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슨 펄트, 『대한민국 무력 정치사』.

2009년1월_용산구_한강로2가_철거현장
용산참사 사진. 구글에서 철거용역, 노점상 철거 등을 검색하면, 수많은 사진이 나온다. 그 사진들에 나오는 사람들의 초상권도 우려했지만, 무엇보다, 한 사람의 얼굴도 보이지 않고, 건물이 불타는 것이야 말로 이 사태의 본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모두 숨어버렸다. 건물주도, 조합도, 건설사도, 심지어 국가도. 존슨 펄트에 의하면, 이 사건이 쟁점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경찰이 얼굴을 빼꼼 내밀었기 때문이라는 것.

존슨 너새니얼 펄트(Jonson Nathaniel Porteux), 『대한민국 무력 정치사: 민족주의자와 경찰, 조폭으로 본 한국 근현대사』, 현실문화, 2016. 이 책은 펄트의 2013년 미시간 대학 박사학위 논문 Police, Paramilitaries, Nationalists and Gangsters: The Processes of State Building in Korea(경찰, 무장조직, 민족주의자, 조직폭력: 한국의 국가형성 과정)의 번역본이다. 물론 저자가 직접 단행본 용으로 고쳤다고 한다. 존슨 펄트의 이 논문은 자신이 조폭들을 인터뷰해서 썼다고 해서 유명해졌다. 책을 읽기 전에는 이런 연구는 한국인은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선거가 한참 진행되는 중에 젊은 연구자가 한강에서 시체로 떠오른다. 경찰은 물론 모두가 외면하는데, 한 사람이 그의 죽음을 파헤치겠다고 덤벼든다. 그의 자료를 뒤지다가, 발표되지 않은 연구자료가 나타난다. 조폭들과 술마시면서 떠들어대는 동영상파일, 거기에는 선거에 출마한 유력 정치인(곧 대통령 후보가 될 사람)이 조폭 두목과 함께 술을 마시면서, 모의하는 내용이 담겨져 있다. 이번에는 진실을 쫓던 이 사람이 죽음의 위기에 처한다. 아서나, 아무래도 나는 영화를 너무 많이 본 모양이다. 하지만 막상 책을 모두 읽고 난 지금의 심정은 도대체 인터뷰는 왜 했을까로 바뀌었다. 이 정도의 내용이라면, 굳이 위험을 무릎쓰고 조폭들과 인터뷰할 필요까진 없었을 텐데. 혹은 위험스럽지 않았나. 물론 인터뷰 내용을 모두 논문에 쓴 건 아닐테지만. 조폭 관련 영화를 만드는 시나리오 작가나 감독 때로는 배우들도 그들의 행동을 참여관찰하면서 배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펄트의 표현대로 미국에서는 마피아와 어울릴 일이 별로 없는 반면, 한국에서는 너무 가까워서 그런가?

존슨 펄트의 연구내용이 실제 알려지기 전에, 그가 주목받은 것은 방법론 때문이었다. 막상 글을 읽고 나니, 그의 방법론(인터뷰에 근거한 표준적 질적 연구)이 불만스러우면서, 동시에 여러가지 놓치고 있던 시사점을 준다. 그러나 그 시사점은 이 책 소개를 읽은 대부분의 독자가 기대하고 있던 것과는 정반대의 것이다. 보통의 독자라면, 한국의 근대국가의 야만성을 드러내 줄 것으로 생각했겠지만, 실상은 이런 일은 대부분의 나라에 있는 일이라는 것이다.

