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모 토울스, 『모스크바의 신사 』.


샤토뇌프-뒤-파프 병엔 이런 양각이 새겨져 있다. 교차된 열쇠.

에이모 토울스Amor Towles, 『모스크바의 신사A Gentleman in Moscow』, 서창렬 역, 현대문학, 2018.

샤토뇌프-뒤-파프Chteâuneuf-du-Pape. 내가 와인을 마신 기간이 그리 길지는 않았지만, 고작 5, 6년 남짓인가. 그 동안 참 좋아하면서 즐겨마셨던 와인이다.

에이모 토울스의 소설 『모스크바의 신사』에서 로스토프 백작이 즐겨마시던 와인이다. “귀족의 특권과 인텔리겐치아(지식층)의 나약함과 투기꾼의 약탈적 가격 책정을 보여주는 표지”(231)였던 와인의 라벨을 제거해서 와인이란 그저 레드와 화이트 밖에 없는 세상이 온다해도, 그래도 이것 하나만은 알 수 있다. 이 와인 병에는 두 개의 열쇠가 교차된 표지가 양각되어 있기 때문이다. 만져보면 알 수 있다. 그 수많은 역주 중에 이걸 알려주지 않아서 좀 아쉬웠다.

이 교차된 두 개의 열쇠는 교황의 표시다. 하나는 황금으로 된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은으로 된 두 개의 열쇠 위에 삼중관이 있고, 그 위에 십자가가 달린 이 이 표장은 바로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내린 열쇠를 뜻한다. 그가 “주는 그리스도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그 순간에 그에게 주어진 묶는 열쇠와 푸는 열쇠를 뜻한다. 그에게는 묶는 권한도, 푸는 권한도 가지게 되어, 오랜 세월 교황권을 정당화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그런데 왜 와인에. 그건 교회의 아비뇽 유수와 관련이 있다. 보르도 주교였던 클레멘스 5세부터 아비용의 교황들은 와인을 좋아했고, 아비뇽에서 멀지않은 론 지방 동쪽 한 마을에 아비뇽 주교 관할 하에 있던 포도밭을 찾는다. 후임인 요한 22세는 포도밭에 와서 와인을 마셨고, 포도재배를 개선시켰으며, 이후 교황의 와인이란 이름을 얻게 된다. 그 지방의 이름은 지금도 샤토뇌프-뒤-파프이고, 교황의 새 성이란 뜻인데. 여기서 샤토는 성이기도 하고 또 와이너리이기도 하다. 그리고 여기서 생산되는 와인병에는 볼록하게 양각된 교황의 표시, 두 개의 교차된 열쇠가 있다. 그러니 소설에서 교차된 두 개의 열쇠란 당연히 이 특별한 와인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구체제를 가리키는 은근한 상징이기도 한 셈이다. 마리아의 모자이크가 보이는 빵집이 맛있다고 줄을 스러가는 여자들의 이야기 처럼 말이다. 정교회도 마리아를?

알퐁스 도데의 소설집 『풍차방앗간에서 온 편지Lettres de Mon Moulin』가 있다. 그렇다. 교과서에 나오는 그 아름다운 소설 「별」이 실려있는 「마지막 수업」의 작가의 소설집이다. 「칠 년 만의 뒷발질」이란 단편이 있다. 소설집에는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라고. 교황님의 암노새가 자기를 괴롭힌 불한당에게 7년만에 복수한다는 그런 이야기다만. 왠지 또 한번의 보불전쟁에서의 패배에 대한 복수심을 고취시키는 것 같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여튼 이때 아비뇽의 인자한 노교황 보니파스가 암노새를 타고 다녔는데. 노교황은 샤토뇌프의 포도밭과 포도주를 너무나 좋아했고, 그 루비색 포도주를 암노새에게도 먹인다는 그런 이야기다. 그러다가 포도주를 빼았겼던 노새가 복수를. 지금은 샤토뇌프-뒤-파프 마을 한 복판에 라 뮐 뒤 파프La Mule du Pape라고 교황의 암노새란 레스토랑이 있다고 한다. 언젠가 프로방스로 여행을 가서.

독일에선 슈퍼마켓에서 값싼 캘리포니아 와인만 마셨다. 가끔 끼안티나 무통을 마시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한국에 돌아왔을 때, 슬슬 월드컵의 열기는 식어가고 사람들은 와인을 마시기 시작했다. 그때 삼청동과 안국동 뒷골목에 슬슬 생겨나기 시작했던 와인바에서 나는 어느날 알퐁스 도데의 소설을 떠올렸고, 사전과 인터넷을 뒤져서 샤토와 뇌프 그리고 포프를 합쳐진 와인을 발견하게 된다. 값이 좀 있었지만 아주 세진 않아서 그럭저럭 마셨던 기억이 난다. 그렇지만 그 와인병에 새겨진 양각이 있는 걸 알았는지 몰랐는지. 따졌는지 안따졌는지 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전형적으로 잰체하는 스놉인 내가 안따졌을 것 같지도 않고. 분명 아는 척 하면서 마셨을 텐데.

