의 미국인이 상황이 (많이) 나빠지면 다룰 수 있다. 그만큼 도처에 널려있다는.
그 결과 새로운 세계가 나타났다. “경계가 허술한 새로운 세계” . “나는 내내 브리콜라주(bricolage) 곧 현재 있는 것과 파편들을 짜 맞춰서 새로운 질서를 만드는 기법을 떠올렸다. 어쩌면 나는 새로운 양상을 관찰하면서 범죄의 지하 세계가 주류 사회와 상호작용하며 미래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새로운 눈으로 지켜보기 시작했을지도 모른다.”(15)
수디르는 뉴욕의 신종 성매매 사업을 파악하기 위해 에스코트 서비스와 밤거리의 바를 돌아다니다, 모티머를 만나게 된다. 이 70대 노인이 단골 술집에서 뇌졸증으로 쓰러지자, 즉각 병원으로 이송된 후, 후에 다시 이 거리에 나타난 그를 모두 도와주는 ‘모티머 공동체’가 즉석에서 형성되는 것을 보게 된다.(75-76) “모티머의 친구들은 서로 도와주긴 하지만 이들의 유대관계는 종교나 민족, 지역이나 심지어 인종이나 성정체성 같은 공통의 낙인에 뿌리를 두지 않았다.” “상호 이해와 애정을 바탕으로 형성된 비공식 네트워크, 곧 즉흥적인 공동체는 셀 수 없이 많아 보였다. 이들은 흔히 사람들을 분류하는 사회학적 요인인 인종이나 계급 같은 모든 경계를 뛰어넘어 함께 뭉쳤다.”(77) 물론 이런 공동체는 서로가 서로에게 빚(절반은 섹스)을 지고, 사업상의 거래도 하고 있었지만,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것이다.(78) 낭만적이고 그럴 듯한 미담을 담아, 소설도 쓰고, 영화도 만들 수 있겠지. 그러나 수디르가 그리는 이면을 보면, 느낌이 좀 다르다. 이것은 이 어두운 거리의 생존방식이다. 이것이야 말로 이 비정상적 범죄에 연관된 거래를 통해 형성되는 거리의 작동방식이다. 서로 돕지 않으면, 존속할 수 없다. 이 거리가 무너지면, 생계가 무너지고, 떠나야 한다. 모두들 근근이 살아가지만, 누구도 돈을 버는 사람은 없다. 그저 서로가 서로에게 조금씩이라도 이익을 취하면서, 근근이 살아간다. 가난한 자들은 서로가 서로의 먹이가 된다. 서로가 서로를 조금씩 먹어치우는 것이 그들의 생존방식이었다.
시카고의 마약상이 소개해 준 뉴욕의 마약상 샤인은 포르노 비디오 가게로 안내하고, 그가 소개한 만준(남아시아인)이 매니저로 일하는 포르노 가게 뒷방에서 수디르가 발견한 것은 “섹스는 사람들을 하나로 연결한다는 사실.” “성적 결합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연결했다. 섹스가 감춰진 세계 전체를 실로 엮어서 지역사회를 수천가지 방식으로 통합하는 것처럼 보였다. 남아시아인들은 비디오 가게에서 점원으로 일하거나 직접 운영했다. 서아프리카 남자들은 클럽 입구에서 호객 행위를 했다. 이들의 아내는 성매매 여성의 아이들을 돌보았다. 멕시코나 중앙아메리카에서 온 사람들은 비밀리에 비디오 가게 뒷방이나 클럽에서 청소부나 잡역부로 일했다. 그리고 내가 주로 인터뷰했던 성매매 종사자들은 세계 각지(유럽, 아프리카, 오스트레일이라, 중국, 싱가포르, 브라질)에서 온 사람들로서 섹스라는 보이지 않는 실로 전 세계를 하나로 연결했다.(101) 현대 도시의 성노동자에게는 공동체가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었다. 새로운 성매매는 후미진 뒷골목에 국한되지 않고 친구나 손님을 통해 도시 전역으로 뻩어나갔다.(117) 성매매는 단지 매매자와 매수자가 있는 두 사람 만의 거래가 아니었다. 섹스라는 재화는 지역경제를 창출했다. 이민자와 최하층 미국인들의 삶은 점점 상황이 나빠졌다. 거리의 매춘부는 줄어들었고, 외로운 남자 손님 하나를 두고 싸웠다.(103) 만준과 그의 동료 산토스는 이런 일에 관여하면서 돈을 모아 방글라데시에 있는 가족을 미국으로 빨리 데려올 수 있었고, 약간의 돈을 모아 식당을 차리기도 했다. 그들은 곧잘 망해서 이곳으로 되돌아 왔다. “그러나 이런 현실은 주류 사회에 전혀 드러나지 않았다. 줄리아니 시장이 타임스퀘어 주변 정화 운동을 벌이기 시작했을 때 의사 결정권을 가진 사람들 중 누구도 성매매라는 경제 동인을 빠트리면 경제를 ‘지탱’하던 수많은 사람이 생계를 위협받을 거라는 측면을 조금도 고려하지 않았다. 