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니 스타크Rodney Stark, 『우리는 종교개혁을 오해했다: 교회가 500년간 외면해온 종교개혁의 진실Reformation Myths: Five Centruries of Misconceptions and Some Misfortunes』, 손현선 역, 헤르몬, 2018.
이런 제목은 일단 흥미를 불러 일으킨다. 그리고 종교개혁에 뭔가 큰 비밀이라도 있기나 한 것처럼 들여다 보게 된다. 그러나 살펴보면 종교개혁에 뭔가 대단한 비밀 같은 것은 없다. 종교개혁을 둘러싼 신화들이 있을 뿐이지, 로드니 스타크는 그 신화들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 그 신화들의 정체를 까발린다. 문제는 그 신화들 모두에게 저자가 있거나 저작권이 있거나 본래의 어떤 뜻이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건 그냥 구전되는 신화들 떠도는 이야기들이다. 그래서 공격하기도 어렵다. 싸우려면 그 대상을 정제하고 윤곽을 그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드니 스타크는 윤곽을 그린다. 그리고 그 윤곽은 어떤 괴물의 모습을 하고 있다. 그래서 싫컫 싸우고 무찔러 버리지만, 원래 그런 괴물이 없었다면 혹은 잘못 상상해낸 괴물이라면 그때 문제가 시작된다. 문제는 이런 것이다. 괴물을 상상해서 싸우려면, 적어도 한 두개는 구체적인 모습을 제시해야 했다. 예를 들어서 빌리 그레함 또는 미국의 유명한 설교가들의 설교 구절을 언급하든지 아니면, 종교사가들의 주장을 언급하든지.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자기 마음 속에 그려진 이미지를 따라서 윤곽선을 그린채 이야기 한다. 그래서 주장은 그럴 듯하지만, 내용이 있는 것인지 확인하기 어렵다. 그가 유일하게 그 괴물의 대상을 그려서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이야기할때, 즉 막스 베버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자신이 가진 인식의 허약함을 드러낸다.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신화가 있다는 데, 동의하고 고개를 끄덕일 터이지만, 이 책을 읽고 난 후엔 외려 조심스럽게 중얼거리게 된다. 그러니까 진짜 그런 신화가 있는 건가?
이 책에서 또 하나 기기묘묘한 점을 든다면 주의 처리 방식이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후주로 되어 있다. 그러나 그 후주 기입 방식은 소위 하버드 식이라고 하는 저자, 연도:쪽수의 형태로 되어 있다. 보통 이런 형태는 본문에 괄호로 삽입한다. 그런데 이 책은 모두 후주로 되어 있다. 그래서 어떤 주장에 대한 출전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일단 후주를 확인한 후, 후주에서 저자와 출간연도를 보고, 그 뒤에 나오는 참고문헌을 확인해야만 하는 것이다. 왠만하면, 주와 참고문헌을 확인하는 나로서도 이번에는 완전 지쳐버렸다. 하나를 확인하기 위해 책을 세번씩 넘겨가면서 확인해야 한다는 건. 원래 영어책이 그렇게 되어 있다. 참 특이한 편집방식이다. 그러다 어떤 주에 보면 자료 출처가 위키피디아로 되어 있었다. 대학생 리포트도 그런 걸 인용하면 안되는데. 위키피디아에 단순하게 항목표시만 되어 있었다. 그러나 알다시피 인터넷 상의 자료를 인용할 때, 정확한 URL과 열람한 날짜를 명기해야 하는 법. 그 중에서도 저자가 불분명하고 언제든 고칠 수 있는 위키피디아 같은 자료의 인용은 하지 않는 법인데. 사실 각주에서 위키피디아를 확인한 순간부터 책을 꼼꼼히 읽어야하는 이유를 잃어버렸다. 로드니 스타크의 가장 유명한 책 『미국 종교시장에서의 승자와 패자The Churching of America』가 떠올랐다. 하버드 식 표기법을 그대로 가져온 이 책의 번역본에는 참고문헌이 아예없다. 그래서 아무 것도 확인할 수 없다. 일일이 입력하기 번거로우면 모 출판사가 흔히 하듯이 그냥 복사해서 붙여놓기라도 하지.
