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삼성,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


2017년 11월 29일 화성-15형의 발사 성공으로 북한은 ‘양탄일성’의 국가 핵무력완성을 선언하게 된다.

이삼성,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 핵무장국가 북한과 세계의 선택』, 한길사, 2018.

언제부터 인가 모자를 쓰고 구부정한 모습으로 발표를 하는 그의 사진이 종종 매체에 등장했다. 낯설었다. 핸섬한 젊은 시절의 그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왠지 쓸쓸한 느낌이 들었다. 한반도 정세가 폭풍처럼 변주하는 이때, 그가 새 책을 냈다는 소식이 들렸고, 오랜만에 그의 글을 찾아 펼쳐보았다. 여전히 흥미로운 그의 900쪽이 넘는 글을 순식간에 다 읽어내렸다. 고생하면서 썼을 저자를 생각하면 좀 미안한 생각까지 들었다. 아, 나는 얼마나 많은 말을 보태면서 얼마나 많은 죄를 지으면서 살아왔을까.

김소운의 『목근통신』에 실린 벤허 이야기로 시작하는 저자 서문을 읽어 나가는 과정에 마음이 아렸다. 1989년 광주민주화운동에서 미국과 미군의 태도를 비판한 글과 주한미군에 의존하지 않는 평화체제와 주한미군 철수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는 심야토론 출연 이후 정보기관의 수사와 압력으로 급작스럽게 맡고 있던 강의들을 그만두게된 아린 기억. 그리고 그 이후 대학과 대학가에서 벌어진 몇몇 사건과 소문들에 대한 이야기. 얼마나 말이 많은 동네인지 알기에 금방 수긍했지만. 또 여기에 대해서도 누군가의 다른 해석과 말들이 있겠지 싶고. 그런 일련의 이야기들과 모자를 쓴 그의 모습이 왠지 겹쳐져서 유독 쓸쓸한 느낌이 들렸다.

『한반도의 전쟁과 평화』는 무척 재미있는 책이다. 그러나 내용이나 주장은 요즘 라디오 방송에 나와서 전문가들이라는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처럼 솔깃하고 쌈빡하지는 않다. 이 사람들은 요즘 ‘전지적 작가 시점’이랄까 ‘신의 눈’이랄까. 트럼프와 김정은은 물론 그 주변의 중요한 정책결정자들의 기분과 안색과 마음 속까지 들여다보면서 말한마디 눈짓하나까지 의미를 두고 분석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정보 과잉이다.

그가 900쪽에 달하는 긴 분량의 글에서 말하고 있는 것은 실은 한 마디인 것 같다. ‘북한은 변하지 않았다’ 혹은 ‘북한은 변하지 않는다’라는 것. 그건 북한은 믿을 수 없다는 식의 악의적인 의미가 아니다. 북한은 줄곧 미국과의 평화협정을 원해 왔다는 것. 미국의 인정을 받고 국제사회의 일원이 되기를 바래 왔다는 것. 어떤 의미에서 북한의 핵개발은 오래 지연되어 왔다는 것이다. 북한은 그동안 미국과의 협상수단이 될만큼의 핵개발 시도를 하면서 협상을 시도해왔고, 그 시도는 계속해서 불발되어 왔다. 그것이 북한 핵개발과 핵협상의 역사다. 마침내 북한이 핵개발을 해서 핵을 손에 쥐자, 비로소 진짜 협상이 시작되었다. 어찌 보면 이것이 진실이다.

책을 덮고 난 다음 만약 북한이 1960년대 후반 혹은 1970년대 초반에 중국이나 소련의 도움을 받아 좀더 일찍 핵개발에 나섰더라면 협상의 양상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되었을런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도와줄리는 없으니 둘 사이를 이용해서랄까. 그랬을 경우, 한국은 물론 일본, 대만까지 이미 핵국가가 되어 있었겠지만. 적어도 북-미 수교는 이루어져 있을 가능성이 크다. 마오의 ‘양탄일성'(원자폭탄, 수소폭탄, 인공위성(ICBM)을 이르는 말) 전략의 의미가 요즘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결국 북한은 2017년 11월에 ‘양탄일성’을 완료하고, 국가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기에 이른다.