이들을 합법 경제로 끌어내면 된다는 낙관적인 생각은 사실 청교도적 위선에 불과했다. 이들에게는 범죄가 바로 정상적인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었기 때문이다.”(107) 내가 수디르의 책을 읽으면서 거리를 두고 고민하기 시작한 지점이 여기였다. 그는 한 마디로 윤리나 도덕이라는 2차적인 기준은 생계라고하는 절박한 현실 앞에서는 무의미하다는 거였다. 그렇다고 모든 걸 다 팽개치지는 않지만, 그에게 가장 중요한 윤리는 사실 연구 윤리였다. 그는 개입자가 될 수 없었고, 관찰자의 자세를 유지해야 했기에, 그리고 그건 그 자신의 재화 획득 방식인 동시에 생존방식이었던 셈이다. 생존에는 윤리나 품위는 무의미한 것일까? 거기에도 그런 의미는 있는 것일까? 품위있는 생존이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품위와 자기자신을 지키는 문제에 대해서 어떤 식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이런 고민을 할 때쯤, 수디르의 책은 어떤 사람에게는 급하게 찾아오는 파국적 결말을 내비쳤다. 이런 생활 조차 불안하기 그지 없었다. 사람들은 버텨내지 못하고, 언제든 떨려나갔다. 범죄가 유일한 창구이고, 범죄를 통해 생존하던 사람들은 범죄에 가장 취약했다. 다른 범죄의 피해가 되어서, 또 다른 범죄로 이 피해를 넘어설 수 없을때, 그들은 떨려나갔다.(129-130) 범죄와 그것을 통해 형성되는 경제에서 성공적인 결말이나 손을 씻고 빠져나오는 일은 좀체 보기 어려웠다. 범죄는 매우 자주 파국적 결말을 낳았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로마서 6장 23절 상.
뉴욕을 보아오던 전통적인 관점들, 대도시 뉴욕에서는 가난한 이민자도 성공할 수 있다거나, 승자에게는 혜택을 주지만, 패자에게는 무자비한 도시라는 시각은 이제 무의미했다. 21세기의 이민자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출신의 흑인, 즉 유색인종들이다.(멕시코, 가나, 사하라사막 이남의 아프리카,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중국 등) 낸시 포너에 따르면 뉴욕 인구의 37%가 이민자이고, 자녀를 포함하면 더 늘어나고 있으며, 이들은 미국식으로 이름을 줄이거나 억양을 버리지 못했을 뿐 아니라, 공장이나 공무원 같은 괜찮은 일자리가 뉴욕에서 사라졌기 때문에, 부유층에 서비스를 제공하는 저임금 서비스 분야에서 점원, 택시 운전, 청소부, 유모, 식당 보조 등으로 일했다. 이런 불법 노동은 승진기회도 없었고, 이들은 노동조합에 가입하지도 않았다. 결국 뉴욕의 이민자들은 같은 계층이나 민족이 아닌 사람들과는 제한된 관계를 맺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영어가 부족하고 피부색이 어두운 이들은 백인 손님을 확보하거나, 취업할 기회가 없었고, 무엇보다 뉴욕에서 제2의 통화라 할 문화생활에 관심이 없었다. 음악, 영화, 미술, 음식 처럼 사람들이 서열 없는 관계를 맺으면서 대화를 나누는 주제에 대해 무관심했고, 자기네 민족의 세계에만 머물고, 악마의 손에 사회적 용기를 빼앗겼다. 자식의 미래에 희망을 거는 고전적 방법도 희망이 점차 줄어들었다.(127-129)
‘문화 자본’이 결국 중요했다. 범죄자들로 연결된 세계에서도 말이다. 영화나 드라마에 종종 나오는 세련된 보스들의 이미지 같은 것은 실상 그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거리를 오가면서, 구역을 넘나들고, 바와 에스코트 서비스를 전전하는 성매매 노동자에게도 문화 자본이 중요했다. 문화 자본이 있으면, 돈 많은 백인 손님을 얻을 수 있었고, 상대적으로 폭력에서 덜 위험했다. 거구의 흑인 마약상도 문화 자본이 있으면, 백인들의 갤러리를 드나들면서 마약을 팔 수 있었다. 범죄 세계에서의 생존은 무자비한 폭력, 잔혹함, 냉정한 계산 이외에 문화 자본이라는 새로운 자산을 요구했다. 한국 사회에서도 중하층에서 하층으로 계속 떨어지면서, 삶에서 고전을 거듭하는 이들에게 가장 결핍된 것이 문화 자본이다. 문화 자본은 결국 자본으로부터 나온다. 문제는 거기에 있다.