여튼 그래서 이 책은 종교개혁에 관한 신화들을 하나하나 소환하면서 파괴해 나간다. 종교개혁으로 신앙부흥이 일어났다는 신화. 종교개혁과 민족주의 문제. 개신교 윤리하는 신화. 개신교가 과학혁명에 긍정적 역할을 했다는 신화. 종교개혁이 서구 개인주의를 앞당겼다는 신화. 교회는 세속화로 침체될 것이라는 신화. 이런 신화들은 분명히 있다. 그런데 그런 신화들은 실은 어디에나 있는 것 같으면서도 있는 장소를 확인하기 어렵다. 즉 어디에도 없다. 그런 신화들은 사람들의 입담 속에, 목사의 설교 중에 있는 틀린 또는 과장된 예화들 속에, 교회를 떠도는 사람들의 속설 속에, 그리고 기독교에 근거한 통속적인 자기개발서에도 있다. 이런 신화를 공격하려면, 먼저 그 신화들을 구체적으로 출전과 함께 그 모습을 불러냈어야 했다. 그러나 로드니 스타크는 그런 것들이 있다는 동의하에 신문 칼럼을 쓰듯이 논의를 전개해 나가는 데, 그래서 나는 책을 읽으면서 로드니 스타크가 이해하는 것과 내가 생각하는 게 같은 것인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했고, 결국엔 더 깊이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 이런 글쓰기에서 반드시 피해야하는 어떤 방식에 대한 교훈이었다.
로드니 스타크의 출발점은 아주 건실하다. 그는 무엇이 개신교인지, 그리고 무엇이 종교개혁인지 정의할 수 없다는 데서 시작한다. 이 책이 출간된 2017년에 치러진 종교개혁 500년 행사들은 루터파 종교개혁을 기리기 위한 것이 아니다. 유일한 공통분모는 ‘개신교의 발흥’을 축하한다는 것이다.(10) 그 종교개혁이란 실은 독일의 루터파, 프랑스와 네덜란드의 칼빈파, 영국의 성공회 그리고 독일의 재세례파의 봉기 등을 대충 어울러서 하는 말이며, 정작 그 당사자들은 서로 증오하면서 싸웠다는 사실이다.(9-10) 종교개혁자들 사이에 연대란 없었다. 게다가 개신교란 사전적으로 로마 카톨릭과 정교회가 아닌 모든 신자를 말한다. 성공회를 빼는 경우도 있다.(11-12) 2001년을 기준으로 개신교단은 33,000개 사하라 이단에만 11,000개의 개신교 교단이 있다. 그리고 이를 10개의 일가family로 구분한다. 그리고 그 안에도 엄청난 차이들이 있다. 교리상으로 절대 화해할 수 없는 차이들이.(12-13) 한국에서는 개신교라면 일단 대부분 장로교를 생각하고, 다음은 감리교, 그 다음엔 순복음이나 침례교를 생각한다. 성공회를 개신교로 보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니 일단 개신교나 종교개혁이라는 것이 실제 정의할 수 없는 또는 정의하기 아주 어려운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 지적에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무엇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을 가지고 칭송할 수는 없는 일이지. 비판하는 로드니 스타크도 그것을 칭송하는 이들도 허망하기는 마찬가지다. 자신이 뭘 자랑스러워하는지 그걸 정확히 말하지도 못하면서는.
