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유시민을 옹호한다.
유시민,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 생각의길, 2024.
선거 막바지가 되어 패색이 짙고, 담론 지형도 주도하지 못하면, 이맘때쯤 등장하는 레파토리가 있다. 후보나 가족, 정치인 등의 말 한 토막을 끄집어내서 융단폭격을 퍼부으면서 흑색선전으로 선거를 뒤덮어버리는 일. 이번에도 역시 시작되었는데. 뜻밖에도 그 대상이 유시민이었다. 그를 향한 담론공작을 하려한다는 말은 들었지만. 왜 그에게 공격이 집중되었을까. 후보가 너무 강하기 때문이다. 당도 강해졌기 때문이다.
그에 대한 공격이 집중되는 며칠 동안, 나도 고통을 느꼈다. 꼭 그와 공감해서 만은 아니다. 자신의 인터넷 방송에서 ‘이번에는 삐졌다’고 말하던 그의 표정이 슬퍼보이기도 했지만, 이토록 뻔한 짓거리가 반복되는데, 다시 또 우르르 달려든다고 하니 기가 찰 따름, 이건 “물어!”라고 외치는 소리에 뛰어가는 사냥개들인건가. 이런 사람들과 이런 기관이나 단체들을 사회 제도라고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건가. 누구의 말처럼 지난 민주정부에서 그랬듯, 새정부가 출범하면 또 다시 반복될 일들의 예고편인가.
우선 말하자면, 나는 유시민을 비판한다는, 쏟아진 말들을 일일이 살피지 않았다. 그런 걸 들여다보고 있을 만큼, 굵고 든든한 신경줄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다. 인터넷으로 쏟아지는 ‘언론’이라는 자들의 기사도 살펴보지 않은 지 오래되었고, 논객이라는 이들이 우글거리는 페이스북을 떠난지도 이미 오래다. 하지만 그들의 의도와 생각은 대략 짐작한다. 소위 ‘언론’은 이 대선판에서 검색어 장사 한 번 하면 그 뿐이다. 진보언론은 언제나 민주 정부를 훈계하는 훈장질할 기회만 찾는다. 아, 그리고 소위 말하는 비판적 지식인들과 여러 부류의 진보 논객들. 그들은 그저 새 정부 출범 직전에 자신들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싶은 조바심과 질투심에 지나지 않는다. 자세히 살펴보지 않고, 언뜻 보기만 해도, 전해 듣기만 해도 그렇다. 민주당과 이를 대표하는 세력이 진보의 파이를 모두 가져가면 안된다는 조바심에 열심히 흔들면서 부스러기를 주워먹으려 할 것이다. 지금까지 그래왔는데, 새로운 전략과 방식을 가져왔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이런 방식으로 민주당과 그 정부를 흔들려던 기득권 집단과 ‘언론’들 그리고 소위 말하는 진보 인사들은 일종의 한시적 전략적 동맹과 해산을 반복해 왔다. 이제 또 다시 그 일에 시동을 거는 것 뿐이다. 근데 어째 이번에는 그다지 잘 될 것 같지 않다만.
어디까지나 서평이니만큼, 이제 책으로.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은 2024년 6월 19일에 발행되었다. 놀랍지 않은가. 계엄과 내란은 불과 6개월도 안되어 벌어졌다. 책 말미에 이런 구절이 있다. “윤석열은 박정희나 전두환과 같은 독재자가 아니다. 군대를 동원해 권력을 탈취하거나 폭력으로 국회를 해산하지 않았다. 비판하는 지식인을 납치해서 고문하지 않는다. 거리의 시민에게 총을 쏘지도 않았다. 하고 싶지 않아서 안한 것이 아니다. 국민이 무서워서 하지 못한다.”(268) 그런데, 불과 반년이 지나지 않아, 이런 일을 저질렀고, 저지르려 했다. “민심이 압도적으로 탄핵을 요구할 경우에는 탈당 여부와 무관하게 여당 의원 일부가 탄핵에 가담한다.”(273) 그는 침팬치 무리의 고블린 이야기를 꺼냈다. “고블린은 무리를 공포에 떨게 하고 충성과 복종을 요구했다. 신체적 위해를 가할 것처럼 위협하는 방법으로 권력을 유지했다. 어느 날 젊은 도전자가 나타나자 무리가 기다렸던 것처럼 달려들어 고블린의 손발과 고환을 물어뜯었다. 고블린은 죽음을 면했으나 권력을 잃고 비참한 여생을 보냈다.”(275) 이제는 여러 번 들어서 친숙해진 이야기다.