“”자기야, 그래서 문제야, 스스로 개똥 취급을 당해도 싸다고 생각하잖아.” 나는 움찔했다.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보다 유독 가난한 사람들은 일이 안 풀리면 스스로를 패대기쳤다. 사회가 그들에게 믿으라는 대로 믿으면서 자신들이 처한 문제는 전적으로 자기네 탓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사회학을 연구하면서 알게 된 가장 슬픈 현상 중 하나였다.”(151) 지금 성매매하던 지역이 망해가자 더 나은 방법을 찾으려고, 인터넷으로 새로운 아파트를 구하면서 몸부림 치던 몇몇 여자들의 이야기다. 며칠 전 읽은 『희망난민』에서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했다고 생각하면, 그때부터 성공이든 실패든 자기 책임이라고 생각한다는 내용이 있었다. 후루이치는 절반은 사회책임이라고 말했다. ‘당신 책임이 아니라’는 말이 어떻게 도덕적 해이와 무책임를 피하면서, 사회 개혁을 향한 요구로 전환시킬 수 있느냐의 문제인데. 그럴 수는 없는 건가. 수디르는 1965년 모이니한 보고서에서 나온 노예의 역사와 여러 세대에 걸친 편모 가정으로 인해 복잡하게 뒤얽힌 병리가 발생하면서 도심 빈민가 흑인들이 주류 사회에 진입하기 어려워졌다는 주장을 반박하려고 노력해 왔다. 2000년 이후로 빈곤은 도심보다 교외에서 더 빠르게 증가했고, 교외 중산층에게도 가족의 역기능이 존재하고 알코올 중독과 약물중독, 가정 폭력과 그 밖의 비행이 심각한 수준인데. 언급되지 않고 있다. 게다가 수디르의 관찰에 의하면 가난한 사람들은 사실 회복탄력성과 경제적 창의력이 뛰어난데, 그 이유는 이들이 넘어야할 장애물이 더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 사회는 사회계급이 전복되는 방향이 아니라 강화되는 방향으로 굳어졌으며, 지난 20년 동안 미국의 계급 구분은 공고해져서 사회 이동이 거의 동결된 상태였다.(190-191) 나는 여기서 문득 버니 샌더스에 대한 지지에서 나타나는 일종의 백인 현상을 읽을 수 있었다. 계급과 불평등 문제는 어쩌면 백인의 문제인지 모르겠다. 이민자 문제는 저소득층은 그건 아예 계급 구조 바깥에 있는 사람들의 문제가 아닐까. 이들이 빈곤을 극복하기 위한 구조적인 해결책 같은게 있기나 할까. 무너진 마음은 도대체 어떤 식으로. 그러나 이들은 여전히 빅 애플에서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고 있었다.(193)
마드리갈 신부라는 사람이 있었다. 안젤라와 보니가 성매매하는 아파트를 방문하던 신부. 카를라가 크게 다치자 그가 도움을 주었다. 다음은 수디르가 옮긴 그의 말이다. “이번 일을 진지하게 생각하길 바랍니다. 여러분은 어떤 이유가 있어서 서로의 인생으로 걸어 들어간 겁니다. 각자의 필요에 의해서, 그러니까 꼭 돈과 은신처를 구하려고 만난 사이만은 아니에요. 여러분이 여기 모인 이유는 서로에게 부름을 받아서에요. 이걸 생각해 주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여러분이 카를라에 대해 져야 하는 책임도 생각해주기를 바랍니다.” 카를라를 위한 쉼터에 필요한 비용을 요청했다. 350$. 적지 않은 금액이긴 하지만, 식비는 성당 부담이었다. 그는 떠나기전 기도했다. ” 하나님, 아버지, 주 예수의 이름으로 여기 모인 여인들에게 은총을 내리시고 고단한 싸움에서 이끌어주시기를 청하옵니다. 이들을 치유해주시고 하나님의 모든 자식이 받아야 할 사랑을 내려주십시오.”(164-165) 하나님의 모든 자녀라면 마땅히 받아야하는 그 사랑이 가로막혀 있다.
