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재, 『제국 일본의 조선영화』.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최인규의 영화 「家なき天使(집없는 천사)」의 한 장면. 식민지 계몽 남성이 정점에 위치하고 있다.

이영재, 『제국 일본의 조선영화, 식민지 말의 반도: 협력의 심정, 제도, 논리』, 현실문화, 2008.

무심코 집어든 책에 흥미를 느껴서 빨려들 때가 있다. 이번이 꼭 그렇다. 포장을 뜯고 책을 본 순간 의아했다. 난 왜 이 책을 주문했지? 알 수 없는 충동으로 표지와 목차를 훑어본 후 읽기 시작한 책에 나는 곧 빠져들기 시작했다. 서문의 한 구절이 유독 맘에 들었는지 모른다. “나에게 영화는 언제나 ‘본다’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12) 평범한 한 문장이 시네필을 자처하며 영화의 세계 속으로 빠져들었던 내 젊은 날의 한 때를 상기시켰는 지도 모른다. 그때는 왜 그렇게 보는 데 집착했는지. 마음을 어지럽히는 자극적인 영화의 화면에서 눈을 돌리지 않으려 애썼고, 스크린에 빔프로젝터로 돌아가는 비디오 테이프가 낡아서 화면이 어른거려 눈물이 나도 개의치 않았다. 심지어 너무나도 어이 같은 영화에 대해서 한 마디 하기 위해서, 굳이 할인되지 않은 정가를 다주고서 영화를 본 후에야 비로소 이죽거리곤 했다. 보지 않고서 말하는 건 스스로에 대한 거짓이라고 생각했기에. 보지 않고, 쏟아내는 말들의 성찬은 금새 냄새가 나고 질리는 법이다. ‘본다’라는 출발점의 중요함이란.

『제국 일본의 조선영화』는 식민지 시기의 영화들을 다룬다. 「지원병」, 「조선해협」, 「반도의 봄」, 「집없는 천사」, 모두 1990년대 이후 중국과 일본에서 발굴된 영화들이다. 말로만 전해져 왔던 영화들을 실제로 보는 것은 전혀 다른 감각적 경험이다. 거기서 나타난 것은 당혹스런 친일영화, 협력영화의 모습이었다. 이 책은 그런 영화들에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아 그리고 식민지 시기에 시나리오가 완성되었지만, 정작 영화화는 그 후에 이루어진 「맹진사댁 경사」 아니 「시집가는 날」. 다시 생각해 보면, 가장 당혹스러운 영화. 아쉽게도 나는 이 영화들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여기서 그 영화들에 대해선 언급할 수 있는 것이 없다. 나는 다만 그런 영화들을 읽어낸 책을 읽고 든 생각을 몇 가지 적어보려 한다.

이 영화[「지원병」]은 명실공히 당시 조선에서 최초로 지원병을 다루었다. 그리고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모인 사람들은 모두 (채만식의 표현을 빌리자면) 시대의 ‘아편중독자’들이었다. 그것은 이 영화가 1930년대 말의 전향이라는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당시 조선의 중견 지식인들의 내면 풍경과 어느 지점에선가 맞닿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58) 이 영화는 이미 ‘결과’에서 시작된다. 그것은 우울증에 걸린 춘호이다.(59) 문제는 이 갈등들보다 먼저 와 있는 저 우울한 춘호라는 인물이며, 또한 이 갈등을 한꺼번에 뛰어넘는 출구로서의 지원병 되기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우울증이야말로 이 영화의 창작 주체들이 아무런 설명 없이도 전달 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 바로 공명의 근원이었던 것은 아닐까.(61)