존슨 펄트는 자신이 한국에서 직접 본 인사동 노점상 철거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런 일은 민주화된 국가에서는 충격적이라고, 하지만, 이런 도입은 일종의 소설적 장치에 불과할 뿐, 그는 이미 그럴 줄 알고 있었다. 그는 바로 그런 것을 연구하러 한국에 왔으니까. 그의 주장을 아주 간단하게 요약하면, 이렇다. 1984년 목동철거 이후, 한국의 재개발 철거와 노점상 철거, 그리고 노사분규 현장에 투입되는 경찰력은 모두 ‘민영화’되었다. 그리고 그 이유는 좁게는 민주화, 넓게는 사회의 영향 때문이다. 펄트는 저자율성과 고능력이라는 간단한 도식으로 이를 범주화한다.(39) 과거는 국가 능력이 부족해서 무장조직이나 준군사단체에 국가가 폭력을 의존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현실은 국가 능력이 충분한 나라에서 그러나 정권의 자율성이 낮은 나라, 즉 민주적인 나라에서 국가는 폭력의 직접적인 행사자가 되기를 꺼린다. 그는 메롬(J. Merom, How Democracies Lose Small Wars)에 의지해서, “민주국가, 즉 시민이 효과적으로 또 일상적으로 정치력을 행사하고 이익을 도모해 정치과정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정치체가 소규모 전쟁이나 장기전을 수행할 때 근본적으로 불리하다”(38)고 말한다. 이런 나라들에서는 폭력이 요구될 때, 간접적 폭력, 폭력의 외주화, 폭력의 민영화가 필요하며, 이때, 조직폭력이 설립한 경비 · 용역 등에 의존한다는 것이다. 존슨 펄트의 이론적 자원의 핵심에는 게임 이론이 자리잡고 있다. 토머스 쉘링(Thomas C. Schelling)의 암시장에 대한 연구(Choice and Consequence)가 핵심에 자리잡고 있다.(33-34) 비용효과의 문제라는 이야기다.

더욱이 이런 일은 한국에서만 있는 일이 아니다. 독자들은 실망스럽겠지만, 이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점은 시사점은 이것이다. 국가가 산적, 해적, 용병, 사략선원을 이용한 서유럽의 역사로부터 시작해서, 일본, 라틴 아메리카, 대만, 북아일랜드 등에서 이런 조직을 이용한 사례를 들고 있다.(24-26) 내가 다소 놀란 것은 이 분야에 대한 풍부한 문헌들이었다. 주석과 참고자료에 잘 정리된 연구들 목록이 있다. 아리아스(E. D. Arias)의 브라질에서 마약과 민주주의 연구(Drugs and Democracy in Rio de Jameiro), 스타크(D. H. Stark)의 일본의 야쿠자 연구(The Yakuza: Japanese Crime Incorporated), 시니아워(E. M. Siniawer)의 일본 연구(Ruffians, Yakuza, Nationalists: The Violent Politcs of Modern Japan, 1860-1960)러시아 마피아에 대한 바레스(F. Varese)의 연구(The Russian Mafia)와 볼코프(V. Volkov)의 연구(Violent Entrepreneures), 코린 친(Ko-lin Chin)의 대만의 범죄 집단과 정치 집단의 관계에 대한 연구(Heijin: Organized Crime, Business, and Policies in Taiwan). 요는 국가와 비국가의 폭력 협력의 일반성에 대한 것이다.(13) 한국 국가나 경찰만 딱히 악마인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

차라리 나는 영화 『대부』의 앞부분이 떠올랐다. 말론 브란도가 맡았던 마피아 보스, 물론 존슨 펄트도 마피아 이야기를 꽤 한다. 뉴욕의 젊은 마피아 보스는 새로운 이민자에게 주거, 일자리, 보호를 제공한다. 그는 그 댓가로 충성을 요구한다. 집에 마약이나 무기를 숨겨두거나, 자기가 원하는 대상에게 투표하도록 하는 것. 시노폴리가 정당론 교과서에서 이런 것을 정치적 기계(machine)이라고 불렀다.

