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리 선데이의 극장식 설교를 묘사한 삽화. George Bellows, 메트로폴리탄 잡지. 1919년 5월.
모리모토 안리森本あんり,『반지성주의: 미국이 낳은 열병의 정체反知性主義: アメリカが生んだ「熱病」の正体』, 세종서적, 2016(新潮社, 2015).
2016년 11월과 12월 촛불이 타올랐다. 흥분된 현장, 주권자 국민의 탄생, 축제와 같은 시위, 사람들의 자신감, 정치 종교적 열정. 도저히 나와서 촛불을 들지 않을 수 없지만, 촛불을 드는 것만으로는 아무런 진전도 가늠할 수 없는 하루하루가 흘러간다. 이런 촛불을 타고, 이른바 사이다 발언을 쏟아내는 정치인들이 떠올랐을 때, 그런 이들의 이력과 발언에서 트럼프를 연상한 사람은 나만이 아니었을 거다. 다른 이와 마찬가지로 나도 환호했지만, 이면에서 움직이는 알 수 없는 정서에 한줄기 서늘함도 가지고 있다. 지금까지 해오던 방식으로 해서는 안되겠다. 차기 정권은 보다 적극적으로 나가야 하고, 실패한 방식을 반복하거나 복원하려고만 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떤 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아직도 나는 방법을 모르겠다. 다만 한 가지 이런 현상이 전세계적인 하나의 흐름 위에서 움직이고 있는 건 조금 분명한 듯하다. 브렉시트와 트럼프의 당선, 그리고 이어지는 한국의 촛불. 그 이면에 하나의 공통의 정서, 그러니까, 반지성주의가 자리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적어도 나에게 반지성주의라는 주제는 최정운의 『한국인의 탄생』에서 분명하게 다가왔다. 1930년대쯤 한국에서 전통사회에서는 없었던 새로운 흐름이 등장하는 데 그게 바로 반지성주의이다. 그리고 홍명희 『임꺽정』을 들여다 보면서 이를 제시한다. 최정운에 따르면 식민지 조선의 반지성주의는 전통적인 것도, 민중적인 것도 아니고, 지식인들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들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동·서양 문명이 교차하는 가운데 식민지 조선 지식인들은 지식의 생산자로서의 위치를 포기하고 소비자와 전달자의 위치로 추락한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더구나 외국에서 도입된 이념들의 거대한 투쟁 사잉에서 우리 지식인들은 길을 잃고, 존재 의미를 잃었다. 반지성주의는 이런 상황에 처한 좌절한 지식인들이 자신에게 던지는 거친 언어, 즉 ‘욕’이었다. 더욱 중요한 현실적인 문제는 서구의 지식을 배워 와서 민족을 계몽시켜야 우리 민족이 살아날 수 있다 주장하면서 자신들이 조선 민족을 읶르 지도자요 ‘중추 계급’을 자처하던 신지식인들 대부분이 식민지 권력의 주구가 되고 민족을 배신하는 현실이었다. 그들은 유혹에 넘어간 자신들의 또 다른 모습이었고, 괴로워하고 분노하는 것 외에 다른 수가 없는 엄연한 현실이었다. 이로써 동서양의 모든 지식, 지식 일반, 그리고 무엇보다 ‘지식인’들이 저주의 대상이 되었다. 바로 이 지점에서 무엇보다 반지성주의는 조선 지식인들의 순수한 저항을 사악한 권력 지향적 지식인들과 일제의 유혹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방역선이었다.” 『한국인의 탄생』, 502-503.
작년말 출간된 2부격인 『한국인의 발견』에서 다시 1980년대에 폭발하는 반지성주의를 최인호 『바보들의 행진』, 이철용 『어둠의 자식들』, 황석영 『장길산』을 따라 들고 있다. 그는 1980년대 이후 다시 등장한 반지성주의가 휩쓰는 지식인들 사이의 투쟁은 “학문적 수준의 논쟁도 아니고 정치적인 적과의 투쟁도 아닌 “악귀들과의 원한 맺힌 멸절의 싸움”(『한국인의 발견』, 12)이라 탄식한다. 최정운에게 모두 동의하지 않는다 해도, 지난 20여년간 학계와 그 주변을 중심으로 지식인과 사이비 지식인과 반지성주의의 극한 투쟁이 벌어진 건 그 자체로 사실이다. 그리고 2016년 다시 한 번 이번에는 대중적으로 다시 폭발하는 것인가, 아니면 80년대의 연속적 폭발의 정점인가. 모두가 찬사를 보내고 감동해 마지 않는 촛불을 향해 말을 건네기 조심스러운 것도 사실이고, 아직은 무엇인가 진행중이기 때문에, 말하기도 어렵지만, 마음 한구석에 의구심이 있다는 것만은 부인할 수 없다. 가능한 한 시간을 내서 광장에 나가면서도 말이다.
‘반지성주의’ 문제를 논쟁의 장으로 처음 끌어낸 것은 리처드 호프스태터Richard Hofstadter로 Anti-intellectualism in American Life(1963)로 알려져 있다. 호프스태터는 이 책에서 지식인이 미국인들에 의해 거부되는 과정과 사건을 역사적 전개를 통해서 복음주의 기독교와 비즈니스와의 관계를 통해서 주로 풀어내려간다. 호프스태터가 이 책을 쓰게 된 것은 물론 매카시즘의 준동과 그리고 무엇보다 지식인인 애들레이 스티븐슨을 제친 전쟁영웅 아이젠하워의 당선이었다. 모리모토 안리의 『반지성주의 』는 큰 골격으로 보아 호프스태터의 논리 전개를 따라가면서 미국 특유의 현상으로서의 반지성주의를 기독교 배경에 익숙하지 않은 일본인들에게 소개한다. 미국 복음주의 기독교의 역사는 한국인에게도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도 생소하기는 마찬가지다. 이 시대의 역사는 죠나단 에드워즈나 휫필드 또는 찰스 피니, 무디 등에 대한 대략 몇 개의 미화된 삽화와 영웅담으로만 전해질 뿐, 객관적인 실상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더욱이 기독교계 내부에서 이 시대를 다루면서 출판된 책들은 대부분 기독교 발전과 확장의 관점에서 역사를 기술하기 때문에 당시 상황을 여러 정치적, 사회적 환경과 비교하며 파악하기에 좋은 자료가 못된다. 그래서 객관적 시각이 더욱 필요하다.
모리모토 안리는 국제기독교대학ICU의 교수이며, 신학자이다. 나는 그의 이름을 기타모리 가조의 『하나님의 아픔의 신학』영어판 재출간 서문에서 처음 접했다. 그리고 얼마전 『아시아 신학 강의: 글로벌화하는 콘텍스트의 신학アジア神学講義―グローバル化するコンテクストの神学』에서 다시 한 번 접한다. 이 책에서는 송천성(아시아인의 고난의 신학), 이정용(역易의 신학), 고야마 고스케(물소신학), 박승찬(한恨의 신학)을 두루 다룬다. 이번에 그의 저술을 살펴보니, 그는 조나단 에드워드 연구자이고, 미국 종교와 정치에 대한 연구자이기도 하다. 『아메리카 그리스도교사 이념에 의해 세워진 나라의 궤적アメリカ・キリスト教史 理念によって建てられた国の軌跡』(2006), 『아메리카적 이념의 신체: 관용과 양심, 정교분리, 신앙의 자유를 돌아보는 실험의 궤적 アメリカ的理念の身体 寛容と良心・政教分離・信教の自由をめぐる歴史的実験の軌跡』(2012).