이타가키의 분석에 의하면 《S의 일기》 전편에서 ‘우울증’과 관계 있는 표현은 1930년대 중반에 이르러 점점 증가하는 추세를 보인다. 우울, 음울, 울울, 우수, 침울, 울증, 울분, 음침, 권태, 태만, 염증, 괴로움, 답답, 답답증…… 실로 다양한 어휘로 표현되는 S의 증세는 그가 중견인물이 되어갈수록 점점 악화된다. …… 1936년, 그는 대구의 도립병원을 찾는다. 이곳에서 급기야 신경쇠약이라는 병명이 내려진다. 대체 S를 사로잡고 있는 이 우울증은 어디서 비롯하는가? 흥미로운 것은 우울증의 심화와 반비례하여 ‘민족’이라는 말의 빈도수가 점점 사라진다는 점이다.(64)
영화 「지원병」과 「조선해협」 그리고 몇 편의 내선연애를 다루는 소설을 언급하면서, 식민지 청년의 우울을 탈남성화 즉 거세로 지원병으로 제국 군인이 되는 과정을 재남성화로 풀어낸다. 이들에게는 연인이 때론 약혼자가 있어도 결혼하지 않는다. 동거하는 처지라 해도 인정받지 못한다. 이들이 지원병이 되어 군복을 입고, 그들이 환송하기만 하던 열차에 올라탈 때, 이들은 가족의 일원으로 상속자로 인정받으며, 남편이 되고, 한 사람의 청년이 된다. 더욱이 이들은 ‘아편중독자’들, 한때 사회주의에 심취했다 전향한 자들이었다. 1937년은 그런 점에서 아주 중요한 분수령이다. 중일전쟁을 시작하면서, 일본 제국에 생겨난 막대한 동원의 필요성, 화북의 점령지로 빠져나간 공백을 메꾸기 위해 제국의 2등 시민인 조선인 엘리트들에게 생겨난 기회의 창. 지원병은 제국 일본에서 시민권을 얻으려는 식민지 엘리트들의 기표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식민지 청년의 우울에서 연상한 것은 2020년대를 살아가고 있는 젊은이들의 우울이었다. 결혼도 연애도 자녀갖기도 포기했다고 스스로 선언하는 이 젊은이들은 21세기 대한민국의 성원권을 찾기 위해 오늘도 분주하게 뛰어다닌다. 그래서 공무원과 공사, 대기업 공채에 매달린다. 정규직은 그들을 재남성화 내지 재인간화 시키는 기제다. 이 시대에는 남녀의 구분이 없다. 프로이트가 말하는 거세가 젠더 PC함에는 어긋날 지도 모르겠다. 생존 내지는 삶을 위한 연애, 결혼, 출산의 중단은 어떤 의미에서 탈남성화이자 탈여성화 아니 탈인간화라 부를 수 있으리라. 인간이라는 종적 존재의 연속성은 지금까지는 사랑과 성, 결혼과 가족, 그리고 출산이라는 고리를 통해서 이루어져 왔다. 그리고 바로 이 부분에 대한 새로운 해석 내지는 재해석이 삶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 그런 것들 없이도 충분히 완전한 인간일 수 있다는 해석들. 이런 해석들 그리고 이런 해석들의 확산은 삶의 변화에 뒤따른 것이기도 하다. 수명의 연장은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삶의 양식과 사고를 요구한다. 프로이트는 이제 의미를 상실하고 있는지도. 인간이라는 존재의 종적 연속성이야 어떤 식으로든 유지되겠으나 그 방법은 달라지겠지. 정규직이라는 안정적 직장 확보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또 다른 형태의 인정투쟁, 성원권 투쟁이라고 부를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것은 충족적이지 않다. 어떤 이들은 일시적인 안정을 줄 뿐인 직장을 버리기도 하고, 부채를 두려워하지 않고, 할 수 있는 방법을 모두 동원해 자산투자에 몰두한다. 아무것도 보장되지 않는다는 불안감, 부모 세대와의 경쟁 내지는 따라하기. 결여, 상실, 우울. 이 정도까지 생각이 미치자 나는 이 책을 뒤적이며 계속 읽기로 했다.