마이클 왈저(월저가 아니라 왈저)가 말했든 중세의 경건성과 독실한 농민으로 꽉 찬 교회란 이미지는 근거가 없다.(19) 13세기에는 사람들이 교회에 출석하지 않았다. 리차드 니버나 노만 콘은 개신교는 가난한 자들의 열망이라 말했지만, 사실이 아니다.(20) 사람들은 여전히 교회 밖에 있었다.(21) 저조한 출석률은 물론 기독교의 기본적 사실에도 무지했다. 십계명도 몰랐다.(23) 성직자도 무지는 마찬가지였다. 종교개혁 이후 등장한 몇몇의 잘 훈련된 성직자는 청중의 수준에 어울리지 않았다. 로크는 성공회 성직자의 설교는 일용직 노동자에겐 아랍어라고 말했을 정도다.(25) 루터파 신앙교육의 진수인 『대교리문답』도 십계명에 대한 난해한 해석, 대학교수인 루터의 해석을 제공한다.(26) 한 마디로 서로 맞지 않았다. 유럽인들은 고대 의례, 절기별 풍속, 토속 가톨릭, 마술의 조합인 자기 나름의 신앙생활을 했다. 지금과 똑같이.(26-27) 국왕들이 개신교나 가톨릭을 선택한 것은 신앙이 아닌 자기 이익 때문이었다.(29) 가톨릭에 잔류한 프랑스와 스페인의 군주는 교회 재산에 자신의 지분을 가지고, 교회를 통제할 수 있었다.(30-31) 군주들이 개신교로 전향한 영국, 덴마크, 스웨덴 등의 경우 교회재산을 몰수하여 막대한 수익을 얻었다.(32-34) 교회 토지 몰수와 교권의 제한은 일반 시민의 이해와도 부합했다.(34) 종교개혁이 제한적 군주제를 열었다는 통설이 있지만, 가톨릭 교회는 왕권이 신성하다고 말한 적이 없다. 반면 루터느 중앙집권화된 강력한 국가와 전제주제의 발전을 지지했다.(36-37) 국교회의 교회 통제는 군주의 권력을 크게 강화했다.(41) 종교개혁으로 교회의 장의자가 가득차거나 대중이 신념을 가지고 회심한 것도 아니고, 군주들의 개신교나 가톨릭은 선택한 것은 자기 이익 때문이며, 종교개혁을 군주의 절대권력은 크게 강화되었다.(42) 충분한 자료로 묘사하는 이 부분이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이다. 그러나 아주 새로운 이야기들은 아니고 흩어져 있는 사실들을 모아놓은 것이다. 이 부분을 읽다가 키스 토마스 『종교와 마술, 그리고 마술의 쇠퇴』를 읽어야 겠다는 생각만 커졌다. 번역되 되어 있고.
반면 종교개혁이 낳은 불운한 결과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국교회들은 억압적었다. 특히 북유럽.(46) 루터파 국교회는 종교의 자유를 가져온 것이 아니라 독점적 로마 가톨릭교회를 간판만 바꾼 독점적 교회로 대체했을 뿐이다. 교회출석 의무화, 성찬 의무화, 비밀집회 금지, 안식일 법 등이 정해졌다.(48-49) 제네바의 칼빈파 국교회는 의무적 예배출석, 지각은 벌금, 칼빈이나 성직자 모욕은 징역이나 출국, 의복, 식사도 제한, 도박, 카드놀이, 술집 등이 금지되는 등 훨씬 더 엄격했다. 반면 네덜란드 공화국 칼빈파는 종교적 자유와 관용을 공식정책으로 택했다.(50) 물론 저자가 추측하듯 돈 때문이다. 네덜란드가 일본의 나가사키에서 도쿠가와 막부 시절 교역을 허락받은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다른 나라들은 종교를 포교할 수 있는 권리를 요구했다. 가톨릭이든 성공회든. 금교라는 조건을 받아들인 유일한 국가가 네덜란드 칼빈파였다. 영국도 기도서와 교회출석을 강요했다. 그러나 소용없었다.(52-53) 아담 스미스의 예언처럼 유럽 국교회는 게으르고 비효율적이었다. 그리고 약화되었다.(54) 기독교는 증오와 불관용의 분위기에서 태어나 스스로도 그렇게 되었다. 개신교도 마찬가지다.(57-58) 종교개혁 이전에 유대인은 차별받았지만, 동시에 가톨릭은 반유대적 폭력을 막아주었다.(58) 그러나 루터의 반유대주의는 결국 나치로 이어졌다.(60-61) 루터는 회당과 학교를 불사르고, 주거지를 약탈하고 파괴하고, 기도집과 탈무드를 빼앗고, 랍비의 가르침을 금하고, 안전통행권을 박탈하고, 고리대금업 종사를 금지하고 재산을 빼앗고, 노동을 강요하거나 영구추방하라고 권고했다. 도륙한다해도 잘못이 아니라고도 말했다.(63-64) 그리고 물론 나치당은 루터를 충분히 활용했고, 많은 루터파 성직자는 이를 지지했다. 루터 생일에 유대인 회당을 불태웠다.(66-67) 이런 사실들 역시 그다지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정직하게 말하면, 많은 기독교인들이 애써 외면하려고 했던 것들이다. 특히 루터의 반유대주의에 대해서(칼빈도 예외가 아니다)는 어떻게든 설명하려고 시대적 한계르 부여하려고 많은 사람들이 애써왔다. 그러나 진실을 직면하는 것이 건강에 해롭지 않을 것이다.
