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카모토 다카시, 『미완의 기획, 조선의 독립』.


조미수호통상조약의 부속문서인 속방조회문의 초고이다. 청에서 작성하여 조선에 요구한 문서로 보인다. 실제와 약간 다르지만, 조선은 중국의 속방으로 외교와 내정은 자주라고 말하고 있다. 현재 교토대학 가와이문고 소장으로 사진은 고려대학교 해외한국학자료센터.

오카모토 다카시岡本隆司, 『미완의 기획, 조선의 독립: 글로벌 시대 치열했던 한중일 관계사 400년世界の中の日清韓関係史』, 강진아 역, 소와당講談社, 2010(2009).

어제인가 도날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폼페이오 국무장관 방북 급거 취소는 꽤 의미심장하다. 중국을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기 때문. 지난 번의 북미정상회담 취소는 사람들을 정신없게 만들었지만, 두번째가 되니 벌써 양치기 효과가 오는지 한국의 극성스런 보수언론도 그러려니 하는 것 같다. 내가 안봐서 안보이는 건지도 모르지만. 나는 트럼프의 외교정책이나 대중 무역전쟁 같은 것에 대해서 전혀 문외한이고, 짧은 지식으로도 그런 것은 도움이 안된다는 역사만 배워왔기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최근에 좀 분명해 지는 것이 하나 있다. 패권국가는 그 패권을 지키기 위해 전쟁을 불사한다는 것. 전쟁을 할 각오를 하고 달려들어야 패권을 유지할 수 있고, 그래서 국지전 때로는 전면전도 치른다는 단순한 역사적 사실이다. 미-중이 지금 패권 전쟁을 하고 있다면, 아니 패권으로 성장할 싹을 아예 밟아버리는 전쟁을 하고 있다면, 그많은 희생이 모두 이해가 된다. 그런 전쟁이나 전략은 숙명이다. 패권을 유지하려고 하는한. 패권국가가 그런 희생을 포기할 때는 영국이 그랬든 전세계 식민지를 조용히 독립시키고는 지역 세력으로 돌아가는 길 뿐이다.

그래서 인지 나는 미국의 대만(타이완) 정책이 늘 기묘하다. 트럼프가 대만에 미해병대를 보내서 중국을 자극하더니 이번엔 타이완의 대규모 잠수함 구매에 한국까지 들러리를 세웠다는 소식이 들린다. 대중국관계로 썩 내켜하지 않는 한국까지. 많은 사람이 기억하지 못할테지만, 한국전쟁이 일어난 후 미국의 최초의 군사행동은 타이완이었다. 미 제7함대가 타이완해협에 들이닥쳐서, 중국은 타이완을 점령하여 중국을 통일하려는 계획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 당시 까지 중국은 타이완 통일을 낙관하고 있었는데. 이는 미국이 넌지시 중국에 타이완을 굳이 방어하지 않을 것이라는 신호를 보냈기 때문이기도 하다. 중국군의 소규모 상륙작전이 실패한 후 해공군을 보완해서 대규모 상륙을 준비하고 있었다. 2~3년내 타이완을 점령하고 통일이 가능해 보였지만, 한국전쟁은 그것을 가로막았다. 전쟁발발 불과 3일만인 6월 27일 미 제7함대는 타이완으로 이동하여 해협을 봉쇄한다. 이후로 중국의 타이완 통일은 영영 물건너간 셈이 되었다. 아마도 타이완이 함락되면 오키나와가 위험하다는 주장이었겠지만, 당시 중국이 B29같은 장거리 항공기를 가진 것도 아니고. 요는 대중국 봉쇄정책이 한 걸음 더 앞으로 나간 것에 불과하다. 이제 미국이 타이완을 포기할리가 있겠는가. 미국의 타이완 접근은 돌발행동이 아니다. 만약 트럼프가 북한을 성공적으로 비핵화시키고, 경제발전의 과실로 이끌어서, 대중 봉쇄망을 더 탄탄하게 한다면, 미국의 대중 봉쇄망은 한반도의 남쪽에서 한반도 전체로, 대만의 재무장과 강화로, 그리고 베트남과 필리핀으로 이어지는 1800년대 이래 가장 중국 대륙에 육박한 봉쇄망을 가지게 된다. 봉쇄망을 구축하는데, 가장 유용한 것은 결국 돈인 모양이다. 힘만으로는 안되고. 힘과 돈과 그리고.