프로이트의 고전적 정의에 의하면 멜랑콜리란 완료되지 못한 슬픔이다. 그것이 완료될 수 없는 이유는 (애도[mourning])와 달리) 그 자신이 무엇을 상실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64) 우리는 환자가 무엇에 그토록 강하게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멜랑콜리의 제지가 불가능하다는 인상을 받을 뿐이다. 하지만 우욷증에 걸린 환자는 비애에는 결여되어 있는 한 가지, 즉 자아감정의 두드러진 저하, 격심한 자아의 빈곤을 보인다.[프로이트 인용] ……. 멜랑콜리란 자신이 무엇을 상실했는지 더 이상 알 수 없는 상태, 상실의 대상을 의식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일어난다.(65) 우리들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손에 쥐지 못한 것, 처음부터 잃어버린 대상을 소유하는 유일한 방법은 지금 소유하고 있는 대상을 마치 이미 잃어버린 것인 양 취급하는 것이다. (중략) 멜랑콜리의 주체는 단지 대상을 단념할 수 없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상을 실제로 잃어버리기 전에 그 대상을 두 번 죽이는(그것을 잃어버린 것으로서 취급하는) 것이다.[지젝 인용] 슬라보예 지젝에 의하면 멜랑콜리란 한 번도 소유해본 적이 없는 것을 잃어버렸다고 가정하는 이중부정의 상실의 감각이다. 왜냐하면 욕망의 대상-원인은 처음부터 구성적인 결여로서 비어 있기 때문이다. 멜랑콜리의 전약은 이 결여를 상실로 해석하는 것이다.(96)
앞의 프로이트 인용에서 상실한 것은 ‘민족’이다. 식민 상태가 본격적으로 자리를 잡을수록,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알 수 없는 우울 상태에 휘말린다는 것. 그는 거기서 3.1운동을 애도로 해석한다. 그 시기가 고종황제의 인산이었기 때문에 그 해석은 부분적으로 옳다. 지젝 인용은 내선결혼 또는 내선연애 즉 욕망의 대상으로서 ‘내지의 여인’에 대한 언급이다. 상실한 것으로 생각하고 우울해 한다는 것. 책에 인용된 소설이나 영화감독 허영의 이야기에는 접근하기 어렵겠지만. 피천득의 수필 「인연」에서 느낄 수 있는 애상, 상실, 우울을 떠올린다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세번째 만남에서 등장하는 닛세이 점령군[미군으로 일본에 온 미국 이민 2세]과의 결혼까지 이해할 수 있다면 더 좋겠지만. 식민지 결혼의 문화적 정치에서 식민 본국 남성과 식민지 여성의 관계는 언급의 대상이 아니다. 그런 관계는 식민지 이전 「혈의 누」에나 등장한다. 식민지민 남성과 본국 여성과의 관계만이 문제적이다. 사카이 나오키의 『일본, 영상, 미국』을 권한다.
멜랑콜리 즉 우울의 근원인 상실. 이 상실을 요즘은 이렇게 표현한다. ‘상대적 박탈감’. 절대적 기준에서 말하는 빈곤에서 벗어난, 그렇기에 진짜 가난은 나타나지 않고 숨어버리는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은 나이를 막론하고 ‘상실’을 말한다. 나라는 선진국에 진입한다고 하는 데, 내 삶은. 이 상실은 무엇을 상실했는지 알 수 없는 상실인가 결여를 상실로 치환한 형태의 상실인가. 국민국가 안에서 자신이 살아갈 자리를 상실했다는 자격을 상실했다는 그런 상실감인가. 국민국가의 버젓한 구성원으로 가족을 이루고 재생산하면서 살아갈 충분한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는 상실인 건가. 행복을 누릴 충분한 여유를 갖지 못했다는 상실인 건가. 원래 없었던 것인가 빼앗긴 것인가. 가지고 있었는데 잊어버린 것인가. 원래 없었던 것도 있고, 지워져 버린 것도 있다. 19세기 유럽은 식민지로 이 문제를 해결(?)했고, 20세기 세계는 전쟁을 통해 이 문제를 해소(?)했다. 더 이상 식민지를 개척할 수도, 각자 핵을 겨누고 전쟁으로 해소할 수도 없는 이 시대에. 더 이상 그 어디로도 불안을 전가할 수 없는 그런 시대에. 젊은이들 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느끼는 이 폐색감, 상실감은 식민지의 그것과 크게 다른 것일까. 결여를 인정하고, 자기를 직시하면서 상실과 자기연민에 빠지지 않고, 지탱해 나가기는 왜 이리 어려운가.

