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타 미츠오, 『동화의 숲에서 절대자를 만나다』.

Carl_Larsson_-_Little_Red_Riding_Hood_1881

Carl Larsson, Little Red Riding Hood 1881, Public Domain.

미야타 미츠오(宮田光雄), 양현혜 편역, 『동화의 숲에서 절대자를 만나다』, 홍성사, 2015.

실패한 이야기로 시작하는 편이 솔직하겠지. 지난 주부터 다음 주에 있을 청년 수련회 GBS교재를 만들고 있었다. 이번에는 좀 다른 시도가 해보고 싶었다. 본문 제시하고, 그럴 듯한 도입부나 제시한 후에, 본문 구절 하나, 하나 교리적으로 제시하면서 정답찾기, 적용하고, 기도하기. 이런 구조는 너무나 식상하지 않은가? 무엇보다 상상력이라고는 콩알 만큼도 없다. 제시하는 도입부의 종류에 따라 뻔한 대답만 나오게 된다. 도입부에 통상 제시되는 이야기는 텍스트 이해의 결과를 이미 상정하고 있다. 의도된 대답이 나오지 않으면 곤란하지 않겠는가. 마침 책읽기 모임을 위해 이 책을 보고 있던 터라, 동화의 서사와 성경 본문을 매치시켜 볼 생각을 했다. 동화의 서사를 제시하고, 그에 대한 미야타 미츠오의 해석을 제시하고, 본문을 제시하고, 본문을 숙고하면서 읽도록 유도하려는 그런 방식이다. 그래서 책의 1장에 나오는 그림동화의 「빨간 모자」와 2장에 나오는 요한복음 4장의 수가성 여인을 잘 연결되지 않는 부분이 있지만, 길 위에서 예수를 만나는 이야기로 설명해 보고, 두번째는 안데르센의 동화 “황제의 새 옷(벌거벗은 임금님)”과 누가복음 19장의 삭개오 이야기와 연결해 보려고 했다. 두 번째는 길 위에서 자기를 발견하는 이야기로 풀어보려고 했는데. 결국 실패했다. 며칠간 고민한 끝에, 어제 종일 한 편을 만들었는데. 동화의 서사와 성경의 서사가 도무지 연결되지 않는다. 연결 정도가 아니라 중첩과 이탈에서 상상력을 발휘해야 하는데. 아직 내 실력으로는 역부족인 모양이다. 지금 생각하니 두번째 것의 성경의 서사를 공관복음에 모두 나오는 세배대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자기 어머니와 함께 와서 훗날 예수님의 나라에서 좋은 자리를 달라고 했다가 거절 당하는 이야기가 있는데, 그걸로 연결해도 될 것 같은데. 아니다, 『인디아나 존스3』에서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생명의 물’을 뜨러가는 해리슨 포드 동영상 부분을 보여주고, 수가성 여인으로 이어볼까. 이런 쓸데없는 생각이 쏟아지지만, 막상 이렇게 서사를 연결하려면, 쉽지 않다. 아무래도 이번 수련회에서는 포기해야 할 것 같다. 오늘 저녁, 내일 아침까지는 좀 더 고민해 보려는 데. 전망이 어둡다.

그러고 보니 저자가 정말 위대해 보여, 한참 올려다 보게 된다. 미야타 미츠오(미쓰오로도 씀) 宮田光雄, 1928년생. 현재 일본 도호쿠 대학 명예교수이며, 유럽 정치사상을 전공한 정치학자이자 사상가. 주요 저서로 『서독의 정신구조』, 『정치와 종교윤리』, 『나치 독일의 정신구조』, 『현대 일본의 민주주의』, 『비무장 저항의 사상』, 『그리스도교와 웃음』, 『나치 독일과 언어』, 『성서와 신앙』, 『홀로코스트 이후를 살다』, 『국가와 종교』, 『미야타 미츠오 사상사론집(전8권)』, 『십자가와 하켄 크로이츠』, 『권위와 복종』, 『탕자의 정신사』 외 다수이다. 저자는 일본에 종종 있는 그리스도인이었던 것 같다. 오랫동안 학생성서연구회를 주재하고, 전도에 헌신하고, 자택 내에 기숙사를 세우고 신앙에 바탕을 둔 공동생활을 지도했다고 전해진다. 이 책은 양현혜가 저자의 『宮田光雄集 – 「聖書の信仰」』 1巻 「信仰案內」와 『メルヘンの知惠』에서 가려 뽑은 것이다. 마지막 글은 치바교회예배당 125주년 기념 강연, 「동화의 숲에서 하나님을 만나다(メルヘンの森で神신と出会う)」이다. 이 책은 모두 岩波書店에서 출간되었다. 국내에서는 사계절에서 같은 편역자가 『메르헨: 자아를 찾아가는 빛』이라는 제목으로 2008년에 출간했던 것이다.홍성사에서는 이외에 『탕자의 정신사: 예수의 비유를 읽다(『《放蕩息子》の精神史――イエスのたとえを読む』)』가 번역되어 있고, 그 밖의 저자의 『홀로코스트 이후를 살다: 종교간 대화와 정치적 분쟁의 틀에서(『ホロコースト「以後」を生きる――宗教間対話と政治的紛争のはざまで』)』가 박은영·양현혜 공역으로, 『국가와 종교: 유럽정신사에서의 로마서 13장(『国家と宗教―― ローマ書十三章解釈史=影響史の研究』)』이 역시 양현혜의 번역으로 나와 있다. 저자의 오래 전 저술인 『현대 일본의 민주주의(『現代日本の民主主義――制度をつくる精神』)은 김효전의 번역으로 오래전 나왔으나 지금은 구할 수 없다.