모리모토 안리는 서문에서 일본에서 흔히 사용되는 반지성주의의 용례들, 사회병리 표현, 요란한 국가주의, 실증성이나 객관성 경시, 객관적 검증이나 공개적 대화를 거부하는 독선적 태도 등이 포함되기는 하지만, “원래 반지성주의는 지성 자체가 아니라 거기에 부수되는 ‘어떤 것’에 대한 반대로, 사회의 불건전함보다는 오히려 건전함을 나타내는 지표”(7)라 말하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먹물 꼰대라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반지성주의가 건전하다는 말이 목구멍에 탁걸려서 아래로 내려가지 않는다. 그건 사실 이 책을 모두 읽고 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반지성주의가 미국 특유의 현상이라는 점과 건전함을 나타내는 지표라는 이야기. 반지성주의의 전형이 미국에서 형성되었다는 점에 대해서는 충분히 동의할 수 있다. 물론 오늘날 전세계적으로 반지성주의가 퍼지면서 상황이 변화할 수는 있지만. 그럼에도 가장 먼저 반지성주의가 형태를 드러낸 미국의 사례가 반지성주의의 확산 현상과 반지성주의의 어떤 특징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그러나 두번째 점은 많이 걸린다. 그것은 반지성주의의 건전함이다. 모리모토는 호프스태터를 따라서 지식인과 권력의 결탁 현상, 지식인 들이 지배의 도구가 되는 상황에 대한 반발과 미국 특유의 평등주의를 그 원인으로 들고 있다. 그리고 이 평등주의는 사회적 평등 혹은 실질적 평등이라기 보다 평등에 대한 일종의 신앙이나 철학이다. 여기에 반권위주의가 더해진다. 미국 사회에 변화가 올만한 여러가지 사회적 환경 또는 갈등이나 모순이 축적되어 있을 때, 반지성주의가 터져나온다. 그리고 지난 250여년에 걸쳐 반지성주의는 맹아에서 성장하고 완성된 형태를 갖추게 된다. 그리고 이 반지성주의는 미국에서 때로 일종의 균형추 역할을 해왔다는 이야기다. 물론 반대로 폭발할 가능성도 언제든 남아있지만.
모리모토 안리는 레이건 대통령 장례식에서 낭독된 청교도 지도자 존 윈스럽John Winthrop의 1630년 설교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 설교에는 인상적인 두 개의 성경구절이 인용되고 있는데 그 하나는 산상복음 마태복음 5장 14절에 나오는 ‘산 위에 있는 마을’에 대한 언급이고, 다른 하나는 신명기 30장 15~18절의 복과 저주이다(14). 하나님의 뜻을 따르면 생명과 행복을, 이를 거부하면 죽음과 불행을 말하는 구절이다. 여기서 모리모토 안리는 유럽의 개혁파 신학의 계약 즉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내리는 무조건적인 은총이라는 개념이 미국에 와서 신과 인간 쌍방이 서로 이행해야 하는 대등한 교환give and take을 통한 호혜관계로 바뀌었다고 말한다(15). “인간이 신앙이라는 의무를 다하면, 신은 축복을 주는 의무를 지고, 인간은 그것을 권리로서 요구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종교와 도덕이 직결되고, 신의 축복과 현세의 성공이 직결된다”라는 초보적이고 현세적인 ‘기복신앙’이 된다고 말한다. 이는 ‘기독교의 미국화’로 외래 종교인 기독교의 미국에서의 상황화의 결과라는 것이다(16). 레이건 퇴임사 중 “우리는 자기 역할을 다했습니다We’ve done our part”라는 부분을 들며, 하나님에게 약속을 지킬 것을 촉구하는 태도라고 설명한다. 연설 말미에 ‘미국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God bless America”라는 어구는 하나님을 상대로 계약 이행을 다그친다는 대담하고 불경한 발상일 수 있다. 여기에는 단순하고 적극적인 실리주의가 숨어 있다(18-19). 이것은 고난의 신의론(신정론)이 아닌 행복의 신정론으로서 베버식으로 말하면 “인간은 행복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며 행복의 정당한 근거와 그것을 누릴 정당한 권리를 원한다. 자신이 행복한 것은 당연한다. 자신은 행복할 권리가 있다. 그러므로 자신의 행복은 탄탄하다고 믿고 싶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20).
윈스럽의 이 설교는 미국식 청교도 신앙을 찬미하는 책에서 자주 인용되는 예시라 낯설지 않다. 그러나 해석방법은 독특하다. 핵심 포인트는 ‘기독교의 미국화’다. 기독교는 미국에서도 외래종교 이기 때문에, 상황화할 필요가 있고, 상황화되었다는 관점이다. 한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미국이 기독교 국가라는 점 때문에, 미국적 기독교가 원형에 가까울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실상은 미국도 상황화, 그렇게 따지면 유럽도 실상 상황화된 것이다. 모두가 상황화된 것이니 확고부동한 정전이나 모범은 없다고 해야할까. 그런데 이 미국식 기복신앙이 아주 독특하다. 한국인이 일상적으로 이해하는 ‘기복신앙’과 좀 느낌이 다르다. 한국인의 정서는 시키는 대로 하겠으니 복을 주세요라는 정도가 아닐까. 헌금도 하고, 전도도 하고, 교회 집회에도 참석하고, 신앙생활도 열심히 하고, 그러면 하나님이 복을 주신다는 목사나 부흥사의 설교에 따라 해놓고서는 복을 주나 안주나 살피고, 만약 안주면, 내가 뭐가 부족해서 그러나하면서 더 하거나, 아니면 제발 복을 달라고 빌면서 매달리는 정서가 있는 건 분명한데, 복을 주지 않는다고 따진다는 그런 감정은 없는 것 같다. 간혹 그런 사람이 있기도 하지만, 보통 교회 떠나기 직전에 하는 말이다. 내가 할 일은 다했다니, 과면 미국식은 쌍방 계약 개념이라는 데, 그 문제제기 자체가 흥미진진하다. 게다가 미국은 이미 받을 만한 자격이 있고, 번영 자체가 그 증거라는 식의 터무니 없는 자신감도 보이는데. 어찌보면, 한국의 부유한 기독교인들이 가지는 태도와 매우 유사하다. 특히나 행복의 신정론이라는 사상은 소위 베버 테제와도 연결된다.
모리모토 안리에 따르면 미국 정신, 문화 등이 가진 태도는 솔직함, 소박함, 천박함, 명료하게 선악을 나누는 도덕주의, 생경하고 거만한 사명의식, 흔들림 없는 정통성 자인, 실험과 체험을 으뜸으로 하는 행동주의, 세계적으로 유명한 노골적인 실리 지향, 성공과 번영의 자찬, 20세기 미국의 산물인 개신교 내부의 근본주의, 진화론을 거부하는 창조주의, 종말론에서 말하는 의로운 전쟁을 현실 세계에서 실현하려는 미국의 군사외교정책 등으로 이들 모두는 미국 정신의 산물이라고 말한다(21).