한편 〈나그네〉가 조심스럽게 타진했던 내지 시장에 대한 진출 가능성은 두 가지의 영화 내외적 조건 때문에 적극적인 가능성으로 떠오를 수 있었다. 1937년, 중일전쟁의 발발과 같은 해에 이루어진 만주영화협회의 설립은 조선영화계에 내지와의 연계 또는 진출이라는 장밋빛 환상을 심어주었다. …… 1940년을 전후하여 일본에서는 일종의 ‘조선붐’이라고 할 만한 현상이 일어났다.(143) 너도 나도 내지니 만주니, 조선영화 선외鮮外 진출에 대한 열의가 지금 절정에 달한 감이 있는데 이례 그렇게 될 것이지요. 어디로 보든지 조선시장만으로 조선영화는 유지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이니까요. 그러나 이 훌륭한 기획의도가 하마터면 조선영화라는 작품의 색채를 도외시하기 쉬운 위험성을 갖게 됩니다. …… (중략) 지방색, 로컬 컬러가 농후하다는 지적이 유리하게 주효奏效하여 동경시장에 〈나그네〉가 일약 등장하였던 것입니다. (중략) 어쨌든 영화가 그 어떤 고유한 특색을 내용으로 함에서부터 오히려 넓게 팔릴 수 있는 물건이란 것만은 실례로 보아 사실인 것 같습니다.(《조광》에 실린 이창용, 「고려영화의 今後」에서 인용)(143-144) 과거의 조선영화가 로컬 컬러의 감상에 빠져 과도하게 조선적이었다는 사실은 큰 잘못으로서, 장래 일본영화가 대동아공영권 안에서 공유되는 것이어야 한다면 조선영화 또한 이 대사명의 일익을 함께 담당할 일본영화의 하나이지 않으면 안 된다. 150개에도 미치지 못하는 영화관만이 조선영화의 시장이어서는 안 될 것이며, 내선영화의 기성, 신인 영화인들이 교류 또는 내지영화, 만영滿映 등과 제휴함으로써 더욱 확장된 기획의 영화가 만들어져야 하리라.(『昭和十七年映画年鑑』)(148)
영화 「반도의 봄」은 1940년의 조선영화령, 1942년 사단법인 조선영화주식회사의 설립을 둘러싼 조선 영화인들의 고민을 다룬다. 영화의 토키화 등 대규모 제작비가 필요한 현실에서 영화에 대한 제국 정부와 식민국가(총독부)의 행정과 자본의 지원이 이루어지면서, 조선 영화는 일본 영화에 통합되어 간다. 그 과정에서 일관되게 등장하는 언급 중 하나가 조선 만으로는 시장이 작다는 것. 이창용의 말처럼 로컬리티를 내세우든, 일본 영화연감의 주장에서 처럼 로컬리티를 지우든 조선영화는 식민국가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대규모 자본을 동원해서 영화를 만들어 제국의 본국 즉 내지와 제국의 다른 부속지인 만주와 화북 등에 내다 팔아야 한다. 더 큰 자본과 더 큰 시장을 향한 욕망. 나는 요즘 식민지배가 남긴 유산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데. 외형적이거나 제도적인 유산보다 담론의 양식이나 사고방식 또는 행동양식, 즉 에토스에 남긴 영향에 대한 관심이다. 그 중 하나가 조선 즉 한국은 작고 좁으니 외부로 나가야 한다는 사고방식이다. 과거의 전통 조선은 크기와 관심없는 자족적인 국가였다. 요즘 일본의 소위 ‘와이드쇼’라고 부르는 방송 클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의 반도체 기업은 또는 전자 산업은 자동차 산업은 일본 기업들의 부진과는 대조적으로 어떻게 성장할 수 있었는가? 한국은 시장이 작아서 처음부터 수출을 목적으로 국제적으로 기획하기 때문에. 한류 연예인, 아이돌, 영화, 드라마는 어떻게 세계 시장에서 팔리게 되었는가? 원래 한국은 시장이 작아서, 세계 시장을 목표로 기획하기 때문에. 일본은 내수로 충분하고. 이 책이 쓰여진 시기가 1차 한류 붐일 때였다. 그 한류 붐은 사그러졌지만, 새로운 한류 붐이 왔다. 「기생충」이라는 영화가 칸과 아카데미라는 대서양 양쪽에서 모두 인정받았을 때, 거기서 로컬리티를 발견하기는 어려웠다. 마틴 스콜세지라는 주류의 후예임을 선언하는 세련된 수상소감에서 읽혀진 건 그 교묘함이었다. 넷플릭스라는 ODD를 조선이라는 로컬리티와 좀비 장르의 결합이 휘저었고. 그 다음에는 뭐 말할 것이 없을 정도. 점점 더 큰 자본을 동원해야하는 영화는 혹은 다른 영상문화작품이자 상품들은 처음부터 다양한 시장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다. 그리고 이것은 새로운 전략이 아니다. 식민지가 심어 준 에토스에서 출발한다.