책 내용으로 돌아가서 저자가 서사를 구성하는 방법은 대략 이렇다. 먼저, 사람들에게 아주 익숙한 동화를 하나 고른다. 그림 동화나 안데르센의 동화 아니면, 여기서 분석하고 있는 미하일 엔데의 『모모』도 좋다. 그리고 그 동화의 구성요소들을 정신분석을 통해 설명한다. 주로 융과 그의 후예들의 방법인 것 같으나, 정신분석학에 대해 과문한 탓에 잘 모른다. 예를 들면, 그림동화 「빨간 모자」와 「헨젤과 그레텔」을 분석하면서, ‘그레이터 마더’의 이미지를 설명한다. 자녀들과 ‘모자 동서’ 즉, 자녀를 독립시키지 않고 분별없이 자기 품안에 놓아두는 어머니는 결국 자녀를 망친다, 이것을 잡아먹는다고 표현한다. 「헨젤과 그레텔」에서 엄마(1판에서는 새엄마가 아닌 친엄마)가 헨젤과 그레텔을 내어 쫓는다. 자녀와의 분리를 원하는 이성적인 엄마의 행동이다. 그러가 그들이 도달한 ‘과자의 집’의 마녀는 엄마의 또 다른 모습니다. 무엇이든 원하는 대로 주는 엄마, 그 결과 살찌워 지는 헨젤과 그레텔. 그리고 결국은 잡아먹히게 되는. 이 엄마와 싸워서 이기고 엄마와의 분리를 얻어내야 한다. 헨젤과 그레텔이 마녀를 죽이고 집에 돌아오면, 엄마는 죽어있다. 그것은 이 엄마가 마녀였음을 보여준다. 빨간 모자에서도 무엇이든 해주는 할머니가 바로 동일한 그레이트 마더이고, 그 결과 아이를 잡아먹는 늑대 역시 엄마다. 즉, 그레이트 마더로 부터의 독립 이야기, 인생의 변혁, 자아의 형성을 위한 통과의례를 이 동화들이 다루고 있다는 것이다.(25-28) 그리고 저자는 엘리아데(Mirceo Eliade)를 인용한다.

“사람들은 옛날이야기를 몇 번이나 반복해 들어도 결코 지루해 하지 않는다. 이는 통과의례적인 줄거리가 동화의 형태로 바뀌어도 그것이 여전히 인간의 마음 가장 깊은 곳의 욕구에 응답하는 심리적 표현이 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위험한 상황이나 말할 수 없는 시련에 직면할 때 또 다른 세계로 곤란을 돌파해 나가려고 한다. 그리고 동화를 듣거나 읽거나 하며 상상의 세계 또는 꿈의 세계에서 곤란을 돌파하는 것을 체험하는 것이다.” (41)

그림 동화 「빨간 모자」와 「헨젤과 그레텔」의 여러 요소들을 상세히 분석하고 이야기의 결론에 도달한 후에, 그는 성서로 나아간다. 이번에는 이집트를 탈출하여 광야를 헤매이다가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는 이스라엘 백성의 이야기이다. 그는 길에 주목한다. 그리고 이야기는 스스로를 ‘길, 진리, 생명’이라고 선포하는 그리스도 예수에게로 이어진다. 대체로 비슷하지만, 때로는 조금 다른 방법으로 그림 동화의 「생명의 물」, 안데르센의 동화 「황제의 새 옷(우리말 제목: 벌거벗은 임금님)」, 미하일 엔데의 『모모』, 그림 동화, 「대부가 된 죽음의 신」을 다룬다. 책 내용을 더 이상 공개하면 재미가 없을 것 같다. 이를 통해, 자기 발견, 내적 자유, 현재의 나의 모습 인정, 시간, 죽음의 문제에 대해 각각 의미있는 통찰을 제시한다. 이 이야기들은 외부에 흔들리지 않는 ‘내면의 왕국’을 구축하는 문제를 다루고 있다. 더 자세한 이야기와 성서와의 연결점은 역시 직접 책을 읽어보시길. 너무 재미있어서 자세히 쓰면 스포일 될 것 같다.