1994년 제네바 합의가 결국 실패하게 된 과정, 즉 2002년에 미국이 명분을 만들어 파기에 이른 과정이나 2005년 9.19 공공선언이 미국의 강경파들이 획책한 BDA 사태로 무산된 과정은 미국의 배신이나 이중성만을 원인으로 판단하기 보다는 북한이 결국 붕괴하고 말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었다고 봐야 할 것 같다. 북한의 협상력이 충분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2012년에 북한이 2.29합의를 한 달만에 깨뜨리고 은하 3호를 발사한 것은 이와 반대로 북한이 핵무장 국가가 된 후에 협상을 진행하기로 결심한 후에 나온 행동이 아닌가 생각된다. 핵무장이 완성되기 전에는 만족한 합의를 이룰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 아닐까.

그러면서 책을 반쯤 읽어가자 비로소 소위 전문가라면 모두 방송에 팔려나가서 아무 이야기나 막하는 이 국면에 누구나 내일이나 모레면 알게 될 일을 예언자인양 들떠 흥분해 있는 이때, 아무도 그를 부르지 않는지 그가 나가지 않는지 알 것 같았다. 그것은 이 시대의 국민/비국민을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 중 하나인 ‘천안함’ 문제에 대한 신중한 의문을 아직도 품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한 의문을 과장이나 음모론 없이 제시하는 동시에 예단도 하지 않지만 외면도 하지 않는 그의 태도는 어떤 의미에서 꽤나 양심적이고 일관되다. 89년 광주민주화운동에서 미국 문제를 제기했듯이. 아마도 그의 삶의 방식이겠지.

미일동맹이 미국의 대아시아 정책의 기축이라는 이야기는 새로울 것이 전혀 없지만, 그 이야기를 메이지 원로의 하나인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県有朋의 1890년 주권선과 이익선 이야기로 연결하는 솜씨는 흥미로웠다.(692-693) 미일관계는 1853년 페리제독의 내항 이후에 그 긴밀한 관계가 끊어진 적이 별로 없다. 아시아태평양전쟁 말기의 몇년간 서로 싸운 기간은 오히려 짧았다. 한미동맹이 미일동맹에 종속되어 있다는 점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지만. 그걸 역사적으로 해석하는 건 꽤나 흥미로웠다. 미일동맹이 제공하는 미국의 일본에 대한 안전보장, 그 안전보장을 위한 전진기지 내지 방파제로서의 한국의 존재는 지난 150년간 그 모습을 다양하게 바꾸어 왔지만 변함이 없다. 일본의 식민지로서 방파제 혹은 전진기지 역할을 하든, 미일동맹과 한미동맹이라는 연결고리를 통해서 하든. 며칠전 갑작스레 F-22 14대가 일본, 오키나와 공군기지에 머문다면서 새로운 대북압박이라는 식의 해석이 나왔지만 어쩌면 이것은 불안해 하는 일본에 대해 안전보장을 확약하는 몸짓일지도 모르겠다.

한국인들은 한반도 문제를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하고, 미국도 일본도 중국도 모두 한반도와 북한 핵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지만, 기실 한반도는 중요한 축이 아니다. 하나의 초점이라고는 할 수 있겠지만. 일본과 미국과 중국과 러시아는 각각의 축으로 돌아가고 있을 뿐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 흥분 속에서도 과대망상은 좀 그만두면 좋겠다.

어쩌면 트럼프 행정부가 이토록 급속하게 북한 핵문제 협상에 뛰어들려고 하는 것은 일단 북한이 협상을 하겠다고 나서고, 핵을 가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미일관계를 이전 행정부 만큼 중시하지는 않는 것이 아닐까 싶다. 아니면 다른 식의 보상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거나 아니면 다른 형태의 중국포위망을 구상하고 있거나. 그렇다고 한국이 일본을 제치고 그 자리에 뛰어들 수 있다는 건 아니니 오해하면 안된다. 한국이 미일관계의 끈끈하고 달달한 사랑을 부러움의 눈으로 쳐다보면서 미국에 대한 짝사랑의 역사를 이어간 것도 고종이후 거진 150년이 넘어간다.