소설을 읽다가 요즘엔 샤토뇌프-뒤-파프는 얼마나 하나하면서 인터넷을 뒤적이는데. 이**와인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다. 명예훼손 따위를 우려해서가 아니고, 이 멋지고 유례가 깊은 와인에 이런 이름을 붙이는 천박한 발상에 기가 좀 질렸달까. 값도 좀 오른 것 같다. 투기꾼의 약탈적 가격 책정은 그런 이름이 붙은 다음이겠지. 사람들에게 폐가 된다.

와인 김빠지는 소리 아니 개봉해 둔 와인이 식초가 된 소리를 한 마디 하자면, 샤토뇌프 뒤 파프 병에 교차된 두 개의 열쇠가 양각된 것은 1937년부터라고 한다. 그러니까 소설의 전반부의 병의 양각 타령은 말이 안되는 이야기다. 너무 익숙해서 한 실수였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 병의 양각은 판매를 위한 마케팅이고, 그래서 또 굳이 작가의 실수를 드러낼 필요도 없었을거다. 베스트셀러인 한 동안 잘팔렸을 테니. 뉴욕의 어두침침한 작은 구석에서 몰락한 귀족인양 샤토뇌프 뒤 파프 병을 딴 이가 한둘일까. 그러고 보니 아비뇽 교황 중엔 보니파스가 없지 않은가? 프랑스 주교 서임권을 주장하고 「하나의 거룩한 교회Unam Sanctam」를 발표하고, 필리프 4세와 대립하여 교회 분열을 초래한 교황이 보니파시오 8세였지. 여튼 뭐 그러거나 말거나.

책을 소개하는 글에 알려진대로 러시아 혁명 직후 러시아로 돌아간 귀족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면서 따뜻하면서 절제되고 아름답고 기품이 있으며 인간미가 있었던 옛시절에 대한 향수를 은근히 불러일으킨다. 몰락해서도 품위를 잃지 않는 귀족. 그러고 보니 20세기의 소설에는 프랑스에서 지나간 옛시절을 그리워하는 러시아 옛 귀족들의 이야기가 종종 나온다. 레마르크의 소설 『개선문』에도 그랬다. 러시아 혁명을 피해 도망온 귀족들이 이제 가난해 진채 어쩌지 못하고, 나치 치하에서 살아간다. 동부전선에선 나치 독일과 소련이 싸우는데. 소련군에 의한 해방은 이들에겐 더 끔찍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동아시아에도 있지. 하얼빈이라는 도시가 그토록 아름답게 꾸며지고 한때 동방의 모스크바로 불렸던가. 볼셰비키들에게 밀려난 러시아인들이 몰려들어와 살았고. 이미 이토 히로부미가 죽었던 도시기도 하고. 청나라 영토지만, 러시아 군인에게 체포되었지, 동청철도는 사유지니까. 시베리아에서 태어난 그라즈단제브라는 젊은이는 하얼빈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건너가 버클리 대학을 마치고, Modern Korea라는 식민지 조선을 다룬 책을 쓰고, 메카시즘 열풍 속에서 행적이 묘연해지고. 이기백은 피난지 부산의 헌책방에서 영어로 된 그 책을 발견하지만 돈이 없어서 사질 못하고, 나중에 수복된 서울의 헌책방에서 그 책을 발견하고, 번역해서 내놓는 그런 이야기다.