마지막 장에 보면 성서와 동화를 연결시키는 일은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다. 그 중 개신교 전통으로 그는 세 사람을 든다. 궁켈, 루터, 바르트, 본회퍼. 특히 본회퍼가 동화의 언어를 사용하려 했다는 점은 매우 신선하게 느껴진다. 핑겐발트 시절 그런 시도를 했다고 한다. 본회퍼의 설교 한 토막이다. “숲은 짙은 어두움을 드리우고 있다. 고뇌와 단념, 십자가에서의 복종, 그것이 ‘천국’이라는 우리의 목표 사이에 가로질러 있는 것이다.” “우리와 저 천국과의 사이에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그리스도가 서 계시다. 그리하여 우리는 이 숲 속을 향해 돌진해 간다. 우리가 방향과 목표로 삼고 있는 그리스도가 우리를 인도해 주시기 때문이다.”(239)

미야타 미츠오는 동화의 세계가 은총의 세계라고 말하며, 성서의 세계와 닿아 있다고 말한다. 동화에는 늘 여행자가 나온다, 주인공은 늘 길 위에 있다. 길 위의 인생이 겪는 삶의 고독, 곤궁, 암흑, 막다른 골목을 그리지만, 새로운 세계를 향하는 구도자의 모습이 그려진다. 동화의 세계에서는 초월적인 신(기독교적 신)이 등장하지 않으나 이 세계는 신뢰의 세계라고 미야타 미츠오는 말한다. 이 세계를 굳게 붙들고 있는 신뢰, 이 신뢰 속에서 태어나는 연대와 결합, 그리고 기본적인 신뢰감을 그는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암호”(244)라고 말한다. 에릭 에릭슨(Erik Erikson)에 따르면 “근원적 신뢰”, 피터 버거(Peter Berger)에 따르면 “현실에 대한 기본적인 긍정”(244). 동화의 세계는 우리에게 ‘피안’도 열어보인다. 이 피안은 동화의 세계에서 직접 등장하지는 않지만, 동화의 세계에서는 이 세상과 저 세상이 구분되지 않으므로, ‘의미의 세계’가 열림을 통해서 우리에게 피안이 열린다. 특히 동화의 세계가 은총과 구원을 다루는 것은 동화의 주인공들이 주목받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데 있다. 키가 작거나, 막내이거나, 무기력하거나, 못생긴 주인공들이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성공에 이른다. 이때 주어지는 ‘생명’은 선물이다. 동화의 세계에서 주인공은 “자력구제”를 통한 “자기구원”을 이루지 못한다. 오히려 동화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약하고, 부족한 부분을 드러냄으로써, 자기 밖의 외부에 받아들여지고, 수용됨을 통해 통합을 이루게 된다.(240-251 요약)

다음은 감옥에 갇힌 본회퍼의 편지의 한 토막이다.

“선한 능력 잇는 분에게 불가사의하게 보호되어
무엇이 오더라도 우리는 고요하게 그것을 기다립니다.
아침에, 저녁에, 그리고 새로 오는 나날에
하나님은 확실히 우리 곁에 계십니다.

나는 어떠한 순간에도 혼자 버려져 있다고 느낀 적은 없습니다. 당신, 부모님, 전장에 있는 나의 친구들과 학생들, 당신들은 모두 언제나 내 눈앞에 있습니다. 당신들의 기도, 따뜻한 생각, 성서의 말씀, 옛날에 함께 나누었던 대화,음악, 책, 이 모든 것들이 예전의 그 어떠한 때보다 더 생생합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커다란 세계 안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 현실성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오래된 동요 중에 천사를 노래한 것이 있습니다. 그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선한 능력 있는 자들에 의해 아침저녁으로 보호받는 것, 이것은 오늘날 어린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에게도 필요한 것입니다.”(254-255)

***

동화와 성서의 서사를 연결하는 이 책이 내 눈에 그토록 확 띈 이유는 교회에서 진행하는 성경공부라는 형식의 모임에 커다란 장애가 있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수십년 전에 만들어진 교재를 조금씩 윤색해 가면서 사용하는 성경공부 교재들. 성경 구절들을 찾아가면서, 단답형으로 답하기. 간혹 귀납적 성경연구를 활용한 것들이 없지 않지만, 그 역시도 고답적인 교리의 반복이다. 정형화된 해석에 근거해서 상상력의 여지를 봉쇄하고 있다. 그런 것 외에는 없다.