부시 행정부의 라이스 전 국무장관이 2005년 6자회담을 통한 협상을 이야기 했을 때, 강경파인 럼즈펠드 국방장관이 NSC에서 협상을 해보라고 이야기 했던 이유가 미군철수의 가능성이었다는 점도 흥미롭다.(352) 라이스의 회고록의 한 구절인데. 읽어볼까 싶다. 주한미군철수가 럼즈펠드의 지론이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트럼프도 대통령 선거 유세 기간 동안 미군철수를 추진하겠다 그것도 아니면 한국이 돈을 아주 많이 내게 하겠다고 큰소리쳤던 것도 기억이 난다. 카터 이후 미국은 줄곧 한국에서 군대를 빼고 싶어 하는 것 같다. 물론 충분한 명분과 조건이 성숙되어야 하겠지만. 돈도 돈이고 부담도 부담이지만, 분쟁지역에 미군을 두고 인질이 되고 싶지 않아서 그러는 것이 아닐까.

한 가지 동의하기 어려운 지점은 ‘민족’ 개념의 복원을 주장한 대목이다. 포스트 담론이 가져온 민족 개념의 해체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면서 분단국가체제를 넘어서는 사유를 위해 여전히 민족 개념이 요구된다고 말한다.(724-727)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무엇보다 2018년에 아직 성공했다고 말하기는 이르지만, 이 정도의 변화가 가능한 것은 민족이라는 개념이 어느 정도 해체되었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민족이라는 말만 들으면 금새 머리가 뜨거워지고, 좌우를 막론하고 반론하기 어려웠던 그 시절에 비하면, 민족이나 통일이라는 단어를 한 걸음 떼어두고, 아예 말이 나도지도 않는 이 상황이 이런 변화를 가능하게 했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이 상황을 넘어서는 변화를 요구하는 상상력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평화가 구축될 때, 그 구축된 평화 속에서 태어나는 상상력에 맡겨야 하지 않을까. 그때 민족이 다시 소환될 수도 있고, 또 다른 것이 소환될 수도 있다. 기원을 따지는 고색창연한 형태를 띄고 새로운 담론이 등장하겠지만, 그것은 당대의 필요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진 담론에 옛 이름으로 포장하는 구태의연한 ‘국민’ 또는 ‘민족’ 담론의 새로운 형태가 될 것으로 조심스레 전망할 수 있다. 민족의 복원이라니 겉모습이야 엇비슷할지 모르지만 너무 구태의연한 발상이다.

핵무기 보유상태를 분석해 둔 표(545)를 보면서 가장 흥미로운 건 중국의 핵정책이었다. 중국은 꽤 오랫동안 200기 이상의 핵무기를 가지지도 않았고, 그것을 창고에 넣어둔채 실전배치도 하지 않으면서 핵균형에 참여하고 있다. 지금은 270기 정도로 보는데. 물론 핵무기와 미사일의 고도화를 포기한 것은 아니다. 새로운 미사일 체계를 만들어가면서 미군의 약점을 겨냥하고 있지만. 핵탄두 자체는 조절하고 있다. 일본을 자극하지 않기 위해서라는데.(144-151) 고슴도치나 여우 같은 핵전략은 차라리 중국이라고 해야할 판이다. 정작 일본은 핵무기는 없지만. 2014년 기준 일본이 보유한 분리 플루토늄의 양은 47톤으로 핵무기 5,000기를 만들 정도의 분량이라고 한다. 몬쥬에서 롯카쇼무라로 이어진 플루토늄을 활용하는 핵사이클의 완성은 일본의 오랜 숙원이기도 하다. 그 바람에 후쿠시마 원전 중 제3호기가 플루서멀(MOX)라는 플로토늄 화합물을 연료로 사용하는 바람에 원전사고 레벨도 7이 되기도 했었다.(842) 미국이 가진 핵무기가 6,500기 정도라는데.