〈집 없는 천사〉는 종로 풍경에서 시작된다. 전선이 어지럽게 얽혀 있는 종로에 밤이 찾아오면 그곳은 거대한 네온사인의 거리가 된다. 남매인 명자와 용길을 길에서 꽃을 팔아 번 돈을 악독한 양아버지에게 가져다주어야 한다. 어느 날 밤 양아버지에게 얻어맞던 용길이 도망을 친다. 거리에서 밤을 보낸 용길은 이튼날 우연히 방성민 목사의 눈에 띄어 그의 집으로 오게 도니다. 목사의 집은 이미 그가 데리고 온 부랑아들로 북적거린다. 목사의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인 마리아는 그런 남편에게 불만을 품고 있다. 방 목사는 집 없는 아이들을 수용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 것을 계획하고, 의사인 마리아의 오빠 안인규에게 시외의 별장을 빌려줄 수 있는지 묻는다. 이 별장은 인규가 독일유학에서 돌아온 직후 독일 여자 케테와 함께 살았던 추억의 장소이다. 의사의 승낙을 받은 방목사는 아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소년들과 일가족을 이끌고 시외로 간다. 방 목사는 ‘향린원’이라고 이름붙인 이곳에서 소년들에게 근면과 성실, 노동의 가치와 규율을 가르친다. 한편 명자는 인규에게 구제되어 병원의 견습 간호원으로 일하고 있는 중이다. 그러던 어느 날 두 소년이 도망가려는 것을 막던 용길이 물에 빠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용길을 구하기 위해 마리아의 오빠가 불려오고, 이 일을 계기로 명자와 용길을 재회한다. 이 사건으로 향린원이 신문에 보도되고 각지에서 성금이 도착하지만, 이는 성금을 노린 권 서방 일당을 불러들이는 결과를 낳는다. 권 서방 일당이 습격한 위기의 순간, 다리가 끊어져 떨어진 악당들은 치료를 받으며 감회된다. 이윽고 방 목사가 올린 일장기 아래에서 모두가 황국신민의 서사를 외운다.(172-173)
줄거리 만으로 보면 나무랄 데 없어 보이는 이 영화는 총독부와 문부성의 표창과 추천도 받았지만, 내무성의 2차 검열에서 200미터가 삭제를 당하고, 일본어 더빙이 아닌 경우에는 일반인은 볼 수 없게 된다. 물론 조선에서는 문제가 없다, 어디까지나 일본에서.(156-158)
제국의 내지에서 보자면 우선 이 영화는 조선어를 통해 제국 안에 있는 이질성을 부각시킨다는 의미에서 위험하다. 그러나 그 위험성은 보다 근본적인 장소에도 있다. 왜냐하면 조선의 남성 주체들이 ‘황국신민’의 원리 자체에 직접적으로 접근함으로써 조선어의 사용 여부를 떠나 일군만민의 원리인 그 심부로 어떤 중개자나 매개자도 없이 돌진해 들어가기 때문이다. 재남성화의 계기인 황민화라는 과제야말로 이와 같은 자기 충족적인 공간, 즉 식민지 남성 계몽 주체의 설정을 가능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상의 달성이 ‘선언’되는 순간 그것은 제국의 공간적 구획 안에 놓인 대동아 신민 사이의 현실적 위계와는 배치되는 결과를 낳는다. 식민자와 피식민자의 분할이라는 통치성의 현실적 운용 원리에서 보자면 최인규 영화의 이와 같은 이상화된 황민의 재현은 그 자체로 불온하다. 왜냐하면 이 예기치 못한 ‘초과달성’은 현실의 위계 또한 초과해버리기 때문이다.(187)