실제 교회에서 성경공부를 하려고 할 때, 나는 그냥 한 권씩 공부하는 방법을 택한다. 한 번에 한 장 혹은 두 장씩 본문을 읽어가면서, 해석하고, 서로 배운다. 이 방법은 앞서 나온 교재보다는 훨씬 좋은 방법이다. 다만, 의견교환이 활발하지 않다보면, 내가 일방적으로 발언할 때가 많아서 그게 아쉽고, 많은 경우, 나의 경험의 한계 안에 갇힌다는 것이 문제다. 나의 경험, 우리의 경험을 넘어서는 보다 보편적인 경험의 영역과 연결하기.

동화의 세계와 문학의 세계라면, 그런 것이 가능하지 않을까? 간혹 영화로 성경읽기를 하는 경우가 있다고 들었다. 아니 성경으로 영화읽기를 하는 것인가. 여튼 영화와 성경이라는 서사를 함께 놓고 생각해 보는 것이다. 좋은 방법이지만, 영화광이라면 보다 그로테스크한 영화를 고를 것 같고, 대중적 영화는 대상으로 삼기 어렵고, 여튼 영화와 성경의 서사적 텍스트 연결이 잠시 유행하다가 사라져버렸다. 아마도 양쪽 모두에서 환영받기 어려워서 일 것이다.

나는 동화와 문학의 세계를 성서의 서사와 연결하면서 함께 읽기를 시도하는 것에 대해 생각이 미쳤다. 병행하는 서사 읽기. 그림동화에서 한 10여편을 골라 그와 상응하는 성경 텍스트와 비교하면서 생각해보는 성경공부 교재를 만든다든가? 아니면 이솝우화에서 한 10여편 골라서 한다든가. 인류의 삶을 통해 오래 살아남은 텍스트가 가진 보편성이 막힌 무엇인가를 뚫어주지 않을까? 지인이 이어령의 『소설로 떠나는 영성순례』를 추천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 형제들』은 나도 생각했었다. 이 영혼 깊이 울리는 소설의 텍스트들을 일부 인용해서, 성서와 대조하면서, 성경을 공부할 수 있도록 돕는 교재를 만들 수 있다면. 빅토ㄹ르 위고『레 미제라블』은 이 책에서 보았지만, 역시 좋을 것 같다. 그 외에도, 앙드레 지드의 『탕자, 돌아오다』와 릴케의 『말테의 수기』, 얀 마텔의 『파이 이야기』를 제시한다. 매우 흥미로워 보인다.

왜 성경공부 교재를 생각하는가, 텍스트를 읽으면서, 신앙과 접점을 연결하도록 하는 일이, 지금 한국 기독교인의 일반 역량으로서는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적어도 텍스트에 따라붙는 안내서라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근데 이런 일이 생각해 보기 위한 자료이지, 텍스트를 왜곡하게 되는 것은 아니겠지. 그러고 싶지 않은데.

결국 목표로 했던, 성경공부 교재 작성은 적어도 현재까지는 실패이다. 그래서 심리적 공허감을 채우기 위해 대신 이 서평을 써서 블로그에 올리고 있다. 아, 이 얼마나 찌질한 인정 욕구인가. 새 옷을 입었다고 믿으며, 벌거벗고 뽐내는 황제꼴이 아닌가. 아마도 저녁 내내 뷰 횟수나 세고 있을 것이다.

모두들 즐거운 명절 되시길.

* 필요한 경우 번역서의 쪽수를 인용했다.
** 이 글의 저작권은 ⓒFELIVIEW.COM에게 있습니다. 무단 전재와 복제를 금합니다.

FELIVIEW
FELIVIEW
felixwon.lee@gmail.com

Must Read

에른스트 H. 칸토로비치, 『왕의 두 신체』(7-1).

0
튜더 왕가의 가계도. 앞쪽에서는 아담과 이브로부터의 기원과 노아의 방주도 등장한다. 중간에 리처드 3세에서 단절이 있고, 그 아래로 헨리 8세가 이어진다. British Library, Kings MS 395, fols. 32v-33r. Ernst 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