오카모토 다카시는 이런 상상을 하게 한다. 그는 교토학파 역사학자로 일본에서 주목받는 중국사학자다. 자신도 책에서 인용하지만, 나이토 고난内藤湖南의 후예라는 생각이 든다. 그는 한국과 중국 그리고 일본을 연결해가면서 조선의 외교정책을 음미한다. 이 책은 대중서이기 때문에 자세한 각주도 없고 논의도 그다지 상세하지 않지만, 오카모토 다카시가 어떤 방향으로 문제를 보고 있는지만은 분명하다. 책을 읽는 내내 한중관계를 외교사적으로 역사적으로 음미하지 않으면 이 시대를 이해하기 힘들겠구나. 나는 아직도 공부가 너무나 모자라는 구나 하는 생각만 반복하게 되었다. 이야기는 1896년 총리대신 김홍집이 군중들에게 둘러싸여 죽는 것으로 시작한다. 본래 친청파였던 김홍집이 이제는 친일파의 수괴로 일본이 주도한 개혁 실패의 책임을 지고 목숨을 잃는 것으로 시작한다.(22-24) 그는 어떤 운명에 휘말린 것일까.

오카모토 다카시는 조선왕조의 대중국 외교정책을 종속관계라는 이름으로 정리한다. 조금 화가 나기도 하지만, 냉정한 표현이다. 받아들일 수 있다. 조선의 국호 조차 명나라가 정한 것으로 신왕조는 명나라에 사신을 보내 조선과 화령和寧 중 하나를 선정해 달라고 한 일은(27) 이젠 드라마로도 잘 알려져 있다. 정말 어처구니 없는 일이긴 하지만, 중국의 조공국에서 흔히 있던 일이기도 하다. 그럼 지금은 화령민국 쯤 됐을지도. 한국에서는 흔히 사대교린이라고 불렀던 이 관계를 오카모토는 종번宗藩관계라고 정의하는데, 종주국과 번속의 관계라는 말이다.(30) 그리고 왜란 즉 일본의 조선 출병, 조일전쟁이라고 하자, 여튼 이 전쟁의 원인 중 하나로 조선의 교린정책의 실패를 꼽는다. 일본을 몰랐다는 것이다.(39-40) 그리고 중국에서 명청교체기가 온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즉 1, 2차 조청전쟁 시기의 종속관계와 형제관계를 저자는 꽤나 자세히 분석해 나간다. 왜 나는 이런 관계들을 역사적 실체가 있는 외교적, 사상사적 논쟁으로 생각하지 않고, 외교적 수사라고 생각했을까. 일본에서는 이 시기를 화이변태華夷變態라고 불렀다고 한다. 중화인 명이 이적인 청으로 모습을 바꾸었다는 것인데. 이夷가 화華를 대체하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세계 질서의 전환이었음을 의미한다.(71) 반면 한국에선 보통은 송-금-원-명-청의 변화가 이민족의 연속적인 침략과 한족의 회복으로 흔히 생각하지만. 명청교체 즉, 화이변태가 동아시이사의 베트남, 일본, 조선이 중화로부터의 자립성을 깨닫게 되어 초보적 내셔널리즘을 깨닫게 했다는 주장도 있었다.(72) 기시모토 미오岸本美緒가 대표적이다. (『현재를 보는 역사, 조선과 명청』, 역시 사두고 보지 않은 책) 그리고 이 격변의 시대는 조청의 종속관계와 조일의 교린관계로 일단 안정을 찾는다.(73-74)