오히려 위험천만해 보인건 파키스탄이었는데. 2015년 현재 인도의 핵무기가 100개인데 비해 파키스탄은 120개이며, 지금 현재의 증가 추세로 볼때, 향후 5~10년 안에 350기까지 보유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을 인용한다.(455) 취약한 재래식 군사력을 값싼 핵무력으로 해결하려는 욕망과 핵 대국인 중국과 인도 사이에 끼어있는 형세 등을 고려해 볼 때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위험도가 높아지는 현실인 것도 사실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을 끝내지 않는 한, 미국도 통제하기 어려운 상황이고. 미드나 영드에서 핵 확산 이야기만 나오면 파키스탄이 등장하는 이유를 알만하다.

지금까지 핵무기를 손에 쥐었다가 포기한 나라는 남아공 뿐이다. 구소련의 핵무기가 배치되어 있던 우크라이나 등과는 사정이 다르다. 미국의 묵인하에 보유하고 있던 핵무기를 남아공은 자발적으로 포기했다.(433) 그러나 여기에는 전혀 다른 맥락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인종주의이다. 남아공의 아파르트헤이트 백인정권이 핵개발을 한 것도 인종주의적 정권을 지키기 위해서 이고, 흑인들은 자신들에게 사용할수도 있었다고도 의심한다. 1993년 드 클레르 대통령이 자발적으로 핵포기와 핵폐기 선언을 한 것도 머지않아 등장할 흑인정권에게 핵무기를 넘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핵무기가 가진 인종주의라는 기본적 성격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역사상의 단 한 번의 핵무기 사용이 일본에 대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독일이나 이탈리아에 대해서도 핵무기를 사용했을까? 쉽사리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다. 게다가 1944년 부터 네이팜탄을 사용한 도쿄 대공습 및 일본의 도시들에 대한 전면적인 공습이 이어졌지만,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등을 비롯한 몇몇 도시들은 폭격하지 않았다. 아마도 그것은 단 한 번 이상 할 수 없는 원자폭탄 투하의 효과를 평가하기 위해 고스란히 남겨둔 것은 아니었을까? 이렇게 의심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대학에서 배우던 오래 전에 국제정치에서는 아주 기본처럼 민주주의 국가는 전쟁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다는 따위의 주장을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터무니 없는 주장이다. 19세기는 전쟁을 일으킨 나라들이 승리했다. 20세기형 전쟁은 전쟁의 결과에 대한 지도부들의 오판이 전쟁의 원인이었는데. 20세기 전반에는 권위주의 체제로 인한 지도자들의 오판으로, 후반에는 민주주의 체제의 지도자들의 오판으로 전쟁이 일어났다.(376) 어떤 것도 신봉하지 않기 깊이 새겨두어야 할 대목이다.

내가 국제정치 관련된 책을 펼쳐보지 않은지도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그동안 저자는 꾸준하게 작업을 계속해 나갔고, 이번에 읽다보니 눈에 뜨이는 책이 몇 권 읽다. 『제국』이나 『동아시아의 전쟁과 평화 1, 2』. 묵직하지만 작심하고 좀 읽어볼 참이다.

한국 시간으로는 오늘 밤 늦게 김영철이 트럼프를 면담하고 친서를 전달한다고 하는데, 그것도 그렇게 되어야만 확인할 수 있는 것이라 낙관하기는 이르지만 어느 정도까지는 이야기가 전개되는 것 같다. 그러나 핵협상이 상당한 정도로 전개되고 남북한 화해가 진행된다고 해도, 미국의 대한반도 정책이나 동북아 정책이나 아시아 정책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이다. 미일동맹도 그렇고. 약간의 조정이 이루어질 따름일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한반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에는 큰 변화가 올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지만. 기대를 가지되 냉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도무지 냉정할 수가 없구나.

2018. 6. 1.

* 괄호 안의 숫자는 쪽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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