로드니 스타크는 반면에 종교개혁이 기독교 왕국 특유의 민족주의화에 기여하여, 종교의 국제성이 소멸되고, 분열주의적 민족문화의 태동을 부추기고, 전쟁으로 이끌었다고 평한다.(71) 그는 기독교 왕국, 중세의 전쟁, 십자군 원정, 대학과 지적 생활 등을 들어 중세 유럽이 보편적 기독교이자 엘리트의 교류가 활발했던 것으로 평가했다.(72-82) 종교개혁은 국제 엘리트 문화 저변에 있었던 민족문화, 특히 언어를 가속화했고 정당화했다.(82-83) 이는 대학의 민족주의화로 이어졌고,(85) 하층민 뿐 아니라 상류층까지 각국 문화에 흡수되었다.(86) 독특한 문화를 가진 나라들이 근접해 있었고, 유럽 민족국가들은 밀집해 있었다. 프랑스 혁명과 독립전쟁들로 민족주의 열기가 들끓었다. 낭만주의로 고무되었다.(88-90) 시작은 프랑스 혁명이었다. 징병제는 전쟁의 성격을 바꿨고, 세계대전의 비극을 가져왔다.(92) 1차대전에 군인들은 환호를 받으면서 출정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유럽인들이 국가에 대한 절대 헌신을 합리화하려는 민족주의적 개명 열품에 휩싸였다는 사실이다. 독일의 웨스트민스터 호텔은 린델도프르 호텔이, 카페 피커딜리는 카페 파터란트(조국)으로 파리의 루 달레마뉴(독일 거리)는 루 쟝 조레가 되었고, 영국 왕실은 왕가 이름을 작센 코부르크 고타에서 윈저로 바꿨고, 많은 영국 가문이 개명했다. 견종의 이름을 바꿀 정도 였으며, 미국과 캐나다도 도시와 거리이름을 바꿨고, 자우어크라우트를 리버티 캐비지로 불렀다. 하겐 슐츠Hagen Schultz의 State, Nations and Natinalism을 인용한다.(93-94) 뭐랄까 조금 위안을 바꿨다. 이름타령을 하면서 이름을 바꾸는 건 동아시아 특유의 행동이고, 유교의 정명사상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생각했는데. 어디서나 하는 짓이었다. 하긴 소비에트 러시아가 제일 먼저 한 일도 이름바꾸기 였으니까. 그리고 1차 대전과 2차 대전의 참혹한 희생의 발단을 부분적으로 (민족주의) 종교개혁으로 인한 기독교 왕국의 파괴로 거슬러 올린다.(97) 맞고 틀리고를 말하기 전에, 부분적인 사실들이 있다. 민족주의가 전쟁의 양상을 바꾸고, 극심한 희생을 가져온 것은 사실이다. 그게 민족주의만의 잘못은 아니라고 해도. 그런데 그게 민족주의 탓이라고 하기는 좀. 게다가 기독교 왕국의 붕괴가 발단의 일부라니. 너무 낭만적인데. 오늘날 민족에 이어 종교 보다 더 극심한 분쟁의 원인은 없는데. 게다가 내셔널리즘은 그렇게 말해버리기엔 훨씬 복잡한 주제인데. 통설을 비판하려고 통설을 들면 곤란한데.