서세동점의 시기가 와서 중국은 전쟁의 결과로 일본은 개항과 메이지 유신으로 정치체제를 변화시켜서 서양각국과 조약과 관계를 맺었다. 그 내용을 보면, 중국은 임시변통이고, 일본은 국가체제의 근본적인 변화라는 차이점이 있었다.(88-89) 그리고 조선에 관한 정책을 실시할 때, 프랑스든 미국이든 먼저 청에 문의를 한다. 조선이 청의 속국이라면 그 행위를 종주국인 청이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때 교섭을 담당한 총리아문은 조선은 확실히 청의 속국이지만 조공을 하고 있는 것일 뿐으로 ‘일체의 국사’는 자주라고 화답하게 된다. 조선은 그와 반대로 미국과 프랑스의 조약 체결 요구에 조선은 속국이라서 그렇게 할 수 없다고 거절하게 된다. 조선은 청의 보호를 원했지만, 청은 말려들고 싶지 않다는 그런 의사표시였고, 종속관계의 내실을 유지하려는 것이다.(93-95) 오카모토 다카시의 연구는 바로 이 속국-자주를 따라서 전개된다. 종번관계 또는 사대교린 관계를 국제법적으로 어떻게 이해하고 서양제국과 새 옷을 입고 등장한 일본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유지시킬 것인가의 문제라는 것. 조선과 일본의 강화도조약 1조의 자주국이라는 주장은 그래서 속국임을 완전히 부정하는 것이 아니었고, 조선 측에서는 교린 관계의 부활이었다. 이해의 격차는 여전했다.(98-99) 일본의 대만 출병과 류큐 처분 즉 오키나와 현으로의 통합을 본 중국은 조선에 서양 각국과의 조약 체결을 권하게 된다.(104) 그 과정에서 등장한 것이 황준헌 『조선책략』이다.(108) 그러니 1881년 천진에서 이홍장과 김윤식이 합의한 미국 측과의 조약안의 첫 조항이 “조선은 청의 속국으로 내정 외교는 조선의 자주이다”였다.(109) 이 기묘한 ‘속국 자주’라니. 그러나 여기서 청은 조선과의 특별한 관계를 중시하는 반면, 조선은 청의 보호아래 각국과 대등한 관계를 목표로 삼았다.(110) 그러나 미국이 이런 조항을 받아들이일리가 없다. 그래서 이런 문구를 명기한 친서를 미국 대통령에게 보내게 되는 데 이것이 바로 조회照會다.(위의 속방조회문) 이 과정에서 마건충이 역할하게 된다.(116) 임오군란의 결과로 1882년 다시 일본과 맺은 제물포조약, 조일수호조규속약이 체결되었지만,(121) 청과 조선 사이에서는 조청상민수륙무역장정章程이 체결된다. 조약이 아니라 장정이라고 한 것 자체가 조선이 속국이라는 뜻이며, 전문에 조선이 청의 속국이라고 명기되어 있다.(127) 이 ‘속국 자주’라고 하는 기묘한 관계는 서로 간의 동상이몽의 결과다. 외교가 아무리 서로간의 동상이몽이라고 하나, 이 정도가 되면, 안정적인 관계를 꾀하기 어렵다. 그 결과가 반드시 따라온다.