혁명 후 러시아에서 라벨을 떼고 화이트 와인, 레드 와인으로만 나누어서 팔았다고 하자 아내가 냉큼 박수를 친다. 그게 그런 거라고. 그러니까 지금 약품을 성분으로만 따져서 오리지널과 복제약이 같은 거라고 보고, 복제약을 처방하도록 하는 거. 그리고 의사들의 수가를 하나로 묶어서 포괄수가제를 하는게 그런 거라고. 나는 처음엔 그건 아니라고 말했지만. 점점 그게 별 차이가 없는 것 같다. 와인의 용도란 뭘까? 마시고 취하면 기분 좋게 하는 것. 파트너에게 호감을 사고 꼬셔보는 것. 괜히 잘난 척하고 있어보이는 것. 식사에 곁들여서 소화를 돕는 것. 괴로움을 잊고자 취하는 것. 간이 부풀어 올라 병이 나는 것. 코가 빨개지고 다음날 아침 숙취로 머리가 아픈 것. 와인의 용도란 그 안에 들어 있는 %로 표기된 에칠 알콜의 농도와 그밖에 다양한 불순물과 화학식으로 표기되는 다양한 요소들의 조합에 불과하다. 그게 천국으로 날아가는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해도 결국 그때 뿐인거지. 기분을 좋게하는 것과 열을 내리는 것, 암세포를 죽게하는 것, 혈압을 내리고, 혈당을 낮추는 것 사이에 어떤 근본적인 차이도 찾을 수가 없다. 나는 아내의 의견에 동의하기로 했다. 약이 그렇듯, 술도 그런거다. 그러니까. 알코올의 농도로 표기하는 건 정말 정당한 것이며, 색깔로 표기하는 건 정당한 거라고. 나이가 드는 탓인지 미식과 맛집에도 관심이 없고 슬슬 질린다. 어쩌다 식당에 가면 물론 좋은 곳에 가고 싶지만. 내가 좋아하는 건 시장이나 마트에서 새로를 사다 아내와 함께 조리해서 먹는 거다. 어제 저녁에 조금 시간이 생겨서 해동해 둔 미국산 가자미를 모양 따윈 신경쓰지 않고, 가위로 예닐곱 토막을 낸 후, 후추와 식초를 뿌리고 밀가루를 입힌 다음 혹시나 해서 루가 들어 있지 않은 카레가루를 뿌려서 대충 식용유에 튀겨먹는 그런 저녁식사 말이다. 생선에 미리 칼집을 내서 청주와 레몬즙으로 미리 저려두는 그런 일 따윈 하지 않고, 튀긴 생선의 모양을 고려해서 멋지게 자르거나 파슬리로 장식도 하지 않고. 무엇보다 튀긴 이후의 상태를 고려해서 냉장고에서 꺼낸 다음 상온에서 30분 이상 놓아둔 후 튀기지 않고, 바로 끓는 기름에 넣는 것이다. 30분을 기다리기엔 배가고프기 때문에. 꺼내두면 오래 튀기지 않아도 속까지 고르게 읽는다는 건 알고 있기 때문에.

멋지고 아름다운 걸 가질 수 없는 사람과 함께 나누는 것과 아름다운 옛 시절 사이에서 하나 골라야 한다면, 거칠고 맛이 없으며, 때론 부작용이 있다해도 함께 나누는 편을 택해야 하지 않을까. 그 둘 사이에서 왔다갔다하면서 둘다 맛보면서 살아가고 있는 입장에서 하는 말이다. 화려한 귀족생활의 이면에는 농노들의 인내와 고통 뿐인 삶이 깔려져 있질 않나. 로스토프가 호텔에서 겪은 고통을 그에 비할까. 로스토프와 오시프의 논쟁에서 문득 보이던 그런 이야기를 이 책에서는 험프리 보가트 주연의 영화 『카사블랑카』로 대충 뭉개고 있지만. 나는 이 부분에 대해서 뭔가 어떤 생각이 떠올라 책을 3분의 2 이상 넘기면서 어떤 금융 비즈니스 출신의 미국인 소설가에 대해 야유하는 느낌이 들기 시작했다. 미국인들이 러시아나 소비에트에 대해 가지는 그 지독한 편견 말이다. 영화나 소설로는 언제나 음울한 러시아 밖에 보여주지 않는다. 그들의 삶은 칙칙하고, 정치는 거칠고 몰상식 한데다 가혹하고 어처구니 없으며 사람의 목숨을 너무나 가벼이 여긴다. 이 모든 것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그런 면 뿐일까. 귀족에도 좋은 귀족이 있듯이 말이다. 소설의 앞부분이 재미를 넘어서 즐거웠던 건 따뜻한 러시아의 사람들에 대해 그리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다가 소설가가 러시아에 대한 편견을 드러내는 순간 화가 나기 시작했다.

“이 지구상에서 인간이 존재한 곳에서는 언제나 추방당한 사람들이 있었다. 원시 부족에서 가장 앞선 사회에 이르기까지, 같은 구성원들로부터 짐을 꾸려 변경을 넘어가서 다시는 자신이 살던 땅에 발을 들여놓지 말라는 말을 들어야 했던 사람들이 종종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당연한 일일 터였다. 추방은 인간 희극의 제1장에서 하느님은 카인에게도 그 벌을 내렸다. 그렇다. 추방은 인류의 탄생만큼이나 오래되었다. 그런데 러시아인들은 국외가 아니라 자국 땅으로 추방하는 개념을 터득한 최초의 민족이었다. 일찍이 18세기에 차르는 적들을 나라 밖으로 내쫓는 것을 그만두고 대신 시베리아로 보내는 형벌을 택했다. 왜? 왜냐하면 그들은 하느님이 아담을 에덴동산 밖으로 추방한 것처럼 어떤 사람을 러시아 밖으로 추방하는 것은 형벌로서 충분치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로 보내면 추방당한 자가 죽기 살기로 열심히 일해서 집을 짓고 가족을 부양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즉 추방당한 자가 자신의 삶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타국 대신 자기 나라로 추방하면 삶을 새롭게 시작한다는 게 가능하지 않다. 왜냐하면 자국 추방은-시베리아로 보내든 ‘6대도시 금지’형에 처하든 간에-자기 나라에 대한 사랑이 시간의 흐름에 부식되어 흐릿해지거나 시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266-267)