이제 개신교 윤리라는 신화 즉, 막스 베버를 공략한다. 그는 베버의 책 내용을 꽤 잘 요약한다. 그리고 베버의 논리는 산업 자본주의의 발흥은 종교개혁, 특히 칼빈주의의의 결과라고 말한다.(104) 산업자본주의 발흥한 곳은 개신교가 지배적이거나 개신교인이 자본주의 경제를 지배했다고 말한다.(105) 그래서 반대증거를 대기 시작한다. 자본주의가 발전한 암스테르담과 앤트워프는 가톨릭이다.(106) 터니의 『기독교와 자본주의의 발흥』을 들어 산업자본주의는 남유럽의 가톨릭 도시에서 유래했고, 북부에 자본주의가 출현했을 때 남부 출신 가톨릭은 은행가가 주도했다고 기술한다.(106) 자본주의 발흥이 종교개혁을 앞서며 모태가 카톨릭이라고, 로버슨과 커트 사무엘슨을 인용한다.(107) 페르낭 브로델 역시 지중해의 옛 자본주의 중심지를 강조한다.(108) 베버의 주장은 사랑받는 학술적 신화라는 것이다.(108) 유럽 여러 국가의 통계자료를 교차분석해도 자본주의는 개신교와 상관관계가 없었다.(109) 로드니 스타크는 종교가 실제 자본주의 발흥에서 역할을 담당했으며 매우 가톨릭적인 발명품이라고 말한다. 9세기의 수도원에서 생겨났다.(109) 어거스틴은 가격, 상품, 구매 욕구, 등 초기 자주의를 정당화했고, 수도원은 생산성의 증가로 자주의가 되었다. 교회는 유럽의 최대 지주였다.(110-111) 인구와 생산성이 성장했고, 도시가 수도원을 중심으로 생겨났다.(112) 수도원은 세련되고 장기적 관점을 지닌 관리조직이 되었고, 현금경제로 이행했다.(113) 신욛대출이 활발해 졌다. 수도원 대출은 모기지(죽음의 서약) 형태를 띄었다.(115) 수도사들은 전례 업무를 하면서 귀족처럼 살았다.(116) 대부분의 수도사와 수녀들은 일을 존귀하게 여기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었다. 베네딕트의 『수도규칙』일의 미덕을 제시하고 육체노동을 확신했다.(117) 수도회의 신학자들은 이윤과 이자에 대한 교리를 재고해야 했다. 아퀴나스는 고리대금이 아닌 도덕적 이자를 정당화했다.(119) 대출이자는 죄였지만, 예외가 많았다. 영지같은 생산적 재산을 담보로 제공하거나, 대부자가 여타의 상업적 기회에 돈을 쓰지 못하는 비용을 배상하거나, 겉보기에 모험적인 상업어음, 환어음, 환거래 등의 대출방식을 사용했다.(123-124) 교회는 12~13세기에 상업 혁명을 정당화했고, 거기 가담했다.(125) 이탈리아의 민주화된 도시국가들은 자본주의의가 꽃피우는데 최적의 환경을 제공했다.(125) 논의의 뒷부분은 로드니 스타크가 2016년에 쓴 Bearing False Witness: Debunking Centuries of Anti-Catholic History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어떤 의미에서 신화를 무너뜨리기 위해서는 신화의 담지자를 무너뜨려야 하기에 막스 베버에 대한 공격이 꼭 필요했을런지 모른다. 그러나 막스 베버는 개신교가 자본주의 경제를 낳았다고 말한 적은 없다.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 사이에 선택적 친화성이 있다고 말했을 뿐이지. 어쩌면 그가 지나치게 단순화를 했을런지 모르지만, 그는 통시적이고 전지구적 연구를 한 것도 아니고 일반이론을 수립한 것도 아니다. 막스 베버에게 이런 연구결과를 들이대면 아마 대부분에 대해서 고개를 끄덕이겠지. 그는 19세기말 20세기 초의 서유럽과 미국을 보면서 이야기했을 뿐이다. 게다가 옛 자본주의가 산업자본주의화 되지 못한 것도 사실이고. 남부에서 생겼지만, 북부에서 지배적이 된 것도 사실이고. 애초에 막스 베버가 말한 것보다 더 많은 진리주장을 그에게 부담시켰기 때문에 문제가 발생한다. 그렇다고 개신교와 자본주의가 상관괸계가 반드시 있다고 말하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막스 베버를 비판하는 사람들도 어떤 형태의 윤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에는 동의한다. 그래서 윤리를 발견해 내려고 애쓴다. 그게 가톨릭이든 일본의 통속도덕이든. 그리고 막스 베버도 윤리가 계속 필요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어느 순간 윤리가 필요한 축적 단계를 넘어가게 된다. 여튼 이제 와서 막스 베버의 책을 성경책 읽듯 읽고 문자적으로 말해도 곤란하고, 또 그런 사람도 없겠지만. 막스 베버가 남긴 흔적을 깎아내리는 것도 맘에 들지 않는다. 로드니 스타크는 좀 선정적이다.