흥미롭게도 이렇게 지적된 미국 정신 혹은 미국 문화의 결과가 기묘하게 미국식 기독교, 미국식 복음주의를 중심으로 모인다. 종교가 국민을 형성한다고 까지는 못하겠지만, 종교는 국민 형성nation building에 영향을 미치고, 크게 기여한다. 대부분 국민 형성보다 종교가 앞선다. 실상 종교개혁도 이런 관점으로 볼 필요가 있다. 루터파와 칼빈파의 형성 그리고 재세례파의 확산과 유럽 내부의 종파 현상들을 결국 유럽에서 국민국가nation building 형성에 기여했다. 그리고 국민국가의 경계선과 종교의 경계선이 어렴풋하게 비슷하게 맞아떨어진다. 종교가 국민을 만들었다는 식으로 중세적 사고를 권하는 것이 아니다. 국민형성에 따른 국가형성이라고 하는 국민국가 형성과정에서 종교, 언어, 문화, 정치 등을 통해 국민국가 형성이라는 방향으로 나아갈 때, 개신교가 영향을 많이 미쳤기 때문에, 이를 비판적으로 검토해 보아야 한다. 그러니 훗날 개신교가 특히 내셔널리즘[국민주의]와 국가주의와 결탁하여 때로 그 화신 처럼되는 것도 당연한 결과다. 그러니 그 종교적인 교리나 그 종교의 운영방식이 사회 전반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특히 미국 처럼 종교가 크게 영향을 미치는 국가에서는 종교의 발전 혹은 전개 양상에서 드러나는 여러가지 현상들이 사회 전반으로 침투하게 된다.
미국식 반지성주의의 전제는 생각한 바와 좀 다르게 시작한다. 식민지시대 미국에는 신앙부흥을 예비하는 토양으로 청교도주의의 극단적 지성주의가 있었다(25). 1646년 경에 이미 식민지는 매우 학력이 높은 고학력 사회에(40가구에 대졸자 1인), 대학졸업자가 아니면 목사가 될 수 없었다. 목사도 매우 많았다. 그 이유는 청교도주의가 설교운동이고, 성서로 돌아가자였기 때문이다(26). 실제 하버드 대학이 생긴건 식민지 인구가 1만명도 되지 되지 않은 메이플라워호 기준 16년, 메사추세츠 기준 6년. 그들에겐 목사 양성이 필요했다(28). 그러나 특이하게도 이 대학의 목사 양성 교육은 일반 교양교육에 요리문답 교육 정도였고 신학 교육이 아니었다(35). 성서중심과 만인제사장 주의가 전문 신학교육을 실시하지 않은 원인이었다(37). 이런 상황에서 세속의 질서와 교회의 질서 모두 계약 개념에 기반하고 있는데, 하나님이 우선 뉴잉글랜드라는 식민지 전체와 계약관계에 있고, 거기 세워진 개별 교회와, 마지막으로 교회의 성원 하나하나와 계약관계에 있다는 사상이 지배적이었다(43).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개별적으로 요구되던 신앙고백만 해도 적잖은 지적 능력을 요구했지만, 세 시간을 넘는 예배와 설교 역시 고도로 지적인 행위였다. 신학적 설교는 종종 출판되기도 했다(44-45). 청교도 사회는 매우 지적인 사회였는데, 남녀노소가 뒤섞인 다양한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사회가 그렇게 높은 수준의 지적 통제에 복종하는 상태가 언제까지 지속될 수는 없었고, 여기서 반지성주의의 맹아가 있다. 청교도의 유토피아는 조금도 즐겁지 않은 유토피아였다(47).
식민지의 초창기 청교도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다소 기괴하기 까지 한 검은 옷, 이중적인 도덕, 긴 설교. 여기서 모리모토가 말하는 것은 고도로 지적이면서 매우 종교적인 사회, 적어도 당시 기준으로는. 영국과 비교해서 월등하게 높았고, 최소한 학사 많은 사람이 석사 학위를 가졌던 목사의 비중도 매우 컸으며, 목사들이 죽어가자 빈 목사의 자리를 채우기 위해 대학을 설립할 만큼 절실했다. 그리고 3시간 정도의 오전 예배 설교는 두 시간, 오후에 강의 형식의 예배. 길게 이어지는 공중기도. 결론적으로 말해서, 이런 사회나 종교 시스템은 오래 지속될 수 없다. 이점이 모리모토 안리가 지적하는 핵심이다. 종교의 박해를 피해 종교의 자유를 얻기 위해, 배를 타고 대양을 넘어 온 사람들이 살아 있을 때나 가능한 시스템이다. 이 청교도들의 교회는 마치 신약성서 사도행전에 나오는 초대 교회, 즉 초기 기독교 공동체와 유사하다. 독특한 종교적 체험을 공유하는 공동체. 특별한 상황에서만 존속가능한. 이런 특수한 교회가 모범인 것처럼 교인들을 독려하는 목사들이 아직도 있는데. 이런 데서 거리를 두어야 한다.
미국의 종교적 열광, 선거에서의 대중 동원, 집단적 열광의 전통은 신앙부흥revival이 배경에 있고, 이는 미국 사회가 앓는 주기적인 열병이다(55). 18세기 부흥은 독립혁명을 준비했고, 19세기 부흥은 노예제폐지와 여권신장, 20세기 부흥은 민권운동과 소비자운동에 영향을 미쳤다. 이는 ‘평등’이라는 매우 미국적 이념을 강력하게 일깨우며, 평등주의는 ‘반지성주의의 핵심 구성요소다(55). 미국의 반지성주의가 그렇다는 말이다.
모리모토의 주장은 이렇다. 종교 내부에 여러가지 모순과 한계가 발생한다. 사람들의 종교적 열정을 포괄하지 못하는 종교적 위기가 온다. 이 종교적 위기의 원은 실상 정치사회적 원인이다. 정치사회적 변화가 낳은 종교적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종교가 변화한다. 사람들의 종교적 열정을 포괄하는 일종의 종교적 열광이 나타난다. 이것은 미국 사회가 열병처럼 앓는다. 그러면서, 그 종교적 열광은 정치사회의 변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 흐름이 반지성주의이다.