존슨 펄트가 주목한 것은 민주화 이후, 경비 용역을 이용한 폭력 행사가 재개발을 위한 철거 현장, 노점상 철거, 노사 분규 현장에서 주로 나타나는 이유이다. 그리고 그는 그 이유를 ‘중산층의 사회경제적 안녕’으로 들고 있다. 주택 공급 확대, 사회기반시설을 증진하는 대규모 재개발, 국가의 경제적 활력을 위협하는 노동 불안, 그리고 도시 미관을 위한 폭력 앞에서 중산층은 침묵한다.(21-22) 한 마디로 그것은 중산층의 욕망이다. 그리고 그 근거로 87년 이루어졌던 민주화 연합이 정치적 자유의 획득 후 중산층의 외면으로 붕괴 되었다고 설명한다. 이때, 존슨 펄트가 드는 전거는 구해근, 우정은, 권종범이다. 존슨 펄트는 영문으로 된, 발간된지도 좀 시간이 지난 몇몇 연구서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나 보다. 87년 6월의 그 뜨거운 여름을 어느 정도로 승리로 이끌 수 있었던 것이 당시 표현으로 넥타이 부대, 존슨 펄트의 표현으로는 중산층의 가담으로 이루어진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호헌철페, 독재타도, 직선제 개선”으로 요약되는 정치적 자유화에 성공한 후 이완된 이유에 대해서는 한두 마디로 요약할 수 없을 만큼 복잡한 정치적 지형이 있으며, 지금까지도 영향을 미치는 지역주의도 큰 한몫을 차지한다. 존슨 펄트는 4장에서 ‘민주화 연합’의 해체를 말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민주화 연합’ 같은 것이 있었는지, 원래 보수적인 가치와 자본주의적 가치를 내면화하고 있었던 것이 아닌지, 그날의 30~40대는 오늘의 60~70대가 되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당시 항쟁을 주도한 민주화 운동 세력, 학생, 노동운동은 오늘날 모두 귀족화되었다는 말을 듣고 있으며, 이들 자체가 상당수 중산층(중간계급)이 되어버린 현실에서. 물론 이런 ‘민주화 연합’의 해체나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민주주의 공고화 논쟁 같은 것이 1990년대 중반에 꽤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는 동안 민주화 운동과 노동운동이 꼭 그런 것만은 아니었음도 드러나 버렸다. 존슨 펄트가 비록 한국에서 현장연구를 했다고 하나, 현지 언어에 능숙하지 않았던, 현지어로 축적된 문헌을 독해할 수 없었던 그에게 이런 거시적인 문제에 대한 분석은 무리였던 셈이다. 게다가 이 주제는 아직도 논쟁 중이다.

다만 민주화 이후 사람들은 좀 더 우아하기를 원하게 되었다. 눈앞에서 폭력이 충돌하는 것은 보고 싶지 않았다. 경찰력이 직접 폭력행위에 가담하는 것도 싫었다. 국가권력이 직접 폭력에 가담하는 민주국가의 시민으로 자신들의 위신 문제였다. 그래서 경찰은 방패로 폭력의 현장을 가리고, 관리하고, 폭력은 전문가들에게 맡겼다. 국가권력과 중산층의 결탁인 동시에 폭력에는 가장 가난하고 사회에서 낙오된 사람들이 이용된 셈이다. 펄트도 조직폭력 조직원들이 어떻게 신규 조직원을 충원하는 지 알고 있었다. 물론 존슨 펄트는 좀 더 우아한 표현을 사용한다. 중산층은 양가적이며, 권력은 재개발업자, 세입자, 소유주, 강제로 내쫓기는 이들 사이의 갈등을 효과적으로 만들어 냈다는 식으로.(142-143)