과학적 진보는 13세기까지 올라가는 새 발명품인 대학이었다.(131) 16-17세기의 분출은 거인들이 오랜 세월 쌓아올린 토대에서 발돋움한 것이다. 과학혁명이란 없었다.(132) 막스 베버를 미국에 번역 소개하 탈콧 파슨스의 제자 로버트 머튼은 과학 발흥의 원인을 청교도주의에 제공한다. 영국 과학자들의 약력을 거론하면서.(134) 로드니 스타크는 17세기 이후 중요한 과학자들의 종교를 모두 파악했다.(136) 그 결과 청교도는 영국에서 단 세명 뿐이었다.(142) 화이트헤드는 기독교 신앙이 과학발흥의 필수 요건이라고 말했고, 이건 르네 데카르트를 이어받은 것이다.(143-144) 유럽인이 창조의 비밀을 궁구한 이유는 합리적 우주의 지적 설계자로서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며, 과학자의 종교 구성은 인구비율과 비슷할 뿐이다.(146-147) 대학 역시 부당한 대우를 받아왔으나 과학적 제도의 토대였다.(149) 영국이 과학의 선두주자였던 것은 영국이 산업혁명의 선두주자인 이유와 동일하다. 영국의 정치적 경제적 자유는 부르주아의 출현을 가능하게 했다.(150) 개신교 윤리라는 신화와 과학적 진보라는 신화는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다. 그것은 선진국이 왜 선진국이 되었느냐 또는 부자는 왜 부자가 되었느냐는 질문과 같으며, 그 대답은 하나님을 잘믿어서라는 답변이다. 개신교를 내세우는 청교도를 내세우는 답변은 하나님을 미국식으로 잘믿어서 부자와 선진국이 되었다는 것이고, 보다 폭넓게 유럽 전체와 가톨릭을 포함하는 답변은 하니님을 잘믿어서 그리고 유럽식으로 잘믿어서라는 답변과 동일하다. 미국과 유럽을 경쟁적으로도 볼 수 있고, 한 덩어리로도 볼 수 있다. 공격의 대상이 된 신화나 공격하는 전략이나 그 인종적 편협성이 드러난다. 여기에 일본이 근대화한 이유를 서유럽과 비슷한 여러 제도를 들이대게 되면, 탈아입구 논리의 완성이 된다.
마르틴 루터를 개인주의의 아버지라고 하며, 막스 베버도 개인적 동기를 강조했다.(157) 토크빌이나 자크 마리탱도 동의하며 우려를 표명했다.(158) 이번에는 뒤르켐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는 자살률 편차를 고민하면서 모르셀리의 결론을 인용한다. 개신교 신자가 가톨릭 신자보다 자살할 확률이 높다. 개신교는 예배의 외양에서 물질성을 부정하고, 도그마와 신조를 자유롭게 탐문하며, 성찰적 사고력을 계하고, 양심의 내적갈등을 과장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165) 개인주의자들인 개신교인은 유대가 약해서 자살율이 높다는 뒤르켐의 주장(166)을 이렇게 반박한다. 유대가 약한 집단의 자살률은 높지만, 개신교 집단은 가톨릭 집단보다 유대가 약하지 않다는 것.(167) 로드니 스타크는 뒤르켐의 법칙이 성립하려면 영국이 유럽 국가 중 최정점의 자살률을 보여줘야 하지만, 사실은 그 반대라고 말한다. 문해율이 낮기 때문이라는 뒤르켐의 설명이 터무니없다면서.(168-169) 19세기에 유럽 산업자본주의 발흥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영국의 개인주의에 주목했다.(170) 그러나 좋건 나쁘건 종교개혁은 개인주의와 아무 상관이 없고, 루터는 서구 개인주의 발흥의 원인도 아니며 개신교 개인주의는 자살도 유발하지 않았다.(172) 개인주의에 대한 신화도 양쪽 편에 모두 붙어 있고, 결론은 상관이 없다는 것. 개인주의 이야기는 이렇게 간단히 치고 넘어가 수 있는게 아니지만.