청이 압박하면서 나오자 조선은 자주로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1882년 마건충에 의한 대원군 납치 이후 고종은 박영효를 일본에 보내 조선은 내정, 외교 모두 자주라는 취지를 강조하게 된다. 다만 군사력이 없을 따름이라는 변명과 함께.(134) 군사력이 없는 자주라니, 그런 자주가 어디 있다는 건지. 당시 조선의 미국인 고문이었던 데니Owen Denny는 『청한론』이라는 소책자를 통해 조공국을 a state tributary to China로 표현한다. 자주는 full sovereignty였다. 속국을 vassal state로 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데니는 조선에 파견했던 이홍장은 격분한다.(149-150) 이후 청의 움직임은 한 마디로 ‘속국’의 실체화 방침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152) 그리고 젊은 군인 원세개가 등장한다. 그는 과감한 군사적 행동으로 쿠데타였던 갑신정변을 분쇄했고,(156) 조러밀약에 대해 ‘적간론摘姦論’을 통해 조선의 보호국은 상국인 청뿐이라고 주장한다.(160) 그의 직함 총리조선통산교섭사의事宜도 영어로 Resident라는 명칭을 사용하는데, 영국령 인도의 번왕국의 주재관에서 따온 명칭으로 번국에 대한 종주국의 대표하는 뜻이다.(161) 원세개의 주장으로 조대비가 죽자 청은 조선이 꺼려하는 번왕이나 그 지친이 죽을 때 종주국에서 파견하는 유제 諭祭의 사절을 굳이 파견하고, 그 일을 기록으로 만들어 『사한기략使韓紀略』이란 소책자를 굳이 만들어 영문판을 발행하여 배포하는데, 여기서 속방을 굳이 vassal state로 번역한다.(166) 패권국가는 일을 정말 꼼꼼하게 한다. 이런 기록을을 읽으면서 애틋한 마음이 생겼다. 조공국tributary state냐 종속국vassal state이냐에 청이 직접 뛰어든 셈이다.

오카모토 다카시의 견해는 어디까지나 일본의 입장에서 본 글이다. 물론 그가 과거의 군국주의자나 제국주의자는 아니지만.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문제는 중국이라는 것이다. 일시적인 안정을 가져온 세력균형은 달리 말하면 이홍장의 이른바 자제라는 것인데, 청이 우세하면서 관계의 악화를 가져오지 않도록 실력 행사를 자제한다는 것, 결과적으로 한반도는 군사적으로 공백화하여 중립화와 동일한 상태가 된다는 것.(183) 속국 자주의 논쟁은 끊이지 않았지만, 이런 길항을 이용해서 일종의 세력균형 상태가 유지되었다는 것이고. 이 상태를 바꾸려 했던 것은 일본이 아니라 중국이라는 주장이다. 즉 중국이 속국 자주에서 사실상의 속국으로 변화시키려 했기 때문에, 일본의 반작용을 받아서 그 나마의 지위도 상실했다는 비판이다. 일본은 어쩔 수 없이 전쟁으로 이끌려 갔다는 참으로 오래되고 일관된 주장이 그 바탕에 깔려있다.

오카모토 다카시는 다른 책에서 그 정황을 ‘속국과 자주 사이’라고 부른 적이 있다. 『属国と自主のあいだ―近代清韓関係と東アジアの命運』이란 책이다. ‘보호’와 ‘독립’ 사이라고도 할 수 있고 예禮와 법法 사이라고 부를 수도 있다고 한다. 핵심은 이런 사상事象을 현대 용어로 설명하기가 어렵고, ‘속국’이나 ‘보호’ 또는 ‘자주’나 ‘독립’으로 일원화할 수 없는 중간 영역이 있어서 세력균형을 만들어냈다는 점이다.(190) 동학농민전쟁을 근거로 청은 원세개의 주도로 ‘속국’을 보호하기 위해 군대를 보내고, 일본은 공사관 보호를 위한 군대의 철수를 거부하면서 청군의 존재가 조선의 자주를 규정한 강화도 조약 위반이라며 철수를 요청한다.(204) ‘속국’과 ‘자주’ 사이가 소멸하고, 속국이냐 자주인가 양자택일의 결단을 압박하게 된 것이라고 청일전쟁을 해석한다.(205) 게다가 속국 자주가 세력균형에 부합하지 않았기에, 러시아와 영국도 개입하지 않는다.(207) 삼국간섭으로 전쟁의 효과가 소멸하자, 을미사변을 일으켜 조선의 개혁을 강요하게 되고, 그 반발이 심해져서 일어난 아관파천은 조선의 보호국화를 단념해야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조선에 관한 한 청일전쟁에 승리한 의미가 소멸된다.(219-220) 개혁실패로 죽은 김홍집은 온건 개화파가 청의 퇴장으로 좋던 싫던 친일을 하게 되었음을 보여주며, 이는 청의 존재 혹은 ‘속국 자주’가 조선 정치에 영향을 미쳤던 시대의의 종언을 말하는 것이다.(224) 대한제국의 성립은 3년이 지나 1899년 한청통상조약의 수립으르 의미를 가지게 된다.(237) 한국의 독립 자주를 성립시킨 것은 국제적 요인의 미묘한 복합이었다.(240) 마침내 1899년 독립이 가능했던 것은 자주를 가능하게 하는 한반도를 군사적 공백으로 하는 국제적 세력균형이 수립되었기 때문이다.(243) 그리고 러시아의 만주에서의 군사력 강화는 이 짧은 독립이 유지되지 못하게 했다.(251) 어디까지나 수동적으로 일본은 대응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정말 전형적으로 변하지 않는 일본의 논리구조다. 그래서 그는 독립이 환상일 뿐이라는 사실을 가장 잘 알고 있었던 김홍집의 죽음으로 책을 시작하고 끝맺는 것일까.(255)