바로 여기에 2016년 총선에서 2번당을 이끌고 있는 우클릭의 원인이 있다. 성공하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그렇게라도 시도하지 않으면, 영원히 2등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비록 충분한 설명이 이루어지 않았다고 해도, 존슨 펄트가 지적한 ‘중산층의 욕망’은 매우 설득력이 있다. 돈을 벌고, 부를 가지고 싶고, 부동산을 통해 그것이 이루어지고, 가난한 사람들은 좀 안보이는데로 치우고, 깨끗해졌으면 좋겠고, 노점상이 없어져서 자영업자들에게 방해가 안되었으면 좋겠고, 노사분규 같은 것이 일어나면, 경제도 차질이 생기고, 버스나 지하철이 멈추는 것도 불편하니 큰 불편이 없었으면 좋겠고, 그 모든 것을 다 감안하려면, 펄트의 지적대로 많은 돈이 드니 싸게 하고 싶고(122). 그래서 폭력에 의존한다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에는 연속성과 비연속성이 있다. 여전히 폭력이 행해진다는 연속성, 밀양에서도, 강정에서도, 또 오늘도 곳곳에서 폭력이 행해진다는 점과 폭력행사의 주체가 바뀌었다는 즉, 폭력이 민영화되었다는 불연속성. 그러나 존슨 펄트는 1945~1960년까지를 들면서 당시는 국가가 능력이 부족해서 폭력을 외주화 했다가, 쿠데타와 유신으로 국가능력이 강화(자율성의 확보)되면서, 국가가 직접 폭력을 행사하다가, 지금은 다시 민영화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즉, 그는 불연속성에 주목한다. 여기서 한 경찰의 인터뷰가 덧붙여진다. “당시에는 우리가 깡패였다.”(161) 역설적으로 이 인터뷰는 폭력의 연속성을 보여준다. 이 책 전체에서 인터뷰 결과가 빛을 발한 것은 오직 이 한 장면 뿐이었다. 왜 그렇게 어려운 인터뷰를 했을까. 물론 존슨 펄트는 조폭들과의 인터뷰를 보조로 형사정책에 관한 연구들을 주 근거로 조폭 조직들의 구조에 대해서 설명한다.(60-66) 그리고 그 내용은 조폭을 주제로 한 영화 서너편만 보면, 모두 알 수 있는 내용들이다. 영화가 너무 사실적인 것이 문제였던 모양이다.

이 연구가 가장 실망스러운 것은 국가형성기라고 부르는 해방공간, 미군정기, 이승만 정권과 한국전쟁 시기에 나타난 폭력에 대한 연구였다. 대한청년단이나 서북청년단 등을 언급하는 그의 연구는 거의 전적으로 그레고리 핸더슨(Gregory Henderson, 『소용돌이의 한국정치(Korea: the Politics of the Vortex)』), 존 메릴(John Merrill, 『한국전쟁의 기원과 진실(Korea: The Peinsular Origins of the Wars)』), 그란트 미드(E. G. Meade, 『주한미군정사(American Military Government in Korea)』), 리처드 로빈슨(R. D. Robinson, 『미국의 배반(Betrayal of a Nation)』), 브루스 커밍스(『한국현대사(Korea’s Place in the Sun)』)에 의존하고 있다. 브루스 커밍스 한 사람을 제외하면, 모두 미군 혹은 미군정에 관여했던 인물들의 증언록이다. 게다가 앞의 네 사람의 자료는 작성순서대로 서로의 자료를 이용하고 있고, 브루스 커밍스도 이 자료들을 모두 이용한다. 즉, 자료의 원천이 너무 좁고 반복적인 자료들에 연구가 한정되어 있다. 존슨 펄트는 역사를 다루고 있지만, 지나치게 간략하게 기술되어 있다. 이 정도로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너무 성급하고, 거친 것 아닐까.