모리모토는 호프스태터를 들어 “학식 있는 목사들이 완전히 부정되는 최초의 대사건은 18세기 중반 대각성 시기에 일어났다”고 한다. 1차 신앙부흥 또는 대각성은 조나단 에드워즈와 조지 휫필드가 이끌었다(57). 1740년대 부흥운동의 내적 요인으로 2세대와 3세대의 신앙계승 문제였다. 회심 경험을 하지 못한 2세나 3세는 신자 자격은 물론, 도시의 시민 자격도 제한적이었고, 자녀에게 유아세례를 주지도 못한다. 그래서 청교도들은 1662년 중도계약Half-Way Covenant을 고안했다고 한다. 처음 들었다. 회심을 체험하지 않은 사람도 그들의 신앙을 중간 정도 인정해서 자녀에게 세례를 받을 수 있게 한 것이다. 18세기 초 교회 신도의 과반수가 중도계약자가 되기에 이른다(63). 동시에 이 시기 인구가 크게 증가한다. 1700년에서 1740년까지 식민지 인구가 25만명에서 90만명으로 늘어난다. 교회는 이런 새로운 이민자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못했다. 동시에 대중매체가 발달해 수많은 정기간행물이 등장하고 유통되었다. 이들 매체는 나중에 신앙부흥 소식을 전했다(64-65). 도시에서 정처없이 방황하던 이민자들의 불안과 종교에 대한 수요는 작지 않았다(69). 이런 사람을 위한 종교부흥을 휫필드가 이껄었다. 인상적인 한 장면은 휫필드와 프랭클린의 만남이다. 이들의 만남은 미국 반지성주의의 두 개의 엔진, 종교적 동기와 실리적 비즈니스 정신의 융합을 잘 보여준다(70). 휫필드의 성공은 프랭클린의 출판 비즈니스에도 큰 도움이었다(72). 휫필드는 홍보 담당자를 통해 설교 일정을 알리고, 설교를 출판하고, 활동을 기록하고, 방문 예정 지역에 미리 배포하는 등 홍보에 천재적이었다(73). 휫필드의 설교는 단순하고 소박한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는 방법으로 교리 일변도의 딱딱한 설교만 들어온 미국 사람들에게 적잖은 충격을 주었고, 배우지 못한 무식한 사람이나 교육을 받은 세련된 사람이나 똑같이 반응했다. 여기가 반지성주의의 출발점이다(76). 부흥사들은 종종 야외에 일요일 이외의 날에 설교하곤 했는데, 이는 도시의 체제를 지배하는 기성 교회 목사들이 반대했기 때문이다. 특히 부흥운동의 주된 역군들은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은 다수의 순회설교자들이었다(82). 이들은 무엇보다 재미있었다. 난해한 교리를 두 시간씩 설명하는 인텔리의 설교보다는 더더욱(83). 순회설교사의 자격을 묻는 질문에, 그들은 신앙은 교육의 유무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라 답했다. 당신들이야말로 예수께서 비판한 ‘학자 바리새인’이다. 소박하고 겸손한 무지가 소중하다. 신의 진리는 접하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85). 부흥운동이란 일종의 회귀운동으로 ‘하나님 앞에서 만인이 평등하다’는 근본적 종교적 원리다(86). ‘신 앞의 평등’이라는 의식이 지상의 학문이나 제도의 권위를 날려버린 것이 부흥운동이다(87). 게다가 각지를 떠돌아다니는 이런 순회전도자들은 사기꾼con man과 순회 세일즈맨이라는 미국적 전통의 기원이기도 하다(90). 미국 독립혁명 30년 전에 일어난 부흥운동은 자기 내면 응시, 신앙 점검, 자주 독립 정신, 개인의 자각, 평등 등 결과적으로 미국을 독립 혁명과 민주주의 발전으로 이끌었으며, 식민지의 통일을 이루어내, 미국인(아메리카인)이 탄생한다. 특히 교파의 교리나 의례의 차이가 중요하지 않고, 신자 각자가 경험할 수 있는 회심과 새로운 삶을 중심으로 하는 실천적인 미국적 기독교, 즉 복음주의를 낳게 된다(93-94).
1차 신앙부흥운동이 발생한 이유는 매우 단순하다. 청교도 1세대들은 죽었고, 2세대와 3세대는 그들과 같은 신앙을 유지할 수 없었다. 독일 등지에서 새로운 이민자들 심지어 영어도 못하는 사람들이 유입되어 인구가 크게 증가했다. 보통의 기독교인들이나 목사들은 여기서 신앙을 잃어버린 2세대와 3세대를 탓하면서, 다음 세대에 신앙을 전수하지 못한 청교도들을 문제삼고, 지금이라도 바른 신앙을 전파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그건 틀린 이야기다. 이들 1세대의 신앙경험은 전수될 수 없었다. 그들의 청교도 신앙과 박해의 경험 그리고 죽음의 항해를 한 경험은 전수될 수도, 재현될 수도 없었다. 그들이 이룩하려고 했던 청교도적인 사회는 그 만큼이나 모순투성이였고, 그들의 신앙이 특히나 지적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그들의 신앙형태는 유지될 수 없었다. 게다가 청교도 2세와 3세는 차라리 중도계약이라는 이름 아래 교회 안에 있었다. 새롭게 유입된 이민자들은 회중파 교회든 장로파 교회든 국교회(성공회)든 소속되기 어려운 사람들이 많이 있었고, 그들의 지적 전통도 따라가기 어려웠다. 당시의 종교 중심적 사회 분위기를 생각하면, 종교로부터의 소외는 사회로부터의 소외를 뜻한다. 그러자 열병 같은 신앙운동이 생겨나면서 종교 바깥으로 밀려나간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종교 운동이 생겨난다. 에드워드와 휫필드는 중심에서 인물이었지만, 이들 말고도 수많은 순회설교자들이 있었다. 대학도 안나왔고, 자격도 인정받지 못한 사람들이 순회설교자라고 나타나 교리가 아닌 소박한 복음의 메시지를 전하자 사람들은 열광했다. 당시 발달해가던 출판과 인쇄업도 여기에 기여한다. 효과적인 홍보 기술이 결합한다. 이들은 기성의 종교 제도권에 속한 사람들, 기득권 세력을 비판하면서, 모든 사람은 신 앞에 평등하다는 사상을 전파하여, 평등주의로 반지성주의가 전파된다. 당연히 종교 사기꾼들이 여기에 끼어든다. 아주 간단하게 말하면 이런 이야기가 된다. 반지성주의=신앙부흥 운동=기존 종교 내부의 문제 축적+새로운 인구나 종교 소외 집단의 등장+종교적 열풍+교리를 벗어난 소박한 복음+평등 사상(신 앞의 평등)+비즈니스와의 결합+사기꾼.
“반지성주의는 종교적 확신을 근거로 한 철저한 평등관에서 시작되었다. 신 앞에서는 학식이 있든 없든, 대학을 졸업한 인텔리든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한 무식쟁이든, 모두 똑같이 귀중한 인격체다.” 개신교는 목사와 신도 사이의 본질적 차이가 없다. 부흥운동은 목사에게 필요했던 지성 조차 필요없다고 소리 높였다(99). 미국 독립선언문의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All men are created equal” 즉, 미국은 평등을 원했기에 독립한 것이다(100). 하지만, 실제 인간은 종교적으로는 평등하지만, 사회적으로는 불평등했고, 이것이 용인되었다(104). 식민지 미국에서도 마찬가지 였고, 유럽에서 과격파로 여겨졌던, 재세례파와 퀘이커는 오래 차별과 박해를 받았다(107). 실제 종교개혁의 결과는 먼저 지역별로 각기 다른 교회가 생겨나고, 이에 따라 국가도 생기는 형태로, 근대에 교회와 국가의 관계는 더 밀접해졌다(113). 그러니 재세례파 같은 급진파는 설자리가 없었다. 미국에서 박해받던 재세례파와 퀘이커 들이 법률을 공공연하게 위반하면서, 신앙에 근거해 권력에 의기양양하게 도전하기 시작했다. 이 역시 명쾌한 반지성주의의 표현이다(119). 흥미로운 것은 미국에서 퀘이커나 재세례파 같은 급진적 종파에 제퍼슨과 매디슨 같은 이신론자들과 손을 잡는다는 사실이다(122). 신앙적으로 열성적인 소수파 기독교와 합리주의 사상의 소유자들이 손잡고, 공인교회(국가가 인정하는 교회)를 폐지하는 정교분리를 이루어낸다(124). 그러므로 미국의 정교분리는 세속화 과정이 아니라 종교적 열심의 표명과정이며, 개인이 자유롭게 자기 생각대로 종교를 실천하게 하는 것이다. 세금 등 국가재정이 더 이상 지출되지 않는다(124-125). 이들은 연결한 것은 종교적 기득권층에 대한 공통의 반감이었다(127). 동시에 이런 정교분리에는 무종교의 자유 역시 포함되어 있었다(127). 이들이 말하는 양심의 자유에 의한 평등은 곧 민주주의가 전제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도덕적인 능력의 기반이 된다(128). 미국에서의 정교분리 제도는 정치학이라기 보다 신학과 관련된 계획이자 시책이며, 미국인들이 반복해서 표명하는 정부나 권력에 대한 불신은 신학에 근거를 두고 있다(130-131).