나는 통상 이 시기를 구한말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몰락이라는 관점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조선은 대한제국으로 이름을 바꾸었지만 몰락했다. 이 시기를 다루는 책들을 보면, 비분강개와 환타지 사이를 오가는 것 같다. 전통한국이 나름의 내재적 발전을 이룩할 수 있었다고 믿는 환타지나 조선이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다고 믿는 환타지나 모두 현실에 주목하지 않는다. 현실은 조선이 약한 국가weak state였다는 사실이다. 가난하고, 군사력도 없는 국가. 그리고 그것은 조선이 추구한 국가의 결말이었다. 전통한국 조선은 재정을 유지할 수 없는 세금을 제대로 걷을 수 없는 국가였다. 토지세를 걷기 위한 토지대장도 미비했고, 곳곳에 탈세할 구멍이 있었다. 최소한의 국가를 운영하기 위한 최소한의 세금은 피지배층인 농민이 부담했다. 그래도 모자라면 매관매직을 하고, 환곡으로 고리대금업을 했다. 삼정문란은 옳은 표현이 아니라, 문제의 본질을 호도하는 말이다. 본질은 과세할 능력도 의지도 없었다는 점이다. 호적이 있어도 징병을 할 수 없었다. 이 두 가지가 가장 본질적인 부분이다. 조선이라는 전통국가는 동원능력이 없는 나라였다. 여기서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전통한국 조선을 기획하고, 이를 이끌어온 양반 지배세력들이 바로 이런 형태의 국가를 바라고 만들고 강화해왔다는 것이다. 그들은 매양 개혁을 말했으되, 근본적인 개혁은 꿈꾸지 않았다. 대동이든 소강이든 강한 국가는 그들의 적이었다. 그나마 국가 운영을 위한 세금은 여러가지 명목의 간접세로 농민들, 가장 가난한 기층민들이 부담하고 있었다. 그리고 특별세로. 조세 제도의 미비, 인구와 토지 조차 확인하지 못한 것이 조선의 본질이고,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은 일본의 등장으로 겨우 해결되기 시작한다. 토지조사사업과 민적작성이 그것이다. 동원능력이 없는 귀족지배국가가 외교에 의존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 임기응변이 통하지 않았을 때, 일시적으로 외부의 침략을 당한다고 해도, 일상적으로 동원되는 국가보다는 값싸게 먹힌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상비군의 확충대신 의병에 의존할 것을 강요하면서, 각종의 특혜를 요구하는 것이나, 세제를 개편해서 직접세를 통해 복지 시행을 반대하고, 기부활성화를 말하면서, 그에 대한 세제 상 특례를 요구하는 것이나, 과거에서 현재까지 어떤 점에 있어서는 변한 것이 없다. 한국에서 가장 취약한 세제는 즉 부동산에 대한 세금이다. 부동산에 세금을 물리려다가 노무현 정부가 몰락할 정도로. 그리고 부동산을 소유하고 부동산에 대한 세금, 특히 토지로 얻는 불로소득에 대한 과세를 가장 강력하게 거부하는 계층이 또한 동시에 가장 대외(미국과 일본) 의존적이다. 한국의 국가는 ‘약한 국가’다. 국가는 오직 피지배층에 대해서만 강력한 힘을 발휘했고, 피지배층의 반란을 막을 정도의 군사력을 보유했을 뿐이다. 그리고 피지배층의 단결을 막을 만큼만 강력했던 것이다. 현대 한국은 어떤 의미에서 한반도에 수립되었던 국가 중 가장 강한 국가인지도 모르겠다. 여전히 취약한 부분으로 가득하지만.