그는 교회가 세속화로 무너질 것이라는 신화에 대해 말한다. 찰스 테일러에 의하면 중세는 종교의 세상이었다.(175) 초기 개신교 신학자들이 종교를 삶을 에워싼 경험에서 일련의 신념체계로 축소했으며, 막스 베버의 표현대로 세상의 탈주술화를 야기했다(176)키스 토마스도 개신교의 탈신성화가 세속화를 촉발했다고 기존 내러티브를 소화한다.(177) 개신교는 여러 교단으로 분열하는 과정에서 서로를 깎아내리고 종교적 권위가 실추되어 세속화가 이루어졌다는 설명도 있다.(177) 피터 버거는 『종교와 사회The Sacred Canopy』에서 보편적 종교적 관점을 상실하고 다주의의 발흥으로 근대에서 종교가 쇠락의 길로 접어들었다고 말한다.(179) 중세의 경건성이란 신화다 중세인들은 초자연적 존재를 믿었고, 마술에 의지했다.(181) 피터 버거의 주장과 달리 종교의 존재감은 막강하며, 다원적인 나라인 미국에서 도태되지 않기 위해 효과적으로 신도를 모집해야 하는 종교집단 간의 경쟁적 환경이 종교의 흥왕을 낳았다.(182) 미국의 종교다원주의는 종교 참여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고, 성직자들은 사업가들이었다. 가톨릭도 이를 따랐다.(183) 유럽 교회의 출석률이 저조한 원인은 국고보조를 받는 게으로고 독점적 교회들이 경쟁을 최소화하면서 스스로 무기력해졌기 때문이다.(184) 세속화론은 실패했다.(187) 세속화 논제를 뒷받침하는 종교를 정의할 때, 교회에 편협하게 국한했고, 대중적이면서 교회화되지 않은 종교적 표현 형태를 고려하지 못했다.(187) 사람들이 종교적이면서 교회에 속하지 않는 이유는 종교적 자유를 사고파는 시장이 없기 때문이다.(189) 교회는 나태해졌고, 사람들은 교회를 공공재로 보아 공짜여야 한다고 인식한다. 특혜받는 국교회는 경쟁자를 이단으로 지정하거나, 비공식적 제재를 가한다.(191) 유럽의 이슬람교 출산율은 점점 떨어지는 반면, 교회출석이 높으면 출산율도 높다.(194) 로드니 스타크가 주장하는 세속화론은 이미 무너진지 오래다. 무엇보다 피터 버거가 오래전에 공식적으로 이를 번복했다. 현대가 새로운 종교성의 시대, 영성의 시대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런 종교의 자유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선택되고 소비되는 종교가 어떤 종교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해 봐야 한다. 자극적이고, 마술적인 종교가 더 큰 인기를 얻고 있지는 않은가, 가난한 이를 돕는 예수가 아닌 부자가 되게 도와주는 예수를 믿고 있지는 않은가. 종교가 세속화되어서 약화되지만 않으면 좋은 것인가?