미드를 보면 흔히 등장하는 헌법 수정 조항, 이중 1조부터 10조까지를 속칭 권리장전이라고 부르는데, 특히 미국 헌법 수정 제1조는 종교의 자유를 기술한다. “연방 의회는 국교를 정하거나 또는 자유로운 신앙 행위를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 또한 언론, 출판의 자유나 국민이 평화로이 집회할 수 있는 권리 및 불만 사항의 구제를 위하여 정부에게 청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법률을 제정할 수 없다.” 국교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이 조항이 미친 영향은 실로 막대한데. 미국은 사실상 기독교 국가였기 때문이다. 이때 국교 혹은 그에 준하게 인정받을 만한 지위를 가진 것은 회중파, 장로파, 성공회 뿐이었다. 이들 기성 제도권 종교 세력에 의해서 박해 받던 그러나 극단적으로 종교적이던 재세례파와 퀘이커 교도들의 지지와 사실상 이신론을 지지하던 합리주의자였던 토마스 제퍼슨과 제임스 매디슨 등의 양쪽에서 합작으로 정교분리 즉, 국교부인이 헌법에 포함된다. 이는 곧 각 식민주에서 이루어지던 기성 교회에 대한 각종 지원이 줄어들거나 끊기는 결과를 낳게 된다. 이런 변화는 평등사상에 기반한 것이고, 기성의 제도와 권력에 대한 저항으로서의 반지성주의적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지식적 기독교에 대한 반기성주의. 여기서 여러 가지 모순과 문제가 반지성주의적 종교적 신앙부흥 운동을 가져오고, 그 결과 확산된 반지성주의가 정치적 변화를 가져오는 일련의 사이클이 일차적으로 완성된 듯한 모습을 보인다.
미국의 반지성주의의 또 하나의 특징은 자연에 대한 태도이다. 에머슨의 사상에서 등장하는 압도적인 자연미에 대한 동경(145). 이때 미국은 막 전원사회에서 도시문명으로 이행하던 과정이었다. 19세기 초 6만명이던 뉴욕 시의 인구는 1890년 80만명으로 늘어난다(146). 자연의 아름다움에서 신성에 눈을 뜨고, 책을 멀리하라는 에머슨의 주장은 유럽적 지성에 대한 반대이자, 미국의 자각을 보여준다(147-148). 비판의 대상은 유럽이고, 기성 교회이며, 대학교, 신학부, 정부이기도 하다. 반지성주의의 본질은 종교적 사명이 뒷받침하는 ‘반권위주의’다(150).
미국식 반지성주의가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단면이다. 미국적 자연에 대한 찬미. 그러나 이런 찬미에 대한 배경에도 유럽에 대한 열등감. 마치 한국이 미국이나 일본에 대해 가지는 열등감 같은. 이 열등감이 자연에 대한 찬미로 이어진다. 물론 이런 자연에 대한 찬미에도 급속한 도시화라는 배경이 있었다.
1820~30년대가 중심이된 2차 신앙부흥운동의 중요한 배경은 국토의 확장이다. 미시시피 동쪽 할양, 루이지애나 구입, 서부개척 등(157). 사람들은 야외집회에 모여들고 기도하고 찬송하며 부르짖었다. 이때 감리교와 침례교가 크게 성장한다(157-158). 감리교의 순회목사제도(159)와 침례교의 개척자 농민이 어느날 ‘신의 부름’을 받아 설교자가 되는 제도(163). 개별교회주의의 반권위지향성(164). 미국 기독교의 교파의 성격을 결정하는 것은 전도 방법과 대상, 전도자의 활동 지역, 신도의 사회계층과 교육 정도 등이다(165). 미국에서 ‘오직 성서’는 특정 교의를 내세우지 않는 무신학, 무신조를 의미하게 되었다(165). 그러다 보니 감리교도는 ‘글을 아는 침례교도’ 또는 ‘신발을 신은 침례교도’, 장로파는 ‘대학에 진학한 감리교도’, 국교회는 ‘투자 이익으로 살아가는 장로파’ 등으로 표현되기에 이른다. 부흥운동은 교파를 초월해 미국 기독교 전체에 일종의 ‘공통감각’을 키워주는데, 이를 ‘복음주의’라 부르며, 소박한 성서주의, 낙관적인 공동체 사고, 보수적인 도덕관 등이 특징이다(166). 이런 반지성주의의 영웅이 1828년 당선된 앤드류 잭슨 대통령으로, 일반인이 선거인단을 선출하는 대중 동원 선거, 네거티브 캠페인 등을 펼친 잭슨은 소박하고, 단순하며, 정직하다는 평가에 힘입어 당선된다(175). 앤드류 잭슨은 사람들과 가까운 대통령, 미국인의 자치능력, 기득권에 대한 반감, 평등과 자유경쟁, 권력의 자기 증식을 막는 반지성주의, 엽관제spoils system의 도입 등을 가져오고(176), 과감한 거부권 행사, 연방의 유지 및 강화, 제2은행 해체와 재정균형, 프랑스 및 멕시코와 분쟁 회피 등 뛰어난 능력을 보여준다(179). 잭슨 시대의 미국은 새로운 평등의식, 민주적인 정신, 경박하고 저속하지만 활력이 넘치며, 자신감이 넘치던 시절이다(181). 호프스태터는 잭슨 대통령 시대를 ‘신사의 쇠락’이라고 특징 짓는다. 산업사회 이전에 가능했던 자수성가형 아메리칸 드림의 기억이다(183). 영화 스팅에 나오듯 반지성주의가 가진 사기꾼 전통은 강자를 혼내주는 것이 핵심이며, 권력과 결합된 예술을 혐오한다(187-188). 잭슨 시대에 기독교도 대중화 비속화 되고, 이 시기 찰스 피니는 동부의 지식 계급에서 교회를 빼앗아 일반 신도의 손에 넘겨주었다(189). 피니는 변호사처럼 설교했고(191), 신학은 실천의 장에서 사용가능성 즉 실용주의에 의해 평가하고, 자연과학을 높이 쳤다. 반지성주의는 단순히 지성에 대한 경멸이 아니라 지성과 권위의 유착에 대한 반발이다(192). 특히 피니는 부흥에 인간의 노력이 필요하다며, 일시적인 고양은 오고 가는 것이므로, 인간의 노력으로 부흥을 일으키는데,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노동으로 이루어지는 신인 협력의 결과물이었다(196). 때의 증표를 잘보고 적절한 중간 휴식을 취하라 권고했다(197). 하나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사상이다. 회심을 기원하면 하나님은 이를 이루어주신다. 즉, 스스로 결심하면 회심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198).