나는 이 해석에서 감탄했다. 그의 해석처럼 이 영화는 식민 후기 국가로 곧바로 이어질 수 있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일장기를 올리면서 황국신민의 서사를 외운다지만, 태극기를 올리고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울 수도 있고, 새마을기를 올리고 새마을 노래를 부를 수도 있다. 유엔기나 성조기를 올리고 군가를 부를 수도 있다. 인공기를 올리고 김일성과 스탈린을 또는 마오쩌둥을 찬양할 수도 있다. 너무나 익숙한 기표들이다. 문예봉은 월북했고, 최인규는 납북과정에서 실종되었다. 이 영화는 홍제원 바깥에서 실제 고아원을 만들어 운영하던 방목사의 실화를 다룬 이야기라고 한다. 저자가 지적하는 부분은 이 영화에 매개자가 없다는 것이다. 이 영화에는 서양문명과 이어지는 서양인 선교사나 미군도 나오지 않는 반면, 총독부 관리도, 조선에 있는 일본군도, 방 목사에게 감화나 도움을 준 일본인 교사나 목사 또는 의사가 등장하지 않는다. 식민지 계몽 남성 엘리트라는 주체가 등장한다는 지적이다. 저자가 말하듯 이광수는 여러 일본인 아버지들을 불러냈다. 앞서 언급한 영화 「지원병」에도 이토 히로부미의 초상이 등장한다. 「상록수」이야기와 다를 바 없다. 제국의 검열관들이 삭제한 부분과 비교해 볼 수 있다면 그 의도가 더 분명하게 드러나겠지만. 식민지 엘리트의 ‘초과달성’이야말로 제국이 늘 경계하던 모습 중 하나다. 계몽 주체의 수립이 어디로 이어지겠는가. 제국 내의 성원권인 시민권 투쟁을 벌이거나 아니면 이탈 즉 독립을 꿈꾸게 마련이다. 안인규에게도 흥미로운 구석이 있다. 독일 유학을 다녀 온 의사, 독일에서 데려 온 혹은 따라 온 여자와 함께 살았다는 이야기는 메이지의 문호 모리 오가이森鷗外와 닮았다. 모리 오가이는 집안의 반대로 ‘그녀’를 독일로 돌려보내지만, 식민지의 안인규는.

《맹 진사댁 경사》는 1943년 4월 《국민문학》에 시나리오 형식으로 처음 발표되었으며, 같은 해 태양극단에서 연극으로 초연된 것을 시작으로 해방 이후 극단과 대학무대에서 여러 차례 공연되었다. 또한 오영진이 《시집가는 날》이라는 한글 번역한 시나리오를 기초로 하여 1956년과 1962년(이용민), 1977(김응천)에 이르기까지 세 번 영화화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 텍스트는 오영진 자신에 의해 다시 한 번 음악극으로 각색되기도 하였다.(210) 〈시집가는 날〉은 1957년 제4회 아시아영화제에게서 희극영화 특별상을 수상하였다. 한국영화로는 최초의 외국영화제 수상이 이루어진 장소는 다름 아닌 도쿄였다.(11) 이 세 장면[영화에 대한 좌담회 등]에서 공통되는 것은 민족적인 것이 외부의 시선을 매개하여 온다는 것이다. 그것은 외부에 의해 ‘먼저’ 발견되거나, 혹은 외부자가 보고 싶어 하는 것에 대한 응답으로서 등장한다.(이 세 장면에서 모두 조선적인 것의 강조, 혹은 매혹을 전하는 것은 일본인이다). 그와 동시에 ‘대중의 계몽’이 언급되는 순간 조선의 대중이 염두에 두어진다. 그러니까 여기에는 두 가지의 대상이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는 ‘일본인 친구’이며 또 하나는 ‘조선영화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기뻐하는 할머니’가 그들이다. 이는 자기민족지가 식민 종주국의 독자와 화자 자신이 속한 사회 집단의 식자층이라는 쌍방 모두에게 말을 걸고 있으며 그것은 양쪽에서 각기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여진다는 메리 루이즈 프랫의 주장을 다시 한 번 상기시킨다.(234)