당시에 이 책을 순식간에 읽으면서, 이 폭주기관차가 결국은 스스로 자폭하고 탈선하고 말겠구나라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문면에는 불기소 사면 같은 타협적 방안이 제시되어 있었지만, 내가 읽은 행간은 그의 급격한 몰락이 멀지 않았다는 단언이었다. 비로소 언제까지 지속될지 모르겠다는 절망감이 가셨다. 3년을 참지 않아도 될 듯 했다. 그리고 그 순간은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계엄의 그날 직후 주위 사람들은 다들 이렇게 말했다. 자폭할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빨리할 줄은 몰랐다. 자폭할 줄은 알았지만, 이런 식으로 할 줄은 몰랐다. 그의 몰락은 예견된 것이었다. 그리고 선로를 고치고, 새 기관차를 올리는 작업이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다.
나는 그와 꼭 십년 차이다. 젊은 시절을 돌이켜보면 나는 유시민의 글을 좋아하지 않았다. 다른 이들이 비판하듯, 엄밀하지 않고, 적확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적이 많았다. 나는 우리가 글로 대화하는 장이 어딘가를 착각했던 것이다. 한 시대의 지식인에 대한 어쭙잖은 치기였지. 세월이 더 지나고 보니 글쓰고 말하는 그의 귀중함을 알겠더라. 내가 숱한 책을 사들이면서도 그의 책을 산 것은 이 책이 처음이었다. 그에게 비난과 욕설이 쏟아지던 지난 금요일 밤, 일면식도 없는 그에게 전할 위로의 말이 없어서, 『청춘의 독서 증보판』을 구입했다. 나이가 들면 맷집이 약해지더라.
계엄과 내란의 밤을 광주민중항쟁과 비견하고는 하지만, 나는 또 하나 비교할 일이 있다. 1961년 5월 16일의 그 밤이다. 4월혁명으로 집권한 민주당이었다. 독재자 이승만은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학생들을 총으로 살육하다 쫓겨났다. 쿠테타를 일으킨 박정희와 김종필의 무리는 군의 다수도 아니었다. 대통령은 굳이 말하면 민주당 구파인 윤보선이고, 총리는 신파인 장면이었다. 쿠데타가 일어나자 총리는 수녀원에 숨었고, 대통령은 주한미군 사령관의 출동 허락을 끝내 거부하더니, ‘올 것이 왔다’고 읇조리며 스스로 권력을 내주었다. 쿠데타 3일전 절치부심하여 인제군 보궐선거에서 당선되었던 김대중은 이때 의사당에 발도 들이지 못했지만, 36년 만에 모든 세력을 끌어모아 대통령에 당선되어 정권교체를 이루었다. 민주당이 기념하는 대통령은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세 사람 뿐이다. 그리고 12월 3일의 그 밤, 국회의사당으로 달려간 민주당과 여러 정당의 의원들 그리고 이를 보호하려고 의사당을 둘러싼 시민들이 계엄과 내란을 막아내었다. 모두 알고 있는 이 사실을 굳이 언급하는 것은 이 날을 기억하는 특집기사에서 굳이 민주당과 민주당 의원들을 빼 버린 ‘대표적’ 진보 신문의 협량함과 조바심이었다. 민주당 머리꼭대기에 올라앉아서 이래라 저래라 하면 말들 들어먹어야 하는데, 그러려면 일단 깎아내려야 곘지. 조중동이 보수정당을 얼르고 달래듯. 그걸 그렇게 하고 싶어 하더라. 어차피 안될 것이다만. 보수언론이고, 진보언론이고 이제 공론장에서 무슨 의미가 있는가. 선거 막바지에 이재명은 유튜브 방송들과만 연이어 인터뷰를 하고 있다. MBC라디오 시사하이킥(사실상 유튜브), JTBC의 장르만 여의도, 매불쇼, 오마이tv, 정어리tv, 장윤선의 시사편의점, 스픽스, 마지막으로 뉴스공장. 생각해보니 선거운동의 시작점에도 뉴스공장, 새날, 이동형tv, 알릴레오 등이 있었다. 레거시라는 말도 가당찮은 신문과 방송들, 이제는 걱정스럽지 않을까. 나는 그것도 이해하지만, 나이를 막론하고 꼰대질은 부질없다.
나도 유시민의 그 발언을 들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만, 유시민이 지나친 부분이 있다고 말했으니, 그것도 이해한다. 이재명 아들에 대한 새로운 떡밥이 뿌려지는 걸 보니 이제 이 이슈는 효용도 다한 것 같은데. 그만들 닥치시라. 유시민이 후보도, 정치인도, 심지어 당원도 아닌데 말이지. 소위 말하는 진보 인사와 논객들에게 말하고 싶다. 더 유능해지시라. 그렇지 않고는 설자리와 영향력을 얻기 어려울 것이다.
이번에는 그와 함께 우산을 쓰고 비를 맞을 자가 생각보다 많을 것이다. 적어도 당신 생각보다는. 그런 이들은 어제 오늘 책을 사고 있다. 돈을 쓰는 것보다 확실한 의사표시가 이 자본주의 사회에 있겠는가.
나는 유시민을 응원하고, 옹호한다.
2025. 6. 1.
* 괄호 안의 숫자는 책의 쪽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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