2차 신앙부흥운동. 미국의 국토는 비약적으로 늘어나고 서부 개척의 시대가 되었다. 사람들은 드넓은 북미 대륙으로 흩어졌다. 기회의 땅을 찾아 유럽의 가난과 기근을 벗어나려고 사람들은 미국으로 건너와 서부로 흩어졌다. 거대한 새로운 지역과 인구가 생겨났지만, 동부 해안가에 자리잡은 지식 계급이 주도하는 교회는 이들을 포괄하지도 포괄할 생각도 없었다. 순회목사제도를 도입하여, 순회설교사들을 보낸 감리교와 회중 속에서 목사를 선출하는 침례교가 확산되기에 이른다. 이 시기를 지나자 미국 개신교 인구에서 침례교와 감리교가 한 때 70%를 점하게 된다. 곳곳에서 야외집회가 벌어지고, 회심운동이 일어나고, 천막집회가 열린다. 천막 집회가 열린다는 소식이 번지면, 사람들은 구석구석에서 마차와 말을 타고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이런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이 찰스 피니다. 그는 시간과 사람들만 있으면, 신앙부흥운동의 각종 체험을 유도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고, 실게 그렇게 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사람들의 종교적 열정과 불안, 깊이 깔린 배제와 소외 의식, 거기에 찰스 피니는 성냥불을 그어서 붙인 셈이고, 신앙부흥의 불길은 타올랐다. 이 시점에 기독교는 더욱 더 지성을 상실한 소박한 기독교로 변화하고 오늘날 복음주의라고 흔히 부르는 신앙형태가 자리잡는다. 실천적이고 도덕적이면서 소박한 성서에 기반한 신앙, 낙관적인 사고. 이제 교파 간에 교리의 차이는 사라지고, 어느 지역에서, 언제 어떤 사람들이 모이는 지만 중요해진다. 반지성주의적 신앙관과 이에 기반한 평등주의의 시대. 정치도 예외가 아니어서, 앤드류 잭슨이라는 민주당 출신의 최초의 대통령이 등장하고 이 시기를 잭슨 민주주의라고 흔히 부른다. 반지성주의와 평등주의는 반권위주의는 다시 한 번 결합하고, 신앙부흥운동과 정치적 변화를 이끌어 낸다. 결국 남북전쟁과 노예 해방으로 이어져 간다.
19세기말 부흥운동을 거대 비즈니스로 만든 드와이트 무디가 활동했던 3차 신앙부흥운동 시기는 미국인 농업 사회에서 공업 사회로, 도시 중심으로 바뀌고, 대량 이민이 유입되고, 빈부 격차가 커지던 시기였다(203). 시골 출신으로 충분한 교육도 받지 못하고, 도시에서 불안과 고독을 느끼는 사람들이 무명의 ‘대중’으로 표류하던 시기(204). 무디는 이 시기에 활동했다. 시카고에서 착실히 재산를 모으던 무디는 원래 장사에 능한 인물이었다. 그는 주일학교를 열고 나서도 ‘주일학교채’라는 채권을 발행해 단번에 1만 달러를 모았다. 그는 부흥운동과 비즈니스를 능숙하게 결합시켰다(205). 무디는 빈곤 계급을 위한 교회를 만들고 스스로 목사가 되었으며, 일감이 없는 상인이나 공장노동자를 위해 낮시간에 기도회를 열기도 했다(206). 한 사람에게 부흥이 몇번이고 밀려왔다가 가기를 반복하는 신앙부흥운동은 이상적인 비즈니스다. 동일 고객에게 동일 상품을 몇 번이나 팔 수 있다(210). 무디의 영국 방문은 감리교, 침례교, 스코틀랜드 자유교회의 환영을 받았으나, 국교회는 경계했다(210-216). 무디를 지지하던 사람들은 윌리엄 로버트슨 스미스를 신학부에서 추방하는 이단 재판에 가담한다(217). 단순한 성서무오를 주장하고, 고등 비평을 이해하지 못하며, 당시 논쟁 중이던 진화론을 무시했던 무디의 소박한 신앙은 원리주의로 바뀌기 쉽다(218). 스미스의 이단재판 후 영국에서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기독교에 흥미를 잃고 썰물 빠져나가듯 교회에서 지성이 사라졌다(218). 영국 전도 후 무디는 미국에서 큰 환영을 받는다. 신앙부흥은 이미 산업이었다. 신앙과 비즈니스를 결합하면 상승효과가 컸다(221). 대형 집회, 건설을 위한 모금, 본집회 전 웃돈을 내는 사전집회에 거액 헌금자 초대, 집회장에서 사용된 의자 바닥재 경매 등(223). 복음성가 가수 생키와 함께하여, 음반과 악보 판매 등으로 수익을 거두었고(226-227), 순회 집회 사후 관리를 위한 결심자 카드는 순회 세일즈의 기원이 되었다(227). 무디는 또 신앙부흥 집회가 사교적 만남의 장이 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어서, 집회 예고를 신문의 ‘오락란’에 싣는 등, 종교의 오락적 성격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230). 무디는 신앙이 부와 성공을 약속한다는 점을 강조했고(235), 신앙은 성공을 담보하는 영적 보험이었다(236). 무디는 반지성주의에 실리 지향의 비즈니스 성량을 장착했고, 호프스태터에 따르면 신앙부흥이 반지성주의의 씨앗을 심엇고, 비즈니스적 실용주의가 그것을 최첨단까지 밀고 나갔다. 종교적 평등과 경제적 실용주의의 기묘한 결합. 이를 결합시킨 건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사상이다. 자수성가, 곧 자조 사상(239).
3차 부흥운동을 보여주는 두 인물이 드와이트 무디와 아래서 이야기할 빌리 선데이이다. 드와이트 무디가 없었다면, 한국 선교도 없었을 것이라고 흔히 말할 정도. 무디는 공업화, 산업화, 도시화의 시대에 도시에서 소외되는 광범위하고 가난한 대중을 발견하고, 이 대중을 소박하고 단순한 복음의 메시지로 엮어 부흥운동을 일으킨 사람이다. 산업화되어가는 미국에서 종교와 비즈니스의 결합을 가장 능숙하게 이루어낸 인물이었고, 그에게서 종교는 훌륭한 산업이 된다. 그는 스스로 가난한 자를 위한 목사 임을 선언하고, 이런 소외대는 대중을 위한 소박한 신앙, 고등 비평이든 진화론이든 어려운 이야기는 잘 모르고 성경 무오와 원리주의만 주장하는 단순한 신앙. 기독교를 잘믿고 신앙생활을 잘하면 현세에서 복을 받고 성공한다는 이 단순한 신앙. “하늘은 스스로 돕는자를 돕는다”는 사고방식. 물론 그 자신도 신학 교육도 정규 교육도 받지 않았고, 그가 세운 학교도 그런 사람을 위한 거였다. 앞서의 1차와 2차 신앙부흥 운동에서 그 맹아만 보이던 실리주의와 종교 비즈니스의 결합이 이제 무디에게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으로 나타나고, 심지어 때론 비즈니스를 앞서 가기도 한다. 워너메이커가 직원들을 연수시키러 보낸다. 지성에 대한 거부가 점점 원리주의와 독선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미국식 근본주의의 탄생과정에 있다.