역시나 가장 중요한 것은 현실을 직시하는 일이다. 왜 그렇게 현실을 직시하는 연구들은 많지 않을까? 왜들 자신들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역사를 통해서 하려고만 드는 것일까. 과거를 냉정히 살피지 못하게 그들은 방해하는 것은 무엇일까. 이 책을 읽으면서 역시 다보하시 기요시田保橋潔의 『근대 일선관계의 연구』를 읽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권의 번역서를 쌓아두고만 있은지가 벌써 몇 년인가. 그리고 몰락해가고 있지만, 역시나 종주국인었던 중국을 보지 않으면, 한말외교사를 이해할 수 없다는 점도 다시 한 번 통감했다. 『한청록』과 『건건록』이 번역된 것을 알고도 또 놀랐다. 무쓰 무네미쓰陸奥宗光의 『건건록』.

구한말에 벌어진 일련의 일을 중국에 책임을 두고 일본의 입장에서 기술한 책을 보면서 작금의 북한을 두고 오묘한 생각이 든다. 어쨌거나 트럼프는 제재라는 이름으로 북한의 목줄을 틀어쥐고 있다. 경제발전을 원한다면, 핵을 포기하고 나와야 한다. 북한이 핵을 포기하고 나오지 않고도 생존하려면, 중국의 도움으로만 가능하다. 일종의 현대판 속국 자주랄까. 오바마 행정부까지의 전략적 인내란 바로 이것을 인내한 것이 아니었을까? 트럼프의 북한 비핵화에 대한 강요는 미국에 대한 군사적 위협을 해소한다는 표면적인 목적에만 있는 것이 아닌 것 같다. 한반도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획기적으로 감소시키려는 공격적인 전술이다. 그렇기에 그의 북한 비핵화는 대중 통상전쟁과 궤를 같이하는 공략이다. 중국에 대한 무역전쟁 역시 중국의 경제력을 약화시켜서, 패권으로 등장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고, 북한에 대한 공략은 당근을 슬쩍슬쩍 보여주면서, 아니 한국, 베트남, 타이완, 싱가포르의 존재 자체가 당근이지, 북한을 중국의 영향력으로부터 빼내서 궁극적으로는 대중 포위망을 완성하려는 전략인지도 모른다. 트럼프가 이렇게 복잡한 생각을 할리 없다면, 그건 그냥 미국의 오래된 전략이고, 서세동점의 서구세력의 오랜 숙원이라고 해두자. 그리고 조선에 대한 일본의 역할을 이제는 남한이 북한에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북한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역시 전적으로 중국의 태도에 달린 것 같다. 중국이 마지막까지 거부하던 조선의 독립은 광서제가 1899년 한청통상조약에 동의하면서 이루어졌다. 중국이 서구 세력에 의해 과분瓜分되어 가는 상황이었다. 대중국 무역전쟁을 계속해서, 중국을 물러서게 만들면, 북한의 비핵화는 가능하다고 트럼프는 판단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중국이 버틸지 물러설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패권국가는 패권을 지키기 위해 희생을 감수한다는 사실이고. 도전자 역시 마찬가지라는 점이겠지. 이 한 판의 연극에서 한국의 역할이란, 북한을 적절히 압박하면서도 적극적으로 꼬시는 역할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고 한국 뭐 남한은 얼마나 다를까. 미국과의 관계 속에서 어느 정도의 자주성을 유지하는 것이지. 헌대판 속국 자주인가. 중요한 건 그 자주성을 이용할 수 있는 역량이고. 외교력 이상의 역량 말이다.

2018. 8. 26.

* 괄호 안의 숫자는 번역서의 쪽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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