기괴하다고 말해도 좋으리라. 한국 문화의 상징이라고 여겨지면서 교과서에도 실렸던 이 작품은 제국 일본의 신민들에게 조선적인 로컬리티를 희극적으로 구현해서 보여주는 작품으로 최재서가 주도한 『국민문학』에 일본어로 실렸다. 일본인이 등장하지는 않지만, 일본인에 의해 발견되는 전형적인 조선의 아름다움이 깔려 있다. 야나기 무네요시를 소환해도 좋으리라. 그리고 이것이 한국어로 바뀌어 연극으로 영화로 그리고 최초로 한국 문화를 해외에 소개하는 영화로 해외영화제에서 수상하게 된다. 그 후로도 오랫동안 한국영화의 숙원이었던 해외영화제 수상은 로컬리티를 가장 성공적으로 형상화해 낸 작품들에게 주어졌다. 임권택의 「씨받이」, 「서편제」, 그리고 「춘향뎐」은 그 일련의 표상들이다. 그토록 오랫동안 반복되던 영화 ‘춘향전’의 계보는 이제 중단되었다고 해도 좋으리라. 그런 의미에서 「방자전」은 춘향전의 역사에 부치는 트리뷰트 랄까. 90년대의 시네필들이 흠모하던 구로사와 아키라, 첸 카이게, 장 이머우 모두 마찬가지로 로컬리티의 국제적 반향으로 알려졌다. 이마무라 쇼헤이에게도 그런 면이 있다. 박찬욱, 홍상수, 고 김기덕에게 시네필들이 열광했던 것도 이들이 보편을 형상화한다고 여긴 측면이 있다. 하긴, 분단도 사실 로컬리티의 한 모습이기는 하다. 임권택의 「길소뜸」을 생각해 본다면. 그리고 그 로컬리티를 처음 발견한 것은 당연 식민지를 발견한 일본인들이었고, 《시집가는 날》은 조선이라는 미학의 한 원형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고맙게도 2015년 『제국의 시선』 번역본이 나오기도 했고.
〈시집가는 날〉의 이야기는 맹 진사가 자신의 딸 갑분이와 도라지골의 판서댁 아들 미언의 혼담을 성사시키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시작한다. 매관매직으로 진사라는 신분을 산 맹진사와 그의 부인 그리고 딸 갑분이는 이 결혼으로 얻게 될 신분상승의 꿈에 한껏 부풀어 있다. 그런데 결혼식을 기다리고 있는 어느 날, 판서댁 아들이 절름발이라는 소문이 들여론다. 맹진사의 딸은 절름발이에게는 시집가지 않겠다고 선언하고, 집안끼리 정한 약속을 깰 수 없다는 불문율 아래서 고민에 빠진 맹 진사는 갑분이와 딸의 몸종 입분이를 바꿔치기하는 묘안으로 이 상황을 타개하고자 한다. 갑분이가 된 입분이는 혼인날을 맞이하고, 정작 절름발이인 줄 알았던 새신랑은 미남 청년이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맹 진사는 뒤늦게 숨겨둔 갑분이를 데려와서 다시 한 번 입분이와 바꿔치기를 하려 하지만 실패하고, 입분이는 새신랑 미언과 결혼한다.(218)
분명히 이 이야기를 극본 형식으로 읽은 적이 있고, 영화를 본 기억도 있다. 그러나 저자의 안내를 따라가면서 줄거리를 읽고 나니 기괴하기 그지없는 이야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저자가 지적하는 정체성 문제나 배경 뒤에서 모든 것을 조종하는 남성 문제는 제쳐 두고 이야기 그 자체만 두고도 말이 되질 않는다. 우선, 매관매직이라고도 할 것 없이 조선 후기에는 공개적으로 공명첩을 팔았고, 그 판매 대금으로 관아의 창고를 수리한다는 등 공적인 목적으로 사용했다. 게다가 숙종 때 이후로 갈수록 과거 합격자의 수 자체가 급격하게 늘어났다. 이런 사람들이 소위 오래된 양반들과 결혼으로 인척관계를 맺어 진짜 양반이 되는 건 사실상 불가능했다. 몰락하여 가문의 경우라면, 신랑 집안을 위해서 한 재산 떼어주는 식의 일종의 매매혼이라면 모를까. 동서양을 막론하고, 결혼에서 신랑 또는 신부를 바꿔치기하는 이야기라면 흔한 편이다. 그런 이야기에는 정체성 문제 즉 얼마나 닮았느냐, 어떻게 속이느냐의 문제도 있지만, 왜 결혼을 거부하는가의 문제도 있다. 갑분이는 신랑이 절름발이이기 때문에 이 결혼을 거부한다. 그럴 수 있다. 