가톨릭교회는 개신교와의 경쟁을 통해 번창했다. 경쟁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맞이하자 훨씬 더 성공적이며 효과적이 되었다.(199-200) 남미 역시 마찬가지다. 남미 가톨릭은 쇠퇴하고 있었다. 게으른 독점체제가 원인이었다.(203-204) 치한 남미 선교에는 보수 교단만 참여했고, 오순절파가 선두주자가 되었다. 남미 개신교 선교사는 사제의 수보다도 많다. 2004년 국 선교사 수가 하락세를 보이는 것은 남미인이 활동하기 때문이다. 남미 개신교는 급성장해서 주요 종교가 되었다.(206-208) 이에 대해 남미 가톨릭 교계는 열성적으로 반응했다. 1960년대 개신교 활동의 대한 대안으로 일부의 남미 가톨릭 신학자는 해방신학을 내세웠다.(210) 토대공동체는 헛수고였고, 느슨한 비거주자의 스터디그룹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211) 해방신학은 혁명운동도 종교운동도 아닌 자기모순에 빠진 무기력한 혼합이었기에 실패했다.(212) 사회과학자들은 처음에 오순절 개신교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들이 이 따에서 저주받은 사람들, 농어촌 거주, 가난하고, 무식하며, 건강문제가 있는 기혼여성이라고 생각했다.(212) 그러나 빈자의 종교반란이란 관념론적 사기극이다.(213) 실제로는 모든 소득층이 동일하며, 결혼 여부도 무방하다.(214) 1967년 피츠버그의 듀케인 대학에서 시작된 성령세례를 기점으로 하는 가톨릭 성령쇄신운동CCR은 남미 가톨릭의 든든한 허리이며 대중의 열렬한 헌신을 이끌어 냈다.(214-215) 남미 가톨릭의 교회 참여율과 주관적 종교성은 매우 높다. 이는 다원주의의 효과이며, 마르틴 루터에게서 온 선물이다.(216-218) 이런 다원주의가 종교적 성공을 가져온다는 주장은 로드니 스타크의 일관된 주장이다. 남미에서 오순절파의 성공에 대해서는 좀 살펴보고 싶다. 전반적으로 가톨릭과 개신교 모두 열렬한 종교적 체험, 즉 본연의 종교성 그 자체에 몰두하면 성공하는 경향이 있다. 반사회적으로 가지만 않으면.
로드니 스타크는 자신이 주제로 삼은 종교개혁의 성공신화는 사실이 아닌데도 반복적으로 유포되는 이유가 종교전쟁 기간에 유포된 반가톨릭주의 때문이며, 이는 지식인의 일종의 반유대주의라고 말한다.(219) 그러면서 종교개혁은 기독교에 유익했고, 다원주의야 말로 기독교를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종교로 만든 일등공신이라고 평가한다.(221) 반가톨릭주의는 자신이 2017년에 쓴 책의 주제이기도 하다. 반가톨릭쥐의를 비판하는 논지는 두 가지다. 하나는 개신교가 스스로 주장하는 여러가지 영광은 가톨릭과 나눠가져야 한다는 것과 다른 하나는 개신교가 스스로 부여한 않은 영광에는 근거가 없다는 주장이다. 나는 이 두 가지 주장 모두에 크게 의의가 없다. 날마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 얼굴에 스스로 금칠을 하고 있다. 그 근거가 사실이기라도 하면 좋겠지만, 그저 통념에 근거하여 그런 주장을 한다. 청중들도 사실에 근거하여 의문을 가지기 보다 자신의 신념을 강화하는 기분 좋은 주장이면 받아들이고 동조한다. 그렇게 확대재생산되는 어떤 구조에 있다. 그러나 누군가가 사실을 확인하기 시작하는 순간 공동체 내부에는 균열이 온다. 사실에 대한 지적은 사람에 대한 비난으로 변화하기 쉽다. 거짓과 신화의 베일을 벗겨내는 사실의 전개는 폭력으로 다가온다. 애초에 거짓과 신화로 뒤덮지 않아야 했지만, 이젠 참과 거짓을 구별하기도 어렵고, 거짓을 버렸을 때, 자신도 버림받지 않을까 두려워하는 사람도 많다. 거짓영광을 걷어내는 걸 왜들 그리 고통스러워 하는 것인지. 게다가 그렇다고 다원주의 만세. 종교 시장에서의 자유경쟁이 가져오는 성공에 대해 환호하고 싶지도 않다. “악화는 양화를 구축한다.” 종교 분야에서 특히 그렇다. 다들 그럴지도.
책을 굳이 정리하는데, 오전 반나절을 보냈다. 피곤하다. 이건 꼭 필요한 일이었을까. 일부 인명과 전문용어 번역이 다소 어색한 곳이 있었으나 역자가 전문가 아닌 점을 고려해서 알아서 고쳐 읽었다. 다행히 영문이 부기되어 있어서.
2018. 11. 14.
* 괄호 안의 숫자는 번역서의 쪽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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