수디르는 마고라는 성매매 브로커와 연결된다. 뉴욕과 뉴저지 노동자 계급이 많이 사는 교외에서 교사와 건설 현장 감독관의 딸로 태어나 아일랜드 가톨릭교도가 많이 다니는 공립학교에 다니면서 평균 B+이상의 성적, 교회 활동에도 열심이었고, 고등학교 졸업 후 채권 판매인과 결혼, 맨해튼으로 이사했고, 법률 회사에서 임시직으로 일하면서 야간대학에 다녔고, 법학 학위를 따려 했었다. 그러나 남편의 외도, 이혼, 술에 빠졌다가, 남편의 친구들과의 성매매를 시작으로, 결국 성매매 노동자에서 브로커가 되었다.(201-203) 마고는 카를라를 재교육하는 과정에서 부르디외의 ‘문화 자본’이라는 주장을 따르고 있었다. 정말로 큰돈을 벌고 싶으면 좋은 음식을 즐길 줄 알고 정치나 오페라에 관해 대화를 나눌 줄도 알아야 했다. 문화 자본으로 경계를 뛰어넘는 능력이 성공의 필수요건 처럼 보였다. 부유한 백인 고객을 상대하고 백인처럼 말하고 백인처럼 행동하고 심지어 좀 더 ‘백인처럼’ 성관계를 맺는 법을 배워야 했다. 문제는 이런 태도가 인종차별에 빠지기 쉽다는 데 있지만.(217-218) 이때쯤 수디르도 연결성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샤인도, 마고도 사람들을 연결하고 있었다. 거기에 필요한 것이 문화 자본이었다.(226)
상류층과 중류층 그리고 하류층을 연결하는 것은 섹스였다. 수디르는 그래서 이들이 교차하는 지점을 찾기 시작했다. 고급 성매매 종사자들을 인터뷰한 결과 모두 중산층 출신이고, 예술가(연기자, 모델, 무용수) 지망생으로 마사지 치료사나 헬스 트레이너로 일하고 성매매로 부수입을 올렸다. 아메리칸 드림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 였다. 두번째는 마고처럼 비즈니스 세계의 말단에서 일하는 판매원, 변호사 보조, 비서, 인사과 직원들로 매춘은 생계 유지의 방편이자, 남자들에게 죄를 짓게 하는 보복의 방법이었다.(242) 그러다가 수디르는 돈을 주고 성을 사는 것이 범죄가 아니며, 결혼 생활을 유지하는 수단이라고 강변하는 부유층 성매수자를 만나기에 이른다.(252-254) 마틴은 마침내 수디르를 자기 아내에게 모든 사실을 고백하려는 순간에 까지 끌어들인다. 수디르는 도망치지만.(267) 문화 자본을 가지고 경계를 뛰어넘는 능력이 중요해 보였지만, 경계를 넘어서는 방법은 단 하나의 길 섹스 뿐이었다. 지극히 친밀한 행위, 모든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내밀하고 사적인 일로 여기도록 훈련받은 행위가 보이지 않는 실이 되어 뉴욕 사회 각계각층을 하나로 연결하고 있었다. 늘 새로운 조건이 형성되고, 막대한 돈이 떠돌았다.(264)
다시 아날리스라는 하버드 출신의 백만장자의 딸이 운영하는 성매매 서비스로 되돌아간다. 도대체 이들은 왜 이런 일을 하는 것일까. 수디르는 우선 이들의 특권의식을 지적한다. 이 여자들은 상대적으로 부유하고 특혜를 누리기 때문에 이쪽 세계에서 성공하는 데 중요한 문화적 소양을 갖춘 셈이지만, 이들에게는 단순한 무심함, 그들을 위협할 사람은 없다는 특권 의식이 배어 있었다. 수디르 마저도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이들은 다른 별에서 온 사람들처럼 아주 자연스럽게 특권 의식을 드러내며 정당한 일을 하는 것처럼 굴었다. 이런 특권 의식은 돈 주고 못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돈으로만 살 수 있는 것이었다.(294-295) 빈민가의 만준은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하려고 애쓰고, 가능하면 신성함을 보여주면서, 어떤 식으로든 신과 화해해야 했지만, 이들은 한 번도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해야 한다는 압박에 시달리지 않을 뿐 아니라 정당화하기를 거부하면서 승리감에 도취되어 보였다.