20세기 초반 대중 전도자 빌리 선데이 반지성주의의 일종의 완성된 패턴으로 이후 빌리 그레이엄이나 매카시즘은 이것의 응용에 불과했다(244). 토크빌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저학력자도 적고 고학력자도 적었다. 미국은 경제적으로 만이 아니라 지식의 측면에서도 평등하여 지적 특권계급이 존재하지 않았다(259). 게다가 미국의 반지성주의는 유럽에 대항하며, 유럽은 과거, 부패의 퇴적일 뿐, 순수하고 무구한 시원으로 돌아가자는 청교도의 구호는 신세계를 개척하는 미국의 정신이었다(262). 그러나 동시에 불안한 시대였다(264). 프로 야구선수에서 전향한 빌리 선데이의 시대 순수한 낙관주의의 시대, 눈에 보이는 물질적 풍요를 자랑하는 데서 행복을 느끼던 시대였다. 이런 시대에서 성공은 성공을 낳았다(265). 선데이는 자신은 대기업에서 배운다, 설교자이며 동시에 비즈니스맨이다. 전도는 효율적인 시스템으로 비즈니스 원리를 도입해 인간 사회의 상식을 활용하면서 진행해야 한다고 말했다(267). 선데이는 세상의 인정과 신의 축복을 원했다(268). 선데이의 설교는 곡예사 설교라 불릴 만큼, 극장형 설교였다(271). 게다가 정교분리가 실질화되자, 불분명하던 교회와 지방 정부의 분리, 더 이상 국민 세금이 투입되지 않게 되자, 교회는 헌금에 의존하게 되고, 대중에 영합하는 노선을 취하게 된다. 선데이의 쇼 비즈니스는 서커스의 여흥과 구별하기 어려웠다(272). 이때 부흥집회에서는 ‘믿는 사람들은 군병 같으니’와 ‘마귀들과 싸울지라’ 등이 자주 불려졌다(274-275). 선데이는 20세기 초 번성한 국가주의와도 가까와져서, 조국 미국에 대한 충성심과 신에 대한 충성심을 결합했다(276). 선데이가 성공하면서, 권력이나 대기업에서 원하는대로 굴었다. 선데이는 원래 부나 권력에 대한 민중의 반감을 토대로 성장했으나 자신이 그 권력구조의 내부와 뒤섞이고 말았다. 반지성주의는 대중적 성공 때문에 반엘리트적 성격을 잃어갔다(278-279). 선데이는 진화론 반대에 일말의 주저도 없었고, 과학과 학문에 대한 반대했지만, 사람들은 그의 소박한 도덕주의 때문에 인기가 있었다. 신앙과 도덕은 거의 같은 말이었다(280-281).
무디를 잇는 선데이는 쇼비즈니스를 부흥운동에 결합한다. 거의 모든 질문에 모른다고 했던 그의 목사 시험이야기는 반지성주의의 상징 같다. 선데이의 행태는 이제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나와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소외된 사람들은 위한 복음을 전파하며 소박한 부흥운동을 이루었지만, 큰 성공을 거둔 후에, 다시 부자와 권력자 등 상층계급의 인정을 받으려 하고 그 인정 위에서 만족한다. 선데이의 시대에 비로소 반지성주의적 부흥운동에 국가주의가 침투한다. 그러나 실상은 1차, 2차, 3차 부흥운동이 모두 미국의 국민형성nation-building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1차 부흥운동 시대의 새로운 이민자들, 2차 부흥운동 시대의 서부 개척자들과 흩어진 농민들을 종교 부흥운동을 통해서 결합할 때, 이들은 미국인American이라는 인식을 단계적으로 형성하게 된다. 3차 부흥운동의 시대에 국가주의가 등장하게 된 것은 미국이 이제 미국의 성공을 자각하고, 미국에 대한 인정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미국은 신의 축복을 받은 나라이며, 미국에게는 위대한 사명이 있다는 사고방식이 싹튼다. 이제 비로소 미국은 필리핀 등 해외 식민지 개척에 과감하게 나서고, 1차 세대대전에도 본격적으로 참가한다. 3차 부흥운동의 시대에 국가주의 혹은 국민주의가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고, 1차, 2차, 3차 부흥운동 전체가 미국의 국민형성 과정과 궤를 같이하고 있으며, 새로운 사람들을 국민으로 호명하고, 권리와 의무를 부여하는 과정에 있다. 2차 대전 후 어느날 매카시즘이라는 변종이 등장하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특히 선데이에게서 오늘날 텔레비전 전도사에게서 흔히 보이는 쇼비즈니스적 특징과 소비자주의와의 결합이 있다. 그의 극장식 설교는 오늘날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이 시대는 미국에서 아예 근본주의가 태동되어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시기이고, 반지성주의가 종교의 주류에서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시기 이기도 하다.
반지성은 지식 작용 일반에 대한 반감이나 멸시가 아니다. 지성의 자기반성이 결여되어 있다, 월권행위, 권위의 부당한 확장을 확인하고 견제하자는 것이다. 반지성주의는 지성과 권력의 고정적 유착에 대한 반감이다(286-287). 오래된 권위가 없는 미국에선 다른 나라에서 지식인이 수행한 역할을 반지성주의가 수행해왔다고 할 수 있다. 미국은 종교와 도덕의 단순한 동일시, 종교의 도덕화가 일어나며, 정치도 도덕화된다. 매카시즘에 사람들이 동의한 것은 민주적 평등을 요구하는 열정이었다. 평등주의를 뒷받침하는 것이 종교에서 기성 체제와 권위에 대한 반대 혹은 의의제기다(288). 반지성주의가 미국에서 힘을 가지는 것은 미국이 민주적이고 평등한 사회를 요구하기 때문이다(289). 반진화론 풍조 역시, 큰 정부에 대한 종파주의 특유의 경계심이다(290). 진화론 반대는 과학 자체보다 과학과 권력의 유착을 향하고, 여기서 반지성주의가 표현되고 있다(291). 미국인에게 종교란 역경을 극복하고 현세에서 성공하는 수단이며, 유용한 자기계발도구이다. 비즈니스에서 성공하고 싶다면 확고한 신앙을 가져라는 식이다(292). 매카시즘 광풍과 긍정적 사고방식의 열풍 이것이 반지성주의의 나라 미국이다. 그러나 이제 세속적 성공을 바라는 긍정적 사고방식은 산업 파탄이 눈 앞에 있는 위급한 경제 상황에서 현실 직시를 회피하는 위험한 정신 상태이다(293).