“그래, 모스크바를 불태운 것이야말로 지극히 러시아적인 행위였어, 친구. 의심의 여지가 없어 그건 별개의 사건이 아니었기 때문이지. 그건 사건의 한 형식이었어. 수천 개의 역사에서 따온 하나의 사례일 뿐이야. 하나의 민족으로서 우리 러시아인들은 우리가 창조한 것을 파괴하는 데 기가 막히게 뛰어난 재주가 있다는 걸 증명해 왔다네.”(456)

자국추방이나 자기파괴 따위가 러시아의 전유물일리가 없지, 그거야.

대부였던 데미도프 대공이 로스토프에게 남겼다는 말, 인간은 자신의 환경을 지배하지 않으면, 그 환경에 지배당할 수밖에 없다(35)는 그말은 참 러시아적이지 않다. 러시아적이라는게 있다면 말이지. 거친 환경에 때로는 순응하고 때로는 조화하면서 거친 환경을 견뎌내는 것이 러시아적이라고 러시아의 문호들은 말해왔는데. 환경을 지배하라는 건 사실 앵글로 색슨의 슬로건 아니던가. 국교도 로빈슨 크루소 말이다. 무대와 배경을 남북전쟁에서 패한 남부로 옮겨도 잘 어울릴 것도 같고. 여튼 딱 한 번 등장하는 데미도프라는 이름에서 작가는 상상하기 시작한 것 같다. 신기한 비밀 서프라이즈에도 나왔다는 바로 그 데미도프 백작이야기다. 표트르 대제에 의해 귀족이 되고 광산업과 자선사업 그리고 러시아 과학 발달에도 기여했다는 데미도프 가문이 이탈리아에서 사들였다는 공작의 작위. 그리고 대공이라는 이름과 보나파르트와 러시아 혁명으로 이어지는 그 상상력에는 찬사를 보낸다. 역시 책은 재미있어야 하는 것이며, 때론 작가가 미워진다고 해도, 재미있는 건 어쩔 수 없는 거다. 그렇기에 책을 쓰는 사람은 읽는 편에서 돈을 내고 살 만큼의 글을 써야한다. 그게 뭐든 사는 쪽의 선택을 받을 만한 역량을 보여야 한다. 책은 자기 증명이 아니다. 책을 100쪽쯤 읽다가 작가의 다른 작품 『우아한 연인』이 벌써 절판된 것을 보고, 헌책방에서 번개처럼 주문했다. 이 책이 알려지면, 이것도 구할 수 없게 될터.

이 책의 백미는 후반부에 있는 ‘빵’에 대한 인용구 모음이다. 더 이야기하면 재미가 없을테니. 그만 두기로 하고. 안톤 체호프의 인용구만 옮겨두려고 한다.

“여기 베를린에서는 최상급 호텔의 안락한 방에 묵고 있어. 난 이곳 생활을 매우 즐기고 있단다. 이렇게 왕성한 식욕으로 맛있게 음식을 먹어 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구나. 여기 빵은 놀랍도록 맛있어서 나는 배불리 먹고 있다. 커피도 훌륭하고, 저녁 식사도 형언할 수 없이 맛있어. 외국에 나와보지 않은 사람들은 빵 맛이 얼마나 훌륭할 수 있는지 모를 거야.”(590)

나는 러시아인은 아니지만, 이 글의 한 문장, 한 문장에 동의한다. 운터 덴 린덴에 있는 호텔 아들론엔 한 번도 묵어보지 못했지만. 빵은 정말 맛있다. 요즘엔 서울도 빵이 좋아졌고. 일본과 프랑스 빵들이 많이 들어오고 있지만. 독일의 빵은 또 다르지. 거칠고 투박하고 달지 않으면서도 흉내낼 수 없는 멋진 맛을 내지. 아직도 한국의 빵들은 너무나 맛이 없다. 이제 또 다른 책의 택배를 기다리면서 커피나 내려서 마셔야 겠다. 엊그제 볶아두었으니 지금쯤이면.

2018. 7. 21.

* 괄호 안의 숫자는 번역서의 쪽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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