(296-297) 아날리스가 다시 마담 일에 전념하는 것은 스스로의 능력과 요령이 가진 돈보다 월등하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싶었기 때문이고, JB(포르노 영화를 찍는 부유층의 아들이자, 영화 제작자 지망생)는 수디르가 그를 어떤 범주를 넘어선 사람으로 봐주길 바랬다. 둘 다 자수성가한 사람으로 비춰지길 바랐고, 단지 부유한 배경의 산물이 아니라 자기만의 뭔가가 있는 사람으로 봐주길 바랬다.(310-311) 그렇지만 아날리스 같은 개인주의자도 관계망을 넘어서는 일은 어려웠다. 빈민가 가난한 사람들이 떠났다가 돌아왔을 때, 외부인으로 배척당할까 봐 두려워 작은 어항을 떠나지 못하는 것과는 달랐지만, 아날리스도 관계망의 지원이 필요했고, 과거의 인맥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인맥을 쌓아가는 일, 즉 관계망의 확장은 쉽지 않았다.(312-313)
마고는 은퇴했다.(323) 카를라는 빈민가의 여자들을 뿌리치지 못했다. 도움을 주고 영향력을 끼치려했다. 그녀의 사회자본은 사회비용이었다. 빈민가는 어항이지만, 서로의 사정을 잘 알고 서로가 서로에게 신세 지며 살고, 언제든 부탁을 들어줄 누군가가 있었다.(332-334) 카를라는 때가 되면 선택해야 한다는, 그 여자들은 네 밑에서 일하는 여자들이라는, 강해져야 한다는 마고의 충고를 받아들이지 못했고, 결국 여섯달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341-342) 하지만 아날리스와의 마지막 대화는 부자가 왜 부자인지 보여준 씁쓸한 장면이었다. 아날리스는 케이트에게 사업을 넘길지, 갤러리에 투자할 지, 인도에 가서 삼촌이 학교를 확장하는 일을 도울지 고민했고, 파리에 가서 부티크를 열 수도 있었다. 아날리스의 세계는 제2의 기회가 주어지는 룸퍼룸으로, 부자들이 누리는 세계화의 무한한 전망을 보여주는 증거였다.(350) 나는 비로소 부자가 무엇인지 정의할 수 있었다. 부자에게는 언제나 두번째 기회(second chance)가 있다. 어떤 실패를 했더라도.
수디르는 마지막에 이렇게 정리한다. 뉴욕도 지역과 이웃을 중시한다는 점에서 시카고와 비슷하다. 그러나 다른 점들이 있다. 예를 들면 오래가지 않는 인맥. 성공의 열쇠는 즉흥적으로 연결된 사회적 인맥을 신속히 쓰고 버리는 능력이었다. 뉴욕은 사람들에게 인종과 계층을 넘어서라고, 사회적 신분에 의문을 품으라고 자극했다. 대부분이 실패했지만, 몇몇은 인종과 사회적 한계를 통해 교훈을 얻고 계속 앞으로 밀고 나갔다. 뉴욕처럼 혼돈의 도시를 연구하기 위해서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방법이 가장 유효하다.(353-355) 부유(float)해야 했다.(357) 이런 식의 사회적 인맥이 경계를 뛰어넘으면서 확산되는 건 서울도 완전히 똑같다. 그 인맥이 휘발성을 띄는 것도.
마지막 부분으로 넘어가자 내가 살고 있는 사회 살아가는 사회와 너무 자주 겹쳐지면서 굳이 설명하기가 싫었다. 흥미로운 책인가, 배울 점이 있는가, 생각할 점이 많은가? 물론이다. 그렇지 않으면 끝까지 읽지 못했을 것이다. 인간군상이 펼쳐지는데. 그런데 읽으면서 정말 씁쓸한 느낌이 든다. 생존을 위한 성매매와 범죄, 좀더 큰 기회를 제공해 주는 문화자본, 그 와중에서 벌어지는 부자들의 인정 투쟁, 빈민가 안에서 살아남기, 범죄 현장을 벗어나기, 범죄를 부유하면서 떠돌기. 그리고 도시를 넘나드는 연결망의 세계. 마음에 남는 것은 마드리갈 신부의 기도 뿐이다.
“하나님, 아버지, 주 예수의 이름으로 여기 모인 여인들에게 은총을 내리시고 고단한 싸움에서 이끌어주시기를 청하옵니다. 이들을 치유해주시고 하나님의 모든 자식이 받아야 할 사랑을 내려주십시오.”
나는 이 글을 쓰면서도 부담스러웠다. 이런 생존투쟁의 현장에서 나도 글을 써서 부당이득을 취하는 것은 아닐까. 이해하면서 비평하려니, 머리 속이 어지럽고 무겁다. 빨리 정리해두고, 넘어가고 싶다.
2016. 4. 11.
* 괄호 안의 숫자는 번역서의 쪽수이다.
** 이 글의 저작권은 ⓒFELIVIEW.COM에게 있습니다.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