다른 신부바꿔치기에 등장하는 갑분이라 실제로 사랑하는 남자 이야기는 삭제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사랑을 다룬 희극이 아니다. 갑분이는 그저 이 결혼만 하지 않으면, 아버지 집에서 사는 것 이외에 다른 욕망을 가지고 있지 않다. 갑분이는 미성숙하다, 아직 성인이 아니다. 게다가 절름발이만 아니라면, 미남이라면 그와 결혼하는 것도 좋다. 결혼이 집안끼리의 약속이라는 전통 시대의 로컬리티를 드러낸다고 해도 기묘하지 않은가. 여성의 욕망이 이토록 철저하게 삭제된 이야기도 드물 것이다. 허우대만 멀쩡하고 집안만 좋으면 다 괜찮다는 이야기는 전통 시대의 이상향의 이야기가 아니고, 기본적인 생계도 꾸리기 어려웠던 총동원 전쟁기의 식민지 정서인 동시에 전후 복구에 매달리던 1950년대의 정서일 것이다. 게다가 이 결혼을 받아들인 몸종 입분이는 모든 사실을 고백하지만, 모든 것을 뒤에서 조종한 신랑은 입분이가 “진실한 애정과 순정의 아름다움”을 가졌다고 선언한다.(222) 도대체 이 신랑은 무엇을 보고 입분이가 ‘마음씨 착한’ 아내에 어울린다고 말했을까? 평소 그녀의 행실을 몰래 살펴보고? 동네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서? 자신이 절름발이라는 소문을 듣고서도 아씨에 대한 몸종의 도리로 결혼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입분이와 갑분이가 신랑을 속였다는 이야기라면 납득이 갈런지도 모르겠다. 입분이의 사랑의 도피행각으로 끝난다면 훨씬 더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마음씨 착한’ 입분이가 진정한 사랑과 행복을 얻는 것으로 끝이난다. 그것이 이 시대가 여성에게 바라는 표상이라면. 식민지 여성에게서 상찬되어야 할 전통적 가치 또는 애정과 순종이란 인내와 수용 그리고 순종으로서 충분한가. 그녀들에게서 생활력이나 용기 때로는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한 투쟁은 무의미한 것일까. 영화가 만들어진 50년대나 시나리오가 처음 쓰여진 40년대나 태어나기 이전 조상들의 이야기인지라, 나는 이런 표상들 속에서 작가와 감독을 무엇을 의도했고, 관객을 무엇을 욕망했던 것인지, 연결되지 않는 답답함을 쉽사리 깨뜨리지 못하겠다. “남성 주체에 의해 자연화되고 본질화되는 여성은 그때 민족에 관한 제유의 기능을 떠맡는다”(241)라는 저자의 설명은 그 나름대로 이해되지만. 다시 읽어본 영화의 이야기와 그 속의 사람들은 기괴하게 일그러져 있다. 행복한 얼굴을 하고 일그러진 사람들. 이런 이야기들 속에서 기괴함을 느끼는 것이 지나친 것일까. 이 이야기에 로컬리티의 모습을 띄고 담겨져 있는 것은 사랑과 인간성에 대한 어떤 무감각한 가면들인 걸까. 이 영화의 인물 중 그 어디서도 사람이 느껴지질 않았다. 가장 사람다운 건 결혼을 거부하는 갑분 정도랄까.

흥미로우면서도 아팠다. 식민지 청년들의 우울이 현재적 젊은이들의 좌절과 우울과 겹쳐지면서 솔직히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심정이 든다. 영화나 소설에 흔히 등장하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없는 닫힌 세계를 살아가야만 하는 것이 인생이고 보면. 아무래도 닥치고 사는 것이.

2021. 4. 5.

* 괄호 안의 숫자는 책의 쪽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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