내가 이 책에서 얻은 소득, “우아하게 지속적으로 추구하는 중산층의 욕망”과 이를 “관리하려는 국가권력”에 대해 통찰력을 얻고 싶었다면, 미셸 푸코의 통계를 근거로 해서 편익대비 관리비용을 계산하는 ‘안전관리’ 메커니즘(『안전, 영토, 국가』)를 이론적 바탕으로 해서, 문헌조사와 함께 참여관찰을 통한 “두꺼운 기술(thick description)”을 시도했을 것 같다. 그리고 이 책의 제목을 본 독자들은 그런 것을 기대했을 것이다. 물론 내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해서 배운 것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연구는 사례연구이다. 이 연구의 분야는 ‘정치과정’에 속하고, 이미 성립된 이론을 한국 이라는 사례를 통해 검증하고, 수정, 확장하려는 시도였다. 그 점에서의 성공여부는 이 연구가 속한 분야를 잘 알지 못해 확신할 수 없으나, 나름의 기여를 인정받은 것으로 보인다. 일본, 대만, 한국을 비교했으면 참 좋았을 텐데. 다만, 본인이 말하는 대로, 한국학에 기여한 것은 아니고. 그러니 이런 관심에 본인이 다소 당황해 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 번역된 원고를 받아든 편집자도 당황하지 않았을까. 한국에 대한 연구는 한국어 자료가 완전히 충분하지 않으면서, 꽤나 많다. 일본어 자료도 많고, 한국을 연구하는 이들에게 이런 문제는 꽤나 고통스러울 것이다.

또 하나 이 책의 주석과 참고문헌을 통해서 검토해 보야할 사람들을 꽤 여럿 발견하게 되었다. 가장 눈에 뜨이는 이는 Oh, John Kie-chiang (한국명 오기창)의 Korean Politics: The Quest for Democratization and Economic Development (Cornell Univ. Press, 1999)였다. 1930년생으로 미국에서 50년간 활동한 재미학자이지만, 판문점 정전회담 공보관이었고, 조지타운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후, 한국에서 홍대와 숙대에서 강의하다, 1971년부터 미국카톨릭대학 교수로 국제정치를 가르쳤다. 저간의 사정은 대략 짐작이 된다. 중요한 자료라 생각된다. 그밖에 1998년 스탠포드대 출판부에서 나온 존 리(J. Lie)의 Han Unbound: The Political Economy of South Korea나 E. Mobrand의 2006년 프린스턴대 박사학위 논문인 Internal Migration and State Retreat in Chinese and South Korean Industrialization 등은 꼭 살펴보아야 할 것 같다. 그 외에도 눈에 뜨이는 문헌들이 여럿 된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 꼭 언급하고 싶은 것은 이 연구에는 또 하나 희생자가 가려져 있다는 사실이다. 철거 용역이나 경비 용역으로 충원되어서, 조폭으로 충원되려는 젊은 이들. 꼬붕이라 불리는 말단 행동대원들. 이들 중 상당수는 한국의 극심한 경쟁 시스템에서 한 번 낙오한 사람들이고, 어려운 환경에서 자라난 사람들이 많다. 잔혹한 경쟁사회는 한 번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밤거리를 헤매게 만든다. 물론 그들 모두가 그러는 것은 아니니, 본인의 책임이 있음은 물론이고. 말단 행동대원의 월수입도 88만원 세대에 못지 않다고 들었다. 합숙소에서 생활하며, 출퇴근 시간도 없고, 실수하면 가혹한 체벌을 받으며, 부상을 당해도 보상받을 길도 없고, 부정기적으로 용돈을 받는 것이 수입의 전부라는 이야기. 이들도 말하자면 일종의 폭력사업의 소모품인 셈이다. 물론 위로 올라가면 수입이 생기겠지만, 거기도 피라미드라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들은 그 댓가로 범죄에 발을 담그게 된다. 가혹한 인생이다.

책을 소개하는 글을 쓰거나, 추천사를 쓰려면, 책을 먼저 읽었으면 좋겠다.

아, 그리고 존슨 펄트는 현재 일본 호세이(法政)대에서 자이니치 사회에 대한 감시와 감독을 연구한다고 한다. 그냥 그렇다는 이야기다.

2016. .3. 24.

* 괄호 안의 숫자는 번역서의 쪽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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