말하자면 미국에서 반지성주의는 소위 말하는 ‘통합’의 수단이었다. 다른 말로 하면 국민 형성. 이제 구체적 형태를 갖춘 반지성주의가 한 때는 매카시즘으로 한 때는 아이젠하워의 당선으로 나타나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그리고 2016년에는 트럼프의 당선으로 나타났다. 특히 트럼프 당선에서 놀라운 일은 보수적인 복음주의 기독교인 다수가 트럼프에게 투표했다는 점이다. 그들이 트럼프에게 투표한 이유 중에는 흔히 드는 것이 학교에서 동성애에 관한 교육이었다. 소위 성소수자에 대한 감수성을 높이는 교육 그 자체에 이념적으로 반대한다기 보다. 그런 것을 내 자녀에게 가르치고 싶지 않다거나, 연방정부에서 그런 것에 까지 간섭하는 것은 싫다는 사고 방식이다. 돌이켜서 트럼프의 선거 유세 과정을 보면, 그것은 자가용 비행기를 타고 다니는 순회 설교자의 모습이었다. 각 주의 수도는 피하고 지방 도시 곳곳을 돌아다니는 데, 트럼프가 온다면, 시골 곳곳에서 사람들이 꾸역꾸역 몰려나와서 밀려들고, 그들에게 트럼프는 친숙하게 말한다. 왜 이렇게 안되어 보이냐, 돈이 없으면, 내 비서에게 100불 받아가라, 그리고 소박하게 사람들에게 지식을 내세우지 않고, 친구 처럼 말하는 유세. 난 당신 편이라면서 하는 이야기. 결국 기득권에 대한 반대, 지식인과 권력의 결탁이 공고해지는 것을 허무는 미국적 정서가 미국사에서 흐르는 평등주의와 반지성주의의 흐름이 트럼프의 당선을 낳았다고 할 수 있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두고 보아야 하겠지만.
이 책을 읽고나니 적어도 미국 역사의 전개과정에서 반지성주의가 국민형성을 가져오고 소외된 사람들 가난한 사람들의 통합을 가져왔다는 사실 만큼은 부인하기 어려웠다. 평등사상에 근거한 반지성주의가 미국이라는 나라의 형성에, 미국이라는 나라의 운동에 나름의 기여를 한 것이다. 그러나 그 댓가는 교리와 지성의 포기였다. 그리고 대중을 효과적으로 동원할 수 있는 하나의 수단을 사람들 손에 쥐어 준 것이다. 의도를 가진 사람이라면, 동원할 수 있다. 트럼프라고 해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 솔직히 가치판단을 하기 아주 어려워졌다. 지금 히스패닉들 사이에서 확산된다고 하는 오순절파 역시 이런 흐름 속에 있는 것 아닐까. 실제로 소박한 도덕과 불법이민자는 물론 사회 하층계급의 미국 생활에 도움을 주는. 살펴보지 않았지만, 반지성주의 흐름 위에 있을 것 같다. 소외된 사람들, 종교로부터 버려진 사람들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당위와 그렇기 위해서는 지식과 지성을 버리고 몰락해버릴 위험을 감수해야만 한다는 복잡한 심경이 든다.
그리고 설명할 필요도 없이 이 모든 게 중첩되어 있는 것이 한국 교회이고. 요즘은 정말 한국이 신정국가인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대통령 권한대행 총리는 전도사 경력이 있는데. 구 집권 여당 비대위원장으로 목사가 임명되더니. 목사 비대위원장과 집사인 친박 거물이, 거의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다. 목사는 정당을 ‘집사가 있는 교회’라는 식으로 폄하했다. 급기야 대통령 탄핵 법정에서 대수천(대한민국수호천주교연합)이라는 카톨릭 우파 조직 출신의 변호사가 박근혜를 십자가를 진 예수에 비견하는 일이 벌어졌다. 게다가 오늘은 목사들이 교회 성가대를 동원해서 탄핵반대 집회를 크게 한다는데. 기독교와 국가주의의 결탁은 여기서 한쪽 끝을 보여준다.
돌이켜서 촛불집회 현장을 보면, 여기도 그다지 안심할 만한 일만은 아니다. 권위의 해체가 아주 실질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 권위 해체의 대표적인 사례가 헌법재판소 근처 집회 및 영향 운운하는 이야기와 부산의 소녀상 사건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소위 중립적인 영역이다. 전문적인 영역이다라는 주장이 빈축을 듣기는 했어도 인정은 되었다. 그래서 헌법재판소는 헌법재판관이 법률과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하는 독립기구라고 하면 고개를 끄덕였지만, 지금은 아니다. 거리에서 외쳐서 헌재가 탄핵을 인용하도록 굴복시켜야 한다고 사람들은 생각하고, 지금 하는 걸 보면, 이미 두려움이 있다. 이 정도에서 파장을 막고 싶다는 그런 의지가 보인다. 부산의 소녀상 사건도 예전 같으면, 외교와 국가 간의 관계 운운하면서, 경찰을 동원해서 어떻게 할 수 있었을 텐데. 부산 동구청이 손을 들고 나간 후, 외교부도 발언을 못하고 있다. 물론 나도 일이 이런 방향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데 동의하지만. 이 과정에서 권위의 해체는 아주 뚜렷해 보인다. 게다가 전문가 집단의 권위 역시 무너지고 있는데. 실상 그건 자업자득이다. 전문가의 해체는 전문가의 실패로 말이암은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의 목소리가 동등하게 취급되는, 모두가 마이크를 공유하는 가장 바람직한 현장에서 모두가 이해할 수 있어야만 공감할 수 있기에 반지성주의가 싹트게 된다. 광장이 영원히 계속될 수는 없겠지만, 이미 한 가지 방향으로 길이 열린 만큼 점점 더 그럴 것이다. 게다가 또 당연히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조사를 해보면 한국 개신교에 가장 불만이 많은 사람들은 20대, 교육수준이 낮은 육체노동자들이다. 광장은 이들을 불러 국민이라 동등하게 어깨를 두들긴다. 아직 이주민과 외국인은 배제되는 등 한계가 분명하지만.
최정운은 1930년대 반지성주의는 지식인의 자조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해방과 전쟁, 도시화와 산업화, 80년대의 민주화, 진영논리에 입각한 투쟁이 가져온 반지성주의는 그 결이 다르다. 2016년의 광장은 권위의 근거를 자신에게서 찾기 시작했다. 선생님들의 점잖은 훈계를 곧바도 집단 디스를 당하기 일쑤다. 지식인의 자조와 자기비하에서(식민지), 지식인들의 무능에 대한 조롱(해방과 전쟁), 지식인의 권력과의 결탁에 대한 비판(민주화), 지식인들 볼썽사나운 민낯이 드러나는 과정(진영 투쟁)을 거쳐, 이제 지식인들이 거부당하고, 집단지성이 참된 지성이라며 스스로 자기를 정립하는데, 지식인들은 비위를 맞추는 사이다 발언을 하거나 쉬운 말로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나같은 반지식인이야 말할 것도 없고. 일본의 반지성주의는 어디로 가고, 한국의 반지성주의는 어디로 가는 것인지. 한국 기독교는 말할 것도 없고.
책을 읽고도, 글을 쓰고도, 이렇게 개운치 않은 경우는 정말 흔치 않다.
2017년 1월 7일
* 괄호 안의 숫자는 번역서의 쪽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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